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10th–5th century BC
The Torah
토라
창조에서 모세의 죽음까지, 유대 전통의 다섯 권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I am the LORD.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나는 주다.
I have set before thee life and death, the blessing and the curse; therefore choose life, that thou mayest live, thou and thy seed;
내가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으니, 생명을 택하여 너와 네 자손이 살라.
한눈에 보기
세상의 창조, 아브라함의 부르심, 이집트 탈출, 시내산의 율법, 광야 사십 년, 모세의 마지막 말까지 이어지는 다섯 권. 유대교가 가장 높이 여기는 이 책에서 이야기와 법을 번갈아 읽으며,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서른다섯 대목을 고른다.
비슷한 책
- The Holy Bible (성경)
- The Talmud (탈무드)
- The Quran (꾸란)
한 권 요점
The Torah
토라는 히브리어로 "가르침"을 뜻하는 말이고, 좁게는 성경의 첫 다섯 권, 곧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킵니다. 유대교는 이 다섯 권을 히브리 성경 전체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에 놓고, 회당에서 한 해에 걸쳐 처음부터 끝까지 나누어 읽습니다. 기독교는 같은 책들을 "모세오경"이라 부르며 구약의 시작으로 읽습니다. 전통적으로는 모세가 쓴 책으로 전해지지만, 근현대의 성경학은 여러 시대의 전승과 자료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합쳐지고 다듬어져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 글은 이 논쟁을 판가름하지 않고, 책이 스스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읽습니다.
토라의 짜임새는 독특합니다. 창세기는 거의 전부가 이야기입니다. 출애굽기는 이야기로 시작해 시내산에서 법으로 넘어가고, 레위기는 거의 전부가 법이며, 민수기는 광야의 이야기와 법이 섞여 있고, 신명기는 죽음을 앞둔 모세가 긴 연설로 모든 것을 되새깁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이야기 책"으로도 "법전"으로도 읽을 수 없고, 이야기가 법의 이유를 설명하고 법이 이야기의 의미를 만드는 구조로 읽어야 합니다. 법 조항 가운데 가장 자주 나오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이 글은 같은 영어 성경이라도 앞서 읽은 『성경』(킹제임스 판)과는 다른 번역, 곧 1917년 유대인 출판협회(JPS)가 낸 유대인 번역본의 문장으로 토라를 읽습니다. 번역이 달라지면 같은 구절도 느낌이 달라지므로, 두 글을 함께 읽으면 번역의 차이도 보입니다.
줄거리
창세기는 세상의 창조, 인류의 타락과 홍수, 바벨탑을 거쳐 아브라함에서 요셉까지 한 가족의 이야기로 좁혀집니다. 출애굽기는 이집트의 노예였던 히브리 사람들이 모세의 인도로 탈출해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레위기는 제사와 정결, 거룩한 삶의 법을 다루고, 민수기는 광야를 떠도는 사십 년의 이야기이며, 신명기는 약속의 땅 앞에서 모세가 하는 마지막 연설과 죽음으로 끝납니다. 아래는 이 순서를 따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빛이 있으라
토라는 태초의 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이어서 어둠과 깊은 물 위에서 하나님의 영이 움직이고, 말씀으로 빛이 생깁니다.
And God said: 'Let there be light.' And there was light.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창조는 무에서 나오는 말씀의 질서로 그려집니다. 하루하루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로 끝나고, 매번 "보시기에 좋았다"가 따라붙습니다. 주목할 점은 창조의 이야기에 신들의 싸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변 문명의 창조 신화와 달리 하나님은 아무 경쟁자 없이 말씀 하나로 세상을 만듭니다.
2. 하나님의 형상
창조의 절정은 사람입니다.
And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이 선언은 왕과 영웅만이 신의 형상이라고 여기던 고대 세계에서 파격적이었습니다. 이후 인간의 존엄에 대한 서양 사상의 많은 부분이 이 한 문장에 기대고 있습니다. 둘째 이야기에서는 다른 방향에서 사람을 말합니다.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
창조에서 처음으로 "좋지 않다"가 나오는 순간이 외로움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3.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첫 형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첫 살인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행방을 묻자 가인은 이렇게 답합니다.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모릅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이 질문은 토라 전체에서 가장 날카로운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은 더 무겁습니다.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 crieth unto Me from the ground.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내게 울부짖고 있다.
피가 말한다는 표현은 죽은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앞 장의 "형상"과 이 장의 "지키는 자"는 짝을 이룹니다. 모든 사람이 신의 형상이라면, 형제의 목숨은 곧 내 책임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4. 홍수 이후의 무지개
사람의 악이 커지자 하나님은 세상을 쓸어버리기로 합니다. 토라는 하나님의 마음까지 보여 줍니다.
And it repented the LORD that He had made man on the earth, and it grieved Him at His heart.
주께서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고, 홍수가 끝난 뒤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표징을 주십니다.
I have set My bow in the cloud, and it shall be for a token of a covenant between Me and the earth.
내가 구름 속에 내 무지개를 두었으니, 그것이 나와 땅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 한 민족이 아니라 땅 위의 모든 생명과 맺은 것입니다. 홍수 이야기는 파괴보다 약속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5. 바벨탑, 이름을 내려는 도시
온 땅의 말이 하나였을 때 사람들은 도시와 하늘에 닿는 탑을 쌓기로 합니다.
Come, let us build us a city, and a tower, with its top in heaven, and let us make us a name; lest we be scattered abroad upon the face of the whole earth.
자, 우리를 위해 성과 탑을 쌓자. 탑의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자. 그래서 온 땅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흩어지지 않으려는 두려움과 이름을 내려는 욕망이 한 문장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을 뒤섞어 사람들을 흩어 놓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나의 말이 곧 하나의 권력이 되는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읽는 해석도 있고, 다양한 언어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름을 내려는 마음이 어떻게 사람을 한 곳에 묶어 두는지를 날카롭게 보여 줍니다.
6. 떠나라,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창세기의 가장 큰 전환점은 아브라함의 부르심입니다.
Get thee out of thy country, and from thy kindred, and from thy father's house, unto the land that I will show thee.
너는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약속은 한 민족의 축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and in thee shall all the families of the earth be blessed.
네 안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다.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라는 감각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른 것은 그가 세상을 위한 복이 되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 약속이 이후 이천 년의 유대 역사,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아브라함을 공통의 조상으로 받아들이는 배경에 있습니다.
7. 믿음과 의로움
아이가 없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별을 세어 보라고 합니다.
And he believed in the LORD; and He counted it to him for righteousness.
그가 주를 믿었고, 하나님은 그것을 그의 의로 헤아리셨다.
아주 짧은 문장이지만 서양 종교사에서 가장 오래 논쟁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믿음이 곧 의로움이 된다는 이 선언은 유대교에서는 아브라함의 신뢰를, 기독교에서는 믿음에 의한 의로움을 말하는 근거로 읽혔습니다. 같은 구절이 다른 전통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어졌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8. 온 땅의 재판관은 공의를 행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That be far from Thee to do after this manner, to slay the righteous with the wicked, that so the righteous should be as the wicked; that be far from Thee; shall not the judge of all the earth do justly?
그렇게 하시는 것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여 의인이 악인과 같이 되게 하시는 것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땅의 재판관께서 공의를 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인간이 신에게 정의를 요구하는 장면입니다. 이어 아브라함은 쉰 명에서 시작해 열 명까지 흥정하듯 숫자를 낮춰 갑니다. 토라는 신 앞에서 침묵하는 것만이 믿음이 아니며, 정의를 따져 묻는 것도 믿음의 한 방식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탈무드를 비롯한 이후 유대 전통이 논쟁과 질문을 소중히 여기는 뿌리가 이런 장면에 있습니다.
9. 모리아 산, 가장 어려운 이야기
토라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며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합니다.
Take now thy son, thine only son, whom thou lovest, even Isaac,
네 아들, 네 외아들, 네가 사랑하는 이삭을 데리고
아브라함이 칼을 들었을 때 천사가 그를 막습니다.
Lay not thy hand upon the lad, neither do thou any thing unto him;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 이야기는 이천 년 넘게 해석되었습니다. 신에 대한 절대적 순종의 모범으로, 인신 제사를 거부하는 이야기로, 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남는 상처의 이야기로 읽혔습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한 줄도 설명하지 않고, 그래서 독자는 그 침묵 속에 스스로를 세우게 됩니다. 전통은 이 이야기를 쉽게 정당화하지 않고 끝없이 되묻는 방식으로 대해 왔습니다.
10. 야곱의 씨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형을 속이고 도망쳤던 야곱은 돌아오는 길에 밤새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와 씨름합니다.
I will not let thee go, except thou bless me.
저를 축복해 주시기 전에는 보내 드리지 않겠습니다.
상대는 그의 이름을 바꿔 줍니다.
Thy name shall be called no more Jacob, but Israel; for thou hast striven with God and with men, and hast prevailed.
네 이름이 다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네가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이름이 "하나님과 겨루는 자"라는 뜻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은 인상적입니다. 이 민족의 정체성은 순종하는 자가 아니라 씨름하는 자입니다. 야곱은 허벅지를 다쳐 절룩거리며 길을 떠납니다. 축복은 상처와 함께 오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11.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
창세기는 요셉 이야기로 끝납니다. 형제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간 요셉은 나중에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다시 만납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형제들은 보복이 올까 봐 두려워합니다.
And as for you, ye meant evil against me; but God meant it for good, to bring to pass, as it is this day, to save much people alive.
너희는 내게 악을 꾀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오늘과 같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시려는 것이었다.
복수할 힘이 있는 사람이 용서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은 또 이렇게 되묻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있느냐?" 복수와 심판은 자기 몫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형제의 이야기로 시작한 창세기가 형제의 화해로 끝나는 구조가 아름답습니다.
12. 나는 나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묻습니다.
And God said unto Moses: 'I AM THAT I AM'; and He said: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hath sent me unto you.'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또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라. 스스로 있는 이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이 이름은 "있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이름으로, 번역이 매우 다양합니다. "나는 있을 자로서 있을 것이다"로 옮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의 이름이 사물이 아니라 존재와 임재의 약속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이 앞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한 말도 중요합니다.
I have surely seen the affliction of My people that are in Egypt, and have heard their cry by reason of their taskmasters;
내가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았고, 그들이 감독관들 때문에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토라의 하나님은 먼저 노예의 부르짖음을 듣는 하나님으로 소개됩니다.
13. 자녀가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라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풀려난 밤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본문은 설명하는 방법까지 규정합니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when your children shall say unto you: What mean ye by this service?
너희 자녀가 "이 예식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묻거든
그러면 해방의 이야기를 들려 주라고 합니다. 신앙을 가르치는 방법이 교리가 아니라 아이의 질문에 이야기로 답하는 일로 정해진 것입니다. 오늘 유대인 가정의 유월절 만찬(세데르)이 아이의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구절은 신명기 6장에서도 반복됩니다.
14. 사람마다 먹을 만큼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던 백성에게 만나가 내립니다.
he that gathered much had nothing over, and he that gathered little had no lack;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까지 남겨 둔 것은 벌레가 생기고 썩었다고 합니다. 오늘 필요한 만큼만 거두라는 이 규칙은 쌓아 두려는 마음에 대한 오래된 풍자처럼 읽힙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이 만나를 되새기며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가르칩니다.
15. 제사장의 나라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뜻을 전합니다.
and ye shall be unto Me a kingdom of priests, and a holy nation.
너희는 내게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모든 백성이 제사장이라는 선언은 소수 사제 계급만 신과 가까운 고대 세계에서 이례적입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사명이 지배가 아니라 봉사와 거룩함임을 말한다고 읽힙니다.
16. 열 마디 말씀
시내산에서 받은 열 가지 말씀의 첫 마디는 계명이 아니라 자기소개입니다.
I am the LORD thy God, who brought thee out of the land of Egypt, out of the house of bondage.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네 하나님이다.
법이 해방의 기억 위에 서 있다는 선언입니다. 이어 하나님 외의 다른 신을 두지 말 것, 형상을 만들지 말 것, 안식일을 기억할 것, 부모를 공경할 것이 나오고, 사람 사이의 계명이 이어집니다.
Thou shalt not murder.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 Thou shalt not steal. Thou shalt not bear false witness against thy neighbour.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안식일 계명은 자녀와 종, 가축과 나그네까지 쉬게 합니다. 쉼이 주인만의 특권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계명은 노동과 신분에 대한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마음의 계명으로 끝납니다.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법의 대상이 됩니다.
17. 나그네를 억압하지 말라
토라의 법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이유가 나옵니다.
And a stranger shalt thou not oppress; for ye know the heart of a stranger, seeing ye were strangers in the land of Egypt.
나그네를 억압하지 말라. 너희는 나그네의 마음을 안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그네의 마음을 안다"는 말은 법의 근거를 규칙이 아니라 공감에 둡니다. 이어서 같은 장은 원수의 길 잃은 소를 돌려주고, 원수의 짐 진 나귀를 도우라고 합니다. 이웃이 아닌 사람, 심지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의 재산과 곤경도 내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이 법들은 모두 이집트의 기억에서 나옵니다.
18. 눈에는 눈
토라에서 가장 오해받는 구절입니다.
life for life, eye for eye, tooth for tooth, hand for hand, foot for foot,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이 구절은 흔히 복수를 허락하는 말로 읽히지만, 원래는 보복을 받은 만큼으로 제한하는 원칙, 곧 더 큰 복수를 막는 장치입니다. 유대 전통은 이 구절을 실제 신체 훼손이 아니라 배상으로 해석해 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입니다. 앞서 읽은 탈무드에서 법의 해석이 어떻게 구절을 부드럽게 만드는지 볼 수 있습니다.
19. 금송아지와 깨어진 판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동안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깁니다.
he saw the calf and the dancing; and Moses' anger waxed hot, and he cast the tables out of his hands, and broke them beneath the mount.
송아지와 춤추는 모습을 본 모세는 분노가 불붙듯 일어나 손에 든 판을 던져 산 밑에서 깨뜨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이 더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백성을 멸하려 하자 모세는 중재합니다.
Yet now, if Thou wilt forgive their sin
이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는 이어서 자신의 이름을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서라도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지도자란 백성의 죄 앞에서 자신을 걸고 서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20. 자비롭고 은혜로운 이름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청하자, 하나님은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선포해 주십니다.
The LORD, the LORD, God, merciful and gracious, long-suffering, and abundant in goodness and truth;
주, 주,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
이 구절은 유대교 예배에서 속죄의 날마다 되풀이되는, 하나님의 속성을 요약한 가장 유명한 문장입니다. 곧이어 죄를 용서하시되 죄 있는 자를 결코 그냥 두지 않는다는 말이 이어집니다. 자비와 정의가 한 문장에서 맞서는 이 긴장이 토라의 하나님 이해를 압축합니다.
21. 너희는 거룩하라
레위기는 제사와 정결법으로 가득하지만, 그 중심에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Ye shall be holy; for I the LORD your God am holy.
너희는 거룩하라. 주 너희 하나님인 내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룩함이 무엇인지는 놀랍게도 신전이 아니라 일상의 규칙으로 설명됩니다.
Thou shalt not curse the deaf, nor put a stumbling-block before the blind, but thou shalt fear thy God: I am the LORD.
귀먹은 사람을 저주하지 말고, 눈먼 사람 앞에 걸림돌을 놓지 말라.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주다.
듣지 못해 항의하지 못하는 사람, 보지 못해 피하지 못하는 사람이 법의 보호 대상입니다. 약자가 모르고 당하는 해를 막는 것이 거룩함이라는 선언입니다.
22. 이웃을 네 몸처럼
같은 장의 한가운데에 서양 윤리의 한 기둥이 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Thou shalt not take vengeance, nor bear any grudge against the children of thy people, but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I am the LORD.
네 백성의 자손에게 복수하거나 원한을 품지 말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나는 주다.
바로 앞에서 토라는 마음속 미움까지 다룹니다.
Thou shalt not hate thy brother in thy heart; thou shalt surely rebuke thy neighbour, and not bear sin because of him.
마음속으로 네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 네 이웃을 반드시 꾸짖되, 그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말라.
미워하는 대신 솔직하게 말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대상은 곧 나그네까지 넓어집니다.
The stranger that sojourneth with you shall be unto you as the home-born among you, and thou shalt love him as thyself; for ye were strangers in the land of Egypt
너희와 함께 사는 나그네를 너희 중의 본토인처럼 여기고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이웃을 사랑하라"가 같은 민족에게만 해당하는지, 나그네까지인지는 오랜 논쟁거리였지만, 이 구절은 분명히 둘 다를 말합니다. 힐렐이 "이것이 율법 전체"라고 한 말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가 됩니다.
23. 땅은 내 것이다, 희년
레위기는 경제 제도에 관한 놀라운 상상도 담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해의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면 오십 번째 해가 옵니다.
And ye shall hallow the fiftieth year, and proclaim liberty throughout the land unto all the inhabitants thereof;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의 모든 주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그해에는 팔았던 땅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고 종살이하던 사람이 자유를 얻습니다. 이유는 이것입니다.
And the land shall not be sold in perpetuity; for the land is Mine; for ye are strangers and settlers with Me.
땅을 영구히 팔지 말라. 땅은 내 것이고, 너희는 나와 함께 사는 나그네이며 거류민이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가 세대를 넘어 굳어지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재분배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가 실제로 얼마나 시행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자유를 선포하라"는 구절은 이후 많은 사회 개혁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자에 대한 법도 같은 맥락입니다. 가난해진 형제에게 이자를 받지 말라는 규정이 그것입니다.
24. 속죄의 날
레위기 16장은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가는 날을 규정합니다.
For on this day shall atonement be made for you, to cleanse you; from all your sins shall ye be clean before the LORD.
이날에 너희를 위해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니, 너희가 주 앞에서 모든 죄에서 깨끗해질 것이다.
이날은 일곱째 달 열째 날로, 오늘날 욤 키푸르로 지켜집니다. 백성은 "자신을 괴롭게" 하라고 명령받는데, 유대 전통은 이를 금식으로 해석합니다. 성전이 사라진 뒤에도 이날은 유대인의 한 해에서 가장 엄숙한 날로 남았습니다.
25. 모든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민수기에서 광야의 모세는 지쳐 갑니다. 백성의 불평 앞에서 그는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I am not able to bear all this people myself alone, because it is too heavy for me.
나 혼자서는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너무 무겁습니다.
하나님은 칠십 명의 장로에게 모세의 영을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 진영에 남아 있던 두 사람 엘닷과 메닷에게도 영이 임해 예언을 하자, 모세의 젊은 시종 여호수아는 막으라고 말합니다. 모세의 대답입니다.
would that all the LORD'S people were prophets, that the LORD would put His spirit upon them!
주의 모든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주께서 그들 모두에게 자기 영을 주셨으면!
지도자가 권위를 독점하지 않고 나누는 모습입니다. 더구나 같은 책은 모세를 이렇게 평합니다. "그 사람 모세는 땅 위의 모든 사람보다 매우 겸손했다." 위대한 지도자의 조건이 겸손이라고 본 것입니다.
26. 메뚜기 같던 우리
약속의 땅을 정탐하고 온 열두 사람 가운데 열 명은 두려운 보고를 합니다.
and we were in our own sight as grasshoppers, and so we were in their sight.
우리 눈에도 우리가 메뚜기 같았으니, 그들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두려움은 상대가 클 때보다, 내가 나를 작게 볼 때 더 커진다는 말처럼 읽힙니다. 갈렙은 즉시 올라가자고 했지만 백성은 울며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이 불신 때문에 한 세대가 광야에서 사십 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반석에서 물을 내는 장면에서 모세와 아론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토라는 이 판결의 이유를 거의 설명하지 않고, 그 침묵이 오히려 지도자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무게를 줍니다.
27. 슬로브핫의 딸들
민수기의 법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장면입니다. 아들 없이 죽은 슬로브핫의 다섯 딸이 모세와 온 회중 앞에 나서서 따집니다.
Why should the name of our father be done away from among his family, because he had no son? Give unto us a possession among the brethren of our father.
우리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다고 해서 그의 이름이 가문에서 없어져야 합니까? 우리에게 아버지의 형제들 가운데 한 몫의 소유를 주십시오.
모세는 이 일을 하나님께 가져가고, 응답은 이렇습니다.
The daughters of Zelophehad speak right:
슬로브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
법이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법의 빈틈을 지적한 사람들의 항의로 고쳐졌다는 기록입니다. 이후 상속에 관한 법이 새로 세워집니다. 이 이야기가 토라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법이 열려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28. 들어라, 이스라엘아
신명기에서 모세는 약속의 땅 앞에서 마지막 연설을 합니다.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고백이 이 연설에서 나옵니다.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
들어라, 이스라엘아. 주 우리 하나님은 한 분이신 주시다.
이어서 사랑이 명령으로 나옵니다.
An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ght.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을 명령한다는 것은 역설처럼 들리지만, 신명기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충성과 행동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자녀에게 가르치고, 집 문설주에 쓰라는 이어지는 말씀 때문에 오늘도 유대인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이 구절을 외우고, 문설주에 이 구절이 든 작은 통(메주자)을 붙입니다. 가르침이 일상의 모든 순간에 닿아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29.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모세는 사십 년의 광야를 되돌아보며 의미를 설명합니다.
that He might make thee know that man doth not live by bread only, but by every thing that proceedeth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doth man live.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사는 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광야의 굶주림은 벌이 아니라 배움이었다는 해석입니다. 이 구절은 훗날 예수가 시험받을 때 인용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30.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And now, Israel, what doth the LORD thy God require of thee, but to fear the LORD thy God, to walk in all His ways, and to love Him, and to ser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이스라엘아, 이제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주 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모든 길로 걷고, 그를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를 섬기는 것이다.
이 구절이 놀라운 것은 곧 이어지는 내용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들의 신, 주들의 주이지만 뇌물을 받지 않고 고아와 과부를 위해 정의를 행하며 나그네를 사랑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러니 너희도 나그네를 사랑하라. 신학이 곧바로 윤리로 이어집니다.
31. 손을 펴라, 정의를 따르라
신명기의 사회법은 가난한 이를 향합니다.
thou shalt not harden thy heart, nor shut thy hand from thy needy brother; but thou shalt surely open thy hand unto him,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고 궁핍한 형제에게 네 손을 움켜쥐지 말라. 반드시 그에게 손을 펴라.
안식년이 가까웠다는 이유로 빌려주기를 꺼리는 마음도 "악한 생각"이라고 지적하는 세심함이 눈에 띕니다. 재판에 관한 법은 이렇게 짧게 요약됩니다.
Justice, justice shalt thou follow, that thou mayest live, and inherit the land which the LORD thy God giveth thee.
정의, 오직 정의를 따르라. 그래야 네가 살고, 주 네 하나님이 주시는 땅을 차지할 것이다.
"정의"가 두 번 반복되는 것은 목적뿐 아니라 방법까지 정의로워야 한다는 뜻으로 읽는 해석이 있습니다.
32. 품삯은 그날 주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자를 위한 구체적인 법입니다.
In the same day thou shalt give him his hire, neither shall the sun go down upon it; for he is poor, and setteth his heart upon it
그날 안에 그의 품삯을 주고, 해가 지기 전에 주라. 그는 가난하고 그것을 마음에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장은 가족의 연대 책임을 부정합니다.
every man shall be put to death for his own sin.
사람은 각자 자기 죄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아버지의 죄로 자식을 벌하지 않는다는 이 원칙은 개인 책임의 원리를 고대 법에서 분명하게 세운 대목입니다. 그리고 추수 때 잊고 둔 곡식 단을 되가져가지 말고 나그네, 고아, 과부의 몫으로 남기라는 법이 이어지며, 그 이유는 다시 "너희가 이집트에서 종이었음을 기억하라"입니다.
33. 하늘에 있지 않다
신명기 30장은 율법이 어렵고 멀다는 변명을 막습니다.
It is not in heaven, that thou shouldest say: 'Who shall go up for us to heaven, and bring it unto us, and make us to hear it, that we may do it?'
그것은 하늘에 있지 않다. 그래서 "누가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올라가 그것을 가져다 들려주어 우리가 행하게 하겠는가?" 하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집니다.
But the word is very nigh unto thee, in thy mouth, and in thy heart, that thou mayest do it.
그 말씀은 네게 매우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으니, 네가 행할 수 있다.
탈무드는 이 구절을 근거로 율법의 해석을 하늘의 음성이 아니라 사람의 토론에 맡겼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법이 하늘에 있지 않으니 해석하는 책임이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입니다.
34. 생명을 택하라
모세의 마지막 호소는 선택을 요구하는 말로 끝납니다.
I have set before thee life and death, the blessing and the curse; therefore choose life, that thou mayest live, thou and thy seed;
내가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으니, 생명을 택하여 너와 네 자손이 살라.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운 이 선택은 이스라엘에게만이 아니라, 선택 앞에 선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거는 문장처럼 읽힙니다. 약속의 땅에서 살 것이냐 하는 문제가 곧 어떤 삶을 택하느냐의 문제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35. 모세의 죽음, 아무도 모르는 무덤
토라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세의 죽음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땅을 보여 줍니다.
I have caused thee to see it with thine eyes, but thou shalt not go over thither.
내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보게는 했으나,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할 것이다.
모세는 백이십 세에 죽고,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오늘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And there hath not arisen a prophet since in Israel like unto Moses, whom the LORD knew face to face;
그 뒤로 이스라엘에는 주께서 얼굴을 맞대고 아신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일어나지 않았다.
토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끝납니다. 이 책이 목표를 이룬 이야기가 아니라 약속을 향해 가는 이야기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책인 여호수아로 넘어갑니다. 끝나지 않은 채 끝나는 이 구조는 이후 유대인의 역사 경험과도 잘 맞는 것으로 읽힙니다.
어려운 대목을 읽는 법
토라에는 오늘의 눈으로 읽기 힘든 내용도 많습니다. 가나안 정복 전쟁에 관한 명령, 종과 여성에 관한 규정, 일부 범죄에 대한 사형 같은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당시 주변 법과 견주어 읽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종의 대우나 복수의 제한은 당시 다른 법전과 견주면 오히려 제한을 두려는 흐름이 보인다고 합니다. 다른 하나는 후대 해석 전통을 보는 방식입니다. 유대 전통은 사형 같은 규정이 실제로는 거의 시행될 수 없게 만드는 조건을 쌓아 왔고, 탈무드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토라를 비판 없이 읽는 것도, 한두 구절로 책 전체를 단정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토라를 처음 읽는다면 창세기를 전부 읽고, 출애굽기 1~20장과 32~34장, 레위기 19장, 민수기 11~14장, 신명기 6장과 30장을 이어 읽는 순서를 권합니다. 레위기의 제사 규정과 민수기의 인구 조사 같은 대목은 처음에는 건너뛰어도 괜찮습니다. 책 전체가 이야기와 법이 번갈아 나온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법이 나올 때마다 "왜 이 법이 여기에 있을까"를 물으면, 대개 앞의 이야기가 그 답이 됩니다.
이 글은 JPS 번역을 바탕으로 했는데, 같은 구절을 킹제임스 판 성경과 견주어 읽으면 번역의 선택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바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토라를 읽은 뒤에는 탈무드로 넘어가 이 짧은 구절들이 이천 년 동안 어떻게 질문되고 토론되었는지를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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