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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335–323 BC

Politics

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384–322 BC)

man is naturally a political animal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law is reason without desire

법은 욕망 없는 이성이다.

한눈에 보기

나라는 인간이 잘 살기 위해 만든 공동체다. 어떤 체제가 좋은지는 누가 다스리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이익을 위해 다스리느냐, 그리고 시민을 어떻게 길러 내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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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요점

Aristotle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그리스 북부의 작은 도시 스타게이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실의 의사였고, 열일곱 살 무렵 아테네로 가서 플라톤의 학교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가 약 이십 년을 공부했습니다. 기원전 347년 플라톤이 세상을 떠나자 아테네를 떠나 여러 곳에서 연구했고,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의 부름으로 어린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기원전 335년 아테네로 돌아와 자신의 학교 리케이온을 세웠고, 알렉산드로스가 기원전 323년 갑자기 죽자 반(反)마케도니아 분위기가 거세져 아테네를 떠나 칼키스로 피했다가 이듬해인 기원전 32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치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후기 활동 시기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저작입니다. 한 번에 쓴 하나의 책이라기보다 여러 부분이 모인 것으로 보이며, 여덟 권으로 전해집니다. 책의 짜임이 매끄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고, 학자들 사이에서 권의 순서를 두고 논쟁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을 쓰는 바탕으로 여러 도시국가의 체제를 모아 조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책의 앞에 놓이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좋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다루고, 『정치학』은 그런 사람이 사는 좋은 공동체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다룹니다. 두 책은 하나의 질문에 대한 앞뒤 대답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이론에서 출발해 현실에 적용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는 실제 도시국가들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관찰하고, 거기서 어떤 조건에서 어떤 체제가 오래가는지를 이끌어 냅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철학적 논증과 구체적인 역사 사례가 함께 나옵니다. 스승 플라톤이 이상적인 국가를 그렸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한 최선"을 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쓸모가 큰 이유입니다.

이 책에는 읽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낄 대목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예제를 본성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고, 여성과 외국인에 대한 서술에도 당대의 편견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런 대목을 숨기지 않고, 그가 이 주장을 어떻게 폈고 왜 문제인지를 함께 짚습니다. 『정치학』의 가치는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통찰과 시대의 한계에 갇힌 주장이 한 책에 함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배울 것이 많다는 데 있습니다.

줄거리

제1권은 나라의 기원을 다룹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족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도시국가로 이어지는 공동체의 발전을 설명하고, 인간이 본성상 정치적 존재임을 주장합니다. 가정의 경영과 재산을 다루면서 노예제와 돈벌이에 관한 논의도 나옵니다. 제2권은 플라톤의 『국가』와 여러 도시의 이상적인 체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합니다. 제3권은 시민이란 누구이며, 좋은 시민과 좋은 사람은 같은가, 그리고 정치 체제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를 다룹니다.

제4권부터 제6권은 현실의 체제를 분석합니다. 민주정과 과두정의 여러 유형, 가장 현실적인 체제로 제시되는 혼합 체제와 중산층의 역할, 그리고 체제가 무너지는 원인과 그것을 막는 방법이 이어집니다. 제7권과 제8권에서는 최선의 국가를 그립니다. 행복과 덕, 도시의 규모와 위치, 시민의 교육, 여가의 의미가 중심 주제이며, 8권은 음악 교육을 논하는 도중에 끝나 있어 원문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래 스물여섯 가지는 이 흐름을 따라가며 지금 읽어도 쓸모가 있는 질문과 그의 한계를 함께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모든 공동체는 어떤 좋음을 위해 세워진다

『정치학』의 첫 문장은 『윤리학』의 첫 문장과 닮았습니다. 모든 행동이 어떤 좋음을 향하듯, 모든 공동체도 어떤 좋음을 위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every city is a society, and every society is established for some good purpose

모든 도시는 하나의 공동체이고, 모든 공동체는 어떤 좋은 목적을 위해 세워진다.

그는 이어서 가장 높은 목적을 가진, 다른 모든 공동체를 포함하는 공동체가 도시국가, 곧 폴리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치 공동체와 왕의 통치, 가정의 통치, 주인의 통치가 규모만 다를 뿐 같은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지적합니다. 큰 가정이 곧 작은 도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라가 가정이나 회사와 같은 원리로 운영된다는 생각, 곧 한 집안을 꾸리듯 나라를 경영하면 된다는 생각은 지금도 흔한데, 이 책은 출발점에서 이를 구분합니다. 나라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함께 다스리고 다스림받는 공동체이고, 그 점이 다른 통치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2.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가 인위적인 발명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자라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a city is a natural production, and that man is naturally a political animal

도시는 자연적인 산물이고,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다.

그가 말하는 "정치적"은 오늘날의 정치인이나 선거를 뜻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폴리스 안에서 함께 살도록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회 없이 살 수 있는 존재는 짐승이거나 신이라고 그는 덧붙입니다. 그리고 호메로스의 표현을 인용해 가족도 법도 없이 홀로 사는 사람은 성격이 사납고 새처럼 고독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람이 사회 속에서만 사람다워진다는 통찰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능력과 도덕과 지혜는 대부분 함께 사는 가운데 얻은 것입니다.

3. 말은 옳고 그름을 나누는 능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정치적 동물인 근거를 하나 더 듭니다. 벌이나 무리 지어 사는 짐승보다 인간이 더 사회적인 이유는 말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it is by speech that we are enabled to express what is useful for us, and what is hurtful, and of course what is just and what is unjust

우리가 우리에게 이로운 것과 해로운 것, 그리고 당연히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말 덕분이다.

짐승의 목소리도 쾌락과 고통은 전할 수 있지만, 이로움과 해로움, 정의와 불의를 말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인간뿐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함께 나누는 일이 가정과 도시를 이룬다고 그는 말합니다. 정치의 본질을 힘이나 이익의 다툼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말로 따져 보는 일로 보는 관점입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고 옳고 그름을 함께 논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정치가 무엇이 되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4. 전체가 부분보다 앞선다

이어지는 대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와 개인 가운데 무엇이 먼저인지를 묻습니다. 그의 답은 오늘날의 개인주의 감각과 다릅니다.

the notion of a city naturally precedes that of a family or an individual, for the whole must necessarily be prior to the parts

도시라는 관념은 본성상 가족이나 개인이라는 관념보다 앞선다. 전체는 필연적으로 부분보다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몸 전체를 없애면 손이나 발이 남는다고 말할 수 없다고 비유합니다. 돌로 만든 손은 이름만 손일 뿐 죽은 손이라는 것입니다. 사물은 그것이 하는 기능으로 규정되고, 기능을 잃으면 같은 이름의 다른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홀로 충분한 개인은 없고, 사회 없이는 사람이 사람다운 기능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논리는 개인을 전체에 종속시키는 근거로 쓰일 위험도 있지만, 사람의 정체성이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통찰로 읽으면 여전히 쓸모가 있습니다.

5. 법과 정의가 없으면 인간은 가장 나쁜 동물이다

같은 대목에서 그는 공동체 안에서 완성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을 비교합니다.

as by the completion of it man is the most excellent of all living beings, so without law and justice he would be the worst of all

공동체가 완성됨으로써 인간은 모든 생명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존재가 되지만, 법과 정의가 없다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나쁜 존재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불의가 무장했을 때 가장 다루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슬기와 용기라는 무기를 타고나는데 이것을 가장 정반대의 목적에도 쓸 수 있어서, 잘못 쓰는 사람은 가장 사악하고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정의는 정치적 덕이고, 이 규칙에 따라 나라가 질서를 가지며 무엇이 옳은지의 기준이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능력이 클수록 그것을 이끄는 도덕이 중요해진다는 이 지적은 오늘의 기술과 권력에 대해서도 그대로 통합니다.

6. 돈이 돈을 낳게 하는 일은 본성에 어긋난다

제1권의 후반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을 꾸리는 일과 돈벌이를 구분합니다. 필요한 물건을 얻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익 자체를 끝없이 쌓으려는 돈벌이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판받아야 할 것이 이자놀이입니다.

usury is most reasonably detested, as it is increasing our fortune by money itself, and not employing it for the purpose it was originally intended, namely exchange

이자놀이가 가장 마땅히 혐오받는 것은, 돈 자체로 재산을 늘리고 돈이 본래 의도된 목적인 교환에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어로 이자를 뜻하는 말은 "낳는 것"을 의미하며, 이자는 돈이 돈을 낳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자식이 부모를 닮듯 이자는 돈에서 태어난 돈이므로, 모든 돈벌이 가운데 가장 자연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이 논증은 중세 유럽의 이자 금지 논의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늘날의 금융 제도와 그대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될 때 삶이 어떻게 뒤집히는지를 경고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읽을 만합니다.

7. 노예제를 본성으로 설명한 논증과 그 한계

이 책에서 가장 불편한 대목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은 본성상 노예라는 주장을 폅니다. 그는 노예를 다른 사람의 재산이자 도구이며, 자기 자신으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것인 인간이라고 설명합니다.

that being who by nature is nothing of himself, but totally another's, and is a man, is a slave by nature

본성상 자기 자신으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의 것이며 인간인 존재는, 본성상 노예이다.

이 주장을 오늘날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 논증의 문제는 분명합니다. 누가 본성상 노예인지를 가려낼 기준이 없고, 실제로는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팔린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어려움을 알아서, 그렇다면 전쟁 포로가 모두 노예일 수는 없다고 하며 "야만인"만 노예라고 하자는 주장을 소개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 못했고, 자기 시대의 편견을 이성으로 포장했습니다. 이 대목은 뛰어난 철학자도 자기 사회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경고로 읽어야 합니다. 어떤 주장이 "자연스럽다"고 말해질 때, 누구에게 이로운 자연인지를 되묻는 습관이 여기서 나옵니다.

8. 모두의 것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제2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의 『국가』를 비판합니다. 수호자 계급이 아내와 자식, 재산을 공유한다는 구상에 대해 그는 현실적인 반론을 폅니다.

what is common to many is taken least care of; for all men regard more what is their own than what others share with them in

많은 사람에게 공동인 것은 가장 돌보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진 것보다 자기 것을 더 아끼기 때문이다.

그는 한 집안에서도 하인이 많을수록 오히려 일이 소홀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모든 시민이 수많은 아이의 아버지라면 누구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훗날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불리는 문제와 닿아 있습니다. 책임이 누구에게도 나뉘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지적은 오늘날의 조직 운영에도 그대로 쓰입니다.

9. 지나치게 하나가 되려는 나라는 오히려 나빠진다

플라톤은 나라가 가능한 한 하나가 되어야 좋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전제 자체를 의심합니다.

it is not for the best to endeavour to make a city too much one, because a family is more sufficient in itself than a single person, a city than a family

도시를 지나치게 하나로 만들려는 것은 최선이 아니다. 가정은 한 사람보다 자족적이고, 도시는 가정보다 자족적이기 때문이다.

도시는 여러 종류의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다양함에서 자족성이 나옵니다. 따라서 도시가 더 자족적일수록 좋다면 덜 하나일수록 좋다는 역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생각하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사회의 본질을 해치는 일이라는 비판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역할을 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는 구도는 다양성의 가치를 일찍이 짚은 대목입니다.

10. 완전한 시민은 재판하고 다스리는 데 참여한다

제3권은 나라의 구성 요소인 시민이 누구인지를 따지는 데서 시작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히 어떤 곳에 산다거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시민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가 내세우는 기준은 정치에 참여하는 몫입니다.

There is nothing that more characterises a complete citizen than having a share in the judicial and executive part of the government.

완전한 시민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정부의 재판과 집행 부분에 참여하는 몫을 가지는 것이다.

배심원이나 민회의 구성원처럼 일정한 기간이나 직책 없이 참여하는 역할도 정치 참여로 본다는 것이 그의 입장입니다. 시민은 구경꾼이 아니라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에 몫을 가진 사람이라는 정의입니다. 오늘날의 투표와 배심원 제도, 공공 의사결정 참여가 왜 중요한가를 설명하는 오래된 근거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정의에서 여성과 노예, 외국인이 제외된다는 점이 당시의 한계입니다.

11. 좋은 시민이 곧 좋은 사람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어서 좋은 시민과 좋은 사람이 같은 것인지를 묻습니다. 그는 선원의 비유를 듭니다. 배에는 노 젓는 사람과 키잡이와 갑판장이 있고 저마다 역할이 다르지만, 배의 안전이 공통의 관심사입니다.

the safety of the ship is the common business of all of them

배의 안전은 그들 모두의 공동의 일이다.

시민도 마찬가지로 역할은 달라도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공통의 관심이 있고, 그래서 시민의 덕은 그 나라의 체제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체제가 다르면 좋은 시민의 조건도 달라지므로 시민의 덕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반면 좋은 사람은 덕이 완전한 사람입니다.

an excellent citizen does not possess that virtue which constitutes a good man

훌륭한 시민은 좋은 사람을 이루는 그 덕을 반드시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 구분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부패한 체제에서 체제가 요구하는 대로 잘 따르는 사람이 좋은 시민일 수는 있어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규칙을 잘 지키는 것과 옳게 사는 것이 같지 않다는 통찰이며, 조직이 요구하는 성실함과 양심을 구분하게 해 줍니다.

12. 체제의 좋고 나쁨은 누구의 이익을 위해 다스리는가에 있다

제3권의 핵심은 체제를 가르는 기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스리는 사람의 수가 한 명인지 소수인지 다수인지에 더해, 그들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다스리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all those governments which have a common good in view are rightly established and strictly just

공동의 좋음을 목표로 하는 모든 정부는 올바르게 세워졌고 엄격한 의미에서 정의롭다.

반대로 통치자의 이익만 목표로 하는 정부는 잘못된 원리 위에 서 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정부는 노예에 대한 폭정이지만 도시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덧붙입니다. 그 결과 좋은 체제와 그 변질된 형태가 짝을 이룹니다.

a tyranny is a monarchy where the good of one man only is the object of government, an oligarchy considers only the rich, and a democracy only the poor; but neither of them have a common good in view

참주정은 한 사람의 이익만을 정부의 목표로 삼는 군주정이고, 과두정은 부자만 고려하며, 민주정은 가난한 사람만 고려한다. 그 어느 쪽도 공동의 좋음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민주정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만 챙기는 체제를 가리킨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핵심은 수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소수가 다스려도 공동의 이익을 위한다면 정당하고, 다수가 다스려도 한쪽의 이익만 챙긴다면 변질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제도를 평가할 때도 누가 결정하는가보다 누구를 위해 결정하는가를 함께 묻게 합니다.

13. 많은 사람이 모이면 한 사람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가 정치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놀랄 만큼 진지하게 답합니다. 다수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조건을 달아 둡니다.

though not one individual of the many may himself be fit for the supreme power, yet when these many are joined together, it does not follow but they may be better qualified for it than those

많은 사람 가운데 누구 한 사람이 최고 권력에 적합하지 않을지라도, 이 많은 사람이 함께 모이면 그들이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보다 더 적합할 수 있다.

그의 논거는 공공 연회의 비유입니다. 한 사람이 혼자 차린 식사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차린 식사가 더 낫듯이, 다수는 각자 덕과 지혜의 일부를 가지고 와서 하나로 합쳐지면 많은 발과 많은 손과 많은 지성을 가진 한 사람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음악과 시에 대한 판단도 어떤 사람은 한 부분을, 다른 사람은 다른 부분을 이해하고 모두 합쳐 전체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주장은 훗날 집단 지성을 논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단, 그는 다수가 지나치게 천박하지 않다는 조건을 달았고 모든 사안에서 다수가 낫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14. 법은 욕망이 없는 이성이다

사람이 다스릴 것인가, 법이 다스릴 것인가는 정치 철학의 오래된 질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훌륭한 사람 한 명이 다스리는 편이 낫지 않으냐는 반론도 검토한 뒤, 법의 지배에 무게를 둡니다.

law is reason without desire

법은 욕망 없는 이성이다.

이유는 정념이 가장 훌륭한 사람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법은 호불호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이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의사에 비유해 반론에 답합니다. 환자는 의사의 책보다 의사를 믿는 편이 낫지만, 의사가 적의 설득을 받은 것 같다는 의심이 들면 환자는 오히려 책을 찾는다고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미움이나 호의로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법이라는 객관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법이 모든 사례를 담지는 못하므로 판단하는 사람의 재량도 필요합니다. 개인의 판단과 규칙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지금도 제도 설계의 핵심 과제입니다.

15.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정은 뛰어난 사람을 추방한다

민주정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도편 추방 제도가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제도를 평등을 지키려는 장치로 설명합니다.

democratic states have established the ostracism; for an equality seems the principal object of their government

민주정의 국가들은 도편 추방을 만들었다. 그들 정부의 주된 목적은 평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권력이나 재산이나 친구 관계로 다른 사람보다 지나치게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을 일정 기간 도시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르고호의 선원들이 지나치게 뛰어난 헤라클레스를 배에 태우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그는 말합니다. 참주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이 제도에 일리가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입니다. 이 대목은 평등이라는 이상이 때로 탁월함을 억누르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긴장을 보여 줍니다. 한 사람이 지나치게 큰 힘을 갖는 것을 막는 일과 뛰어난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 사이의 균형은 오늘날에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16. 최선은 실행할 수 있는 최선이어야 한다

제4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가의 태도를 점검합니다. 이상적인 체제만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it is not enough to be able to perceive what is best without it is what can be put in practice

무엇이 최선인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실행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정치가가 가장 완전한 체제뿐 아니라 주어진 형편에서 가장 잘 맞는 체제, 그리고 이미 세워진 체제를 오래 보존하는 방법까지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앞선 저술가들이 다른 부분은 그럴듯하게 썼으면서도 실제로 쓸 수 있는 부분에서는 실패했다는 평가도 덧붙입니다. 이상과 현실을 연결하는 이런 태도가 『정치학』의 중심에 있습니다. 좋은 목표를 세우는 일만큼 지금 이 조건에서 실행 가능한 방법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17. 중산층이 두터울수록 나라가 안정된다

이 책의 가장 현실적인 통찰은 제4권의 중산층 논의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의 시민을 아주 부유한 사람, 아주 가난한 사람, 그 사이의 사람으로 나눕니다.

In every city the people are divided into three sorts; the very rich, the very poor, and those who are between them.

모든 도시에서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매우 부유한 사람, 매우 가난한 사람,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덕이 중용에 있다면 삶도 중간이 가장 행복할 것이고, 재산에서도 중간 수준이 낫다고 말합니다.

If this is universally admitted, that the mean is best, it is evident that even in point of fortune mediocrity is to be preferred

중간이 최선이라는 것이 보편적으로 인정된다면, 재산에서도 중간 정도가 더 낫다는 것이 분명하다.

매우 아름답거나 강하거나 부유한 사람, 또는 매우 가난하거나 약하거나 비천한 사람은 모두 이성에 따르기 어렵다고 그는 봅니다. 한쪽은 오만하고 다른 쪽은 비굴하여 각각 다른 방식으로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극단의 부자와 극단의 빈자가 맞서는 나라는 주인과 노예의 나라가 되기 쉽고, 중간 계층이 두터워야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는 안정된 나라가 된다는 것이 그의 논리입니다. 오늘날 중산층의 붕괴를 사회 불안의 원인으로 보는 논의와 맞닿아 있습니다.

18.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체제를 뒤흔든다

제5권은 체제가 왜 무너지는가를 다룹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보편적인 원인을 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에서 찾습니다.

those who aim at equality will be ever ready for sedition, if they see those whom they esteem their equals possess more than they do

평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기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을 보면 언제든 반란할 채비가 되어 있다.

그는 두 가지 부류를 구분합니다. 평등을 원하는 사람들과 평등에 만족하지 않고 우월함을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쪽은 어떤 면에서 같으면 모든 면에서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쪽은 어떤 면에서 우월하면 모든 면에서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생각이 부딪히면서 불만이 쌓이고 체제가 흔들립니다. 그리고 정작 가장 큰 자격이 있는 덕이 뛰어난 사람들은 가장 반란하지 않는다고 그는 씁니다. 사회 갈등의 상당수가 서로 다른 정의관의 충돌에서 나온다는 이 관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19. 선동가는 민주정을 무너뜨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체제마다 무너지는 전형적인 경로를 짚습니다. 민주정이 흔들리는 가장 흔한 원인은 선동가입니다.

Democracies will be most subject to revolutions from the dishonesty of their demagogues

민주정은 선동가들의 부정직함 때문에 가장 많이 혁명을 겪는다.

그가 든 설명은 구체적입니다. 선동가들은 재산 있는 사람들을 고발하여 그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뭉치게 만들고, 한편으로는 일반 민중을 그들에게 맞서게 합니다. 코스섬에서는 선동가의 사악함으로 민주정이 무너졌고, 로도스에서는 뇌물을 나눠 주고 해군 지휘관들에게 갚아야 할 돈을 갚지 못하게 하여 그들이 결국 뭉쳐서 민중 정부를 전복했다는 사례를 듭니다. 수천 년 전의 관찰이지만 오늘의 포퓰리즘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지적입니다. 사회의 한쪽을 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지지를 모으는 정치는 결국 그 체제를 약하게 합니다.

20. 큰 반란은 작은 일에서 시작하지 않고 작은 일에서 터져 나온다

체제가 무너지는 계기를 설명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요한 구분을 합니다. 사소해 보이는 다툼이 큰 변화를 낳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소한 일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But seditions in government do not arise for little things, but from them; for their immediate cause is something of moment.

그러나 정부 안의 반란은 사소한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소한 일에서 일어난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중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시라쿠사에서 두 젊은이의 연애 다툼이 정권 교체로 이어진 사례를 들어, 사소한 다툼이 지위가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때 가장 큰 결과를 낳는다고 설명합니다. 불씨 자체가 아니라 그 밑에 쌓여 있는 불만과 불평등이 진짜 원인입니다. 작은 사건이 큰 변화로 이어질 때 그것을 사건 탓으로만 돌리지 말고 쌓여 온 구조를 보라는 말입니다. 조직의 갈등에서도 흔히 해당되는 통찰입니다.

21. 행복은 가진 덕과 지혜만큼 누린다

제7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인 국가를 그리기 전에 먼저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부터 정합니다. 그의 결론은 『윤리학』과 같습니다.

every one enjoys as much happiness as he possesses virtue and wisdom, and acts according to their dictates

누구든 자신이 가진 덕과 지혜만큼, 그리고 그것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 만큼 행복을 누린다.

그는 이어서 신 자신도 외적인 좋음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 때문에 행복하다는 점을 예로 들고, 행운은 행복과 다르다고 구분합니다. 외적인 좋음은 우연이나 운에 달려 있지만 지혜롭고 정의로운 것은 운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도시에도 적용되어, 가장 좋고 가장 잘 행동하는 도시가 가장 행복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that city is happiest which is the best and acts best

가장 좋고 가장 잘 행동하는 도시가 가장 행복하다.

나라의 행복을 경제 규모나 군사력에서 찾지 않고 시민들의 덕과 행위의 질에서 찾는다는 점이 이 책의 기본 관점입니다.

22. 재산이 덕을 낳는 것이 아니라 덕이 재산을 낳는다

그는 사람들이 부와 권력과 명예를 끝없이 늘리려 하면서 덕은 조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습니다.

these external goods produce not virtue, but virtue them

이런 외적인 좋음이 덕을 낳는 것이 아니라 덕이 외적인 좋음을 낳는다.

그는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용기도 절제도 정의도 슬기도 없는 사람이 파리를 무서워하거나, 배고프다는 이유로 비열한 도둑질을 하거나, 푼돈 때문에 가장 가까운 친구를 죽이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부를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영혼의 좋음은 몸과 외적 소유물의 좋음보다 더 높다고 평가합니다. 『윤리학』에서는 행복에 외적 조건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여기서는 덕의 우위를 더 강조합니다. 두 입장은 모순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입니다. 조건은 필요하지만 중심은 어디까지나 어떻게 사는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23. 도시의 크기는 사람 수가 아니라 능력으로 잰다

이상적인 국가의 규모에 대해서도 그는 흥미로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사람 수가 많아야 위대한 도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반문합니다.

they ought rather to consider its strength than its numbers; for a state has a certain object in view

그들은 사람 수보다 그 도시의 힘을 고려해야 한다. 국가에는 추구하는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의 위대함은 그것이 자기 목적을 이루는 힘으로 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히포크라테스가 키가 더 큰 사람보다 더 위대한 의사였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합니다. 또 도시 안에는 노예와 외국인이 많이 있을 수 있으므로 진짜 시민의 수를 헤아려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규모의 크기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습관을 의심하게 합니다. 조직이나 도시가 커지는 것과 좋아지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24. 교육은 공적이어야 하고 모두에게 공통이어야 한다

제8권은 교육으로 시작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입법자가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일이 시민의 교육이라고 봅니다. 교육이 소홀한 나라의 체제는 해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there should be laws concerning education, and that it should be public

교육에 관한 법이 있어야 하고 교육은 공적이어야 한다.

그는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이 교육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이것을 공적인 일로 삼은 점을 칭찬합니다. 한편 교육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합의가 없다고 인정합니다. 이성을 기르려는지 품성을 바로잡으려는지, 삶에 유용한 것을 가르치려는지 덕을 가르치려는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지금도 같습니다. 교육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정해지지 않으면 어떤 교육도 방향을 잃습니다. 개인의 선택에 맡기지 않고 공동체가 시민을 길러 낸다는 이 입장은 교육을 정치의 중심에 놓은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25.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가 그 사람의 수준이다

이 책에서 가장 현대적으로 읽히는 대목이 여가에 관한 논의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을 가르치는 이유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nature requires that we should not only be properly employed, but to be able to enjoy leisure honourably

자연은 우리가 적절히 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여가를 품위 있게 누릴 수 있기를 요구한다.

그는 이것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노동과 휴식이 모두 필요하지만 휴식이 노동보다 낫고, 쉴 때 무엇을 할지를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잘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일은 여가를 위한 것이라는 관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는 이 여가가 노예의 노동에 기대어 가능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의 질문 자체는 오늘날 더 절실합니다. 일이 끝난 뒤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쉬는 시간이 비어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교육의 목표가 일할 사람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여가를 의미 있게 쓸 사람을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는 통찰은 곱씹을 만합니다.

26. 정복은 불의하게도 이루어질 수 있다

제7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입법자가 이웃 나라를 지배하고 정복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이 정치가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that cannot be lawful which is done not only justly, but unjustly also: for a conquest may be unjustly made

정의롭게만이 아니라 불의하게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합법적일 수 없다. 정복은 불의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가 환자에게, 키잡이가 승객에게 설득이나 강제를 쓰는 일이 기술의 일이 아니듯, 정치가가 이웃을 지배하는 법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본분이 아니라고 봅니다. 승리와 지배가 곧 정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정치의 목적이 영토와 힘의 확대가 아니라 시민의 좋은 삶에 있다는 책의 기본 관점과 이어집니다. 군사적 성공을 곧바로 정당성으로 여기는 태도를 경계하는 오래된 목소리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짜임이 매끄럽지 않은 여덟 권이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읽기보다 관심 있는 주제부터 골라 읽기를 권합니다. 가장 먼저 읽을 곳은 제1권의 처음 부분입니다. 도시가 자연적인 것이고 인간이 정치적 동물이라는 핵심 주장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제3권의 시민과 체제의 분류를 읽으면 책의 뼈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제4권의 중산층 논의와 제5권의 체제가 무너지는 원인은 지금의 정치와 비교하며 읽기에 좋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었다면 제2권의 비판을 같이 보면 두 철학자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제7권과 제8권은 이상 국가와 교육, 여가에 관한 부분이어서 일상의 질문과 가장 가깝습니다. 읽으면서 노예제나 여성에 관한 서술처럼 시대의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은 비판적으로 읽고, 그 주장이 어떤 논리로 구성되었고 어디서 무너지는지를 함께 보세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큰 가치는 결론보다, 현실을 관찰하고 구분하며 따져 보는 방식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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