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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기원전 1세기 말~기원후 1세기 초

The History of Rome

로마사

늑대 젖을 먹은 쌍둥이에서 마케도니아의 멸망까지, 도덕으로 읽는 로마의 700년

we can neither endure our vices, nor their remedies

우리는 우리의 악덕도, 그 치료도 견딜 수 없다.

the sovereignty of the laws, more powerful than that of men

사람보다 강한 법의 주권.

한눈에 보기

로마 건국 전설에서 기원전 167년 페르세우스 전쟁의 끝까지를 연대순으로 서술한 대하 역사서. 원래 142권이었으나 온전히 남은 것은 1~10권과 21~45권 35권이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신분 투쟁과 갈리아의 약탈을 지나 한니발 전쟁과 그리스 정복까지, 리비우스는 사건보다 사람의 도덕과 관습이 제국을 만들고 또 갉아먹었다고 본다. 권별 줄거리와 열여덟 가지 대목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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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요점

The History of Rome

『로마사』는 티투스 리비우스가 쓴 책으로, 흔히 『도시가 세워진 때부터』라는 뜻의 『Ab Urbe Condita』로 불립니다. 리비우스는 오늘날 이탈리아 파도바인 파타비움 출신으로, 기원전 59년경에 태어나 기원후 17년경까지 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가 내전으로 찢어지고 아우구스투스가 질서를 세우던 시대의 사람이고, 책 속에서도 아우구스투스가 신전을 고칠 때 본 유물을 증언으로 받아들이고, 아우구스투스가 야누스 신전의 문을 닫은 일을 언급합니다. 고향 파타비움에서 해마다 열리는 모의 해전, 자신이 직접 본 스키피오의 동상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 책을 쓰는 이유를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밝힙니다. 로마가 어떤 사람들과 어떤 방책으로 제국을 얻고 키웠는지, 그리고 규율이 풀리며 도덕이 서서히 기울다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로마사』는 원래 142권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전하는 본문은 1~10권(건국 전설부터 삼니움 전쟁까지)과 21~45권(한니발 전쟁부터 기원전 167년의 페르세우스 전쟁까지)이고, 11~20권과 46권 이후는 권마다 한 단락짜리 요약만 남았습니다. 45권의 본문도 결락 표시와 함께 끊깁니다. 이 때문에 책의 앞쪽은 전설과 신분 투쟁의 시대, 뒤쪽은 한니발과 그리스 정복의 시대로 뚜렷이 나뉩니다. 리비우스는 자료를 고르는 방식을 숨기지 않습니다. 서로 어긋나는 기록은 나란히 적고, 숫자가 부풀려졌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말하며, 믿기 어려운 전승은 믿기 어렵다고 적습니다.

줄거리

제1권: 건국 전설과 일곱 왕

서문에서 리비우스는 건국 이래의 로마사를 쓰는 일이 과연 쓸모 있는지 확신도 없고 감히 말할 수도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미 쓰는 사람이 많고, 7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주제이며, 로마가 이제 자기 크기에 짓눌려 있다는 것입니다. 건국 이전의 전승은 시적 허구에 가까우니 긍정도 반박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어 트로이가 함락된 뒤 아이네아스가 라티움에 닿아 라비니움을 세우고, 아스카니우스가 알바 롱가를 세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물리우스가 형 누미토르를 쫓아내고 조카딸 레아 실비아를 베스타 여사제로 만들자, 마르스의 아들이라는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태어납니다. 암늑대가 젖을 먹였다는 이야기에는 목자의 아내가 '루파(늑대, 매춘부)'라 불렸다는 합리화도 곁들입니다. 도시의 이름을 두고 다투다 레무스가 성벽을 넘다 죽었다는 설을 "더 흔한 설"로 적고, 로물루스는 피난처로 인구를 늘리고 사비니 처녀들을 납치해 아내로 삼습니다. 사비니 여인들이 전장에 뛰어들어 화해시킨 뒤, 로물루스는 폭풍 속에서 사라집니다. 원로원에게 찢겨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믿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어 평화의 왕 누마 폼필리우스가 에게리아 여신과의 만남이라는 "기적의 허구"로 사람들에게 신에 대한 경외를 심고 달력과 사제단을 정하고, 호전적인 툴루스 호스틸리우스는 알바와 호라티우스 삼형제 대 쿠리아티우스 삼형제의 대결로 전쟁을 끝냅니다. 호라티우스가 누이를 죽이고도 아버지의 변론으로 풀려나고, 배신한 알바 독재관 메티우스는 말에 찢겨 죽습니다. 안쿠스 마르키우스를 거쳐 코린토스 망명자의 아들 루쿠모가 독수리의 징조로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가 되고,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는 재산을 기준으로 시민을 5계급과 백인대로 나눕니다. 세르비우스의 딸 툴리아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가 각자의 배우자를 제거하고 혼인한 뒤 왕을 죽이고, 아버지의 시신 위로 마차를 몰았다는 '사악한 길' 이야기가 따릅니다. 오만왕 타르퀴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가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를 겁탈하고, 루크레티아는 자결합니다. 브루투스가 칼을 들고 왕가의 추방을 맹세하고, 왕정은 건국 후 244년 만에 끝납니다.

제2권: 공화정의 첫 시련

리비우스는 이제부터 연간 정무관과 사람보다 강한 법의 주권을 다루겠다고 선언합니다. 자유의 기원은 왕권이 줄어서가 아니라 집정관 권한이 연임제가 아닌 연간으로 바뀐 데 있다는 것입니다. 브루투스는 사람들에게 다시는 왕을 두지 않겠다고 맹세시키지만, 왕에게 재산을 돌려받으려는 청년 귀족들의 음모에 자기 두 아들이 가담합니다. 그는 직접 아들들의 처형을 감독합니다. 타르퀴니우스가 끌어들인 에트루리아 군과의 싸움에서 브루투스와 왕의 아들 아룬스가 서로를 창으로 꿰어 함께 죽습니다. 이어 포르센나 전쟁이 이어집니다. 호라티우스 코클레스가 다리를 혼자 지키다 강으로 뛰어들고, 무키우스가 오른손을 불에 넣어 포르센나를 굴복시켜 '스카이볼라(왼손잡이)'가 되며, 인질 클로일리아가 강을 헤엄쳐 탈출합니다. 리비우스는 코클레스의 일을 "신빙성보다 명성을 더 얻을 일"이라 평합니다.

이후는 신분 투쟁의 시작입니다. 채무 노예의 채찍 자국이 광장에 드러나 폭동이 일어나고, 군대가 성산으로 철수하며, 메네니우스 아그리파가 배와 지체의 우화로 설득해 호민관 직이 신성불가침으로 정해집니다. 코리올라누스는 호민관 폐지를 조건으로 곡물을 나누자고 했다 추방되어 볼스키인의 장군으로 로마를 공격하다, 어머니 베투리아의 질책에 진군을 멈춥니다. 스푸리우스 카시우스는 최초의 농지법을 제안하다 왕이 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 처형되고, 파비우스 일족 306명이 베이이 전쟁을 자청해 크레메라에서 전멸합니다. 리비우스는 이를 모두가 동의하는 이야기로 적습니다.

제3~4권: 법전, 십인관, 신분 간 타협

3권은 호민관 테렌틸리우스가 집정관 권한을 법으로 규정하자고 하면서 시작됩니다. 귀족 청년 카이소 퀸크티우스가 호민관들을 광장에서 몰아내다 기소되어 망명하고, 사비니인 헤르도니우스가 노예와 망명자 4,500명을 이끌고 카피톨리움을 점령합니다. 보궐 집정관이 된 킨킨나투스는 호민관과 원로원을 함께 질책합니다. 이어 아이퀴인에게 포위된 집정관을 구하려고 독재관으로 추대됩니다. 리비우스는 티베리스 건너 네 에이커 농장에서 밭을 갈던 그가 아내에게 토가를 가져오게 했다고 쓰고, 그는 하루 사이에 군을 모아 야간 행군으로 적을 에워싸 16일 만에 독재관직을 반납합니다. 법전 편찬을 위해 아테네에 사절을 보내 솔론의 법을 조사하게 하고, 상소권 없는 십인관(데켐비리)이 세워집니다. 첫해에는 공정했으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스스로 다시 선출되고, 이듬해에는 120명의 릭토르가 도끼를 들고 광장을 채워 열 명의 왕 같은 공포를 만듭니다. 아피우스가 평민 처녀 베르기니아를 노예라고 주장하게 하자, 아버지 베르기니우스는 광장에서 딸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군대가 성산으로 철수하는 두 번째 분리가 일어나 십인관이 사임하고, 호민관과 상소권이 되살아나며, 아피우스는 감옥에서 자살합니다.

4권은 호민관 카눌레이우스의 통혼법으로 열립니다. 귀족과 평민의 혼인을 허용하고, 집정관 권한을 가진 군사 호민관을 귀족과 평민 어느 쪽에서나 뽑을 수 있게 하는 타협이 이루어지지만, 평민은 모두 귀족을 뽑습니다. 감찰관직이 센서스를 위해 창설되고, 기근 속에서 부유한 기사 스푸리우스 마일리우스가 곡물을 나눠 주다 왕위를 노린다는 혐의를 받아 기병대장에게 광장에서 죽습니다. 코르넬리우스 코수스가 베이이 왕을 베어 두 번째 '스폴리아 오피마'를 신전에 바치는 대목에서 리비우스는 아우구스투스가 본 명문과 연대기가 어긋난다고 적습니다. 4권 끝에서 원로원은 처음으로 병사에게 국고 급여를 지급하기로 의결하고, 평민이 이보다 더 기뻐한 일은 기록에 없다고 합니다.

제5권: 베이이의 함락과 갈리아의 약탈

로마는 베이이를 처음으로 겨울 막사를 짓고 포위합니다. 병사에게 봉급을 준 것이 독이 든 선물이라는 호민관들의 선동에,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노동에는 보수가 따른다고 맞서고, 기병 재산을 가진 시민들이 자기 말로 복무하겠다고 자원합니다. 알바 호수가 비 없이 불어 오르자 사로잡힌 베이이의 점쟁이는 물을 올바르게 빼야 로마가 베이이를 얻는다고 말하고, 델포이 신탁이 같은 말을 확인합니다. 독재관 카밀루스는 땅굴을 여섯 조로 나눠 파고 들어가 유노 신전 안으로 튀어나와 베이이를 함락합니다. 병사들이 유노 신상에게 "로마로 가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신상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이야기가 붙고, 카밀루스는 흰 말이 끄는 수레로 개선하다 사람들의 반감을 삽니다. 팔레리이 포위 때는 귀족 아이들을 적에게 넘기려던 교사를 벌거벗겨 아이들 손에 맡기고, 팔레리이가 스스로 항복합니다. 그러나 카밀루스는 베이이 전리품 문제로 고발당해 아르데아로 망명하며 조국이 자신을 그리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갈리아인이 클루시움을 포위하자 로마의 중재 사절 파비우스 암부스투스의 세 아들이 교전에서 갈리아 장수를 죽이고, 민회는 그들을 오히려 군사 호민관으로 뽑습니다. 알리아 강가에서 로마군은 진영도 방벽도 점괘도 없이 싸우다 싸우지도 않고 무너집니다. 청년과 원로 일부는 카피톨리움에 들어가고, 원로들은 상아 의자에 앉아 죽음을 기다립니다. 마르쿠스 만리우스가 신성한 거위의 울음에 깨어 밤에 성채를 오르는 갈리아인을 떨어뜨립니다. 금 1000파운드로 합의하자 갈리아인이 저울추를 속이고 칼까지 얹으며 "패자에게 화 있으라" 하는 순간 카밀루스가 도착해 계약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갈리아를 쫓아냅니다. 이후 베이이로 이주하자는 호민관들의 제안을 카밀루스가 긴 연설로 막고, 결정은 원로원 밖에서 한 백인대장이 "기수여, 깃발을 꽂아라, 여기 머무르는 것이 최선이다" 하고 외친 소리를 길조로 받아들이면서 납니다.

제6권: 재건과 만리우스의 몰락, 리키니우스 법

6권은 방법론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리비우스는 앞의 5권이 건국에서 로마 함락까지였다고 요약하며, 그 시기의 기록이 먼 물체처럼 희미하고 글자 사용이 드물었으며 공사의 문서 대부분이 도시의 화재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후는 더 분명하고 믿을 만하게 쓰겠다고 합니다. 카밀루스는 독재관으로 볼스키와 에트루리아를 연달아 꺾고 수트리움을 같은 날 두 번 점령합니다. 이 권의 중심은 마르쿠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의 몰락입니다. 카밀루스의 명성을 질투해 귀족 신분을 버리고 평민 편에 선 그는 채무 노예가 된 백인대장을 자기 돈으로 사 주고 귀족이 갈리아의 금을 숨겼다고 연설하다 투옥됩니다. 풀려난 뒤 왕권을 노린다는 혐의를 받고, 재판에서 자신의 공적과 흉터를 내보이자 호민관들은 장소를 카피톨리움이 보이지 않는 숲으로 옮기고, 유죄를 받은 그는 타르페이아 바위에서 던져집니다.

사트리쿰을 두고 동료 푸리우스가 노령의 카밀루스를 깎아내리다 복병에 걸리고, 카밀루스가 예비대로 나서 전선을 회복합니다. 투스쿨룸이 무장도 하지 않고 평화롭게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본 카밀루스가 전쟁이 어디 있는지 둘러보는 장면도 나옵니다. 부채가 쌓이자 평민 리키니우스 스톨로와 섹스티우스가 세 법안을 냅니다. 이자를 원금에서 공제하고 3년에 나눠 갚게 하고, 토지 소유를 500유게룸으로 제한하며, 집정관 한 명을 평민에서 뽑자는 것입니다. 귀족의 거부권에 맞서 고위 관직 선거를 5년간 막은 끝에 최초의 평민 집정관이 나옵니다.

제7~8권: 삼니움과 라틴 전쟁, 규율과 헌신

7권은 카밀루스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리비우스는 그를 로물루스 다음의 제2의 건설자라 평합니다. 역병을 달래려고 에트루리아 배우를 불러 무대극을 처음 들여온 경위가 나오고, 독재관 루키우스 만리우스의 가혹함을 호민관이 고발하자, 농장으로 쫓겨났던 아들이 칼을 품고 호민관의 집에 쳐들어가 고발을 접게 합니다. 광장 한복판이 꺼지자 청년 쿠르티우스가 무장한 채 뛰어들어 구덩이를 닫았다는 전설에서 리비우스는 "증거가 사라졌으니 전승의 소문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아니오 강 다리에서 티투스 만리우스가 거인 같은 갈리아인을 쓰러뜨려 '토르콰투스(목걸이)'가 되고, 발레리우스의 투구에 앉은 까마귀가 적의 얼굴을 쪼아 그가 '코르부스(까마귀)'가 됩니다. 삼니움과의 전쟁이 시작되고, 군단 호민관 데키우스가 포위된 군을 구해 풀로 엮은 관을 받으며, 카푸아 주둔군의 반란은 독재관 코르부스의 호소로 가라앉습니다.

8권은 라틴 전쟁입니다. 집정관 만리우스(토르콰투스)의 아들이 명령을 어기고 일대일로 싸워 이기자, 아버지는 군기와 권위를 이유로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처형합니다. 베세리스 전투에서 데키우스는 사제가 불러 주는 헌신 기도를 외우고 적진으로 말을 몰아 죽고, 로마는 라틴을 꺾습니다. 안티움 전함의 뱃머리로 광장 연단을 꾸며 '로스트라'라 부르게 됩니다. 채무자의 몸이 아니라 재산으로 책임지게 하는 법이 생기고, 독재관 파피리우스는 명령을 어기고 승리한 기병대장 파비우스를 처형하려다 병사와 원로원과 평민의 간청에 용서합니다. 8권 끝에서 리비우스는 장례 연설과 가짜 조상 비문 때문에 역사가 오염되었다고 적습니다.

제9~10권: 카우디움의 굴욕, 삼니움의 마지막 저항

삼니움 장군 폰티우스는 목동으로 변장한 병사 열 명을 풀어 루케리아가 포위되었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로마 집정관들은 지름길인 카우디움 협곡에 들어갔다가 앞뒤가 막힙니다. 폰티우스의 아버지는 모두 풀어 주라고 하다가 모조리 죽이라고 했고, 결국 폰티우스는 로마군을 무기 없이 멍에 아래로 지나게 합니다. 로마의 집정관 포스투미우스는 조약이 인민의 명령 없이 맺은 보증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자기 몸을 넘기고, 폰티우스는 인계를 거부하며 로마가 늘 법의 겉치레를 덧씌운다고 비웃습니다. 9권의 중심 여담에서 리비우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이탈리아에 왔다면 어땠을지 따집니다. 로마의 장군들과 원로원, 호구 25만과 군단의 유연함, 그리고 알렉산드로스의 위대함이 한 사람의 것일 뿐이라는 점을 들어 로마가 이겼을 것이라 결론짓습니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가 감찰관으로 아피아 가도와 수도를 놓고, 해방노예의 손자 플라비우스가 법정 절차와 달력을 공개합니다.

10권은 오굴니우스 형제의 사제직 법안으로 평민에게 폰티펙스와 아우구르 자리를 열고, 센티눔 전투에서 파비우스와 데키우스가 갈리아·삼니움·에트루리아·움브리아 연합군과 맞섭니다. 데키우스는 아버지처럼 대사제를 불러 몸을 바쳐 죽고, 로마군은 사기를 회복해 이깁니다. 리비우스는 삼니움 전쟁이 이미 네 권에 걸쳐 46년을 서술했다며, 삼니움이 패배하더라도 승리를 갈망하는 편을 택했다고 스스로 서술에 지친 듯 고백합니다. 리넨 천막 안에서 맹세를 한 '리넨 군단'이 아킬로니아에서 꺾이는 것으로 10권은 끝납니다.

제11~20권: 요약만 전하는 열 권

이 열 권은 본문이 전하지 않고 한 단락짜리 줄거리만 남았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 상을 에피다우로스에서 모셔 올 때 뱀이 스스로 배에 올라 티베리스 섬으로 헤엄쳐 갔다는 이야기, 쿠리우스 덴타투스의 평정, 에피로스 왕 피로스의 이탈리아 상륙, 파브리키우스가 뇌물을 거절하고 독살 제안을 왕에게 알린 일, 로마 최초의 은화, 제1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과 두일리우스의 해전 승리, 레굴루스의 아프리카 원정과 맹세대로 돌아가 고문으로 죽은 이야기, 메텔루스가 코끼리 120마리를 행렬에 세운 개선, 에가테스 해전 승리가 요약되어 있습니다.

제21권: 한니발의 출정

리비우스는 이 권이 가장 기억할 만한 전쟁을 다룬다고 선언합니다. 두 나라는 자원이 가장 풍부한 시기에 맞붙었고, 증오가 자원보다 컸다고 합니다. 하밀카르가 아홉 살쯤 되는 한니발에게 제단 앞에서 로마의 적이 되겠다고 맹세시켰다는 이야기는 "이야기"로만 전합니다. 카르타고 원로원의 한노는 어린 한니발이 작은 불씨가 큰 불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묵살당합니다. 리비우스는 한니발을 복종과 지휘 양쪽에 능하고 보초들 사이 맨땅에서 자는 사람으로 그리면서도, 비인간적 잔혹함과 신에 대한 두려움 없음, 맹세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못 박습니다. 한니발은 사군툼을 8개월 포위해 함락하고, 도시의 지도자들은 금은을 불에 던지고 많은 이가 스스로 뛰어듭니다. 로마 사절이 카르타고 원로원에서 옷자락을 접어 "여기 평화와 전쟁을 가져왔으니 고르라" 하고, 전쟁이 선택됩니다.

한니발은 에브로를 건너 론 강을 건너고, 병사들이 알프스를 두려워하자 알프스가 높은 산일 뿐이라고 설득합니다. 달군 바위에 식초를 부어 길을 뚫고 15일 만에 알프스를 넘지만, 이탈리아에 닿은 병력의 수는 사료마다 크게 달라 리비우스는 가장 신뢰하는 사료와 그 한계를 함께 적습니다. 티키누스 강가의 기병전에서 집정관 스키피오가 부상하고, 트레비아에서는 병든 스키피오가 미루자는데 동료 셈프로니우스가 서둘러 싸우다 굶주리고 얼어붙은 군단이 무너집니다. 권 끝에는 겨울의 흉조 목록이 길게 나오고, 리비우스는 마음이 미신에 기울면 많은 것이 보고되고 쉽게 믿어진다고 말합니다.

제22권: 트라시메누스와 칸나이

한니발은 아펜니노를 넘고 아르노 강 늪을 4일 3밤 동안 행군하며 한쪽 눈의 시력을 잃습니다. 그는 집정관 플라미니우스의 오만을 정찰로 파악해 에트루리아를 불태우며 도발하고, 호수와 산 사이의 안개 낀 좁은 길에서 로마군을 에워쌉니다. 전투가 한창이던 세 시간 동안 병사들은 도시를 무너뜨린 지진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로마는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독재관으로 세우고, 그는 먼저 신들을 달래는 일에 착수한 뒤 정면 교전을 피하며 한니발을 높은 지대에서 따라갑니다. 기병장관 미누키우스는 그를 겁쟁이라 비난하고, 한니발은 뿔에 횃불을 단 소 2천 마리를 밤에 산으로 몰아 빠져나갑니다. 미누키우스가 권한을 나눠 받아 위기에 빠지자 파비우스가 구원하고, 미누키우스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며 권한을 반납합니다.

바로와 파울루스가 집정관이 되어 칸나이로 향합니다. 파비우스는 파울루스에게 신중하라고 충고하지만 바로가 지휘하는 날 한니발은 갈리아·스페인 보병을 휘어진 중앙에 두고 아프리카 정예를 양 날개에 배치해 로마군을 포위합니다. 파울루스는 투석에 맞아 렌툴루스의 말을 거절하고 죽습니다. 한니발의 부장 마하르발이 닷새 후 카피톨리움에서 연회를 하자고 재촉하자 한니발은 숙고가 필요하다고 답하고, 마하르발은 신들이 모든 것을 한 사람에게 주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카누시움으로 도망친 이들 사이에서 젊은 스키피오가 칼을 뽑아 들고 도주를 모의한 귀족 청년들에게 로마를 버리지 않겠다고 서약시킵니다. 로마는 갈리아인과 그리스인 남녀를 산 채로 묻는 제의까지 치르고, 포로의 몸값은 거절하며, 패전한 바로를 시민들이 공화국에 절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이합니다.

제23~24권: 카푸아의 이탈, 시라쿠사의 혼란

23권에서 카푸아는 오랜 번영으로 방종했고, 평민은 한니발과 조약을 맺고 로마인을 욕탕에 가둬 질식시킵니다. 리비우스는 한니발이 카푸아에서 보낸 겨울을 두고, 잠과 술과 잔치와 여자와 목욕과 안락이 군대를 무너뜨렸다고 쓰고, 전문가들은 이것이 칸나이 직후 로마로 진격하지 않은 것보다 더 큰 실책이라 본다고 전합니다. 한노의 반대를 누르고 마고가 금반지를 원로원 현관에 쏟아 붓지만 지원은 느슨합니다. 놀라에서 마르켈루스가 한니발을 처음으로 막아 냅니다. 카실리눔의 수비대가 방패 가죽까지 삶아 먹으며 버티다 항복합니다. 재정이 바닥난 로마는 징수 청부업자 19인이 사비로 군수품을 대도록 하고, 스키피오 형제가 에스파냐에서 승리합니다.

24권은 시라쿠사의 소년 왕 히에로니무스가 로마를 버리고 카르타고와 손잡았다 살해되는 이야기, 파비우스가 집정관 선거에서 폭풍 속 키잡이의 비유를 들어 연설하는 장면, 그라쿠스가 노예 지원병에게 적의 머리를 가져오면 자유를 준다고 약속했다가 승리 후 전원을 해방하는 장면입니다. 시라쿠사에서는 군중이 왕가의 여인들을 학살하고, 마르켈루스가 포위하나 아르키메데스의 장치에 막혀 봉쇄로 전환합니다. 엔나에서는 로마 수비대가 시민을 극장에서 학살하며, 리비우스는 이를 잔혹했거나 불가피했던 행위라 평합니다. 필리포스 5세는 아폴로니아 야습에서 반쯤 벗은 채 도망치고, 로마는 처음으로 켈티베리아 용병을 씁니다.

제25~26권: 타렌툼, 시라쿠사, 카푸아, 스키피오의 등장

25권은 전쟁이 길어지자 외래의 미신이 퍼지는 것에 대한 한탄으로 시작합니다. 원로원은 새롭거나 외래의 의식으로 제사하는 것을 금합니다. 청년 스키피오는 법정 연령에 못 미쳤으나 시민 모두가 자신을 안찰관으로 원한다면 충분히 나이가 많다고 말합니다. 타렌툼은 필레메누스가 사냥한 멧돼지를 미끼로 문지기를 속이면서 한니발에게 열리고, 한니발은 배를 수레로 도시 거리를 가로질러 옮겨 항구 밖 바다에 띄웁니다. 그라쿠스는 매복에 걸려 전사하고, 마르켈루스는 내부 협상으로 시라쿠사를 함락하고 도시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립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모래 위 도형에 몰두하다 한 병사에게 죽습니다. 스키피오 형제는 켈티베리아 원군을 매수당하고 전사하며, 기사 마르키우스가 병사들이 뽑은 지휘관으로 군을 구합니다. 마르켈루스가 시라쿠사의 미술품을 로마로 가져오면서 그리스 예술에 대한 동경과 약탈의 풍조가 시작되었다고 리비우스는 비판합니다.

26권에서 로마는 카푸아를 함락하기 전에는 포위를 풀지 않습니다. 한니발은 카푸아를 구하려 로마 앞까지 진군하지만 폭우가 대치를 막고, 카푸아의 지도자 비비우스 비리우스는 독배를 들자고 제안해 27명이 마십니다. 카푸아는 원로 80명 처형과 자치의 박탈로 끝납니다. 24세의 스키피오는 지원자가 없는 에스파냐 지휘를 자원하고, 거의 매일 카피톨리움에 홀로 앉던 습관과 뱀이 아버지라는 소문을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노바 카르타고를 썰물에 석호를 건너 함락하고, 켈티베리아 군주 알루키우스의 약혼녀를 돌려주고 부모의 몸값을 신랑의 지참금에 보태 호감을 얻습니다. 시칠리아 사절은 마르켈루스를 고발하고, 마르켈루스는 카푸아는 풀비우스를, 시라쿠사는 마르켈루스를 고발한다고 한탄합니다.

제27~28권: 마르켈루스의 죽음, 메타우루스, 에스파냐 평정

27권은 헤르도네아의 참패로 시작합니다. 마르켈루스와 한니발이 연달아 싸우고, 파비우스가 타렌툼을 되찾으면서 마르켈루스와 달리 신상을 건드리지 않고 화난 신들은 타렌툼인에게 남겨 두라고 합니다. 10년의 징집에 지친 라틴 식민시 30개 중 12곳이 병력도 돈도 낼 수 없다고 통보하고, 원로원은 "제국이 끝났다"고 절망합니다. 프레겔라이의 섹스틸리우스가 나머지 18개 식민시가 병력을 준비했다고 답하자 원로원은 그 이름을 기리고 이탈한 12곳에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 침묵의 견책을 내립니다. 마르켈루스는 소수 기병만 데리고 정찰하다 매복에 걸려 죽습니다. 리비우스는 이를 60세가 넘은 노련한 장군의 경솔이라 평합니다. 하스드루발이 알프스를 넘자 집정관 네로는 하스드루발의 서한을 가로채 6천 보병과 1천 기병만 데리고 북상하는 대담한 행군을 감행하고, 메타우루스에서 하스드루발이 전사합니다.

28권은 에스파냐의 완전한 평정입니다. 리비우스는 한니발을 역경 속에서 더 놀라운 사람이라고 평합니다. 스키피오는 진형을 뒤집어 아침도 못 먹은 적을 끌어내 지치게 한 뒤 양 날개를 치고, 시팍스를 찾아가 하스드루발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합니다. 일리투르기는 패주병을 학살한 죄로 어린아이까지 불태워지고, 아스타파는 처자를 불에 던지고 스스로 뛰어드는 집단 자결을 합니다. 스키피오가 병이 중하다는 소문에 수쿠로 병영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는 주모자 35명을 체포하지만 병사들은 벌금만 부과받습니다. 집정관이 된 스키피오는 파비우스와 아프리카 원정을 두고 맞섭니다.

제29~30권: 아프리카 원정과 자마

29권에서 스키피오는 시칠리아에서 아프리카 원정을 준비합니다. 로크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대리 지휘관 플레미니우스와 로마 수비대가 카르타고 수비대보다 심한 약탈과 능욕을 일삼아 프로세르피나 신전의 재물까지 건드립니다. 로크리 사절 10명이 올리브 가지를 들고 와 날마다 도시가 약탈당한다고 호소합니다. 파비우스는 스키피오의 소환을 주장하나 조사단이 파견되고, 스키피오는 육해군 사열로 이를 해명합니다. 시빌라 예언서의 지시로 이다의 어머니 여신을 페시누스에서 모셔 오고, 원로원은 가장 훌륭한 남자로 젊은 스키피오 나시카를 뽑아 여신을 맞게 합니다. 스키피오는 곶의 이름이 '아름다운 곶(풀크리)'이라는 말에 길조라 하며 아프리카에 상륙합니다. 마시니사가 합류하고 스키피오는 겨울에 우티카 포위를 이어 갑니다.

30권에서 스키피오는 시팍스와 평화 교섭을 하는 척하며 사절단에 변장한 백인대장들을 섞어 진영 구조를 파악하고, 봄에 밤을 틈타 두 진영에 불을 질러 우연한 화재로 착각한 적을 도륙합니다. 소포니스바는 시팍스의 아내로 마시니사에게 매달려 로마인의 처분에 맡기지 말아 달라고 청하고 마시니사는 그날로 결혼하나, 스키피오의 질책에 독약을 보내고 그녀는 담담히 마십니다. 한니발은 소환에 이를 갈며 이탈리아를 돌아보고, 스키피오와의 회담에서 확실한 평화가 기대 속의 승리보다 낫다고 말하나 결렬됩니다. 자마에서 스키피오는 코호르트 사이를 열어 코끼리가 지나가게 하고, 라일리우스와 마시니사의 기병이 후미를 쳐 승부가 납니다. 강화 조건은 군선 10척 제외 인도, 은 1만 탈렌트를 50년 분할, 인질 100명입니다. 원로원에서 한니발이 배상금 이야기에 웃자 하스드루발이 질책하고, 한니발은 무기를 빼앗기고 배가 불탈 때 울었어야 했다고 답합니다.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누스'라는 별칭을 얻습니다.

제31~32권: 마케도니아 전쟁의 재개

31권은 한니발 전쟁이 끝난 것이 마치 자기가 그 노고를 나눠 졌던 것처럼 기쁘다는 리비우스의 소회로 시작합니다. 쓸수록 작업이 불어난다는 비유도 따릅니다. 카르타고와 평화를 맺은 직후, 아테네의 호소와 필리포스의 기만에 로마는 마케도니아 전쟁을 결정하려 합니다. 첫 민회는 거의 모든 투표구가 전쟁안을 부결시키지만, 술피키우스가 평화냐 전쟁이냐는 선택이 아니라 군단을 마케도니아로 보내느냐 적을 이탈리아에 들이느냐의 문제라고 연설해 가결됩니다. 갈리아에서 하밀카르가 플라켄티아를 약탈하고 크레모나를 위협합니다. 아비도스는 사군툼처럼 집단 자결하고, 필리포스는 사흘 동안 죽을 시간을 주겠다고 합니다. 아테네는 필리포스를 저주하는 결의를 하고, 리비우스는 아테네인이 글과 말로 전쟁한다고 냉정히 평합니다.

32권에서 퀸크티우스(플라미니누스)가 마케도니아를 맡아 아오스 협곡 앞에서 필리포스와 대치하고, 에페이로스 목동의 길 안내로 협곡 위에서 협공해 승리합니다. 아카이아 회의에서 아리스타이노스가 중립은 중간 길이 아니라 아무 길도 아니라고 설득해 아카이아가 로마 편에 섭니다. 니카이아에서 필리포스는 배 위에서 불멸의 신들 외에는 두려운 이가 없다고 말하고, 그리스 동맹들은 데메트리아스·칼키스·코린토스가 '그리스의 족쇄'라고 원로원에 호소합니다.

제33~34권: 키노스케팔라이, 그리스의 자유, 오피우스법

33권은 보이오티아를 로마 편으로 끌어들인 퀸크티우스가 키노스케팔라이에서 필리포스를 꺾는 이야기입니다. 안개와 폭우 속에서 서로의 위치를 모른 채 선발대끼리 부딪쳐 전투가 커지고, 한 군사 호민관이 20개 중대를 데리고 돌아서 필리포스 오른쪽 팔랑크스의 등을 칩니다. 리비우스는 안티아스가 어디서나 숫자를 터무니없이 부풀린다고 비판하고 폴리비오스를 따른다고 사료 선택을 밝힙니다. 템페 회담에서 퀸크티우스는 패자에게 가장 높은 기상이 가장 너그럽다는 원칙을 말하고 필리포스를 살려 둡니다. 이스트미아 제전에서 전령이 그리스 도시들이 자유롭다고 선포하자 사람들은 귀를 의심해 두 번째로 낭독하게 하고, 퀸크티우스는 환호하는 군중에게 압사당할 뻔합니다. 한편 안티오코스는 헬레스폰트를 건너 리시마키아를 재건하고, 한니발은 카르타고 법무관으로 개혁하다 원한을 사 밤에 탈출해 안티오코스를 찾아갑니다.

34권은 오피우스법 폐지 소동으로 시작합니다. 포에니 전쟁 한복판에 만들어진 이 법은 여성이 반 온스 이상의 금을 갖거나 색색의 옷을 입거나 말 수레를 타는 것을 금했습니다. 여성들이 거리와 포룸을 메우자 집정관 카토가 끝까지 반대하고, 호민관 발레리우스가 반박하는 두 연설이 나옵니다. 법은 폐지됩니다. 카토는 이어 에스파냐로 가서 엠포리아이를 거점으로 켈티베리아 전쟁에서 몸소 병사들과 같은 고생을 합니다. 그리스에서는 퀸크티우스가 스파르타 참주 나비스를 칩니다. 아르고스를 해방시키고, 5만 병력으로 스파르타를 공격하나 방화로 후퇴하고 휴전을 맺습니다. 퀸크티우스는 코린토스 회의에서 자유를 절제 있게 쓰라고 당부하고 수비대를 철수시키며 3일간의 개선식을 치릅니다. 안티오코스 사절은 조약에 세 종류가 있다며 로마의 조건을 거부합니다.

제35~36권: 안티오코스와 한니발, 테르모필라이

35권은 에스파냐와 북이탈리아의 전쟁으로 시작해 곧 그리스로 옮겨 갑니다. 에페소스에서 한니발은 빌리우스(또는 스키피오)와 만나 가장 위대한 장군으로 알렉산드로스, 피로스, 그리고 세 번째로 "나 자신"을 꼽고, 스키피오가 웃으며 자신을 이겼다면 어떠했겠느냐 묻자 그때는 한니발을 모든 장군 앞에 놓았을 것이라 답합니다. 리비우스는 이를 카르타고식 교묘함이라 평하고 대화의 역사성은 출처(클라우디우스←아킬리우스)를 밝혀 단정하지 않습니다. 한니발은 안티오코스의 의심을 받자 아홉 살에 한 맹세와 36년의 전쟁을 말하며 "나는 로마인을 미워하고 그들에게 미움받는다"고 선언해 왕과 화해합니다. 아카이아의 필로포이멘은 나비스를 꺾고 알렉사메노스의 나비스 암살 뒤 라케다이몬을 동맹에 편입시킵니다. 안티오코스는 갑판선 40척과 보병 1만으로 데메트리아스에 상륙하고, 칼키스를 거쳐 에우보이아 전체를 얻습니다.

36권에서 집정관 글라브리오가 그리스로 건너가고, 아이톨리아와 안티오코스가 필리포스를 전쟁에 끌어들이려 하나 한니발의 조언은 칭찬만 받고 시행되지 않습니다. 안티오코스는 칼키스에서 겨울 내내 혼인과 술로 군대를 해이하게 만듭니다. 테르모필라이에서 카토가 칼리드로모스 산길로 우회하자 왕의 군대는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고, 왕은 500명만 데리고 칼키스로 달아납니다. 리비우스는 군대가 승리 자체보다 승리 후의 절제로 더 높은 칭찬을 얻었다고 쓰고, 헤라클레이아의 아이톨리아인들은 신의에 맡긴다는 말이 로마에서는 무조건 항복을 뜻함을 몰랐다가 쇠사슬 앞에 서게 됩니다. 퀸크티우스는 메세네를 포위한 아카이아를 거북의 비유로 타일러 중지시킵니다. 로마 함대는 코리쿠스에서 노를 고정하고 갈고리를 던져 육상전처럼 만들어 안티오코스의 함선을 격파합니다.

제37~38권: 마그네시아, 갈라티아, 스키피오의 재판

37권에서 두 집정관이 모두 그리스를 원하자 아프리카누스가 동생 루키우스의 부장으로 가겠다고 선언해 논란이 끝납니다. 폴릭세니다스의 계략으로 로도스 제독이 전사하고, 불을 단 로도스 배의 장치가 미우온네소스 해전의 열쇠가 됩니다. 아프리카누스는 포로가 된 아들의 무상 반환과 황금, 공동 통치를 제안한 안티오코스의 사절에게 공적 자격으로는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고 답합니다.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로마 군단 둘과 라틴 동맹 각 5,400이 보병 62,000의 안티오코스 군을 꺾습니다. 낫 달린 전차는 에우메네스의 궁수가 말을 놀라게 해 자기편으로 돌진합니다. 평화 조건은 타우루스 이쪽 편의 양도와 15,000 탈렌트 배상, 한니발의 인도입니다. 에우메네스와 로도스 사절이 원로원에서 소아시아의 분배를 놓고 맞섭니다.

38권은 암브라키아 포위에서 시작해 만리우스 불소의 갈라티아 원정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갈리아인의 키 큰 몸과 긴 칼, 함성과 춤이 로마가 알리아 이래 극복해 온 것이라 연설하고, 투창과 화살과 납탄으로 올림포스 산의 갈리아인을 원거리에서 무너뜨립니다. 오르티아곤의 아내가 겁탈한 백인대장의 목을 베게 한 일화도 나옵니다. 가장 길고 유명한 대목은 스키피오의 재판입니다. 소환일에 스키피오는 변명 대신 자기 업적을 연설하고, 이튿날 자마 전투 기념일을 이유로 군중을 이끌고 카피톨리움으로 갑니다. 호민관 그락쿠스가 스키피오를 연단 아래 세우는 것은 로마의 수치라며 불기소를 주장하고, 아프리카누스는 리테르눔에서 노년을 보냅니다. 동생 루키우스는 유죄를 받으나 그락쿠스가 거부권을 행사해 투옥은 면합니다. 리비우스는 이 재판과 죽음과 무덤에 대한 사료가 서로 모순되어 어느 전승을 믿어야 할지 판단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제39~40권: 바쿠스 사건, 카토의 검열, 필리포스 가문의 비극

39권은 리구리아와 에스파냐 전쟁을 짧게 지나, 아시아에서 돌아온 만리우스의 군대가 로마에 외래의 사치를 들여왔다고 단언합니다. 중심은 바쿠스 사건입니다. 에트루리아에 온 그리스 출신 하층 사제의 야간 제의가 로마에 퍼지고, 거짓 증언과 위조와 독살과 살인이 북과 심벌즈에 덮였다고 합니다. 발단은 의붓아버지에게 제의로 없애질 뻔한 청년 아이부티우스와 그를 구한 해방 노예 창부 히스팔라의 폭로입니다. 집정관은 수사권을 받아 신도 7천 명 이상을 추적하고, 입문만 한 자는 투옥하고 폭행·살인·위조에 가담한 자는 처형하며, 모임 장소를 철거합니다. 이후 카토가 검열관이 되어 사치품과 젊은 노예에 과세하고 원로 7명을 제명하며 수많은 원한을 삽니다. 필리포스는 전후에도 광산을 개발하고 인구를 늘려 전쟁을 준비하고, 마케도니아에서 마로네이아 학살을 벌입니다. 한편 필로포이멘은 메세네에 사로잡혀 독약을 받아 마시고, 한니발은 프루시아스가 포위하자 독을 마시며 로마인들을 오랜 불안에서 풀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리비우스는 이 세 거인이 모두 영광에 걸맞은 죽음을 맞지 못했다고 평합니다.

40권은 필리포스 가문의 비극입니다. 테살리아 귀족 헤로디코스의 딸 테옥세나는 죽은 언니의 아이들을 왕의 손에 넘기지 않으려, 도망치다 왕의 병선에 쫓기자 독약과 칼을 꺼내고 아이들이 먼저 죽은 뒤 남편과 껴안은 채 바다에 몸을 던집니다. 페르세우스는 인기 높은 동생 데메트리오스를 제거하려고 아버지의 친구들을 포섭하고, 군대 정화 의식의 모의 전투와 연회에서 동생이 형을 죽이려 했다는 고발을 만듭니다. 필리포스는 두 아들의 재판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한 아버지라 탄식하고, 데메트리오스는 눈물로 하루 안에 독과 칼을 다 쓰려 했다는 고발의 모순을 따집니다. 가짜 편지로 데메트리오스는 독을 마시고 질식당해 죽습니다. 훗날 진상이 드러나자 필리포스는 죽은 아들의 환영에 시달리다 죽고, 페르세우스가 왕위를 차지합니다. 같은 권에서 누마의 책이 야니쿨룸에서 발견되자 법무관은 기존 종교 체계를 뒤엎을 내용이라며 태우기로 하고, 두 검열관은 메텔루스의 호소로 화해합니다.

제41~42권: 페르세우스 전쟁 직전

41권은 리비우스의 개관으로 열립니다. 로마는 이미 지중해 양안을 무력으로 감쌌지만 속주는 시칠리아와 에스파냐 대부분뿐이고, 로마의 힘은 군사 지배보다 신망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페르세우스의 잔혹과 탐욕과 경솔이 마케도니아뿐 아니라 이웃과 먼 나라까지 쓰러뜨렸고, 마케도니아 다음에 카르타고와 아카이아가 무너졌다고 미리 말합니다. 이스트리아 원정에서 새벽 안개 속 기습에 병사들이 "바다로!" 하는 한마디에 달아나고, 집정관 클라우디우스가 의례도 생략한 채 달려가다 조롱을 받는 일이 나옵니다. 두 집정관이 같은 해에 죽는데, 페틸리우스는 "오늘 나는 레툼(죽음)을 차지하겠다"고 말했다가 레툼 산 공격 중 창에 맞아 죽습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빛나는 별'이라 불렸다가 '미치광이'로 바뀌고, 향유 이야기를 하던 평민의 머리에 향유 항아리를 부어 함께 미끄러진 일화가 나옵니다. 보코니우스 법은 여성을 상속인으로 삼지 못하게 합니다.

42권에서 감찰관 풀비우스는 자신이 서약한 신전을 꾸미려고 유노 라키니아 신전의 대리석 기와를 뜯어 가고, 원로원은 신전으로 신전을 짓는다고 질책합니다. 집정관 포필리우스는 한 번도 로마에 무기를 든 적이 없는 스타티엘라이 부족을 투항 뒤 무장해제하고 노예로 팔았고, 원로원은 이를 가장 나쁜 선례라며 해방을 명령하나 포필리우스는 거부합니다. 에우메네스가 로마에 와서 페르세우스의 위협을 고발하고, 델포이 길목에서 암살당할 뻔하며, 브룬디시움의 람미우스가 독약을 부탁받았다고 증언합니다. 22년을 복무한 노병 백인대장 스푸리우스 리구스티누스의 연설이 징집 분쟁을 가라앉힙니다. 마르키우스는 페르세우스와의 회담으로 시간을 번 책략을 자랑하고, 원로원의 노년층은 선조가 기습과 속임수가 아니라 정정당당한 싸움으로 이겼다고 반박하지만 효용을 중시한 다수가 이깁니다. 페르세우스는 보병 39,000과 기병 4,000을 모았고, 칼리니쿠스 기병전에서 로마가 패합니다.

제43~45권: 피드나와 마케도니아의 끝

43권은 로마 관리들의 탐욕과 속주 민원을 길게 다룹니다. 에스파냐 두 속주 사절은 동맹이 적보다 더 약탈당한다고 호소하고, 원로원은 임의 가격으로 세를 물리거나 도시에 지휘관을 배치하는 일을 금합니다. 그리스 도시의 사절은 학대를 호소하고 법무관 루크레티우스는 100만 아스 벌금을 선고받습니다. 리비우스는 옛일을 쓰는 동안 생각이 고풍스러워지고 종교적 외경이 전조를 기록하게 한다고 고백합니다. 감찰관 클라우디우스는 원로 귀족들이 금반지를 벗고 상복을 입은 뒤 그라쿠스가 함께 망명하겠다고 맹세해 풀려납니다. 본문은 페르세우스가 일리리아의 우스카나를 함락하는 대목의 별표에서 끊깁니다.

44권에서 집정관 마르키우스는 예순이 넘은 몸으로 산지를 넘어 페르세우스를 몰아내고, 페르세우스는 목욕 중 적이 온다는 소식에 싸우기도 전에 졌다고 외칩니다. 이듬해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14년 만에 재선되어 시민들에게 모든 식탁마다 군대를 이끄는 사람이 있다고 풍자하며 육지에서 키잡이 노릇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페르세우스는 겐티우스에게 약속한 돈을 아껴 동맹을 놓칩니다. 파울루스는 월식을 병사들에게 미리 설명하고, 피드나에서 마케도니아 팔랑크스의 창 숲을 보고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대형 틈새로 쐐기처럼 파고들어 팔랑크스를 쪼갭니다. 마케도니아 보병 2만이 죽고, 로마군 전사는 100명을 넘지 않았으며, 왕이 가장 먼저 달아납니다. 45권은 현존하는 마지막 권입니다. 페르세우스가 사모트라케에서 사로잡히고, 파울루스는 상복을 입은 왕을 일으켜 세우고 젊은 장교들에게 번영할 때 오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포필리우스가 안티오코스 둘레에 지팡이로 원을 그어 그 안에서 답하게 한 유명한 장면이 나오고, 파울루스는 마케도니아에 자유를 부여하되 4구역으로 나누고 구역 간 통혼을 금하며 금은 광산을 폐쇄합니다. 에피로스 70개 도시가 약탈당하고 15만 명이 끌려갑니다. 개선 논쟁을 거쳐 3일간 치러진 개선식 직전과 직후에 파울루스의 어린 두 아들이 잇달아 죽고, 파울루스는 자신의 집이 운의 변화를 대신 겪길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책은 프루시아스 왕이 30일을 머문 뒤 돌아갔다는 문장 뒤에서 끊깁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서문: 쓸모를 의심하는 역사가

보통 역사서의 서문은 자신의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지만, 리비우스는 역사를 쓰는 일이 과연 쓸모 있는지 확신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독자에게 권하는 것은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도덕의 흐름입니다. 서문의 가장 유명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we can neither endure our vices, nor their remedies

우리는 우리의 악덕도, 그 치료도 견딜 수 없다.

내전을 겪은 세대가 자기 시대를 보는 눈입니다. 그는 로마만큼 사치와 탐욕이 늦게 들어온 나라가 없고 가난과 검소가 오래 존중되었다고 하며, 이것이 자기 애착의 착각일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so that the less wealth there was, the less desire was there

재산이 적을수록 욕망도 적었다.

이 문장이 책 전체의 잣대가 됩니다. 로마의 성공은 누가 얼마나 이겼는가보다 어떤 관습이 성공의 앞뒤에서 사람을 지켰거나 무너뜨렸는가로 읽힙니다.

2. 전승과 사실 사이

리비우스는 믿기 어려운 것을 믿는 척하지 않습니다. 건국 이전의 이야기는 시적 허구에 가까우니 긍정도 반박도 하지 않겠다고 서문에서 선언합니다.

I have no intention either to affirm or refute

나는 긍정할 생각도, 반박할 생각도 없다.

쿠르티우스 전설에서는 증거가 사라졌으니 소문을 따르겠다고 적고, 베이이의 점쟁이 이야기는 무대에 어울리는 꾸밈이라 평합니다.

we must stand by the rumour of tradition

우리는 전승의 소문에 기댈 수밖에 없다.

6권 첫머리에서는 초기 기록이 희미한 이유를 대고, 8권 끝에서는 장례 연설이 역사를 오염시켰다고 합니다.

history has been much corrupted by means of funeral panegyrics

역사는 장례 찬사 때문에 크게 오염되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태도는 더 날카로워집니다. 발레리우스 안티아스가 숫자를 부풀린다고 여러 번 비판하고, 38권에서는 스키피오의 재판과 죽음에 대한 사료가 서로 모순되어 판단할 수 없다고 인정합니다.

I cannot determine which tradition or which writings I ought to credit

나는 어느 전승, 어느 기록을 믿어야 할지 정할 수 없다.

3. 루크레티아와 자유의 시작

루크레티아의 이야기는 왕정의 끝이자 공화정의 시작입니다. 겁탈당한 그녀는 아버지와 남편과 브루투스와 발레리우스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자결합니다.

But the body only has been violated, the mind is guiltless

더럽혀진 것은 몸뿐이고 마음은 죄가 없다.

2권 첫머리에서 리비우스는 새 시대의 원리를 선언합니다.

the sovereignty of the laws, more powerful than that of men

사람보다 강한 법의 주권.

그는 자유의 기원이 왕권이 줄어서가 아니라 집정관 권한이 연간으로 바뀐 데 있다고 봅니다. 왕정을 그리워하는 귀족 청년들은 법을 이렇게 불평합니다.

laws were a deaf, inexorable thing

법은 귀먹은, 가차 없는 물건이다.

브루투스는 이들 가운데 자기 두 아들이 있었음에도 처형을 직접 감독합니다. 공화정이 처음부터 사적 정을 눌러야 서는 체제임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4. 배와 지체: 신분 투쟁

채무로 지친 평민이 성산으로 철수하자 메네니우스 아그리파가 배와 지체의 우화로 설득합니다.

that the service of the belly was by no means a slothful one

배의 봉사는 결코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

3권에서 카눌레이우스는 귀족이 평민의 호흡조차 못마땅해한다고 맞받습니다.

That you breathe, that you enjoy the faculty of speech

당신들이 숨 쉬고 말하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분노거리다).

리비우스는 귀족과 평민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퀸크티우스의 입을 빌려 신분 간 불화가 나라의 해악이라고 합니다.

The discord among the several orders is the bane of this city

여러 신분 사이의 불화가 이 도시의 해악이다.

자유를 지키는 데 필요한 절제도 그는 이렇게 평합니다.

So difficult a thing is moderation in maintaining liberty

자유를 지키는 일에서 절제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5. 킨킨나투스와 베르기니아

로마가 위기에 처하자 구원자로 불린 킨킨나투스는 농사짓던 사람이었습니다.

cultivated a farm of four acres, at the other side of the Tiber

티베리스 강 건너 네 에이커의 농장을 일구고 있었다.

독재관 임기를 16일 만에 반납한 그는 권력을 오래 쥐지 않는 공화정의 이상입니다. 반대로 십인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베르기니아를 노예로 만들려다 아버지에게 딸을 잃습니다. 베르기니우스는 광장에서 딸을 찌르고 아피우스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With this blood I devote thee, Appius, and thy head.

이 피로 아피우스, 너와 네 머리를 바친다.

감옥에서 상소를 외치게 된 아피우스를 보며 군중이 수군거리는 대목도 있습니다.

at length there are gods, and that they do not disregard human affairs

마침내 신들이 있고, 신들이 인간사를 무시하지 않는다.

권력이 법을 어기면 신들이 갚는다는 리비우스의 확신이 드러납니다.

6. 갈리아인과 카밀루스

알리아 전투에서 로마는 진영도 방벽도 점괘도 없이 싸우다 무너집니다. 금 1000파운드로 합의하는 자리에서 갈리아 왕은 저울에 칼을 던지며 외칩니다.

Woe to the vanquished!

패자에게 화 있으라!

그 순간 도착한 카밀루스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to recover their country with steel, not with gold

조국을 금이 아니라 칼로 되찾으라.

카밀루스는 팔레리이에서는 적의 배신을 벌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교사를 벌거벗겨 돌려보내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There are laws of war as well of peace

평화에도 법이 있듯 전쟁에도 법이 있다.

베이이로 이주하자는 호민관들에게는 로마의 흥망이 신을 따랐는지에 달렸다고 연설합니다.

all things succeeded favourably with us whilst we followed the gods

우리가 신들을 따랐을 때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이주 논쟁은 원로원 밖에서 한 백인대장이 외친 소리로 끝납니다.

Standard-bearer, fix your standard! it is best for us to remain here.

기수여, 깃발을 꽂아라! 여기 머무르는 것이 최선이다.

7. 규율과 헌신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는 카밀루스를 질투해 귀족을 버렸다가 몰락합니다. 리비우스의 평은 이렇습니다.

preferred to be of a great, rather than of a good character

선량한 사람보다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택했다.

투옥되면서 그는 외칩니다.

Shall this right hand, by which I beat off the Gauls

갈리아를 쫓아낸 이 오른손이 (사슬에 묶여야 하는가).

8권의 토르콰투스는 명령을 어기고 일대일로 이긴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We shall be a melancholy example, but a profitable one

우리는 비통한 선례가 되겠지만 이로운 선례가 될 것이다.

파피리우스가 파비우스를 사면하는 대목에서는 군기와 권위의 승리가 함께 선언됩니다.

Military discipline has prevailed; the majesty of government has prevailed

군기가 이겼다. 통치의 권위가 이겼다.

리비우스는 승리 후 돌아온 토르콰투스를 노인들만 맞았고 젊은이들은 평생 저주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습니다.

8. 카우디움과 알렉산드로스

카우디움에서 삼니움 장군 폰티우스는 전쟁의 정당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war is just to those for whom it is necessary

전쟁은 그것이 필요한 이들에게 정당하다.

포스투미우스가 조약을 부인하고 자기 몸만 넘기려 하자 폰티우스는 로마의 방식을 이렇게 비웃습니다.

ye always spread over your fraudulent conduct some show of right

너희는 늘 사기 같은 행실에 정당함의 겉치레를 덧씌운다.

9권의 여담에서 리비우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이탈리아에 왔다면 어땠을지 자문합니다. 로마 원로원을 이렇게 평합니다.

it consisted of kings

(원로원은) 왕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위대함은 한 사람의 것이라고 그는 반박합니다.

it is the greatness of an individual

그것은 한 개인의 위대함이다.

한 번 지면 전쟁에서 지는 알렉산드로스와, 여러 번 져도 일어서는 로마의 차이가 결론입니다.

Alexander, if overcome in one battle, would have been overcome in war.

알렉산드로스는 한 번의 전투에서 졌다면 전쟁에서 진 것이다.

9. 한니발의 초상

21권은 이 전쟁을 가장 기억할 만한 전쟁이라 선언합니다.

the most memorable of all wars that were ever waged

지금까지 치러진 모든 전쟁 가운데 가장 기억할 만한 전쟁.

카르타고의 한노는 소년 한니발을 두고 이렇게 경고합니다.

lest at some time or other this small fire should kindle a vast conflagration

언젠가 이 작은 불이 큰 불길을 일으키지 않도록.

리비우스의 초상은 칭찬과 비난을 함께 담습니다. 보초들 사이 맨땅에서 자는 장군이지만 이런 악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no fear of the gods, no respect for oaths, no sense of religion

신에 대한 두려움도, 맹세에 대한 존중도, 종교심도 없었다.

알프스에서 병사들이 두려워하자 한니발은 이렇게 설득합니다.

imagining the Alps to be--what else than lofty mountains?

알프스가 높은 산 말고 무엇이라고 상상하는가?

그럼에도 28권에서 리비우스는 이 적에게 이런 찬사를 바칩니다.

more deserving of admiration in adversity than in prosperity

순경에서보다 역경에서 더 감탄할 만하다.

10. 파비우스와 칸나이

파비우스는 지연으로 로마를 버틴 사람입니다. 집정관 파울루스에게 한 마지막 충고가 22권에 있습니다.

Precipitation is improvident and blind.

서두름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이 멀었다.

All things are clear and sure to the deliberate man.

신중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분명하고 확실하다.

칸나이에서 로마군이 포위된 뒤, 한니발의 부장 마하르발은 닷새 후 카피톨리움에서 연회를 하자고 재촉하고 한니발은 숙고가 필요하다고 답합니다. 마하르발은 이렇게 말합니다.

Of a truth the gods have not bestowed all things upon the same person.

정말로 신들은 모든 것을 한 사람에게 주지 않았다.

카누시움에서는 젊은 스키피오가 칼을 뽑아 서약시킵니다.

neither will I myself desert the cause of the Roman republic

나 자신도 로마 공화국의 대의를 저버리지 않겠다.

패전한 바로를 시민들이 맞이한 이유도 리비우스는 높이 평가합니다. 공화국에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1. 스키피오와 로마의 위기 관리

카푸아의 몰락은 안락 탓으로 설명됩니다. 한니발의 겨울 숙영지를 리비우스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For sleep, wine, feasting, women, baths, and ease

잠, 술, 잔치, 여자, 목욕, 안락.

반대로 로마는 이탈한 식민시 12곳에 이름을 부르지 않는 침묵의 견책을 내렸고, 리비우스는 이것이 로마 국민의 품위에 가장 맞았다고 합니다.

Such a tacit reproof appears most consistent with the dignity of the Roman people.

그런 침묵의 견책이 로마 국민의 품위에 가장 어울려 보인다.

스키피오는 노바 카르타고를 썰물 때 석호를 건너 함락하며 바다의 신을 길잡이로 삼으라고 병사에게 말합니다.

ordered them to follow Neptune as their guide

넵투누스를 길잡이로 삼아 따르라고 명했다.

수쿠로 반란에서는 반란 병사들에게 군중이 바다와 같다고 말합니다.

every multitude is in its nature like the ocean

모든 군중은 본성상 바다와 같다.

그가 아프리카 원정을 주장하며 파비우스와 맞선 대목에서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Let the Roman camp overhang the gates of Carthage

로마의 진영이 카르타고의 성문 위에 드리우게 하자.

그러나 리비우스는 스키피오를 완벽한 사람으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소포니스바에게 홀려 결혼한 마시니사를 질책하면서 스키피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Beware how you deform many good qualities by one vice

하나의 악덕으로 여러 좋은 자질을 일그러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12. 자마의 한니발

자마 직전의 회담에서 한니발은 스키피오에게 평화를 권합니다.

A certain peace is better and safer than a victory in prospect

확실한 평화는 기대 속의 승리보다 낫고 더 안전하다.

그리고 행운만 겪은 이에게 경고합니다.

Rarely does that man consider the uncertainty of events whom fortune hath never deceived.

운이 한 번도 속이지 않은 사람이 사건의 불확실성을 헤아리는 일은 드물다.

회담은 결렬되고, 평화 조건이 낭독된 뒤 카르타고 원로원에서 한니발이 웃자 하스드루발 하이두스가 비난합니다. 한니발은 이렇게 답합니다.

No great state can remain at rest long together.

어떤 큰 나라도 오래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로마에 온 카르타고 사절 하스드루발 하이두스의 연설은 이 책의 주제를 거꾸로 확인해 줍니다.

extended their empire more by sparing the vanquished than by conquering

정복했을 때보다 패자를 아꼈을 때 제국을 더 넓혔다.

13. 그리스의 자유

로마 군단을 마케도니아로 보낼 것인가는 31권에서 전쟁 문제로 재정의됩니다.

Whether you must transport your legions to Macedonia, or admit the enemy into Italy?

군단을 마케도니아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적을 이탈리아에 들일 것인가?

아카이아 회의에서 아리스타이노스가 중립론을 반박합니다.

But that is not a middle way; it is no way at all.

그러나 그것은 중간 길이 아니다. 아무 길도 아니다.

이스트미아에서 자유가 선포되자 리비우스는 군중의 환호를 이렇게 평합니다.

of all blessings none is more grateful to the multitude than liberty

모든 축복 가운데 군중에게 자유만큼 반가운 것은 없다.

그리스인들은 로마를 이렇게 칭송했습니다.

waged wars for the liberty of others

다른 이들의 자유를 위해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아이톨리아의 비난은 자유의 허울을 씌운 빈 문서라는 것이었고, 리비우스는 그 비난이 근거 없지는 않았다고 인정합니다. 퀸크티우스는 마지막 연설에서 그리스인에게 자유를 절제 있게 쓰라고 당부합니다.

to use their liberty with moderation

자유를 절제 있게 쓰라.

14. 오피우스법과 카토

34권의 오피우스법 논쟁은 사소한 일이 격렬한 논쟁이 되는 장면입니다. 카토는 여성이 평등해지면 곧 윗사람이 된다고 경고합니다.

they will have become your superiors

그들이 당신들의 윗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또 검소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최악의 수치라고 말합니다.

Of all kinds of shame, the worst, surely, is the being ashamed of frugality

모든 부끄러움 가운데 최악은 검소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발레리우스의 반론은 이 법이 칸나이 직후에 만든 20년짜리 전시 임시법이라는 것입니다.

The bondage of women is never shaken off without the loss of their friends

여성의 속박은 그들의 친구를 잃지 않고는 풀리지 않는다.

법은 폐지되고, 카토는 에스파냐에서 병사와 같은 식사와 노역으로 몸소 규율을 지킵니다.

In spare diet, watching, and labour, he vied with the meanest of his soldiers

검소한 식사, 불침번, 노역에서 그는 가장 낮은 병사와 겨루었다.

15. 바쿠스 사건

39권의 바쿠스 사건은 로마가 외래 종교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 줍니다. 히스팔라는 신도들의 제일 원칙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To think nothing unlawful, was the grand maxim of their religion.

불법이라고 여기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그들 종교의 으뜸 원칙이었다.

집정관은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nothing is more deceptive in appearance than false religion.

겉모습이 거짓 종교만큼 속이기 쉬운 것은 없다.

입문한 7천 명 이상을 추적하고 모임 장소를 철거하는 이 사건은 로마의 오래된 질서 의식을 드러냅니다. 같은 권에서 리비우스는 아시아에서 돌아온 군대가 외래 사치를 들여왔다고 단언합니다.

the origin of foreign luxury imported into the city

외래 사치가 도시에 들어온 기원.

그러고는 요리사가 천한 노예에서 기예를 가진 자가 되었다는 말로 덧붙입니다. 서문에서 말한 도덕의 하강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그가 짚는 지점입니다.

16. 스키피오의 재판

38권에서 호민관들은 안티오코스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스키피오를 소환합니다. 소환일에 스키피오는 변명 대신 자마 전투를 말하고 군중을 이끌고 카피톨리움으로 갑니다.

on the anniversary of this day I fought a pitched battle in Africa

오늘과 같은 날 나는 아프리카에서 정면 회전을 치렀다.

그를 고소하는 편은 이렇게 논증합니다.

no one citizen ought to stand so high above the rest

어느 한 시민도 다른 이들 위에 그토록 높이 서서는 안 된다.

호민관 그락쿠스는 불기소를 주장합니다.

Shall Scipio, the celebrated conqueror of Africa, stand at the feet of you, tribunes?

아프리카를 정복한 스키피오가 호민관인 당신들의 발치에 서야 하는가?

39권에서 리비우스는 한니발과 필로포이멘과 스키피오, 세 거인의 죽음을 한꺼번에 평합니다.

no one of them met a death suitable to the splendour of his life

누구도 자기 삶의 찬란함에 어울리는 죽음을 맞지 못했다.

17. 필리포스 가문의 비극

40권은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가족 비극입니다. 테옥세나는 아이들을 왕의 손에 넘기지 않으려고 바다 위에서 말합니다.

Death is our only refuge.

죽음만이 우리의 유일한 피난처다.

페르세우스와 데메트리오스의 불화가 커지는 대목에서 리비우스는 이렇게 씁니다.

In the case of domestic discord, nothing that is concealed can remain so.

집안의 불화에서는 숨겨진 것이 숨겨진 채로 남을 수 없다.

진실이 드러난 뒤 필리포스의 말년은 이렇게 그려집니다.

apparitions and phantoms of his innocent murdered son ever and anon disquieted him

죄 없이 살해된 아들의 환영과 유령이 이따금 그를 괴롭혔다.

같은 권에서 누마의 책이 발견되자 소각되는 이유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a tendency to undermine the established system of religious doctrines

기존 종교 체계를 뒤엎는 경향.

18. 파울루스의 승리와 두 아들

42권에서 원로원은 마르키우스가 휴전으로 시간을 번 책략을 두고 갈립니다. 노년층은 이 말을 그리스와 카르타고식 지혜라고 비판합니다.

more glorious to deceive an enemy than to overcome him by force

힘으로 적을 이기는 것보다 속이는 것이 더 영광스럽다(는 지혜).

이 대목에서 리비우스는 효용을 중시한 다수가 이긴다고 적습니다. 로마의 도덕이 선조에서 멀어지는 한 걸음입니다. 44권에서 파울루스는 광장의 전략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let him not, on land, assume the office of a pilot

육지에서 키잡이 노릇을 하지 말라.

피드나에서 달아난 왕을 리비우스는 간결하게 적습니다.

The king himself was the first in flight.

왕 자신이 가장 먼저 달아났다.

45권에서 사로잡힌 왕 앞의 젊은 장교들에게 파울루스가 한 말은 승자에게 향한 경고입니다.

we know not what the evening may produce

저녁이 무엇을 가져올지 우리는 모른다.

개선식 뒤에 그가 한 말은 이 책이 남긴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린 두 아들이 개선 직전과 직후에 잇달아 죽은 뒤, 그는 운의 변화를 나라가 아니라 자기 집이 대신 겪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my own house, rather than the commonwealth, might feel the change

공화국이 아니라 내 집이 그 변화를 겪게 되기를.

19. 이 책을 읽는 방법

『로마사』는 분량이 방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보다 관심에 따라 골라 읽기에 적합합니다. 1권은 건국 전설과 왕정, 2~6권은 공화정의 시작과 신분 투쟁, 갈리아의 약탈과 카밀루스의 이야기입니다. 7~10권은 삼니움 전쟁과 규율과 헌신의 일화이고, 9권의 알렉산드로스 여담은 따로 읽어도 좋습니다. 21~30권은 한니발 전쟁의 완결된 서사입니다. 처음이라면 서문과 1권의 루크레티아, 3권의 킨킨나투스와 베르기니아, 5권의 갈리아 약탈, 21~22권의 한니발과 칸나이, 30권의 자마를 먼저 읽는 순서를 권합니다. 31~45권은 로마가 그리스를 상대하는 외교의 이야기이고, 34권의 오피우스법과 39권의 바쿠스 사건, 38권의 스키피오 재판, 45권의 파울루스는 읽을 만한 대목입니다. 리비우스는 전승과 사실을 가르고 숫자를 의심하면서도 도덕적 평가는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같은 사건을 다룬 폴리비오스와 나란히 읽으면 두 사람이 무엇을 보는 눈인지 쉽게 비교됩니다.

이 글과 이어 읽을 책은 역사, 영웅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고전의 한 권 요점은 ReadGem 블로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