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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375 BC

The Republic

국가

플라톤 Plato (c. 428–348 BC)

I want to hear justice praised in respect of itself

나는 정의가 그 자체로서 찬양받는 것을 듣고 싶다.

The excess of liberty, whether in States or individuals, seems only to pass into excess of slavery.

국가에서든 개인에게서든 지나친 자유는 결국 지나친 예속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

한눈에 보기

정의란 무엇이며, 정의로운 사람이 정말 행복한가를 묻기 위해 이상적인 나라를 말로 세워 본 책이다. 나라의 정의는 사람 마음의 정의를 크게 확대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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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요점

Plato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경 아테네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348년경까지 살았던 철학자입니다. 젊은 시절 그는 소크라테스를 따르며 배웠고, 스승이 기원전 399년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아 세상을 떠났을 때 스물여덟 살쯤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플라톤의 생각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그는 정치에 직접 뛰어드는 대신 "정의로운 나라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철학의 중심 질문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기원전 380년대에 세운 학원 아카데메이아는 서양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학문 공동체의 출발점으로 꼽힙니다.

『국가』는 플라톤이 쓴 열 권 분량의 대화편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인정받습니다. 제목의 그리스어 "폴리테이아"는 나라의 체제와 시민의 삶의 방식을 뜻하는 말이어서, 오늘날의 "공화국"보다 넓은 의미입니다. 대화는 소크라테스가 일인칭으로 들려주는 형식이며, 아테네의 항구 피라이우스에 있는 폴레마르코스의 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책은 정의가 무엇인지를 묻는 데서 출발해, 이상적인 나라, 영혼의 구조, 철학자의 교육, 지식과 선의 본질, 그리고 죽음 이후의 이야기까지 한 권에 담았습니다.

『국가』는 서양 정치철학과 교육철학, 형이상학의 출발점으로 이천사백 년 넘게 읽혀 왔습니다. "동굴의 비유", "철학자 왕", "영혼의 세 부분" 같은 개념은 이 책에서 나왔습니다. 한편 이 책은 가장 많이 비판받은 책이기도 합니다. 시와 이야기를 통제하자는 주장, 지배 계급의 재산과 가족을 공유하자는 주장, 선한 거짓말을 말하는 대목 때문에 훗날 일부 사상가들은 이 책이 전체주의적 요소를 지녔다고 비판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플라톤의 구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그가 던지는 질문을 스물다섯 가지로 나누어 읽습니다.

책에 담긴 논증은 거의 모두 문답으로 전개됩니다. 그래서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를 판정하기보다,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질문을 이어 가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래 항목에서도 먼저 질문을 확인하고, 그다음에 소크라테스의 대답을 살피는 순서로 정리했습니다.

줄거리

제1권은 케팔로스, 폴레마르코스, 트라시마코스와의 대화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 여러 사람이 내놓은 정의를 차례로 반박합니다. 마지막에 트라시마코스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일 뿐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습니다. 제2권에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이 주장을 더 강하게 다시 제기하며, 정의가 그 자체로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소크라테스에게 요구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작은 글씨로 읽기 어려우니 큰 글씨, 곧 나라에서 먼저 찾아보자며 말로 나라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제3권부터 제5권까지는 이상 국가의 구조를 설계합니다. 시민을 생산자, 수호자 같은 계급으로 나누고, 교육과 생활 방식을 정하며,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릅니다. 제6권과 제7권은 선의 이데아,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를 통해 앎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제8권과 제9권은 정체가 타락해 가는 과정과 참주의 불행을 다루고, 제10권은 시에 대한 비판과 영혼의 불멸, 그리고 에르의 신화로 책을 맺습니다. 아래 스물다섯 가지는 이 전체 흐름에서 지금도 쓸 만한 질문을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노년의 무게는 나이가 아니라 성격에 달려 있다

책의 첫 대화는 늙은 케팔로스와 소크라테스의 만남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나이 든 사람에게 인생의 끝이 힘든지를 묻습니다. 케팔로스는 노년의 불평이 나이 때문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for he who is of a calm and happy nature will hardly feel the pressure of age, but to him who is of an opposite disposition youth and age are equally a burden.

차분하고 행복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나이의 무게를 거의 느끼지 않지만, 그 반대의 기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젊음도 늙음도 똑같이 짐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인이 흔히 몸이 약해지고 쾌락이 사라졌다고 한탄하지만, 케팔로스가 보기에 그 원인은 나이가 아니라 사람의 성격과 기질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부자라서 그렇게 가볍게 느끼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자, 케팔로스는 일리가 있지만 그만큼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이 장면은 책의 분위기를 알려 줍니다. 『국가』는 처음부터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태도에서 시작합니다. 힘든 일이 나이나 환경 탓인지 내 마음가짐 탓인지를 가려 보는 일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2.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도발

제1권의 절정은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의 등장입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질문만 하고 답은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며 자기 답을 내놓습니다.

I proclaim that justice is nothing else than the interest of the stronger.

나는 선언한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트라시마코스는 어느 나라든 지배하는 쪽이 자기에게 이로운 법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는 것을 정의라고 부른다는 논리를 폅니다. 이 주장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습니다. 법과 도덕이 사실은 힘 있는 쪽의 이익을 반영한다는 의심은 지금도 자주 나오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주장을 단번에 물리치지 않고 한 걸음씩 되묻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이 첫 도전이 있었기에 책 전체가 "정의는 정말 그 자체로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 위에 놓입니다.

3. 의사는 환자를 위해 처방한다

소크라테스는 트라시마코스에게 기술과 전문가의 예를 들어 반박합니다. 의사와 키잡이처럼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를 묻습니다.

no physician, in so far as he is a physician, considers his own good in what he prescribes, but the good of his patient

의사는 의사인 한에서 처방할 때 자기 이익이 아니라 환자의 이익을 고려한다.

소크라테스는 키잡이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키잡이는 단순한 선원이 아니라 선원들을 다스리는 사람이고, 그의 기술은 자기 이익이 아니라 선원들의 이익을 위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스리는 사람이 다스리는 일의 본래 성격에 충실한 한에서는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 다스림을 받는 사람의 이익을 돌보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통치자가 자기 이익을 챙기면 그것은 통치의 기술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논증이 모든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력을 가진 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묻는 기본 틀이 되었습니다.

4. 정의가 그 자체로 좋은 것임을 보여 달라

제2권에서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가 트라시마코스를 충분히 이기지 못했다고 말하며, 문제를 더 날카롭게 다시 제기합니다.

I want to hear justice praised in respect of itself

나는 정의가 그 자체로서 찬양받는 것을 듣고 싶다.

글라우콘은 정의의 보상이나 결과를 떼어 놓고, 정의가 영혼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고 싶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정의를 지키는 것은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어서라는 통념, 그리고 불의한 사람의 삶이 더 낫다는 주장을 먼저 강하게 제시한 뒤 이를 반박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정직함이 보상받기 때문에 정직하다면, 그 정직은 정직이 아니라 계산입니다. 이 질문은 도덕의 근거를 묻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천 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5. 정의는 힘 없는 사람들의 타협일 뿐인가

글라우콘은 반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사람들이 흔히 믿는 정의의 기원을 먼저 설명합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세상에서 통용되는 견해라고 단서를 달고, 정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말합니다.

it is a mean or compromise, between the best of all, which is to do injustice and not be punished, and the worst of all, which is to suffer injustice without the power of retaliation

그것은 가장 좋은 것, 곧 불의를 저지르고도 벌받지 않는 것과 가장 나쁜 것, 곧 보복할 힘 없이 불의를 당하는 것 사이의 중간 또는 타협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사람들은 불의를 저지르면 이롭고 당하면 해롭다는 것을 겪어 본 뒤, 양쪽 모두를 피하기 위해 서로 계약을 맺었고 그 약속이 법이며 정의라고 부릅니다. 정의는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불의를 저지를 힘이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차선의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글라우콘은 진짜 남자라면 불의를 저지를 힘이 있는데 이런 계약을 받아들일 리 없다고 덧붙입니다. 이 설명은 사회계약론의 오래된 모습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크라테스가 이 견해에 맞서 정의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것임을 보이는 것이 책의 과제가 됩니다.

6. 투명인간이 되어도 정의로울 수 있는가

글라우콘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꺼냅니다. 리디아 왕의 양치기였던 기게스가 땅이 갈라진 틈에서 금반지를 발견합니다.

he chanced to turn the collet of the ring inside his hand, when instantly he became invisible to the rest of the company and they began to speak of him as if he were no longer present.

그는 우연히 반지의 보석 부분을 손 안쪽으로 돌렸고, 그러자 순식간에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되어 사람들은 그가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 반지를 낀 기게스는 궁전으로 가서 왕비를 유혹하고 왕을 해치고 왕국을 차지합니다. 글라우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정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에게 똑같은 반지를 준다면 두 사람의 행동은 달라질까? 아무도 보지 않아서 벌을 받지 않는다면 정의를 지킬 이유가 있을까? 글라우콘은 사람들이 정의를 지키는 이유가 처벌이나 평판에 대한 두려움일 뿐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자주 쓰입니다.

7. 나라는 필요에서 생겨난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한 사람의 영혼에서 바로 찾기는 어려우니 먼저 큰 규모인 나라에서 찾아보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나라가 어떻게 생기는지부터 설명합니다.

A State, I said, arises, as I conceive, out of the needs of mankind; no one is self-sufficing, but all of us have many wants.

나는 말했다. 나라는 내 생각에 인간의 필요에서 생겨난다. 누구도 혼자서 자족하지 못하고, 우리 모두에게는 많은 필요가 있다.

사람은 혼자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어서, 서로 돕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살게 되고 그것이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출발점에서 소크라테스는 말로 하나의 도시를 세워 가며, 그 도시에 정의가 어떻게 자리 잡는지를 추적합니다. 나라가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는 협력에서 시작한다는 이 생각은 거창한 이념보다 일상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누구의 어떤 필요를 채우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8. 소박한 도시와 사치스러운 도시

소크라테스가 필요에서 출발한 소박한 도시를 그려 보이자 글라우콘이 끼어듭니다. 그 도시는 돼지들의 도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the question which you would have me consider is, not only how a State, but how a luxurious State is created; and possibly there is no harm in this, for in such a State we shall be more likely to see how justice and injustice originate.

당신이 내게 고려하라는 문제는 국가가 어떻게 생기는가만이 아니라 사치스러운 국가가 어떻게 생기는가로군요. 그렇게 해도 해로울 것은 없습니다. 그런 국가에서라면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더 잘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그린 건강한 도시가 참된 체제라고 믿지만, 사치스러운 도시, 곧 열병을 앓는 도시를 함께 살펴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이 소파와 식탁, 양념과 과자를 원하기 시작하면 필요 이상의 욕구가 생기고, 땅과 재화를 더 얻기 위해 이웃과 다투게 되어 전쟁과 군대가 필요해진다는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도시를 지키는 수호자 계급이 생기고, 그들의 교육이 책의 큰 주제가 됩니다. 욕망이 커지면 정치가 필요해지고 정의와 불의가 두드러진다는 이 구도는, 사회가 복잡해지는 과정이 곧 도덕 문제를 키우는 과정이라는 통찰로 읽을 수 있습니다.

9. 신은 악의 원인이 아니라는 원칙과 검열의 위험

수호자를 교육하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요? 소크라테스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신화 가운데 신을 나쁜 존재로 그리거나 신들의 다툼과 악행을 전하는 이야기는 젊은이에게 들려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that God being good is the author of evil to any one is to be strenuously denied, and not to be said or sung or heard in verse or prose by any one whether old or young in any well-ordered commonwealth.

선한 신이 누구에게든 악의 원인이라는 것은 강력히 부정되어야 하며, 잘 짜인 공동체에서는 늙은이든 젊은이든 그 누구도 시로든 산문으로든 그렇게 말하거나 노래하거나 들어서는 안 된다.

그의 논리는 신은 선하고 선한 것은 해를 끼치지 않으므로 악의 원인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용기와 절제를 해치는 이야기, 죽음을 두려워하게 하는 이야기, 웃음이나 모방으로 마음을 흩트리는 이야기를 줄이거나 고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입니다. 예술과 표현을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히기 때문에 이후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한편 이야기가 사람의 성격을 형성한다는 통찰, 곧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자라는지가 중요하다는 점은 지금도 교육에서 쓸 만한 관찰입니다. 두 측면을 나눠서 읽어야 합니다.

10. "고귀한 거짓말"과 정의로운 나라의 불편한 그림자

소크라테스는 나라를 하나로 묶기 위한 이야기를 하나 내놓습니다. 그는 이것이 거짓말이며 자신도 이것을 말하기 부끄럽다고 먼저 고백합니다.

just one royal lie which may deceive the rulers, if that be possible, and at any rate the rest of the city

통치자들을, 가능하다면 그들까지도, 그리고 어쨌든 나머지 도시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단 하나의 고귀한 거짓말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시민들은 모두 땅에서 태어난 형제이지만 신은 사람마다 다른 금속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통치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금을, 보조하는 사람에게는 은을, 농부와 장인에게는 청동과 쇠를 섞었다는 것입니다. 금의 부모에게서 은의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어서, 아이의 자질에 따라 계급이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계급 이동의 가능성을 열어 두지만, 동시에 계급 구분을 신화로 정당화하고 사람을 금속으로 나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왔습니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가 이 대목에서 가장 불편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어떤 공동체가 구성원을 하나로 묶으려고 만든 이야기를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를 묻게 하는 대목입니다.

11. 각자 자기에게 맞는 한 가지 일을 한다

이상 국가의 설계 원리는 분업입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향이 다르니 각자 가장 잘 맞는 한 가지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나중에 이 원리가 곧 정의라고 밝힙니다.

one man should practise one thing only, the thing to which his nature was best adapted

한 사람은 한 가지 일만 해야 하며, 그것은 그의 본성에 가장 잘 맞는 일이어야 한다.

이어서 그는 정의가 곧 "자기 일을 하고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리합니다. 이 구상에서는 각자가 자기 본성에 맞는 역할을 맡아 잘 해낼 때 나라 전체가 하나로 조화를 이룹니다. 이 주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을 몇 가지로 나누어 계급에 고정하는 일은 오늘날의 평등 감각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능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개인에게도 나라에도 해가 된다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12. 용기는 두려워할 것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지키는 일이다

나라가 세워지면 소크라테스는 그 안에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는 네 가지 덕을 차례로 찾아냅니다. 수호자의 용기는 단순히 싸움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I mean that courage is a kind of salvation.

내가 말하는 것은 용기가 일종의 보존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보존하는가 하면, 무엇이 두려워할 만한 것이고 그것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에 대해 법이 교육을 통해 심어 준 믿음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 믿음을 쾌락 속에서도 고통 속에서도, 욕망이나 두려움에 휘둘릴 때도 잃지 않는 것이 용기라고 설명합니다. 염색공이 흰 천을 먼저 정성스럽게 준비해야 보랏빛이 제대로 물드는 것처럼, 교육이 바탕을 잘 마련해야 믿음이 색이 바래지 않는다는 비유도 곁들입니다. 용기를 격한 감정이 아니라 오래 간직한 올바른 판단을 지키는 힘으로 보는 이 정의는 오늘날에도 곱씹을 만합니다. 이어서 절제는 명령에 대한 복종과 쾌락에 대한 자제로, 정의는 이 모든 덕이 각자의 자리에 있게 하는 원리로 설명됩니다.

13. 정의로운 사람은 자기 안의 질서를 세운다

나라에서 정의의 모습을 확인한 소크라테스는 이제 그것을 한 사람의 영혼으로 가져옵니다. 영혼에도 이성과 기개, 욕망이라는 세 부분이 있고, 정의는 이 세 부분이 각자 자기 일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he sets in order his own inner life, and is his own master and his own law, and at peace with himself

그는 자기 내면의 삶에 질서를 세우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며 스스로의 법이 되어 자기 자신과 평화를 이룬다.

그는 정의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속의 일이라고 강조합니다. 정의로운 사람은 여러 요소가 서로 간섭하지 못하게 하며, 높은 음과 낮은 음과 중간 음을 엮어 하나의 화음을 만들듯이 자신을 하나로 조율합니다. 욕망이 이성을 끌고 다니거나 분노가 판단을 앞지르지 않고, 각자가 제자리에 있는 상태입니다. 이 설명은 "나는 나를 다스리고 있는가"라는 오늘날의 질문과 닿아 있습니다. 정의를 법이나 제도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마음의 상태로도 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14. 같은 본성이라면 같은 교육과 같은 일을 맡아야 한다

제5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당대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제안을 합니다. 수호자 계급에서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을 미리 내놓습니다. 남녀의 본성이 다르다면 하는 일도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답은 본성의 차이를 구분하자는 것입니다.

ought not the same natures to have the same pursuits?

같은 본성은 같은 일을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대머리 남자와 머리카락이 있는 남자는 본성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듯이, 일에 관련된 자질이 같다면 성별이 달라도 같은 일을 맡아야 한다고 논증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훌륭한 수호자로 만드는 교육은 여성도 훌륭한 수호자로 만들 것이라고 결론짓습니다.

You will admit that the same education which makes a man a good guardian will make a woman a good guardian

한 남자를 훌륭한 수호자로 만드는 같은 교육이 한 여자도 훌륭한 수호자로 만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이 대목은 플라톤이 여성 평등을 주장했다고 단순하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 구상은 수호자 계급 안에 한정되며 가족과 육아를 공동으로 하자는 급진적 제안과 함께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일을 맡기는 기준을 성별이 아니라 자질에 두자는 원칙은 고대 문헌으로서 주목할 만한 주장입니다.

15. 철학자가 다스리거나 통치자가 철학을 해야 한다

제5권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장 터무니없게 들릴 주장을 꺼냅니다. 이 주장이 파도처럼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을 것이라고 스스로 예상하면서도 말합니다.

Until philosophers are kings, or the kings and princes of this world have the spirit and power of philosophy, and political greatness and wisdom meet in one

철학자들이 왕이 되거나, 이 세상의 왕과 군주들이 철학의 정신과 힘을 갖게 되어 정치적 위대함과 지혜가 하나로 만나기 전에는

그가 내놓는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나라들이 악에서 벗어나 쉬지 못하고, 인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cities will never have rest from their evils

도시들은 결코 그 악에서 벗어나 쉴 수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권력과 지혜가 따로 노는 한 나라는 안정을 찾을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주장은 이후 두 가지 방향으로 읽혀 왔습니다. 하나는 통치자가 지식과 덕을 갖추어야 한다는 요구로서의 가치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수의 현명한 자에게 권력을 맡기자는 구상이 위험하다는 비판입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관점에서는 후자의 우려가 큽니다. 그럼에도 권력을 잡는 사람에게 어떤 능력과 품성이 필요한가를 묻는 질문은 남습니다.

16. 철학자는 진리의 광경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철학자가 통치해야 한다고 말한 소크라테스에게 글라우콘이 묻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자란 누구인가?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철학자인가? 구경거리와 연극과 음악회를 쫓아다니는 사람들도 철학자인가?

Those, I said, who are lovers of the vision of truth.

내가 말했다. 진리의 광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구경꾼들이 철학자의 흉내일 뿐이라고 답합니다. 소리와 빛깔과 모양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지만 아름다움 자체를 보지는 못합니다. 참된 철학자는 개별적인 아름다운 것들 너머에 있는 아름다움 자체, 곧 변하지 않는 본질을 보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논증에서 그는 아름다운 것들만 알고 아름다움 자체를 모르는 사람의 상태는 꿈꾸는 상태와 같고, 본질을 아는 사람의 상태가 깨어 있는 상태라고 비유합니다. 이 구분은 이후 의견과 지식의 구분으로 이어지고,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뒷받침하는 논거가 됩니다.

17. 의견은 지식의 모사일 뿐이다

제6권에서 소크라테스는 선분의 비유로 앎의 단계를 설명합니다. 선을 둘로 나누고 각각을 다시 같은 비율로 나누어 눈에 보이는 세계와 지성으로 알 수 있는 세계를 구분합니다.

the copy is to the original as the sphere of opinion is to the sphere of knowledge

모사가 원본에 대해 갖는 관계는 의견의 영역이 지식의 영역에 대해 갖는 관계와 같다.

눈에 보이는 세계의 가장 낮은 단계에는 그림자와 물에 비친 모습 같은 상이 있고, 그 위에는 우리가 보는 동물과 식물과 만들어진 사물이 있습니다. 이 두 단계를 합친 영역이 의견의 영역입니다. 그 위로 지성의 영역이 이어지고, 맨 위에는 선의 이데아에 이르는 앎이 있습니다. 앎이 클수록 더 참되고 분명하며, 원본과 모사의 관계는 의견과 지식의 관계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것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단계를 나누어 생각해 보게 합니다. 보고 들은 것에서 출발해 그 바탕에 있는 원리를 묻는 방향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는 학습의 지도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18. 선은 존재를 넘어선다

동굴의 비유는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와 함께 선의 이데아를 설명하는 장치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태양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의 빛이듯, 선이 앎의 대상 모두의 근거라고 말합니다.

the good is not essence, but far exceeds essence in dignity and power.

선은 본질 그 자체가 아니며, 위엄과 힘에서 본질을 훨씬 뛰어넘는다.

글라우콘은 이 말에 하늘의 빛에 걸고 놀랍다고 감탄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어서 선이 앎의 세계에서 가장 마지막에, 오직 노력을 기울여야 보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본 사람이 공적이든 사적이든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면 눈을 반드시 여기에 두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선이 무엇인지는 끝내 분명히 정의되지 않지만, 우리의 모든 앎과 행동이 향해야 할 방향이 있다는 확신이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묻는 기준점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19. 동굴 속 사람들은 그림자를 현실로 안다

제7권의 동굴의 비유는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목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교육을 받은 상태와 받지 못한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를 그림으로 보여 줍니다.

Behold! human beings living in a underground den, which has a mouth open towards the light

보라! 빛을 향해 입구가 열려 있는 지하 동굴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다리와 목이 묶여 있어서 고개를 돌릴 수 없고, 앞쪽 벽만 바라봅니다. 뒤에서는 불이 타오르고, 불과 죄수들 사이로 사람들이 갖가지 물건을 들고 지나갑니다. 죄수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며 그것이 세계의 전부라고 믿습니다. 글라우콘이 이상한 죄수들이라고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들이 우리와 같다고 답합니다. 우리가 믿는 현실이 사실은 그림자일 수 있다는 이 비유는 습관과 관습, 남들의 말에 갇힌 인식을 돌아보게 합니다.

20. 빛을 본 사람이 돌아오면 웃음거리가 된다

비유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풀려나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본 사람이 다시 동굴로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눈이 어둠에 적응하지 못해 그림자를 맞히는 시합에서 형편없이 질 것입니다.

Men would say of him that up he went and down he came without his eyes

사람들은 그에 대해, 올라갔다가 눈을 잃고 내려왔다고 말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어서 누군가가 죄수를 풀어 위로 이끌려 하면 붙잡아 죽이려 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소크라테스 자신의 운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이 익숙한 믿음에 갇힌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일은 지금도 흔합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배움을 얻은 사람이 그 배움을 동굴 안 사람들과 나누려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것을 본 뒤에 같은 자리로 돌아와 이해받기까지가 배움의 진짜 어려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21. 교육은 눈먼 눈에 시력을 넣는 일이 아니다

이상 국가에서 교육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교육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대비해서 설명합니다.

certain professors of education must be wrong when they say that they can put a knowledge into the soul which was not there before, like sight into blind eyes.

교육을 하는 어떤 교수들은, 영혼에 전에 없던 지식을 넣어 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틀렸음이 틀림없다. 마치 눈먼 눈에 시력을 넣어 주듯이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배우는 능력이 이미 영혼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눈이 몸 전체가 돌아서야 어둠에서 빛으로 향할 수 있듯이, 앎의 능력도 영혼 전체가 방향을 바꿔야 비로소 변화하는 세계에서 참된 존재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은 시력을 새로 심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지만 엉뚱한 곳을 보고 있는 눈의 방향을 돌리는 일이라는 설명입니다. 가르치는 일의 핵심이 정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향을 바꾸도록 돕는 것이라는 이 관점은, 오늘날 학습과 코칭에서도 자주 인용됩니다.

22. 지나친 자유는 지나친 예속으로 넘어간다

제8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나라의 체제가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추적합니다. 명예를 중시하는 체제에서 부를 중시하는 체제로, 다시 민주정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주정으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The excess of liberty, whether in States or individuals, seems only to pass into excess of slavery.

국가에서든 개인에게서든 지나친 자유는 결국 지나친 예속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

그는 어떤 것이든 지나치게 늘어나면 반대 방향으로 반작용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계절과 동식물에서 그렇듯이 정치 체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자유가 극단에 이르면 질서가 무너지고, 그 혼란 속에서 질서를 약속하는 한 사람이 참주가 되어 모두를 예속시킨다는 설명입니다. 이 진단이 민주주의에 대한 정당한 비판인지는 논쟁이 되지만, 자유와 질서의 균형이 무너질 때 위험이 찾아온다는 경고는 지금도 곱씹을 만합니다.

23. 참주는 가장 자유로워 보이지만 가장 불행한 노예다

제9권에서 소크라테스는 마침내 처음의 질문, 곧 정의로운 삶이 불의한 삶보다 행복한가에 답합니다. 그는 가장 불의한 사람, 곧 참주를 살펴봅니다. 참주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가장 행복해 보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He who is the real tyrant, whatever men may think, is the real slave

진짜 참주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진짜 노예이다.

그의 논증은 영혼의 구조에 있습니다. 참주는 이성이 아니라 가장 난폭한 욕망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을 채우려고 평생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삽니다. 가장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가장 가난하며, 아첨과 비굴을 감수하며 가장 비열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질수록 질투심이 많고 신의가 없고 불의하고 친구가 없어지며 더 나빠지고, 결국 스스로도 가장 비참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만큼 비참하게 만든다고 소크라테스는 결론짓습니다. 이것이 정의로운 삶이 더 행복하다는 책의 핵심 논증입니다. 이 논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겨지지만, 힘과 자유와 행복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지적은 곱씹을 만합니다.

24. 삶의 책임은 선택하는 사람에게 있다

에르의 신화에서 영혼들은 다음 삶을 선택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때 운명의 여신 라케시스의 말을 전하는 해설자가 영혼들 앞에서 하는 말이 이 신화의 핵심입니다.

Virtue is free, and as a man honours or dishonours her he will have more or less of her; the responsibility is with the chooser—God is justified.

덕은 자유로우며, 사람이 덕을 존중하느냐 경시하느냐에 따라 덕을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갖게 된다. 책임은 선택하는 자에게 있고, 신에게는 잘못이 없다.

영혼들은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하고, 앞에 놓인 여러 삶의 견본 가운데 자신의 다음 삶을 고릅니다. 사자나 독수리의 삶도 있고, 참주의 삶도, 가난과 추방으로 끝나는 삶도 있습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앞선 삶에서 덕을 습관으로만 따랐던 사람은 지혜롭게 고르지 못하고 참주의 삶 같은 화려해 보이는 삶을 덥석 고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가 운명이 되고, 그 책임은 신이 아니라 선택한 사람에게 있다는 이 선언은 『국가』 전체의 윤리적 결론과도 이어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는 어떤 삶을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가에 달려 있고, 그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교육과 철학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25. 정의를 따르면 이 삶에서도, 그 너머에서도 잘 지낸다

책의 마지막은 에르의 신화입니다. 전투에서 죽었다가 열이틀 만에 화장터 위에서 깨어난 에르가 저세상에서 본 것을 전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이야기가 우리를 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야기의 교훈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And it shall be well with us both in this life and in the pilgrimage of a thousand years which we have been describing.

그러면 우리는 이 삶에서도, 우리가 이야기해 온 천 년의 순례에서도 잘 지낼 것이다.

이야기에서 영혼들은 살면서 저지른 잘못마다 열 배의 대가를 치르고, 다음 삶을 스스로 고르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권고는 하늘로 가는 길을 늘 붙들고, 영혼이 불멸임을 생각하며 언제나 정의와 덕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서로에게도 신들에게도 사랑받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정의가 보상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것임을 밝히는 데서 출발한 책이, 마지막에는 정의에 따르는 보상 이야기로 끝난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그만큼 플라톤에게 정의로운 삶과 행복한 삶은 따로 놀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길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기보다 핵심 대목을 골라 읽기를 권합니다. 가장 먼저 읽을 곳은 제1권의 처음, 케팔로스와의 대화와 트라시마코스의 등장입니다. 다음으로 제2권의 글라우콘의 도전과 기게스의 반지를 읽으면 책 전체의 질문이 잡힙니다. 그다음에는 제4권의 영혼에 대한 부분, 제6권과 제7권의 선과 동굴의 비유를 읽어 보세요. 이 세 군데만 읽어도 『국가』의 중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이상 국가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시와 예술을 통제하자는 주장, 계급을 나누고 지배층의 가족과 재산을 공유하게 하자는 주장, 선한 목적을 위한 거짓말을 인정하는 대목은 오늘의 관점에서 비판받아 왔고, 나라의 하나됨을 지나치게 밀어붙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플라톤이 실제로 이런 나라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인지, 아니면 영혼의 정의를 설명하기 위해 나라를 크게 그려 본 것인지를 따져 가며 읽어 보세요. 정답을 찾기보다 소크라테스처럼 되묻는 것, 곧 "이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를 계속 묻는 일이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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