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4th century BC
The Nicomachean Ethics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384–322 BC)
As it is not one swallow or one fine day that makes a spring, so it is not one day or a short time that makes a man blessed and happy.
제비 한 마리나 맑은 하루가 봄을 만들지 못하듯, 하루나 짧은 시간이 사람을 복되고 행복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By doing just actions we come to be just; by doing the actions of self-mastery we come to be perfected in self-mastery; and by doing brave actions brave.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워지고, 자제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제력이 완성되며, 용감한 행동을 함으로써 용감해진다.
한눈에 보기
행복은 한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좋은 습관이 쌓여 만든 삶의 모양이다. 덕은 반복해서 행한 것이 몸에 밴 결과다.
비슷한 책
- 벤저민 프랭클린 The Autobiography of Benjamin Franklin (프랭클린 자서전)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editations (명상록)
- 세네카 Seneca's Morals of a Happy Life (세네카의 행복론)
한 권 요점
Aristotle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그리스 북부의 작은 도시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실의 의사였고, 어릴 때 부모를 여읜 그는 열일곱 살 무렵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학교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약 20년을 공부하며 스승의 가장 뛰어난 제자로 이름을 알렸지만, 스승의 생각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를 말할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눈앞의 세계를 관찰하는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기원전 347년 플라톤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테네를 떠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연구를 이어 갔습니다. 몇 해 뒤에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의 부름을 받아 어린 왕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훗날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된 소년이 그의 제자였던 셈입니다. 기원전 335년 아테네로 돌아와 자신의 학교 리케이온을 세웠고, 산책로를 거닐며 토론했다고 해서 이 학파는 "소요학파"라고 불립니다. 그는 윤리학과 정치학, 논리학, 자연학, 형이상학, 시학, 수사학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글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기원전 323년 갑작스럽게 죽자 아테네에서 마케도니아에 대한 반감이 거세졌고, 마케도니아와 가까웠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를 떠나 칼키스로 피했습니다. 그는 이듬해인 기원전 322년 예순 살을 조금 넘긴 나이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그는 아테네 사람들이 철학에 두 번 죄를 짓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고 전해지는데,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 책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그가 출간을 위해 쓴 책이 아니라 강의 원고가 열 권으로 엮인 것으로 보입니다. 쓰인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후기 아테네 시절로 봅니다. 책 이름의 니코마코스는 그의 아들이나 아버지 이름에서 왔다고 하며, 정확한 유래도 학자들 사이에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라는 가장 오래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이론 몇 줄로 답하는 대신,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습관을 길러야 행복에 이르는지를 차근차근 따져 갑니다. 이 글에서는 책의 윤곽을 보고,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남긴 삶의 지혜를 스물일곱 가지로 정리합니다.
줄거리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열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1권은 모든 행동이 향하는 최고의 좋음, 곧 행복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제2권과 제3권은 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용기와 같은 구체적인 덕을 다룹니다. 제4권은 너그러움, 큰 도량, 온화함 같은 사회적 덕을, 제5권은 정의를 다룹니다. 제6권은 판단하는 지혜인 실천적 지혜를, 제7권은 자제력의 부족과 쾌락을 이야기합니다.
이어서 제8권과 제9권은 우정만을 두 권에 걸쳐 다루는데, 그만큼 우정을 행복의 핵심으로 보았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제10권은 쾌락을 다시 논의하고, 가장 높은 행복이 이성을 사용하는 관조의 삶에 있다는 결론으로 나아갑니다. 윤리학은 그가 정치학으로 이어 가려 했던 큰 기획의 앞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일과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은 이어져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모든 행동은 어떤 좋음을 향한다
책은 첫 문장부터 모든 인간 활동에 공통된 방향을 지적합니다. 기술도, 학문도, 행동도, 선택도 어떤 좋음을 목표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A common and by no means a bad description of the Chief Good is, that which all things aim at.
최고의 좋음에 대한 흔하면서도 결코 나쁘지 않은 설명은 이것이다. 모든 것이 겨냥하는 것.
의술의 목적은 건강이고, 조선술의 목적은 배이며, 군사술의 목적은 승리이고, 가정 관리의 목적은 재산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들은 다시 더 큰 목적을 위해 추구됩니다. 그렇다면 다른 모든 것을 위해 원하면서 그 자신은 그 자체로 원하는 단 하나의 목적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최고의 좋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책 전체를 이끕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물음입니다.
2. 행복은 오래 걸려 쌓인 삶의 모양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은 기분이 아니라 삶 전체에 걸친 상태입니다. 그는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들지 못한다는 속담으로 이 점을 설명합니다.
As it is not one swallow or one fine day that makes a spring, so it is not one day or a short time that makes a man blessed and happy.
제비 한 마리나 맑은 하루가 봄을 만들지 못하듯, 하루나 짧은 시간이 사람을 복되고 행복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하루가 좋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하루가 나빴다고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그는 행복을 덕에 따라 사는 활동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한참의 세월에 걸쳐 그런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부담스러운 말이기도 하지만 위로가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의 실패가 곧 삶의 실패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3. 좋은 인간의 일은 이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다
제1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위해 "기능"이라는 개념을 꺼냅니다. 피리 부는 사람이나 조각가에게는 저마다 하는 일이 있고, 좋음은 그 일을 잘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 자체에게도 고유한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the work of a harp-player is to play the harp, and of a good harp-player to play it well
하프 연주자의 일은 하프를 연주하는 것이고, 훌륭한 하프 연주자의 일은 그것을 잘 연주하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일을 이성에 따르거나 적어도 이성과 무관하지 않은 영혼의 활동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면 훌륭한 사람의 일은 그 활동을 훌륭하게 해내는 것이 되고, 인간의 좋음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the Good of Man comes to be “a working of the Soul in the way of Excellence,”
인간의 좋음은 "탁월성에 따른 영혼의 활동"이 된다.
이 정의에서 중요한 단어는 "활동"입니다. 행복은 가지고 있는 어떤 상태나 느낌이 아니라 이성을 잘 쓰며 사는 일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해 나가는 것이 되고, 이어지는 덕의 논의가 곧 행복의 논의가 됩니다. 이 정의는 행복을 기분이나 결과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보게 하며, 오늘날에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따질 때 쓰입니다.
4.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에도 도구가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철학자들과 구분됩니다. 그는 행복한 삶이 현실에서 가능하려면 외적인 조건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it is quite plain that it does require the addition of external goods, as we have said: because without appliances it is impossible, or at all events not easy, to do noble actions
행복에는 외적인 좋음이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도구 없이는 고귀한 행동을 하기가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와 돈, 정치적 영향력이 많은 일을 이루는 도구와 같다고 말합니다. 좋은 가문이나 좋은 자녀, 아름다운 외모가 없을 때 행복이 훼손되는 면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혼자이고 자식이 없는 사람, 나쁜 자식이나 친구를 둔 사람은 행복하기 어렵다고까지 말합니다. 이 말은 도덕적 노력만 강조하는 입장에 대한 현실적인 균형입니다. 마음가짐이 전부는 아니며, 좋은 삶에는 어느 정도의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개인이 감당할 몫과 사회가 해야 할 몫을 더 정직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5. 덕은 행함으로 길러진다
이 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생각은 덕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습관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건축가가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가 되고, 하프 연주자가 하프를 타면서 연주자가 되는 것에 비유합니다.
By doing just actions we come to be just; by doing the actions of self-mastery we come to be perfected in self-mastery; and by doing brave actions brave.
정의로운 행동을 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로워지고, 자제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제력이 완성되며, 용감한 행동을 함으로써 용감해진다.
그래서 생각이 먼저 바뀌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먼저 행동하고, 그 행동이 반복되면 성품이 됩니다. 프랭클린이 13가지 덕목을 한 주씩 실천하며 습관으로 만들려 한 방식이 바로 이 생각의 실천이었습니다. 2,000년 전의 철학이 18세기 인쇄업자의 수첩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6. 좋은 습관은 제도가 만든다
그는 덕이 개인의 노력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설계에서도 나온다고 말합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시민을 습관으로 선하게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고, 그 일을 잘하느냐에 따라 좋은 체제와 나쁜 체제가 갈린다는 것입니다.
The law-givers make the individual members good men by habituation.
입법자들은 개인들을 습관을 들임으로써 선한 사람으로 만든다.
이 대목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인식을 보여 줍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지가 성품을 정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의지를 다지기 전에 습관이 자연스럽게 반복될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7. 말로는 모든 사람을 선하게 만들 수 없다
제10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 이론이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을 인정합니다. 논변은 마음이 열린 젊은이를 움직일 수는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을 선하게 이끌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it is not their nature to be amenable to a sense of shame but only to fear
그들의 본성은 수치심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두려움에 따르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비열한 일을 수치스러워서가 아니라 처벌이 두려워서 삼갑니다. 그들은 정념이 이끄는 대로 쾌락을 쫓고 고통을 피하며, 고귀하고 진정으로 즐거운 것을 맛본 적이 없어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의 오래 굳은 성향을 말로 바꾸기는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래서 좋은 습관을 길러 주는 교육과 법률이 필요해지고, 이것이 윤리학이 정치학으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설득만으로 사람이 달라진다고 믿지 말고 환경과 제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통찰입니다.
8. 악덕도 덕도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제3권은 칭찬과 비난이 어떤 행동에 주어지는가를 따지며 시작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발적인 행동과 비자발적인 행동을 구분하고, 강제로 한 일과 모르고 한 일은 비자발적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풍랑에서 배를 구하려고 짐을 바다에 던지는 것처럼 두려움 속에서 선택한 행동은 어떨까요?
such actions are of a mixed kind, but are most like voluntary actions
그런 행동은 혼합된 종류이지만 자발적인 행동과 가장 닮았다.
그는 짐을 던지는 일을 기꺼이 하는 사람은 없지만, 자신과 동료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분별 있는 사람이 누구나 하리라고 봅니다. 행동할 때에는 선택할 만한 일이었으므로 자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그는 덕과 악덕이 모두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면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no man is happy against his will, of course, but wickedness is voluntary
물론 누구도 자기 뜻에 반해서 행복하지는 않지만, 악덕은 자발적인 것이다.
"누구도 자발적으로 악하지 않다"는 널리 알려진 말을 그는 부분적으로만 맞다고 평가합니다. 책임은 환경 탓으로 돌릴 수 없으며, 사람은 자기 성격을 만들어 온 반복된 행동에 책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구분은 오늘날에도 법과 도덕에서 책임을 따지는 기본 틀입니다.
9. 우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을 숙고한다
선택과 숙고에 관한 대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무엇에 대해 숙고하는가를 정리합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목적을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이르는 수단을 숙고한다는 것입니다.
No physician, for instance, deliberates whether he will cure, nor orator whether he will persuade, nor statesman whether he will produce a good constitution
예를 들어 의사는 치료할 것인지 숙고하지 않고, 연설가는 설득할 것인지 숙고하지 않으며, 정치가는 좋은 체제를 만들 것인지 숙고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목적을 정해 두고, 어떻게 어떤 수단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는지를 찾습니다. 수단이 여러 가지면 가장 쉽고 훌륭한 것을 고르고, 하나뿐이면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거슬러 올라가 첫 원인을 찾을 때까지 분석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만나면 포기합니다. 숙고는 모든 탐구와 같지 않다고 그는 구분합니다. 수학의 탐구는 숙고가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한정된 탐구만 숙고라는 것입니다. 목표가 흐릿한 상태에서 수단만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목표는 분명한데 수단을 찾는 데 게으르지는 않은지를 가려 보게 합니다.
10. 덕은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의 중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유명한 개념이 중용입니다. 모든 덕은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에 있다는 것입니다. 용기는 겁쟁이와 무모함 사이에, 자제는 방종과 무감각 사이에 있습니다.
The man who flies from and fears all things, and never stands up against anything, comes to be a coward; and he who fears nothing, but goes at everything, comes to be rash.
모든 것을 피하고 두려워하며 어떤 것에도 맞서지 않는 사람은 겁쟁이가 되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에 덤벼드는 사람은 무모해진다.
그는 이 중간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산술적인 중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열이 너무 많고 둘이 너무 적으면 누구에게나 여섯이 중간이지만, 덕에서의 중간은 "우리에게 맞는" 중간, 곧 개인에게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와 초보자에게 맞는 음식 양이 다르듯, 같은 상황에서 필요한 용기의 양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11.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용기다
용기는 두려움과 대담함에 관한 중용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용감한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은 정반대입니다.
there are things which to fear is right and noble, and not to fear is base
두려워하는 것이 옳고 고귀한 일이 있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비열한 일이 있다.
그는 치욕을 예로 듭니다. 치욕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명예를 아는 좋은 사람이고,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가난이나 질병처럼 악덕에서 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는지 여부가 용기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리고 용감한 사람이라도 두려워할 만한 일은 두려워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fear such things indeed he will, but he will stand up against them as he ought and as right reason may direct, with a view to what is honourable
그는 그런 것을 두려워하기는 하겠지만, 마땅히 그래야 하는 대로, 옳은 이성이 지시하는 대로, 고귀한 것을 바라며 맞설 것이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올바른 이유로 올바른 방식으로 맞서는 일입니다. 두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은 무모하고,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은 비겁하다는 것이 중용의 구도입니다.
12. 있는 그대로 말하는 정직함도 하나의 덕이다
제4권에는 사회적 덕이 여럿 나오는데, 그중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할 때의 정직함이 있습니다. 자기 장점을 부풀리는 사람, 줄이는 사람, 그리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중용의 구도를 이룹니다.
Now since falsehood is in itself low and blameable, while truth is noble and praiseworthy
거짓은 그 자체로 저열하고 비난받을 만하며, 진실은 고귀하고 칭찬받을 만하다.
그는 사실대로 말하는 사람이 칭찬받을 만하고, 진실에서 벗어나는 두 가지 유형은 모두 비난받을 만하며, 특히 과장하는 사람이 그렇다고 평가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더 크게도 작게도 말하지 않는 평범한 사실 중심의 사람이 중용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준은 소셜 미디어 시대의 자기 포장을 돌아보게 합니다. 지나친 자랑도 지나친 겸손도 결국 진실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점에서 둘 다 점검할 대상입니다.
13.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중간을 찾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는 원의 중심을 찾는 일에 빗대어 이렇게 말합니다. 화를 내거나 돈을 쓰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알맞은 때와 방식으로 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To be angry, to give money, and be expensive, is what any man can do, and easy: but to do these to the right person, in due proportion, at the right time, with a right object, and in the right manner, this is not as before what any man can do, nor is it easy.
화를 내고, 돈을 주고, 돈을 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쉽다. 그러나 알맞은 사람에게, 알맞은 정도로, 알맞은 때에, 알맞은 목적으로, 알맞은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앞서와 달리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그는 선함이 드물고 칭찬받을 만하며 고귀하다고 말합니다. 같은 행동도 상대와 때와 정도를 잘못 맞추면 덕이 아니라 악덕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분노를 억누르라는 말이 아니라 분노를 제대로 쓰라는 말로 읽을 때 가장 실용적입니다. 세네카가 분노를 "짧은 광기"라고 부른 것과는 결이 다르지만, 둘 다 감정을 다루는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14. 정의로움을 즐길 때 덕이 완성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 있는 행동이 괴로운 의무가 아니라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의로운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직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너그러운 행동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덕에 맞는 행동은 그 자체로 즐겁고, 고귀하며, 좋다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선행과 즐거워서 하는 선행은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성품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시작하더라도, 반복해서 기쁨이 따라오는 지점까지 가는 것이 덕이 완성되는 순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5. 공정한 교환이 공동체를 묶는다
제5권은 정의를 다룹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분배적 정의와 교정적 정의로 나누고, 단순한 "당한 만큼 되갚기"는 어느 쪽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높은 사람을 때린 사람은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처벌도 받아야 하고, 반대로 높은 사람이 사람을 때렸다고 그가 똑같이 맞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동이 자발적이었는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큽니다. 그러나 교환에서는 호혜성이 공동체를 묶는 끈이라고 말합니다.
by proportionate reciprocity of action the social community is held together
비례에 따른 행위의 호혜성에 의해 사회적 공동체가 하나로 묶인다.
그는 이 호혜성이 정확한 평등이 아니라 비례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의사와 농부의 일, 집을 짓는 사람과 구두를 만드는 사람의 일이 서로 교환될 수 있으려면 각자의 기여를 비교 가능한 수준에서 맞춰 주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 장치가 화폐입니다. 교환이 공정해야 공동체가 유지된다는 이 통찰은, 사회가 서로의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고 보상하는지가 정의의 기초라는 점을 알려 줍니다.
16. 법이 놓친 곳을 메우는 형평
정의 다음에 아리스토텔레스는 형평(공평함)을 따로 다룹니다. 형평은 정의와 같지도 않고 정의와 다른 종류도 아닙니다.
the Equitable though distinct from the Just is yet praiseworthy
형평은 정의와 구별되지만 그래도 칭찬받을 만하다.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칭찬하며 "좋다"는 말 대신 "형평에 맞다"고 쓰기도 하고, 더 형평에 맞을수록 더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것을 따져 보면 어려움이 생깁니다. 형평이 정의와 다르면서 칭찬받을 만하다면 정의가 좋지 않은 것이거나 형평이 정의롭지 않은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어려움을 풀어, 형평이 법의 한계를 바로잡는 정의의 한 형태라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법은 일반적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모든 개별 사례를 정확히 담지 못합니다.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부당한 결과가 나올 때, 규칙의 취지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형평입니다. 법조문대로가 아니라 법의 취지대로 판단하는 사려 깊음을 가리킵니다.
17. 판단은 실천적 지혜가 한다
어떻게 중간을 찾을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일을 하는 능력을 "실천적 지혜"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이론적인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일에 관해 잘 숙고하는 능력입니다.
Practical Wisdom is employed upon human matters, and such as are objects of deliberation.
실천적 지혜는 인간의 일, 곧 숙고의 대상이 되는 일에 쓰인다.
그는 달리될 수 없는 일, 곧 정해진 필연에 관해서는 아무도 숙고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숙고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 선한 결과를 목표로 하는 도덕적 행동에 관한 것입니다. 잘 숙고하는 것이 이 지혜의 핵심이라는 말은, 지혜가 정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판단을 내리는 기술임을 알려 줍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이 능력이 자란다는 점도 덧붙입니다.
18. 진리에 이르는 다섯 가지 능력
제6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적인 덕을 다룹니다. 영혼이 긍정하거나 부정하면서 진리에 이르게 하는 상태가 다섯이라고 정리합니다.
Art, Knowledge, Practical Wisdom, Science, Intuition
기술, 지식, 실천적 지혜, 학문적 지혜, 직관
그는 억측이나 의견은 틀릴 수 있어서 이 목록에서 뺍니다. 지식은 달리 있을 수 없는 필연적이고 영원한 것을 다루며 가르치고 배울 수 있습니다. 기술은 만드는 일, 실천적 지혜는 행동하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직관은 증명의 출발점이 되는 첫 원리를 파악하는 능력이고, 학문적 지혜는 직관과 지식을 합친 가장 정확한 앎입니다. 이 구분은 "아는 것"에도 종류가 있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수학을 아는 것, 집을 짓는 법을 아는 것,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은 서로 다른 앎입니다. 실천적 지혜가 앞에서 본 것처럼 시험과 경험으로 길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9. 알면서도 못 하는 이유를 따지다
제7권은 자제력이 부족한 사람, 곧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정념에 끌려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다룹니다. 이 문제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와 갈라섭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상태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it is a strange thing, as Socrates thought, that while Knowledge is present in his mind something else should master him and drag him about like a slave
소크라테스가 생각했듯이, 지식이 마음속에 있는데도 다른 무엇이 그를 지배하여 노예처럼 끌고 다닌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누구도 최선이라고 믿는 것에 반해서 행동하지 않으며 잘못은 모두 무지에서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평가는 정중하지만 분명합니다.
With all due respect to Socrates, his account of the matter is at variance with plain facts
소크라테스에게 마땅한 존경을 표하지만, 그의 설명은 명백한 사실과 어긋난다.
그는 이런 사람이 정념에 사로잡히기 전에는 자기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고 말하며, 무지의 성격을 더 세밀하게 따져 봅니다. 지식을 가진 것과 그것을 지금 쓰는 것은 다르고, 정념에 휘둘리는 순간에는 알고 있어도 그것이 눈앞의 상황에 적용되지 못한다는 설명입니다. 새해 결심을 지키지 못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이 대목은 그것이 의지의 문제이기 이전에 지식의 작동 방식과 습관의 문제임을 알려 줍니다.
20. 친구 없이는 살고 싶지 않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열 권 가운데 두 권을 우정에 씁니다. 이 두 권의 시작에서 그는 우정이 왜 삶에 꼭 필요한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No one would choose to live without friends though he should have all the other good things in the world.
세상의 다른 모든 좋은 것을 다 가졌더라도 친구 없이 살기를 선택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친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번영을 지켜 주고 호의를 베풀 대상이 있어야 번영도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거나 어려울 때에도 친구는 가장 큰 피난처라고 덧붙입니다. 우정이 즐거움이나 이익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선함을 바라는 데서 완성된다는 생각이 이어지는 장에서 길게 전개됩니다.
21. 우정에는 세 종류가 있다
제8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의 원인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좋아하는 이유는 유익함, 즐거움, 그리고 좋음, 곧 상대의 성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The species then of Friendship are three, in number equal to the objects of it
그러므로 우정의 종류는 셋이며, 그 수는 우정의 대상의 수와 같다.
유익함 때문에 맺은 우정과 즐거움 때문에 맺은 우정은 상대 자체가 아니라 상대가 주는 이익이나 즐거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우정은 이익과 즐거움이 사라지면 쉽게 끝납니다.
Such Friendships are of course very liable to dissolution if the parties do not continue alike
이런 우정은 당사자들이 계속 같은 상태로 남아 있지 않으면 쉽게 해체된다.
유익은 본성상 변하기 때문에 우정을 맺게 한 동기가 사라지면 우정도 함께 해체됩니다. 이에 비해 상대의 선함 자체를 위해 서로의 좋음을 바라는 우정은 가장 오래가고 가장 완전하다고 그는 봅니다. 그런 우정에는 시간과 친밀함이 필요하기 때문에 드물기도 합니다. 지금 내 곁의 관계가 어떤 이유로 이어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구분입니다. 이익과 즐거움이 섞인 관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점을 아는 것도 쓸모가 있습니다.
22. 남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를 대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제9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애에 대한 흔한 비난을 검토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며, 선한 사람은 명예와 친구를 위해 행동하고 자기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그는 말합니다.
all the friendly feelings are derived to others from those which have Self primarily for their object
친구에 대한 모든 우호적인 감정은 자기 자신을 일차적 대상으로 하는 감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이어져 나온 것이다.
친구가 갖추어야 할 조건, 곧 상대를 위해 선을 바라고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것 등은 모두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대해 가지는 태도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속담들도 이것을 뒷받침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한 영혼", "친구의 것은 공동의 것", "정강이보다 무릎이 가깝다"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화해한 사람이고, 자기를 올바르게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논의의 결론입니다. 자기를 몰아붙이기만 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너그럽기 어렵다는 오늘의 관찰과 이어집니다.
23. 인간은 어울려 사는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혼자만의 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부모와 아이, 아내와 친구, 동료 시민과 어울려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Man is by nature adapted to a social existence.
사람은 본성상 사회적인 삶에 맞게 되어 있다.
그는 이 말을 행복이 "스스로 충분한"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합니다. 스스로 충분하다는 것은 혼자서 산다는 뜻이 아니라, 홀로 있어도 삶을 선택할 만하고 부족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더라도 가족과 벗과 이웃이 함께할 때 삶은 더 풍성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혼자 노력하는 삶만으로는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앞의 세네카나 소로와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집니다.
24. 쾌락은 활동에 더해지는 완성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두 번 다룹니다. 제7권과 제10권에서 그는 쾌락이 나쁘다는 입장과 쾌락이 곧 최고의 좋음이라는 입장을 모두 비판하며 균형 잡힌 견해를 세웁니다. 그의 설명은 시각에서 출발합니다.
An act of Sight is thought to be complete at any moment
시각의 활동은 어느 순간에도 완결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쾌락도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하나의 전체이며, 시간이 더 지난다고 본성이 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 운동은 건축가가 의도한 것을 완성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지만, 보는 활동이나 쾌락은 어느 순간에도 온전합니다. 그래서 쾌락은 운동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논지입니다. 이 대목은 어렵지만 결론은 분명합니다. 쾌락은 따로 쫓아야 할 목적이 아니라 좋은 활동을 할 때 함께 따라오는 것이고, 활동의 종류에 따라 쾌락의 질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훌륭한 활동에서 오는 쾌락이 가장 좋은 쾌락입니다. 즐거움을 목적으로 직접 쫓기보다 즐겁게 할 만한 일을 잘 해내는 쪽이 더 나은 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25. 행복한 삶은 세 가지 길 중 하나다
사람들이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다르게 말한다는 점에서 그는 출발합니다. 병들 때는 건강이, 가난할 때는 부가 행복이라고 말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큰 줄기는 세 가지 삶의 방식으로 정리됩니다. 쾌락을 즐기는 삶, 사회에서 명예를 얻는 삶, 그리고 관조하는 삶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만 좇는 삶은 짐승의 삶에 가깝다고 평합니다. 명예를 좇는 삶도 남이 주는 것에 달려 있어서 너무 피상적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가장 높이 보는 것은 이성을 쓰는 삶입니다. 이성이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하는 부분이고, 그 이성에 따라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이어지는 마지막 권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집니다.
26. 가장 높은 행복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관조에 있다
책의 마지막 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대한 이전의 논의를 하나로 모읍니다. 행복이 가장 높은 덕에 따른 활동이라면, 그것은 가장 높은 부분인 이성의 활동, 곧 관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여러 이유를 듭니다. 관조는 가장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가장 즐겁고 순수하며, 가장 자족적이라는 것입니다.
the man of science can contemplate and speculate even when quite alone, and the more entirely he deserves the appellation the more able is he to do so
학문하는 사람은 홀로 있어도 관조하고 사색할 수 있으며, 그 이름에 더 합당할수록 더 그렇게 할 수 있다.
정의로운 사람에게는 정의를 행할 상대가 필요하고, 절제하는 사람과 용감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면 학문하는 사람은 홀로도 관조할 수 있습니다. 또 행복은 쉼 속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전쟁과 정치 같은 실천적 덕의 활동은 쉼과 맞지 않는다고 그는 말합니다.
for we toil that we may rest, and war that we may be at peace
우리는 쉬기 위해 애쓰고, 평화롭기 위해 전쟁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전쟁 자체를 위해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은 오늘날 읽는 사람에게는 낯설 수 있습니다. 실천적 덕과 사회적 삶을 이렇게 낮추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인간에게는 두 번째 행복, 곧 실천적 덕에 따른 삶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일과 바쁨 속에서 우리가 정작 무엇을 위해 쉼 없이 움직이는지를 묻게 하는 점에서 이 대목은 곱씹을 만합니다.
27. 행복이 가장 즐겁고 가장 고귀하다
책 앞부분에서 그는 행복이 가장 좋고 가장 고귀하며 가장 즐거운 것임을 말합니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 안에서 한꺼번에 만난다는 것입니다.
Happiness is most excellent, most noble, and most pleasant.
행복은 가장 뛰어나고, 가장 고귀하며, 가장 즐거운 것이다.
이 문장은 덕과 즐거움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는 점을 한 줄로 보여 줍니다. 덕 있게 사는 삶이 곧 즐거운 삶이라는 것이고, 반대로 즐거움이 덕을 해치지 않을 때에만 진짜 즐거움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행의 철학이 아니라 잘 사는 기술의 철학이라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한 번에 읽기에는 길고 논증이 촘촘한 책입니다. 처음에는 제1권의 행복 이야기, 제2권의 덕과 습관 이야기, 제8권과 제9권의 우정 이야기만 읽어도 책의 핵심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용어가 낯설면 "덕"을 "좋은 성품의 습관", "중용"을 "알맞음"이라고 바꿔 읽어 보세요.
이 글에서 소개한 문장은 대부분 제1권, 제2권, 제4권, 제6권과 우정을 다룬 권에서 나왔습니다. 마음에 남는 한 문장을 골라, 오늘 하루의 행동에 적용해 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읽는 것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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