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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385–378 BC

Symposium

향연

사랑에 대한 여섯 편의 연설과 한 편의 고백

the desire and pursuit of the whole is called love.

온전함을 향한 욕구와 추구를 일컬어 사랑이라 한다.

begin from the beauties of earth and mount upwards for the sake of that other beauty, using these as steps only

지상의 아름다움에서 출발해, 저 다른 아름다움을 위해 이것들을 단지 디딤돌로 삼아 위로 올라가라.

한눈에 보기

한 잔치에서 손님들이 돌아가며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양한다. 의사, 희극 시인, 비극 시인의 연설을 지나 소크라테스가 전해 주는 디오티마의 가르침에 이르러 사랑은 부족함이자 아름다움과 영원을 향한 오름이 된다. 알키비아데스의 고백으로 끝나는 플라톤의 가장 아름다운 대화편을 스물두 가지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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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요점

Symposium

『향연』은 플라톤이 기원전 4세기 전반에 쓴 대화편입니다. 무대는 기원전 416년의 아테네, 비극 시인 아가톤이 처음으로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다음 날 그의 집에서 열린 뒤풀이 잔치입니다. 손님으로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의사 에뤽시마코스, 희극 시인 아리스토파네스, 주인 아가톤이 모였고, 나중에 술에 취한 알키비아데스가 합류합니다. 제목의 "향연(심포지온)"은 원래 "함께 마시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술 대신 이야기를 택하고, 돌아가며 사랑의 신 에로스를 찬양하기로 합니다.

플라톤(기원전 428년경~348년경)은 아테네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청년 시절 소크라테스를 따르며 배운 철학자입니다. 스승이 기원전 399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죽자 정치에 대한 기대를 접고 철학에 몰두했고, 여러 지역을 여행한 뒤 기원전 387년 무렵 아테네 교외에 학원 아카데메이아를 세웠습니다. 그의 저작은 대부분 소크라테스를 중심 인물로 한 대화편이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학원에서 배운 가장 유명한 제자입니다. 『향연』은 그의 중기 대화편으로 분류되고, 플라톤 자신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 전해지는 형식을 택해, 독자가 어느 한 사람의 말을 곧 저자의 생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책의 매력은 연설들이 하나의 정답을 향해 쌓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목소리로 엮인다는 데 있습니다. 어떤 연설은 진지하고, 어떤 연설은 익살스럽고, 어떤 연설은 화려한 수사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이 모든 연설을 뒤집으며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습니다. 마지막에는 알키비아데스가 들이닥쳐 소크라테스를 사랑하다가 거절당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아테네에서 남성들 사이의 사랑, 특히 성인 남성과 소년 사이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인정된 관습이었고, 이 책의 연설들도 그 관습을 전제로 합니다. 오늘의 윤리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있으며, 이 글은 그것을 숨기지 않고 시대적 맥락으로 읽습니다.

이 글은 연설의 순서를 따라갑니다. 말이 길어지는 대목은 요점만 옮겼고, 핵심이 되는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비교적 자세히 읽었습니다.

줄거리

이야기는 두 겹의 기억으로 전해집니다. 아폴로도로스라는 사람이 친구에게 들려주는데, 그도 잔치에 직접 있었던 아리스토데모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것입니다. 잔치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기로 하고, 피리 부는 여자를 내보낸 뒤, 에로스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기로 합니다.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뤽시마코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이 차례로 연설하고,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라는 여사제에게서 배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때 알키비아데스가 만취해 나타나 에로스 대신 소크라테스를 찬양하고, 밤을 새운 대화 끝에 새벽이 옵니다. 아래는 이 순서를 따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서 있는 철학자

잔치에 가던 소크라테스는 이웃집 현관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인이 불러도 오지 않자, 함께 온 아리스토데모스가 말립니다.

he has a way of stopping anywhere and losing himself without any reason.

그는 아무 이유 없이 아무 곳에서나 멈춰 서서 자기 안에 잠겨 버리는 버릇이 있다.

그가 한창 지난 뒤에야 나타나자 아가톤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며 그 생각의 지혜가 자기에게 옮겨 오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지혜가 물이 양털을 타고 흐르듯 옮겨 올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받아넘깁니다. 이 짧은 장면은 책 전체의 주제를 미리 보여 줍니다. 지혜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자와 비어 있는 자 사이에서 무엇이 오가는가라는 질문입니다.

2. 사랑을 칭송하는 이가 없다

술을 줄이자는 합의 끝에 의사 에뤽시마코스가 제안을 합니다. 파이드로스가 늘 한탄해 온 이야기, 곧 다른 신들에게는 시와 찬가가 있는데 위대한 신 에로스에게는 제대로 된 찬양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소금의 효용을 칭송한 글도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그래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각자 에로스를 찬양하자는 것이 오늘의 순서가 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는 사랑에 대해서만 안다고 말한다며 이 제안에 찬성합니다. 이 대목의 어조는 가볍지만, 이 가벼움 속에서 사랑이라는 주제가 철학의 가장 큰 질문으로 자랍니다.

3. 파이드로스: 사랑은 용기를 준다

첫 연설자는 사랑이 가장 오래된 신이며 사람에게 가장 큰 선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수치심과 명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비겁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천 번 죽겠다고 생각하게 되므로, 연인들로 이루어진 군대는 무적일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The veriest coward would become an inspired hero, equal to the bravest, at such a time; Love would inspire him.

그런 때라면 가장 비겁한 사람도 가장 용감한 이와 같은 영감 받은 영웅이 되고, 사랑이 그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이어서 그는 남편을 대신해 죽겠다고 나선 알케스티스, 연인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위해 죽음을 택한 아킬레우스를 모범으로 들며, 사랑은 사람을 죽음까지 감수하게 하는 유일한 힘이라고 말합니다. 이 연설은 사랑을 용기와 덕의 원천으로 보는 전통적인 관점을 대변합니다. 사랑에는 사람을 더 낫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생각의 출발점이 됩니다.

4. 파우사니아스: 두 가지 사랑

두 번째 연설자는 파이드로스의 연설이 사랑을 구분 없이 칭송했다고 지적합니다. 아프로디테가 둘이므로 에로스도 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늘의 아프로디테의 사랑이고, 하나는 속된 아프로디테의 사랑입니다. 속된 사랑은 몸을 향하며 분별이 없고, 하늘의 사랑은 지성과 인격을 향합니다.

Evil is the vulgar lover who loves the body rather than the soul

몸을 영혼보다 사랑하는 속된 연인은 나쁘다.

그는 이런 사랑은 몸의 꽃이 시들면 날아가 버리지만, 고귀한 성품에 대한 사랑은 평생 지속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랑이 훌륭하게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사랑 자체의 가치가 정해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관습도 그것을 시험하는 장치로 읽습니다. 이 연설에서 가장 기억할 점은, 사랑에는 질이 있고 같은 행위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는 구분입니다. 다만 연설 속의 구체적인 사례들은 앞서 말한 시대적 관습을 반영하고 있어, 오늘의 독자에게는 이 구분의 원리만 받아들이고 그 적용은 비판적으로 읽는 편이 좋습니다.

5. 에뤽시마코스: 사랑은 우주의 화음이다

세 번째 순서였던 아리스토파네스가 딸꾹질을 하는 바람에 의사 에뤽시마코스가 대신 연설합니다. 그는 파우사니아스의 두 가지 사랑 구분이 옳다고 인정하면서 이를 사람의 영혼에만 적용하지 않습니다.

my art further informs me that the double love is not merely an affection of the soul of man towards the fair, or towards anything, but is to be found in the bodies of all animals

내 기술이 또한 알려 주기를, 이 이중의 사랑은 사람의 영혼이 아름다운 것이나 무엇인가를 향한 애정에 그치지 않고 모든 동물의 몸 안에서도 발견된다.

그는 의술, 음악, 계절의 조화, 점술에서까지 건강한 사랑과 병든 사랑이 있다고 말합니다. 건강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의술이고, 상반된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음악이라는 식입니다. 이 연설은 사랑을 개인의 감정에서 우주적 원리로 넓히는 첫 시도입니다. 연설 전에 딸꾹질을 멈추는 방법(숨 참기, 물로 헹구기, 코를 간질여 재채기하기)을 늘어놓는 장면은 의사의 직업병을 비꼬는 플라톤의 익살이기도 합니다.

6. 아리스토파네스: 둘로 쪼개진 인간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입니다. 태초의 인간은 지금과 달랐다고 그는 말합니다. 성별은 셋이었고, 남자와 여자와 둘을 합친 "남녀"가 있었습니다. 몸은 둥글고 팔다리가 넷에 얼굴이 둘이었으며, 힘과 기개가 대단해 신들을 공격하기까지 했습니다. 제우스는 인간을 멸하는 대신 반으로 쪼개 힘을 줄이고 숫자를 늘리기로 합니다. 쪼개진 두 반쪽은 서로를 그리워해 끌어안고 굶어 죽어 가다가, 제우스가 이를 가엾게 여겨 서로 만나 위안을 얻고 대를 이을 수 있게 새 방법을 마련해 주었다고 합니다.

Each of us when separated, having one side only, like a flat fish, is but the indenture of a man, and he is always looking for his other half.

우리는 각자 떨어져 한쪽만 가진 채, 넙치처럼 한 사람의 반쪽 증서일 뿐이어서 언제나 자기의 나머지 반쪽을 찾고 있다.

이 신화는 사랑을 잃어버린 온전함을 향한 갈망으로 설명합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 앞에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나타나 하나로 녹여 붙여 주겠다고 하면 누구도 거절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이 그들이 오래 바라 온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the desire and pursuit of the whole is called love.

온전함을 향한 욕구와 추구를 일컬어 사랑이라 한다.

이 이야기는 지금도 "내 반쪽을 찾는다"는 말로 일상에 남아 있습니다. 다만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는 우화이고 농담이 섞여 있으며, 곧 이어질 디오티마의 비판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이 연설에서 세 가지 성별에 따른 사랑의 유형을 말하는 대목은 당시의 관념을 반영한 것으로, 같은 성의 사랑과 이성의 사랑을 모두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설명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7. 아가톤: 가장 젊고 가장 부드러운 신

주인 아가톤의 연설은 화려한 수사로 가득합니다. 앞의 연설자들이 사랑이 사람에게 주는 이익만 말했다고 지적하며, 그는 신 자체를 먼저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of all the blessed gods he is the most blessed because he is the fairest and best?

모든 복된 신들 가운데 그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하기에 가장 복되다고 말해도 되겠는가?

그는 에로스가 가장 젊고(파이드로스가 말한 가장 늙은 신이 아니라), 가장 부드럽고, 정의롭고 절제 있고 용감하고 지혜롭다고 차례로 증명해 나갑니다. 그가 가장 아름답게 말한 구절은 이것입니다.

at the touch of him every one becomes a poet, even though he had no music in him before

그의 손길이 닿으면 누구든 시인이 되니, 전에는 마음에 음악이 없던 사람도 그러하다.

이 연설은 청중의 박수를 받지만, 소크라테스는 곧 이것이 아름답게 꾸민 말일 뿐이라고 가볍게 비꼬며 질문으로 들어갑니다. 아가톤의 연설은 수사의 절정이면서, 곧 무너질 논증이기도 합니다.

8. 소크라테스의 질문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이런 연설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아가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은 무엇에 대한 사랑이냐고 묻고, 사랑이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이라면 그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힙니다. 사람은 이미 가진 것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건강을 원한다고 말할 때도, 그것은 현재의 건강이 미래에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것이어서 아직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망이라는 설명이 따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이렇습니다.

Then Love wants and has not beauty?

그렇다면 사랑은 아름다움을 원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사랑이 아름다움을 원하는 것이라면 사랑 자신은 아름답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아가톤은 반박하지 못하고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인정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아가톤, 반박하지 못하는 것은 진리다. 소크라테스는 쉽게 반박된다"고 말하며 이 논쟁을 마무리합니다. 이 짧은 대화는 앞의 모든 칭송의 전제를 무너뜨립니다. 사랑은 가진 자의 풍요가 아니라 없는 자의 결핍이라는 것입니다.

9. 디오티마, 만티네이아에서 온 여인

그렇다면 사랑은 추한 것인가.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오래전 만티네이아의 디오티마라는 여인에게서 배운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녀는 소크라테스가 아가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으로 그를 먼저 가르쳤다고 합니다. 디오티마는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추하다는 뜻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지혜와 무지 사이에 올바른 의견이 있듯이, 아름다움과 추함 사이, 선과 악 사이에도 중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그 중간에 있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He is a great spirit (daimon), and like all spirits he is intermediate between the divine and the mortal.

그는 위대한 정령(다이몬)이며, 모든 정령처럼 신적인 것과 죽을 수밖에 없는 것 사이에 있다.

사랑은 신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기도와 신의 응답을 전하는 통역자이고, 그를 통해 신이 인간과 교류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사랑은 신이 아니라 신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됩니다. 디오티마가 소크라테스의 대화 상대로 설정된 것은 플라톤의 문학적 선택으로 보는 견해가 많고, 실존 인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10. 가난과 풍요의 아들

그렇다면 사랑의 부모는 누구인가. 디오티마는 신화를 들려줍니다. 아프로디테의 생일 잔치에서 신들이 연회를 하는 동안, 지혜의 신 메티스의 아들 "풍요(포로스)"가 신주에 취해 제우스의 정원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문 앞에서 구걸하던 "가난(페니아)"이 이를 보고 그의 곁에 누워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가 사랑입니다.

In the first place he is always poor, and anything but tender and fair, as the many imagine him; and he is rough and squalid, and has no shoes, nor a house to dwell in

우선 그는 언제나 가난하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아름답기는커녕 거칠고 초라하며, 신발도 살 집도 없다.

그러나 아버지를 닮아 그는 아름답고 선한 것을 쫓는 용감하고 꾀 많은 사냥꾼입니다. 이 모습은 책 마지막에서 알키비아데스가 묘사하는 소크라테스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디오티마는 이 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한 줄로 요약합니다. 항상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지혜로운 자도 무지한 자도 아니고 그 중간에서 지혜를 추구하는 자라는 설명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이미 지혜로워서 구하지 않고,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어리석은 줄 몰라 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철학(필로소피아, 지혜에 대한 사랑)의 정의가 됩니다.

11.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

디오티마는 소크라테스가 사랑의 본성을 오해한 이유도 짚어 줍니다.

사랑과 사랑받는 대상을 혼동했다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섬세하고 완전하고 복된 것은 사랑받는 대상이고, 사랑하는 원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구분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를 완벽하게 보는 착각, 그리고 사랑하는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는 착각을 동시에 설명합니다. 사랑은 아름답다기보다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운동이라는 이해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12. 사랑은 좋은 것을 영원히 갖고 싶은 마음

디오티마는 소크라테스를 한 걸음씩 인도해 사랑의 목적을 확인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을 바라는가. 아름다움이 자기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아름다움을 가지면 무엇을 얻는가. 이 물음에는 답이 어려워, 아름다움 대신 선이라는 말을 넣어 다시 묻습니다. 선을 가진 사람은 행복해지고, 행복을 바라는 이유는 더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를 바라는데 왜 모든 사람이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가. 디오티마는 시에 비유합니다. 만드는 모든 기술이 시이지만 음악과 운율에 관한 한 부분만 시라고 불리듯, 선과 행복에 대한 욕망 전체가 사랑인데 한 형태만 사랑이라는 이름을 독점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녀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를 직접 겨냥합니다.

lovers are seeking for their other half; but I say that they are seeking neither for the half of themselves, nor for the whole, unless the half or the whole be also a good.

사람들은 연인이 자기의 나머지 반쪽을 찾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자기의 반쪽도 전체도 찾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반쪽이나 전체가 또한 선이 아닌 한은.

사람들은 자기 것이 나쁘면 자기 손발이라도 잘라 버리고, 자기 것이라서가 아니라 좋은 것이라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사랑이 선을 영원히 소유하려는 욕구라는 정의로 이어집니다. 이 대목에서 사랑은 자기와 닮은 반쪽을 찾는 일에서 선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향한 일로 옮겨 갑니다.

13. 아름다움 속에서 낳는 일

그렇다면 선을 추구하는 사랑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가. 디오티마는 놀라운 답을 합니다.

The love of generation and of birth in beauty.

아름다움 속에서 낳고 출산하는 일에 대한 사랑.

모든 사람은 몸으로도 영혼으로도 임신하고 있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낳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낳는 일은 추한 곳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아름다운 곳에서만 이루어집니다. 아름다움은 출산을 돕는 여신과 같아서, 아름다운 것에 다가가면 임신한 것이 기쁘게 열리지만 추한 것을 만나면 움츠러든다는 설명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창조의 욕구가 됩니다. 사랑하는 이는 아름다움 곁에서 무언가를 낳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4. 죽을 몸이 영원에 이르는 길

왜 낳음을 원하는가.

to the mortal creature, generation is a sort of eternity and immortality

죽을 수밖에 없는 피조물에게 낳음은 일종의 영원이자 불멸이다.

그래서 사랑은 결국 불멸에 대한 사랑이라고 디오티마는 말합니다. 새와 짐승이 새끼를 위해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과 싸우고 굶주림을 감수하는 이유도 이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개체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몸의 머리카락, 살, 뼈, 피가 계속 바뀌고, 영혼의 습관과 의견과 두려움도 계속 오고 갑니다. 지식도 잊히고 다시 기억으로 갱신됩니다. 죽을 것들은 같은 것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을 대신할 새로운 것을 남김으로써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육체의 자손뿐 아니라 명성과 작품까지 포함합니다. 디오티마는 사람들이 불멸의 명성을 위해 자식을 위한 것보다 더 큰 위험을 감수한다고 말합니다.

15. 영혼으로 낳은 자식들

몸으로 임신한 사람은 아이를 낳고, 영혼으로 임신한 사람은 지혜와 덕을 낳습니다. 시인과 장인,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와 가정을 질서 있게 다스리는 지혜인 절제와 정의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름답고 고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그와 함께 덕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를 가르치려 하며, 그렇게 함께 낳은 아이들이 더 아름답고 더 불멸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녀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리쿠르고스와 솔론을 예로 듭니다. 이들은 사람 자식이 아니라 시와 법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자식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사랑이 가르침과 우정의 관계로 이어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스승과 제자, 벗들이 함께 무언가를 낳는 일이 가장 높은 형태의 사랑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16. 사랑의 사다리

이제 디오티마는 "작은 신비"를 지나 "큰 신비"로 소크라테스를 이끕니다. 이 대목이 『향연』의 정점입니다. 올바른 길은 젊을 때 아름다운 몸 하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 아름다움에서 고운 생각들을 낳다 보면, 한 몸의 아름다움이 다른 몸의 아름다움과 같은 종류임을 깨닫게 되어 한 사람에 대한 격렬한 사랑을 줄이고 모든 아름다운 몸을 사랑하게 됩니다. 다음 단계에서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몸의 아름다움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제도와 법의 아름다움, 학문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가 마침내 아름다움에 대한 하나의 학문에 이르게 됩니다. 이 순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begin from the beauties of earth and mount upwards for the sake of that other beauty, using these as steps only

지상의 아름다움에서 출발해, 저 다른 아름다움을 위해 이것들을 단지 디딤돌로 삼아 위로 올라가라.

이어서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모든 아름다운 형태로, 아름다운 형태에서 아름다운 행위로, 행위에서 아름다운 학문으로, 마침내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앎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 사다리는 사랑을 몸에서 영혼으로, 개인에서 보편으로 끌어올리는 길이며, 후대에 "사랑의 사다리"라고 불리게 됩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름다운 몸이 가치 없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처음 한 단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17. 아름다움 자체

사다리의 끝에서 사람은 갑자기 놀라운 아름다움을 봅니다.

beauty absolute, separate, simple, and everlasting

절대적이고 독립적이며 단순하고 영원한 아름다움

이 아름다움은 생기고 사라지지 않고, 보는 관점에 따라 아름답거나 추하지 않으며, 얼굴이나 손이나 말이나 지식 같은 어떤 모습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디오티마는 말합니다. 오히려 변하고 사라지는 다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이 아름다움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가장 서정적으로 표현된 곳으로 읽힙니다. 이 아름다움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삶이 인간이 살아야 할 삶이라고 그녀는 선언합니다. 거기서 사람은 아름다움의 영상이 아니라 실재를 낳으며 참된 덕을 낳고 기르게 되어, 인간으로서 가능한 한 신의 벗이 되고 불멸에 이른다고 합니다. 오늘의 독자는 이 이상을 지나치게 비육체적이고 엘리트적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개인적 소유에서 보편적 가치를 향한 운동으로 바꾸어 읽은 이 대목이 이후 서양 사상과 종교에 준 영향은 막대합니다.

18. 소크라테스의 결론

소크라테스는 디오티마의 이야기를 끝내고, 자신은 이 말에 설득되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설득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이 목적에 이르는 데 사랑보다 더 좋은 조력자는 쉽게 찾지 못할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에로스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이 결론은 앞의 연설들에 대한 가장 겸손한 응답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랑을 신으로 높이는 대신, 지혜와 아름다움을 향한 인간의 길로 이해하라고 권합니다.

19. 술 취한 알키비아데스의 난입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문이 요란하게 열리고 만취한 알키비아데스가 들이닥칩니다. 그는 잘생기고 재능이 넘치던 아테네의 젊은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소크라테스의 가장 유명한 제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는 에로스를 칭송하는 대신 소크라테스를 칭송하겠다고 선언합니다.

he is exactly like the busts of Silenus

그는 실레노스의 흉상과 똑같다.

조각가의 가게에서 파는 실레노스 상은 겉은 우스꽝스러운 얼굴이지만 열면 안에 신의 상이 들어 있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가 같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다시 이 책의 가장 큰 주제와 이어집니다. 겉으로는 가난하고 못생기고 무지한 척하지만, 속에는 황금 같은 지혜와 절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his outer mask is the carved head of the Silenus; but, O my companions in drink, when he is opened, what temperance there is residing within!

그의 겉모습은 실레노스의 조각된 머리이지만, 아, 술벗들이여, 그를 열어 보면 그 안에 얼마나 큰 절제가 깃들어 있는가!

20. 소크라테스의 유혹 실패

알키비아데스는 자기가 소크라테스의 마음을 얻으려 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자기의 아름다움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하인을 물리고 단둘이 만나고, 씨름을 청하고,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마침내 밤을 함께 보내며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아이러니하게 답하며 물러서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난 알키비아데스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I arose as from the couch of a father or an elder brother.

나는 아버지나 형의 침상에서 일어난 것처럼 일어났다.

그는 이 거절에 굴욕을 느끼면서도 소크라테스의 절제에 감탄했고, 그를 미워할 수도 얻을 수도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장면은 디오티마가 말한 사랑의 사다리 위에서 소크라테스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는 몸의 아름다움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 사다리를 이미 오른 사람입니다. 한편 알키비아데스는 사다리의 첫 단에서 내려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21. 영혼을 찌르는 철학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고백합니다. 그는 페리클레스 같은 위대한 연설가의 말을 들어도 영혼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소크라테스의 말을 들으면 자기 삶을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진다고 말합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에게 영혼을 돌보지 않고 아테네의 일에만 매달린다고 인정하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그의 곁에서 도망치지만 군중의 인기에 대한 사랑이 이기는 자신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는 이 고통을 이렇게 말합니다.

the pang of philosophy, which will make a man say or do anything.

철학의 고통, 그것은 사람에게 무슨 말이든 무슨 일이든 하게 만든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가 전쟁터에서 보여 준 인내, 포티다이아에서 한 아침부터 정오, 다시 밤새 서서 생각에 잠겼던 일, 델리온에서 퇴각하던 모습도 증언합니다. 자기 목숨을 구해 주고도 상을 양보한 소크라테스의 용기도 이야기합니다. 이 장면들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말로 그치지 않고 삶으로 증명되었다는 증거로 제시됩니다. 알키비아데스가 훗날 아테네의 배신자가 되고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에게는, 이 고백이 이루지 못한 상승의 기록으로도 읽힙니다.

22. 새벽, 그리고 잠들지 않은 소크라테스

알키비아데스의 연설 뒤에 잔치는 다시 시끌벅적해졌다가 사람들이 하나씩 잠들거나 돌아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리스토데모스가 새벽에 눈을 뜨자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만이 깨어 큰 잔을 돌려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고, 소크라테스는 같은 사람이 희극과 비극을 모두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이 곧 졸았고, 소크라테스는 둘을 재운 뒤 일어나 평소처럼 아침을 맞아 일과를 보냈다고 합니다. 철학자가 가장 오래 깨어 있었고, 사랑에 대한 이 긴 밤은 그의 평범한 하루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결말은 이 책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보여 줍니다. 가장 높은 사랑은 별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일상의 절제와 지속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향연』은 연설들이 길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읽기 좋은 책입니다. 먼저 아리스토파네스의 신화와 소크라테스(디오티마)의 연설을 읽고, 나머지는 시간이 있을 때 읽어도 좋습니다. 연설마다 어조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하세요. 파이드로스는 명예를, 파우사니아스는 법과 관습을, 에뤽시마코스는 과학을, 아리스토파네스는 신화와 유머를, 아가톤은 수사를 대표합니다. 이 연설들이 모두 부분적으로 옳다는 것이 이 책의 구성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연설은 이들을 부정하지 않고 더 높은 틀 안에 모읍니다.

디오티마의 사다리는 "플라톤적 사랑"이라는 말의 원천이지만, 흔히 쓰이는 "육체 없는 순수한 사랑"이라는 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 몸은 첫 단일 뿐 부정되지 않고, 사랑은 창조와 가르침과 우정으로 이어지는 활동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뒤에는 『국가』의 동굴 비유와 『파이돈』의 영혼 불멸 논증으로 이어 읽으면, 플라톤이 아름다움과 선, 이데아를 어떻게 하나의 사상으로 엮는지가 한결 선명해집니다. 사랑을 철학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 책의 시선은 지금도 낡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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