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4th century BC
Apology, Crito, and Phaedo
소크라테스의 변명 · 크리톤 · 파이돈
플라톤 Plato (c. 428–348 BC)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검토해 보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no evil can happen to a good man, either in life or after death.
선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든 죽은 뒤에든 어떤 악도 일어날 수 없다.
한눈에 보기
소크라테스는 책을 남기지 않았고, 그의 마지막 모습은 제자 플라톤의 세 대화편에 있다. 재판에서, 감옥에서, 죽음 앞에서 그는 같은 것을 보여 준다. 잘 사는 일은 이기는 일이 아니라 옳게 사는 일이다.
비슷한 책
- 아리스토텔레스 The Ethics of Aristotle (니코마코스 윤리학)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editations (명상록)
- 세네카 Seneca's Morals of a Happy Life (행복한 삶의 도덕)
한 권 요점
Socrates and Plato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소프로니스코스는 석공이었고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산파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아내 크산티페와 함께 살았고, 포티다이아와 델리온, 암피폴리스의 전투에 중무장 보병으로 참전했습니다. 그는 평생 아무것도 직접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제자들의 기록으로만 알 수 있고, 그중 가장 깊고 널리 읽힌 기록이 플라톤의 대화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저자는 플라톤이고, 주인공은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방식은 독특했습니다. 그는 아고라와 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정의, 용기, 경건 같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끈질기게 물었습니다. 답을 가르쳐 주는 대신 질문을 던져 상대가 스스로 모순을 보게 했습니다. 이 방식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었지만 불편함과 적의도 불러왔습니다. 기원전 399년, 일흔 살 무렵의 그는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로 아테네 시민 법정에 섰습니다. 고발자는 멜레토스, 아니토스, 리콘이었습니다.
플라톤은 기원전 428년경에 태어나 348년경에 세상을 떠난 철학자로, 소크라테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스물여덟 살쯤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플라톤의 삶 전체를 바꾸었고, 그는 스승을 기억하고 변호하기 위해 대화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아카데메이아를 세워 서양 철학의 중심을 만들었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세 편은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을 순서대로 보여 줍니다. 「변명」은 법정, 「크리톤」은 감옥, 「파이돈」은 죽음의 날입니다.
한 가지 알아 둘 점이 있습니다. 대화편 속 소크라테스의 말이 실제로 한 말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변명」은 소크라테스의 정신에는 충실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실제 발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니 이 글의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기억하고 그려 낸 소크라테스입니다. 그럼에도 이 세 편은 이후 이천사백 년 동안 사람들이 옳음과 용기,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되돌아가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줄거리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배심원 앞에서 하는 자기변론입니다. 그는 델포이 신탁이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그 말의 뜻을 확인하려고 사람들을 찾아다니게 된 사연을 말합니다. 그는 법정에서 변론을 하고도 근소한 차이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선고 뒤에도 그는 담담하게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크리톤」은 사형 집행을 앞둔 감옥에서의 대화입니다. 오랜 친구 크리톤이 새벽에 찾아와 탈옥을 권합니다. 델로스로 간 배가 돌아오면 사형이 집행되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탈옥이 옳은지를 함께 따져 보자고 하고, 끝내 거절합니다. 「파이돈」은 집행 당일의 이야기로, 제자 파이돈이 훗날 에케크라테스에게 그날을 전하는 형식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에 대해 제자들과 이야기하고, 독약을 마시고 숨을 거둡니다. 아래 열다섯 가지 항목은 이 세 편의 장면을 따라가며 지금도 곱씹을 만한 생각을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신탁은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하다고 했다
「변명」의 중심에는 델포이 신탁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왜 이런 악명을 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려고 친구 카이레폰의 일을 꺼냅니다.
he asked the oracle to tell him whether anyone was wiser than I was, and the Pythian prophetess answered, that there was no man wiser.
그는 신탁에게 나보다 현명한 사람이 있는지 말해 달라고 물었고, 피티아 여사제는 나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고 답했다.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듣고 당혹스러웠다고 합니다. 자신이 대단한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었기에, 그는 신탁의 뜻을 풀기 위해 무모한 시도를 합니다. 자기보다 현명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가 반박해서 신탁이 틀렸음을 증명해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도가 그를 평생의 질문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플라톤 시대에도 지금도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남들이 나를 높게 평가할 때, 나는 그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2.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
소크라테스는 정치가, 시인, 장인을 차례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사람과의 대화에서 얻은 결론을 이렇게 말합니다.
for he knows nothing, and thinks that he knows; I neither know nor think that I know.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해 정말 아는 바가 없었지만, 한 사람은 자기가 안다고 믿었고 다른 한 사람은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는 차이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 작은 차이가 자신이 신탁이 말한 지혜의 전부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이 일로 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지위가 높고 자부심이 큰 사람일수록 자신의 무지를 지적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은 겸손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지적 정직함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않는 사람만이 새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재판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용기라기보다 지적 정직함에서 나온 태도입니다.
For the fear of death is indeed the pretence of wisdom, and not real wisdom, being a pretence of knowing the unknown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참된 지혜가 아니라 지혜인 척하는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을 안다고 가장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이 가장 큰 악이라고 사람들이 두려워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죽음이 가장 큰 선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확실히 안다는 듯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믿는 어리석음입니다. 그가 확실히 아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더 나은 자, 곧 신이든 사람이든 그에게 불복종하고 부정의를 저지르는 일은 악이고 수치라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 앞에서 겁먹지 말고, 아는 것 앞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구분입니다. 이 구분은 오늘날에도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 데 도움이 됩니다.
4. 도시를 깨우는 등에가 되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에게 자신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청하면서, 자신을 신이 도시에 보낸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가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입니다.
I am that gadfly which God has attached to the state, and all day long and in all places am always fastening upon you, arousing and persuading and reproaching you.
나는 신이 이 나라에 붙여 놓은 등에다. 하루 종일 어디서나 너희에게 달라붙어 깨우고 설득하고 나무란다.
그는 아테네를 크고 고귀하지만 덩치 때문에 움직임이 둔한 말에, 자신을 그 말을 깨우는 등에에 비유합니다. 그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신이 다른 등에를 보내 주지 않는 한 남은 평생을 졸면서 지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대개 환영받지 못하지만, 그 사람이 없는 공동체는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잃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불편함이 자신의 임무라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불편한 질문을 하는 사람을 대할 때, 그리고 때로는 우리 자신이 그런 질문을 해야 할 때 떠올릴 만합니다.
5. 재산이 아니라 영혼을 돌보라
소크라테스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던 말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의 가르침의 전부라고 말합니다.
I do nothing but go about persuading you all, old and young alike, not to take thought for your persons or your properties, but first and chiefly to care about the greatest improvement of the soul.
나는 늙은이든 젊은이든 모두를 찾아다니며, 몸과 재산을 먼저 걱정하지 말고 무엇보다 영혼을 가장 좋게 가꾸는 일을 돌보라고 설득할 뿐이다.
그는 이어서 덕이 돈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덕에서 돈과 사람의 모든 좋은 것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I tell you that virtue is not given by money, but that from virtue comes money and every other good of man, public as well as private.
나는 말한다. 덕은 돈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돈과 사람의 다른 모든 좋은 것은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덕에서 나온다.
그는 이 가르침이 젊은이를 타락시키는 것이라면 자신은 해로운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겠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몸과 재산에는 신경을 쓰면서 정작 자기 안의 지혜와 진실, 영혼의 상태는 돌보지 않는다고 나무랍니다. 이 말은 성공과 재산을 쫓기 쉬운 우리에게 무엇을 먼저 돌볼 것인지 다시 묻게 합니다.
6. 검토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유죄 판결 뒤 형량을 정하는 자리에서, 소크라테스는 입을 다물고 낯선 도시에서 조용히 살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답합니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검토해 보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그는 날마다 덕에 대해, 그리고 자신과 남을 검토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사람에게 가장 큰 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사실이라고 덧붙입니다. 자신의 믿음과 선택을 한 번도 따져 보지 않은 채 습관과 관습으로만 사는 삶은 소크라테스에게 온전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이 문장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문장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이 남에게 요구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점입니다.
7. 선한 사람에게는 어떤 악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형이 선고된 뒤 소크라테스는 자기에게 투표한 사람들과 무죄를 지지한 사람들에게 각각 이야기합니다. 무죄를 지지한 사람들에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no evil can happen to a good man, either in life or after death.
선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든 죽은 뒤에든 어떤 악도 일어날 수 없다.
그는 죽음이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무 감각도 없는 깊은 잠 같은 것이거나, 영혼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좋은 사람은 해를 입지 않는다고 그는 믿습니다. 그의 확신은 죽음 이후에 대한 지식에서 나오지 않고, 해로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에서 나옵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해치는 것은 재산이나 목숨을 잃는 일이 아니라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에게도 화내지 않고, 그들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8. 누가 더 나은 쪽으로 가는지는 신만이 안다
「변명」의 마지막 문장은 조용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The hour of departure has arrived, and we go our ways—I to die, and you to live. Which is better God only knows.
떠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간다. 나는 죽으러, 너희는 살러. 어느 쪽이 더 나은지는 신만이 안다.
그는 사형을 받는 사람의 자리에서 판결한 사람들을 향해 말하면서, 누가 승리했는지 선언하지 않습니다. 죽는 쪽이 더 나은지 사는 쪽이 더 나은지는 자신도 모른다는 그의 앞선 태도와 일관됩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가졌으면서도 결과에 대해서는 오만하게 단정하지 않는 이 균형이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더 깊게 만듭니다. 분명한 원칙을 지키되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9.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다
「크리톤」은 이른 새벽 감옥에서 시작합니다. 친구 크리톤은 돈도 준비했고 도와줄 사람도 있으니 탈옥하라고 간절히 권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감정이 아니라 논증으로 답합니다.
not life, but a good life, is to be chiefly valued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은 삶이 아니라 좋은 삶이다.
그는 좋은 삶이 곧 정의롭고 명예로운 삶이라는 데 크리톤이 동의하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 원칙에 비추어 탈옥이 옳은지 아닌지를 따지겠다고 합니다. 크리톤이 걱정하는 돈, 평판, 아이들의 교육은 다수의 생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문제의 핵심은 "죽지 않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가"였습니다. 두려움과 애정이 몰아치는 순간에도 먼저 원칙을 확인하는 이 순서가 이 대화편의 힘입니다. 어려운 선택 앞에서 "무엇이 이득인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먼저 묻는 습관을 일깨웁니다.
10.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과 함께 이미 합의했던 원칙을 확인합니다. 그것은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해서 같은 방식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Then we ought not to retaliate or render evil for evil to any one, whatever evil we may have suffered from him.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도 보복해서는 안 되고, 그에게서 어떤 악을 당했든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
소크라테스는 이것이 다수의 도덕과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사람들은 대개 당한 만큼 갚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원칙에 동의하는 사람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공통의 근거가 없어서 서로를 경멸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그럼에도 크리톤에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거듭 확인합니다. 억울한 판결을 받은 사람이 탈옥하는 일조차 법과 나라에 악을 되갚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논증의 바탕입니다. 이 원칙은 지금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분노가 가장 클 때 자신이 어떤 원칙을 지키고 있는지를 묻는 기준이 됩니다.
11. 법은 부모와 같은 존재다
탈옥하려는 소크라테스 앞에 아테네의 법들이 나타나 말을 건넨다는 상상이 이 대화편의 중심입니다. 법들은 그가 법의 도움으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았다고 말합니다.
our country is more to be valued and higher and holier far than mother or father or any ancestor
조국은 어머니나 아버지나 어떤 조상보다도 훨씬 더 소중하고 더 높고 더 거룩하다.
법들은 부모에게 맞았다고 부모를 되받아칠 권리가 없듯이, 나라가 그를 벌한다고 나라를 해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라를 설득하거나, 설득하지 못하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논증에는 오랜 논쟁이 따릅니다. 부당한 판결에도 복종해야 하는가, 어디까지가 시민의 의무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만 소크라테스가 칠십 년을 이 나라에서 살면서 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떠날 수 있었는데도 남았다는 점, 곧 그 선택으로 법과 암묵적 약속을 맺었다는 점이 논증의 중요한 바탕입니다. 이 장면을 읽으며 시민과 나라의 관계를 따져 보는 일이 이 대화편의 가장 큰 쓸모입니다.
12. 마음에 울리는 목소리를 따른다
법들의 말이 끝나고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This, dear Crito, is the voice which I seem to hear murmuring in my ears, like the sound of the flute in the ears of the mystic
친애하는 크리톤, 이것이 내 귓속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일세. 입문자의 귓속에서 울리는 피리 소리처럼 말이네.
그는 이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서 다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며, 크리톤이 더 할 말이 있으면 해 보라고 합니다. 크리톤은 더 할 말이 없다고 답합니다. 소크라테스의 결론은 담담합니다. 신이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가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논증이 끝나고 남는 것은 설득된 이성과 깊이 울리는 확신입니다. 친구의 간절한 부탁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의 말과 자신의 원칙이 부딪힐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13. 철학자는 죽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날 제자들과 영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철학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the true philosophers, Simmias, are always occupied in the practice of dying, wherefore also to them least of all men is death terrible.
시미아스, 참된 철학자들은 늘 죽는 연습에 몰두해 있네. 그래서 죽음은 그들에게 누구보다도 덜 무서운 것이라네.
그가 말하는 죽음은 영혼이 몸에서 풀려나는 것이고, 철학자의 공부는 감각의 욕망에서 벗어나 영혼이 스스로 진리를 보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생 그것을 연습한 사람이 막상 죽음이 닥쳤을 때 괴로워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합니다. 이 영혼론에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몸의 욕구와 눈앞의 쾌락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하는 시간을 평소에 가지라는 요청으로 읽으면 오늘의 삶에도 닿는 데가 있습니다. 매일 짧게라도 감각에서 떨어져 생각하는 습관이 삶의 방향을 잡아 줍니다.
14. 나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을 묻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톤이 "자네를 어떻게 묻을까"를 묻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웃음 섞인 말로 답합니다.
Be of good cheer, then, my dear Crito, and say that you are burying my body only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게, 친애하는 크리톤. 자네는 내 몸만 묻는 것이라고 말하게.
그는 잘못된 말은 그 자체로 악일 뿐 아니라 영혼을 병들게 한다고 말하며, 소크라테스를 묻는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 말을 하고 그는 목욕을 하러 갔고, 아이들과 가족을 만난 뒤 제자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냅니다. 제자들은 아버지를 잃는 것처럼 슬퍼했다고 전해집니다. 죽음 앞에서도 말을 바로 쓰는 일에 신경 쓰는 모습은, 말이 생각에 미치는 힘을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진지하게 여겼는지를 보여 줍니다.
15. 가장 지혜롭고 가장 의로운 사람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퍼지는 동안 간수가 그의 발과 다리를 눌러 감각을 확인하는 것을 침착하게 지켜봅니다. 그리고 얼굴을 덮은 천을 벗고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Crito, I owe a cock to Asclepius; will you remember to pay the debt?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졌네. 잊지 말고 갚아 주겠나?
이 말의 뜻은 오랫동안 수수께끼였습니다. 조윗의 해설도 이 말이 후대에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고 적고, 건강을 되찾은 데 대한 감사의 제물이라는 해석을 하나 소개합니다. 어떤 뜻이든 분명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마지막 순간에도 자신의 작은 약속을 챙겼다는 점입니다. 파이돈은 이야기를 이렇게 맺습니다.
of all the men of his time whom I have known, he was the wisest and justest and best.
내가 알던 당대의 모든 사람 가운데 그는 가장 지혜롭고 가장 의롭고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
이 문장은 제자의 헌사이면서 플라톤이 세 편의 대화편 전체로 그리려 한 인물의 요약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 않았지만, 그의 삶 자체가 한 권의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세 편은 비교적 읽기 쉬운 철학 고전입니다. 가장 먼저 읽을 글은 「변명」입니다. 연설 형식이라 이해하기 쉽고, 소크라테스의 삶과 태도가 한 번에 드러납니다. 그다음에 「크리톤」을 읽으면 법과 정의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증을 볼 수 있고, 마지막으로 「파이돈」의 첫 부분과 마지막 장면을 읽어 보세요. 「파이돈」의 중간에는 영혼의 불멸에 대한 긴 논증이 있어서 처음에는 건너뛰어도 괜찮습니다.
읽으면서 소크라테스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가 가르치는 방식, 곧 확신을 던지지 않고 질문으로 상대의 생각을 풀어 가는 방식을 따라가 보세요. 문장마다 "나는 이것을 정말 아는가, 아니면 안다고 생각할 뿐인가"를 스스로 묻는 것이 이 책이 요구하는 읽기입니다. 이 한 가지 질문만 얻어도 소크라테스가 오늘의 우리에게 남긴 것을 충분히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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