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출판년도 1670
Pensées
팡세
생각하는 갈대가 남긴 미완성의 단상들
Man is but a reed, the most feeble thing in nature; but he is a thinking reed.
인간은 한 줄기 갈대, 자연에서 가장 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The heart has its reasons, which reason does not know.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한눈에 보기
수학자이자 신앙인인 파스칼이 변증서를 쓰려고 남긴 메모들. 우주의 두 무한 사이에 놓인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 오락으로 도망치는 마음, 관습과 상상력의 힘, 신이 있는가에 거는 내기, 이성이 닿지 못하는 마음의 앎을 이야기한다. 스물여섯 가지 단상으로 읽는다.
비슷한 책
- 아우구스티누스 The Confessions of Saint Augustine (고백록)
- 쇼펜하우어 The Wisdom of Life (인생의 지혜)
- 키르케고르 Selections from the Writings of Kierkegaard
한 권 요점
Pensées
『팡세』는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신앙인인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의 유고를 모은 책입니다. 제목의 "팡세"는 "생각들"이라는 뜻입니다. 파스칼은 기독교를 변호하는 큰 책을 쓰려 했지만 병으로 마치지 못했고, 그가 남긴 것은 종이 위에 적힌 수많은 토막과 메모였습니다. 이 토막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670년에 처음 책으로 묶여 나왔고, 정리 방식과 번호 체계가 판본마다 달라서 지금도 학자들이 순서를 두고 논쟁합니다. 그래서 『팡세』는 완성된 논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이 만들어지는 현장처럼 읽힙니다.
파스칼은 계산기를 만들고 페르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확률 이론의 초석을 놓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이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약한가를 말한다는 점이 이 책의 힘입니다. 그는 이성을 얕보는 사람이 아니라, 이성의 한계를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글은 짧고 날카로우며, 읽는 사람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논증보다 문장이 먼저 기억에 남는 글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책의 흐름을 따라 스물여섯 가지 단상을 읽습니다. 먼저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 오락과 상상, 관습과 정의를 읽고, 이어서 유명한 내기와 마음의 이성, 그리고 신앙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읽습니다. 신앙을 변호하는 책이라는 성격은 분명하지만, 파스칼이 비신자를 상대로 말하는 방식, 곧 인간을 먼저 철저히 해부하는 방식 때문에 신앙이 없는 독자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줄거리
『팡세』에는 줄거리가 없습니다. 크게는 인간을 분석하는 앞부분과 신앙을 변호하는 뒷부분으로 나뉘는 구상이 있었고, 현재의 판본은 그 구상에 따라 단상들을 장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정신과 문체에 대한 생각, 신 없는 인간의 비참, 내기의 필요, 믿음의 수단, 정의와 관습, 철학자들, 도덕과 교리, 기독교의 근본, 예언과 증거가 차례로 이어집니다. 이 글은 이 가운데 인간 이해와 내기, 마음의 이성을 중심으로 읽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생각하는 갈대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단상입니다.
Man is but a reed, the most feeble thing in nature; but he is a thinking reed.
인간은 한 줄기 갈대, 자연에서 가장 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을 짓누르기 위해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고, 증기 한 줄기, 물 한 방울이면 죽일 수 있다고.
The entire universe need not arm itself to crush him. A vapour, a drop of water suffices to kill him.
그를 짓누르려고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수증기 한 줄기, 물 한 방울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짓눌러도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우주보다 고귀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우주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은 모두 생각에 있습니다. 단상 348은 이를 다시 말합니다.
By space the universe encompasses and swallows me up like an atom; by thought I comprehend the world.
공간으로 보면 우주는 나를 원자처럼 감싸고 삼켜 버리지만, 생각으로 나는 세계를 이해한다.
인간의 위대함이 힘이나 크기가 아니라 생각이라는 이 선언은 파스칼이 이 책 전체에서 던지는 질문의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이 단상은 곧 이어 이렇게 정리됩니다. 잘 생각하도록 애쓰자, 이것이 도덕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2. 두 무한 사이의 인간
파스칼은 인간을 위대함 앞에 세우기 전에 먼저 작게 만듭니다. 그는 독자에게 자연 전체를 바라보라고 권합니다. 태양이 도는 큰 원도 별들이 도는 더 큰 원에 견주면 아주 작은 점이고, 우리의 상상력이 아무리 넓어져도 자연이 내놓을 소재를 다 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It is an infinite sphere, the centre of which is everywhere, the circumference nowhere.
그것은 무한한 구(球)이며, 그 중심은 어디에나 있고 둘레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다음 방향을 돌려 가장 작은 쪽을 보게 합니다. 진드기 한 마리를 놓고 그 몸의 부분, 관절, 핏줄, 피, 체액, 방울, 증기로 계속 쪼개어 들어가면 그 안에도 끝없는 우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두 심연 사이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For in fact what is man in nature? A Nothing in comparison with the Infinite
자연 속에서 인간은 도대체 무엇인가? 무한에 견주면 무(無)이다.
이어서 그는 무에 견주면 전체라고, 곧 무와 전체 사이의 중간이라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인간은 두 극단 사이에서 어느 쪽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호기심을 경탄으로, 경탄을 침묵으로 바꾸는 효과를 가집니다. 그는 인간이 이 놀라움 앞에서 따져 묻는 오만보다 침묵으로 바라보는 쪽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3.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
같은 감각이 가장 짧고 강렬한 문장으로 나타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The eternal silence of these infinite spaces frightens me.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바로 앞에서 파스칼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 삶의 짧은 시간이 앞뒤로 영원 속에 삼켜지고, 내가 차지하고 또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내가 알지 못하고 나를 알지 못하는 무한한 공간 속에 잠겨 있는 것을 보면 두렵고, 왜 저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고 그때가 아니라 지금인지 놀랍다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여기에 두었는가. 이 단상은 당시의 새로운 우주관, 곧 무한한 우주라는 생각이 사람에게 준 불안을 가장 정직하게 표현했다고 읽힙니다. 우주가 무한하다는 사실에 위로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파스칼은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두려워합니다.
4. 위대함과 비참함
『팡세』의 인간 이해는 한 가지로 요약됩니다. 인간은 위대하고 동시에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이 두 면을 하나로 묶는 단상이 있습니다.
The greatness of man is great in that he knows himself to be miserable. A tree does not know itself to be miserable.
인간의 위대함은 자기가 비참한 줄 안다는 데 있다. 나무는 자기가 비참한 줄 모른다.
곧 비참함을 아는 것 자체가 위대함이라는 역설입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They are the miseries of a great lord, of a deposed king.
그것은 위대한 영주의, 왕좌에서 쫓겨난 왕의 비참함이다.
폐허가 된 집은 비참하지 않고 오직 인간만이 비참하다는 말도 이어집니다. 비참함은 원래 더 높은 자리에 있었다는 기억이 있어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불행은 그의 몰락을 증명하는 동시에 본래의 위대함을 증명한다는 논리입니다. 이 역설은 파스칼이 이후 신앙 변호의 토대로 삼는 구조입니다. 인간이 이렇게 모순된 존재라면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5. 천사도 짐승도 아닌
인간의 중간 처지를 가장 간명하게 말한 구절입니다.
he is neither angel nor brute, but man
그는 천사도 짐승도 아닌 인간이다.
이 말은 토끼를 쫓는 사냥을 두고 하는 말에서 나옵니다. 위대한 영혼을 가진 인간이 한 마리 토끼를 잡는 일에 온 정신을 쏟는 모습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거기서 벗어나 늘 긴장하며 살려는 사람은 인간 이상이 되려는 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작은 일에도 큰일에도, 모든 것에도 아무것에도 능한 존재라는 설명이 따릅니다. 이 구절은 완벽해지려는 압박과 평범함에 만족하려는 게으름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라는 조언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6.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들
이 책의 가장 현대적인 통찰 가운데 하나입니다. 궁정과 전쟁터에서 사람들이 치르는 수많은 고생과 위험, 다툼과 모험을 살펴보던 파스칼은 이런 결론에 이릅니다.
all the unhappiness of men arises from one single fact, that they cannot stay quietly in their own chamber.
사람들의 모든 불행은 단 하나의 사실에서 나온다. 그들이 자기 방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살 만한 재산이 있는 사람이 집에서 즐겁게 지낼 줄 안다면 바다로 나가거나 도시를 포위하러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가. 파스칼은 한 번 더 파고들어 이유를 찾습니다. 우리의 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너무나 비참해서, 이것을 가까이서 생각하면 아무것도 우리를 위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생각하지 않기 위해 바쁘게 움직입니다. 이것을 그는 "오락(디베르티스망)"이라고 부릅니다.
7. 왕에게도 오락이 필요하다
오락은 가난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가장 높은 지위인 왕을 떠올려 보라고 파스칼은 권합니다. 모든 쾌락을 누리는 왕이라도 오락이 없이 혼자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오락은 사람의 행복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지탱하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이렇게 쓰기도 합니다.
If our condition were truly happy, we would not need diversion from thinking of it in order to make ourselves happy.
우리의 처지가 정말 행복하다면, 행복해지기 위해 그것을 생각하지 않도록 오락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락을 즐기는 것 자체를 나무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오락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가 우리의 처지를 드러낸다는 관찰입니다. 그는 죽음과 비참과 무지에 맞서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이 행복해지려고 아예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이 진단은 스마트폰과 끝없는 콘텐츠 속에서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오늘의 모습에도 놀랄 만큼 잘 들어맞습니다.
8. 상상력, 오류의 여왕
파스칼은 인간의 판단을 흔드는 가장 강한 힘으로 상상력을 지목합니다.
It is that deceitful part in man, that mistress of error and falsity
그것은 인간 안의 속이는 부분, 오류와 거짓의 여주인이다.
그녀가 더 교묘한 이유는 언제나 거짓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항상 틀리다면 오히려 진리의 기준이 될 텐데, 대개 거짓이면서도 참과 거짓에 같은 표정을 지어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가장 현명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상력의 설득력이 대단하다고 지적하며, 이성이 항의해도 소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상상력은 사람을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건강하게도 병들게도 만들고, 이성을 믿게도 의심하게도 부정하게도 만든다는 것입니다. 위엄 있는 법관의 가운이나 의사의 복장이 판단에 영향을 주는 사례들이 이어집니다. 이 대목은 우리의 판단이 얼마나 외양에 좌우되는지를 최초로 정밀하게 묘사한 글 가운데 하나입니다.
9. 클레오파트라의 코
작은 것이 역사를 바꾼다는 가장 유명한 문장입니다.
Cleopatra's nose: had it been shorter, the whole aspect of the world would have been altered.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짧았다면 세계의 모습이 달라졌을 것이다.
파스칼은 사랑의 원인과 결과를 보면 인간의 허영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원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je ne sais quoi)"이고 결과는 끔찍하다는 것입니다. 너무 작아서 알아볼 수도 없는 것이 나라 전체와 군주, 군대, 온 세계를 흔든다는 설명입니다. 이 문장은 역사의 큰 흐름이 우연한 작은 것에 달려 있을 수 있다는 감각을 한 줄로 전하며, 인간의 이성적 설명에 대한 풍자이기도 합니다.
10. 습관은 제2의 본성
파스칼은 본성과 습관의 경계에도 질문을 던집니다.
I am much afraid that nature is itself only a first custom, as custom is a second nature.
나는 본성이란 것이 그 자체로 첫 번째 습관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몹시 두렵다. 습관이 제2의 본성인 것처럼.
부모가 자녀에 대한 자연스러운 사랑이 시들까 봐 걱정한다는 말에서 시작한 질문입니다. 시들 수 있는 본성은 어떤 본성인가, 습관이 본성을 없앤다면 습관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말인가. 그는 인간의 본성이 철저히 자연스러운 것이면서 인간에게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없고 자연스러운 것을 잃지 않을 수 없다고 이어 말합니다. 오늘의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 논쟁을 3백 년 앞서 던진 문제입니다. 그는 이 점에서 교육과 습관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강조합니다.
11. 강 하나로 바뀌는 진리
정의에 대한 대목은 이 책에서 가장 날카로운 사회 비판입니다. 인간 사회의 질서를 무엇 위에 세울 것인가. 개인의 변덕인가, 정의인가. 인간은 정의를 모른다고 파스칼은 말합니다. 정의를 안다면 "모든 사람이 자기 나라의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가장 보편적인 격언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A strange justice that is bounded by a river! Truth on this side of the Pyrenees, error on the other side.
강 하나로 경계가 그어지는 이상한 정의여!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는 진리이고, 저쪽에서는 오류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합니다.
Three degrees of latitude reverse all jurisprudence; a meridian decides the truth.
위도 3도면 모든 법학이 뒤집히고, 하나의 자오선이 진리를 결정한다.
강 건너편에 산다는 이유로 나를 죽여도 되는 정의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따지는 대목이 이어집니다. 그는 자연법이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이성이 한번 타락하자 모든 것이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정의의 본질을 입법자의 권위에, 어떤 사람은 군주의 이익에, 어떤 사람은 현재의 관습에 둔다는 것입니다. 다만 파스칼은 이 회의주의를 사회 파괴로 이어 가지 않습니다. 정의가 무너진 곳에서 힘 없는 정의가 무력해지고 정의 없는 힘이 폭력이 된다는 생각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질서 자체는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결론에 이릅니다. 이 점이 그의 사회관의 복잡한 부분입니다.
12. 모든 필요를 채워 주는 사람
이 짧은 단상은 인간의 욕구를 풍자합니다.
Man is full of wants: he loves only those who can satisfy them all.
인간은 필요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그 모든 필요를 채워 줄 수 있는 사람만을 사랑한다.
"저 사람은 훌륭한 수학자다"라고 누가 말하면, 그는 수학과 상관이 없으니 자기를 하나의 명제로 볼 것이라고 파스칼은 응수합니다. 훌륭한 군인이라면 자기를 포위된 도시로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 모든 필요에 두루 맞출 수 있는 "정직한 사람(오네트 옴므)"이라는 이상입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교양 있는 만능인을 높이 보는 당시 프랑스의 이상을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13. 하느님이 있는가, 없는가
이제 이 책의 가장 유명한 논증입니다. 파스칼은 신이 있는지를 이성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고 먼저 인정합니다.
God is, or He is not.
신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이다.
그는 이 문제가 끝없이 먼 곳에서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겨루는 도박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성은 이 도박에서 어느 쪽도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내기를 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으냐는 반문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Yes; but you must wager. It is not optional. You are embarked.
그렇다. 그러나 당신은 내기를 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당신은 이미 배에 올랐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걸고 있다는 뜻입니다. 믿지 않기로 하는 것도 하나의 내기라는 것입니다.
14.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가
내기가 불가피하다면 어느 쪽에 걸어야 할까. 파스칼은 계산을 합니다. 이성과 의지, 지식과 행복이라는 두 가지를 걸어야 하고, 피해야 할 것은 오류와 불행이라는 두 가지입니다. 이성은 어느 쪽을 택하든 충격받지 않으니, 따질 것은 행복입니다.
If you gain, you gain all; if you lose, you lose nothing.
이기면 모든 것을 얻고, 지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그는 이 논리를 더 밀고 갑니다. 이길 확률과 질 확률이 같고, 이기면 무한히 행복한 삶을 얻으며, 걸어야 하는 것은 한정된 유한한 삶뿐이라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계산은 후에 확률론과 의사결정 이론의 선구로 평가됩니다. 또한 이 논증에는 많은 반론이 따라붙었습니다. 신의 개념이 하나가 아닌데 왜 하필 이 신에게 거느냐, 이득을 위한 믿음이 진짜 믿음인가, 신이 그런 계산적 믿음을 기뻐하는가 같은 것입니다. 파스칼 자신도 이것이 믿음의 증명이 아니라 믿지 못하는 사람을 향한 말임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5.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가
내기를 받아들이면서도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졌다"고 답하는 사람에게 파스칼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Endeavour then to convince yourself, not by increase of proofs of God, but by the abatement of your passions.
그렇다면 신에 대한 증거를 더 늘려서가 아니라, 당신의 정념을 줄여서 스스로를 설득하려고 노력하라.
믿음의 걸림돌은 증거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욕망이라는 진단입니다. 그리고 처방이 이어집니다.
Follow the way by which they began; by acting as if they believed
그들이 시작한 길을 따르라. 믿는 것처럼 행동하라.
그는 성수를 만지고 미사를 올리는 일을 예로 듭니다. 행동이 마음을 바꾸고, 정념을 눌러 주리라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믿음을 머리의 결정이 아니라 삶의 훈련으로 본다는 점에서 후대의 많은 신앙 전통과 닿아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 처방은 가장 비판받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믿음을 연기로 만들 수 있느냐는 의문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이 담화를 쓴 사람이 쓰기 전과 후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는 말로 이 부분을 끝맺습니다.
16. 마음의 이성
『팡세』에서 이 구절만큼 널리 인용되는 문장은 많지 않습니다.
The heart has its reasons, which reason does not know.
마음에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파스칼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천 가지 일에서 느낀다고. 그리고 인간이 보편적 존재를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자기 자신도 자연스럽게 사랑하며, 둘 가운데 하나에 마음을 닫을 수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지는 단상은 신앙의 위치를 명확히 합니다.
It is the heart which experiences God, and not the reason.
신을 경험하는 것은 마음이지 이성이 아니다.
이 말이 이성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파스칼은 수학자였고, 이성이 정직하게 따르면 한계에 이른다고 믿었습니다. 그 한계 너머의 앎, 곧 직관과 감정의 앎이 있다는 것이 그의 요점입니다. 이는 "나는 이유를 대지 못하지만 안다"는 경험, 곧 사랑이나 신뢰,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 같은 경험을 가리킵니다. 파스칼이 말한 "마음"은 감정이라기보다 이성보다 앞서 진리의 기본 원리를 직관하는 능력이라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17. 감추어진 신
파스칼은 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앙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Let them at least learn what is the religion they attack, before attacking it.
적어도 자기가 공격하는 종교가 무엇인지는 배우고 나서 공격하라.
그는 이 종교가 신을 분명히 볼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이 어둠 속에 있고 신이 스스로를 숨겼다고 말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성경이 신에게 붙인 이름이 "숨은 신(Deus absconditus)"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은 진심으로 찾는 사람에게만 알아볼 수 있도록 가려 두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반박은 이 종교의 주장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는 증거가 모호한 이유를 신의 의도로 설명하는 방식이어서 비판도 많지만, 신의 부재를 느끼는 경험을 신앙 안에 포함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입니다.
18. 의심하는 것은 불행이지만, 찾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내기 앞부분에서 파스칼은 무관심을 가장 강하게 비판합니다. 영혼의 불멸이라는 문제는 우리에게 너무 중요해서,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감각을 잃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진지하게 찾는 사람과 그저 살아가는 사람을 구분합니다.
it is a great evil thus to be in doubt, but it is at least an indispensable duty to seek when we are in such doubt
이렇게 의심 속에 있는 것은 큰 불행이지만, 그런 의심 속에 있을 때 찾는 것은 적어도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다.
그는 의심 때문에 괴로워하며 애쓰는 사람에게는 연민을, 찾지도 않으면서 편안히 지내는 사람에게는 분노와 놀라움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작은 일에는 분노하고 두려워하면서 죽음 앞에서는 태연하다는 모순이 "초자연적인 잠"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비판은 다소 가혹하지만, 가장 큰 질문을 질문하지 않고 지나가는 삶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19. 이성의 두 절벽
파스칼은 이성과 회의주의 사이의 균형도 짚습니다. 그는 "우리에게는 어떤 독단주의도 극복할 수 없는 증명의 무능력이 있고, 어떤 회의주의도 이길 수 없는 진리의 관념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지만, 진리가 있다는 생각 자체를 버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균형은 이성을 맹신하는 독단과 이성을 포기하는 회의주의 양쪽 모두를 비판하는 파스칼의 방법입니다. 이 지점에서 그는 철학자들이 인간의 위대함만 보거나 비참함만 보며 반쪽 진실에 머문다고 비판합니다. 인간의 진실은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하는 데 있다는 것이 그의 확신입니다.
20. 믿음은 선물이다
파스칼은 신앙이 이성의 결과물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그는 "믿음은 신의 선물이며, 우리가 그것을 추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다른 종교들은 믿음에 이르는 수단으로 추론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사람을 믿음으로 이끌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에 이르는 순서에서 첫째는 마음이 기울어지는 일이라고 이어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구약을 읽지 않고도 마음의 성향으로 믿음을 얻는다고 하며, 그들도 증거를 아는 사람과 똑같이 훌륭하게 자기 종교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마음으로 판단하는 사람과 지성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 구분은 신앙의 지적 정당화와 체험적 확신이 서로 다른 길이라는 점을 일깨웁니다.
21. 비참함과 위대함을 설명하는 이야기
파스칼의 변증은 결국 한 가지 질문에 이릅니다. 인간이 이렇게 모순된 존재라면, 이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그의 답은 기독교의 두 축, 곧 본성의 타락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인간이 본래 위대했으나 타락했다는 이야기가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을 동시에 설명하고, 구원의 가능성이 그 모순의 해결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신앙의 전제를 공유하는 사람에게는 설득력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인간의 모순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반론에 부딪힙니다. 그럼에도 파스칼이 먼저 인간을 정밀하게 해부한 뒤에야 신을 말한다는 방법은 신앙 여부와 상관없이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22. 파스칼과 몽테뉴
『팡세』에는 몽테뉴의 그림자가 곳곳에 있습니다. 인간 이성의 약함, 관습의 힘, 정의의 상대성에 대한 많은 관찰이 몽테뉴에게서 왔고, 파스칼은 그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단상 234에서는 몽테뉴가 우리가 바보를 보면 충격받고 습관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았지만 그 이유를 보지 못했다고 평합니다. 효과는 보았으나 원인은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몽테뉴가 인간의 모순을 보며 웃었다면, 파스칼은 같은 모순을 보고 떨며 그 원인을 찾으려 했다는 대비가 가능합니다. 두 사람을 함께 읽으면 인간에 대한 회의가 어떻게 체념과 탐구로 갈라지는지가 보입니다.
23. 오락과 내기와 마음을 하나로 묶으면
『팡세』의 세 가지 유명한 주제, 곧 오락, 내기, 마음의 이성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사람은 비참함을 보지 않으려고 오락으로 도망치고, 도망칠 수 없는 질문 앞에서는 내기를 해야 하며, 그 내기 끝에서 이성이 닿지 못하는 마음의 앎에 기댑니다. 이 흐름은 이성에 대한 신뢰에서 한계를 거쳐 마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파스칼은 이 길이 모든 사람에게 같다고 말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길 위에서 자기 질문을 회피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24. 읽을 때 조심할 점
『팡세』는 완성된 책이 아니고, 파스칼이 직접 순서를 정한 책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단상은 앞뒤 맥락 없이 읽으면 뜻이 달라집니다. 판본에 따라 번호와 배열이 다르므로, 인용할 때는 어느 판본의 번호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파스칼의 신앙 변증은 17세기 프랑스 가톨릭, 특히 그가 가까이했던 얀센주의 신학의 맥락 속에 있어서, 오늘의 독자에게는 낯선 교리 논쟁도 많습니다. 이 글에서 다룬 부분은 그 가운데 신앙을 전제하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인간 이해와 내기, 마음의 앎에 한정했습니다.
25. 이 책이 남긴 것
『팡세』는 프랑스 산문의 고전이면서 철학과 신학, 문학에 걸쳐 긴 영향을 남겼습니다. 인간을 위대함과 비참함의 모순으로 보는 시각은 키르케고르와 실존주의자들에게 이어졌고, 내기의 논증은 확률론과 의사결정 이론의 사고 실험으로 계속 논의됩니다. "마음의 이성"은 이성과 감정, 지성과 직관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읽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의 오락과 회피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26. 이 책을 읽는 방법
『팡세』는 한 번에 많이 읽기보다 한 단상씩 천천히 읽는 책입니다. 이 글에서 다룬 단상 가운데 마음에 걸리는 것 몇 개를 골라 며칠 동안 곱씹어 보세요. 읽는 순서로는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을 다룬 앞부분(단상 139~165, 206, 346~348, 397)을 먼저 읽고, 내기(233)와 마음의 이성(277~278)을 다음에 읽기를 권합니다. 정의와 관습을 다룬 단상(291~294)도 짧지만 인상적입니다.
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던진 책들과 나란히 읽으면 더 풍성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불안한 마음이 신에게서 쉴 곳을 찾는 이야기이고, 쇼펜하우어의 『인생의 지혜』는 신앙 없이 같은 문제를 다룹니다. 키르케고르의 글은 이성의 한계 앞에서 도약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파스칼은 이 모두의 한가운데서, 가장 정직하게 불안을 말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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