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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년도 1785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Metaphysic of Morals

도덕형이상학 정초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

Nothing can possibly be conceived in the world, or even out of it, which can be called good, without qualification, except a good will.

세상 안에서도, 심지어 세상 밖에서도, 조건 없이 선하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선의지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Act only on that maxim whereby thou canst at the same time will that it should become a universal law.

네가 동시에 보편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 있는 준칙에 따라서만 행동하라.

한눈에 보기

도덕의 가치는 결과나 기분이 아니라 의지의 동기에 있다. 내 행동의 원칙이 모두에게 통할 수 있는지, 사람을 수단으로만 쓰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물어라.

비슷한 책

한 권 요점

Immanuel Kant

임마누엘 칸트는 1724년 4월 22일 동프로이센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마구를 만드는 장인이었고, 집안에는 경건주의 신앙의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그는 17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들어갔고, 1748년경부터 여섯 해가량 가정교사로 일한 뒤 1755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정식 교수가 된 것은 1770년, 마흔여섯 살 때였습니다. 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멀리 떠나지 않았고 결혼하지도 않았으며, 규칙적이고 조용한 생활로 유명했습니다.

칸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책은 1781년에 나온 『순수이성비판』입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의 이성이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지를 따졌습니다. 그러나 이성의 한계를 그은 것만으로 칸트의 철학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지식의 영역을 정리하고 난 뒤, 그는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다룰 차례라고 보았습니다. 그 작업의 출발점이 된 책이 1785년에 나온 『도덕형이상학 정초』입니다.

이 책은 칸트의 윤리학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입구로 꼽힙니다. 분량이 짧고, 그의 윤리학의 핵심인 선의지와 의무, 정언명령, 인간의 존엄을 한 권에 압축해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문에서 칸트는 이 책이 앞으로 쓸 더 큰 "도덕형이상학"의 토대를 놓는 책이라고 밝힙니다. 실제로 그는 이후 『실천이성비판』(1788)을 내고, 훗날 『도덕형이상학』 본문을 따로 출간했습니다. 제목의 "정초(定礎)"는 건물의 주춧돌을 놓는다는 뜻입니다.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일흔아홉의 나이로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도덕 이론은 이후 윤리학의 중심 흐름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오늘날에도 인권, 존엄, 공정 같은 논의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한편 비판도 많습니다. 결과를 중시하는 입장이나 감정과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칸트의 윤리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지적합니다. 이 글에서는 칸트의 결론을 무조건 옹호하기보다, 그가 던지는 질문을 스물다섯 가지로 나누어 정리합니다.

줄거리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일반 이성의 도덕적 인식에서 철학적 인식으로의 이행」입니다. 칸트는 보통 사람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도덕 판단에서 출발해, 선의지와 의무라는 개념을 끌어냅니다. 둘째 부분은 「통속적 도덕 철학에서 도덕형이상학으로의 이행」으로 책의 중심입니다. 여기서 정언명령이 여러 가지 정식으로 제시되고, 인간을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는 원칙과 자율, 목적의 나라 같은 개념이 나옵니다. 셋째 부분은 「도덕형이상학에서 순수 실천이성 비판으로의 이행」으로, 자유가 어떻게 도덕의 바탕이 되는지를 다루며 가장 어렵습니다.

칸트의 논증은 일상적인 도덕 감각에서 시작해 점점 추상적인 원리로 올라갑니다. 우리는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칸트는 그 이유를 결과나 이익에서 찾지 않고 이성의 법칙에서 찾으려 합니다. 아래 스물다섯 가지 항목은 이 흐름을 따라가며 지금도 우리가 쓸 수 있는 질문을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도덕에는 왜 형이상학이 필요한가

이 책의 서문에서 칸트는 철학이 물리학, 윤리학, 논리학으로 나뉜다는 오랜 분류에서 시작합니다. 물리학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의 법칙을 다룬다면 윤리학은 "일어나야 하는 일"의 법칙을 다룹니다. 그는 윤리학에서 경험에 의존하는 부분과 순수한 이성에서 나오는 부분을 구분하고, 순수한 부분을 따로 세우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A metaphysic of morals is therefore indispensably necessary, not merely for speculative reasons, in order to investigate the sources of the practical principles which are to be found a priori in our reason, but also because morals themselves are liable to all sorts of corruption, as long as we are without that clue and supreme canon by which to estimate them correctly.

그러므로 도덕형이상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이성 안에서 선험적으로 발견되는 실천 원리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사변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올바르게 판정할 단서와 최고 기준이 없는 한 도덕 자체가 온갖 타락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도덕 원칙을 경험이나 인간의 성향에서 끌어내면 그 원칙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고 사람의 편의에 맞게 휘어집니다. 그래서 칸트는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은가를 가려낼 확고한 기준을 이성 자신 안에서 찾으려 합니다. "형이상학"이라는 낯선 이름은 경험을 넘어선 신비한 세계를 다룬다는 뜻이 아니라, 경험에 기대지 않고 이성의 원리만으로 도덕의 뼈대를 세운다는 뜻입니다. 이 작업이 있어야 우리가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그 근거를 따져 볼 수 있습니다.

2. 조건 없이 선한 것은 선의지뿐이다

책의 첫 문장은 윤리학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Nothing can possibly be conceived in the world, or even out of it, which can be called good, without qualification, except a good will.

세상 안에서도, 심지어 세상 밖에서도, 조건 없이 선하다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선의지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

지성과 재치, 용기와 끈기 같은 재능과 기질은 분명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쓰는 의지가 선하지 않으면 해로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더 큰 해를 끼친다는 이야기입니다. 칸트는 여기서 출발해 도덕적 가치의 자리를 재능이나 결과가 아니라 의지에 놓습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보다 마음의 방향이 올바른 사람을 먼저 신뢰하라는 상식을 철학적으로 다진 셈입니다.

3. 재능과 행운도 선한 의지 없이는 해가 된다

칸트는 재능만이 아니라 행운의 선물도 같은 방식으로 따져 봅니다.

these gifts of nature may also become extremely bad and mischievous if the will which is to make use of them, and which, therefore, constitutes what is called character, is not good.

이런 자연의 선물은 그것을 쓰는 의지, 곧 이른바 성격을 이루는 의지가 선하지 않다면 극도로 나쁘고 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

권력과 부, 명예와 건강, 그리고 행복이라 불리는 만족감조차도 선한 의지가 없으면 교만과 오만을 낳기 쉽다고 칸트는 말합니다. 그는 선한 의지가 조금도 없는데도 계속 번영을 누리는 사람을 보면 공정한 관찰자는 결코 기뻐할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 성공한 사람을 볼 때 우리가 은근히 묻는 것, 곧 저 사람은 그만한 자격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칸트의 입장에서는 정당한 물음입니다. 성공의 크기와 사람됨의 무게는 다른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4. 의무에 맞는 것과 의무를 위해 하는 것은 다르다

서문에서 칸트는 도덕에 관해 가장 중요한 구분을 먼저 내놓습니다.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법칙에 맞기만 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For in order that an action should be morally good, it is not enough that it conform to the moral law, but it must also be done for the sake of the law, otherwise that conformity is only very contingent and uncertain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 법칙에 부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법칙을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부합은 매우 우연적이고 불확실할 뿐이다.

겉으로 같은 행동도 동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정직한 가게 주인이 어린아이에게도 손님과 같은 값을 받는 경우를 칸트는 예로 듭니다. 그가 정직한 것은 의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가게 평판에 이익이 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은 법칙에 맞지만 도덕적 가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목숨을 지키는 것은 의무이기도 하고 본능이기도 하기에 사람들은 대개 의무라서 지키지 않습니다. 칸트의 표현으로는 "의무가 요구하는 대로 하지만, 의무가 요구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입니다. 이 구분은 오늘날에도 기업의 윤리 경영이나 일상의 선행을 평가할 때 유용합니다. 같은 선행이라도 이유가 무엇인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5. 기분 좋은 선행에는 아직 도덕적 가치가 없다

칸트의 주장 가운데 가장 낯설게 들리는 부분입니다. 그는 남을 돕는 일이 즐거워서 돕는 사람을 예로 듭니다.

an action of this kind, however proper, however amiable it may be, has nevertheless no true moral worth

이런 종류의 행동은 아무리 올바르고 사랑스러워도 참된 도덕적 가치를 갖지는 않는다.

칸트는 이런 사람의 선행을 깎아내리지 않습니다. 칭찬과 격려를 받을 만하다고 인정합니다. 다만 그것은 명예욕 같은 다른 성향과 같은 층위에 있고 존경을 받을 만한 것은 아니라고 구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정합니다. 이 사람이 자신의 슬픔에 짓눌려 남의 처지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그저 의무라서 남을 돕는다면 그때 비로소 그의 행동은 참된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감정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자주 받습니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려는 바는 감정이 없어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점입니다. 기분이 내킬 때만 하는 선행에 기대지 말고, 기분과 상관없이 지킬 원칙을 세우라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습니다.

6. 도덕적 가치는 얻으려는 결과가 아니라 준칙에 있다

첫째 부분에서 칸트는 의무에 관한 세 가지 명제를 차례로 세웁니다. 앞의 구분, 곧 의무에 맞는 행동과 의무를 위한 행동의 구분을 한 걸음 더 밀고 나간 것이 두 번째 명제입니다.

an action done from duty derives its moral worth, not from the purpose which is to be attained by it, but from the maxim by which it is determined

의무에서 행해진 행동은 그 행동으로 이루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그 행동을 규정하는 준칙에서 도덕적 가치를 얻는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곧 목적을 이루었든 이루지 못했든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같다는 뜻입니다. 의지가 놓이는 자리는 선험적인 형식 원리와 경험적인 질료적 동기의 갈림길인데, 목적과 결과에 기댄 가치는 모두 조건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칸트의 논리입니다. 이어서 세 번째 명제가 나옵니다.

Duty is the necessity of acting from respect for the law.

의무란 법칙에 대한 존경에서 행동해야 하는 필연성이다.

그는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성향을 가질 수는 있어도 존경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결과는 내 의지의 에너지가 아니라 결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존경의 대상은 오직 내 의지에 원리로서 결부되어 있는 것, 곧 내 성향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압도하는 것뿐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 나서 좋은 결과를 얻었는지가 아니라 어떤 원칙으로 그 일을 했는지를 먼저 묻는 이 관점은, 결과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행위자가 책임질 수 있는 영역을 분명히 해 줍니다.

7. 도덕의 관심은 법칙에 대한 존경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감정이나 결과를 제외했을 때 의지를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칸트의 답은 존경입니다.

All so-called moral interest consists simply in respect for the law.

이른바 도덕적 관심이란 오직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이루어진다.

칸트는 재능 있는 사람을 존경할 때 우리가 그 사람에게서 본받아야 할 법칙의 본보기를 본다고 설명합니다.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은 그것이 나를 억누르기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라, 내 이성이 스스로 인정한 법칙 앞에서 느끼는 경의입니다. 이어서 그는 의지에서 모든 충동과 기대된 결과를 걷어 냈을 때 남는 것은 "행동이 법칙 일반에 부합한다는 것" 하나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하나가 다음에 나올 정언명령의 씨앗이 됩니다. 나를 움직이는 것이 이익이나 기분이 아니라 내가 옳다고 인정한 원칙이라는 상태, 그것이 칸트가 말하는 도덕적 자유의 모습입니다.

8. 행복은 너무 불확정해서 도덕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칸트는 도덕의 기준을 행복에서 찾는 입장을 반박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바라지만,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the notion of happiness is so indefinite that although every man wishes to attain it, yet he never can say definitely and consistently what it is that he really wishes and wills.

행복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불확정적이어서, 누구나 그것을 얻으려 하면서도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지를 분명하고 일관되게 말할 수 없다.

칸트는 부를 바란다 한들 걱정과 시기와 함정이 따라붙을 수 있고, 지식을 바란다 한들 더 날카로운 눈으로 숨겨진 재앙을 더 선명하게 보게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행복의 요소는 모두 경험에서 빌려 와야 하는데, 행복이라는 이념은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의 최대치를 요구하기 때문에 어떤 존재도 그 내용을 확정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 확실한 명령이 아니라 영리함의 조언만 얻는다고 합니다. 오늘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내일도 옳다고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곱씹을 만한 지적입니다.

9. 이성이 행복을 위해 주어졌다면 본능이 더 나았을 것이다

칸트는 이성이 인간에게 주어진 이유를 자연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따져 봅니다. 자연이 생명체의 기관을 목적에 가장 알맞게 만들었다고 가정한다면, 이성과 의지를 가진 존재의 목적이 보존과 안녕, 곧 행복이라고 보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if the proper object of nature were its conservation, its welfare, in a word, its happiness, then nature would have hit upon a very bad arrangement in selecting the reason of the creature to carry out this purpose.

만일 자연의 본래 목적이 그 존재의 보존과 안녕, 곧 행복이라면, 자연은 이 목적을 이루게 하려고 이성을 골랐다는 점에서 매우 나쁜 배치를 택한 셈이다.

행복을 이루는 데는 본능이 이성보다 훨씬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계몽된 이성이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의도적으로 추구할수록 참된 만족에서 오히려 멀어진다는 것이 칸트의 관찰입니다. 그래서 이성을 가장 많이 써 본 사람들 가운데는 이성에 대한 일종의 혐오가 생기기도 하고, 본능에 더 가깝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칸트의 결론은 이성이 행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선한 의지를 낳는 일이라는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성의 쓸모를 행복에서 찾지 말고 의지의 선함에서 찾으라는 제안입니다.

10. 순진함은 쉽게 유혹당하기에 철학이 필요하다

칸트는 도덕을 아는 데 철학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인정합니다. 평범한 사람도 무엇이 옳은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철학이 필요할까요?

Innocence is indeed a glorious thing; only, on the other hand, it is very sad that it cannot well maintain itself and is easily seduced.

순진함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이다. 다만 그것이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고 쉽게 유혹당한다는 점은 매우 슬프다.

이유는 인간 안의 반대편 힘에 있습니다. 이성은 의무의 명령을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은 채 단호하게 내리지만, 사람 안에는 욕구와 성향이 있고 이것을 다 만족시킨 상태를 행복이라 부르며 강하게 맞섭니다. 그러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엄격한 의무의 법칙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기 소망에 더 맞게 법칙을 약화시키려는 경향, 곧 칸트가 "자연적 변증"이라고 부르는 경향에 빠집니다. 나에게 불리한 도덕은 슬그머니 예외를 만들고 싶어지는 마음이 그것입니다. 상식적인 도덕이 이 유혹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려면 그 원리의 근원을 분명히 이해해야 하고, 평범한 이성이 실천 철학의 영역으로 한 걸음 나가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1. 목적을 위한 명령과 무조건적인 명령은 다르다

둘째 부분에서 칸트는 명령의 종류를 나눕니다. "이것을 원하면 저것을 하라"는 명령과 "그냥 하라"는 명령입니다.

If now the action is good only as a means to something else, then the imperative is hypothetical

만약 어떤 행동이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선하다면, 그 명령은 가언적이다.

건강하고 싶으면 운동하라, 합격하고 싶으면 공부하라 같은 것이 가언명령입니다. 목적이 바뀌거나 사라지면 명령도 사라집니다. 반면 정언명령은 어떤 목적과도 상관없이 행동 자체가 필연적이라고 선언합니다. 칸트는 도덕이 이 두 번째 종류여야 한다고 봅니다. 도덕이 "좋은 평판을 원하면 정직하라"는 식의 조건부 조언이라면 평판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이 내 취향이나 목표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이 구분이 칸트 윤리의 엄격함과 보편성의 뿌리입니다.

12. 보편법칙이 될 수 있는 원칙대로만 행동하라

칸트는 정언명령의 첫 정식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그는 이것이 유일한 정언명령이라고 말합니다.

Act only on that maxim whereby thou canst at the same time will that it should become a universal law.

네가 동시에 보편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 있는 준칙에 따라서만 행동하라.

준칙이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스스로 세운 원칙입니다. 칸트는 그 원칙을 모든 사람이 따르는 법칙으로 바꾸어 보라고 합니다. 그래도 내가 그 세상을 원할 수 있는지, 그 원칙이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 검사는 복잡한 도덕 이론을 몰라도 쓸 수 있습니다. "모두가 나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는 일상에서도 자주 쓰는 질문입니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새치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세요. 모두가 새치기를 한다면 줄이라는 질서 자체가 사라지고, 새치기가 주는 이익도 함께 사라집니다.

13. 거짓 약속은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칸트가 가장 즐겨 드는 예가 곤란할 때 거짓 약속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현명한 일인가, 옳은 일인가입니다.

while I can will the lie, I can by no means will that lying should be a universal law.

나는 거짓말을 할 수는 있어도, 거짓말이 보편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는 결코 없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거짓 약속이 보편법칙이 되면 약속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약속을 믿지 않거나, 서둘러 믿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되갚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거짓 약속이라는 원칙은 보편화되는 순간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칸트는 이 검사를 하는 데 대단한 통찰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경험이 부족하고 세상일의 변수를 다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도 "너는 네 원칙이 보편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 있는가?"라는 질문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모두가 정직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이득이 되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이용하는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고 있는 셈입니다.

14. 재능을 놀리는 준칙은 이성적 의지가 바랄 수 없다

칸트는 정언명령을 적용하는 네 가지 예를 듭니다. 앞에서 본 거짓 약속이 그중 하나이고, 세 번째 예는 타고난 재능을 가꾸지 않는 사람입니다.

as a rational being, he necessarily wills that his faculties be developed, since they serve him and have been given him, for all sorts of possible purposes.

이성적 존재로서 그는 자신의 능력이 계발되기를 필연적으로 바란다. 그 능력들은 온갖 가능한 목적을 위해 그에게 쓸모가 있고 그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형편이 넉넉해서 쾌락에 빠져 지내며 재능을 계발하는 수고를 하기 싫어합니다. 그의 준칙이 보편법칙이 되어 모두가 재능을 놀려 두고 놀며 지낸다면 인간 사회가 아주 유지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고 칸트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성적 존재가 그런 세계를 의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논증입니다. 이성적 존재는 자신의 능력이 여러 가능한 목적을 위해 쓰이도록 계발되기를 필연적으로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의무는 "완전 의무"만큼 예외 없는 엄격한 것은 아니고 어느 만큼 계발할지는 재량에 맡겨지지만, 능력을 완전히 놀리겠다는 준칙은 이성적 의지와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게으름이 정당한 휴식인지, 가능성을 놀리는 일인지를 묻게 하는 대목입니다.

15. 남을 돕지 않겠다는 준칙은 스스로를 모순에 빠뜨린다

네 번째 예는 번영을 누리는 사람이 곤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그는 남에게서 빼앗지도 않고 부러워하지도 않으니, 남을 돕지 않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For a will which resolved this would contradict itself, inasmuch as many cases might occur in which one would have need of the love and sympathy of others

이를 결의하는 의지는 스스로 모순될 것이다. 자신도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동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 준칙이 보편법칙이 되어도 인류가 존속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인정합니다. 어쩌면 동정을 말만 하고 실제로는 속이는 세상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의지의 모순입니다. 누구에게나 남의 도움이 절실한 때가 오는데, 스스로 의지로 세운 법칙이 "아무도 돕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자신이 바라는 도움의 희망을 스스로 빼앗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칸트는 모순을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어떤 준칙은 보편법칙으로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순되고, 어떤 준칙은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의지할 수 없습니다. 앞의 것이 거짓 약속이고 뒤의 것이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입니다. 내가 도움받고 싶은 만큼 남을 도와야 한다는 일상의 직관을 이성의 논증으로 바꾼 셈입니다.

16. 도덕은 본보기에서 이끌어 낼 수 없다

둘째 부분에서 칸트는 도덕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흔히 쓰이는 본보기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훌륭한 사람의 모범을 보여 주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에 그는 단호합니다.

Nor could anything be more fatal to morality than that we should wish to derive it from examples.

도덕을 본보기에서 이끌어 내려는 것보다 도덕에 더 치명적인 일은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어떤 본보기든 그것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지를 먼저 도덕 원리로 시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본보기가 도덕의 개념을 권위 있게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칸트는 복음서의 거룩한 인물조차 우리의 도덕적 완전성의 이상과 먼저 견주어 보아야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하고, 그 이상은 이성이 선험적으로 스스로 만든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Imitation finds no place at all in morality, and examples serve only for encouragement

도덕에서 모방이 설 자리는 전혀 없고, 본보기는 격려로서만 쓸모가 있다.

본보기는 법칙이 요구하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용기를 줄 뿐입니다. 이성에 있는 진짜 원본을 제쳐 두고 본보기를 길잡이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 도덕이라는 생각은 흔하지만,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그 사람을 왜 존경하는지를 스스로 판단할 기준을 이미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7. 사람을 수단으로만 대하지 마라

칸트는 정언명령을 다른 형태로도 표현합니다. 보편법칙 정식이 행동의 형식에 주목한다면, 이 정식은 행동의 대상인 사람에게 주목합니다.

So act as to treat humanity, whether in thine own person or in that of any other, in every case as an end withal, never as means only.

너 자신의 인격에서든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든,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만 대하지 않도록 행동하라.

칸트는 사물과 사람을 구분합니다. 사물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쓸 수 있지만, 사람은 모든 행동에서 그 자체로 목적으로 여겨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But a man is not a thing, that is to say, something which can be used merely as means, but must in all his actions be always considered as an end in himself.

그러나 인간은 사물이 아니다. 곧 단지 수단으로만 쓰일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모든 행동에서 언제나 그 자체로 목적으로 여겨져야 한다.

여기서 "만"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택시 기사나 점원, 동료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을 오직 도구로만 취급하고, 그들에게도 자신의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때입니다. 거짓 약속으로 누군가를 속여 이익을 얻는 사람은 상대가 동의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를 이용합니다. 상대의 이성적 판단을 건너뛰고 조종하는 것이 칸트가 말하는 수단화입니다. 이 정식은 사람을 숫자나 자원으로 바라보기 쉬운 조직 안에서 특히 쓸모가 큽니다.

18. 값이 있는 것과 품위가 있는 것은 다르다

칸트는 목적의 나라에서 모든 것이 값(가치)을 갖거나 존엄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값은 바꿀 수 있는 것에, 존엄은 바꿀 수 없는 것에 속합니다.

Whatever has a value can be replaced by something else which is equivalent; whatever, on the other hand, is above all value, and therefore admits of no equivalent, has a dignity.

값을 가진 것은 그에 상응하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반면 모든 값 위에 있어 대체할 수 없는 것은 존엄을 가진다.

그는 재능과 근면에는 시장가치가 있고, 재치와 상상력과 유머에는 취향에 따른 가치가 있다고 구분합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신의, 본능이 아닌 원칙에서 나오는 선의는 값을 따질 수 없는 내적 가치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가치는 결과나 쓸모에 있지 않고 그것을 낳는 마음의 태도, 곧 의지의 준칙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능력이나 성과로 평가하는 일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어떤 가치는 값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 구분은 오늘날에도 힘이 있습니다. 쓸모가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가치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19. 스스로 세운 법칙이 존엄의 근거다

칸트는 의지가 자기 자신에게 법칙을 주는 것을 자율이라고 부르고, 외부의 대상이나 욕구에서 법칙을 받는 것을 타율이라고 부릅니다.

Autonomy then is the basis of the dignity of human and of every rational nature.

그러므로 자율은 인간의 존엄, 그리고 모든 이성적 본성의 존엄의 근거이다.

도덕 법칙이 밖에서 주어진 명령이라면 그것은 두려움이나 보상에 이끌려 따르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성적 존재가 스스로 보편적 법칙을 세우고 그에 따른다면 그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으면서 법칙 아래 있습니다. 칸트는 이 역설 속에 인간의 품위가 있다고 봅니다. 의무는 짐이 아니라, 자기 이성이 스스로 내린 명령이라는 이유로 존엄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하라고 해서 한다"와 "옳다고 판단해서 한다"의 차이가 곧 자율의 차이입니다.

20. 모두가 입법자인 공동체를 상상하라

자율과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정식을 종합하여, 칸트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것이 "목적의 나라"입니다.

By a kingdom I understand the union of different rational beings in a system by common laws.

나는 나라를, 서로 다른 이성적 존재들이 공통의 법칙 아래 하나의 체계로 결합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이성적 존재가 법칙을 만드는 입법자이면서 동시에 그 법칙을 따르는 구성원입니다. 사람마다 개인적 차이와 사적인 목적이 다르지만, 법칙 아래에서는 각자가 목적으로 존중받으며 모든 목적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어울립니다. 칸트는 이것이 현실에 이미 있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의 행동을 가늠하는 이상적인 틀이라고 합니다. 내 행동이 이런 공동체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가를 자문하는 일은 법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눈도 길러 줍니다.

21. 욕구나 감정, 신의 위력에 기댄 도덕은 모두 타율이다

칸트는 이전의 도덕 이론들을 살펴보고 하나의 공통된 결함을 지적합니다. 의지가 대상에서 법칙을 받는 모든 이론이 타율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In every case where an object of the will has to be supposed, in order that the rule may be prescribed which is to determine the will, there the rule is simply heteronomy

의지를 규정할 규칙을 정하려고 의지의 대상을 상정해야 하는 모든 경우에, 그 규칙은 단지 타율일 뿐이다.

행복을 원리로 삼는 입장은 물론, 도덕 감정에 호소하는 입장도, 완전성 개념에 호소하는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칸트는 신학적 근거에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신의 완전성을 직관할 수 없고 자신의 도덕 개념에서 추론할 뿐이어서 설명이 순환에 빠지며, 그렇지 않으려 하면 신의 의지를 영광과 지배욕, 위력과 복수의 관념으로 그리게 되고 그 위에 세운 도덕은 도덕에 정면으로 반대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그가 덜 해롭다고 보는 쪽은 도덕 감정이나 완전성의 개념이지만, 그것들도 도덕의 토대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도덕의 근거를 외부의 힘이나 보상에서 찾는 순간 도덕은 조건부 명령이 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22. 도덕 법칙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규칙이 아니다

서문에서 칸트는 도덕 철학이 왜 경험이 아니라 순수한 이성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법칙이 도덕적 힘을 가지려면 절대적 필연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the precept, "Thou shalt not lie," is not valid for men alone, as if other rational beings had no need to observe it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율은 마치 다른 이성적 존재들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듯이 인간에게만 타당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도덕의 근거를 인간의 본성이나 처한 상황에서 찾아서는 안 되고, 순수한 이성의 개념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성향이나 사회의 관습에 기댄 규칙은 어느 정도 널리 통할 수는 있어도 필연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칸트의 입장은 예외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점은 현실의 복잡한 상황에서 지나치게 경직되었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칸트를 읽을 때는 그의 결론이 모든 경우에 맞는지보다, 우리가 "이번만은 괜찮겠지"라고 합리화하는 순간을 비춰 주는 거울로 활용하는 편이 유익합니다.

23. 자유의 이념 아래서만 행동할 수 있다

셋째 부분에서 칸트는 가장 어려운 질문과 마주합니다. 정언명령이 정말 가능한가, 곧 이성적 존재에게 도덕 법칙이 왜 구속력을 갖는가입니다. 그의 열쇠는 자유입니다. 도덕이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 법칙으로 타당하려면 자유가 모든 이성적 존재의 속성이어야 합니다.

every being that cannot act except under the idea of freedom is just for that reason in a practical point of view really free

자유의 이념 아래서가 아니면 행동할 수 없는 모든 존재는 바로 그 이유로 실천적 관점에서 참으로 자유롭다.

칸트는 자유를 이론적으로 증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행동하는 이성적 존재는 자신을 스스로 원칙의 저자로 여길 수밖에 없고, 어떤 외부의 충동이 자기 판단을 이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성은 자기 판단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실천적 관점에서는 자유를 전제하는 것만으로 자유에 매인 모든 법칙이 우리에게 똑같은 힘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증명되어서가 아니라 자유로운 존재로서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덕 법칙 아래 있습니다. 자유를 이론으로 확인하려 하지 말고 책임지는 행동 속에서 이미 전제하고 있다는 이 통찰이 칸트 윤리의 마지막 열쇠입니다.

24. 나는 두 관점에서 나 자신을 본다

자유와 자연의 필연성이 충돌하지 않느냐는 문제를 풀기 위해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구분을 다시 꺼냅니다. 우리가 대상을 아는 방식은 사물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한정되고, 사물 자체는 알 수 없다는 구분입니다.

we must admit and assume behind the appearance something else that is not an appearance, namely, the things in themselves

우리는 현상 배후에 현상이 아닌 다른 무엇, 곧 사물 자체를 인정하고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구분에서 감각 세계와 지성 세계의 구분이 나옵니다. 칸트는 이것이 자신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내적 감각으로 자기를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자기 본성의 나타남일 뿐이고, 그 배후에 자아 자체가 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두 관점에서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감각 세계의 일원으로서는 자연 법칙에 따르고, 지성 세계의 일원으로서는 이성이 스스로 세운 법칙, 곧 자유 아래 있습니다. 이 두 관점 덕분에 "나는 자연 속에서 원인과 결과로 움직이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법칙을 세우는 존재"라는 말이 모순 없이 성립합니다. 이 구분이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지만, 도덕의 최종 근거가 자연의 사실에 있지 않고 이성의 자율에 있다는 핵심 주장을 받쳐 줍니다.

25.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철학의 몫이다

책의 끝에서 칸트는 놀랄 만큼 솔직한 고백을 합니다. 그는 도덕 명령이 왜 무조건적인지를 끝내 설명할 수 없다고 인정합니다.

while we do not comprehend the practical unconditional necessity of the moral imperative, we yet comprehend its incomprehensibility, and this is all that can be fairly demanded of a philosophy which strives to carry its principles up to the very limit of human reason.

우리는 도덕 명령의 실천적이고 무조건적인 필연성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 인간 이성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원리를 밀고 나가려는 철학에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이다.

이 마지막 문장은 『순수이성비판』에서 이어지는 칸트의 태도를 보여 줍니다. 알 수 있는 것의 경계를 정직하게 긋고, 그 경계에서 멈춰 서는 것입니다. 도덕이 왜 우리를 구속하는지를 완전히 증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도덕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기보다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을 분명히 아는 것이 지적 성실함이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분량이 길지 않지만 한 문장씩 곱씹어야 하는 책입니다. 처음 읽는다면 서문과 첫째 부분을 먼저 읽으세요. 선의지와 의무, 동기에 대한 이야기가 일상의 도덕 감각과 가까워서 따라가기 쉽습니다. 둘째 부분은 책의 중심으로, 정언명령의 여러 정식과 네 가지 예가 나옵니다. 어렵게 느껴지면 정식의 이름을 외우기보다 거짓 약속의 예를 먼저 따라가 보세요. 보편법칙 정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한눈에 보입니다.

셋째 부분은 자유와 이성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증이어서 처음에는 건너뛰어도 좋습니다. 대신 끝부분의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 칸트가 어디서 멈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읽는 동안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한 가지씩 적용해 보세요. 오늘의 작은 선택에서 "내 원칙이 모두의 원칙이 되어도 괜찮은가", "나는 이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고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핵심은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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