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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Gem · 한 권 요점

출판년도 1781

The Critique of Pure Reason

순수이성비판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

Thoughts without content are void; intuitions without conceptions, blind.

내용 없는 사고는 텅 비어 있고, 개념 없는 직관은 눈먼 것이다.

Let us then make the experiment whether we may not be more successful in metaphysics, if we assume that the objects must conform to our cognition.

그렇다면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맞춰야 한다고 가정할 때 형이상학에서 더 성공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자.

한눈에 보기

이성이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지 이성 스스로 재판하는 책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경험에 주어진 현상까지이며, 그 너머를 아는 척할 때 이성은 모순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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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요점

Immanuel Kant

임마누엘 칸트는 1724년 4월 22일 동프로이센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마구(馬具)를 만드는 장인이었고, 집안에는 경건주의 신앙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콜레기움 프리데리치아눔에서 공부한 뒤 17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을 마치고는 1748년경부터 여섯 해가량 가정교사로 일했고, 1755년 학위를 받아 대학에서 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정식 교수가 되기까지 십오 년 가까이 사강사로 지냈고, 1770년 마흔여섯의 나이에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논리학·형이상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칸트의 삶은 놀라울 만큼 단조로웠습니다. 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 근방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결혼하지 않았으며, 하루의 시간표를 엄격하게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이웃 사람들이 그의 산책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다소 부풀려진 일화로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다만 그가 규칙적이고 조용한 삶을 살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 조용한 생활 속에서 철학의 지형을 바꾼 책이 나왔습니다.

1770년 교수 취임 이후 약 십 년 동안 칸트는 중요한 저작을 거의 내놓지 않았습니다. 흔히 "침묵의 십 년"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에 그는 『순수이성비판』을 구상하고 다듬었습니다. 책은 1781년 리가에서 처음 출판되었고, 이때 칸트는 쉰일곱 살이었습니다. 1787년에는 많은 부분을 고친 재판이 나왔습니다. 칸트 스스로 흄이 자신을 "독단의 잠"에서 깨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초판은 독자들에게 어렵다는 평을 들었고, 칸트는 1783년 더 짧은 안내서 『프롤레고메나』를 써서 핵심을 설명했습니다.

이후 칸트는 『도덕 형이상학 정초』(1785),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 『영구평화론』(1795) 등을 차례로 내놓았고, 1804년 2월 12일 일흔아홉의 나이로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모든 저작의 출발점이 된 책이 『순수이성비판』입니다. 서양 철학은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할 정도로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책은 철학 고전 가운데서도 가장 읽기 어려운 책으로 꼽힙니다. 문장이 길고 용어가 낯설며 논증이 촘촘합니다. 그래서 이 글은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기보다, 칸트가 던지는 질문과 핵심 개념을 스물여섯 가지로 나누어 정리합니다. 서문과 서론, 감성론, 논리학의 핵심 부분, 이율배반, 신 존재 증명 비판, 그리고 방법론에서 인용문을 골랐습니다. 모든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이 책이 묻는 질문의 모양만 알아도 읽는 보람이 있습니다.

줄거리

이 책에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없습니다. 대신 하나의 질문이 책 전체를 이끕니다. 인간의 이성은 경험을 넘어선 것, 곧 신과 영혼, 세계 전체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칸트는 이성이 그런 질문을 피할 수 없지만 답할 수도 없다고 진단하며 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이성 자신이 재판하는 일, 곧 "비판"을 과제로 내세웁니다. 서문과 서론은 이 과제와 방법, 곧 경험에 앞서 확실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소개합니다.

본론의 첫 부분인 「초월적 요소론」은 다시 둘로 나뉩니다. 「초월적 감성론」에서는 공간과 시간이 우리가 대상을 받아들이는 형식이라고 논증합니다. 「초월적 논리학」의 앞부분인 「분석론」에서는 지성이 열두 가지 범주로 경험을 묶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범주를 어떻게 정당하게 경험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연역이 있고, 범주와 직관을 잇는 도식론, 그리고 실체의 지속성과 인과 같은 경험의 원리들이 이어집니다. 이 부분의 결론은 우리가 아는 세계가 사물 자체가 아니라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뒷부분인 「초월적 변증론」은 이성이 경험의 한계를 넘으려 할 때 어떤 착각과 모순에 빠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영혼에 대한 오류추리, 세계 전체에 대한 이율배반,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비판이 차례로 나옵니다. 마지막 「방법론」에서는 이성의 건축 설계와 규율을 말하고, 이성의 실천적 관심, 곧 도덕과 희망의 문제를 다룹니다. 아래 스물여섯 가지 항목은 이 순서를 따라가며 핵심 개념과 장면을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이성은 피할 수 없지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만난다

초판 서문의 첫 문장은 책 전체의 문제의식을 압축합니다. 인간의 이성은 자신의 본성 때문에 어떤 질문을 피할 수 없는데, 바로 그 본성의 한계 때문에 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Human reason, in one sphere of its cognition, is called upon to consider questions, which it cannot decline, as they are presented by its own nature, but which it cannot answer, as they transcend every faculty of the mind.

인간의 이성은 인식의 한 영역에서, 자신의 본성이 제기하기에 외면할 수 없지만 정신의 모든 능력을 넘어서기에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숙고하도록 요구받는다.

칸트는 이성이 이 곤경에 자기 잘못 없이 빠진다고 덧붙입니다. 경험 안에서는 반드시 필요하고 경험으로 확인되는 원리에서 출발해, 더 높고 더 먼 조건으로 올라가다 보면 마침내 경험을 넘어선 원리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를 거듭 물을수록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나아가고, 그 끝에서 답할 수 없는 영역을 만난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익숙합니다. 칸트는 이 피할 수 없는 충동을 억누르라고 하지 않고, 그 충동이 어디까지 정당한지 따져 보자고 제안합니다.

2. 이성의 가장 힘든 일은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이다

칸트는 자신의 시대를 이성에 대한 성숙한 판단이 요구되는 때로 봅니다. 그리고 그 요구를 한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It is, in fact, a call to reason, again to undertake the most laborious of all tasks—that of self-examination

그것은 실로 이성에게 가장 힘든 모든 일, 곧 자기 점검을 다시 떠맡으라는 요청이다.

그는 이를 위해 하나의 법정을 세우자고 말합니다. 이 법정은 근거 있는 요구는 보장해 주고 근거 없는 주장은 자의적으로가 아니라 이성 자신의 영원불변한 법칙에 따라 물리칩니다. 그 법정의 이름이 곧 "순수이성비판"입니다. 여기서 비판은 헐뜯는 일이 아니라 따져 보고 경계를 긋는 일입니다. 내가 아는 것과 믿고 싶은 것을 구분하는 습관, 곧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재판에 올려 보는 태도는 철학자만의 몫이 아닙니다.

3. 저항이 없는 공기는 날개를 띄우지 못한다

칸트는 순수한 사유만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한 철학을 비둘기에 빗댑니다.

The light dove cleaving in free flight the thin air, whose resistance it feels, might imagine that her movements would be far more free and rapid in airless space.

가벼운 비둘기는 자유롭게 날며 얇은 공기를 가르면서 그 저항을 느끼기에, 공기 없는 공간에서라면 움직임이 훨씬 더 자유롭고 빠르리라고 상상할지 모른다.

칸트는 플라톤이 감각 세계의 좁은 한계가 싫어서 이념의 날개를 타고 순수한 지성의 빈 공간으로 날아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몸을 받쳐 줄 저항이 없어서 아무리 애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붙잡는 경험이 사실은 사고를 떠받치는 공기입니다. 생각이 현실과 부딪히며 단련되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해도 제자리에서 허공을 칠 뿐이라는 경고입니다. 칸트는 이어서 사람들이 건물을 서둘러 올린 뒤에야 비로소 기초가 단단한지 살피기 시작한다고 지적합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기초를 점검하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4. 지식은 경험에서 시작하지만 모두 경험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서론의 첫 구절에서 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 사이에 길을 냅니다.

But, though all our knowledge begins with experience, it by no means follows that all arises out of experience.

그러나 우리의 모든 지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한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경험에서 나온다는 결론이 따라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칸트는 먼저 경험이 인식의 출발점임을 인정합니다. 대상이 감각을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의 인식 능력은 깨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험이라는 재료를 하나의 지식으로 만들 때는 우리의 인식 능력이 스스로 보태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경험이 주는 것과 마음이 제공하는 것을 구별하는 일이 이 책의 중심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건마다 원인이 있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이 생각은 사건을 하나하나 보았기 때문에 생긴 것일까요, 아니면 사건을 이해하는 우리의 틀에서 나온 것일까요? 칸트는 이런 질문을 던지며 지식의 출처를 나눠 보자고 합니다.

5. 필연성은 경험이 줄 수 없다

그렇다면 경험과 무관하게 먼저 아는 지식, 곧 선험적 지식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칸트가 제시하는 기준은 필연성입니다.

Experience no doubt teaches us that this or that object is constituted in such and such a manner, but not that it could not possibly exist otherwise.

경험은 분명 이런저런 대상이 이러저러하게 이루어져 있음을 가르쳐 주지만, 그것이 달리 존재할 수 없다는 것까지 가르쳐 주지는 않는다.

경험은 "지금까지는 그랬다"고만 말해 줄 뿐 "반드시 그렇다"고는 말해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수학에는 반드시 그렇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칸트는 이 점에 주목하여 판단을 둘로 나눕니다. 서술어가 주어의 개념 안에 이미 들어 있어 풀어 보이기만 하는 분석판단이 있고, 주어에 새로운 것을 더하는 종합판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학의 판단이 단순한 분석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 이런 예를 듭니다.

That 7 + 5 = 12 is not an analytical proposition.

7 + 5 = 12는 분석 명제가 아니다.

7이라는 개념에도, 5라는 개념에도, 둘을 합친다는 개념에도 12는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12는 직관을 통해 비로소 더해지는 새로운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경험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알려 주는 판단, 곧 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 일이 책 전체의 중심 질문이 됩니다.

6. 흄이 건드린 인과의 문제

『순수이성비판』은 흄과의 대화이기도 합니다. 흄은 우리가 원인과 결과라고 부르는 연결이 사실은 어떤 일 뒤에 다른 일이 자주 이어지는 것을 본 습관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입장을 따르면 형이상학은 경험에서 빌려 온 것에 필연성의 겉모습을 입힌 환상이 됩니다. 칸트는 흄이 가장 중요한 지점을 짚었다고 인정합니다.

David Hume came the nearest of all to this problem; yet it never acquired in his mind sufficient precision, nor did he regard the question in its universality.

흄은 이 문제에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이 문제는 충분히 정밀해지지 못했고 그는 이 문제를 보편적인 모습으로 보지도 않았다.

칸트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흄은 질문을 인과라는 하나의 명제에만 좁혀 보았고, 그래서 그 명제가 경험에서 나올 수 없다는 이유로 모든 형이상학이 망상이라고 결론지었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문제를 더 넓게, 곧 경험에 앞서 확실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보편적 질문으로 다시 던집니다. 그는 원인이라는 개념이 자주 이어지는 것을 본 연상에서 나온다면, 그 개념에 담긴 필연성은 한낱 주관적인 습관이 되고 원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회의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고 낡은 독단론으로 돌아가지도 않으면서, 경험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을 먼저 따져 보겠다는 기획이 여기서 분명해집니다.

7. 대상이 인식에 맞춘다고 가정해 보자

재판 서문에서 칸트는 자신의 방법을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에 비유합니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인식이 대상에 맞춰야 한다고 가정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대상에 대해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Let us then make the experiment whether we may not be more successful in metaphysics, if we assume that the objects must conform to our cognition.

그렇다면 대상이 우리의 인식에 맞춰야 한다고 가정할 때 형이상학에서 더 성공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자.

코페르니쿠스는 천체가 관찰자 주위를 돈다고 가정해서는 진전이 없자, 관찰자가 돌고 별은 가만히 있다고 가정해 보았습니다. 칸트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을 뒤집습니다. 우리가 대상을 직관하는 방식이 대상을 규정한다면, 경험하기 전에도 대상의 형식에 대해 미리 알 수 있습니다. 이 발상의 전환 덕분에 수학과 자연과학이 왜 확실한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문제를 풀지 못할 때 답을 바깥에서 찾지 말고 질문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 보라는 가르침으로도 읽힙니다.

8. 공간은 바깥에서 얻은 개념이 아니라 경험의 틀이다

「초월적 감성론」에서 칸트는 공간과 시간을 다룹니다. 우리는 공간이 경험에서 얻은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칸트의 생각은 반대입니다.

Space is not a conception which has been derived from outward experiences.

공간은 바깥의 경험들에서 이끌어 낸 개념이 아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떤 감각이 나와 다른 장소에 있는 무언가에 속한다고 느끼려면, 감각들을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것으로 놓으려면, 공간이라는 표상이 이미 바탕에 있어야 합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시에 있다거나 차례로 일어난다는 것을 지각하려면 시간의 표상이 먼저 깔려 있어야 합니다. 공간과 시간은 대상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형식이며, 그래서 기하학이나 산수의 확실성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 말은 공간과 시간이 사물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우리 직관의 형식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감각과 거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칸트는 이 주장을 통해 수학이 실제 세계에 적용되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9. 감성과 지성은 서로 없이는 쓸모가 없다

「초월적 논리학」의 서두에서 칸트는 인식이 두 원천에서 나온다고 정리합니다. 하나는 인상을 받아들이는 능력인 감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개념으로 생각하는 능력인 지성입니다.

Thoughts without content are void; intuitions without conceptions, blind.

내용 없는 사고는 텅 비어 있고, 개념 없는 직관은 눈먼 것이다.

감성이 없으면 우리에게 대상이 주어지지 않고, 지성이 없으면 대상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두 능력 가운데 어느 쪽도 다른 쪽보다 우위에 있지 않으며 서로의 기능을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지성은 직관할 수 없고, 감성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경험론과 합리론의 오랜 대립을 한 줄로 가르는 문장으로 유명합니다. 데이터만 쌓고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 개념만 쌓고 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알려면 보아야 하고, 보려면 생각의 틀이 있어야 합니다.

10. 생각의 열두 가지 기본 틀, 범주

「초월적 논리학」에서 칸트는 지성이 대상을 생각할 때 쓰는 기본 개념을 표로 정리합니다. 이것이 유명한 범주표입니다. 범주는 네 묶음으로 나뉘고 각 묶음에 세 가지씩 모두 열두 개가 있습니다.

TABLE OF THE CATEGORIES

범주표

첫째 묶음은 양으로, 하나(단일성), 여럿(다수성), 전체(총체성)입니다. 둘째는 질로, 실재, 부정, 제한입니다. 셋째는 관계로, 실체와 속성, 원인과 결과, 상호작용입니다. 넷째는 양상으로, 가능과 불가능, 존재와 비존재, 필연과 우연입니다. 칸트는 이 개념들이 경험에서 하나하나 주워 모은 것이 아니라 판단하는 지성의 기능에서 체계적으로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엇을 "하나의 사물"이나 "원인"으로 보는 것은 대상이 그렇게 생겨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지성이 경험을 그런 틀로 묶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표는 이어지는 모든 논증의 도구함입니다.

11. 나의 의식이 하나이기에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다

칸트가 가장 공들여 논증하는 부분이 「순수 지성 개념의 연역」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자기의식의 통일입니다.

for the reason alone that I can comprehend the variety of my representations in one consciousness, do I call them my representations

다양한 나의 표상들을 하나의 의식 안에 아우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것들을 나의 표상이라고 부른다.

칸트는 그렇지 않다면 나는 표상의 수만큼이나 다채롭고 제각각인 자기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눈앞의 색, 귓가의 소리, 방금 떠오른 기억이 모두 나의 것으로 묶이려면, 그것들을 하나로 결합하는 의식의 통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결합하는 작용이 지성의 범주, 곧 인과나 실체 같은 기본 개념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칸트는 논증합니다. 어려운 대목이지만 직관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흩어진 인상이 하나의 경험이 되는 것은 그것을 하나로 묶는 내가 있기 때문이며, 그 묶는 방식이 바로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라는 것입니다.

12. 개념과 직관을 이어 주는 다리, 도식

범주는 순수한 개념이고 직관은 감각에서 오는 내용이라서 둘 사이에는 간격이 있습니다. 칸트는 이 둘을 이어 주는 것이 상상력이 만드는 도식이라고 설명합니다. 도식은 이미지와 다릅니다.

In truth, it is not images of objects, but schemata, which lie at the foundation of our pure sensuous conceptions.

사실 우리의 순수한 감성적 개념의 바탕에 놓인 것은 대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도식이다.

예를 들어 점 다섯 개를 차례로 찍으면 다섯의 이미지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를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그것이 다섯이든 백이든,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개념에 맞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이 방법이 도식입니다. 삼각형의 개념도 직각삼각형이든 예각삼각형이든 모든 삼각형을 포괄해야 하므로, 어느 하나의 그림으로는 담을 수 없습니다. 칸트에게 개념이 경험에 적용된다는 것은 이런 도식 덕분이며, 시간이 그 매개 구실을 합니다. 개념만 있으면 공허하고 직관만 있으면 맹목이라는 앞의 문장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장치가 도식입니다.

13.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칸트는 경험이 가능하기 위한 원리들을 하나씩 밝히는데, 이를 경험의 유추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가 실체의 지속성입니다.

In all changes of phenomena, substance is permanent, and the quantum thereof in nature is neither increased nor diminished.

현상의 모든 변화에서 실체는 지속하며, 자연 안에서 그 양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논증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모든 현상은 시간 안에 있고, 시간 자체는 지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동시에 있고 무엇이 차례로 일어나는지를 규정하려면 지속하는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현상 안에서 그 바탕 구실을 하는 것, 곧 변하지 않는 것이 실체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변화라고 부르는 것은 실체가 가진 규정이 생겼다 사라지는 것이지 실체 자체가 생기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사물이 모양을 바꿔도 같은 사물로 알아보는 일상의 경험은 이 원리 위에 놓여 있습니다.

14.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따른다

두 번째 유추는 흄이 흔들었던 바로 그 원리입니다. 칸트는 이것을 경험의 필수 조건으로 증명하려 합니다.

All changes take place according to the law of the connection of Cause and Effect.

모든 변화는 원인과 결과의 연결이라는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그의 논증은 우리가 사건의 순서를 어떻게 알게 되는가에서 출발합니다. 집을 바라볼 때 우리의 시선은 지붕에서 지하실로 내려가거나 거꾸로 올라갈 수 있고, 이때 눈의 움직임의 순서는 임의입니다. 그러나 강을 내려가는 배를 볼 때는 상류에서 하류로 가는 순서가 정해져 있고 뒤집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지각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한 상태가 다른 상태를 규칙에 따라 뒤따른다는 필연적인 연결, 곧 인과 개념이 이미 작동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인과는 경험에서 배우는 습관이 아니라 경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틀입니다. 이 원리가 현상에만 적용되고 사물 자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뒤의 자유 문제와 이어집니다.

15. 우리가 아는 것은 현상이고, 사물 자체는 한계 개념이다

칸트의 결론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논쟁적인 것이 현상과 사물 자체의 구분입니다. 서문에서 그는 이를 분명히 밝힙니다.

we can have no cognition of an object, as a thing in itself, but only as an object of sensible intuition, that is, as phenomenon

우리는 대상을 사물 자체로서는 인식할 수 없고, 오직 감성적 직관의 대상, 곧 현상으로서만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물 자체나 순수 지성의 대상인 본체(noumenon)는 없다는 뜻일까요? 칸트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본체의 개념은 감성의 한계를 표시하는 개념일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The conception of a noumenon is therefore merely a limitative conception and therefore only of negative use.

그러므로 본체의 개념은 단지 한계를 긋는 개념이며, 따라서 부정적으로만 쓰인다.

다시 말해 "여기까지가 우리가 아는 영역이고 그 너머는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경계 표지판 구실을 한다는 것입니다. 알 수 없는 것을 아는 척하지 말고,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를 정직하게 인정하라는 태도입니다. 이 구분은 이후 철학이 인식의 한계를 논할 때마다 되돌아가는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16. 지성은 규칙을, 이성은 원리를 찾는다

책의 후반부인 「초월적 변증론」으로 넘어가면서 칸트는 지성과 이성을 구별합니다.

In the former part of our transcendental logic, we defined the understanding to be the faculty of rules; reason may be distinguished from understanding as the faculty of principles.

초월적 논리학의 앞부분에서 우리는 지성을 규칙의 능력으로 정의했다. 이성은 지성과 구별하여 원리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이 경험의 재료를 규칙으로 묶는다면, 이성은 그 규칙들을 더 높은 원리로 통합하려 합니다. 이성은 어떤 것의 조건을 찾고, 그 조건의 조건을 찾으며, 마침내 더 이상 조건이 없는 것, 곧 무조건적인 것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이 충동이 영혼과 세계 전체, 신이라는 세 가지 이념을 낳습니다. 문제는 이 이념들에 대응하는 대상이 경험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이성은 마치 대상이 주어진 것처럼 논증을 이어 가고, 그래서 겉으로는 타당해 보이는 착각, 곧 초월적 가상이 생깁니다. 칸트는 이 착각이 어리석음 때문이 아니라 이성의 본성에서 나오기 때문에 피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 착각이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지를 보이는 것이 변증론의 일입니다.

17. "나는 생각한다"에서 영혼의 실체를 끌어낼 수 없다

변증론의 첫째 영역은 영혼입니다. 전통 형이상학은 "나는 생각한다"는 사실에서 영혼이 단순한 실체이고, 썩지 않으며, 불멸한다는 결론을 끌어내려 했습니다. 칸트는 이런 추론을 오류추리라고 부릅니다.

By this “I,” or “He,” or “It,” who or which thinks, nothing more is represented than a transcendental subject of thought = x

생각하는 이 "나", 또는 "그", 또는 "그것"으로 표상되는 것은 사유의 초월적 주관 = x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칸트의 지적은 간단합니다. "나는 생각한다"는 모든 생각에 따라붙는 의식의 형식일 뿐 그 자체로는 내용이 없는 표상입니다. 이 "나"가 어떤 성질을 가진 대상인지는 이 표상만으로는 알 수 없고, 그것을 알려면 다시 이 "나"를 써서 판단해야 하므로 논증은 빙글빙글 돕니다. 자기를 직관하는 일은 내적 감각이 맡는데, 그것도 사물 자체가 아니라 현상만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존재가 실체인지, 단순한지, 불멸인지를 이성만으로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이 비판은 영혼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식으로서는 증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는 것입니다.

18. 이성이 한계를 넘으면 같은 힘으로 맞서는 두 주장이 생긴다

「초월적 변증론」의 이율배반 부분에서 칸트는 이성이 경험을 넘어 세계 전체를 생각할 때 모순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서로 반대되는 주장 두 개를 나란히 놓고 각각 증명합니다. 첫 번째 충돌은 세계가 시작을 가졌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The world has a beginning in time, and is also limited in regard to space.

세계는 시간상 시작을 가지며, 공간상으로도 한계가 있다.

The world has no beginning, and no limits in space, but is, in relation both to time and space, infinite.

세계는 시작이 없고 공간상의 한계도 없으며, 시간과 공간 양쪽에서 무한하다.

두 주장은 각각 그럴듯한 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칸트는 이런 대립이 네 가지 영역에서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어느 한쪽이 억지를 부려서가 아니라 이성이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 세계 전체를 하나의 대상처럼 다룰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입니다. 그는 이 싸움터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공격할 권리를 먼저 얻은 쪽이 이기고 수비하는 쪽이 밀리는 전장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이런 논쟁에서 이기려고만 하다 보면, 증명이 정말 진리를 보증하는지 의심하는 법을 잊게 됩니다.

19. 자연의 법칙과 자유는 함께 설 수 있는가

세 번째 이율배반은 인간에게 가장 가까운 문제를 다룹니다. 세계의 모든 일이 자연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면 자유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입니다. 칸트는 정립과 반정립을 나란히 놓고 각각 증명합니다. 정립은 이렇습니다.

Causality according to the laws of nature, is not the only causality operating to originate the phenomena of the world. A causality of freedom is also necessary to account fully for these phenomena.

자연 법칙에 따른 인과성은 세계의 현상을 일으키는 유일한 인과성이 아니다. 이 현상들을 충분히 설명하려면 자유에 따른 인과성도 필요하다.

정립의 논증은 모든 사건이 앞선 사건을 전제한다면 원인의 사슬은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기만 하고 완결된 설명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정립은 정반대를 주장합니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freedom, but everything in the world happens solely according to the laws of nature.

자유 같은 것은 없고, 세계의 모든 일은 오로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두 주장이 모두 증명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성의 곤경을 보여 줍니다. 칸트의 해결은 앞서 본 구분에 있습니다. 인과 법칙은 현상에 적용되는 법칙이고, 사물 자체의 영역에서는 자유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현상으로서는 자연의 필연성에 속하지만 사물 자체로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길이 이렇게 열립니다. 이것이 이후 도덕 철학의 바탕이 됩니다.

20. 존재는 사물에 더해지는 속성이 아니다

변증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칸트는 신의 존재를 이성만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를 검토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가장 완전한 존재는 존재라는 속성도 갖는다는 논증입니다. 칸트의 반박은 간단합니다.

Being is evidently not a real predicate, that is, a conception of something which is added to the conception of some other thing.

존재는 분명 실재적 술어가 아니다. 곧 다른 어떤 사물의 개념에 더해지는 무언가의 개념이 아니다.

"신은 전능하다"에는 신과 전능이라는 두 개념이 있지만, "신이 있다"고 말할 때 우리는 신의 개념에 새 속성을 더하지 않습니다. 이미 가진 모든 속성과 함께 그 대상이 있다고 놓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개념 속에 담긴 내용은 그것이 실제로 있든 없든 같습니다. 그러므로 개념을 아무리 분석해도 그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습니다. 생각 속의 완전함에서 현실의 존재를 끌어낼 수 없다는 이 지적은 신 존재 논증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평가됩니다. 칸트는 이 논증을 비판하면서도 신이 없다고 증명하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의 요점은 이성의 증명이 거기까지 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1. 이념은 대상이 아니라 탐구의 규칙이다

이성의 이념들이 그릇된 지식을 낳는다면 이념은 버려야 할까요? 칸트의 답은 아닙니다. 이념은 무엇이 있는지를 알려 주는 구성적 원리가 아니라 탐구를 이끄는 규제적 원리로 쓰일 때 올바르게 쓰인다는 것입니다.

it cannot tell us what the object is, but only how the empirical regress is to be proceeded with in order to attain to the complete conception of the object.

그것은 대상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는 없고, 대상의 완전한 개념에 이르기 위해 경험적 소급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만 알려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연 전체는 하나의 체계적 통일을 이룬다"는 이념은 자연이 정말 그렇게 생겼다는 지식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학자가 현상 사이의 연관을 끝까지 찾아 나가게 하는 안내 규칙으로는 매우 유용합니다. 칸트는 이 규칙이 한편으로는 어느 것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궁극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한 한 완결된 설명을 향해 나아가라고 재촉한다고 설명합니다. 신과 세계와 영혼에 대한 이념을 지식으로 주장하는 대신, 탐구의 방향을 잡는 나침반으로 쓰자는 제안입니다.

22. 믿음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지식의 한계를 긋는다

서문에서 칸트는 이 책의 목적이 부정에만 있지 않다고 밝힙니다. 이성의 한계를 긋는 일은 오히려 다른 영역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I must, therefore, abolish knowledge, to make room for belief.

그러므로 나는 믿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지식을 제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사고할 수 있는 것과 인식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합니다. 우리는 사물 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현상으로서의 인간은 자연의 필연성에 따르지만, 사물 자체로서의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길이 열립니다. 의지가 자유롭다는 명제와 자연의 필연성에 종속된다는 명제는 같은 의미의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두 가지 의미에서 말해지기 때문에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칸트는 형이상학의 독단이 도덕을 해치는 불신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지식을 무리하게 늘리려는 시도를 멈추면 오히려 도덕과 자유가 설 자리가 생긴다는 역설입니다. 앎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 곧 삶의 중요한 질문을 지키는 일이라는 그의 구상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23. 이성의 모든 관심은 세 가지 물음에 모인다

책의 후반부인 「방법론」에서 칸트는 이성의 모든 관심을 세 가지 물음으로 압축합니다. 이 대목은 칸트 철학 전체의 지도로 자주 인용됩니다.

The whole interest of reason, speculative as well as practical, is centred in the three following questions: 1. WHAT CAN I KNOW? 2. WHAT OUGHT I TO DO? 3. WHAT MAY I HOPE?

이성의 모든 관심은, 사변적인 것이든 실천적인 것이든 다음 세 가지 물음에 모인다. 1.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2.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3.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칸트는 첫째 물음이 순전히 사변적이며, 이 책이 이미 이성이 만족해야 할 대답을 찾았다고 말합니다. 앎의 한계 안에서만 확실하다는 것이 그 대답입니다. 둘째 물음은 도덕에 관한 것이고, 셋째는 희망, 곧 도덕적으로 살았을 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이 구도는 이후 칸트의 저작 전체의 설계도가 됩니다. 앎의 문제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행위의 문제는 도덕 철학의 저작들에서 다루는 식입니다. 지식과 도덕과 희망을 하나의 질문 체계 안에서 보려는 이 시야가 이 책을 단순한 인식론 이상으로 만듭니다.

24.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어라

실천적 관심에 대한 칸트의 대답은 간결합니다. 도덕은 행복을 얻는 기술이 아니라 행복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Do that which will render thee worthy of happiness.

너를 행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하라.

그러면 도덕적으로 살면 행복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둘째 물음이 남습니다. 칸트는 세상을 모든 윤리 법칙에 맞게 존재할 수 있는 도덕의 세계로 상상해 보자고 합니다. 이 세계는 경험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이지만, 감각 세계를 가능한 한 그 이념에 맞추도록 이끄는 실천적 이념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성은 도덕적 가치에 비례하여 행복을 기대할 근거가 있다고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희망이 신과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칸트에게 이 희망은 증명된 지식이 아니라, 도덕 법칙에 따라 사는 사람이 이성적으로 가질 수 있는 기대입니다.

25. 도덕적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책의 마지막 「방법론」에서 칸트는 믿음의 종류를 구분합니다. 어려운 사변적 논쟁에 흔들리는 믿음이 있고, 그렇지 않은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It is quite otherwise with moral belief. For in this sphere action is absolutely necessary, that is, I must act in obedience to the moral law in all points.

도덕적 믿음은 전혀 다르다. 이 영역에서는 행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곧 나는 모든 점에서 도덕 법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칸트는 이론적 믿음이 사변의 어려움 앞에서 흔들리다가도 결국 되돌아오는 불안정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도덕적 믿음은 행동해야 한다는 필연성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다릅니다. 그에게 신과 내세에 대한 믿음은 지식이 아니라, 도덕 법칙에 따라 살고자 하는 이성적 존재가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런 칸트의 생각은 이후 『실천이성비판』에서 더 자세히 전개됩니다.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칸트가 이성의 한계를 긋고 나서 도덕의 영역을 오히려 단단하게 세우려 했다는 점입니다.

26. 모두의 자유가 함께 설 수 있는 법을 생각하라

이념의 쓸모를 논하는 대목에서 칸트는 플라톤의 『국가』를 언급합니다. 사람들은 이 책을 이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완벽함의 예로 비웃어 왔지만, 칸트는 그 비웃음을 경계합니다.

A constitution of the greatest possible human freedom according to laws, by which the liberty of every individual can consist with the liberty of every other

법에 따라 가능한 한 큰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되, 각 개인의 자유가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와 함께 성립할 수 있게 하는 헌법

칸트는 이런 체제가 적어도 필연적인 이념이며, 국가 헌법의 첫 설계뿐 아니라 모든 법률의 바탕에 놓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상이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념이 쓸모없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현실이 이념과 어긋난다는 이유로 이념을 버리면 안 되고, 그 이념이 현실을 재는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덕의 이념에 완전히 들어맞는 일은 없겠지만, 그 이념이 있어야 도덕적 공과를 판단할 수 있다는 같은 논리가 이 대목에도 이어집니다. 이상은 도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방향을 잡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기보다 징검다리를 놓아 읽기를 권합니다. 먼저 초판과 재판의 서문을 읽으세요. 칸트가 무엇을 하려는지, 그리고 왜 이성에 대한 재판이 필요한지를 가장 읽기 쉬운 문장으로 보여 줍니다. 그다음에는 서론에서 선험적 지식과 분석·종합판단의 구분을 읽고, 「초월적 감성론」의 공간과 시간 부분을 차례로 읽으면 칸트의 기본 구상이 보입니다.

범주의 연역과 도식론은 책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므로 처음에는 건너뛰어도 좋습니다. 대신 범주표와 경험의 유추(실체의 지속성, 인과)는 개요만 잡아도 이후 논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초월적 변증론」에서는 영혼에 대한 오류추리, 이율배반, 신 존재 증명 비판이 논증이 비교적 눈에 잘 들어옵니다. 마지막으로 「방법론」의 이성의 관심을 다룬 부분, 곧 세 가지 물음을 읽으면 이 책이 도달하려는 곳이 보입니다.

모든 문장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칸트가 "이성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붙들고 있는지를 따라가 보세요. 흄의 회의론에 응답하고, 지식의 한계를 긋고, 그 자리에서 도덕과 자유와 희망을 지켜 내는 한 편의 긴 논증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대목에 동의할 필요는 없고, 현상과 사물 자체의 구분이나 선험적 종합판단처럼 오랫동안 논쟁이 된 주장도 많습니다. 그 질문 하나만 얻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충분합니다.

ReadGem 앱에서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을 한 문장씩 나란히 읽어 보세요. 영어 청취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