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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3rd–6th century

The Talmud

탈무드

토론으로 이어진 이천 년의 율법과 이야기

That which is hateful to thyself, do not do to thy neighbor. This is the whole law, and the rest is its commentary.

네가 싫어하는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 전체이고, 나머지는 그 해설이다.

as my fathers planted for me before I was born, so I plant for those that will come after me.

아버지들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를 위해 심었듯이, 나도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심는다.

한눈에 보기

유대 랍비들이 수백 년 동안 율법을 풀고 토론한 기록. 법정과 안식일, 가난한 이를 돕는 법과 혀의 죄, 하나님의 눈물까지 한 줄에서 다음 줄로 건너뛰며 이어진다. 그 방대한 책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대목을 스물두 가지로 읽는다.

비슷한 책

한 권 요점

The Talmud

탈무드는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나의 도서관입니다. 유대 전통에서 율법은 성경의 첫 다섯 권(토라)에 기록된 것과 함께, 모세 이래 입으로 전해졌다고 믿는 구전 율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서기 200년경 랍비 유다 하나시가 이 구전 율법을 정리해 미슈나라는 책으로 묶었고, 그 뒤 팔레스타인과 바빌로니아의 학원에서 랍비들이 미슈나를 놓고 토론한 내용이 게마라라는 이름으로 쌓였습니다. 미슈나와 게마라를 합한 것이 탈무드이고, 보통 탈무드라고 하면 바빌로니아 탈무드를 가리킵니다. 전통은 5세기 후반을 말하고, 연구자들은 6세기까지 다듬어졌다고 보는 등 정리 시기에는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탈무드는 성격이 서로 다른 두 가지 내용이 얽혀 있습니다. 하나는 안식일에 무엇이 허용되는지, 재산 분쟁은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다루는 법 조항과 논증(할라카)이고, 다른 하나는 랍비들의 일화, 비유, 격언,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아가다)입니다. 법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끼어들고,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법 논쟁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탈무드는 한 번에 줄거리를 따라 읽는 책이 아니라, 미로처럼 길을 잃으며 읽는 책입니다. 흔히 "탈무드"라고 불리는 지혜 이야기 모음은 이 가운데 읽기 쉬운 이야기 부분을 가려 뽑은 것입니다.

이 글은 방대한 탈무드를 요약하지 않습니다. 대신 영어로 옮겨진 대표 발췌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스물두 대목을 골라, 각 대목이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를 읽습니다. 마지막에는 탈무드가 오랫동안 어떻게 오해받고 박해받았는지, 또 오늘의 눈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도 짚습니다.

줄거리

탈무드에는 줄거리가 없고 주제가 흩어져 있습니다. 이 글은 율법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말한 힐렐의 일화에서 시작해, 생명과 구원, 가난한 이를 돕는 방법, 말과 침묵, 공부하는 법, 신에 대한 상상으로 읽어 갑니다. 마지막에 어려운 대목과 박해의 역사를 두었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한 발로 서서 율법을 말해 달라

탈무드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입니다. 한 이방인이 샴마이를 찾아와, 자신이 한 발로 서 있는 동안 율법 전체를 가르쳐 주면 개종하겠다고 합니다. 샴마이는 그를 쫓아냈습니다. 같은 요구를 받은 힐렐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That which is hateful to thyself, do not do to thy neighbor. This is the whole law, and the rest is its commentary.

네가 싫어하는 일을 이웃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 전체이고, 나머지는 그 해설이다.

이 문장은 흔히 "황금률"의 부정형으로 불립니다. 힐렐의 답이 가진 힘은 율법이 방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중심에 이웃에 대한 태도가 있다고 말한 점입니다. 힐렐은 "나머지는 해설"이라는 말 바로 뒤에 "가서 공부하라"는 말을 덧붙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요약이 곧 공부의 면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2. 둘이 된 율법

힐렐과 샴마이는 같은 시대에 각자의 학파를 이끌었습니다. 탈무드는 두 학파의 관계를 이렇게 기록합니다.

contentions increased in Israel to such an extent that the law lost its unity and became as two.

이스라엘 안에서 논쟁이 커져, 율법이 하나로 있지 못하고 둘처럼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은 한탄처럼 들리지만, 탈무드 전체는 오히려 논쟁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수 의견도 지우지 않고 남기는 것이 탈무드의 방식입니다. 한 구절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을 그들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As a hammer divideth fire into many sparks, so one verse of Scripture has many meanings and many explanations.

망치가 불꽃을 여러 갈래로 흩뿌리듯, 성경의 한 구절에는 여러 뜻과 여러 설명이 있다.

3. 나무를 심는 노인

길 가던 호니(초니)는 한 노인이 캐롭나무를 심는 것을 보고 묻습니다. 언제 열매를 맺느냐고요.

"After seventy years," was the reply. "What!" said Choni, "dost thou expect to live seventy years and eat the fruit of thy labor?"

"칠십 년 뒤요"라는 대답이었다. 초니가 말했다. "아니, 칠십 년을 살아서 그 열매를 먹을 생각이오?"

노인의 대답이 이 일화의 핵심입니다.

"I did not find the world desolate when I entered it," said the old man; "and as my fathers planted for me before I was born, so I plant for those that will come after me."

노인이 말했다.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 세상은 황폐하지 않았소. 아버지들이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나를 위해 심었듯이, 나도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 심는 것이오."

내가 받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돌려준다는 감각, 곧 세대 간의 빚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환경과 기후 이야기에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는 문장입니다.

4.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것

Whosoever destroyeth one soul of Israel, Scripture counts it to him as though he had destroyed the whole world; and whoso preserveth one soul of Israel, Scripture counts it as though he had preserved the whole world.

이스라엘의 한 영혼을 멸하는 사람은 성경이 그에게 온 세상을 멸한 것으로 헤아리고, 한 영혼을 살리는 사람은 온 세상을 살린 것으로 헤아린다.

이 구절은 판본에 따라 "이스라엘의"라는 말이 없고 "한 사람"이라고 읽는 전승도 있어서 해석이 갈립니다. 어느 쪽이든 한 생명의 무게를 세계 전체에 견주는 사고방식이 분명합니다. 이어서 탈무드는 이 말의 근거를 인간 창조에서 찾습니다.

The greatness of God is infinite; for while with one die man impresses many coins and all are exactly alike, the King of kings, the Holy One--blessed be He!--with one die impresses the same image (of Adam) on all men, and yet not one of them is like his neighbor. So that every one ought to say, "For myself is the world created."

하나님의 위대함은 끝이 없다. 사람은 하나의 틀로 많은 동전을 찍어 내면 모두 똑같지만, 왕 중의 왕이신 거룩하신 분은 하나의 틀로 같은 모습(아담의 모습)을 모든 사람에게 찍으시고도 어느 하나 이웃과 같지 않게 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나 "나를 위해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형상이면서 서로 다르다는 이 설명은 인간의 존엄과 개별성을 함께 말합니다.

5. 아키바와 물고기들의 우화

로마 정부가 토라 공부를 금지하자 랍비 아키바는 오히려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두려워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그는 우화로 답합니다. 그물을 피해 허둥대는 물고기들에게 여우가 물 밖으로 나오라고 꾀었습니다.

'Surely,' exclaimed they, 'thou art not he of whom we have heard so much as the most cunning of animals, for herein thou art not wise, but foolish. For if we have cause to fear where it is natural for us to live, how much more reason have we to do so where we needs must die!'

물고기들이 외쳤다. "정말 그대가 가장 교활한 동물이라고 들었던 그 여우인가? 이 말을 보니 그대는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다. 우리가 살기에 자연스러운 곳에서도 두려워하는데,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서는 얼마나 더 두려워해야 하겠는가!"

율법은 유대인에게 물과 같은 삶의 조건이라는 뜻입니다. 이야기는 아키바가 얼마 뒤 체포되어 처형되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처형장에서 그는 "들어라, 이스라엘아"를 외우다가 마지막 숨으로 "하나(에하드)"라는 말을 길게 늘이며 숨졌다고 합니다.

Then came forth a voice from heaven which said, "Blessed art thou, Rabbi Akiva, for thy soul and the word one left thy body together."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했다. "복되도다, 랍비 아키바여. 그대의 영혼과 '하나'라는 말이 그대의 몸을 함께 떠났도다."

6. 한 번의 뉘우침과 한 시간의 회개

탈무드는 회개를 시간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로 봅니다.

One pang of remorse at a man's heart is of more avail than many stripes applied to him.

사람의 마음속 한 번의 가책은 그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채찍보다 더 효과가 있다.

방탕하게 살았지만 한 번의 간절한 회개로 영원한 생명이 선포되었다는 엘리에제르 벤 두르디아의 이야기를 들은 랍비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One wins eternal life after a struggle of years; another finds it in one hour.

어떤 사람은 여러 해의 싸움 끝에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사람은 한 시간 만에 그것을 얻는다.

또 다른 랍비는 "죽기 하루 전에 회개하라"는 가르침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오늘 회개하고, 내일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So much the more reason is there," he replied, "that he should repent to-day, lest he die to-morrow; and repent to-morrow, lest he die the day after: and thus will all his days be penitential ones."

그는 답했다. "그러니 오늘 회개해야 한다. 내일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일도 회개해야 한다. 모레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그의 모든 날이 회개의 날이 된다."

7. 아무것도 쓸모없이 창조되지 않았다

Not one single thing has God created in vain.

하나님은 어떤 것도 헛되이 창조하지 않으셨다.

탈무드는 달팽이는 물집의 약으로, 파리는 말벌에 쏘인 데 쓰라고 만들었다는 식으로 예를 듭니다. 지금 읽으면 소박한 민간 지식이지만, 쓸모없어 보이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는 태도는 생명을 존중하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집니다.

8. 아키바가 대신 산 땅

랍비 타르폰은 큰 부자였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아키바가 성읍 한두 개를 사 주겠다고 하자 그는 기뻐하며 금화 사천 닢을 맡겼습니다. 아키바는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중에 타르폰이 성읍은 어디 있느냐고 따지자, 아키바는 그를 학원으로 데려가 시편을 펴 읽습니다.

"He hath dispersed, he hath given to the poor, his righteousness endureth forever" (Ps. cxii. 9). Here Rabbi Akiva paused and said, "This is the place I purchased for thee,"

"그는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시편 112:9). 여기서 아키바는 읽기를 멈추고 말했다. "이것이 내가 당신을 위해 산 땅입니다."

타르폰은 아키바에게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이 일화는 재산을 쌓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 진짜 소유라는 이야기를 유머로 전합니다.

9. 자선보다 큰 선행

탈무드는 돈을 주는 일보다 큰 선행이 있다고 말합니다.

In three particulars is benevolence superior to almsgiving:--Almsgiving is only the bestowment of money, but benevolence can be exercised by personal service as well. Alms can be given only to the poor, but benevolence can be shown no less to the rich. Alms are confined to the living, but benevolence may extend to both the dead and the living.

선행은 세 가지 점에서 자선보다 낫다. 자선은 돈을 주는 것이지만 선행은 몸으로 하는 봉사도 된다. 자선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줄 수 있지만 선행은 부유한 사람에게도 할 수 있다. 자선은 산 사람에게만 미치지만 선행은 죽은 사람에게도 미친다.

돈을 내는 일은 쉽고, 시간을 내는 일은 어렵다는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병문안, 장례를 돕는 일, 신부를 기쁘게 하는 일 같은 몸으로 하는 선행을 유대 전통이 중하게 여기는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10. 이 세상에서 이자를 받는 여섯 가지

Six things bear interest in this world and the capital remaineth in the world to come:--Hospitality to strangers, visiting the sick, meditation in prayer, early attendance at the school of instruction, the training of sons to the study of the law, and judging charitably of one's neighbors.

여섯 가지는 이 세상에서 이자를 맺고 원금은 오는 세상에 남는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 병자를 찾아보는 일, 기도 중의 묵상, 일찍 배움터에 나가는 일, 아들에게 율법 공부를 시키는 일, 이웃을 너그럽게 판단하는 일이다.

투자의 비유를 선행에 빌려 온 대목입니다. 여섯 가지 가운데 마지막이 눈에 띕니다. 이웃을 너그럽게 판단하는 일은 돈도 시간도 들지 않지만, 가장 어려운 선행 가운데 하나입니다.

11. 혀는 눕고 있는 지체

탈무드는 말의 죄를 유난히 엄하게 다룹니다. 하나님이 혀에게 하는 말입니다.

"All the members of the body are erect, thou only art recumbent; all other members are without, thou art within, and not only so, for I have surrounded thee with two walls, one of bone and the other of flesh."

"몸의 모든 지체는 서 있는데 너만 누워 있다. 다른 지체는 밖에 있는데 너는 안에 있고, 그뿐 아니라 내가 너를 뼈와 살, 두 겹의 벽으로 둘러쌌다."

혀는 이미 이중의 벽으로 막혀 있는데도 쉽게 나온다는 풍자입니다. 이어서 이런 말이 나옵니다.

He who slanders, he who receives slander, and he who bears false witness against his neighbor, deserve to be cast to the dogs.

중상하는 사람, 중상을 받아들이는 사람, 이웃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은 개에게 던져질 만하다.

중상을 퍼뜨리는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도 같은 줄에 세웁니다. 소문을 듣는 일도 책임이라는 말입니다.

12. 침묵은 은보다 낫다

If speech is worth one sela (a small coin so called), silence is worth two.

말이 한 셀라(작은 동전)의 값어치라면, 침묵은 두 셀라의 값어치가 있다.

"말은 은, 침묵은 금"이라는 서양 속담의 원형처럼 읽히는 문장입니다. 랍비 시므온은 평생 지혜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지만 침묵보다 더 이로운 것을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아키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the fence of wisdom is silence.

지혜의 울타리는 침묵이다.

토론으로 이루어진 책이 침묵을 이렇게 칭찬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말을 많이 한 사람들의 책이 말을 아끼라고 가르치는 셈입니다.

13. 혼자 공부하면 불이 꺼진다

Because, as fire does not burn when there is but one piece of wood, so do the words of the Law not maintain the fire of life when meditated on by one alone

불은 장작 하나로는 타지 않듯이, 율법의 말씀도 혼자서 묵상하면 삶의 불을 유지하지 못한다.

탈무드는 공부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짝을 지어 논쟁하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유대 학교(예시바)에서는 지금도 둘씩 짝을 지어 큰 소리로 토론하며 공부합니다. 서로의 반론이 장작이 되어 불을 키운다는 생각입니다.

14. 모르겠다고 말하는 연습

탈무드의 지혜 가운데는 겸손을 다룬 말이 많습니다. 편집자의 소개글에 실린 격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Teach thy tongue to say, "I do not know."

네 혀에게 "모르겠다"고 말하는 법을 가르쳐라.

The world is saved by the breath of the school children.

세상은 학교 아이들의 숨결로 구원받는다.

두 문장은 모두 배움의 출발점을 말합니다. 아는 척하지 않는 정직함, 그리고 가장 어린 사람들이 공부하는 소리가 세상을 지탱한다는 믿음입니다.

15. 요하난 벤 자카이의 눈물

예루살렘이 무너진 뒤 학문의 불씨를 지킨 현인 요하난 벤 자카이가 죽음을 앞두고 울자 제자들이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If I were going to be led into the presence of a king, who is but flesh and blood, to-day here and to-morrow in the grave, whose anger with me could not last forever

내가 육신을 가진 왕 앞에, 오늘 여기 있다가 내일이면 무덤에 있을 왕, 나에 대한 분노가 영원히 갈 수 없는 왕 앞에 끌려가는 것이라 해도

그래도 울 텐데, 하물며 영원히 살아 계신 왕 중의 왕 앞에 서는 일이니 울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마지막 축복을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Oh that the fear of God may be as much upon you as the fear of man.

사람을 두려워하는 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바란다.

사람의 평가에 맞추어 사는 일상을 향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스승의 마지막 말이 위로가 아니라 질문이라는 점이 탈무드다운 장면입니다.

16. 메시아를 기다리는 방식

한 랍비는 메시아가 오는 때를 계산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꾸짖습니다. 메시아의 때가 왔는데 메시아가 오지 않았으니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답해야 한다고 합니다.

But wait thou for Him, as it is said (Hab. ii. 3), 'Though He tarry, wait for Him.'

그러나 그를 기다려라. 기록되기를(하박국 2:3) "더디더라도 기다려라" 하였다.

나아가 "우리는 기다리는데 그분은 기다리지 않으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사야서를 인용해 하나님도 은혜를 베풀기 위해 기다리신다고 대답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희망을 유지하는 방식이 이 문장에 있습니다.

17. 하나님도 기도하신다

탈무드의 가장 대담한 상상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직접 기도하신다는 생각입니다. 이사야의 "내 기도하는 집"을 하나님의 기도로 읽습니다.

It is thus He prays: "May it please me that my mercy may overcome my anger, that all my attributes may be invested with compassion, and that I may deal with my children in the attribute of kindness, and that out of regard to them I may pass by judgment."

그분은 이렇게 기도하신다. "내 자비가 내 분노를 이기게 하소서. 내 모든 속성이 연민으로 입혀지게 하소서. 내가 내 자녀들을 친절의 속성으로 대하게 하소서. 그들을 생각하여 심판을 넘어가게 하소서."

정의와 자비 사이에서 신이 자비를 택하려 애쓴다는 이 상상은 율법의 엄격함 한가운데에 자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른 대목에서는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이 이방 민족 가운데서 고난받는 것을 기억하며 눈물 두 방울을 바다에 떨어뜨리고, 그 소리에 땅이 흔들린다고 말합니다. 신의 감정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상상된다는 점이 탈무드의 독특한 풍경입니다.

18. 안식일을 어길 수 있는 날

안식일 율법은 엄격하지만, 탈무드는 생명 앞에서 율법이 양보한다고 가르칩니다.

"You may break one Sabbath on his behalf, that he may be preserved to keep many Sabbaths."

"그를 위해 한 번의 안식일을 어겨도 좋다. 그가 살아남아 많은 안식일을 지킬 수 있도록."

율법의 목적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 살아서 율법을 지키는 삶이라는 논리입니다. 규칙과 사람이 충돌할 때 사람 쪽에 서는 이 원칙은 탈무드 법 사고의 중요한 축으로 평가됩니다.

19. 하나님의 이름을 쓴 글자

탈무드는 베끼는 일에도 영적인 무게를 둡니다.

even if he has amended one letter in it, Scripture considers him as if he had written it out entirely.

한 글자를 고쳐 넣었을 뿐이라도, 성경은 그를 그 전체를 써 낸 사람으로 여긴다.

문맥은 토라 두루마리를 사지 않고 직접 베껴 쓰는 사람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시장에서 사는 사람은 남의 선행을 가로채는 것이지만, 직접 쓰면 시나이 산에서 직접 받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한 글자까지 신중하게 대하는 이 문화가 수천 년 동안 텍스트를 지켜 온 힘이기도 합니다.

20.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

탈무드에는 오늘의 눈으로 보기 어려운 대목도 많습니다. 어떤 구절은 딸이 태어나는 일과 아들이 태어나는 일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When a boy comes into the world he brings peace with him, and a loaf of bread in his hand, but a girl brings nothing.

사내아이가 세상에 오면 평화와 빵 한 덩이를 손에 들고 오지만, 딸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는다.

또 학식이 없는 사람에 대한 냉정한 평가, 마귀와 영혼에 대한 미신적인 믿음도 곳곳에 섞여 있습니다. 탈무드는 여러 세기에 걸친 사람들의 말을 모은 책이고, 같은 문제에 대해 정반대 의견이 나란히 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구절 하나를 뽑아 "탈무드는 이렇게 가르친다"고 말하는 일은 탈무드의 방식에 맞지 않습니다. 이 책은 법전이면서 토론 기록이고, 어느 한 랍비의 말은 그 사람의 의견일 뿐 전체의 결론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불편한 대목은 숨기지 말고 그 시대의 한계로 읽어야 하며, 동시에 그 불편함을 책 전체의 평가로 확대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21. 불태워진 책

탈무드는 유럽에서 오랫동안 박해를 받았습니다. 편집자의 소개글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Louis IX. burned twenty-four cart-loads of Talmuds in Paris.

루이 9세는 파리에서 탈무드 스물네 수레분을 불태웠다.

16세기 초에 탈무드를 없애려는 시도가 다시 거세졌을 때, 독일의 인문학자 요하네스 로이힐린이 이를 막고자 나섰다고 합니다.

"Do not condemn the Talmud before you understand it. Burning is no argument."

"탈무드를 이해하기 전에 단죄하지 말라. 불태우는 것은 논증이 아니다."

이 소개글은 탈무드가 오랫동안 편견에 찬 사람들에 의해 가장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구절만 뽑혀 소개되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성경에서도 레위기와 몇 개의 격한 구절만 뽑아 성경이라고 소개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비유입니다. 탈무드를 읽을 때는 어느 편의 선전이든 맥락 없이 뽑은 구절을 의심해야 합니다.

22. 먼지와 다이아몬드

같은 소개글은 탈무드를 이렇게 평가하며 끝맺습니다.

it is trash and it is treasure; it is dust and it is diamonds; it is potsherd and it is pearls;

그것은 쓰레기이고 보물이며, 먼지이고 다이아몬드이며, 깨진 질그릇 조각이고 진주이다.

탈무드를 한 문장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늘 어긋납니다. 이 책은 서로 모순되는 목소리가 함께 살아 있는 책이고, 그 모순을 지우지 않고 남겨 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탈무드를 처음 읽는다면 법 조항의 논증은 건너뛰고 이야기와 격언부터 읽으세요. 이 글에서 다룬 힐렐의 일화, 캐롭나무 노인, 아키바와 타르폰의 이야기, 요하난 벤 자카이의 임종 장면이 좋은 출발점입니다. 읽을 때는 그 말이 누구의 의견인지를 눈여겨보세요. 탈무드에서 "랍비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표현은 그 사람의 의견이라는 뜻이고, 반대 의견이 바로 뒤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에서 다룬 것은 탈무드의 아주 작은 일부입니다. 수천 쪽의 원전 가운데 이야기 부분만 가려 읽은 셈이고, 탈무드의 본령인 법 논증은 거의 다루지 못했습니다. 더 알고 싶다면 성경(히브리 성경)을 먼저 읽으세요. 탈무드의 거의 모든 문장이 성경 구절을 붙잡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뒤 『논어』나 세네카를 이어 읽으면, 고대의 세 문명이 같은 질문, 곧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얼마나 다른 말투로 이야기하는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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