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1851년 출간
Moby-Dick
모비딕
고래에게 다리를 잃은 선장 아합의 복수 항해에 말단 선원 이스마엘이 올라, 흰 고래를 향한 한 사람의 집념이 배와 사람들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끝까지 지켜보는 이야기
Call me Ishmael.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 주십시오.
It was the whiteness of the whale that above all things appalled me.
무엇보다 나를 두렵게 한 것은 고래의 흰색이었다.
한눈에 보기
화자 이스마엘은 마음이 가라앉을 때마다 바다로 나가는 사람으로, 이번에는 포경선에 오르기로 한다. 뉴베드포드의 여관에서 문신투성이 작살잡이 퀴퀘그와 한 침대를 쓰다 둘도 없는 벗이 되고, 낸터킷에서 피쿼드호에 함께 오른다. 선장 아합은 출항 뒤에도 한참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갑판에 나타나, 자신의 다리를 앗아 간 흰 고래 모비딕을 쫓겠다는 맹세를 모든 선원에게 받아 낸다. 항해는 고래 사냥과 해체, 고래학과 철학의 곁가지, 다른 배들과의 만남을 지나며 깊어지고,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반대와 소년 핍의 광기, 쌓여 가는 불길한 징조 끝에 사흘간의 추격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날 피쿼드호는 침몰하고 이스마엘 혼자 살아남아 다른 배에 구조된다. 열일곱 가지 대목으로 읽는다.
비슷한 책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보물섬』 (Treasure Island)
- 쥘 베른 『해저 2만 리』 (Twenty Thousand Leagues Under the Sea)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
한 권 요점
Moby-Dick
『모비딕』은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이 쓴 장편소설로, 1851년에 나왔습니다. 멜빌은 1819년에 태어나 1891년까지 산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젊은 시절 포경선을 탄 경험이 이 책의 바탕에 있다고 흔히 말합니다. 책은 어원과 발췌문의 목록으로 시작해 제1장부터 제135장까지 이어지고 에필로그로 끝납니다. 줄기는 하나입니다. 아합 선장이 자신의 다리를 앗아 간 흰 향유고래를 쫓아 세계의 바다를 돌고, 그 집념이 배 전체를 삼키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곧게 달리지 않습니다. 고래의 분류와 해부, 그림과 법과 요리, 밧줄과 기름 가마 같은 장들이 사이사이에 끼어들고, 희곡 형식의 장과 독백도 섞여 있습니다. 이 곁가지들은 사건을 늦추는 장식이 아니라, 고래라는 존재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시도와 그 한계를 쌓아 올려 마지막 추격에 무게를 싣는 장치입니다.
줄거리
어원·발췌, 제1~12장: 뉴베드포드의 두 사람
책은 문법학교의 폐결핵 걸린 조교가 낡은 사전의 먼지를 털며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는 모습으로 열립니다. 여러 나라 사전에서 '고래'라는 낱말을 모아 놓은 어원 목록이 이어지고, 이어서 성서와 고전, 시와 항해기에서 긁어모은 고래 언급이 발췌문으로 줄을 섭니다. 편찬자는 이것을 진짜 고래학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못 박고, 발췌에는 고래에게 침몰한 에식스호의 기록과 낸터킷의 노래처럼 뒤의 이야기를 미리 비추는 대목도 들어 있습니다. 제1장에서 이스마엘은 돈도 흥미도 없고 마음에 부슬비 내리는 11월이 올 때마다 바다로 나간다고 밝힙니다. 맨해튼 부두에 몰린 몽상가들을 보며 사람이 왜 물에 끌리는지 묻고, 나르키소스가 물속의 그림자에서 붙잡을 수 없는 삶의 환영을 보았다고 풀이합니다. 그는 늘 일반 선원으로 배를 타 왔고, 이번 포경 항해는 운명이 짠 각본이자 거대한 흰 고래의 환영에 이끌린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12월 토요일 밤 낡은 가방 하나를 든 이스마엘은 뉴베드포드에 닿지만 낸터킷행 배는 이미 떠난 뒤입니다. 얼어붙은 거리를 헤매다 '스파우터 여관'을 찾아 들어가고, 방이 없어 작살잡이와 한 침대를 쓰게 됩니다. 그 사내가 머리를 팔러 나갔다는 말에 겁을 먹고 있는데, 한밤에 문신투성이 사내가 돌아와 작은 우상 앞에서 제를 올리고 도끼 파이프를 문 채 침대로 뛰어듭니다. 이름은 퀴퀘그. 이스마엘은 술 취한 기독교인보다 깨어 있는 식인종이 낫다며 잠들고, 아침에는 퀴퀘그의 팔이 자신을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것을 봅니다. 퀴퀘그는 옷을 입는 예의를 지키고 작살로 면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마엘은 뉴베드포드 거리를 걷다 이 도시의 저택과 정원이 모두 바다에서 작살로 끌어올린 재산임을 알고, 진눈깨비 속에서 포경선원 예배당을 찾습니다. 벽에는 바다에서 죽은 이들의 추모판이 걸려 있고, 메이플 신부는 배 모양 설교단에 줄사다리로 올라 사다리를 끌어올린 채 요나서를 풀이합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친 요나가 풍랑 속에서 바다에 던져지고 고래에게 삼켜져 참회하는 이야기이며, 신부는 이를 불편한 진실을 전해야 할 사명의 교훈으로 맺습니다. 여관으로 돌아온 이스마엘은 우상을 깎는 퀴퀘그를 지켜보다 그의 정직함에 마음을 열고, 둘은 담배를 나눠 피우며 이마를 맞대고 마음의 벗이 됩니다. 새벽 침대에서 퀴퀘그가 들려준 내력은 이렇습니다. 지도에 없는 섬 로코보코의 왕족 출신으로, 기독교 땅을 보고 싶어 배에 뛰어올라 선원이 되고 작살잡이로 자랐지만, 기독교인 뱃사람들의 방탕에 실망해 이교도로 죽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제13~22장: 낸터킷, 피쿼드호, 출항
이스마엘과 퀴퀘그는 손수레로 짐을 끌고 낸터킷행 범선에 오릅니다. 항해 중 둘의 다정함을 비웃던 시골뜨기가 돛대에 휩쓸려 바다에 빠지자, 퀴퀘그가 뛰어들어 그를 건져 냅니다. 낸터킷에 닿은 화자는 모래뿐인 외딴 섬에서 대양 전체로 나아가 고래와 싸우는 섬사람들을 정복자에 견주어 찬양합니다. 둘은 허시 부인의 여관 트라이 포츠에서 조개와 대구 차우더를 먹습니다. 퀴퀘그가 신 요조에게 물은 결과 배는 이스마엘 혼자 골라야 했고, 그는 고래 뼈로 장식된 낡고 우울한 피쿼드호를 택합니다. 공동 선주 펠레그와 빌닷에게 거친 면접을 치르고 300분의 1 지분으로 계약하며, 펠레그에게서 선장 아합의 사정을 귀띔받고도 아합의 얼굴은 보지 못한 채 돌아섭니다. 퀴퀘그는 요조를 머리에 얹고 하루 종일 라마단 금식을 하고, 이스마엘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친구의 믿음을 존중합니다. 퀴퀘그가 개종했다는 증명을 요구하는 선주들 앞에서 이스마엘은 모든 사람이 속한 '제일 회중교회'라는 임기응변으로 넘어가고, 퀴퀘그는 작살로 갑판 너머의 타르 얼룩을 맞혀 실력을 보여 90분의 1 지분으로 계약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 앞에 누더기 차림의 엘리야가 나타나 '영혼'과 '천둥 영감 아합'에 대해 알쏭달쏭한 말을 흘리고 돌아섭니다. 출항 준비는 분주하고, 아합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성탄절 낮 펠레그와 빌닷이 선장 대신 갑판에서 명령을 내리며 닻을 올리고, 도선사 역할을 마친 두 노인이 보트로 내려간 뒤 피쿼드호는 홀로 대서양으로 나아갑니다.
제23~28장: 변론, 항해사들, 아합의 모습
제23장은 출항 날 밤 키를 잡았던 벌킹턴을 기리는 짧은 장입니다. 화자는 폭풍 속의 배에게는 항구가 오히려 위험이듯, 깊은 사유는 육지의 안락을 피해 끝없는 바다의 독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24~25장에서는 포경업이 천하고 더럽다는 세간의 편견에 변론을 폅니다. 군인도 도살자이며 고래잡이 덕에 세상의 등불이 켜지고, 포경선은 오지를 열었다고 열거하고, 자신의 대학은 포경선이었다고 맺습니다. 왕의 대관식에 쓰는 기름도 가장 순수한 향유고래 기름일 수밖에 없다는 능청스러운 후기가 이어집니다. 제26~27장은 승선한 이들을 소개합니다.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낸터킷 출신 퀘이커로 신중하고 양심적이며 미신에 약하고, 이등항해사 스텁은 위기에서도 콧노래를 부르는 낙천가이며, 삼등항해사 플라스크는 고래를 커다란 쥐쯤으로 보는 땅딸막한 호전가입니다. 작살잡이는 스타벅의 퀴퀘그, 스텁의 타슈테고, 플라스크의 거인 다구이고, 선원 대부분은 여러 섬 출신이며 소년 핍도 그 속에 있습니다. 출항 며칠 뒤 마침내 아합이 갑판에 나타납니다. 청동상 같은 몸에 머리에서 목으로 번개 자국 같은 흉터가 내려가고, 향유고래 뼈 의족을 갑판 구멍에 박은 채 말없이 바다를 응시합니다. 이스마엘은 흉터에 대한 선원들의 여러 소문과 위압감, 막연한 연민이 섞인 인상을 받습니다.
제29~41장: 맹세와 흰 고래의 소문
밤마다 갑판을 서성이는 아합에게 스텁이 의족 소리가 선원들을 깨운다고 조심스레 말하자 아합은 "개처럼 선실로 꺼져라"고 호통을 칩니다. 아합은 담뱃대가 더는 마음을 달래 주지 못한다며 불붙은 파이프를 바다에 던집니다. 스텁은 아합의 상아 다리에 걷어차인 꿈 이야기를 플라스크에게 들려주고, 아합이 흰 고래를 보면 목이 터져라 외치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피비린 사연을 직감합니다. 제32장은 고래학을 다룬 에세이입니다. 화자는 고래를 물고기로 보고 몸집에 따라 2절판, 8절판, 12절판의 세 '책'으로 나누고, 체계를 미완으로 남겨 둔 채 "신이여, 무엇이든 완성하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맺습니다. 제33~34장은 선장 아래의 위계를 보여 줍니다. 아합이 식탁 상석에서 고기를 썰어 주는 동안 모두 숨죽이고, 세 작살잡이가 왁자하게 먹어 대면 창백한 도우보이가 겁을 냅니다. 제35장에서 이스마엘은 첫 망보기를 서며 꿈결 같은 몽상에 빠져 정체를 잃고 바다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제36장 어느 날 아합이 전 선원을 선미로 불러 모읍니다. 그는 고래를 보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고 함성을 끌어낸 뒤 스페인 금화를 돛대에 못 박으며, 주름진 흰 이마와 굽은 턱, 작살 구멍 셋이 난 흰 고래를 찾는 자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타슈테고와 다구, 퀴퀘그가 그 고래를 알아보고, 아합은 '모비딕'이라는 이름과 다리를 잃은 사연을 털어놓습니다. 스타벅이 복수가 아니라 고래잡이를 하러 왔다고 반대하지만, 아합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가면이며 그것을 꿰뚫어야 한다고 맞서 선원들을 휘어잡고 작살 소켓에 술을 부어 모두에게 맹세시킵니다. 제37~39장은 독백입니다. 아합은 자신의 광기가 정점에 이르렀다고 선언하고, 스타벅은 광인에게 영혼이 압도된 것을 괴로워하면서도 그를 도울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며, 스텁은 이상한 일에는 웃음이 가장 현명한 답이라며 흥얼거립니다. 제40장 한밤 앞갑판에서는 여러 나라 선원들이 합창하고 춤추다 시비가 붙는데, 스콜이 닥쳐 모두 흩어지고 핍은 흰 고래 맹세에 놀라 기도합니다. 제41장에서 이스마엘은 자신도 맹세에 가담했음을 고백하고, 흰 고래에 얽힌 소문을 풀어냅니다. 어디에나 있고 불멸이라는 미신, 눈처럼 흰 이마와 혹, 교활하게 되돌아서 배를 부수는 악의, 그리고 귀향길에 몸과 영혼의 상처가 하나가 되어 광기를 숨긴 채 복수만을 위해 출항한 아합의 내력입니다.
제42~53장: 흰색, 낯선 사람들, 첫 추격
제42장은 흰색의 장입니다. 이스마엘은 아합에게 흰 고래가 무엇인지는 이미 말했으니 자신에게는 무엇이었는지 밝히겠다며, 순결과 신성의 상징인 흰색이 북극곰과 백상어, 알비노, 시체의 창백함에서는 오히려 공포를 키운다고 풀이합니다. 그 이유를 우주의 텅 빈 무의미, 색이 없는 무신론의 색이기 때문이라고 짐작하며 흰 고래가 그 상징이라고 맺습니다. 제43장에서는 한밤 당직 선원 아치가 뒤쪽 선창에서 누군가의 기침 소리가 난다고 속삭이는 복선이 깔립니다. 아합은 선실에서 낡은 해도를 펴 놓고 조류와 향유고래의 철 따른 이동을 연구하고(제44장), 모비딕이 자주 나타난 적도 해역의 시기를 이미 놓쳤으니 1년 동안 세계의 바다를 훑으며 기다릴 계획을 세웁니다. 잠 속에서도 악몽에 시달려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오는 그의 복수심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된 듯합니다. 제45장에서 이스마엘은 모비딕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우화로 읽히지 않도록, 에식스호가 1820년 고래에게 침몰한 사건과 오언 체이스의 수기 같은 증거를 댑니다. 제46장은 아합의 속셈을 짚습니다. 스타벅은 이 추적을 속으로 혐오하고 선원들도 돈이라는 현실적 동기가 없으면 열기가 식을 것이므로, 아합은 관행대로 망루에 사람을 세우고 평범한 고래잡이도 계속하게 합니다. 제47장 흐린 오후 이스마엘은 퀴퀘그와 매트를 짜며 날실은 필연, 씨실을 넣는 손은 자유 의지, 무심한 칼질은 우연이라는 사색에 잠깁니다. 그때 타슈테고가 고래를 외치고, 아합 곁에 유령처럼 낯선 다섯 사람이 솟아납니다. 검은 옷에 흰 터번을 쓴 늙은 페달라와 호랑이 같은 누런 피부의 네 사내입니다(제48장). 첫 추격에서 안개와 돌풍 속에 퀴퀘그의 작살이 빗나가고 보트가 물에 잠기지만 밤이 새자 피쿼드호가 다가와 모두 구조됩니다. 이스마엘은 위험이 농담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말하고, 선실에서 퀴퀘그를 유언 집행인으로 삼아 유언장을 씁니다(제49장). 제50장은 선주들이 허락한 적 없는 선장 직속 보트와 선원의 존재를 설명합니다. 선원들은 곧 놀라움에 무뎌지지만 페달라만은 아합과 숨은 연결이 있는 수수께끼로 남습니다. 제51장 달 밝은 밤 페달라가 은빛 물줄기를 처음 알아보고 모두 추격하지만 물줄기는 사라지고, 같은 일이 며칠 되풀이되자 일부 선원은 모비딕이라 믿고 두려워합니다. 희망봉 근처 폭풍에서 아합은 잠도 자지 않고 바람을 노려봅니다. 제52장에서 해골처럼 바랜 포경선 앨버트로스호가 다가오지만 선장의 나팔이 바다에 떨어져 대답을 들을 수 없고 배는 멀어집니다. 제53장은 외딴 바다에서 포경선들이 만나 소식을 나누는 사교의 관습 '갬'을 설명하며, 아합이 흰 고래 소식을 줄 수 없는 선장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는 이유를 해석합니다.
제54~68장: 타운호의 이야기, 그림과 사냥, 해체
희망봉 부근에서 귀향하는 포경선 타운호를 만나 모비딕 소식을 듣는데, 이스마엘은 리마의 한 여관에서 스페인 청년들에게 들려준 방식 그대로 이야기를 옮깁니다(제54장). 항해사 래드니가 오대호 출신 스틸킬에게 청소를 명하며 망치를 휘두르자 스틸킬이 그의 턱을 부수고, 선원들은 항명하다 제압됩니다. 복수를 꾸미던 스틸킬 앞에 모비딕이 나타나 래드니를 물어 끌고 갑니다. 제55~57장은 고래 그림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따지는 장들입니다. 인도 석굴의 조각부터 학자들의 삽화까지 비판하고, 프랑스 화가 가르느리의 판화를 최고로 꼽으며, 선원들이 이빨과 뼈에 새기는 공예와 별자리 속의 고래를 이야기합니다. 제58장 피쿼드호는 참고래의 먹이인 노란 브릿 벌판을 지나고, 화자는 바다가 제 자식 고래마저 바위에 내던지는 무자비함을 말하며 영혼의 평화로운 섬에서 함부로 떠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제59장 다구가 흰 덩어리를 보고 모비딕이라 외쳐 아합이 보트를 내리지만, 가까이 가 보니 수많은 팔이 뻗은 거대한 대왕오징어입니다. 스타벅은 차라리 모비딕과 싸웠으면 했다고 외칩니다. 제60~63장은 사냥의 도구를 설명합니다. 작살 밧줄과 던지는 기술, 뱃머리의 홈 파인 막대 '크로치'가 소개되고 사람은 누구나 포경 밧줄에 싸여 산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제61장에서 이스마엘이 졸다가 눈앞의 향유고래를 발견하고, 스텁이 파이프를 문 채 선원들을 독려하며 추격합니다. 타슈테고가 작살을 던지고 스텁이 창으로 급소를 찌르자 고래는 피를 뿜고 죽습니다. 제64~66장에서 스텁은 고래를 배 옆에 매달고 한밤에 꼬리 스테이크를 구워 먹으며 요리사 플리스를 불러 상어 떼에게 설교를 시키고, 고래 요리의 역사와 상어 학살 장면이 이어집니다. 제67~68장은 일요일 아침 피쿼드호가 도살장으로 변하는 모습입니다. 큰 도르래와 윈들러스로 기름층을 오렌지 껍질처럼 벗겨 내고 기름 창고에 감아 두며, 화자는 두꺼운 기름층이 고래의 이불이라며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제69~85장: 머리와 몸, 법, 분수
머리가 잘리고 가죽이 벗겨진 흰 고래 시체가 배 뒤로 떠내려가자 상어와 바닷새가 몰려들어 잔치를 벌입니다. 멀리서 본 시체가 암초로 오인되어 항해일지에 위험 표시로 오르는 풍자도 있습니다(제69장). 정오의 무풍 속에 아합이 매단 향유고래 머리를 스핑크스처럼 바라보며 바다 밑에서 본 것을 말해 보라고 독백하지만 머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제70장). 제71장에서는 낸터킷의 제로보암호를 만납니다. 전염병이 돌아 메이휴 선장은 보트로 접근만 하고, 자칭 대천사 가브리엘이라는 셰이커교 출신 광신자가 아합이 흰 고래를 쫓겠다고 하자 저주를 퍼붓습니다. 아합이 전하려던 편지는 모비딕에게 죽은 항해사 앞으로 온 것이어서, 가브리엘이 칼에 꽂아 되돌려 보냅니다. 제72장에서 이스마엘은 고래 등에 내려간 퀴퀘그를 원숭이 밧줄로 붙들고 있으며,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사람도 끌려가는 샴쌍둥이 같은 처지에서 인간 모두가 서로의 운명에 매여 있다는 생각을 끌어냅니다. 제73장 스텁과 플라스크가 참고래를 잡아 두 종류의 머리가 배 양쪽에 걸리고 균형이 맞습니다. 제74~80장은 머리와 얼굴을 읽는 장들입니다. 향유고래와 참고래의 머리, 파성퇴 같은 정면, 하이델베르크 통에 비유되는 경뇌유 저장고, 타슈테고가 통 속으로 곤두박질쳤다가 퀴퀘그가 칼로 머리에 구멍을 내 구해 내는 장면, 관상학과 골상학으로 읽는 고래의 이마와 뇌가 이어집니다. 제81장에서는 브레멘의 융프라우호가 기름을 얻으러 왔다가 고래 떼를 두고 피쿼드호와 경주하고, 제82~83장은 포경의 영예를 페르세우스와 성 조지, 헤라클레스와 요나로 입증하며 요나 이야기를 둘러싼 익살스러운 반론을 늘어놓습니다. 제84장 스텁이 흔들리는 보트 뱃머리에 서서 달아나는 고래에게 긴 창을 던져 급소를 맞히는 '피치폴링'을 보여 주고, 제85장은 고래의 호흡과 분수를 해설하며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의심과 천상의 일부에 대한 직관을 함께 지니자고 맺습니다.
제86~99장: 꼬리, 대함대, 기름 가마, 금화
이스마엘은 다른 시인들이 영양의 눈을 노래할 때 자신은 고래의 꼬리를 찬미하겠다고 말하고, 힘 속에서도 우아한 그 움직임을 설명한 뒤 꼬리조차 다 알지 못하니 얼굴은 더욱 모른다고 고백합니다(제86장). 피쿼드호가 순다 해협에 가까워지자 수천 마리의 향유고래 떼가 나타나 추격이 벌어지고, 뒤에서 말레이 해적선이 따라붙지만 따돌립니다. 보트가 고래 떼 한가운데 고요한 호수까지 끌려 들어가 새끼와 어미를 보지만, 상처 입은 고래가 날뛰자 간신히 탈출합니다(제87장). 제88~90장은 고래 무리의 생태와 포경의 법을 다룹니다. 묶인 고기는 묶은 쪽의 것이고 풀린 고기는 먼저 잡는 사람의 것이라는 두 원칙을 화자는 노예와 아일랜드, 텍사스에까지 빗대고, 해안에서 잡힌 고래의 머리는 왕의 몫이고 꼬리는 왕비의 몫이라는 영국 법과 실제로 일어난 압류 사건을 비꼽니다. 제91~92장에서 피쿼드호는 프랑스 포경선 로즈버드호를 만납니다. 스텁은 통역 장난으로 초보 선장이 병든 고래를 풀어 버리게 만들어 용연향을 건집니다. 제93장 겁 많은 핍은 스텁의 보트에서 두 번째로 뛰어내려 홀로 바다에 남겨지고, 한참 뒤 건져졌을 땐 얼이 빠져 사람들이 미쳤다고 부르지만 화자는 그것이 하늘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제94장 이스마엘은 굳은 경뇌유를 손으로 주무르다 아합의 맹세를 잊고 보편적 다정함에 빠져듭니다. 제95~98장은 고래 기름을 얻는 과정입니다. 비계 써는 일꾼의 사제복, 갑판 위의 벽돌 가마, 램프, 저장과 정리가 차례로 나옵니다. 제96장에서 이스마엘은 가마의 불길을 보다 졸아 배를 거의 뒤집을 뻔하고, 불을 오래 보지 말라는 경고를 얻습니다. 제99장 아합은 돛대에 못 박힌 금화를 새삼 들여다보며 모든 것이 결국 자신의 모습이라고 해석하고, 스타벅과 스텁, 플라스크, 퀴퀘그, 페달라, 핍이 저마다 다르게 읽습니다.
제100~118장: 뼈와 불, 빈 배, 사분의
영국 포경선 새뮤얼 엔더비호에서 아합은 뼈 의족과 선장의 뼈 의수로 악수하고, 모비딕에게 팔을 잃은 부머 선장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머가 다시 상대하기 싫다고 하자 아합은 고래가 간 방향만 캐묻고 급히 돌아옵니다(제100장). 제101~105장은 엔더비 가문의 포경 역사에서 시작해, 이스마엘이 트랑크 섬의 신전이 된 고래 뼈를 본 경험과 골격의 크기, 화석 고래, 그리고 고래는 종으로서 불멸이라는 논증으로 이어집니다. 제106~108장은 보트에 뛰어내리다 의족이 상한 아합이 목수에게 향유고래 턱뼈로 새 의족을 만들게 하는 장면입니다. 제109장 기름이 새자 스타벅이 선창을 점검하자고 청하지만 아합은 장전한 총을 겨누며 선장은 하나뿐이라고 소리칩니다. 스타벅이 아합은 아합을 조심하라고 말하며 물러납니다. 제110장 병으로 죽음 앞까지 간 퀴퀘그는 낸터킷의 검은 카누 관을 부탁해 관 속에 누워 보다가 문득 할 일이 생각났다며 일어납니다. 제111장 태평양에 들어선 이스마엘은 이 바다를 찬미하지만 아합은 흰 고래만 생각합니다. 제112~113장 늙은 대장장이 퍼스는 술 때문에 가족을 모두 잃고 바다로 온 사람이고, 아합은 그의 대장간에서 경주마 편자 못으로 작살을 두드리게 하고 타슈테고와 퀴퀘그, 다구의 피로 담금질합니다. 제114장 일본 어장에서 잠시 평온이 닿고, 제115장 기름을 가득 채우고 잔치 차림으로 귀향하는 배첼러호를 만난 아합은 자신은 빈 배로 떠나는 길이라며 거절하고 낸터킷의 모래가 든 작은 병을 바라봅니다. 제116장 죽어 가는 고래가 머리를 해 쪽으로 돌리는 모습에 아합은 숙연해지고, 제117장 보트에서 밤을 지새우다 페달라가 아합이 죽기 전에 관 둘을 보게 될 것이고 삼밧줄만이 그를 죽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제118장 아합은 사분의가 태양의 높이만 알려 줄 뿐 모비딕이 어디 있는지는 알려 주지 못한다며 저주하고 갑판에 내던져 부숩니다.
제119~127장: 폭풍과 징조
일본 근해에서 태풍이 덮치고 돛대마다 하얀 불꽃이 타오릅니다. 아합은 피뢰침을 거부하고 불을 향해 도전을 선언하며, 작살 끝에 붙은 불을 입김으로 꺼 버리고 모두를 서약으로 묶습니다(제119장). 폭풍 속에서 스타벅이 돛대를 내리자고 건의하지만 아합은 아무것도 내리지 말고 단단히 묶으라고 명령합니다(제120장). 한밤 뱃전의 스텁과 플라스크, 돛대 위에서 투덜대는 타슈테고의 장면이 이어집니다(제121~122장). 새벽 무렵 태풍이 잦아들자 스타벅은 선실 문 앞의 장전된 머스킷을 보고 이 광인이 배 전체를 파멸로 끌고 간다고 생각하며 잠든 아합의 문에 총구를 겨눕니다. 아내와 아들을 떠올리며 갈등하던 중 아합이 잠꼬대로 모비딕을 외치자 스타벅은 총을 걸이에 돌려놓습니다(제123장). 번개가 나침반 바늘을 뒤집어 놓자 아합은 쇠바늘을 자화시켜 새 나침반을 만들어 보이며 자석의 주인을 자처하고, 선원들은 슬금슬금 물러납니다(제124장). 썩어 가던 측정 줄이 끊기고 물에 빠졌던 핍이 넋이 나간 채 나타나자 아합은 가슴이 아파 그를 자기 선실에서 지내게 합니다(제125장). 새벽 어둠 속 사람 같은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날 아침 선원 하나가 바다로 떨어지며 낡은 구명부표도 가라앉자, 퀴퀘그의 관이 구명부표로 고쳐집니다(제126~127장). 아합은 죽음의 상징이 생명을 구하는 도구가 된 것이 영혼 불멸의 암시일지 생각하다 이내 어둠으로 돌아갑니다.
제128~134장: 만남의 끝, 추격 이틀
돛대마다 사람이 매달린 레이첼호가 다가옵니다. 선장 가디너는 모비딕을 쫓던 보트 한 척이 사라졌고 그 안에 열두 살 아들이 있다며 이틀만 수색을 도와 달라고 매달리지만, 아합은 시간이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레이첼호는 자식 잃은 어머니처럼 멀어집니다(제128장). 핍은 아합을 따라가려 매달리고, 아합은 핍이 자기 병을 낫게 하는 존재라며 선실에 남아 있으라고 달랩니다(제129장). 모비딕이 머물 해역에 이르자 결의가 선원들을 짓누르고, 아합이 고래를 먼저 보려 바구니로 돛대 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사나운 바다매가 모자를 낚아채 바다에 떨어뜨립니다(제130장). 딜라이트호의 선장은 모비딕에게 당한 보트의 잔해를 가리키며 작살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아합은 서둘러 배를 돌립니다(제131장). 제132장은 맑고 푸른 날의 '교향곡'입니다. 아합은 물에 비친 제 그림자를 보다 눈물 한 방울을 바다에 떨구고, 스타벅에게 사십 년 고래잡이와 고독, 젊은 아내를 두고 떠난 일을 털어놓으며 늙은 바보였다고 한탄합니다. 스타벅이 함께 낸터킷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하자 흔들리지만 누가 자기 팔을 움직이는지 모르겠다며 끝내 뿌리칩니다. 한밤 아합은 고래 냄새를 맡고 항로를 바꿔 이튿날 새벽 돛대 위에서 먼저 모비딕을 발견합니다. 모비딕은 보트를 입에 물고 두 동강 내지만 아합은 구조되고, 부서진 몸으로도 다시 추적을 명합니다(제133장). 둘째 날 고래는 밧줄을 엉키게 하고 스텁과 플라스크의 보트를 부수며 아합의 보트까지 뒤집습니다. 아합의 상아 다리가 부러지고 페달라가 밧줄에 얽혀 사라진 것이 드러납니다. 스타벅이 중단을 간청하지만 아합은 운명의 부관이라며 내일 셋째 날을 약속합니다(제134장).
제135장과 에필로그: 셋째 날
셋째 날 아침 아합은 흰 고래가 보이지 않자 자신이 고래를 앞질렀음을 깨닫고 배를 돌리게 합니다. 고래가 다시 나타나자 그는 스타벅과 눈물 어린 악수를 나눈 뒤 보트를 내립니다. 쫓기는 쪽이 아니라 쫓는 쪽이 아합이라는 스타벅의 호소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모비딕이 보트들을 부수며 솟구치는데 그 등에 페달라의 시신이 밧줄로 묶여 있고, 첫 번째 영구차에 대한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아합이 작살을 던지지만 줄이 끊기고, 고래는 피쿼드호를 들이받아 침몰시킵니다. 아합은 마지막 저주와 함께 작살을 던졌다가 줄에 휘감겨 바다 속으로 끌려가고, 타슈테고가 깃발을 못 박은 채 배는 가라앉습니다. 에필로그는 욥기의 한 구절을 제사로 삼아 "드라마는 끝났다"고 말하며 시작됩니다. 아합의 보트에서 빈 노잡이 자리를 맡았던 이스마엘은 마지막 날 보트 밖으로 튕겨 나가 뒤처졌고, 침몰하는 배의 소용돌이에 서서히 끌려가다 중심에서 솟아오른 관 모양의 구명부표에 매달려 하루 밤낮을 떠다닙니다. 상어는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지나갔고, 둘째 날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던 레이첼호가 그를 건져 올립니다. 또 다른 고아를 찾았을 뿐이었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 주십시오
책의 첫 문장은 화자가 자기 이름을 건네는 한마디입니다. 본명인지 별명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이 이름이 이야기 전체의 증인이 됩니다.
Call me Ishmael.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 주십시오.
그가 바다로 나가는 이유는 모험심이 아니라 기분의 계절에 가깝습니다.
whenever it is a damp, drizzly November in my soul
내 영혼에 축축하고 부슬비 내리는 11월이 올 때마다.
부두에 몰려 선 몽상가들을 보고 그는 사색과 물의 인연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meditation and water are wedded for ever.
사색과 물은 영원히 맺어져 있다.
그리고 먼 곳을 향한 끌림과 노동의 처지를 한꺼번에 내놓습니다.
I am tormented with an everlasting itch for things remote.
나는 먼 것들을 향한 끝없는 갈망에 시달린다.
Who ain’t a slave? Tell me that.
노예 아닌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말해 보라.
이스마엘은 이야기를 이끄는 영웅이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입니다. 그는 일반 선원으로 배를 타고, 맹세에 가담하고, 고래의 곁가지를 길게 사색하며, 마지막에는 홀로 살아남아 전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첫 문장의 정중한 부탁은 그가 증언자로 불리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2. 퀴퀘그와 한 침대
이스마엘이 처음 느낀 것은 공포이지만, 그 공포는 하룻밤 사이에 우정으로 바뀝니다. 그는 겁에 질렸다가 이렇게 마음을 정합니다.
Better sleep with a sober cannibal than a drunken Christian.
취한 기독교인보다 맨정신의 식인종과 자는 편이 낫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퀴퀘그의 정직한 얼굴을 본 뒤 더 분명해집니다.
a man can be honest in any sort of skin.
사람은 어떤 피부 속에서도 정직할 수 있다.
You cannot hide the soul.
영혼은 숨길 수 없다.
화자는 퀴퀘그를 이렇게까지 평합니다.
Queequeg was George Washington cannibalistically developed.
퀴퀘그는 식인의 방식으로 자란 조지 워싱턴이었다.
이 대목은 책의 출발점이 되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신앙 앞에서 기도 시늉을 함께 하고, 한 이불에서 대화하다 잠듭니다. 이후 퀴퀘그가 선원들의 목숨을 구하고 관으로 구명부표를 남기는 장면까지, 이 우정은 뒤로 갈수록 피쿼드호에서 거의 유일한 온기가 됩니다. 아합의 집념과 대조되는 또 하나의 관계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3. 설교단과 요나
메이플 신부의 설교단은 배의 뱃머리를 닮았고, 신부는 올라선 뒤 사다리를 끌어올립니다. 화자는 이 광경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the pulpit leads the world.
설교단이 세상을 이끈다.
그가 이어서 세상을 비유하는 문장은 책 전체의 배경이 됩니다.
Yes, the world’s a ship on its passage out, and not a voyage complete
그렇다, 세상은 항해를 마친 배가 아니라 나아가는 배다.
신부는 요나의 이야기에서 불편한 진실을 전할 사명을 끌어내며 이렇게 외칩니다.
Woe to him who seeks to please rather than to appal!
두렵게 하지 않고 기쁘게만 하려는 자에게 화가 있으라!
요나는 신의 명령에서 도망치다 고래 뱃속에서 참회하는 인물입니다. 이 설교는 곧 시작될 항해의 예고편으로 읽힙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인물이 고래를 만나는 이야기를, 이제 한 선장이 정반대의 마음으로 되풀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도망쳤고, 아합은 쫓습니다.
4. 피쿼드호와 아합이라는 이름
이스마엘이 고른 배는 고래 뼈로 꾸민 낡은 배입니다. 첫인상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A noble craft, but somehow a most melancholy!
고귀한 배이지만 어딘지 몹시 우울하다!
All noble things are touched with that.
고귀한 것에는 모두 그런 우울이 스며 있다.
선주 펠레그는 아합을 두둔하며 선장의 처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it’s better to sail with a moody good captain than a laughing bad one
웃는 나쁜 선장보다 침울한 좋은 선장과 항해하는 편이 낫다.
Ahab has his humanities!
아합에게도 인간다움이 있다!
이 배에는 이름 없는 불안이 일찍부터 깔려 있습니다. 엘리야의 알쏭달쏭한 예언, 출항 뒤에도 보이지 않는 선장, 선원들의 흉터 소문이 모두 아합이라는 이름을 신화의 크기로 키웁니다. 제23장에서 화자가 말하는 바다의 독립 역시 이 거리와 겹칩니다.
better is it to perish in that howling infinite
울부짖는 그 무한 속에서 스러지는 편이 낫다.
안전한 해안보다 위험한 바다가 영혼에게 낫다는 이 선언은 아합의 길을 변호하는 말처럼 들리면서, 동시에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미리 예감하게 합니다.
5. 후갑판의 맹세
제36장은 이 책의 중심 장면입니다. 아합은 선원들의 함성을 이끌어 낸 뒤 자신의 철학을 내놓습니다.
All visible objects, man, are but as pasteboard masks.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종이 가면일 뿐이다.
If man will strike, strike through the mask!
사람이 치려거든 가면을 꿰뚫어 쳐라!
고래는 보이는 짐승이 아니라 가면 뒤의 무엇이라는 말입니다. 스타벅은 이 논리에 이렇게 맞섭니다.
I came here to hunt whales, not my commander’s vengeance.
나는 고래를 사냥하러 왔지, 지휘관의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니다.
아합의 대답은 선원들의 마음을 모읍니다. 그는 작살 소켓에 술을 채워 모두에게 맹세를 받습니다.
God hunt us all, if we do not hunt Moby Dick to his death!
모비딕을 죽을 때까지 쫓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냥하시길!
이 장면에서 아합의 힘은 논증이 아니라 의식에서 나옵니다. 질문에 함성으로 답하게 하고, 금화를 못 박고, 술잔을 돌려 맹세시키는 순서가 개인의 집념을 공동의 사업으로 바꿉니다. 스타벅의 반대는 정당하지만 그 의식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6. 흰색이라는 공포
이스마엘은 고래가 왜 무서운지 그림이나 힘으로 설명하지 않고 색으로 설명합니다.
It was the whiteness of the whale that above all things appalled me.
무엇보다 나를 두렵게 한 것은 고래의 흰색이었다.
순결과 신성의 색이 왜 공포를 줄 수 있는지 그는 우주의 텅 빈 무의미라는 가설로 끌고 갑니다.
a colourless, all-colour of atheism from which we shrink
색이 없으면서 모든 색인, 우리가 움츠러드는 무신론의 빛깔.
the invisible spheres were formed in fright.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공포 속에서 만들어졌다.
And of all these things the Albino whale was the symbol.
이 모든 것의 상징이 바로 흰 고래였다.
이 장은 사건을 멈추고 모비딕의 의미를 비워 놓습니다. 아합에게 고래는 악의의 얼굴이고, 이스마엘에게는 의미 없는 우주의 흰 얼굴입니다. 같은 고래를 두고 서로 다른 두려움이 있다는 점이 책의 해석을 열어 둡니다. 흰 고래가 무엇의 상징인지, 이 책은 끝내 한 가지로 답하지 않습니다.
7. 아합의 광기
제41장에서 화자는 아합의 광기가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분석하며 이렇게 진단합니다.
Human madness is oftentimes a cunning and most feline thing.
인간의 광기는 흔히 교활하고 고양이 같은 것이다.
정신이 흐트러진 것이 아니라 방향이 하나로 굳은 것입니다. 아합 스스로도 그 구조를 알고 있습니다.
all my means are sane, my motive and my object mad
내 수단은 모두 멀쩡하지만 동기와 목표는 미쳤다.
해도를 펴 놓고 밤마다 연필 선을 고치는 아합을 보며 화자는 복수심이 하나의 독립된 존재가 되었다고 해석합니다.
God help thee, old man, thy thoughts have created a creature in thee
하느님이 그대를 도우시길, 노인이여. 그대의 생각이 그대 안에 괴물을 낳았다.
그의 독백은 재앙을 예언으로 바꿔 쓰는 방식입니다.
I now prophesy that I will dismember my dismemberer.
이제 나는 나를 토막 낸 놈을 내가 토막 내리라고 예언한다.
『모비딕』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합은 어리석거나 악하기에 앞서 지나치게 일관된 사람이고, 그 일관성이 배를 끌고 갑니다. 독자는 그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어느 지점에서 이를 따라가기를 멈춰야 하는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8. 고래학과 우연·필연
제32장의 고래 분류는 학문의 흉내를 내면서 학문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화자는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낮춥니다.
I am the architect, not the builder.
나는 설계자일 뿐 시공자가 아니다.
God keep me from ever completing anything.
신이여, 내가 무엇이든 완성하지 않게 해 주소서.
완성된 체계는 곧 닫힌 체계라는 생각이 이 책의 형식에도 적용됩니다. 어느 장도 고래를 완결하지 못하고, 그래서 독자는 곁가지를 따라 계속 읽어 나갑니다. 매트를 짜는 장면에서는 같은 생각이 인간의 삶으로 옮겨 갑니다.
chance, free will, and necessity—nowise incompatible—all interweavingly working together.
우연과 자유 의지와 필연은 결코 어긋나지 않고 서로 엮여 함께 작용한다.
날실은 필연이고 씨실을 넣는 손은 자유 의지이며 퀴퀘그의 무심한 칼질은 우연이라는 비유입니다. 이 구도는 뒤의 추격에서 되살아납니다. 아합은 모든 것을 운명이라 부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9. 사냥의 현장
제60장 밧줄 설명의 결론은 위태로움이 모든 사람의 처지라는 것입니다.
All men live enveloped in whale-lines.
모든 사람은 포경 밧줄에 싸여 산다.
사냥은 피와 웃음이 섞여 있습니다. 상어 떼에게 설교하라는 스텁의 명령에 요리사 플리스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for all angel is not’ing more dan de shark well goberned.
천사란 잘 다스려진 상어일 뿐이라오.
고래를 먹는 일을 두고는 문명인에게 되묻습니다.
Cannibals? who is not a cannibal?
식인종이라고? 식인종 아닌 사람이 누구인가?
사냥이 끝나면 해체가 이어집니다. 기름층이 이불처럼 몸을 감싼다는 설명에서 화자는 이렇게 권합니다.
Do thou, too, live in this world without being of it.
그대도 이 세상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는 말라.
또 브릿 벌판 장의 맺음은 영혼의 평화로운 섬에서 떠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Push not off from that isle, thou canst never return!
그 섬에서 떠밀려 나가지 마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이 구간은 사건이 적은 대신 노동의 구체성이 가장 풍부합니다. 도살장의 장면에 철학적 격언이 연달아 붙는 것이 이 책의 방식입니다. 피와 기름 한복판에서 화자는 늘 한 걸음 물러나 삶의 비유를 길어 올립니다.
10. 고래의 머리와 얼굴
제74장의 비교 해부는 몸집의 크기와 마음의 크기를 맞바꿉니다.
Why then do you try to “enlarge” your mind? Subtilize it.
그런데 왜 마음을 넓히려 하는가? 섬세하게 다듬어라.
정면이 파성퇴 같은 향유고래를 두고는 믿음을 요구하며 이렇게 일갈합니다.
unless you own the whale, you are but a provincial and sentimentalist in Truth.
고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진리 앞에서 촌뜨기이자 감상주의자일 뿐이다.
얼굴을 읽는 시도는 곧 한계를 고백하는 일이 됩니다.
Physiognomy, like every other human science, is but a passing fable.
관상학도 다른 모든 인간의 학문처럼 지나가는 우화일 뿐이다.
like all things that are mighty, wears a false brow to the common world
모든 위대한 것이 그렇듯 세상 사람들에게는 거짓 이마를 쓰고 있다.
해부 장면들은 고래를 속속들이 알려는 시도이면서, 알수록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이는 제36장의 '가면' 이야기와 정확히 맞닿습니다. 아합은 가면을 꿰뚫으면 실체가 있다고 믿고, 화자는 이마가 거짓 이마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같은 고래를 두고 두 개의 인식론이 부딪힙니다.
11. 묶인 고기와 풀린 고기
포경의 법은 두 줄이라고 화자는 말합니다.
A Fast-Fish belongs to the party fast to it.
묶인 고기는 그것에 묶은 쪽의 것이다.
이어 이 원칙을 세상의 소유와 자유 일반으로 넓히며 독자에게 되묻습니다.
And what are you, reader, but a Loose-Fish and a Fast-Fish, too?
독자여, 그대 또한 풀린 고기이자 묶인 고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머리는 왕의 몫이고 꼬리는 왕비의 몫이라는 영국 법과 압류 사건을 훑은 뒤에는 능청스럽게 마무리합니다.
And thus there seems a reason in all things, even in law.
그리하여 모든 것에는, 법에도, 이유가 있는 듯하다.
두 장은 웃음의 풍자지만 책 전체를 읽는 열쇠로도 작동합니다. 무엇이 누구의 것인지를 정하는 규칙이 결국 먼저 움켜쥔 쪽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웃음 속에 숨어 있고, 이는 고래를 자기 소유의 복수 대상으로 삼은 아합의 집념과도 멀지 않습니다.
12. 한 몸으로 묶인 사람들
이스마엘은 퀴퀘그를 원숭이 밧줄로 붙들고 서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So, then, an elongated Siamese ligature united us.
그리하여 길게 늘어난 샴쌍둥이의 끈이 우리를 하나로 묶었다.
경뇌유를 손으로 주무르는 장면에서는 같은 생각이 다정함의 환상으로 번집니다.
let us squeeze ourselves universally into the very milk and sperm of kindness.
우리 모두 다정함의 젖과 기름 속으로 함께 녹아들자.
그러나 기름 가마의 불길 앞에서 같은 화자는 반대쪽 경고를 얻습니다.
Look not too long in the face of the fire, O man!
오, 인간이여, 불의 얼굴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마라!
There is a wisdom that is woe
슬픔인 지혜가 있다.
세 장면은 서로 어긋나는 듯하지만 이스마엘의 한 얼굴입니다. 그는 인간이 한 끈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따뜻하게도, 두렵게도 느낍니다. 가마의 불꽃 속에서 졸다 배를 뒤집을 뻔한 순간은 아합의 길과 이스마엘의 길이 갈라지는 지점을 보여 줍니다. 그는 불을 보았고, 거기서 돌아섰습니다.
13. 핍, 하늘의 지혜
핍이 보트에서 뛰어내려 홀로 바다에 남겨졌다가 건져진 뒤, 화자는 그의 상태를 이렇게 읽습니다.
So man’s insanity is heaven’s sense
그러니 인간의 광기는 하늘의 이성이다.
금화 앞에서 핍은 문법 연습처럼 예언을 읊습니다.
I look, you look, he looks; we look, ye look, they look.
나는 보고, 너는 보고, 그는 본다. 우리는 보고, 너희는 보고, 그들은 본다.
God goes ’mong the worlds blackberrying.
신은 세상들 사이로 검은딸기를 따러 다니신다.
핍은 바다에서 무한을 보고 돌아온 소년입니다. 제125장에서 그가 아합의 손을 놓지 않으려 하고, 아합이 가슴이 아파 그를 선실에 머물게 하는 장면은 이 책에서 아합이 가장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순간입니다. 이때 아합은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There can be no hearts above the snow-line.
눈선 위에는 마음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연민은 모비딕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합니다. 아합은 핍을 선실에 남겨 두고 다시 갑판으로 올라가, 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었던 마음을 결국 접습니다.
14. 항해에서 만난 배들
이 책은 항해 중 만나는 배들로 나뉜 연작처럼 읽힙니다. 아합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습니다.
Ship, ahoy! Hast seen the White Whale?
어이, 배야! 흰 고래를 보았는가?
귀향하는 배첼러호의 잔치 앞에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call me an empty ship, and outward-bound.
나를 텅 빈 배, 바깥으로 떠나는 배라고 불러라.
자식을 찾는 레이첼호 앞에서 화자는 성경의 구절을 끌어옵니다.
She was Rachel, weeping for her children, because they were not.
그 배는 자식들이 없어졌기에 우는 라헬이었다.
딜라이트호의 선장은 모비딕을 죽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The harpoon is not yet forged that ever will do that
그것을 해낼 작살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배들은 각기 다른 삶의 결과를 보여 줍니다. 가득 찬 기름과 즐거운 귀향, 팔을 잃고도 돌아선 선장, 아이를 잃은 아버지, 동료를 수장하는 선장입니다. 아합은 어느 쪽의 경고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특히 레이첼호의 간청을 거절하는 장면에서 그의 집념은 도덕의 선을 넘는다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레이첼호는 마지막에 이스마엘을 건지는 배이기도 합니다.
15. 폭풍과 징조
제118장에서 아합은 사분의를 저주하며 내던집니다. 태양에 기대는 도구로는 고래의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Curse thee, thou quadrant!
저주받아라, 이 사분의야!
태풍 속의 하얀 불꽃 앞에서는 한층 더 나아갑니다.
Thou canst blind; but I can then grope.
너는 눈을 멀게 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나는 더듬어 가리라.
돛을 내리자는 스타벅에게는 허세로 답합니다. 스텁은 그 곁에서 두려움을 숨기지 않습니다.
Oh, none but cowards send down their brain-trucks in tempest time.
오, 폭풍이 칠 때 머리를 내리는 건 겁쟁이뿐이다.
I am a coward; and I sing to keep up my spirits.
나는 겁쟁이라서 사기를 북돋우려 노래를 부른다.
번개가 나침반을 뒤집은 뒤 아합은 새 나침반을 만들어 보입니다.
But Ahab is lord over the level loadstone yet.
그러나 아합은 아직 수평의 자석을 다스리는 주인이다.
퀴퀘그의 관은 구명부표로 고쳐지고(제126장), 스타벅은 놀라 이렇게 외칩니다.
A life-buoy of a coffin!
관이 구명부표라니!
페달라의 예언은 이 징조들과 맞물립니다. 아합이 죽기 전에 관 둘을 보게 될 것이고,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삼밧줄뿐이라는 것입니다.
Hemp only can kill thee.
삼밧줄만이 그대를 죽일 수 있다.
폭풍의 장들은 아합이 징조를 읽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그는 징조를 경고로 읽지 않고 도전으로 읽습니다. 불길한 징조가 쌓일수록 그의 결의는 단단해지고, 독자의 불안도 그만큼 커집니다.
16. 스타벅과 아합
제109장에서 아합은 장전한 총을 겨누며 선장은 하나뿐이라고 소리칩니다. 스타벅의 마지막 말은 경고입니다.
let Ahab beware of Ahab; beware of thyself, old man.
아합은 아합을 조심하라. 그대 자신을 조심하라, 노인이여.
정작 총을 든 사람은 한 번 더 나옵니다. 스타벅은 제123장에서 잠든 아합의 문에 총구를 겨눕니다.
Great God, where art Thou?
위대하신 하느님, 어디 계십니까?
아내와 아들을 떠올리고 아합이 꿈속에서 모비딕을 외치는 순간 그는 총을 거둡니다. 이 장면은 스타벅의 선량함과 약함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의 선량함은 반란을 막고, 반란을 막은 선량함은 파국을 막지 못합니다. 제132장 '교향곡'에서 아합이 눈물 한 방울을 떨구며 가장 가까이 돌아설 뻔한 순간에도,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Is Ahab, Ahab?
아합은 아합인가?
누가 자기 팔을 움직이는지 모르겠다는 이 질문은 아합이 자신의 의지를 믿지 못하게 되었음을 말하면서, 동시에 그 의지를 끝내 따르겠다는 대답이기도 합니다. 자유와 필연이 한 문장에 겹치는 장면입니다.
17. 사흘의 추격과 에필로그
이틀째 추격이 끝났을 때 화자는 선원들의 마음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They were one man, not thirty.
그들은 서른 명이 아니라 한 사람이었다.
스타벅이 중단을 간청해도 아합의 대답은 이것뿐입니다.
Ahab is for ever Ahab, man.
아합은 영원히 아합이다.
셋째 날 아침 아합은 스타벅에게 손을 내밉니다. 장면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Their hands met; their eyes fastened; Starbuck’s tears the glue.
두 사람의 손이 맞닿고 눈이 붙들렸다. 스타벅의 눈물이 접착제였다.
그 직전 스타벅의 호소는 쫓는 쪽과 쫓기는 쪽이 뒤바뀌었다는 지적입니다.
It is thou, thou, that madly seekest him!
그를 미친 듯이 찾는 것은 바로 그대, 그대다!
마지막 순간 아합의 외침은 단말마처럼 이어집니다.
Oh, lonely death on lonely life!
오, 외로운 삶 끝의 외로운 죽음이여!
from hell’s heart I stab at thee
지옥의 심장에서 너를 찌른다.
그리고 배가 가라앉는 문장은 이 책에서 가장 조용한 파국입니다.
then all collapsed, and the great shroud of the sea rolled on
그러고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바다의 거대한 수의가 굴러갔다.
에필로그는 단 두 문장으로 막을 내립니다.
The drama’s done.
드라마는 끝났다.
only found another orphan
또 다른 고아를 찾았을 뿐이다.
자식을 찾아 헤매던 레이첼호가 건져 올린 것은 자기 아이가 아니라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아합이 거절했던 간청의 배가 마지막에 살아남은 사람을 받아 주는 구조는, 책이 가장 낮은 목소리로 건네는 응답처럼 읽힙니다.
18. 이 책을 읽는 방법
『모비딕』은 사건 중심의 장과 사색 중심의 장이 번갈아 나옵니다. 처음 읽는다면 줄기만 따라가도 충분합니다. 제1장(이스마엘의 시작), 제3~4장(퀴퀘그와의 만남), 제16장(피쿼드호와 선주들), 제28장(아합의 등장), 제36장(후갑판의 맹세), 제42장(흰색), 제61장(첫 사냥), 제99장(금화), 제109장(스타벅과 아합), 제128장(레이첼호), 제132~135장(마지막 추격)이 길잡이가 됩니다. 고래학과 해부와 법을 다룬 장들은 건너뛰어도 사건은 이어지지만, 읽어 보면 아합이 쫓는 것이 무엇인지 입체로 보이게 됩니다. 곁가지 장이 길게 느껴질 때는 한 장에서 하나의 비유만 건져 가도 됩니다. 그러다 마지막 세 장에 이르면 앞에서 쌓인 징조와 맹세와 만남이 하나로 모입니다. 희곡 형식의 장과 독백은 소리 내어 읽거나 귀로 들으면 훨씬 선명해지고, 재독할 때는 스타벅과 핍, 퀴퀘그의 장면이 처음과 다르게 읽힙니다.
ReadGem 앱 소개
ReadGem 앱은 세계 고전을 읽으며 언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돕는 다국어 독서 플랫폼입니다.
원문과 번역을 문장별로 나란히 보여 주어 언어 간 표현을 비교할 수 있고, 모든 작품의 모든 문장을 TTS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ReadGem 앱의 서재는 퍼블릭 도메인의 오래 사랑받은 작품을 중심으로 하며, 삽화가 실린 책도 많습니다.
ReadGem 앱은 독자와 함께 번역을 만들어 가는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읽다가 더 나은 표현이 떠오르는 문장을 만나면, 스마트폰에 설치된 AI 앱에 그 문장의 새 번역을 요청하고 결과를 ReadGem에 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제안은 검토를 거쳐, 가장 좋은 것(또는 여러 제안을 합친 것)이 모든 독자가 읽는 번역이 됩니다.
아직 번역이 없는 언어에서는 처음부터 AI와 함께 번역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번역본이 없다는 이유로 고전을 읽지 못하는 일이 그렇게 줄어듭니다.
『모비딕』의 영어 원문을 ReadGem 앱에서 직접 들어 보세요.
모든 문장을 원어 음성으로 따라 들으며 이야기를 귀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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