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1903년 출간
As a Man Thinketh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이 인격을 만들고, 인격이 환경과 건강과 성취와 평온을 빚는다고 말하는 짧은 명상록
They themselves are makers of themselves.
그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만드는 자들이다.
Dreams are the seedlings of realities.
꿈은 현실의 모종이다.
한눈에 보기
서문과 일곱 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책의 주장은 한 줄로 모입니다. 사람의 인격은 그가 품은 생각의 총합이고, 환경은 그 인격이 비친 거울이라는 것입니다. 앨런은 마음을 정원에, 생각을 씨앗에 빗대어 인격과 환경의 관계(1~2장)를 풀고, 같은 원리를 몸의 상태(3장), 삶의 목적(4장), 성취와 책임(5장), 꿈과 이상(6장)으로 넓힌 다음, 폭풍 같은 마음 위에 놓이는 평온(7장)으로 끝맺습니다. 열다섯 가지 대목으로 읽는다.
비슷한 책
- 새뮤얼 스마일스 『자조론』 (Self-Help)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Meditations)
- 에픽테토스 『엥케이리디온』 (Enchiridion)
한 권 요점
As a Man Thinketh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는 영국의 작가 제임스 앨런이 쓴 에세이로, 1903년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앨런은 1864년에 태어나 1912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서문 끝에는 잉글랜드 일프라콤의 주소가 서명처럼 적혀 있습니다. 책 제목은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로 그 사람이 된다"는 격언에서 왔고, 이 구절은 구약성서 잠언에 나오는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문은 이 책이 생각의 힘을 빠짐없이 논한 논문이 아니라 독자를 자극하는 암시에 가깝다고 스스로 밝힙니다. 분량은 짧지만 구조는 분명합니다. 서문 뒤에 일곱 장이 이어지고, 모든 장이 같은 전제를 다른 영역에 적용합니다. 그 전제는 생각이 원인이고 인격, 환경, 몸, 성취는 모두 그 결과라는 것입니다. 어조는 설득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깝고, 사례는 몇 개뿐이며, 시구와 성경 구절이 논증 사이에 끼어듭니다.
책의 내용
시와 서문: 마음은 옷감을 짜는 주인
책은 여섯 줄의 시로 시작합니다. 마음은 모양을 빚고 만드는 으뜸가는 힘이고, 사람은 곧 마음이며, 사람은 생각이라는 도구로 원하는 대로 형상을 만들어 천 가지 기쁨과 천 가지 불행을 낳는다고 합니다. 그는 은밀히 생각하고 그대로 이루어지며, 환경은 그의 거울일 뿐입니다. 서문은 이 책이 명상과 경험의 결과물이며 설명보다 암시를 목표로 한다고 말합니다. 독자가 찾아내야 할 진실은 "사람은 스스로를 만드는 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선택하고 키우는 생각에 따라 마음은 인격이라는 안쪽 옷과 환경이라는 바깥 옷을 짜는 직공이 되며, 지금까지 무지와 고통 속에서 짰다 해도 이제는 깨달음과 행복 속에서 짤 수 있다고 서문은 말합니다.
제1장 생각과 인격: 행위는 생각의 꽃
첫 장은 "사람은 문자 그대로 생각하는 대로이며 인격은 모든 생각의 총합"이라는 선언으로 열립니다. 식물이 씨앗에서 나오듯 모든 행위는 숨은 생각의 씨앗에서 나오고, 이는 의도하지 않은 듯 보이는 즉흥적 행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위는 생각의 꽃이고 기쁨과 고통은 그 열매이며, 사람은 자기 농사의 달고 쓴 열매를 거둡니다. 앨런은 인간을 "법칙에 따라 자라는 존재"로 보며 인과가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처럼 생각의 세계에서도 어김없다고 합니다. 고귀한 인격은 우연이나 호의의 선물이 아니라 오랜 올바른 생각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고, 비천한 인격은 비천한 생각을 품어 온 결과입니다. 사람은 생각의 무기고에서 자신을 파괴하는 무기도, 기쁨과 힘과 평화의 집을 짓는 연장도 벼려 냅니다.
이 장의 후반은 사람이 생각의 주인이자 인격의 빚는 이, 환경과 운명을 만드는 이라는 발견을 가장 기쁜 진리로 꼽습니다. 약하고 타락한 상태에서도 사람은 여전히 주인이지만 자기 집안을 잘못 다스리는 어리석은 주인일 뿐이고,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존재를 받치는 법칙을 부지런히 찾기 시작하면 지혜로운 주인이 됩니다. 이 법칙은 안에서만 발견되며 자기 분석과 경험, 곧 실천의 문제라고 합니다. 금과 다이아몬드를 얻으려면 파고 또 파야 하듯 영혼의 광산을 깊이 파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보고 다스리고 바꾸며 그 결과를 이웃과 삶에서 추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찾는 이는 찾을 것이고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라는 말이 이 장을 닫습니다.
제2장 생각이 상황에 미치는 영향: 마음의 정원
가장 긴 장입니다. 마음은 정원과 같아서 지혜롭게 가꾸든 방치하든 반드시 무언가를 냅니다. 쓸모 있는 씨앗을 심지 않으면 잡초 씨앗이 저절로 떨어져 제 종류를 늘립니다. 정원사가 잡초를 뽑고 원하는 꽃과 열매를 키우듯 사람도 그릇되고 불순한 생각을 솎아 내고 옳고 쓸모 있는 생각을 가꾸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영혼의 정원사이자 삶의 지휘자임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생각과 인격은 하나이고 인격은 환경을 통해서만 드러나기에 바깥 조건은 안의 상태와 조화롭게 이어져 있다고 합니다. 단, 한 시점의 환경이 그 사람의 인격 전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그 상황이 그의 성장에 당분간 필요한 어떤 생각의 요소와 맞닿아 있다는 뜻이라고 선을 긋습니다.
앨런은 어떤 사람이 구빈원이나 감옥에 이르는 것은 운명의 횡포가 아니라 비천한 생각과 욕망의 길을 걸어서이고, 순수한 사람이 갑자기 죄에 빠지는 것도 외부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오래 마음속에서 자란 생각이 기회를 만나 드러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환경은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을 그 자신에게 드러낸다"는 대목이 여기서 나옵니다. 사람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인 것을 끌어당기며, 소원과 기도는 생각과 행동에 어울릴 때에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환경과 싸운다"는 것은 바깥의 결과에 반항하면서 안의 원인을 계속 키우는 일이라고 진단합니다.
이어서 세 가지 사례가 나옵니다. 일은 피하면서 임금이 적다는 이유로 고용주를 속이고도 살림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가난한 사람, 탐식에서 온 고질병을 고치려 큰돈을 쓰겠다면서도 식탐은 내려놓지 않는 부자, 정해진 임금을 피하려고 편법을 쓰다가 평판과 재산을 모두 잃고 상황 탓을 하는 고용주입니다. 앨런은 이 사례들이 사람이 대개 무의식중에 자기 환경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보이려는 예시일 뿐이며, 독자가 제 마음속에서 법칙의 작용을 직접 추적해 보기 전에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 추론할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 또 외부 모습만으로 타인의 영혼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도 합니다. 정직하면서 고생하는 사람과 부정직하면서 부유한 사람을 보고 정직 때문에 실패하고 부정직 때문에 성공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피상적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에게도 결점이 있고 부정직한 사람에게도 미덕이 있으며, 각자 자기 몫의 행복과 고통을 거둔다고 합니다.
중반의 핵심은 고통과 법칙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통은 언제나 어떤 방향의 그릇된 생각의 결과이고, 고통의 유일한 쓸모는 쓸모없고 불순한 것을 태워 없애는 정화라고 합니다. 순수한 사람에게는 고통이 그치는데, 불순물이 빠진 금을 더 태울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척도는 소유물이 아니라 마음의 조화이며, 저주받은 부자도 축복받은 가난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가난과 방종은 비참의 두 극단이고 둘 다 마음의 무질서에서 나옵니다. 사람이 비로소 사람이 되는 때는 투덜대고 욕하기를 멈추고 삶을 다스리는 숨은 정의를 찾기 시작할 때라고 하며, 그때부터는 남을 원망하는 대신 환경을 자기 성장의 도구로 쓰게 된다고 말합니다.
장의 끝부분에서는 생각이 습관으로 굳고 습관이 환경으로 굳는 과정을 길게 열거합니다. 짐승 같은 생각은 방탕의 습관과 궁핍과 질병이 되고, 두려움과 의심과 우유부단은 무기력한 습관과 실패와 굴종적 의존이 되며, 증오와 비난은 고발과 폭력의 습관과 피해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아름다운 생각은 은혜롭고 친절한 습관과 밝은 환경을, 순수한 생각은 절제와 평안을, 용기와 자립과 결단은 성공과 풍요와 자유를, 사랑과 이타심은 흔들리지 않는 번영과 진정한 부를 낳는다고 합니다. 사람은 환경을 직접 고를 수 없지만 생각은 고를 수 있고, 그렇게 간접적이지만 확실하게 환경을 빚는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장은 의지가 화강암 벽도 뚫고 길을 낸다는 시로 닫힙니다.
제3장 생각이 건강과 신체에 미치는 영향: 몸은 마음의 종
몸은 마음의 종으로, 의도해서 고른 생각이든 자동으로 흘러나온 생각이든 마음의 작동을 따른다고 합니다. 앨런은 질병과 건강도 환경처럼 생각에 뿌리를 둔다고 보고, 두려움의 생각이 총알만큼 빠르게 사람을 죽인 일이 있다고 말하며 병을 두려워하며 사는 사람이 병에 걸린다고 주장합니다. 불안은 몸 전체를 무너뜨리고, 몸으로 실행하지 않은 불순한 생각조차 신경계를 흔든다고 합니다. 반대로 강하고 순수하고 즐거운 생각은 몸을 활력과 우아함으로 세운다고 합니다. 이 장의 건강 이야기는 의학적 처방이 아니라 저자의 신념과 관찰로 읽어야 하며, 어디까지나 책의 주장입니다.
그는 식단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생각을 바꾸지 않은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되며, 생각이 깨끗해지면 부정한 음식을 더는 원하지 않게 된다고 말합니다. 몸을 씻지 않는 성자는 성자가 아니라는 말도 합니다. 찌푸린 얼굴은 우연이 아니라 시큼한 생각이 만든 것이고, 주름은 어리석음과 열정과 자존심이 그린다고 합니다. 나이 아흔여섯인데 소녀 같은 얼굴을 한 여인과, 중년도 안 되었는데 얼굴 윤곽이 일그러진 남자를 자신이 안다고 하며 한쪽은 다정하고 밝은 기질의, 다른 쪽은 격정과 불만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노인의 주름에도 연민이 새긴 것, 강하고 순수한 생각이 새긴 것, 격정이 새긴 것이 있어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의롭게 산 사람의 노년은 지는 해처럼 고요하고 부드럽게 무르익는데, 최근 임종 자리에서 본 한 철학자가 그랬다고 앨런은 전합니다. 장은 명랑한 생각만 한 의사가 없고 선의만 한 위로자가 없다는 말과, 악의와 냉소와 의심과 질투 속에 사는 것은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히는 일이라는 말로 끝납니다.
제4장 생각과 목적: 표류하는 배를 키로 돌리기
목적과 이어지지 않은 생각은 지적인 성취를 낳지 못합니다. 대다수 사람의 생각의 배는 인생의 바다에서 정처 없이 표류하고, 앨런은 목적 없음이 하나의 악덕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삶의 중심 목적이 없는 사람은 사소한 걱정과 두려움과 자기 연민의 먹이가 되는데, 이런 것들은 계획된 죄악만큼 확실하게 실패와 불행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사람은 정당한 목적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생각의 중심에 세운 채 오롯이 매달려야 하며, 이 목적은 영적 이상일 수도 세속적 목표일 수도 있습니다. 그 길이 자기 절제와 진정한 집중에 이르는 왕도입니다. 되풀이해서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은 인격의 힘이 진짜 성공의 척도라고 하며, 큰 목적을 아직 붙잡지 못한 사람은 하찮아 보이는 일이라도 흠 없이 수행하는 데 생각을 모으라고 권합니다.
가장 약한 영혼도 힘은 노력과 연습으로만 길러진다고 믿고 노력에 노력을, 인내에 인내를 더하면 끝없이 자라 결국 거룩하게 강해진다고 합니다. 몸이 약한 사람이 꾸준히 훈련해 강해지듯 생각이 약한 사람도 올바른 생각을 훈련하면 강해집니다. 목적을 세운 사람은 그곳에 이르는 곧은길을 마음속에 그어 좌우를 돌아보지 않아야 하고, 의심과 두려움은 곧은 선을 부수는 해체의 요소이므로 엄격히 몰아내야 합니다. 의심과 두려움이 끼어들면 목적도 에너지도 힘도 사라지며, 하려는 의지는 할 수 있다는 앎에서 솟는다고 합니다. 의심과 두려움을 이긴 사람은 실패를 이긴 사람이며, 그의 목적은 때에 맞게 심겨 꽃피고 열매 맺습니다. 두려움 없이 목적과 결합한 생각은 창조의 힘이 되어, 흔들리는 생각과 오락가락하는 감각의 뭉치를 넘어서게 한다고 이 장은 끝맺습니다.
제5장 성취에 있어서 사고의 요소: 책임과 희생
사람이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은 모두 자기 생각의 직접적 결과입니다. 정의롭게 질서 지어진 우주에서는 개인의 책임이 절대적이라는 것이 근거입니다. 사람의 약함과 강함, 순수와 불순은 그 자신의 것이고, 남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며, 오직 스스로만 바꿀 수 있습니다.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이 도움받기를 바랄 때에야 도울 수 있고, 그때도 약한 이가 자기 노력으로 힘을 길러야 합니다. 앨런은 여기서 도발적인 논증을 폅니다. 사람들은 한 사람이 압제하니 많은 이가 노예가 되었다며 압제자를 미워해 왔지만, 소수는 거꾸로 많은 이가 노예이므로 한 사람이 압제자가 된다고 말하며 노예를 멸시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그는 압제자와 노예가 무지 속의 협력자이며 서로를 괴롭히는 듯하지만 실은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하고, 완전한 지식은 법칙의 작용을, 완전한 사랑은 둘 다의 괴로움을 보고 어느 쪽도 정죄하지 않으며, 약함을 이기고 이기심을 버린 사람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이라고 합니다. 구조적 억압의 문제를 개인의 마음으로 환원한다는 점은 이 책을 비판하는 이들이 흔히 짚는 지점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들어 올려야만 오르고 이기고 이룰 수 있습니다. 세속의 일에서조차 성취하려면 노예 같은 동물적 방종 위로 생각을 올려야 하며, 동물성과 이기심을 전부 버릴 필요는 없어도 일부는 반드시 희생해야 합니다. 방종이 첫째 생각인 사람은 명료하게 생각하거나 체계적으로 계획할 수 없고 숨은 자원을 찾아 키울 수 없어 모든 일에 실패한다고 합니다. 지적 성취는 지식과 아름다움과 진실을 구하는 데 바쳐진 생각의 결과이고, 영적 성취는 거룩한 열망의 완성이며, 성취는 어떤 종류든 노력의 왕관이자 생각의 보관이라고 합니다. 자제와 결단과 순수와 올바름으로 사람은 오르고, 동물성과 나태와 부패와 혼란으로 내려갑니다. 높이 오른 뒤에도 교만과 이기심과 부패한 생각이 들어오면 다시 약함과 비참으로 떨어질 수 있으므로, 올바른 생각으로 얻은 승리는 깨어 있어야만 지켜진다고 합니다. 사업, 지성, 영성 어느 영역의 성취든 같은 법칙과 같은 방법의 지배를 받고 다른 것은 목표뿐이며, 작은 것을 이루려는 이는 작게, 큰 것을 이루려는 이는 크게 희생해야 한다는 말이 장을 닫습니다.
제6장 비전과 이상: 꿈꾸는 사람들
"꿈꾸는 사람들은 세상의 구원자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보이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의해 지탱되듯 사람들은 시련과 죄와 비천한 생업을 지나면서도 고독한 몽상가들의 아름다운 비전으로 길러지고, 인류는 그들의 이상이 시들어 죽도록 두지 못한다고 합니다. 작곡가, 조각가, 화가, 시인, 예언자, 현자가 다음 세상을 만드는 건축가이며, 그들이 없으면 수고하는 인류는 멸망하리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비전을 마음에 품은 사람은 언젠가 그것을 실현하는데, 콜럼버스는 다른 세계의 비전을 품고 발견했고, 코페르니쿠스는 다수의 세계와 더 넓은 우주의 비전을 키워 드러냈으며, 부처는 티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평화의 영적 세계를 보고 그곳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장에서 가장 구체적인 이야기는 한 청년입니다. 가난과 노동에 짓눌려 건강에 나쁜 작업장에서 긴 시간을 일하고, 배우지 못하고, 세련됨도 갖추지 못한 청년이 더 나은 것을 꿈꿉니다. 지성과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더 넓은 자유라는 비전에 사로잡혀 얼마 안 되는 여가와 돈을 잠재력을 키우는 데 씁니다. 그의 마음이 달라지자 작업장은 더는 그를 붙잡지 못하고, 확장된 능력에 맞는 기회가 자라나 그는 그곳을 영영 떠납니다. 여러 해 뒤 그는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 그가 말하면 삶이 바뀌고 사람들이 그의 말에 매달려 인격을 다시 빚는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앨런은 독자에게도 마음의 비전이 실현되리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한낱 바람이 아니라 비전이고, 비천한 것이든 아름다운 것이든 둘이 섞인 것이든 자신이 은밀히 가장 사랑하는 쪽으로 기울어 가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를 지배하는 욕망만큼 작아지고 지배적 열망만큼 커진다는 말과 함께 스탠튼 커크햄 데이비스의 글을 인용합니다. 회계를 보던 사람이 문을 나서 청중 앞에 서고, 양을 치던 사람이 대가의 화실에 들어가 마침내 스승이 되며, 톱과 대패를 내려놓고 세상의 재생을 맡게 된다는 대목입니다.
뒷부분은 운에 대한 반박입니다. 어리석고 게으른 이들은 결과만 보고 행운이니 총애니 우연이니 말하지만, 그들은 성취한 이들이 스스로 마주한 시련과 실패와 희생, 꺾이지 않은 노력과 믿음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빛과 기쁨만 보고 "운"이라 하며, 긴 여정은 보지 못한 채 도착한 즐거운 곳만 보고 "행운"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사에는 노력과 결과가 있고 노력의 강도가 곧 결과의 척도이며 "우연은 없다"고 하고, 재능과 힘과 소유물은 모두 완성된 생각이자 이루어진 목표이며 실현된 비전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에서 영광스럽게 여기는 비전과 가슴에 앉힌 이상으로 삶을 짓고 그것이 곧 자신이 된다는 말로 장이 끝납니다.
제7장 평온: 생각의 키를 놓지 않기
마지막 장은 마음의 고요함이 지혜의 아름다운 보석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며 시작합니다. 평온은 오랜 인내의 자기 통제가 맺은 결실이고, 무르익은 경험의 표지이며, 생각의 법칙에 대한 남다른 앎의 증거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생각으로 진화해 온 존재로 이해하면 남도 생각의 결과로 이해하게 되고, 인과 작용에서 사물의 내적 관계가 더 분명히 보일수록 안달하고 화내고 걱정하고 슬퍼하기를 멈추고 흔들림 없이 고요해진다고 합니다.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침착한 사람은 남에게 맞추는 법도 알며 사람들은 그의 영적 힘을 존경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평정을 키울수록 성공과 영향력이 커지고, 평범한 상인도 침착해지면 장사가 번성한다고 앨런은 말합니다. 강하고 침착한 사람은 목마른 땅의 그늘나무, 폭풍 속의 피난 바위와 같다고 합니다.
그는 성난 기질로 달콤한 삶을 망치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대다수가 자제력 부족으로 삶과 행복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묻습니다. 인류는 통제되지 않은 열정으로 들끓고 다스려지지 않은 슬픔으로 요동치고 불안과 의심에 휘날리지만, 생각이 통제되고 정화된 현자만이 영혼의 바람과 폭풍을 복종시킨다고 합니다. 끝은 폭풍에 시달리는 영혼들에게 건네는 호소입니다. 인생의 바다에는 축복의 섬들이 웃고 있고 이상의 햇살 비치는 해안이 기다리고 있으니 생각의 키에서 손을 놓지 말라고 하며, 영혼의 배 안에는 명령하는 주인이 누워 자고 있을 뿐이니 그를 깨우라고 합니다. 자제는 힘이고 올바른 생각은 주도권이며 평온은 능력이라는 세 문장 뒤에 "평화, 잠잠하라!"라고 마음에게 말하라는 당부로 책은 마무리됩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서문: 스스로를 만드는 자
서문은 이 책이 무엇이 아닌지를 먼저 말합니다. 생각의 힘이라는 흔한 주제를 샅샅이 다루는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It is suggestive rather than explanatory
이 책은 설명하기보다는 암시한다.
그 암시가 향하는 진실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They themselves are makers of themselves.
그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만드는 자들이다.
옷감을 짜는 비유가 이어지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마음이 인격이라는 안쪽 옷과 환경이라는 바깥 옷을 함께 짠다면, 지금까지의 모양이 어떻든 다음 줄은 새로 짤 수 있다는 약속이 서문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2. 사람은 생각의 총합
1장의 출발점은 가장 단단한 전제입니다. 사람은 그가 하는 생각 그 자체입니다.
A man is literally what he thinks
사람은 문자 그대로 그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
행동과 감정의 결과는 이 전제 아래 비유로 정리됩니다.
Act is the blossom of thought, and joy and suffering are its fruits
행위는 생각의 꽃이고, 기쁨과 고통은 그 열매이다.
꽃과 열매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열매만 바꾸려는 사람은 늘 늦고, 씨앗 단계에서 개입하라는 것이 이 책 전체의 실천적 요지입니다.
3. 법칙에 따른 성장
앨런은 인간을 장인이 깎아 낸 물건이 아니라 자라는 존재로 봅니다.
Man is a growth by law, and not a creation by artifice
인간은 법칙에 따른 성장이지 기교로 만들어진 창조물이 아니다.
자라는 존재에게는 자라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을 정하는 것은 자신입니다. 같은 장에서 그는 파괴와 건축이 모두 같은 작업장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Man is made or unmade by himself
사람은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허물어지기도 한다.
고귀한 인격이 행운이 아니라 오래 이어 온 생각의 결과라면, 그만큼 책임도 사람에게 돌아옵니다. 책의 낙관과 엄격함이 한 문장에서 만납니다.
4. 의식하는 주인
약한 상태에서도 사람은 주인이라는 대목이 1장의 반전입니다.
Man is always the master, even in his weaker and most abandoned state
사람은 가장 약하고 버려진 상태에서도 언제나 주인이다.
다만 그때의 주인은 자기 집안을 잘못 다스리는 주인입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법칙을 찾기 시작하면 달라집니다.
he then becomes the wise master
그때 그는 지혜로운 주인이 된다.
주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의식하는 주인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구분입니다. 앨런이 요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지켜보고 그 효과를 삶에서 추적하는 일을 사소한 일상의 일에서부터 하라고 합니다.
5. 마음의 정원
2장은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비유로 열립니다.
Man's mind may be likened to a garden
사람의 마음은 정원에 비길 수 있다.
정원은 비워 둘 수 없습니다. 심지 않으면 잡초가 대신 자라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는 중립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가꾸는 이가 얻는 자각은 이렇게 적힙니다.
the master-gardener of his soul, the director of his life
자기 영혼의 정원사이자 자기 삶의 지휘자.
6. 환경은 사람을 드러낸다
환경 결정론을 뒤집는 문장이 2장 중반에 있습니다.
Circumstance does not make the man; it reveals him to himself
환경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사람을 그 자신에게 드러낼 뿐이다.
끌어당김에 대한 설명도 소원의 문제를 비켜 가지 않습니다.
Men do not attract that which they want, but that which they are.
사람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인 것을 끌어당긴다.
기도와 소원도 예외가 아닙니다.
Not what he wishes and prays for does a man get
사람이 얻는 것은 그가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뒤에 "정당하게 얻을 만한 것"이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장 끝의 시는 같은 생각을 의지의 언어로 되풀이합니다.
Can hew a way to any goal
어떤 목표에도 길을 낼 수 있다.
7. 상황만 고치려는 사람들
가난한 노동자, 탐식하는 부자, 편법을 쓰는 고용주의 세 사례는 한 가지 비판으로 모입니다.
Men are anxious to improve their circumstances, but are unwilling to improve themselves
사람들은 환경은 개선하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을 개선하려 하지는 않는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원하는 결과와 지금의 생각이 서로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앨런이 바깥에서 남의 인생을 판단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같은 장에서 정직한 사람의 고생과 부정직한 사람의 부를 두고 쉽게 결론 내리는 것을 피상적 판단이라 부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의 상태는 겉으로 보이는 삶만으로 헤아릴 수 없다는 단서가 붙어 있어서, 이 대목은 자기 성찰의 도구이지 타인을 재단하는 잣대가 아닙니다.
8. 생각에서 습관으로, 습관에서 환경으로
2장의 후반이 가장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생각은 숨길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Men imagine that thought can be kept secret, but it cannot
사람들은 생각을 비밀로 할 수 있다고 상상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 경로는 두 걸음입니다.
it rapidly crystallizes into habit, and habit solidifies into circumstance
생각은 빠르게 습관으로 결정을 이루고, 습관은 굳어 환경이 된다.
앨런의 열거는 두려움과 의심, 증오, 이기심이 낳는 환경과, 용기와 용서와 사랑이 낳는 환경을 짝지어 대비합니다. 그 중심에는 이런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A man cannot directly choose his circumstances, but he can choose his thoughts
사람은 환경을 직접 고를 수 없지만 생각은 고를 수 있다.
직접 고르는 것과 간접으로 빚는 것을 구분함으로써, 이 책은 "마음먹으면 뭐든 된다"는 말과는 다른 자리에 섭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생각이고, 환경은 그 뒤에 따라온다는 순서의 주장입니다.
9. 고통의 쓸모와 축복의 척도
앨런은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되 그 방식이 엄격합니다.
Suffering is always the effect of wrong thought in some direction.
고통은 언제나 어떤 방향에서의 그릇된 생각의 결과이다.
이 문장은 책에서 가장 단호하고 논란이 되기 쉬운 주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통을 겪는 모든 사람의 책임을 묻는 것처럼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 안에서 그 의도는 정화에 있습니다. 불순물을 태우는 것이 고통의 유일한 쓸모이고, 순수해진 이에게 고통은 그칩니다. 한편 축복의 기준은 재산이 아닙니다.
A man may be cursed and rich; he may be blessed and poor.
사람은 저주받은 부자일 수도, 축복받은 가난뱅이일 수도 있다.
부와 행복이 함께 가려면 부가 지혜롭게 쓰여야 한다는 단서가 따릅니다. 투덜대는 태도에 대한 대목도 이 연장선에 있습니다.
when he ceases to whine and revile
투덜대고 욕하기를 멈추었을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은 삶을 다스리는 숨은 정의를 찾기 시작한다고 앨런은 말합니다.
10. 몸은 마음의 종
3장의 첫 선언은 위계를 정합니다.
The body is the servant of the mind.
몸은 마음의 종이다.
건강에 관한 주장은 의학적 사실이라기보다 저자의 신념과 관찰로 읽어야 하며, 그의 비유는 시적입니다. 몸을 지키려면 마음을 지키라는 처방이 그 압축입니다.
If you would protect your body, guard your mind.
몸을 지키려거든 마음을 지켜라.
표정과 얼굴에 관한 관찰도 같은 방식입니다.
A sour face does not come by chance
시큼한 얼굴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3장의 결론은 명랑한 생각과 선의를 으뜸의 의사이자 위로자로 꼽습니다.
There is no physician like cheerful thought for dissipating the ills of the body
몸의 병을 흩어 버리는 데 명랑한 생각만 한 의사가 없다.
노년을 그리는 대목은 건강 이론보다 한 폭의 인물화처럼 읽힙니다. 아흔여섯 살의 소녀 같은 얼굴과 임종 자리의 철학자가 앨런이 직접 보았다고 하는 장면입니다.
11. 표류하는 배와 목적
4장은 방향 없는 사고에 경고를 보냅니다.
Until thought is linked with purpose there is no intelligent accomplishment.
생각이 목적과 이어지기 전에는 지적인 성취가 없다.
앨런은 목적 없이 표류하는 삶을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Aimlessness is a vice
목적 없음은 악덕이다.
그가 목적을 거창한 이상에만 한정하지 않는 점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큰 목적을 아직 붙잡지 못한 사람에게는 맡은 일을 흠 없이 해내는 데 생각을 모으라고 권합니다. 두 번째 적은 의심과 두려움입니다.
Doubt and fear are the great enemies of knowledge
의심과 두려움은 앎의 커다란 적이다.
하려는 의지와 할 수 있다는 앎을 이어 놓는 문장은 이 장의 핵심입니다.
The will to do springs from the knowledge that we can do.
하려는 의지는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앎에서 솟는다.
12. 책임과 희생
5장은 책임을 철저하게 개인에게 둡니다.
None but himself can alter his condition.
자기 자신 말고는 누구도 그의 처지를 바꿀 수 없다.
이 논리가 가장 극단으로 가는 곳은 압제자와 노예에 관한 단락입니다.
oppressor and slave are co-operators in ignorance
압제자와 노예는 무지 속의 협력자이다.
앨런이 이 단락에서 향하는 곳은 어느 쪽도 정죄하지 않는 완전한 사랑이지만, 제도와 폭력의 문제까지 마음의 상태로 설명하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같은 장은 성취의 대가를 간명하게 계산합니다.
He who would accomplish little must sacrifice little
조금 이루려는 사람은 조금 희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취에 대한 정의가 있습니다.
Achievement, of whatever kind, is the crown of effort, the diadem of thought.
어떤 종류의 성취든 노력의 왕관이며 생각의 보관이다.
13. 꿈꾸는 사람들
6장은 이 책에서 가장 서정적인 장입니다. 앨런은 예술가와 사상가를 모아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를 그들에게서 찾습니다.
The dreamers are the saviours of the world.
꿈꾸는 사람들은 세상의 구원자이다.
꿈을 현실로 옮기는 과정은 씨앗과 모종의 비유로 설명됩니다.
Dreams are the seedlings of realities.
꿈은 현실의 모종이다.
작업장의 청년 이야기는 이 비유의 확장판입니다. 환경이 먼저 바뀌어서 그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안에서 먼저 움직이니 바깥도 따라 움직입니다.
You cannot travel within and stand still without.
안에서 여행하면서 밖에서 멈춰 서 있을 수는 없다.
다만 이 단락에서도 앨런은 비전과 한낱 바람을 구분하고, 비전이 비천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은밀히 가장 사랑하는 쪽으로 기운다고 합니다.
14. 운이라는 이름
6장 후반은 성공을 운으로 돌리는 습관을 겨냥합니다. 앨런이 보기에 사람들이 운이라 부르는 것은 과정을 보지 못한 시선의 이름입니다.
They do not know the darkness and the heartaches
그들은 그 어둠과 마음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그는 노력과 결과를 일대일로 연결합니다.
the strength of the effort is the measure of the result
노력의 세기가 곧 결과의 척도이다.
그 결론은 세 단어입니다.
Chance is not.
우연은 없다.
물론 현실의 성공에는 출신과 시대 같은 요인이 작용하므로 이 주장은 책의 믿음으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도착점 뒤에 보이지 않는 여정이 있다는 지적은 어느 분야에서나 통하는 관찰입니다.
15. 평온과 생각의 키
마지막 장은 책의 목적지입니다. 성공과 권력의 이야기를 거쳐 도달하는 곳은 마음의 고요함입니다.
Calmness of mind is one of the beautiful jewels of wisdom
마음의 평온은 지혜의 아름다운 보석 가운데 하나이다.
폭풍 속에서 영혼의 배를 모는 이미지가 이어집니다.
Keep your hand firmly upon the helm of thought.
생각의 키에서 손을 굳게 놓지 말라.
책 전체의 요약은 세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Self-control is strength; Right Thought is mastery; Calmness is power.
자제는 힘이고, 올바른 생각은 주도권이며, 평온은 능력이다.
마지막 줄은 복음서에서 예수가 폭풍을 잠재우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고 알려진 명령으로 끝납니다.
Peace, be still!
평화, 잠잠하라!
성공의 도구로 시작한 생각의 훈련이 평온으로 끝난다는 점이, 이 책을 단순한 성취 지침서와 갈라놓는 부분입니다.
16. 이 책을 읽는 방법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는 서문과 일곱 장을 합쳐도 짧아서 한 번에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이라면 2장의 정원 비유와 습관이 환경으로 굳는 대목, 6장의 꿈꾸는 사람들, 7장의 평온을 먼저 읽어 보세요. 각 장이 같은 원리를 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구조라 어느 장에서든 읽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증거를 쌓는 논문이 아니라 선언과 비유로 이루어진 명상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습니다. 고통과 가난, 억압을 개인의 생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단정적이고 다른 입장에서는 반론의 여지가 있으니, 건강이나 재산에 관한 주장은 실용적 처방이 아니라 저자의 신념으로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 한편 자신의 생각을 지켜보고 목적을 세우며 평정을 기르라는 제안은 시대를 가로질러 읽히는 힘이 있습니다. 같은 문제를 다룬 『명상록』이나 『엥케이리디온』과 나란히 읽으면 서로 다른 시대의 같은 질문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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