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출판년도 1817 (3판 1830)
The Logic of Hegel
헤겔의 논리학
『철학적 학문들의 백과사전 강요』 제1부
Wherever there is movement, wherever there is life, wherever anything is carried into effect in the actual world, there Dialectic is at work.
움직임이 있는 곳, 생명이 있는 곳, 현실 세계에서 무엇이든 실행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변증법이 작동하고 있다.
This return to the beginning is also an advance.
처음으로 돌아가는 이 귀환은 또한 전진이기도 하다.
한눈에 보기
"있음"이라는 가장 텅 빈 생각에서 출발해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고 넘어서며 이념에 이르는 사유의 길을 그린 헤겔의 압축된 논리학. 이 글은 그 길의 핵심 대목을 스물세 가지로 읽는다.
비슷한 책
- 이마누엘 칸트 The Critique of Pure Reason (순수이성비판)
- 스피노자 Ethics (에티카)
- 카를 마르크스 The Communist Manifesto (공산당 선언)
한 권 요점
The Logic of Hegel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은 독일 관념론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철학자입니다. 그의 영향은 마르크스와 키르케고르처럼 서로 정반대 방향으로 간 사상가들에게까지 미쳤습니다. 헤겔의 저작은 난해하기로 유명합니다. 이 글이 소개하는 책은 그의 체계 전체를 압축한 『철학적 학문들의 백과사전 강요』의 첫째 부분, 곧 「논리학」입니다. 이 부분은 "소논리학"이라고도 불립니다. 영어판에서는 윌리엄 월리스가 번역하면서 헤겔이 강의 중에 덧붙인 설명까지 함께 실었습니다. 그 덧붙인 설명 덕분에 압축된 본문이 훨씬 말하듯이 풀려 있어서, 헤겔을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비교적 열린 입구가 됩니다.
헤겔은 1770년 독일 남서부의 슈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튀빙겐 신학교에서 시인 횔덜린, 철학자 셸링과 함께 공부했고, 가정교사로 일하다가 예나 대학에서 강의하며 첫 주저 『정신현상학』(1807)을 냈습니다. 이후 뉘른베르크에서 김나지움 교장으로 일하면서 『논리의 학』을 완성했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을 거쳐 1818년 베를린 대학 교수가 되어 독일 철학계의 중심 인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글에서 읽는 『철학적 학문들의 백과사전』은 1817년에 처음 나왔고, 강의 교재로 쓰려고 압축해 쓴 책입니다. 그는 1831년 콜레라로 베를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논리학은 흔히 아는 형식 논리학과 다릅니다. 헤겔에게 논리학은 사고의 규칙이 아니라 사고 자체가 스스로 전개되는 과정, 곧 가장 단순한 개념에서 출발해 어떻게 더 풍부한 개념으로 나아가는지를 보여 주는 학문입니다. 책은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의 세 부분으로 나뉘며, 가장 텅 빈 개념인 "순수한 있음"에서 시작해 마지막에 "절대 이념"에 이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알아 둘 점이 있습니다. 헤겔은 읽기 어렵고, 그의 철학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크게 갈립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근대 철학의 정점으로 평가하고, 어떤 이들은 불필요하게 난해한 체계를 세웠다고 비판합니다. 이 글은 헤겔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되도록 쉬운 말로 풀어 보이고, 읽는 이가 직접 판단하도록 합니다.
줄거리
책의 흐름은 이렇게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서론에서 철학이 무엇이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이어서 사고가 세계를 대하는 세 가지 태도, 곧 소박한 형이상학, 경험론과 칸트 철학, 직관적 앎을 차례로 점검합니다. 그런 다음 논리학의 본론으로 들어가 사고의 세 계기인 오성, 변증법, 사변을 설명하고, 존재와 무에서 생성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밟습니다. 이후 본질과 현실, 필연과 자유를 거쳐 개념과 이념에 이르며, 마지막에는 이념이 자연으로 나아가면서 처음으로 돌아옵니다.
아래 스물세 가지는 이 흐름에서 가장 접근하기 쉽고 인상적인 대목을 골랐습니다. 용어가 낯설더라도 비유와 예가 많으니 천천히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시작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책은 철학이 다른 학문과 다른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른 학문은 대상이 있다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출발하지만, 철학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We can assume nothing, and assert nothing dogmatically; nor can we accept the assertions and assumptions of others. And yet we must make a beginning
우리는 아무것도 전제할 수 없고 아무것도 독단적으로 주장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의 주장과 전제를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런데도 시작은 해야 한다.
시작은 그 자체로 아직 근거가 없는 전제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 헤겔의 문제 제기입니다. 이 곤란을 어떻게 풀지가 책 전체의 기획이 됩니다. 앞서 데카르트가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한 것과 비교해 읽으면 흥미롭습니다. 헤겔은 의심 이전에 먼저 어디서든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2. 철학이 어렵다는 불평의 정체
헤겔은 철학이 이해할 수 없다는 불평이 어디서 오는지를 설명합니다. 한 가지 이유는 추상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눈에 익은 이미지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But the fact is that in a notion there is nothing further to be thought than the notion itself.
그러나 사실 개념에는 개념 자체 말고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없다.
그는 이어서 사람들이 어떤 글을 가장 이해하기 쉽다고 느끼는지 날카롭게 짚습니다.
One consequence of this weakness is that authors, preachers, and orators are found most intelligible, when they speak of things which their readers or hearers already know by rote
이 약점의 한 결과로, 저술가와 설교자와 연설가는 독자나 청중이 이미 외워서 아는 것을 말할 때 가장 알아듣기 쉽다고 여겨진다.
듣기 좋은 말은 대개 이미 아는 말이라는 지적입니다. 철학이 낯설고 불편한 이유가 바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변명 같기도 하지만, 쉬운 글이 반드시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경고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3. 구두를 만들려면 구두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철학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를 헤겔은 구두 만드는 사람의 비유로 풉니다.
Everybody allows that to make a shoe you must have learned and practised the craft of the shoemaker, though every man has a model in his own foot
구두를 만들려면 구두장이의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 사람마다 자기 발이라는 본보기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그런데 철학에서만큼은 아무 공부나 노력 없이도 누구나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존재이므로 철학에도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지요. 헤겔은 이 안일한 생각이 직관적으로 안다는 이론에 힘입어 더 강해졌다고 말합니다. 전문성이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분야일수록 오히려 깊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헤엄치기 전에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사람
칸트는 앎을 사용하기 전에 앎의 능력을 먼저 검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헤겔은 그 방법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But to seek to know before we know is as absurd as the wise resolution of Scholasticus, not to venture into the water until he had learned to swim.
그러나 알기 전에 알려고 하는 것은, 헤엄을 배우기 전에는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스콜라스티쿠스의 현명한 결심만큼이나 터무니없다.
앎을 검토하는 일도 앎의 행위로만 이루어지므로, 앎에 앞서 앎을 점검하겠다는 것은 순환에 빠진다는 비판입니다. 이 비판이 칸트의 기획을 공정하게 반박하는지는 철학사에서 오래 논쟁된 문제입니다. 다만 헤겔이 어떤 방식으로 칸트를 넘어서려 했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선명한 장면입니다.
5.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헤겔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오해받은 문장은 제6절에 다시 나옵니다.
What is reasonable is actual; and, What is actual is reasonable.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이 말은 현존하는 모든 것이 옳다는 보수적 선언으로 오해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헤겔은 곧바로 "현실적"이라는 말의 뜻을 한정합니다. 일반적으로 쓰는 "존재"가 부분적으로는 단지 가상일 뿐이고, 부분적으로만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변덕이나 오류, 악이나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그는 우연한 것이라 부르며 현실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당위만을 앞세우는 태도를 이렇게 비웃습니다.
As if the world had waited on it to learn how it ought to be, and was not!
마치 세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배우려고 그것을 기다렸는데도 세계가 그렇지 않은 것처럼!
그가 말하려는 것은 이상과 현실을 갈라 놓고 이상이 현실보다 낫다고만 외치는 태도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 문장을 보수주의의 변명으로 읽을지, 현실 속의 이성을 찾으라는 요구로 읽을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해석이 갈립니다.
6. 철학사는 반박의 박물관이 아니다
헤겔은 철학의 역사를 서로 반박하는 체계들의 무덤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For these thousands of years the same Architect has directed the work: and that Architect is the one living Mind whose nature is to think
수천 년 동안 같은 건축가가 이 일을 지휘해 왔고, 그 건축가는 생각하는 것이 본성인 하나의 살아 있는 정신이다.
철학사에서 한 체계가 다른 체계에게 반박당했다는 것은 그 체계가 쓸모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고 그는 말합니다.
although it may be admitted that every philosophy has been refuted, it must be in an equal degree maintained, that no philosophy has been refuted, nay, or can be refuted.
모든 철학이 반박당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같은 정도로 어떤 철학도 반박당하지 않았고 반박될 수도 없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
반박이란 앞선 체계의 한계를 넘어서서 그 원리를 더 큰 원리의 한 요소로 낮추는 일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래서 철학사는 오류를 모은 박물관이 아니라 신적인 형상들의 신전과 같다고 그는 비유합니다.
and, in its results, resembles not a museum of the aberrations of the human intellect, but a Pantheon of Godlike figures.
그 결과에 있어 철학사는 인간 지성의 일탈을 모은 박물관이 아니라 신 같은 형상들의 판테온과 닮았다.
앞선 사상가들을 낡은 것으로 치워 버리지 않고, 새로운 생각 속에 보존되는 계기로 보는 이 태도가 헤겔 철학사 이해의 핵심입니다.
7. 버찌도 과일이다
철학의 종류가 너무 많아 어느 것도 "그 철학"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헤겔은 이렇게 응수합니다.
Would any one, who wished for fruit, reject cherries, pears, and grapes, on the ground that they were cherries, pears, or grapes, and not fruit?
과일을 먹고 싶은 사람이, 버찌와 배와 포도는 버찌와 배와 포도일 뿐 과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것들을 물리치겠는가?
그러고는 짧게 덧붙입니다. "그러나 버찌 또한 과일이다." 특정 철학은 보편적 진리의 한 형태이며, 보편이 특수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이론이 하나의 진리를 가리키는 서로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이 생각은, 이질적인 관점들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한 하나의 태도를 보여 줍니다.
8. 하나의 논리, 세 개의 계기
본론에서 헤겔은 사고에 세 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These three sides do not make three parts of logic, but are stages or 'moments' in every logical entity, that is, of every notion and truth whatever.
이 세 면은 논리학의 세 부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논리적 존재, 곧 모든 개념과 모든 진리에 있는 단계 또는 "계기"이다.
첫째는 오성의 계기로, 규정을 고정하고 서로 구분하는 사고입니다. 둘째는 변증법적 계기로, 그 고정된 규정이 스스로를 넘어 반대로 넘어가는 면입니다. 셋째는 사변적 계기로, 대립하는 것들의 통일을 파악하는 면입니다. 헤겔은 첫째 계기인 오성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정확함과 단단함은 오성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실천에서도 그렇다고 그는 말합니다.
The man who will do something great must learn, as Goethe says, to limit himself. The man who, on the contrary, would do everything, really would do nothing, and fails.
큰일을 하려는 사람은 괴테의 말처럼 자신을 제한할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모든 것을 하려는 사람은 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하나의 분명한 점에 매달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인용은 헤겔이 추상적인 사변가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감각도 지녔음을 보여 줍니다.
9. 변증법, 모든 것에 깃든 운동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은 논쟁의 기교가 아니라 사물 자체의 운동입니다.
Wherever there is movement, wherever there is life, wherever anything is carried into effect in the actual world, there Dialectic is at work.
움직임이 있는 곳, 생명이 있는 곳, 현실 세계에서 무엇이든 실행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변증법이 작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유한한 것의 한계가 바깥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죽는 이유가 외부 환경에 있다고 생각하는 식입니다. 헤겔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the true view of the matter is that life, as life, involves the germ of death, and that the finite, being radically self-contradictory, involves its own self-suppression.
사태의 참된 모습은, 생명이 생명인 한 죽음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유한한 것은 근본적으로 자기 모순적이어서 스스로를 제거하는 것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삶 안에 죽음이 이미 들어 있고, 유한한 것은 자기 안의 모순 때문에 스스로 변해 간다는 생각입니다. 변화를 바깥의 충격이 아니라 안쪽의 긴장에서 찾는 이 시각이 변증법의 핵심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는 모든 변화가 이런 모순으로 설명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10. 변증법은 궤변이 아니다
헤겔은 변증법이 한쪽 편을 들기 위한 말재주와 다르다고 구분합니다.
The essence of Sophistry lies in giving authority to a partial and abstract principle, in its isolation, as may suit the interest and particular situation of the individual at the time.
궤변의 본질은 그때그때 개인의 이익과 특수한 처지에 맞는 대로 부분적이고 추상적인 원리를 고립시켜 권위를 부여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내 생계를 돌보는 일은 행동의 중요한 동기입니다. 그러나 이 동기만 강조해서 도둑질이나 조국에 대한 배신까지 정당화한다면 궤변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관적 확신이 중요하다는 원리만 고집하면 도덕 전체가 무너집니다. 변증법은 사물을 그 자신의 존재와 운동 속에서 살펴 부분적인 규정의 유한함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게 하는 말에 대한 경계로 오늘도 유효합니다.
11. 부정의 결과는 빈 허무가 아니다
세 번째 계기는 대립이 풀리는 방식입니다.
The result of Dialectic is positive, because it has a definite content, or because its result is not empty and abstract nothing, but the negation of certain specific propositions which are contained in the result
변증법의 결과는 긍정적이다. 그것이 일정한 내용을 가지기 때문이며, 그 결과가 텅 빈 추상적인 무가 아니라 결과 속에 담긴 특정한 명제들의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부정이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떤 생각이 한계에 부딪혀 부정되면, 그 부정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게 아니라 부정된 내용을 품은 더 풍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헤겔은 이것을 "지양"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없애면서 보존하고 끌어올리는 운동입니다. 회의주의가 모든 것을 부정하고 끝나는 데 비해, 헤겔은 부정이 새로운 긍정을 낳는다고 봅니다.
12. 순수한 있음이 시작한다
그렇다면 논리학은 무엇에서 시작할까요? 가장 단순하고 가장 비어 있는 것입니다.
Pure Being makes the beginning: because it is on one hand pure thought, and on the other immediacy itself, simple and indeterminate
순수한 있음이 시작을 이룬다. 그것은 한편으로 순수한 사고이고 다른 한편으로 단순하고 규정되지 않은 직접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있음"에는 아직 어떤 성질도 붙어 있지 않습니다. 빨강이나 둥금 같은 규정이 들어오면 그 순간 이미 다른 것과의 구별이 생겨 시작이 아니게 됩니다. 헤겔은 여기서 파르메니데스를 떠올립니다. "있음만이 있고 없음은 없다"고 말한 이 고대 철학자가 철학의 진짜 출발점이었다는 설명입니다. 순수한 사고가 그 자신을 대상으로 붙잡은 최초의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13. 있음과 없음은 같다, 그리고 다르다
가장 놀라운 단계가 이어집니다. 아무 규정도 없는 순수한 있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 곧 없음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The truth of Being and of Nothing is accordingly the unity of the two: and this unity is Becoming.
따라서 있음과 없음의 진리는 둘의 통일이며, 이 통일이 생성이다.
헤겔은 이 주장이 농담처럼 들릴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사실 둘은 전혀 다르다고 말하는 것도 맞다고 하면서, 그러나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 차이가 말로 할 수 없는 단지 "의도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를 듭니다.
In its beginning, the thing is not yet, but it is more than merely nothing, for its Being is already in the beginning.
시작에서 그 사물은 아직 있지 않지만, 단순한 없음 이상이다. 시작에 이미 그것의 있음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시작될 때 그것은 아직 없으면서 이미 있습니다. 이 둘이 한 몸이 된 것이 생성입니다. 이어서 그는 있음과 없음의 통일을 "하나의 일치"로 표현하는 것이 오해를 낳는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그 통일에는 차이가 살아 있으며, 그래서 생성은 단순한 통일이 아니라 "내적인 불안"이라고 말합니다. 정지한 통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통일이라는 뜻입니다.
14. 오직 "있다"고만 말하는 세계는 텅 비어 있다
헤겔은 있음을 가장 풍부한 것으로 생각하고 없음을 가장 가난한 것으로 생각하는 직관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But if when we view the whole world we can only say that everything is, and nothing more, we are neglecting all speciality and, instead of absolute plenitude, we have absolute emptiness.
그러나 온 세계를 바라보며 모든 것이 있다고만 말하고 더 말할 수 없다면, 우리는 모든 특수성을 무시하는 것이며 절대적 충만 대신 절대적 공허를 가지게 된다.
신을 "그저 있는 분"으로 정의하는 것도 신을 "아무것도 없음"으로 정의하는 불교의 방식과 다르지 않게 공허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이 비교는 불교를 이해하는 방식으로는 지금 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헤겔이 말하려는 요점은, 규정되지 않은 일반론에서 멈추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점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라거나 모든 것이 있다는 식의 큰 말에서 멈추지 말고 구체적인 규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15. 모순이 없는 것은 없다
생성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헤겔은 모순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합니다.
There is absolutely nothing whatever in which we cannot and must not point to contradictions or opposite attributes
모순이나 반대되는 속성을 지적할 수 없는, 또 지적해서는 안 되는 것은 절대로 아무것도 없다.
오성은 하나의 측면만 고집하며 다른 측면을 가려 버리려 하지만, 사물에는 늘 반대 속성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하려면 모순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모순의 결과를 진리로 붙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보통의 논리에서는 모순이 있으면 틀린 것이지만, 헤겔에게 모순은 사고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이 주장은 논리학자들로부터 오래도록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 모순을 일상의 모순과 같은 것으로 읽을지, 개념의 긴장으로 읽을지에 따라 해석이 크게 달라집니다.
16. 필연의 진리는 자유
본질론의 끝에서 헤겔은 필연과 자유의 관계를 말합니다. 필연은 흔히 가혹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필연을 바깥에서 닥치는 낯선 힘으로만 볼 때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This truth of necessity, therefore, is Freedom
그러므로 필연의 이 진리는 자유이다.
필연을 깊이 이해하면 서로 연결된 것들이 낯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의 요소이며, 각 요소가 다른 요소 속에서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From which we may learn what a mistake it is to regard freedom and necessity as mutually exclusive.
이로부터 우리는 자유와 필연을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잘못인지 알 수 있다.
좋은 사람은 자기 행동이 본질적으로 의무적이고 필연적임을 압니다. 이 의식이 자유를 줄이기는커녕, 이 의식이 없다면 이성적 자유와 자의적 선택을 구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가 말한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 바로 이런 마음 상태라고 헤겔은 덧붙입니다. 앞서 스피노자 글에서 본 "이해함으로써 자유로워진다"는 생각과 만나는 지점입니다. 헤겔은 여기서 자유를 자의적 선택이 아니라 필연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 일로 봅니다.
17. 진리는 개념과 대상의 일치
개념론에서 헤겔은 진리의 의미를 넓힙니다.
Truth in the deeper sense consists in the identity between objectivity and the notion. It is in this deeper sense of truth that we speak of a true state, or of a true work of art.
더 깊은 의미의 진리는 객관성과 개념의 일치에 있다. 우리가 참된 국가나 참된 예술 작품을 말할 때 쓰는 것이 바로 이 더 깊은 의미의 진리이다.
보통 진리는 내가 어떤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 곧 올바름을 뜻합니다. 헤겔은 이를 "형식적 진리"라고 부르며, 더 깊은 진리는 어떤 것이 그 개념, 곧 자기 본래의 목적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국가가 국가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 때 그것은 "참된 국가"라는 것입니다. 이 시각에서는 나쁜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A bad man is an untrue man, a man who does not behave as his notion or his vocation requires.
나쁜 사람은 참되지 않은 사람, 곧 자기 개념이나 소명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물이 자기 본성에 맞게 존재하느냐를 기준으로 삼는 이 생각은 고대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닿아 있습니다. 한편 이 기준이 무엇이 마땅한 본성인지를 누가 정하는가라는 물음을 낳는다는 점에서 비판도 받았습니다.
18. 개별자는 홀로 자기 개념에 맞지 않는다
헤겔은 이념을 설명하면서 개별 존재의 한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The individual by itself does not correspond to its notion. It is this limitation of its existence which constitutes the finitude and the ruin of the individual.
개별자는 그것만으로는 자기 개념에 맞지 않는다. 그 존재의 이 한계가 곧 개별자의 유한함이자 파멸을 이룬다.
모든 개별 존재는 이념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현실들이 함께 있어야 개념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개별자의 한계와 몰락은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개별자라는 존재 방식 자체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사유는 개인이 홀로 완결되지 못하고 더 큰 전체 속에서 의미를 얻는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며, 헤겔 철학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한편 이 생각이 개인을 전체에 종속시키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도 늘 제기되었습니다.
19. 이념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생각
논리학의 정점은 절대 이념입니다. 헤겔은 이것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This unity is consequently I the absolute and all truth, the Idea which thinks itself
따라서 이 통일은 절대적이고 모든 진리이며,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이념이다.
이 말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의 생각"이 겹쳐 있습니다. 헤겔은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래전에 최고의 형식이라 부른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단계마다 이념을 대상으로 지켜보았다면, 이제 이념은 자기 자신이 대상이 된다는 설명입니다. 사고가 세계를 생각하다가 마침내 생각하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자리에 이른 것입니다.
20. 같은 신조를 외우는 아이와 노인
그렇다면 이 절대 이념이 새로운 비밀을 알려 주는가? 헤겔은 기대를 낮추게 합니다.
The absolute idea may in this respect be compared to the old man who utters the same creed as the child, but for whom it is pregnant with the significance of a lifetime.
이 점에서 절대 이념은, 아이와 같은 신조를 말하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평생의 의미로 가득 차 있는 노인에 비길 수 있다.
결과만 따로 떼어 보면 별것 아닌 문장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종교의 진리를 이해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삶과 세계 전체 밖에 있다고 상상하지만, 노인은 삶 전체를 거쳐 온 의미를 그 말에 담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결론이 아니라 거기에 이르는 운동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The interest lies in the whole movement.
관심은 전체의 운동에 있다.
사람이 자기 삶의 걸음을 되짚어 보면 도달한 끝은 아주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삶 전체가 들어 있다는 비유도 함께 듭니다. 이 설명은 성과가 아니라 과정이 가치를 만든다는 말로도 읽을 수 있어서 철학 밖에서도 곱씹을 만합니다.
21. 부분은 전체와의 연결에서 값을 얻는다
같은 대목에서 헤겔은 철학자의 특권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It is indeed the prerogative of the philosopher to see that everything, which, taken apart, is narrow and restricted, receives its value by its connexion with the whole
따로 떼어 놓으면 좁고 제한된 모든 것이 전체와의 연결을 통해 값을 얻는다는 것을 보는 것이야말로 철학자의 특권이다.
하나하나의 지식이나 경험이 홀로는 협소해 보여도 전체 속의 한 기관으로 볼 때 의미를 얻는다는 말입니다. 이 시각은 세부에 빠지지 말고 큰 그림을 보라는 헤겔의 방법을 요약합니다. 반대로 큰 그림이 세부를 지워 버릴 수 있다는 위험도 함께 생각해 볼 만합니다.
22.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곧 전진이다
『논리학』의 마지막 절은 이념이 자연으로 나아가는 대목입니다. 이념은 자유롭게 자기 안의 특수한 계기를 자연으로 내보냅니다. 이 자리에서 헤겔은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We have now returned to the notion of the Idea with which we began. This return to the beginning is also an advance.
우리는 이제 우리가 시작했던 이념의 개념으로 돌아왔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이 귀환은 또한 전진이기도 하다.
우리는 추상적인 있음에서 시작했는데, 이제 도착한 곳에도 있음이 있습니다. 다만 그 있음은 이념을 품은 있음, 곧 자연입니다. 같은 자리로 돌아온 것 같지만 그 사이에 모든 규정을 거쳤기 때문에 처음과 같지 않습니다. 이 원환적 구조는 헤겔 체계 전체의 모양이기도 합니다. 논리학이 끝나면 자연철학과 정신철학이 이어지고, 체계는 하나의 큰 원이 됩니다.
23. 이 책의 자리, 그리고 비판
이 책은 헤겔이 쓴 네 권의 주요 저서 가운데 세 번째입니다. 앞서 1807년의 『정신현상학』과 1812~1816년의 『논리의 학』이 있었고, 1820년의 『법철학 요강』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 『백과사전』은 그의 체계를 가장 성숙하게 요약한 책이지만, 수업용 개요서라서 문장이 극도로 압축되어 있습니다. 월리스가 번역에 덧붙인 헤겔 강의의 보충 설명이 읽기에 훨씬 도움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헤겔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립니다. 한쪽에서는 그가 역사와 변화, 모순과 매개를 사유의 중심에 놓아 근대 사상의 지형을 바꾸었다고 평가합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물질적 조건 위에 올려놓으려 했고, 키르케고르는 헤겔의 체계가 개인의 실존을 지운다고 비판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그의 체계가 과도하게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며, 국가를 이성의 실현으로 미화했다고 비판합니다. 이 비판이 헤겔의 의도를 공정하게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도 학자들의 견해가 갈립니다. 어떤 입장을 택하든, 헤겔이 던진 질문, 곧 모순과 변화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지, 개인과 전체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헤겔의 『논리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이 아니라, 서론과 변증법 부분에서 맛을 본 뒤 필요할 때 이어 읽는 책입니다. 처음이라면 서론(제1~25절), 변증법을 설명하는 제79~82절, 존재와 무와 생성을 다루는 제86~88절, 필연과 자유를 다루는 제158절, 이념의 마지막 대목을 순서대로 읽어 보세요. 본문은 번호 붙은 짧은 단락이고, 그 아래에 별표로 구분된 보충 설명이 훨씬 말하듯이 쓰여 있으니 보충 설명부터 읽어도 좋습니다. 본질론의 상당 부분과 개념론의 판단과 추론 같은 형식적인 대목은 처음에는 건너뛰어도 큰 지장이 없습니다.
이해되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습니다. 헤겔 자신도 철학이 어렵다는 불평이 어느 정도는 추상적 사고에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말했습니다. 한 번에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 대목에서 헤겔이 무엇을 비판하고 있는지를 먼저 잡고 읽으면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다시 읽으면, 헤겔이 이들의 어떤 문제를 넘어서려 했는지가 한결 선명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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