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기원전 5세기 후반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힘과 공포가 만든 27년 전쟁, 그리고 그것을 영원한 소유물로 남기려는 기록
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
강한 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한 자는 겪어야 하는 것을 겪는다.
but as a possession for all time.
그러나 영원한 소유물로서.
한눈에 보기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헬라스 전체를 끌어들여 벌인 27년 전쟁을 당대의 한 아테네인이 직접 기록한 책. 전쟁의 진짜 원인을 아테네 세력의 성장과 그것이 스파르타에 일으킨 공포에서 찾고, 역병·내란·멜로스의 대화·시칠리아 원정의 파국을 통해 권력과 이성, 민주정의 약점을 보여 준다. 여덟 권의 줄거리와 열네 가지 대목으로 읽는다.
비슷한 책
- 헤로도토스 The Histories (역사)
- 니콜로 마키아벨리 The Prince (군주론)
- 토머스 홉스 Leviathan (리바이어던)
한 권 요점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아테네 사람 투키디데스가 쓴 책입니다. 그는 첫머리에서 자신을 아테네인으로 소개하고,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이것이 이전의 어떤 전쟁보다 기록할 가치가 큰 대전쟁이 되리라 믿고 기록을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었습니다. 책 속에서 투키디데스는 올로로스의 아들로, 전쟁 8년째 겨울 타소스에서 지휘관으로 있다가 암피폴리스가 함락될 때 구원에 나섰지만 간발의 차로 에이온만 지켜 낸 장군으로 등장합니다. 이 일로 그는 20년 동안 고국을 떠나 있었고, 그 덕에 양쪽 진영, 특히 펠로폰네소스 쪽에서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또 전쟁 초의 역병을 직접 앓았고 남들이 앓는 것도 보았기에 증상을 기록한다고 합니다. 그는 이 책이 당대의 박수를 위한 글이 아니라 영원한 소유물로 쓰였다고 선언합니다. 이 글은 리처드 크롤리의 영어 번역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책은 사건을 여름과 겨울 순으로 서술합니다. 투키디데스는 연설도 싣는데, 직접 들은 것과 전해 들은 것이 섞여 글자 그대로 기억하기 어려웠으므로 화자가 그 상황에서 해야 했을 법한 말을 실제 취지에 가깝게 썼다고 밝힙니다. 아래 줄거리는 여덟 권을 권별로 따라가고, 이어지는 해설은 책이 던지는 질문을 열네 가지 대목으로 짚습니다. 줄거리에는 결말까지 들어 있으니 먼저 책을 읽으려는 분은 해설부터 읽으셔도 좋습니다. 한 가지 알아 둘 점은 여덟 번째 권이 끝나지 않은 채 갑자기 중단된다는 것입니다.
줄거리
제1권: 원인과 개전
첫 권은 옛 헬라스가 얼마나 허약했는지부터 시작합니다. 투키디데스는 먼 옛일은 분명히 알 수 없지만 가능한 한 거슬러 올라간 조사 결과 옛날에는 큰 규모의 일이 없었다고 봅니다. 땅이 비옥한 곳일수록 주민이 자주 바뀌었고, 척박한 아티카만 파벌 없이 같은 주민이 살아 다른 곳의 피난민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처음 함대를 만든 이는 미노스였다고 전해지고, 아가멤논이 트로이 원정군을 모은 것도 맹세보다 그의 우월한 힘과 함대 덕이었다고 그는 해석합니다. 페르시아 전쟁 뒤 헬라스는 아테네(해군 최강)와 스파르타(육군 최강)로 갈렸습니다. 스파르타는 동맹에서 공물을 받지 않고 과두정을 세운 반면, 아테네는 키오스와 레스보스를 뺀 동맹국에서 배를 빼앗고 금전 공물을 부과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여기서 자신의 방법을 밝힙니다. 아테네인이 히파르코스를 참주로 알지만 실제 최고 권력자는 히피아스였다는 식의 속설이 많다는 것, 연설은 실제 취지에 가깝게 재구성했다는 것, 사건은 첫 보고를 그대로 쓰지 않고 목격자들의 어긋나는 설명을 검증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전쟁이 페르시아 전쟁보다 훨씬 길었고 도시 파괴와 추방, 지진, 일식, 가뭄과 기근, 역병 같은 재앙을 함께 불렀다고 씁니다. 전쟁은 에우보이아 정복 뒤 맺은 30년 휴전이 깨지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겉으로 내세워진 불만을 기록하겠지만 진짜 원인은 아테네 세력의 성장과 그것이 스파르타에 일으킨 공포였다고 규정합니다.
직접적 발단은 에피담노스였습니다. 코르키라의 식민시 에피담노스에서 귀족과 민중이 갈려, 추방된 귀족이 이민족과 손잡고 약탈하자 에피담노스는 모국 코르키라에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델포이 신탁에 따라 코린토스에 도시를 넘겼습니다. 코르키라는 코린토스와 전쟁을 벌였고 어느 동맹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아테네에 동맹을 청했습니다. 아테네는 민회를 두 번 열어, 처음에는 코린토스 쪽으로 기울었다가 두 번째에 방어 동맹을 택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간문제라고 느꼈고 코르키라의 해군이 코린토스에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시보타 해전에서 코린토스 150척과 코르키라 110척이 맞붙었고, 아테네는 처음에는 자제하다 결국 코린토스와 직접 싸웠습니다. 양측이 모두 승리를 주장하며 전승비를 세웠습니다. 이어 코린토스의 식민시이자 아테네의 공납 도시인 포티다이아가 코린토스·마케도니아 왕 페르디카스의 부추김으로 이탈하자 아테네는 포위했고, 지협 전투에서 포티다이아 쪽이 패해 성안에 갇혔습니다.
코린토스는 이를 계기로 스파르타에 동맹 회의를 소집합니다. 코린토스 사절은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위험을 알면서도 사적 이익이라 의심만 했다고 몰아세웠고, 마침 와 있던 아테네 사절은 마라톤과 살라미스의 공적, 제국을 두려움·명예·이익 때문에 놓을 수 없었다는 논리를 말하며 조약에 따른 중재를 제안했습니다. 현명하고 온건하다는 평판의 아르키다모스 왕은 아테네가 해군과 재정, 말, 인구, 공납 동맹을 갖췄다고 신중론을 폈지만, 감독관 스테넬라이다스가 환호로 표결하게 하자 조약이 깨졌다는 쪽이 압도적 다수였습니다. 이후 책은 50년사로 옮겨 갑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스파르타 사절을 속여 성벽을 올린 일, 파우사니아스의 오만으로 동맹이 아테네에 지휘를 청한 일, 델로스 동맹의 첫 공납 460탈란톤, 낙소스의 이탈과 에우리메돈 강의 승리, 이집트 원정의 파멸, 타나그라 전투를 지나 30년 휴전에 이르는 과정이 서술됩니다. 스파르타는 델포이에서 전력을 다하면 이긴다는 답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아테네에 킬론의 저주와 파우사니아스 사건을 이유로 사절을 보내며 명분을 쌓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파르타가 메가라 포고령 철회를 요구하자 페리클레스는 이 사소한 일이 결의 전체의 시험이니 양보할 수 없다고 연설하고, 아테네는 "명령에는 응하지 않되 조약에 따른 법적 해결은 하겠다"고 답해 사절을 돌려보냅니다.
제2권: 첫 세 해와 역병
전쟁은 한밤 테바이 군 300여 명이 아테네 동맹 도시 플라타이아에 들어가는 데서 정말로 시작됩니다. 플라타이아인 일부가 도시를 넘기려 문을 열어 주었지만, 폭우와 어둠, 여자와 노예가 던진 기와와 돌 속에서 침입자들은 갇히고 대부분 죽거나 항복했습니다. 플라타이아인은 포로 180명을 처형했는데 맹세가 있었는지를 두고 테바이와 플라타이아의 주장이 엇갈립니다. 양쪽이 동맹과 이민족 왕에게 사절을 보내는 사이 델로스에 처음으로 지진이 일었고, 사람들은 이를 앞날의 징조로 여겼습니다. 스파르타 동맹군이 이스트모스에 모이자 아르키다모스는 방심하지 말라고 훈시했고, 아테네는 이미 군이 진군하면 전령을 받지 않기로 결의해 스파르타 사절 멜레시포스를 만나 주지도 않고 쫓아냈습니다. 그는 국경에서 "이날이 헬라스인에게 큰 불행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페리클레스는 시골 재산을 도시로 옮기고 출전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그가 헤아린 자원은 동맹 공납 연평균 600탈란톤, 아크로폴리스의 주조 은화 6,000탈란톤, 중무장 보병 13,000에 수비 병력 16,000, 기병 1,200, 삼단노선 300척이었습니다. 시골 사람들은 가축을 에우보이아로 보내고 가족을 데리고 성안으로 몰려들어 빈 터와 영웅 사당에까지 살았습니다. 펠로폰네소스군은 아카르나이에 진을 쳤고 젊은이들이 출전을 요구했지만 페리클레스는 민회를 열지 않고 도시를 지켰습니다. 아테네는 한편으로 아크로폴리스 금고의 1,000탈란톤과 최고의 배 100척을 해상 공격에만 쓰도록 따로 떼어 놓았고, 함대는 펠로폰네소스를 돌며 약탈했으며, 가을에는 페리클레스가 이끈 시민 중무장병 약 10,000명과 거류 외국인 3,000명 이상이 메가라를 침공했습니다. 겨울에 처음으로 전사자 국장이 열려 유골을 천막에 안치하고 부족별 삼나무 관에 담았고, 페리클레스가 추도 연설을 했습니다.
이듬해 여름 스파르타가 다시 아티카를 침공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역병이 닥칩니다. 투키디데스는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되어 이집트와 리비아를 거쳐 왔다고 "한다"는 말을 전하고, 페이라이에우스에서 먼저 발생해 펠로폰네소스인이 저수지에 독을 탔다는 말이 돌았다고 적습니다. 머리의 열과 충혈, 구토와 경련, 겉은 붉고 속은 타들어 가 옷을 견디지 못하는 증상을 겪은 사람들은 대개 7~8일째에 죽었고, 살아남아도 손발가락이나 눈, 기억을 잃기도 했습니다. 의사들이 가장 먼저 죽었고 신전의 기도도 소용없었습니다. 시골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오두막에서 죽어 갔고 성소는 시체로 가득했으며 매장 의례는 무너졌습니다. 포티다이아를 포위하던 군대에도 역병이 번져 약 40일 만에 중무장병 4,000명 가운데 1,050명을 잃고 돌아왔습니다. 두 번 땅이 유린되고 역병까지 겹치자 아테네인은 페리클레스를 원망하며 스파르타에 사절을 보냈으나 성과가 없었고, 페리클레스는 마지막 민회 연설로 이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는 벌금형을 받았지만 얼마 뒤 다시 장군으로 선출되었고, 전쟁 시작 뒤 2년 6개월 더 살았습니다.
2권의 후반은 포티다이아가 식량이 떨어져 항복하는 일, 셋째 해 여름 아르키다모스가 플라타이아를 포위해 70일 밤낮 흙 언덕을 쌓았으나 플라타이아인이 성벽을 높이고 땅굴로 흙을 빼내며 버틴 일, 스파르타 사절단이 트라키아에서 붙잡혀 아테네에서 재판 없이 처형된 일을 서술합니다. 나우팍토스 앞에서는 포르미온의 아테네 20척이 코린토스 연합 함대 47척을 이겼고, 스파르타는 이를 용기 부족으로 보고 지휘관을 더 보내 77척으로 다시 싸웠습니다. 두 번째 해전도 포르미온이 침착한 연설과 기동으로 반격에 성공했습니다. 스파르타는 메가라인의 권유로 피레우스를 기습하려다 살라미스 해안만 습격했는데, 그 횃불 신호에 아테네는 전쟁 중 가장 심각한 공황에 빠졌습니다. 이어 트라키아의 시탈케스가 마케도니아를 침공했다가 30일 만에 철수했습니다.
제3권: 미틸레네, 플라타이아, 코르키라
레스보스의 미틸레네가 아테네에서 이탈하려 하자 아테네는 역병과 전쟁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 선제공격을 택합니다. 미틸레네는 올림피아에서 동맹국들에게 아테네가 제국을 꾀해 동맹을 예속시켰다며 호소했고, 스파르타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동맹군이 늦게 모였습니다. 아테네는 오히려 시위로 100척을 보내 이스트모스까지 가고 펠로폰네소스 곳곳에 상륙했습니다. 파케스가 이끈 병력이 도시를 단일 성벽으로 에워싸 봉쇄했고, 식량이 떨어지자 미틸레네 평민은 무기를 쥐고도 지휘관에게 복종하지 않으며 아테네와 직접 협상하겠다고 나서 항복했습니다. 아테네는 포로가 도착하자 미틸레네 성인 남자 전원을 죽이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삼기로 결의했습니다. 다음 날 뉘우침이 일어 재표결이 열리고 클레온과 디오도토스가 맞섭니다. 표결은 거의 같았으나 디오도토스의 안이 이겼고, 두 번째 배는 노잡이들이 보리떡을 먹으며 쉬지 않고 저어 첫 배가 칙령을 읽으려는 순간 닿았습니다. 그래도 주모자 1,000명 남짓이 처형되고 성벽이 허물렸으며 땅은 3,000 구획으로 나뉘어 아테네인에게 분배되었습니다.
같은 겨울 포위당한 플라타이아인 약 220명이 예언자 테아이네토스와 장군 에우폼피데스의 계획에 따라 탈출을 시도합니다. 벽돌 층수를 여러 사람이 세어 성벽 높이를 구했고, 폭풍우 치는 달 없는 밤에 왼발에만 신을 신고 접근했습니다. 한 사람이 기와를 떨어뜨려 발각되었지만 성안 사람들이 반대편을 공격해 시선을 돌려 212명이 아테네에 닿았습니다. 남은 플라타이아는 이듬해 항복하고, 스파르타가 보낸 재판관 다섯은 기소 없이 "전쟁에서 스파르타와 동맹에 해준 일이 있는가"만 물었습니다. 플라타이아와 테바이 대표가 서로 정반대의 이야기를 폈으나 판결은 한 사람씩 같은 질문을 던지고 모두 죽이는 것이었고, 200명 이상과 함께 있던 아테네인 25명이 처형되었으며 여자들은 노예로 팔렸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이 가혹함이 주로 테바이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었다고 평합니다.
코르키라에서는 에피담노스 해전 포로가 귀환하며 혁명이 터졌습니다. 코린토스가 풀어 준 포로들은 시민을 하나씩 포섭했고, 민중 지도자를 둘러싼 고발과 보복 끝에 원로원에서 60명이 살해되었습니다. 알키다스의 펠로폰네소스 함대와 아테네 함대가 맞붙은 뒤 평민은 정적을 닥치는 대로 죽였고, 아테네 장군이 머문 7일 동안 죄명은 민주정 전복 기도였으나 사적 원한이나 채무 때문에 죽은 이도 있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이어 내란이 말의 뜻과 도덕을 어떻게 뒤집는지 길게 분석합니다. 한편 데모스테네스는 아이톨리아에서 참패해 최정예 중무장병 120명을 잃었지만, 이후 올파이에서 매복으로 에우리로코스를 죽이고 이도메네에서 암브라키아 지원군을 기습해 이 전쟁에서 같은 날수 안에 어느 헬라스 도시에도 닥친 적 없는 최대의 재난을 안겼습니다. 시칠리아에서는 아테네가 레온티노이 동맹을 돕는다는 구실로 소규모 함대를 보내기 시작했고, 에트나의 분출과 아테네의 두 번째 역병, 지진과 해일이 겹친 소식도 서술됩니다.
제4권: 필로스, 델리온, 암피폴리스
이야기는 데모스테네스가 폭풍으로 밀려온 필로스에서 시작됩니다. 병사들이 일이 없자 스스로 돌을 모양 맞춰 쌓고 회반죽은 등에 지어 날라 6일 만에 요새를 완성했습니다. 스파르타는 항구 입구의 섬 스팍테리아에 제비로 뽑은 중무장병 420명을 보냈지만 아테네 함대가 도착해 이들을 고립시켰습니다. 스파르타 사절은 평화를 청하며 아테네에 지금의 행운을 불안한 것으로 여기라고 했으나, 클레온이 소수 위원회에서 말하자는 사절을 "정직하다면 모두 앞에서 말하라"고 몰아붙여 협상이 깨졌습니다. 겨울이 오면 봉쇄 유지가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자 클레온은 니키아스를 조롱하다 지휘를 떠안게 되었고 20일 안에 스파르타인을 산 채로 데려오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섬에서 한 병사의 실수로 숲이 불타 적의 수가 드러나자, 데모스테네스와 클레온은 경무장병으로 사방에서 투사 무기를 퍼부어 항복시켰습니다. 포로는 292명이고 그중 약 120명이 스파르타인이었으며, 봉쇄는 72일이었습니다.
스파르타는 이후 퀴테라 점령과 연이은 재난으로 자신감을 잃고, 시칠리아에서는 헤르모크라테스가 겔라 회의에서 아테네를 끌어들이지 말자고 호소해 도시들이 서로 평화합니다. 아테네는 돌아온 장군들을 시칠리아를 정복할 수 있었는데 뇌물을 받고 떠났다고 벌했습니다. 메가라에서는 평민 지도자들이 아테네와 내통해 니사이아를 점령했지만 브라시다스가 구원에 나서 도시를 지켰습니다. 스파르타는 반란을 두려워한 헬롯 2,000명을 해방하겠다고 선포한 뒤 소리 없이 없앴고, 브라시다스는 700명의 헬롯 중무장병을 데리고 테살리아를 가로질러 트라키아로 갔습니다. 아테네는 보이오티아의 몇몇과 짜고 델리온을 점령하려다 계획이 새어 나갔고, 델리온에서 파곤다스가 이끄는 보이오티아군이 아테네군을 격파해 장군 히포크라테스를 포함한 거의 1,000명이 전사했습니다.
그 사이 브라시다스는 아칸토스에서 연설로 도시를 이탈시켰고, 폭풍우와 눈 속에서 밤새 행군해 스트리몬 강의 아테네 식민시 암피폴리스에 닿았습니다. 반대파가 투키디데스에게 구원을 청했으나 브라시다스는 그가 금광 채굴권으로 영향력이 큰 것을 알고 서둘러 관대한 조건을 선포했고, 투키디데스의 함대는 같은 날 늦게 에이온에 닿아 간발의 차로 에이온만 지켰습니다. 이어 브라시다스는 토로네를 내통자와 함께 점령했습니다. 이듬해 봄 양측은 1년 휴전을 맺지만 휴전 소식이 닿는 사이 스키오네가 이탈했고, 투키디데스는 휴전 이후 이틀 만이라는 아테네의 주장이 사실에 가깝다고 판정합니다. 클레온은 스키오네 정벌을 결의시켰고, 브라시다스와 페르디카스는 린케스토스 원정에서 마케도니아인과 이민족이 헛공황에 달아난 뒤 브라시다스가 정예 300으로 후진을 맡아 퇴각전을 이끕니다. 멘데는 아테네에 함락되었고 스키오네는 포위되었습니다.
제5권: 위태로운 평화와 멜로스
휴전이 끝나자 클레온은 중무장병 1,200명과 기병 300명으로 토로네를 되찾고 에이온을 기지로 삼아 암피폴리스로 진군합니다. 브라시다스는 중무장병 150명을 골라 방심한 아테네 중앙을 급습하자고 연설했고, 클레온은 성문 앞 병력을 보고 퇴각하다 측면을 드러냈습니다. 브라시다스가 문을 열고 달려 아테네 중앙을 무너뜨렸고 클레온은 도망치다 죽었으며, 브라시다스도 부상으로 곧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테네 전사자는 약 600명, 적은 7명이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평화의 최대 반대자였던 두 사람이 모두 죽었다고 쓰고, 니키아스가 자신의 행운을 지키려 평화를 원했으며 스파르타 왕 플레이스토아낙스도 정적들의 비난에 시달려 평화를 바랐다고 설명합니다. 50년 조약이 맺어졌지만 트라키아 방면의 동맹은 조약을 거부했고 암피폴리스는 넘어오지 않았으며, 스파르타는 아르고스를 견제하려 아테네와 50년 동맹을 맺었습니다.
여기서 투키디데스는 전쟁이 모두 27년이었다고 말하며 조약기를 전쟁에서 빼는 것은 잘못이라고 논하고, 암피폴리스 뒤 20년간 추방되어 양쪽을 볼 수 있었다고 밝힙니다. 이후 코린토스가 아르고스에 접근하고 엘리스와 만티네이아가 이탈하며 펠로폰네소스가 다시 술렁였고, 아테네는 스키오네를 함락시켜 성인 남자를 죽이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삼았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가 니키아스와 라케스를 통해 협상하고 자신을 무시한 데 앙심을 품고, 스파르타 사절이 민회에서 전권이 없다고 말하게 만들어 신용을 잃게 했습니다. 아테네는 아르고스·만티네이아·엘리스와 100년 동맹을 맺었고, 엘리스는 스파르타를 올림피아 제전에서 배제했습니다. 만티네이아에서 아기스의 스파르타군은 아르고스군과 마주쳐 지휘관 두 명이 명령을 따르지 않아 대열에 틈이 생겼으나, 중앙의 정예가 승세를 뒤집었습니다. 아르고스·오르네아·클레오나이 700, 만티네이아 200, 아테네와 아이기나 200이 전사했고 스파르타의 손실은 "약 300명이라고들 한다"고 투키디데스는 단서를 답니다. 이후 아르고스는 스파르타와 화평해 아테네 동맹을 버렸습니다.
이 권의 끝은 멜로스입니다. 아테네는 함선 30척과 중무장병 약 1,600명, 동맹군 약 1,500명으로 스파르타 식민시 멜로스를 쳤고, 사령관들은 군중을 현혹하는 연설을 피하려고 소수 지배층과 문답으로 협상했습니다. 아테네 사절은 정의 논쟁을 접고 힘의 논리를 말했고, 멜로스는 중립을 제안하고 신들의 도움과 스파르타의 구원에 희망을 걸었으나 거부되었습니다. 멜로스는 700년 된 도시의 자유를 한 번에 버리지 않겠다고 답했고 아테네는 포위했습니다. 겨울 내부 배반이 일어나자 멜로스는 무조건 항복했고, 아테네는 성인 남자를 모두 죽이고 여자와 아이를 노예로 팔았으며 500명의 식민자를 보내 직접 살았습니다.
제6권: 시칠리아 원정
같은 겨울 아테네는 이전보다 큰 군대로 시칠리아를 정복하기로 결의했는데, 투키디데스는 대다수가 섬의 크기를 몰랐고 펠로폰네소스에 맞먹는 전쟁을 시작하는 줄도 몰랐다고 씁니다. 섬을 상선으로 한 바퀴 도는 데 8일에 가깝다고 하며, 시카노이·시켈로이·엘리모이 같은 옛 주민과 칼키스·코린토스·메가라 등이 세운 식민시를 차례로 설명합니다. 에게스타는 셀리누스·시라쿠사와의 전쟁에서 아테네에 도움을 청하고 비용을 대겠다고 했습니다. 아테네 사절이 돌아와 에게스타의 국고에 돈이 풍부하다고 전한 보고는 "매력적이었으나 거짓"이었습니다. 아테네는 니키아스·알키비아데스·라마코스 세 장군에게 전권을 주었습니다. 니키아스는 원정을 막으려 본국에 적을 두고 새 적을 얻는 격이라고 설득하다, 필요 병력을 크게 부풀려 단념시키려 했으나 오히려 열기를 키웠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자신이 올림피아에 전차 7대를 내보낸 일과 제국은 팽창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고, 노인은 정복 또는 무사 귀환을, 젊은이는 구경거리를, 대중은 급료를 기대했습니다.
준비 중 어느 밤 시내의 헤르메스 석상 대부분의 얼굴이 훼손되었고, 곧 사저에서의 비밀 의식 모독 신고가 나오며 알키비아데스가 연루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재판을 받겠다고 했지만 정적들이 출항 뒤 재판받게 하자고 몰아 결정되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이 함대가 단일 도시가 보낸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호화로운 헬라스 군대라고 평합니다. 중무장 시민 4,000, 기병 300, 갤리선 100척에 동맹이 더해졌고, 케르키라에서 열병한 함대는 갤리 134척과 중무장병 5,100명이었습니다. 시라쿠사는 헤르모크라테스의 경고를 믿지 않았고 아테나고라스가 이를 소수의 조작이라 몰았으나, 결국 방비에 나섭니다. 에게스타에 갔던 배가 돌아와 약속된 돈이 30탈란톤뿐이라고 전하자 장군들은 낙담했습니다. 에게스타인들은 신전의 은그릇과 빌린 금은 잔으로 사절을 속였다고 합니다.
세 장군의 작전안이 갈린 끝에 알키비아데스의 안이 채택되었으나, 카타나에 돌아가 보니 알키비아데스를 소환하는 살라미니아호가 와 있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이 대목에서 아테네인이 자기 참주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함을 보이려고 히피아스·히파르코스와 하르모디오스의 이야기를 길게 바로잡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투리이에서 사라져 펠로폰네소스로 건너갔고 아테네는 궐석으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아테네군은 시라쿠사를 속여 카타나로 끌어낸 뒤 올림피에이온 맞은편에 상륙해 첫 전투를 이겼습니다. 시라쿠사는 헤르모크라테스의 주장으로 15명이던 장군을 3명으로 줄였고, 아테네는 메시나 내통 계획이 알키비아데스의 밀고로 무산되었습니다. 카마리나 회담에서 헤르모크라테스와 아테네 사절 에우페모스가 맞섰고,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에서 아테네의 목표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카르타고를 정복한 뒤 펠로폰네소스까지 치는 것이라 폭로하며 길리포스 파견과 데켈레이아 요새화를 권했습니다. 겨울 끝에 아테네는 에피폴라이를 점령하고 포위 장벽을 쌓았지만 라마코스가 전사했고, 길리포스가 시라쿠사로 향합니다.
제7권: 시칠리아의 파국
길리포스는 타렌툼에서 시라쿠사가 아직 완전히 봉쇄되지 않았다는 정보를 얻고 히메라에서 병력을 모아 에피폴라이로 올라갑니다. 마침 코린토스의 곤길로스가 먼저 닿아 항복을 논의하던 민회를 막고 있었습니다. 길리포스는 라브달론 요새를 쳐서 안의 사람을 모두 죽이고, 횡단 성벽을 쌓아 아테네의 포위를 무력화했습니다. 첫 교전에서는 졌지만 자기 탓이라며 기병과 투창병을 쓸 수 있는 열린 곳으로 싸움을 옮겨 아테네를 성벽 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아테네는 플렘미리온에 요새를 지었으나 물과 땔나무를 구하러 나가면 기병에 끊겨 승조원을 잃었고, 니키아스는 편지로 소환이나 대규모 증원을 요청했습니다. 아테네는 그의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데모스테네스와 에우리메돈에게 새 군대를 맡겨 보내며 일부 병력은 펠로폰네소스로도 보냈습니다. 스파르타는 데켈레이아를 요새화해 상주했고, 노예 2만 명 이상이 도망쳐 아테네는 "도시가 아니라 요새"가 되었습니다.
시라쿠사는 뱃머리를 짧고 단단히 고쳐 좁은 큰 항구에서 아테네 함대를 이겼고, 플렘미리온이 함락되며 항구 입구가 보급에 안전하지 않게 됩니다. 한편 트라키아 용병이 뮈칼레소스에서 소년 학교까지 학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데모스테네스와 에우리메돈이 약 73척과 중무장병 5,000명으로 도착해 에피폴라이를 밤에 공격했지만, 달빛 속에서 암호를 서로 묻다 적아를 가리지 못하고 크게 패했습니다. 데모스테네스는 철수를 주장했고, 니키아스는 본국의 비방을 두려워하며 반대하다 월식이 일어나자 점쟁이가 정한 27일을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 시라쿠사는 해전에서 아테네를 이기고 에우리메돈을 죽이며 항구 입구를 가로질러 막았습니다. 아테네는 약 110척을 채워 마지막 해전에 나서 돌파하려 했으나 거의 200척이 좁은 곳에서 엉킨 싸움 끝에 크게 졌습니다.
아테네군은 육로 퇴각을 결정했지만, 헤르모크라테스의 계략에 속아 길이 지켜지고 있다는 말을 믿고 하루를 지체합니다. 그 사이 시라쿠사가 길과 여울을 막았습니다. 행군 인원은 4만 이상이었고, 니키아스는 병력이 곧 "앉는 곳마다 도시"이니 질서를 지키라고 격려했습니다. 아크라이온 절벽에서 길이 막히고 밤에 방향을 바꾸다 데모스테네스 부대가 뒤처지자 시라쿠사는 올리브 울타리 안에 그들을 몰아 6,000명의 항복을 받았습니다. 니키아스는 군의 방면을 대가로 전비 상환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고, 아시나로스 강에서 갈증과 공격 속에 군은 짓밟히고 쓰러졌습니다. 니키아스는 길리포스에게 학살을 멈춰 달라고 청하며 항복했습니다. 포로는 지붕 없는 채석장에 갇혀 8개월 동안 하루 물 반 파인트와 곡식 1파인트로 버텼고, 니키아스와 데모스테네스는 길리포스의 뜻과 달리 처형되었습니다. 총 포로 수는 7,000명 이상이었으며, 아테네인과 시칠리아·이탈리아 그리스인 가담자를 뺀 포로는 약 70일 뒤 팔렸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이것이 이 전쟁뿐 아니라 헬라스 역사 전체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총평합니다.
제8권: 이오니아 전쟁과 400인 정권
패전 소식이 도착해도 아테네인은 한참 동안 파멸이 그토록 완전하리라 믿지 않았습니다. 사실임을 알게 되자 원정을 부추긴 연설가와 점쟁이에게 분노하면서도 목재와 돈을 모아 함대를 갖추고 동맹을 단속하며 재정을 절약하고 원로 위원회를 두기로 했습니다. 헬라스 전체가 술렁였고, 스파르타는 동맹에 100척 건조를 분담시켰으며 왕 아기스는 데켈레이아에서 병력과 돈을 마음대로 썼습니다. 먼저 에우보이아와 레스보스가 아기스에게 반란 의사를 전했고, 키오스·에리트라이는 페르시아 총독 티사페르네스의 사절과 함께 스파르타로 갔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에포로스 엔디오스와의 가문 친분을 이용해 키오스 쪽을 지지하고 직접 칼키데우스와 5척으로 건너가 키오스를 반란시켰습니다. 에리트라이, 클라조메나이, 테오스, 밀레토스가 차례로 이탈했고, 밀레토스 반란 직후 티사페르네스와 칼키데우스는 첫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약이 티사페르네스에게만 유리하다는 불만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조약이 오가며 서로 조건을 다툽니다.
알키비아데스는 곧 의심을 받아 스파르타 사령관에게 살해 지시까지 받고 티사페르네스에게 가서 임금을 깎게 하고 헬라스인끼리 서로 지치게 두는 것이 가장 값싼 길이라고 조언합니다. 사모스의 아테네군 상류층에게는 과두정이면 귀국해 티사페르네스를 아테네 편으로 만들겠다는 전갈을 보냈고, 상류층은 클럽을 만들어 민주정 전복을 모의합니다. 장군 프리니코스만 알키비아데스의 속셈을 의심해 반대하고 스파르타 사령관에게 비밀 편지를 보냈지만 오히려 알키비아데스의 고발을 불렀습니다. 피산드로스가 아테네에서 민주정 변경을 설득하고, 안티폰이 설계한 쿠데타로 코로노스에서 민회를 에워싼 채 400인 정권이 세워집니다. 사모스에서는 평민과 파랄로스호 승조원이 과두정 음모를 꺾고 모든 병사에게 민주정을 지킨다는 서약을 받았으며, 군은 알키비아데스를 장군으로 소환합니다. 그는 티사페르네스의 영향력을 크게 과장했습니다.
페니키아 선 147척이 아스펜도스까지 왔지만 더 나아가지 않았고, 투키디데스는 헬라스 세력을 소진시켜 균형을 유지하려 했다고 추정합니다. 400인 정권 안에서는 테라메네스가 5,000인의 실재를 요구하며 갈라섰고, 에에티오네이아 성벽 건설과 프리니코스 피살, 피레우스 중무장병의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아게산드리다스의 함대가 에우보이아 쪽으로 오자 아테네는 에레트리아 앞에서 22척을 잃고 에우보이아가 이탈했으며, 이 소식에 시칠리아 때보다 큰 공포에 빠졌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인이 아테네가 상대하기에 가장 편한 민족이라서 적이 곧장 피레우스로 오지 않았다고 평합니다. 아테네는 프닉스에서 400인을 해산하고 정부를 5,000에게 넘겼는데, 그는 이 초기를 자신의 시대 아테네가 누린 가장 좋은 정부라고 평합니다. 마지막으로 키노세마 해전에서 아테네가 승리해 시칠리아 이후 처음 자신감을 되찾고, 알키비아데스는 페니키아 함대의 합류를 막았다고 보고하며 사모스로 돌아오고, 티사페르네스는 에페소스에서 아르테미스에게 제사를 올립니다. 책은 그 문장 중간에서 끊깁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영원한 소유물로 쓴 책
투키디데스는 자신의 책이 어떤 책인지 분명히 말합니다. 연설과 사건의 기록이 당대의 박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but as a possession for all time.
그러나 영원한 소유물로서.
이 구절은 이 책이 당대의 박수를 얻기 위한 글이 아니라고 말하는 문장의 끝부분입니다. 그는 자신이 본 것과 남이 본 것을 엄격히 검증했고, 목격자들의 설명이 어긋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연설은 실제 취지에 가깝게 재구성했다는 단서를 처음부터 밝혀 둡니다. 이런 정직한 서술이 이 책을 오래 읽히는 고전으로 만든 첫째 이유입니다.
2. 전쟁의 진짜 원인: 성장과 공포
투키디데스는 겉으로 내세워진 불만과 진짜 원인을 구분합니다. 코르키라 사건과 포티다이아 사건 같은 명분을 먼저 기록하면서도, 그는 진짜 원인을 이렇게 말합니다.
The growth of the power of Athens, and the alarm which this inspired in Lacedaemon
아테네 세력의 성장과, 그것이 라케다이모니아에 일으킨 불안.
이어지는 말은 이것이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코린토스 사절은 스파르타에서 아테네 사람들의 성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born into the world to take no rest themselves and to give none to others
자신도 쉬지 않고 남에게도 쉴 틈을 주지 않으려고 태어난 사람들.
반면 스테넬라이다스의 감독관 투표에서 보이듯,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논변보다 아테네의 성장 자체를 두려워해 전쟁에 표를 던졌다고 투키디데스는 씁니다. 정의의 문제 이전에 공포와 세력 균형이 전쟁을 만든다는 이 진단이 이 책의 가장 큰 영향력입니다.
3. 전쟁은 돈의 문제다
아르키다모스 왕은 개전을 서두르는 스파르타 동맹에게 아테네는 해군과 재정, 말, 보병, 인구, 공납 동맹을 갖췄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war is a matter not so much of arms as of money
전쟁은 무기보다는 돈의 문제이다.
그는 아티카를 황폐화하면 쉽게 끝나리라는 기대가 "자식에게 물려줄 전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 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반대편에서는 페리클레스가 스파르타의 최후통첩을 받고 메가라 포고령 같은 사소한 문제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Why, this trifle contains the whole seal and trial of your resolution.
이 사소한 일이야말로 그대들의 결의 전체를 가늠하는 시험이다.
그는 펠로폰네소스에는 자금이 없고 장기 해전 경험이 없으며 동맹 회의는 일치된 행동이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개전 전 양쪽의 계산이 이처럼 자원과 결의의 문제로 맞물려 있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4. 아테네는 헬라스의 학교
첫 해 전사자 국장에서 페리클레스는 추도 연설로 아테네의 정체와 습관을 말합니다.
Its administration favours the many instead of the few
그 통치는 소수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것이다.
그는 사적 분쟁에서는 법 앞의 평등을, 공직에서는 신분이 아닌 능력을 말하고, 도시는 외국인에게 열려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as a city we are the school of Hellas
도시로서 우리는 헬라스의 학교이다.
전몰자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heroes have the whole earth for their tomb
영웅에게는 온 땅이 무덤이다.
이 연설은 민주정의 이상을 가장 높은 곳에서 그린 대목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이 연설 바로 뒤에 역병 서술이 이어지도록 놓여 있다는 점도 함께 읽어야 합니다. 연설 속의 도시와 역병 속의 도시는 같은 아테네입니다.
5. 역병과 사회의 해체
이듬해 여름 아테네에 역병이 닥칩니다. 투키디데스는 증상을 직접 앓고 본 대로 기록합니다. 가장 끔찍한 것은 낙담과 간병의 위험이었습니다.
the awful spectacle of men dying like sheep
사람들이 양처럼 죽어 가는 끔찍한 광경.
성소는 시체로 가득 찼고 매장 의례는 무너졌으며 사람들은 신에 대한 경외도 법에 대한 두려움도 잃었습니다. 분노한 시민들이 페리클레스를 원망하자 그는 이렇게 응수합니다.
I am the same man and do not alter, it is you who change
나는 그대로이고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그대들이다.
페리클레스는 벌금형을 받았지만 다시 장군이 되었고 얼마 뒤 사망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그의 뒤를 이은 이들이 사적 야심에 이끌려 그의 정책과 반대로 갔다고 평합니다. 이후 시칠리아 원정이 바로 그 사례로 거론됩니다.
6. 미틸레네 논쟁: 정의인가 이익인가
미틸레네 반란을 진압한 아테네는 성인 남자 전원을 죽이기로 결의했다가 다음 날 뉘우치고 재표결을 합니다. 클레온은 이렇게 맞섭니다.
your empire is a despotism and your subjects disaffected conspirators
그대들의 제국은 전제이고, 그대들의 신민은 불만 품은 음모자들이다.
그는 자비와 감상, 관용이 제국에 가장 해롭다고 했고, 반란의 정당성과 지배의 정당성을 이렇게 맞물렸습니다.
if they were right in rebelling, you must be wrong in ruling.
그들이 반란한 것이 옳다면, 그대들이 지배하는 것은 그른 것이다.
디오도토스는 두 가지 원칙으로 반박합니다. 첫째는 조언의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I think the two things most opposed to good counsel are haste and passion
좋은 조언에 가장 반대되는 것은 서두름과 격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는 쟁점의 재설정입니다.
the question is not justice, but how to make the Mitylenians useful to Athens.
문제는 정의가 아니라, 미틸레네인을 어떻게 아테네에 유용하게 만드느냐이다.
그는 항복해도 죽는다면 어떤 도시도 끝까지 저항하고, 모든 도시에서 평민은 아테네의 친구이니 평민을 죽이면 은인을 죽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표결은 거의 같았으나 디오도토스의 안이 이겼고, 두 번째 배가 간발의 차로 학살을 막았습니다.
The danger of Mitylene had indeed been great.
미틸레네가 겪은 위험은 실로 컸다.
이 논쟁에서 디오도토스가 선택한 근거가 도덕이 아니라 이익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합니다. 자비 자체가 아니라 아테네의 유용성으로 학살을 막았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이상과 현실, 그리고 제국의 논리를 함께 보여 줍니다.
7. 코르키라: 말의 뜻이 뒤집힌 세계
코르키라 혁명 서술 뒤에 투키디데스는 내란이 사람의 말과 가치를 어떻게 바꾸는지 길게 분석합니다. 단어의 뜻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Reckless audacity came to be considered the courage of a loyal ally
무모한 대담함은 충성스러운 동맹의 용기로 여겨지게 되었다.
복수가 자기 보존보다 중시되고, 화해의 맹세는 다른 무기가 없을 때만 지켜졌습니다.
Revenge also was held of more account than self-preservation.
복수 또한 자기 보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가 지목한 원인은 이것입니다.
The cause of all these evils was the lust for power
이 모든 악의 원인은 권력욕이었다.
투키디데스는 평화 시에는 이런 구실이 없지만 전쟁은 거친 스승이라고 말합니다. 코르키라는 이런 일 대부분의 첫 예였을 뿐이고, 이후 헬라스 전체가 민중 지도자는 아테네를, 과두파는 스파르타를 끌어들이려는 갈등으로 요동쳤다고 합니다. 전쟁이 한 사회의 언어와 도덕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이만큼 정확히 짚은 대목은 드뭅니다.
8. 필로스와 스팍테리아: 뜻밖의 전환
폭풍으로 필로스에 밀려온 데모스테네스는 병사들을 이렇게 독려합니다.
In emergencies like ours calculation is out of place
우리 같은 위급한 때에는 계산이 어울리지 않는다.
돌을 모양 맞춰 쌓고 회반죽은 등에 지어 나른 병사들은 6일 만에 요새를 세웠고, 스파르타 중무장병 420명이 스팍테리아에 갇혔습니다. 스파르타 사절은 가진 행운을 지키라고 평화를 청했고, 클레온이 과한 조건을 내걸어 협상이 깨졌습니다. 결국 섬의 숲이 불타 적의 수가 드러나자 아테네는 사방에서 투사 무기를 퍼부어 항복을 받습니다. 투키디데스는 이렇게 씁니다.
Nothing that happened in the war surprised the Hellenes so much as this.
이 전쟁에서 일어난 어떤 일도 이 일만큼 헬라스인을 놀라게 하지 못했다.
그 뒤 스파르타는 연이은 재난으로 자신감을 잃습니다.
being new to the experience of adversity they had lost all confidence in themselves
역경을 처음 겪는지라 그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모두 잃었다.
이 권의 흐름은 전쟁에서 한 번의 우연이 모든 계산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9. 브라시다스와 투키디데스의 추방
브라시다스는 아칸토스에서 연설로 도시를 이탈시키며 스파르타의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Empire we do not aspire to: it is what we are labouring to put down
우리는 제국을 열망하지 않는다. 제국은 우리가 무너뜨리려 애쓰는 것이다.
그는 스파르타 정부가 동맹국의 독립을 맹세했다고 말했고, 주민 다수는 그의 논변과 수확 전 과일에 대한 걱정에 설득되었습니다. 암피폴리스에서는 재산과 시민권을 유지하는 관대한 조건을 내걸어 도시를 항복시켰고, 투키디데스의 함대는 같은 날 늦게 닿아 에이온만 지켜 냈습니다. 이 일로 투키디데스는 20년 동안 고국을 떠나게 됩니다. 아테네 동맹 도시들이 이탈을 갈망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it is a habit of mankind to entrust to careless hope what they long for
바라는 것은 경솔한 희망에 맡기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이후 클레온과 브라시다스가 암피폴리스에서 함께 죽으면서 전쟁의 가장 큰 반대자들이 사라지고 평화가 가능해집니다. 투키디데스는 그 뒤의 불안정한 평화를 전쟁에서 빼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it would last thrice nine years
그것은 세 번의 아홉 해 동안 이어지리라.
그는 전쟁이 27년이라는 널리 퍼진 예언이 이번에는 맞았다고 기억합니다. 한편 자신의 추방에 대해서는 이렇게 씁니다.
an exile from my country for twenty years after my command at Amphipolis
암피폴리스에서 지휘를 맡은 뒤 나는 20년 동안 조국에서 추방되어 있었다.
자신의 실패를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그 처지가 관찰에 유리했다고 쓰는 태도가 이 책의 신뢰를 높입니다.
10. 만티네이아: 용기가 기술을 이기는 순간
알키비아데스의 책략으로 아르고스와 아테네의 동맹이 맺어지고, 만티네이아에서 스파르타는 지휘관 둘이 명령을 따르지 않아 대열에 틈이 생기는 위기를 겪습니다. 그런데도 중앙의 정예가 아르고스군을 무너뜨립니다.
the greatest that had occurred for a very long while among the Hellenes
오랫동안 헬라스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것 중 가장 컸다.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군이 솜씨에서는 크게 뒤졌지만 용기에서는 우세했다고 평하고, 스팍테리아에서 땅에 떨어진 평판이 이 한 번의 행동으로 씻겼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평화 조약 아래에서도 군사적 충돌이 계속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조약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곧 이어지는 멜로스 장면과 시칠리아 원정으로 이어집니다.
11. 멜로스의 대화
아테네 사절은 멜로스 소수 지배층과 문답으로 협상하며 정의 논쟁을 거부합니다.
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
강한 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한 자는 겪어야 하는 것을 겪는다.
멜로스가 신들의 도움과 스파르타의 구원을 믿는다고 하자 이렇게 답합니다.
by a necessary law of their nature they rule wherever they can
필연적인 본성의 법칙에 따라 그들은 힘이 닿는 곳이면 어디서든 지배한다.
스파르타의 구원을 믿는 멜로스의 순진함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we bless your simplicity but do not envy your folly
그대들의 순진함에 복이 있기를 바라나, 그 어리석음은 부럽지 않다.
멜로스는 700년 된 도시의 자유를 한 번에 버리지 않겠다고 답하고, 결국 겨울에 무조건 항복하여 남자는 죽고 여자와 아이는 노예가 됩니다. 이 대화는 힘의 논리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목으로 널리 인용되지만, 투키디데스가 이 장면 바로 뒤에 시칠리아 원정을 놓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힘을 믿는 자가 곧 자신의 힘을 과신하게 된다는 암시로 읽을 수 있습니다.
12. 시칠리아 원정의 결의
니키아스는 원정을 막으려 마지막에 병력을 부풀려 말하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we go to found a city among strangers and enemies
우리는 낯선 이들과 적들 사이에 도시를 세우러 가는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제국의 논리로 응수합니다.
if we cease to rule others, we are in danger of being ruled ourselves
우리가 남을 지배하기를 그치면 우리 자신이 지배당할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결과는 니키아스의 의도와 반대였습니다. 아테네는 오히려 열광했고, 노인은 정복 또는 무사 귀환을, 젊은이는 구경거리를, 대중은 급료를 기대했습니다. 함대는 이렇게 평가됩니다.
by far the most costly and splendid Hellenic force
단연 가장 비용이 많이 들고 화려한 헬라스 군대.
이 대목의 핵심은 신중한 연설이 오히려 열기를 키우는 역설입니다. 헤르메스상 훼손 사건에서 투키디데스는 이렇게 유보합니다.
to say for certain who did the deed
누가 그 일을 했는지 확실히 말하는 것.
알키비아데스는 소환을 피해 스파르타로 건너가고, 아테네는 적국에 가장 유능한 지휘관을 내준 꼴이 됩니다.
13. 시칠리아의 파국
길리포스의 도착 이후 상황은 급변하고, 니키아스는 편지로 진실을 전합니다.
the besieger in name has become, at least from the land side, the besieged
이름뿐인 포위자가, 적어도 육지 쪽에서는 포위당한 처지가 되었다.
그가 편지를 쓴 이유는 아테네의 성향 때문이었습니다.
it is your nature to love to be told the best side of things
사물의 가장 좋은 면만 듣기를 좋아하는 것이 그대들의 본성이다.
철수 직전 월식이 일어나 출발이 막힙니다.
an eclipse of the moon, which was then at the full, took place
그때 보름달이던 달에 월식이 일어났다.
퇴각이 시작되자 니키아스는 행렬을 돌며 병사들을 격려하고 이렇게 맺습니다.
Men make the city and not walls or ships without men in them.
도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지, 사람이 없는 성벽이나 배가 아니다.
퇴각하는 군대에 대한 투키디데스의 논평은 이렇습니다.
They had come to enslave others, and were departing in fear of being enslaved themselves
그들은 남을 노예로 삼으러 왔다가, 자신이 노예가 될까 두려워 떠나고 있었다.
니키아스의 처형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합니다.
of all the Hellenes in my time, least deserved such a fate
내 시대의 모든 헬라스인 가운데 그런 운명을 맞을 이유가 가장 적은 사람.
총평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This was the greatest Hellenic achievement of any in this war
이것은 이 전쟁에서 헬라스인이 이룬 가장 큰 업적이었다.
그는 이 사건이 승자에게는 가장 영광스럽고 패자에게는 가장 비참한 일이었다고 맺습니다. 전쟁의 방향이 여기서 정해졌고, 아테네의 이후는 사실상 이 파국의 여파입니다.
14. 민주정의 위기와 끝나지 않는 책
패전 소식을 믿게 된 아테네는 먼저 원정을 부추긴 연설가들에게 분노합니다. 이어지는 급한 개혁은 이렇게 평가됩니다.
as is the way of a democracy, in the panic of the moment
민주정이 그러하듯, 그 순간의 공황 속에서.
알키비아데스는 페르시아 총독 티사페르네스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The cheapest plan was to let the Hellenes wear each other out
가장 값싼 방법은 헬라스인들이 서로를 지치게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한편 알키비아데스가 과두정이면 귀국해 티사페르네스를 아테네 편으로 만들겠다고 전하자 사모스의 상류층은 과두정을 모의하고, 아테네에는 400인 정권이 세워지지만 내부 분열과 에우보이아 상실로 무너집니다. 투키디데스는 이어진 5,000인 정부의 초기를 자신의 시대 아테네가 누린 가장 좋은 정부였다고 평합니다. 책은 키노세마 해전 이후 티사페르네스의 제사 장면에서 문장 중간에 끊깁니다. 편집자 주는 이 여름 뒤 겨울이 지나면 전쟁 21년이 끝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저자가 27년 전체를 서술하겠다고 밝혔음에도 이 책은 21년째 중간에서 멈추고, 이 미완이 오히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 독자에게 남겨진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보다 중요한 대목을 먼저 짚어 읽는 편이 좋습니다. 1권의 방법론과 전쟁의 원인, 2권의 추도 연설과 역병, 3권의 미틸레네 논쟁과 코르키라 혁명, 5권의 멜로스 대화, 6~7권의 시칠리아 원정이 핵심입니다. 연설은 투키디데스가 재구성했다고 밝힌 만큼 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상황의 논리를 보여 주는 장치로 읽으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8권이 갑자기 끊기는 점을 기억하고 읽으면, 저자가 끝내지 못한 책이라는 사실이 이 책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이 글과 이어 읽을 책은 역사, 군주론, 리바이어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고전의 한 권 요점은 ReadGem 블로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