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1000 BC–c. 100 AD
The Holy Bible
성경
구약과 신약, 킹 제임스 성경에서
He hath shewed thee,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th the LORD require of thee, but to do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thy God?
사람아, 그분이 무엇이 선한지 네게 보이셨다.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네 하느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것밖에 무엇이 있겠느냐?
Be not overcome of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한눈에 보기
오랜 세월에 걸쳐 쓰인 예순여섯 권의 책을 한 권으로 묶은 책. 창조와 약속, 율법과 시, 지혜와 예언, 복음과 편지를 지나 모든 눈물을 닦아 주겠다는 약속에 이른다. 이 글은 그 흐름을 서른 가지 대목으로 따라간다.
비슷한 책
- 무함마드 The Quran (꾸란)
- 성 아우구스티누스 The Confessions of Saint Augustine (고백록)
- 키르케고르 Selections from the Writings of Kierkegaard (키르케고르 선집)
한 권 요점
The Holy Bible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경전이고, 구약에 해당하는 부분은 유대교의 경전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뜻하는 영어 단어 "Bible"은 "책들"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왔습니다. 이름 그대로 이 책은 한 권이 아니라 여러 책의 모음입니다. 개신교가 쓰는 성경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모두 66권이고, 가톨릭은 몇 권을 더 포함해 73권으로 헤아리며, 동방 정교회의 정경은 교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유대교는 구약과 같은 내용을 24권으로 묶어 「타나크」라고 부릅니다. 구약은 주로 히브리어(일부는 아람어)로, 신약은 그리스어로 쓰였고, 쓰인 시기는 천 년 안팎의 긴 세월에 걸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각 책의 정확한 집필 시기와 저자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이 글은 그 방대한 책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에 말을 걸어 온 서른 가지 대목을 골라 읽습니다. 창세기의 첫 장면에서 시작해 율법과 시편, 지혜서와 예언서를 거쳐 복음서와 서신, 계시록의 마지막 약속까지 책의 순서를 따라갑니다.
이 글은 신앙의 입장에서 쓰이지도, 신앙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쓰이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은 수십억 명이 신앙의 기준으로 삼아 온 책이면서 문학과 역사, 윤리의 책으로도 읽혀 왔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신학적 해석을 판정하지 않고, 본문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먼저 보여 주려 합니다. 해석이 갈리는 대목에는 그렇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신앙의 가르침으로서의 의미는 각 교회와 전통의 해설을 함께 살피시기를 권합니다.
줄거리
성경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읽으면 흐름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고, 사람은 선택을 잘못해 관계가 깨지며, 하느님은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불러 약속을 맺습니다. 그 후손은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다 모세를 통해 풀려나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습니다. 왕국이 서고 갈라지고 무너지는 가운데 예언자들은 정의와 자비를 외치고,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시와 기도로 슬픔을 노래합니다. 신약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네 복음서로 전하고, 초기 교회의 이야기와 사도들의 편지가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눈물이 닦이는 새 세상의 환상으로 끝납니다.
이 흐름 속에는 법, 역사, 시, 속담, 연애시, 설화, 예언, 편지, 묵시 같은 갖가지 글이 섞여 있습니다. 같은 책 안에서도 문체와 관심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 성경을 읽는 어려움이자 매력입니다. 아래 서른 가지는 이 모든 갈래에서 한 대목씩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태초에, 그리고 "보시기에 좋았다"
성경의 첫 문장은 세계 문학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은 엿새에 걸친 창조를 장엄하게 묘사하며, 매번 만든 것을 보시고 좋다고 하신다는 후렴이 따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And God saw every 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다.
이 후렴은 세상이 우연이나 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선한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선언입니다. 이후 이야기의 모든 슬픔과 갈등은 이 "매우 좋음"을 배경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 창조 이야기를 과학적 설명으로 읽을지, 신학적이고 시적인 선언으로 읽을지는 전통에 따라 다르며, 그 논쟁이 오래되었다는 점도 알아 둘 만합니다.
2. 하느님의 형상, 그리고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
창세기는 사람의 존엄에 대해 두 가지 시선을 줍니다.
So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in the image of God created he him; male and female created he them.
하느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그를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사람은 흙으로 빚어져 숨결을 얻은 존재이면서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입니다.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주 하느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산 존재가 되었다.
흙이라는 낮음과 숨결이라는 높음이 한 사람 안에 있다는 이 이중의 시선이 성경의 인간관을 이룹니다. 이어서 첫 번째 "좋지 않음"이 나옵니다. 창조에서 유일하게 좋지 않다고 말해진 것은 혼자 있음입니다.
And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주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관계가 인간 존재의 기본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3. 선악과, 그리고 "너희가 신들처럼 되리라"
에덴동산 이야기는 인간이 왜 불완전한가를 설명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뱀은 하느님이 금하신 열매를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For God doth know that in the day ye eat thereof, then your eyes shall be opened, and ye shall be as gods, knowing good and evil.
하느님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눈이 열려 신들처럼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될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여자가 보니 그 나무는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고, 열매를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유혹이 얼마나 그럴듯한 이유를 달고 오는지를 보여 줍니다. 먹음직하고, 보기 좋고, 지혜를 준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의미를 어떻게 풀지는 전통마다 다릅니다. 인류의 타락으로 읽는 전통도 있고, 자유와 성숙의 이야기로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한계를 넘고 싶은 욕망"이라는 인간의 오랜 문제를 건드립니다.
4.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아담과 하와의 아들들 이야기는 최초의 살인으로 이어집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뒤 하느님이 묻습니다.
Where is Abel thy brother? And he said, I know not: Am I my brother's keeper?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대답했다. 나는 모릅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느님은 곧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What hast thou done? the voice of thy brother's blood crieth unto me from the ground.
네가 무슨 짓을 했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내게 부르짖고 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는 책임을 부정하는 말로 유명해졌지만, 성경은 그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도록 이야기를 이끕니다. 죽은 이의 피가 땅에서 외친다는 표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일도 누군가에게는 들린다는 뜻입니다. 이웃의 운명에 대한 책임이라는 주제가 성경 전체에 걸쳐 다시 나옵니다.
5. 하늘에 닿는 탑, 이름을 내려는 마음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이야기는 짧지만 인류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Go to, let us build us a city and a tower, whose top may reach unto heaven; and let us make us a name, lest we be scattered abroad upon the face of the whole earth.
자, 우리를 위해 성과 탑을 쌓자.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땅에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로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 하지만, 하느님은 그들의 말을 흩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합니다. 이 이야기는 거대한 업적을 통해 자신을 세우려는 욕망, 그리고 하나로 뭉치는 힘이 갖는 위험을 이야기한다는 해석이 많습니다. 또 오늘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는 옛 이야기로도 읽힙니다.
6. 떠나라, 그리고 복이 되어라
창세기 12장에서 성경의 이야기는 한 사람에게 좁혀집니다.
Now the LORD had said unto Abram, Get thee out of thy country, and from thy kindred, and from thy father's house, unto a land that I will shew thee
주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약속의 내용은 그가 큰 민족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and thou shalt be a blessing
너는 복이 될 것이다.
그가 받는 복은 혼자 누리는 복이 아니라 땅의 모든 가족에게 흘러가는 복이라고 이어집니다. 그는 목적지를 모르는 채 길을 떠납니다. 신앙을 확실함이 아니라 길을 나서는 용기로 보는 전통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뿐 아니라 이슬람에서도 중요하게 기억됩니다. 앞서 소개한 키르케고르는 아브라함을 『공포와 전율』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7. 씨름하는 야곱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야곱은 형을 속여 축복을 가로챈 인물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형을 다시 만나기 전날 밤, 그는 홀로 남아 정체 모를 존재와 새벽까지 씨름합니다. 상대가 놓아 달라고 하자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I will not let thee go, except thou bless me.
나를 축복해 주시기 전에는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
상대는 이름을 묻고 이렇게 말합니다.
Thy name shall be called no more Jacob, but Israel: for as a prince hast thou power with God and with men, and hast prevailed.
네 이름은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네가 하느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이후 한 민족의 이름이 됩니다. 이 장면은 신과 씨름하는 일, 곧 질문과 의심과 간구를 신앙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전통의 뿌리로 읽힙니다. 이 씨름에서 야곱은 이기고도 다리를 절게 됩니다. 이름이 바뀌는 대신 몸에 흔적이 남았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8. 악으로 의도한 것을 선으로 바꾸다
창세기의 마지막 큰 이야기는 요셉입니다.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간 요셉은 훗날 총리가 되어 형들을 다시 만납니다. 아버지가 죽은 뒤 복수를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But as for you, ye thought evil against me; but God meant it unto good, to bring to pass, as it is this day, to save much people alive.
너희는 내게 악을 꾀했으나, 하느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오늘처럼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하셨다.
그는 앞서 "두려워 말라.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 있습니까?"라고 말하며 복수의 권리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로하고 다정하게 말해 줍니다. 이 대목은 과거의 상처를 의미 없이 지나가게 두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뜻을 짓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모든 고통이 선으로 바뀐다고 단정하는 말이 아니라, 요셉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증언이라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9. 나는 곧 나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묻습니다.
And God said unto Moses, I AM THAT I AM: and he said,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hath sent me unto you.
하느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곧 나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있다"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고.
이 이름은 이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깊은 신비로 다루어졌습니다. 이름에 담긴 뜻은 "스스로 있는 자", "있을 자", "나는 내가 되려는 자가 될 것이다" 등 다양하게 풀리며, 어느 쪽이든 하느님이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 장면에서 하느님이 먼저 하신 말씀은 이름의 설명이 아니라 종살이하는 백성의 고통을 보고 그들을 구하러 내려왔다는 선언이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10. 열 가지 말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열 계명은 법의 시작이자 윤리의 뼈대로 여겨집니다. 계명은 명령에 앞서 이런 소개로 시작합니다.
I am the LORD thy God, which have brought thee out of the land of Egypt, out of the house of bondage.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네 하느님이다.
해방이 먼저이고 계명이 그다음이라는 순서가 중요합니다. 율법은 자유로워진 사람이 자유를 지키며 살아가는 방식으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안식일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Remember the sabbath day, to keep it holy.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이 계명은 아들과 딸, 종과 짐승, 심지어 나그네까지 일하지 않고 쉬게 하라고 말합니다. 쉼이 모두의 권리라는 오래된 선언입니다. 나머지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 죽이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로 이어지고, 마지막은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마음의 계명입니다. 행동의 계명에서 마음의 계명으로 끝나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11. 이웃을 네 몸처럼, 나그네를 네 이웃처럼
레위기 19장은 의외로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법을 모아 둔 장입니다. 추수할 때 밭 가장자리를 다 거두지 말고 이삭을 줍지 말며 포도를 다 따지 말라는 규정이 먼저 나옵니다.
thou shalt leave them for the poor and stranger: I am the LORD your God.
그것들을 가난한 이와 나그네를 위해 남겨 두어라.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품삯을 밤새 미루지 말고, 귀먹은 이를 저주하지 말며, 눈먼 이 앞에 걸림돌을 놓지 말고, 재판에서는 가난한 이도 힘센 이도 편들지 말라는 규정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장의 핵심이 나옵니다.
Thou shalt not avenge, nor bear any grudge against the children of thy people, but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I am the LORD.
앙갚음하지 말고 네 백성에게 원한을 품지 말며,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나는 주다.
나그네에 대한 규정은 더 놀랍습니다.
But the stranger that dwelleth with you shall be unto you as one born among you, and thou shalt love him as thyself; for ye were strangers in the land of Egypt
너희와 함께 사는 나그네는 너희 가운데 태어난 사람처럼 여기고 그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나그네였기 때문이다.
이 법은 약자를 대하는 기준을 과거의 아픈 경험에서 끌어옵니다. 이 두 문장은 훗날 예수가 가장 큰 계명으로 다시 인용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2. 들어라 이스라엘, 그리고 생명을 선택하라
신명기 6장은 유대교에서 매일 낭송되는 「셰마」의 본문입니다.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An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ine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ght.
들어라, 이스라엘아.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이시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 말씀은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자녀에게 가르치고 말하라고 이어집니다. 신앙이 특별한 날의 의식이 아니라 일상 전체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모세의 마지막 설교에는 이런 호소가 있습니다.
I have set before you life and death, blessing and cursing: therefore choose life, that both thou and thy seed may live
내가 생명과 죽음,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었으니, 생명을 택하여 너와 네 자손이 살아라.
선택이 인간에게 맡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택하라"는 이 짧은 명령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맥락에서 되풀이해 인용됩니다.
13. 어디든지 당신이 가는 곳으로
룻기는 짧은 이야기이지만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충성의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자, 이방 출신의 며느리 룻은 따라가겠다고 말합니다.
for whither thou goest, I will go; and where thou lodgest, I will lodge: thy people shall be my people, and thy God my God
어머니가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니가 머무시는 곳에서 저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고, 어머니의 하느님이 저의 하느님입니다.
이 대사는 가족과 신앙을 넘어 의리와 사랑을 말하는 문장으로 널리 인용됩니다. 룻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데도 다윗 왕의 증조모로 기록됩니다. 이 책은 혈통이나 출신보다 서로를 향한 헌신이 공동체를 이룬다는 생각을 조용히 보여 줍니다.
14.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는 마음을 본다
사무엘상 16장에서 예언자 사무엘은 새 왕을 세우러 이새의 집에 갑니다. 키 크고 잘생긴 맏아들을 보고 틀림없이 그라고 생각하지만,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for the LORD seeth not as man seeth; for man looketh on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eth on the heart.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주는 마음을 본다.
결국 뽑힌 이는 들에서 양을 치던 막내 다윗이었습니다. 외모와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습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이 구절은 성경 밖에서도 자주 인용됩니다.
15. 주신 이도 주님, 거두신 이도 주님
욥기는 이유 없는 고통에 대한 책입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를 잃습니다. 그의 첫 반응은 이렇습니다.
Naked came I out of my mother's womb, and naked shall I return thither: the LORD gave, and the LORD hath taken away; blessed be the name of the LORD.
나는 어머니 태에서 알몸으로 나왔고 알몸으로 돌아갈 것이다. 주께서 주셨고 주께서 거두어 가셨으니,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욥기의 긴 중간 부분에서 욥은 친구들의 위로와 설교에 반박하며 하느님에게 따져 묻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이 폭풍 속에서 대답하는데, 그 대답은 고통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Where wast thou when I laid the foundations of the earth? declare, if thou hast understanding.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 네가 알고 있다면 말해 보아라.
욥의 마지막 대답은 이렇습니다.
I have heard of thee by the hearing of the ear: but now mine eye seeth thee.
제가 귀로만 주를 들었더니, 이제는 제 눈이 주를 봅니다.
욥기는 고통에 간단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받는 이에게 쉬운 설명을 들이대는 친구들을 비판하고, 따져 묻는 일 자체를 신앙의 한 모습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책이 철학과 문학에서 오래 읽혀 온 이유입니다.
16. 주는 나의 목자
시편은 150편의 노래와 기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사랑받는 것이 23편입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He maketh me to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eth me beside the still waters.
주는 나의 목자이시니 나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그분이 푸른 풀밭에 나를 눕히시고 잔잔한 물가로 이끄신다.
그리고 가장 어두운 순간의 고백이 이어집니다.
Yea,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thou art with me; thy rod and thy staff they comfort me.
내가 죽음의 그림자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위로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두려움이 없는 사람의 시가 아니라 두려움이 있는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홀로가 아님을 아는 사람의 시입니다. 장례식과 병상에서 오랫동안 낭송되어 온 이유입니다. 마지막은 식탁의 이미지입니다. 원수들 앞에서도 잔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17. 잠잠하라, 우리 날을 헤아리라, 신기하게 지으심을
시편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어떤 시는 고요를 권합니다.
Be still, and know that I am God
잠잠하라, 그리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라.
어떤 시는 시간의 유한함을 가르칩니다.
So teach us to number our days, that we may apply our hearts unto wisdom.
우리에게 우리의 날수를 헤아리는 법을 가르치셔서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어떤 시는 존재 자체에 대한 놀라움을 노래합니다.
I will praise thee; for I am fearfully and wonderfully made: marvellous are thy works
내가 주를 찬양하리니, 내가 두렵고도 놀랍게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주의 하신 일이 경이롭습니다.
그리고 어떤 시는 고통과 분노를 숨기지 않고 쏟아냅니다. 바벨론 강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던 포로들의 노래가 그렇습니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바벨론 강가, 거기 우리는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시편에는 찬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탄식과 분노, 의심도 함께 있습니다. 기도에 어떤 감정도 허락된다는 사실이 이 책이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곁에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시편 가운데는 원수에 대한 격한 저주도 있어서 읽을 때 그 맥락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18. 부드러운 대답, 그리고 쇠가 쇠를 날카롭게 한다
잠언은 짧은 문장으로 일상의 지혜를 가르칩니다. 우리말 속담집을 읽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분노의 불길을 다루는 한 줄은 이렇습니다.
A soft answer turneth away wrath: but grievous words stir up anger.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돌이키고, 거친 말은 노여움을 일으킨다.
교만에 대한 경고도 있습니다.
Pride goeth before destruction, and an haughty spirit before a fall.
교만은 멸망에 앞서 가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에 앞서 간다.
그리고 우정에 대한 한 줄입니다.
Iron sharpeneth iron; so a man sharpeneth the countenance of his friend.
쇠가 쇠를 날카롭게 하듯 사람은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한다.
또 하나, 이 책 전체의 기조를 보여 주는 문장이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는 구절입니다. 지혜는 자기 이해의 한계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잠언은 법칙처럼 읽히지만 대부분 일반적 경향에 대한 관찰이므로, 모든 경우에 반드시 들어맞는 약속으로 읽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19. 헛되고 헛되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전도서는 성경에서 가장 뜻밖의 책일 수 있습니다. 첫 문장부터 허무를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헛되고 헛되도다,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고, 한 세대가 가면 다른 세대가 오며, 땅만 영원히 서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허무에서 멈추지 않고, 때를 아는 지혜로 나아갑니다.
To every thing there is a season, and a time to every purpose under the heaven: A time to be born, and a time to die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하늘 아래 모든 목적에는 시기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이어서 심을 때와 뽑을 때, 울 때와 웃을 때, 슬퍼할 때와 춤출 때, 말할 때와 침묵할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전쟁의 때와 평화의 때가 나열됩니다. 그리고 가장 따뜻한 대목이 이어집니다.
Two are better than one; because they have a good reward for their labour. For if they fall, the one will lift up his fellow
둘이 하나보다 낫다. 그들의 수고에 좋은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한 사람이 동무를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허무를 정직하게 바라본 사람이 찾아낸 답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과 주어진 때를 사는 것이라는 점이 이 책의 매력입니다.
20.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
아가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연인들의 사랑 노래로 읽히는 책입니다. 종교적 해석에서는 하느님과 사람의 사랑에 대한 비유로 읽는 전통이 길지만, 문자 그대로 사랑의 시로도 읽습니다. 이 시의 절정은 이렇습니다.
Many waters cannot quench love, neither can the floods drown it
많은 물도 사랑을 끌 수 없고 홍수도 그것을 삼킬 수 없다.
바로 앞에서 시인은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고 말합니다. 사랑을 가장 높은 힘의 하나로 보는 이 시선은 율법과 예언서의 엄격한 목소리 옆에서 성경의 폭을 넓혀 줍니다.
21. 칼을 쳐서 보습을, 그리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예언서는 성경에서 가장 격렬한 문학입니다. 이사야는 평화의 환상을 이렇게 그립니다.
and they shall beat their swords into plowshares, and their spears into pruninghooks: nation shall not lift up sword against nation, neither shall they learn war any more.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가 나라를 향해 칼을 들지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 않을 것이다.
이 구절은 평화를 말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성경 구절의 하나입니다. 같은 책에서 예언자 이사야는 소명의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Whom shall I send, and who will go for us? Then said I, Here am I; send me.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해 가겠느냐? 그때 내가 말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소서.
또 지친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도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새 힘을 얻어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이사야서에는 이 밖에도 고난받는 종에 대한 유명한 대목이 있는데,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가 다릅니다.
22. 정의, 자비, 겸손
8세기 예언자들은 종교가 제의에 머물 때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미가는 하느님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합니다.
He hath shewed thee, O man, what is good; and what doth the LORD require of thee, but to do justly, and to love mercy, and to walk humbly with thy God?
사람아, 그분이 무엇이 선한지 네게 보이셨다.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고, 네 하느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것밖에 무엇이 있겠느냐?
아모스의 외침은 더 거셉니다.
But let judgment run down as waters, and righteousness as a mighty stream.
공의가 물같이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
호세아는 하느님이 원하는 바를 이렇게 전합니다.
For I desired mercy, and not sacrifice; and the knowledge of God more than burnt offerings.
내가 원한 것은 자비이지 제사가 아니며, 번제보다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세 예언자는 한목소리로 종교의 의식이 이웃에 대한 정의와 자비를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목소리는 오늘날까지 종교와 사회 정의를 연결해 생각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23. 포로로 끌려간 이들에게 보낸 편지
예레미야 29장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들은 곧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짓 희망에 기대고 있었는데, 예레미야는 정반대의 말을 합니다.
And seek the peace of the city whither I have caused you to be carried away captives, and pray unto the LORD for it: for in the peace thereof shall ye have peace.
내가 너희를 포로로 끌려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 성읍을 위해 주께 기도하여라. 그 성읍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하기 때문이다.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고 가정을 이루며 그곳에서 살라는 말입니다. 이 편지 뒤에 흔히 인용되는 문장이 나옵니다.
For I know the thoughts that I think toward you, saith the LORD, thoughts of peace, and not of evil, to give you an expected end.
내가 너희에 대해 품은 생각을 내가 안다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재앙이 아니라 평안의 생각이며, 너희에게 기대하는 끝을 주려는 것이다.
이 약속은 원래 포로 생활이 길어질 사람들에게 주어진 말씀이었다는 점을 함께 기억하면 의미가 더 깊어집니다. 약속은 곧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과 현재의 삶을 성실히 사는 일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예레미야애가의 다음 구절도 같은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주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다는 노래입니다.
24. 복이 있나니, 팔복
신약으로 넘어갑니다. 마태복음 5~7장은 예수의 산상 설교로 불립니다. 그 첫머리가 이른바 팔복입니다.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they that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shall inherit the earth.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땅을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를 위해 박해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선언됩니다. 이 선언은 세상이 성공이라 부르는 것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shall be called the children of God.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약하고 슬프고 부드러운 사람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라는 뒤집힌 가치를 선포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5. 원수를 사랑하라
산상 설교의 가장 급진적인 대목은 복수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But I say unto you, Love your enemies, bless them that curse you, do good to them that hate you, and pray for them which despitefully use you, and persecute you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그 이유로 하느님이 해를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똑같이 비추신다는 점을 듭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세리들도 그렇게 한다는 지적도 덧붙입니다. 누가복음은 같은 가르침을 이렇게 맺습니다.
Be ye therefore merciful, as your Father also is merciful.
그러므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워라.
이 가르침은 현실에서 실천하기 몹시 어려워서,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지 비유로 받아들일지, 개인의 윤리인지 공동체의 원칙인지를 놓고 오랜 논의가 있었습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가르침이 폭력의 악순환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대안으로 읽혀 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26.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산상 설교는 재물과 걱정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will your heart be also.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무엇을 보물로 여기는지가 마음의 방향을 정한다는 단순한 관찰입니다. 이어서 먹을 것, 입을 것에 대한 걱정을 다룹니다.
Consider the lilies of the field, how they grow; they toil not, neither do they spin
들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 생각해 보아라. 그것들은 수고하지도 길쌈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맺습니다.
Take therefore no thought for the morrow: for the morrow shall take thought for the things of itself. Sufficient unto the day is the evil thereof.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은 내일이 스스로 걱정할 것이다.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로 충분하다.
일하지 말고 아무 준비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마음을 다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읽는 해석이 일반적입니다. 오늘 하루를 오늘의 크기로 사는 법을 가르치는 한 문장입니다.
27. 남을 판단하기 전에, 그리고 황금률
산상 설교는 판단에 대한 경고도 담고 있습니다.
Judge not, that ye be not judged.
판단하지 말라. 그래야 너희도 판단받지 않는다.
예수는 형제 눈의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모습을 비판합니다. 먼저 자기 눈의 들보를 빼어야 형제 눈의 티를 분명히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설교의 요약처럼 쓰이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Therefore all things whatsoever ye would that men should do to you, do ye even so to them: for this is the law and the prophets.
그러므로 무엇이든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이요 예언자들이다.
이른바 황금률입니다. 비슷한 내용이 여러 문화권의 가르침에서 발견되지만 이 구절은 이를 율법과 예언자 전체의 요약으로 말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는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을 묻는 질문에 신명기와 레위기의 두 구절, 곧 하느님을 사랑하라와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를 꼽고 이렇게 말합니다.
On these two commandments hang all the law and the prophets.
이 두 계명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이 달려 있다.
구약의 두 구절이 신약에서 하나의 쌍으로 묶이는 장면입니다.
28. 누가 나의 이웃인가, 선한 사마리아인
누가복음 10장에서 한 율법 교사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예수는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 적혀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그가 두 계명을 대답하자 예수는 "그대로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는 자기를 정당화하려고 묻습니다.
And who is my neighbour?
그러면 누가 내 이웃입니까?
예수의 대답은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강도를 만나 반쯤 죽은 채 길가에 버려진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해 지나가고, 당시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이 불쌍히 여겨 상처를 싸매고 여관에 데려가 돌봐 줍니다.
Which now of these three, thinkest thou, was neighbour unto him that fell among the thieves? And he said, He that shewed mercy on him. Then said Jesus unto him, Go, and do thou likewise.
이 셋 가운데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었다고 생각하느냐?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질문은 "누가 내 이웃인가"였는데 답은 "누구에게 내가 이웃이 되는가"로 뒤집힙니다. 이웃은 정해진 범주가 아니라 자비를 베푸는 행동 속에서 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야기는 종교의 경계를 넘어 가장 널리 알려진 비유가 되었습니다.
29. 돌아온 탕자와 집에 남은 형
누가복음 15장은 두 아들의 비유입니다.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에서 방탕하게 낭비하고, 흉년이 들자 돼지를 치며 돼지가 먹는 열매 꼬투리로 배를 채우려 합니다.
And when he came to himself, he said, How many hired servants of my father's have bread enough and to spare, and I perish with hunger!
그가 제정신이 들어 말했다. 내 아버지의 품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그는 아버지께 돌아가 품꾼으로라도 써 달라고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반응은 그의 예상을 넘어섭니다.
But when he was yet a great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had compassion, and ran, and fell on his neck, and kissed him.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 맞추었다.
아버지는 좋은 옷과 반지와 신발을 가져오게 하고 잔치를 엽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집에 성실하게 남아 있던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달랩니다.
Son, thou art ever with me, and all that I have is thine.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 모든 것이 네 것이다.
이 비유는 돌아온 사람에 대한 용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의로움을 자부하는 사람의 마음속 원망을 묻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큰아들이 들어갔는지를 말하지 않고 끝납니다. 그 열린 결말이 독자 각자에게 질문을 넘깁니다.
30.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리라
요한복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곧 하느님이셨다.
이 서문은 창세기의 첫 문장을 의도적으로 되울리며 예수를 창조의 말씀으로 소개합니다. 같은 복음서에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돌로 치려는 사람들에게 예수가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He that is without sin among you, let him first cast a stone at her.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사람들이 한 사람씩 떠나고 여인만 남자, 예수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가 제자들에게 남긴 새 계명은 이렇습니다.
A new commandment I give unto you, That ye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도들의 편지에서는 사랑이 가장 큰 덕으로 올라갑니다. 로마서 12장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며 이렇게 맺습니다.
Be not overcome of evil, but overcome evil with good.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이 없으면 모든 지식과 믿음과 희생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며,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이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남는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사랑이다.
여기서 킹 제임스 성경의 "charity"는 오늘날 말하는 자선이 아니라 사랑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요한일서는 더 간결합니다.
He that loveth not knoweth not God; for God is love.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환상과 상징으로 가득해서 해석이 매우 다양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의 약속은 비교적 분명하게 읽힙니다.
And God shall wipe away all tears from their eyes; and there shall be no more death, neither sorrow, nor crying, neither shall there be any more pain: for the former things are passed away.
하느님이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음도 고통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창조의 "매우 좋았다"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모든 눈물이 닦이는 새 세상의 약속으로 끝납니다. 성경 전체를 한 줄로 요약하면 상처받은 세상이 고쳐진다는 희망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으려 하면 중간에서 길을 잃기 쉽습니다. 레위기의 규정과 민수기의 숫자, 역대기의 족보가 이어지는 구간은 특히 그렇습니다. 처음 읽는다면 이 글에서 다룬 대목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이야기 부분, 시편과 잠언, 전도서와 욥기, 그다음 복음서에서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 요한복음 가운데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세요. 복음서는 이야기 중심이어서 읽기 쉽고, 신약의 나머지를 이해하는 바탕이 됩니다.
성경은 읽기 어려운 대목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 노예 제도, 여성에 대한 규정처럼 오늘의 윤리와 크게 충돌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런 구절은 해당 시대와 문화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하고, 신앙 공동체마다 해석의 전통이 다릅니다. 어느 구절 하나를 떼어 내어 성경 전체의 입장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오해를 낳기 쉽습니다. 믿음의 책으로 읽든 고전으로 읽든, 한 구절보다 책 전체의 흐름과 맥락을 함께 보는 습관이 이 책을 잘 읽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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