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출판년도 1878
Human, All Too Human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자유로운 정신을 위한 책
프리드리히 니체 Friedrich Nietzsche (1844–1900)
They are some compensation for the lack of friends.
그들은 친구가 없는 처지를 얼마간 보상해 준다.
Lack of the historical sense is the traditional defect in all philosophers.
역사 감각의 결여는 모든 철학자의 전통적인 결함이다.
한눈에 보기
고귀해 보이는 것들, 곧 도덕과 종교와 형이상학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 책은 환상을 걷어 내고도 삶을 사랑하는 법을 찾는 실험이다.
비슷한 책
- 프리드리히 니체 Beyond Good and Evil (선악의 저편)
- 프리드리히 니체 Thus Spake Zarathustra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The Wisdom of Life (삶의 지혜)
한 권 요점
Friedrich Nietzsche
프리드리히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독일 작센의 작은 마을 뢰켄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는 어머니와 누이동생 엘리자베트, 친척 여성들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신앙이 깊은 집안에서 자란 소년은 고전어와 음악에 뛰어났고, 본과 라이프치히에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했습니다. 스물네 살이던 1869년에는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문헌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재능이 일찍부터 얼마나 눈에 띄었는지를 보여 주는 이력입니다.
바젤 시절 니체의 삶을 크게 바꾼 사람은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철학자 쇼펜하우어였습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고, 스위스 트립셴에 살던 바그너와 가깝게 지냈습니다. 첫 책 『비극의 탄생』(1872)은 바그너에게 헌정되었고 쇼펜하우어의 영향도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1876년 바이로이트에서 열린 첫 바그너 축제를 지켜보며 니체는 실망했고, 이상으로 우러르던 세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극심한 두통과 눈병, 위장 장애에 시달렸고, 건강이 나빠지면서 강의를 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이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쓰인 책입니다. 니체는 스승처럼 따르던 쇼펜하우어의 형이상학과 바그너의 낭만주의를 내려놓고, 도덕이나 종교, 예술을 신비로운 눈이 아니라 관찰하는 눈으로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부제는 "자유로운 정신을 위한 책"이고, 1878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철학이라기보다 짧은 단상들의 모음에 가깝고, 번호가 붙은 짧은 글들이 이어집니다. 곧 한 편 한 편이 한두 문단이라서 어디서든 펼쳐 읽을 수 있습니다.
니체는 1879년 건강 문제로 바젤 대학교를 떠났고, 이후 약 십 년 동안 연금에 의지해 스위스와 이탈리아, 프랑스 남부를 옮겨 다니며 집필했습니다. 『아침놀』,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이 이 시기에 나왔습니다.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정신이 무너진 뒤에는 다시 글을 쓰지 못했고,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돌봄을 받다가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쉰다섯 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읽히는 니체의 글 일부는 누이동생이 편집한 것이어서, 그의 이름이 훗날 잘못된 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은 책의 서문과 앞의 세 부, 곧 「처음과 마지막 것들」, 「도덕 감정의 역사」, 「종교적 삶」을 중심으로 읽습니다. 책에 실린 서문은 1886년에 새로 쓴 것이어서, 한 걸음 물러선 니체가 자기 책을 돌아보는 글입니다. 이 서문과 본문에서 열세 가지를 골라 정리했습니다. 니체의 결론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책의 가치는 결론보다 질문하는 방식, 곧 당연하게 믿어 온 것을 한 번 더 의심해 보는 태도에 있습니다.
줄거리
이 책에는 이어지는 줄거리가 없습니다. 대신 큰 흐름이 있습니다. 서문은 이 책을 쓴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아끼던 것들을 한꺼번에 의심하게 된 뒤의 고립과 병, 그리고 회복의 단계를 니체는 「자유로운 정신」이라는 이름으로 그려 냅니다. 그에게 자유로운 정신은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해서 상상해 낸 동행입니다.
본문은 먼저 「처음과 마지막 것들」에서 철학의 오래된 질문, 곧 세계의 근본과 인간의 본성, 형이상학의 세계를 다룹니다. 니체는 이런 질문에 답을 내리려 하기보다, 그런 답을 만들어 낸 사람들의 습관과 오류를 설명합니다. 이어지는 「도덕 감정의 역사」에서는 선과 악, 정의, 동정, 허영, 책임 같은 개념이 처음부터 숭고했던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이익과 습관에서 자라났다고 추적합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적 삶」에서는 종교가 왜 그토록 오래 사람의 마음을 붙들었는지, 그리고 종교의 힘이 약해질 때 무엇이 남는지를 살핍니다.
책 전체를 이끄는 태도는 의심입니다. 다만 파괴를 위한 의심이 아니라, 더 가볍고 정직하게 살기 위한 의심입니다. 니체는 스스로를 "옛 비도덕주의자"라고 부르면서도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서 삶을 긍정하는 길을 찾으려 합니다. 아래 열세 가지 항목은 이 길을 따라가며 지금 우리에게도 쓸모가 있는 생각을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자유로운 정신은 필요에서 만들어진 동행이다
서문에서 니체는 자신이 이 책을 바친 "자유로운 정신"들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왜 필요했는지를 숨기지 않습니다.
Such "free spirits" do not really exist and never did exist. But I stood in need of them, as I have pointed out, in order that some good might be mixed with my evils.
그런 "자유로운 정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 적도 없다. 그러나 내게는 그들이 필요했다. 앞서 말했듯이, 나의 불행에 얼마간의 좋은 것이 섞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니체는 병과 고독과 낯섦 속에서 함께 웃고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했고, 그런 상대가 없어서 스스로 상상해 냈습니다. 그는 이들을 가리켜 "친구가 없는 처지를 얼마간 보상해 주는" 존재라고 부릅니다. 이 대목은 외로운 사람이 사고하는 방식을 잘 보여 줍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주위와 멀어지고, 그 거리를 견디려고 아직 오지 않은 독자와 동료를 마음속에 그려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런 사람들이 언젠가 정말 나타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오늘 혼자 생각한다고 해서 영원히 혼자인 것은 아니라는 위로입니다.
2. 해방은 가장 사랑하던 것에서 떠나는 일이다
니체는 정신의 해방이 얌전한 깨달음이 아니라 지진 같은 사건이라고 묘사합니다. 가장 단단하게 묶는 끈은 의무와 존경, 고향에 대한 감사 같은 귀한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Better to die than live here"--so sounds the tempting voice: and this "here," this "at home" constitutes all they have hitherto loved.
"여기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유혹하는 목소리는 이렇게 울린다. 그리고 이 "여기", 이 "집"이야말로 그들이 지금까지 사랑해 온 모든 것이다.
떠나는 일이 아프고 위험한 이유는, 떠나려는 대상이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입니다. 해방된 영혼은 한동안 거칠어지고, 존경받던 것을 뒤엎고 금지된 것을 시험하며 방황합니다. 니체는 이 시기를 병으로까지 부릅니다. 새로운 생각을 얻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고, 오래 믿어 온 것을 놓을 때는 죄책감과 수치, 그리고 승리의 희열이 한꺼번에 찾아온다는 점을 숨김없이 적은 것입니다. 지금 익숙한 환경이나 믿음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라면, 이 흔들림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흔한 과정이라는 말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덕목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서문의 여섯 번째 절에서 니체는 자유로워진 정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그 답을 적습니다. 왜 그토록 외롭고 차가웠는가. 그 답은 이렇습니다.
You had to become master over yourself, master of your own good qualities. Formerly they were your masters: but they should be merely your tools along with other tools.
너는 너 자신의 주인이, 너 자신의 좋은 성질들의 주인이 되어야 했다. 예전에는 그것들이 너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른 도구들과 나란히 놓인 하나의 도구일 뿐이어야 한다.
성실, 친절, 겸손, 충성처럼 좋은 성질도 의식하지 못한 채 따르면 우리를 부리는 주인이 됩니다. 니체는 그 성질들을 버리자고 하지 않고, 필요할 때 쓰고 거둘 수 있는 도구로 되돌리자고 말합니다. 예와 아니오를 언제 하고 언제 하지 않을지를 스스로 정하는 힘이 자유라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일수록 거절하지 못해서 지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구절은 선함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선함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라는 요구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회복은 작은 용량으로 오래 한다
서문의 다섯 번째 절에서 니체는 병에서 서서히 낫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그립니다. 그들은 햇빛 한 줄기에도 감사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It is wisdom, worldly wisdom, to administer even health to oneself for a long time in small doses.
건강조차도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자신에게 투여하는 것, 그것이 지혜이며 세속적인 지혜이다.
니체는 이 회복의 과정이 비관주의를 치료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병을 앓아 본 사람은 일상의 작은 것들, 곧 따뜻한 날씨나 담벼락에 닿는 햇빛을 알아봅니다. 한꺼번에 낫고 한꺼번에 바뀌려는 조급함이 오히려 회복을 해칩니다. 건강과 습관, 관계를 고치려는 모든 시도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큰 결심으로 하루에 바꾸려 하기보다 작은 용량을 오래 이어 가는 편이 결국 가장 멀리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5. 철학자의 결함은 역사 감각이 없는 것이다
본문의 첫 부 「처음과 마지막 것들」에서 니체는 철학자들의 가장 흔한 실수를 짚습니다. 자기 시대의 인간을 곧 인간 자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Lack of the historical sense is the traditional defect in all philosophers.
역사 감각의 결여는 모든 철학자의 전통적인 결함이다.
철학자들은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의 본능과 이성을 변하지 않는 기준으로 삼고, 그것에서 세계 전체의 이치를 끌어내려 합니다. 하지만 니체의 지적에 따르면 인간은 변해 왔고 지성 자체도 하나의 진화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몇천 년은 인간 역사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므로, 그 안에서 본 인간을 영원한 인간으로 믿는 것은 성급합니다. 이 비판은 철학자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원래 사람은 그렇다"고 말하지만, 그 "원래"는 대개 내가 사는 시대와 장소의 관습일 뿐입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인지 한 번 되묻는 습관이 여기서 나옵니다.
6. 행복을 주는 의견이 곧 참인 것은 아니다
니체는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잘못된 추론을 하나하나 지적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효과와 진리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So also: an opinion gives happiness, therefore it is the true one, its effect is good, therefore it is itself good and true.
마찬가지로, 어떤 의견이 행복을 주니 그것은 참이라고 한다. 그 효과가 좋으니 그것 자체도 좋고 참이라고 한다.
이 문장 앞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니 옳다"라는 추론이 놓여 있습니다. 오래 이어져 왔다는 사실에서 옳다는 결론을 끌어내고, 위로가 된다는 사실에서 참이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니체는 반대로 가는 것도 똑같이 틀렸다고 덧붙입니다. 불편하니까 참일 것이라는 생각, 곧 믿음이 괴롭다고 해서 오히려 진짜라고 믿는 자유로운 정신의 유혹까지 경계합니다. 나에게 좋은 생각과 맞는 생각은 서로 다른 질문이라는 구분은 오늘날에도 쓸모가 큽니다. 뉴스를 보거나 의견을 정할 때 "이 말이 마음에 드는가"와 "이 말이 사실인가"를 따로 묻는 것만으로도 판단이 달라집니다.
7. 형이상학의 세계는 가능하지만 쓸모가 없다
니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가 있을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에 삶을 걸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There always remains, however, the possibility already conceded: but nothing at all can be made out of that, to say not a word about letting happiness, salvation and life hang upon the threads spun from such a possibility.
그러나 이미 인정한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아무것도 끌어낼 수 없으며, 행복과 구원과 삶을 그런 가능성에서 자아낸 실에 매달아 두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논지는 간단합니다. 형이상학의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딘가라는 사실뿐이고, 그렇다면 그에 대한 지식은 가장 쓸모없는 지식이 됩니다. 사람들이 형이상학에 끌린 이유도 진리가 아니라 열정과 오류, 자기기만이었다는 것이 니체의 진단입니다. 확인할 수 없는 가능성을 근거로 오늘의 선택을 결정하지 말라는 조언이기도 합니다. 있을지도 모르는 것에 모든 것을 맡기기보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 위에서 살아가라는 실용적인 태도가 여기에 있습니다.
8. 비논리적인 것도 삶에는 필요하다
이성을 앞세우는 책에서 뜻밖에 비논리의 필요를 인정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니체는 이것을 사상가를 괴롭히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Among the things which can bring a thinker to distraction is the knowledge that the illogical is necessary to mankind and that from the illogical springs much that is good.
사상가를 정신 못 차리게 만들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비논리적인 것이 인류에게 필요하며 비논리적인 것에서 많은 좋은 것이 솟아난다는 앎이다.
그가 보기에 비논리는 열정과 언어, 예술과 종교에 깊이 박혀 있고, 삶에 가치를 주는 거의 모든 것에 스며 있습니다. 이를 걷어 내려는 시도는 그 아름다운 것들을 함께 해칩니다. 가장 이성적인 사람도 때때로 자연으로, 곧 사물과 비논리적으로 관계 맺는 근본적인 자세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계산과 효율로만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가벼운 경고처럼 읽을 수 있습니다. 의심하는 책이 이성의 한계도 함께 인정한다는 점에서, 니체의 의심이 단순한 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9. 인간을 관찰하는 일은 삶의 짐을 덜어 준다
둘째 부 「도덕 감정의 역사」는 심리 관찰의 효용을 말하며 시작합니다. 니체는 이 기술이 한때 널리 알려져 있었다고 말합니다.
That reflection regarding the human, all-too-human--or as the learned jargon is: psychological observation--is among the means whereby the burden of life can be made lighter.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 대한 성찰, 곧 학술 용어로 심리 관찰은 삶의 짐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의 하나다.
그는 이 기술이 잊힌 것을 안타까워하며, 라 로슈푸코 같은 격언가를 읽은 유럽의 교양인이 얼마나 드문지 탄식합니다. 사람의 행동 뒤의 동기를 살피는 일은 냉소가 아니라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조금 이해하면 화는 줄고 피로도 줄어듭니다. 책 제목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단죄가 아니라 이해의 표현이라는 점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사람의 약함을 알아보는 눈이 있으면 사람을 덜 원망하게 되고, 나 자신을 덜 몰아붙이게 됩니다.
10. 감사는 부드러운 복수일 수 있다
도덕 감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부분에서 니체는 감사라는 따뜻한 감정에도 날카로운 관찰을 들이댑니다.
It is a mild form of revenge.
그것은 복수의 순한 형태이다.
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힘 있는 사람은 은혜를 입으면 상대가 자기 영역에 들어온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감사로 답례해야 비로소 대등해진 만족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 만족을 얻지 못하면 힘 있는 사람은 무력한 존재로 취급받게 됩니다. 니체는 스위프트의 말을 빌려, 사람은 복수심이 강한 만큼 감사하기도 한다고 덧붙입니다. 이 설명이 모든 감사에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흔히 받은 도움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선물을 받고 곧바로 더 큰 선물로 갚고 싶어지는 마음 안에는 빚지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찰은 선의를 의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선의가 오가는 방식을 더 정확히 보려는 것입니다.
11. 오래 가장한 것은 결국 그 사람이 된다
도덕 감정에 관한 부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관찰 가운데 하나는 연기와 실제의 경계에 관한 것입니다.
When anyone, during a long period, and persistently, wishes to appear something, it will at last prove difficult for him to be anything else.
누구든 오랜 기간 끈질기게 무엇인가로 보이기를 바라면, 마침내 그는 다른 어떤 것이 되기가 어려워진다.
니체는 배우가 자기 아이의 장례식에서조차 자신의 슬픔을 관객처럼 바라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사제들은 젊어서는 위선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꾸밈없이 진짜 사제가 되고, 직업의 대부분은 몸가짐을 흉내 내는 데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늘 친절한 사람의 가면을 쓰는 사람은 마침내 친절한 마음을 갖게 되고, 가면이 그를 지배하여 그가 정말로 선한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 관찰은 위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성격을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아직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면 먼저 그런 사람처럼 행동해 보는 일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12. 희망은 가장 질긴 재앙일 수도 있다
니체는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를 뒤집어 읽습니다. 상자에서 모든 재앙이 날아간 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희망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For this purpose he bestowed hope upon man: it is, in truth, the greatest of evils for it lengthens the ordeal of man.
이를 위해 제우스는 인간에게 희망을 주었다. 희망은 사실 가장 큰 재앙이다. 인간의 시련을 길게 늘이기 때문이다.
제우스는 인간이 재앙 속에서도 목숨을 끊지 않고 계속 불행해지도록 희망을 남겨 두었다는 것이 니체의 해석입니다. 상자 안에 남은 것을 사람들은 축복으로 알지만, 니체는 그것이 시련을 오래 끌고 가게 하는 마지막 재앙이라고 봅니다. 이 해석은 도발적이어서 모두가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희망이 때로는 바꿀 수 있는 현실을 바꾸지 않고 견디게 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곱씹어 볼 만합니다. 막연한 기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미루고 있지 않은지를 스스로 묻게 만드는 구절입니다.
13. 진실을 보는 일은 피를 흘리게 할 수도 있다
셋째 부 「종교적 삶」에서 니체는 믿음을 잃은 사람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적습니다. 종교와 형이상학의 위로가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위로가 필요할 만큼 사람이 예민해졌다는 것입니다.
From this state of things arises the danger that, through the perception of truth or, more accurately, seeing through delusion, one may bleed to death.
이런 처지에서 위험이 생긴다. 진리를 인식함으로써, 더 정확히 말하면 망상을 꿰뚫어 봄으로써, 사람이 피를 흘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이다.
니체는 바이런의 시를 인용합니다. "슬픔은 앎이다. 가장 많이 아는 이들이 가장 깊이 애도해야 한다. 지식의 나무는 생명의 나무가 아니다." 그리고 이 슬픔에 맞서는 처방으로 호라티우스의 가벼운 시를 권합니다. 큰 소나무와 플라타너스 아래 누워 쉬는 일입니다. 진실을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에게도 쉬어 갈 그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니체는 종교와 예술이 고통을 없애지 않고 느끼는 방식만 바꾸는 진통제 구실을 해 왔다고 지적하고, 그 힘이 약해질수록 사람들이 악 자체를 없애는 쪽을 더 찾게 된다고 말합니다. 의심은 차갑지만, 의심하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로 읽는 책이 아닙니다. 단상들이 번호로 나뉘어 있어서 마음이 가는 곳부터 읽어도 됩니다. 처음 읽는다면 서문을 먼저 권합니다. 병과 고독을 지나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니체가 직접 말하는 글이라서, 책 전체가 어떤 마음으로 쓰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도덕 감정의 역사」에서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단상 몇 개를 골라 읽어 보세요. 한 편이 짧아서 하루에 서너 편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니체의 어떤 주장은 지나치게 단정적이거나 불편합니다. 도덕을 이익과 습관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나 인간의 책임을 부정하는 듯한 부분에서는 반론이 떠오를 수 있고, 그 반론을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책이 바라는 읽기입니다. 결론을 받아들이기보다 "나는 이것을 왜 당연하게 믿고 있는가"를 묻는 도구로 쓰면 이 책은 오래 곁에 둘 수 있는 책이 됩니다. 쓰인 지 백오십 년 가까이 지났지만, 믿음과 도덕과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려는 사람에게 여전히 좋은 동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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