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출판년도 1677
Ethics
에티카
기하학적 순서로 증명된 윤리학
He who chooses to avenge wrongs with hatred is assuredly wretched. But he, who strives to conquer hatred with love, fights his battle in joy and confidence
미움으로 부당함을 앙갚음하려는 사람은 분명 비참하다. 그러나 미움을 사랑으로 이기려는 사람은 기쁨과 확신 속에서 싸운다.
A free man thinks of death least of all things; and his wisdom is a meditation not of death but of life.
자유인은 죽음을 무엇보다 가장 덜 생각하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묵상이다.
한눈에 보기
신과 자연이 하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감정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사람을 묶는지를 풀어낸 뒤, 이해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길을 보여 주는 책. 이 글은 그 길을 스물여덟 가지로 정리한다.
비슷한 책
- 아리스토텔레스 The Ethics of Aristotle (니코마코스 윤리학)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editations (명상록)
- 이마누엘 칸트 The Critique of Pure Reason (순수이성비판)
한 권 요점
Ethics
『에티카』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가 쓴 책입니다. 책 제목은 윤리학이지만, 첫 장은 신과 우주의 본성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그리고 사람이 그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신, 정신, 감정, 인간의 속박, 인간의 자유라는 다섯 부로 이어집니다. 스피노자는 라틴어로 이 책을 썼고,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677년에 유고집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의 겉모습은 독특합니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처럼 정의와 공리를 먼저 세우고, 그로부터 명제를 하나씩 증명해 나가는 방식으로 쓰였습니다. 처음 펼치면 수학책처럼 보여서 숨이 막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명 사이사이의 "주석"에서는 스피노자가 훨씬 사람다운 목소리로 말합니다. 미신을 비판하고, 화를 다스리는 법을 말하고, 즐거움이 왜 좋은지를 옹호합니다. 이 글은 딱딱한 증명보다 그 주석과 핵심 명제들에 무게를 두어 책이 건네는 생각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의 포르투갈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은 시절 유대교 공동체에서 파문을 당했고, 그 뒤로는 렌즈를 갈아 생계를 이으며 철학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생전에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철학은 신을 부정한다기보다 신을 자연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두면 좋은 점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이 하늘에서 사람의 일에 상과 벌을 내리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줄거리
책은 크게 두 단계로 읽힙니다. 앞쪽 두 부는 세계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를 다룹니다. 하나의 무한한 실체가 있고, 그것을 신 또는 자연이라 부르며, 우리를 포함한 모든 것은 그 안에서 나타나는 양태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우주에는 우연이 없고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사람의 정신과 몸도 같은 실체를 두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뒤쪽 세 부는 그 세계관 위에서 사람을 다룹니다. 제3부는 기쁨, 슬픔, 사랑, 미움, 희망, 두려움 같은 감정이 어떤 원인으로 생기는지를 마치 기하학의 도형을 다루듯 분석합니다. 제4부는 감정에 휘둘리는 상태를 "속박"이라 부르고,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의 모습을 그립니다. 제5부는 이해를 통해 감정을 다스리고 자유와 평안에 이르는 길을 보여 줍니다. 아래 스물여덟 가지는 이 흐름을 따라 고른 것입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신은 하나의 무한한 실체이다
『에티카』 제1부는 정의에서 시작합니다. 스피노자는 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By God, I mean a being absolutely infinite--that is, a substance consisting in infinite attributes, of which each expresses eternal and infinite essentiality.
신이란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곧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를 뜻한다. 그 속성 하나하나는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한다.
여기서 실체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그런 것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증명합니다. 둘 이상의 무한한 실체가 있다면 서로를 제한하게 되어 무한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정의는 낯설지만, 이후의 모든 이야기가 이 한 점에서 출발합니다. 세계는 신이라는 하나의 바탕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2.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다
제1부의 가장 중요한 명제는 신과 세계의 관계를 말하는 15번입니다.
Whatsoever is, is in God, and without God nothing can be, or be conceived.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신 안에 있으며, 신이 없으면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고 생각될 수도 없다.
신이 세계를 만들고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신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나무와 돌, 사람과 생각이 모두 신이라는 하나의 바탕이 취하는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책 뒤에서 스피노자가 "신 또는 자연"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을 자연과 떼어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철학은 종종 범신론이라고 불립니다. 다만 스피노자 자신이 어떤 이름표를 받아들였는지는 따로 확인이 필요한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그의 문장이 말하는 바만 따라가겠습니다.
3. 자유는 스스로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유와 다릅니다. 제1부의 정의 7은 이렇게 말합니다.
That thing is called free, which exists solely by the necessity of its own nature, and of which the action is determined by itself alone.
오직 자기 본성의 필연성에서 존재하고, 그 행동이 오로지 자기 자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자유롭다고 한다.
여기서 자유는 아무 제약 없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외부의 힘에 떠밀리지 않고 자기 본성에서 나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이 정의는 책 전체를 이끄는 기준이 됩니다. 뒤에서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덜 떠밀리고 더 자기답게 살 수 있는지를 묻는 모든 논의가 이 정의로 돌아옵니다.
4. 의지는 자유로운 원인이 아니다
스피노자는 자유로운 의지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제1부 32번 명제입니다.
Will cannot be called a free cause, but only a necessary cause.
의지는 자유로운 원인이라고 할 수 없고, 오직 필연적인 원인일 뿐이다.
이어서 이 세계의 질서에 대해 더 강하게 말합니다. 사물은 신이 만든 지금의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는 생겨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Things could not have been brought into being by God in any manner or in any order different from that which has in fact obtained.
사물은 실제로 이루어진 방식과 다른 방식이나 다른 순서로는 신에 의해 생겨날 수 없었다.
모든 일이 필연이라는 말은 숙명론처럼 들려서 불편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절망의 근거로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마음의 평안으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봅니다. 이 점은 뒤에서 다시 나옵니다.
5. 우리는 원인을 모르기에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신이 자유롭다고 느낄까요? 제1부 부록에서 스피노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all men are born ignorant of the causes of things, that all have the desire to seek for what is useful to them, and that they are conscious of such desire.
모든 사람은 사물의 원인을 모른 채 태어나고, 모두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찾으려는 욕구를 지니며, 그런 욕구를 의식한다.
여기서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는 알아차리면서 그 욕구를 낳은 원인은 알지 못하기에,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제3부에서는 같은 생각을 더 선명하게 표현합니다.
men believe themselves to be free, simply because they are conscious of their actions, and unconscious of the causes whereby those actions are determined
사람들이 자신을 자유롭다고 믿는 것은 단지 자기 행동은 의식하면서 그 행동을 결정하는 원인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갓난아기가 자유의지로 젖을 원한다고 믿는 모습, 화난 아이가 자유롭게 복수를 바란다고 믿는 모습을 예로 듭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자유로운 결정으로 한 말이 술이 깨면 후회로 돌아온다는 예도 듭니다. 지금 내가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느끼는 많은 일 뒤에 내가 알지 못하는 원인이 있다는 이 지적은 오늘날 심리학이 말하는 것과도 닮은 데가 있어 흥미롭습니다.
6. 자연은 어떤 목적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제1부 부록은 또 하나의 오래된 믿음을 겨냥합니다. 자연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믿음입니다.
All such opinions spring from the notion commonly entertained, that all things in nature act as men themselves act, namely, with an end in view.
이 모든 의견은 자연의 모든 것이 인간처럼 어떤 목적을 두고 행동한다는, 흔히 품는 생각에서 나온다.
사람은 눈이 보기 위해 있고 이빨이 씹기 위해 있다고 보며, 해와 바다와 동물까지 자기에게 쓸모 있도록 마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그것을 마련했다고 믿게 되고, 그 누군가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미신이 자라납니다. 스피노자는 이런 목적론적 사고가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편견의 뿌리라고 봅니다. 제4부 서문에서는 이 생각을 한 줄로 정리합니다.
The reason or cause why God or Nature exists, and the reason why he acts, are one and the same.
신 또는 자연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가 행동하는 이유는 하나이며 같다.
자연은 어떤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과 같은 필연으로 작용한다는 말입니다. 자연이 사람의 소원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 냉정한 시선이, 뒤이어 사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됩니다.
7. 정신과 몸은 하나의 일을 두 가지로 표현한다
제2부는 정신과 몸의 관계를 다룹니다. 데카르트는 둘을 서로 다른 실체로 나누었지만, 스피노자는 같은 것을 두 방식으로 본 것이라고 말합니다.
The order and connection of ideas is the same as the order and connection of things.
관념의 순서와 연결은 사물의 순서와 연결과 같다.
이어지는 주석에서는 이 점을 더 분명히 합니다.
a mode of extension and the idea of that mode are one and the same thing, though expressed in two ways.
연장의 양태와 그 양태의 관념은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될 뿐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일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은 따로 노는 두 사건이 아니라 한 사건의 두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이 생각은 마음과 몸을 따로 보지 않는 오늘날의 여러 관점과 이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질 감정 이야기의 토대가 됩니다. 감정은 마음의 일이면서 동시에 몸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8. 세 가지 앎, 그리고 직관
스피노자는 앎에도 층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소문이나 막연한 경험, 상상에서 오는 앎입니다. 둘째는 사물의 공통된 성질을 파악하는 이성의 앎입니다. 그리고 셋째가 있습니다.
Besides these two kinds of knowledge, there is, as I will hereafter show, a third kind of knowledge, which we will call intuition.
이 두 가지 앎 외에 세 번째 앎이 있는데, 이는 뒤에서 보이겠지만 우리가 직관이라 부를 것이다.
스피노자는 비례식 문제로 세 가지 앎을 예시합니다. 상인들은 규칙을 외웠다가 그대로 적용하고, 수학을 아는 사람은 증명으로 이해하며, 아주 단순한 수에서는 한눈에 답을 봅니다. 이 세 번째 앎은 신의 속성에 대한 충분한 관념에서 출발해 사물의 본질을 헤아리는 앎입니다. 책의 뒷부분에서 최고의 기쁨과 평안이 이 앎에서 나온다고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앎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층의 앎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 책이 그리는 길입니다.
9. 이성은 사물을 필연으로 바라본다
제2부 44번 명제의 증명에는 이성의 성격을 보여 주는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It is in the nature of reason to regard things, not as contingent, but as necessary
사물을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이성의 본성이다.
이 명제에는 "영원의 상 아래에서"라는 유명한 표현이 따릅니다. 사물을 지금 이 순간의 기대와 두려움으로 보지 않고, 그것이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 속에서 보는 눈입니다. 우연히 닥친 불행이 억울하게 느껴질 때, 이 눈은 그 일을 이루는 원인의 사슬을 보게 해서 감정의 파도를 가라앉힙니다. 이 점이 제5부의 중심 주제가 됩니다.
10. 사람을 도형처럼 다루겠다
제3부의 서문은 『에티카』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피노자는 앞선 철학자들이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하며 시작합니다.
Most writers on the emotions and on human conduct seem to be treating rather of matters outside nature than of natural phenomena following nature's general laws. They appear to conceive man to be situated in nature as a kingdom within a kingdom
감정과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대부분의 저술가는 자연의 일반 법칙을 따르는 자연 현상이 아니라 자연 밖의 일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인간이 자연 안에서 마치 나라 안의 나라처럼 자리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람의 약함과 변덕을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어떤 신비로운 결함 탓으로 돌리고, 한탄하고 비웃고 경멸하고 욕하는 일이 흔하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그와 다른 방법을 선언합니다.
I shall consider human actions and desires in exactly the same manner, as though I were concerned with lines, planes, and solids.
나는 인간의 행동과 욕망을, 마치 선과 면과 입체를 다루듯 똑같은 방식으로 고찰하겠다.
화, 질투, 두려움을 나무라기 전에 그것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먼저 이해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이는 서문에서 말한 대로 "자연은 어디서나 같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자연의 어디에도 결함 탓으로 돌릴 일은 없으므로, 사람의 감정도 같은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태도가 이 책을 단죄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윤리학으로 만듭니다.
11. 내 결정은 몸의 욕구와 같은 일이다
제3부 2번 명제의 주석에서 스피노자는 자유의지의 환상을 구체적인 예로 풀어냅니다.
infant believes that of its own free will it desires milk, an angry child believes that it freely desires vengeance, a timid child believes that it freely desires to run away
아기는 자신의 자유의지로 젖을 원한다고 믿고, 화난 아이는 자유롭게 복수를 원한다고 믿으며, 겁먹은 아이는 자유롭게 달아나고 싶어 한다고 믿는다.
정신의 결정이라는 것은 몸의 욕구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a mental decision and a bodily appetite, or determined state, are simultaneous, or rather are one and the same thing
정신의 결정과 몸의 욕구, 곧 결정된 상태는 동시에 일어나며, 더 정확히는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스피노자는 사람들이 자기 혀를 다스리기가 가장 어렵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침묵을 지킬 수 있다면 세상이 훨씬 행복해질 텐데, 사람은 무엇보다 혀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나은 길을 보면서도 더 나쁜 길을 따르는 경험을 하는 것도 그 증거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얼마나 자주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지를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윤리학을 시작하자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12. 모든 것은 자기 존재를 지키려 애쓴다
제3부의 핵심 명제는 6번입니다.
Everything, in so far as it is in itself, endeavours to persist in its own being.
모든 것은 자기 안에 있는 한,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고 애쓴다.
다음 명제는 이 노력이 사물의 본질 그 자체라고 말합니다.
The endeavour, wherewith everything endeavours to persist in its own being, is nothing else but the actual essence of the thing in question.
모든 것이 자기 존재를 지속하려고 쓰는 노력은 바로 그 사물의 실제 본질 그 자체다.
이 노력을 스피노자는 "코나투스"라고 부릅니다. 사람의 경우 이 노력이 몸과 마음에 함께 걸리면 욕망이 됩니다.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욕망을 억누르라고 요구하는 윤리학이 아닙니다. 욕망이 무엇을 향하는지를 이해하고, 이로운 쪽으로 이끌라는 윤리학입니다.
13. 기쁨은 더 큰 완전함으로 가는 길이다
그렇다면 기쁨과 슬픔은 무엇일까요? 제3부 11번 명제의 주석이 답합니다.
By pleasure therefore in the following propositions I shall signify a passive state wherein the mind passes to a greater perfection. By pain I shall signify a passive state wherein the mind passes to a lesser perfection.
따라서 이어지는 명제에서 기쁨이란 정신이 더 큰 완전성으로 옮겨 가는 수동적 상태를 뜻하고, 슬픔이란 정신이 더 작은 완전성으로 옮겨 가는 수동적 상태를 뜻한다.
기쁨은 단순히 기분 좋은 느낌이 아니라, 내 활동하는 힘이 커지는 것입니다. 슬픔은 그 힘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의하면 좋음과 나쁨의 기준이 선명해집니다. 나를 더 활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좋은 것이고, 내 힘을 꺾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이 기준이 뒤의 제4부에서 선과 악, 덕에 대한 논의로 이어집니다.
14. 미움은 미움으로 커지고, 사랑으로 사라진다
감정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 주는 제3부의 명제 가운데, 일상에서 가장 요긴한 것은 43번일 것입니다.
Hatred is increased by being reciprocated, and can on the other hand be destroyed by love.
미움은 되돌려 줄수록 커지고, 반대로 사랑으로 없앨 수 있다.
증명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미움이 더해집니다. 반대로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그의 마음에 들고 싶어져서 미움이 줄어듭니다. 이 단순한 감정의 역학이 뒤에서 이성의 윤리로 발전합니다.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것은 도덕적으로 나쁠 뿐 아니라, 내 마음을 더 괴롭히는 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5. 속박, 더 나은 것을 보면서 더 나쁜 것을 따르는 상태
제4부의 제목은 "인간의 속박"입니다. 서문은 속박이 무엇인지를 정의합니다.
Human infirmity in moderating and checking the emotions I name bondage: for, when a man is a prey to his emotions, he is not his own master, but lies at the mercy of fortune: so much so, that he is often compelled, while seeing that which is better for him, to follow that which is worse.
감정을 다스리고 억제하는 데 있어서의 인간의 연약함을 나는 속박이라 부른다. 사람이 감정의 먹이가 되면 자기 자신의 주인이 아니라 운명의 처분에 놓이게 되고, 자신에게 더 나은 것을 보면서도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강요받는 일이 흔하다.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닙니다. 알면서도 다시 화를 내고, 해로운 줄 알면서도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일을 떠올리면 이 정의가 낯설지 않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란 이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그 방법은 억압이나 의지의 강요가 아니라 이해입니다.
16. 덕의 토대는 자기 존재를 지키려는 노력이다
제4부에서 스피노자는 덕을 새롭게 정의합니다. 22번 명제와 그 따름정리입니다.
No virtue can be conceived as prior to this endeavour to preserve one's own being.
자기 존재를 지키려는 이 노력보다 앞서는 어떤 덕도 생각할 수 없다.
자기를 지키려는 노력이 덕의 첫째이자 유일한 토대라는 뜻이며, 덕은 곧 자기 본성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기주의의 변명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이어서 "이성은 자연에 어긋나는 요구를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As reason makes no demands contrary to nature, it demands, that every man should love himself, should seek that which is useful to him--I mean, that which is really useful to him
이성은 자연에 어긋나는 요구를 하지 않으므로,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찾도록 요구한다. 여기서 이로운 것이란 참으로 이로운 것을 뜻한다.
핵심은 "참으로 이로운 것"입니다. 참된 이로움이 무엇인지를 따져 보면 곧 드러나듯, 그것은 순간적인 쾌락이나 남을 짓밟는 이득이 아닙니다. 다음 항목이 그 이유를 말합니다.
17. 이성이 추구하는 것은 오직 이해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성에 따르는 사람이 참으로 이롭다고 보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4부 26번 명제는 이렇게 답합니다.
Whatsoever we endeavour in obedience to reason is nothing further than to understand
우리가 이성에 따라 애쓰는 모든 것은 이해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성에 따르는 정신은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만을 자신에게 이롭다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이 스피노자 윤리학의 방향을 정합니다. 돈이나 명성이 아니라 이해가 가장 안정되고 서로 다투지 않는 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28번 명제는 이것을 신에 대한 앎으로 연결합니다.
The mind's highest good is the knowledge of God, and the mind's highest virtue is to know God.
정신의 최고선은 신에 대한 앎이며, 정신의 최고 덕은 신을 아는 것이다.
여기서 신을 안다는 것은 세계를 이루는 필연의 질서를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앞서 본 대로 스피노자의 신은 자연과 다르지 않으므로,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일이 곧 신을 아는 일입니다.
18. 사람에게 가장 이로운 것은 이성적으로 사는 사람이다
이해를 구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이해는 나눠도 줄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4부 35번의 따름정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among individual things nothing is more useful to man, than a man who lives in obedience to reason.
개별적인 것들 가운데 사람에게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보다 더 이로운 것은 없다.
주석에서 스피노자는 흔히 하는 말을 인용합니다. "사람은 사람에게 신이다." 그러면서 곧바로 현실을 냉정하게 덧붙입니다. 사람들이 이성에 따라 사는 일은 드물고 대개 서로 질투하며 귀찮게 군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혼자서는 살기 어렵고, 사회생활에서 해보다 이득을 훨씬 많이 얻는다고 합니다. 37번 명제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갑니다.
The good which every man, who follows after virtue, desires for himself he will also desire for other men
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위해 바라는 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바랄 것이다.
이해와 같은 선은 독점할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눌수록 커집니다. 그래서 이성에 따르는 사람은 이웃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이 이기심에서 출발하면서도 공동체를 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9. 즐거움을 막는 것은 음울한 미신뿐이다
스피노자 하면 엄격한 이성의 철학자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 제4부 45번 명제의 주석입니다.
Assuredly nothing forbids man to enjoy himself, save grim and gloomy superstition.
사람이 즐기는 것을 금하는 것은 확실히 엄격하고 음울한 미신뿐이다.
그는 배고픔과 목마름을 채우는 것이 허락된다면 우울을 몰아내는 것은 왜 허락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확신을 밝힙니다.
No deity, nor anyone else, save the envious, takes pleasure in my infirmity and discomfort
신도, 질투하는 자를 빼면 어느 누구도, 나의 약함과 불편을 보고 기뻐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I say it is the part of a wise man to refresh and recreate himself with moderate and pleasant food and drink, and also with perfumes, with the soft beauty of growing plants, with dress, with music, with many sports, with theatres, and the like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절도 있고 맛있는 음식과 음료로, 또 향기와 자라나는 식물의 부드러운 아름다움, 옷차림, 음악, 여러 운동, 연극 같은 것으로 자신을 쉬게 하고 새롭게 한다고 말한다.
몸이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야 정신도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습니다. 41번 명제는 같은 생각을 간단히 말합니다. 기쁨은 그 자체로 좋고, 슬픔은 그 자체로 나쁘다는 것입니다. 쾌락을 죄로 보는 전통 앞에서 이 말은 꽤 도발적이었을 것입니다. 다만 절도 있는 즐거움이라는 한계가 늘 붙어 있다는 점도 함께 읽어야 합니다.
20. 미움은 결코 좋을 수 없고, 사랑으로 이긴다
제4부는 앞서 본 제3부의 감정 역학을 윤리적 규칙으로 바꿉니다. 45번 명제는 미움에 대해 단호합니다.
Hatred can never be good.
미움은 결코 좋을 수 없다.
미움은 상대를 파괴하려는 노력이고, 그것은 나쁜 일을 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46번 명제가 답합니다.
He, who lives under the guidance of reason, endeavours, as far as possible, to render back love, or kindness, for other men's hatred, anger, contempt
이성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미움과 분노와 멸시에 대해 가능한 한 사랑이나 친절로 되갚으려 애쓴다.
주석은 이 선택이 도덕적으로 훌륭할 뿐 아니라 마음에도 이롭다고 말합니다. 이 글 맨 앞에 인용한 대로, 미움으로 앙갚음하는 사람은 비참하고 미움을 사랑으로 이기려는 사람은 기쁨과 확신 속에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이긴 상대도 패배해서가 아니라 힘이 커져서 기쁘게 물러난다고 스피노자는 덧붙입니다. 용서를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현명한 선택으로 설명하는 점이 스피노자다운 데가 있습니다.
21. 두려움으로 하는 선행은 이성이 아니다
이성은 두려움과 희망 위에 서지 않습니다. 제4부 47번 명제의 주석은 희망과 두려움이 모두 마음의 약함을 보여 준다고 말합니다.
the more we endeavour to be guided by reason, the less do we depend on hope; we endeavour to free ourselves from fear
이성의 인도를 따르려 애쓸수록 우리는 희망에 덜 의존하게 되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려 애쓰게 된다.
희망은 두려움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둘 다 고통을 끼고 있다는 이유입니다. 63번 명제는 이 생각을 도덕에 적용합니다.
He who is led by fear, and does good in order to escape evil, is not led by reason.
두려움에 이끌려 악을 피하려고 선을 행하는 사람은 이성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다.
주석은 덕을 가르치기보다 악덕을 꾸짖는 일에 능한 사람들이 사람들을 이성이 아니라 억제로 이끌어 자신들만큼 비참하게 만들려 한다고 비판합니다. 벌이 무서워서 지키는 도덕은 스피노자의 기준으로는 진정한 덕이 아닙니다. 선이 좋아서 하는 선만이 자유로운 선입니다. 이 생각은 뒤에서 "행복은 덕의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22. 연민에 대한 까다로운 논의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명제 가운데 하나가 제4부 50번입니다.
Pity, in a man who lives under the guidance of reason, is in itself bad and useless.
이성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에게 연민은 그 자체로 나쁘고 쓸모없다.
처음 읽으면 냉정하게 느껴지는 말입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연민은 정의상 남의 고통에서 비롯되는 고통입니다. 고통은 활동하는 힘을 줄이므로 그 자체로는 나쁘다는 것입니다. 남을 돕는 일은 이성이 명하는 선이지만, 그것은 이성의 판단으로 해야 하고 슬픔에 휩쓸려서 하면 후회할 일을 하기 쉽다고 합니다. 같은 주석은 그다음에 곧바로 단서를 붙입니다.
He who is moved to help others neither by reason nor by compassion, is rightly styled inhuman
이성으로도 연민으로도 남을 도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비인간적이라 불린다.
그러니 스피노자는 돕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돕되, 눈물이나 슬픔에 이끌리지 않고 무엇이 정말 그 사람에게 이로운지를 헤아리며 돕자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감정과 이성의 관계에 대한 스피노자의 입장을 가장 날카롭게 보여 주는 예이며, 독자마다 동의하거나 반박하며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23. 겸손과 후회는 덕이 아니다
제4부는 흔히 덕으로 여겨지는 감정에도 의문을 던집니다.
Humility is not a virtue, or does not arise from reason.
겸손은 덕이 아니거나, 이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겸손은 자기 약점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고통입니다. 이성적으로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 힘을 아는 것이므로, 약점을 바라보며 움츠러드는 일은 이성의 작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후회에 대해서는 더 강하게 말합니다.
Repentance is not a virtue, or does not arise from reason; but he who repents of an action is doubly wretched or infirm.
후회는 덕이 아니거나 이성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며, 어떤 행동을 후회하는 사람은 이중으로 비참하거나 연약하다.
나쁜 욕망에 지고, 그다음에는 고통에 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주석은 현실적인 단서도 답니다. 사람들은 좀처럼 이성에 따라 살지 못하므로, 겸손과 후회, 희망과 두려움은 해보다 득이 많을 수 있다고 합니다. 모두가 교만하기만 하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 묶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이성인과 현실의 사람을 구분하는 눈이 이 책에 있습니다.
24. 자유인의 지혜는 삶에 대한 묵상이다
제4부 후반부에는 자유인의 모습이 차례로 그려집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67번 명제입니다.
A free man thinks of death least of all things; and his wisdom is a meditation not of death but of life.
자유인은 죽음을 무엇보다 가장 덜 생각하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묵상이다.
죽음을 늘 기억하라는 전통적인 가르침과 대비되는 말입니다. 스피노자는 두려움으로 움직이지 않고 좋음을 직접 바라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생각의 중심이 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자유인은 위험 앞에서도 이성적으로 행동합니다. 69번 명제는 물러서는 일도 용기라고 말합니다.
The virtue of a free man is seen to be as great, when it declines dangers, as when it overcomes them.
자유인의 덕은 위험을 피할 때도 위험을 이겨 낼 때만큼 크게 드러난다.
무모한 대담함도 두려움과 마찬가지로 감정이고, 둘 다 억제하려면 같은 정도의 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맞춰 물러나는 것도 싸우는 것만큼 용기라는 말은 현실적인 위로가 됩니다.
25. 자유인은 법 안에서 더 자유롭다
스피노자는 자유를 사회와 대립시키지 않습니다. 제4부 72번은 정직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The free man never acts fraudulently, but always in good faith.
자유인은 결코 속이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게 행동한다.
그러면 목숨이 걸린 위기에서도 약속을 깨지 않아야 할까요? 증명에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논증합니다. 이성이 한 사람에게 속이라고 설득한다면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설득할 것이고, 그러면 이성은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힘을 합치거나 공통의 법을 가지지 말라고 설득하는 셈이 되는데, 이는 불합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73번 명제가 나옵니다.
The man, who is guided by reason, is more free in a State, where he lives under a general system of law, than in solitude, where he is independent.
이성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홀로 독립해 있을 때보다 공통의 법 체계 아래 사는 국가 안에서 더 자유롭다.
독립은 곧 자유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홀로 있으면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해야 하지만, 법과 신뢰가 있는 공동체 안에서는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를 대립시키지 않는 이 시선이 스피노자의 정치철학과 이어집니다.
26. 감정은 명확히 이해하는 순간 수동성에서 벗어난다
제5부 서문은 책의 마지막 방향을 알립니다.
At length I pass to the remaining portion of my Ethics, which is concerned with the way leading to freedom.
마침내 나는 『에티카』의 남은 부분, 곧 자유로 이끄는 길을 다루는 부분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가장 핵심이 되는 명제 3번이 나옵니다.
An emotion, which is a passion, ceases to be a passion, as soon as we form a clear and distinct idea thereof.
수동적 정념인 감정은 우리가 그것에 대해 분명하고 판명한 관념을 형성하는 즉시 더 이상 정념이 아니게 된다.
화나 불안 같은 감정에 휩쓸릴 때, 그 감정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명하게 이해하면 감정의 지배력이 약해진다는 말입니다. 따름정리는 이를 일상의 말로 풀어 줍니다. 감정을 더 잘 알수록 그것은 더 우리의 통제 아래 놓이고, 정신은 그것에 덜 수동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것이 자유로 가는 길입니다.
27. 필연을 이해하면 감정의 힘이 줄어든다
제5부 6번 명제는 앞서 본 필연의 사상이 실제로 어떻게 마음의 평안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The mind has greater power over the emotions and is less subject thereto, in so far as it understands all things as necessary.
정신은 모든 것을 필연으로 이해하는 만큼 감정에 대한 더 큰 힘을 갖고 감정에 덜 종속된다.
주석은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합니다. 좋은 것을 잃은 슬픔은 그것을 잃지 않을 방법이 없었음을 깨달을수록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일어난 일을 다르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수록 후회와 원망이 커지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갑니다. 필연의 사상이 체념이 아니라 치유가 되는 지점입니다.
다만 스피노자는 이해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잘 압니다. 완전한 앎에 이르기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5부 10번 명제의 주석이 실용적인 답을 줍니다.
to frame a system of right conduct, or fixed practical precepts, to commit it to memory
올바른 행동의 체계, 곧 확고한 실천 규칙을 세우고 그것을 기억에 새기는 것
예를 들어 미움은 사랑이나 너그러움으로 이겨야 한다는 규칙을 미리 새겨 두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 규칙이 바로 떠올라 분노가 훨씬 쉽게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 무엇인지, 그것을 너그러움으로 막는 길이 무엇인지를 미리 자주 생각해 두라는 것입니다. 철학이 생활 습관으로 내려오는 대목입니다.
28. 행복은 덕의 보상이 아니라 덕 자체이다
책의 마지막 장면은 정신의 영원성과 최고의 기쁨을 다룹니다. 23번 명제는 가장 난해한 주장입니다.
The human mind cannot be absolutely destroyed with the body, but there remains of it something which is eternal.
인간의 정신은 몸과 함께 완전히 소멸될 수 없으며, 그 가운데 영원한 어떤 것이 남는다.
이 말은 죽은 뒤에 개인의 기억과 인격이 살아남는다는 흔한 내세론과는 다릅니다. 스피노자가 말하는 영원한 부분은 이해하는 정신의 부분입니다. 그래서 38번 명제는 더 많은 것을 이해할수록 정신의 더 큰 부분이 지속되며, 나쁜 감정에 덜 시달리고 죽음을 덜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이 영원성의 의미는 해석이 갈리는 문제이므로 단정하기보다 스피노자의 의도를 조심스럽게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더 쉽게 와닿는 것은 41번 명제입니다. 영원성을 몰라도 우리는 경건과 용기와 고귀함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Even if we did not know that our mind is eternal, we should still consider as of primary importance piety and religion
비록 우리 정신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경건과 종교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책의 결론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42번 명제입니다.
Blessedness is not the reward of virtue, but virtue itself
지복은 덕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덕 그 자체이다.
스피노자는 덧붙입니다. 우리가 욕망을 다스려서 기쁜 것이 아니라 기쁘기 때문에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벌이 무서워 선을 행하고 보상을 바라 덕을 쌓는 삶이 아니라, 이해하는 삶 자체가 기쁨인 삶을 그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며 끝납니다.
But all things excellent are as difficult as they are rare.
그러나 모든 탁월한 것은 드문 만큼 어렵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에티카』를 처음부터 증명 하나하나 따라가며 읽으면 쉽게 지칩니다. 처음 접한다면 부록과 서문, 주석 위주로 읽기를 권합니다. 제1부 부록, 제3부 서문과 2번 명제 주석, 제4부 서문과 45번 주석, 제5부의 3번에서 10번 사이와 마지막 부분이 이 글에서 소개한 핵심 대목입니다. 증명은 나중에 필요할 때 펼쳐 보아도 늦지 않습니다. 스피노자의 용어는 일상어와 다르게 쓰이므로, 실체, 속성, 양태, 코나투스 같은 단어를 만나면 정의 부분으로 돌아가는 습관을 들이면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결정론, 신과 자연을 같은 것으로 보는 관점, 연민과 겸손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논쟁의 대상입니다. 반대하며 읽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피노자가 감정을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려 했다는 점, 그리고 그 이해가 곧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입니다. 화가 날 때, 후회가 밀려올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이 책의 한 문장을 떠올려 보세요.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습관이 이 책이 건네는 가장 실용적인 선물입니다.
ReadGem 앱에서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을 한 문장씩 나란히 읽어 보세요. 영어 청취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