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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2nd century AD

The Enchiridion

엥케이리디온 (편람)

에픽테토스 가르침의 요약 · 『담화록』 발췌 포함

Men are disturbed not by the things which happen, but by the opinions about the things

사람을 흔드는 것은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의견이다.

Seek not that the things which happen should happen as you wish; but wish the things which happen to be as they are, and you will have a tranquil flow of life.

일어나는 일이 네 바람대로 일어나기를 구하지 말고, 일어나는 일이 있는 그대로이기를 바라라. 그러면 네 삶은 평온하게 흐를 것이다.

한눈에 보기

우리 힘 안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고, 힘 밖의 일에는 마음을 내주지 않는 연습을 알려 주는 작은 안내서. 이 글은 그 연습을 스물일곱 가지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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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요점

The Enchiridion

에픽테토스는 서기 1세기 중반에 태어나 2세기 초까지 산 것으로 전해지는 그리스 철학자입니다. 스토아 철학을 가르친 사람 가운데 가장 실용적인 목소리를 가졌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는 소아시아 프리기아의 히에라폴리스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고, 어릴 때부터 로마에서 노예로 살았습니다. 주인은 황제 네로를 모시던 에파프로디토스였다고 전해집니다. 몸이 약하고 다리를 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젊을 때 스토아 철학자 무소니우스 루푸스의 강의를 들었고, 어느 시점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세기 말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철학자들을 로마에서 추방하자 그리스 북서부의 니코폴리스로 옮겨 학교를 열었고, 거기서 오래 가르쳤습니다.

에픽테토스는 한 줄도 직접 쓰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 아리아노스가 강의를 받아 적은 『담화록』(원래 여덟 권이었고 그중 네 권이 전해집니다)과, 그 핵심을 추려 낸 짧은 안내서 『엥케이리디온』으로 남았습니다. "엥케이리디온"은 "손에 쥐는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우리말로는 흔히 "편람"이나 "핸드북"이라 옮깁니다. 전쟁터에서 칼 옆에 차는 단검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곁에 두고 위급할 때 꺼내 쓰라는 책입니다.

이 글의 인용은 『엥케이리디온』을 중심으로 하고, 몇 군데에서 『담화록』 발췌를 함께 썼습니다. 책은 번호 붙은 짧은 장으로 되어 있어서 어디를 펼쳐도 한 가지 생각을 만납니다. 고대 노예 철학자의 말이 오늘 우리의 걱정과 얼마나 가까운지 보시면 놀라실 겁니다.

줄거리

『엥케이리디온』에는 이야기가 없고, 하나의 질문이 반복해서 변주됩니다. 지금 내가 괴로워하는 일은 내 힘 안에 있는 일인가, 밖에 있는 일인가? 이 질문에서 책의 모든 가르침이 나옵니다. 힘 안에 있는 것, 곧 나의 판단과 욕구와 행동에는 온 힘을 쏟고, 힘 밖에 있는 것, 곧 몸과 재산과 평판, 다른 사람의 행동에는 마음을 내주지 않는 훈련입니다.

책의 앞부분은 이 구분의 원리를 세우고, 가운데는 일상의 구체적인 장면, 곧 모욕과 상실, 질투와 두려움, 결심과 유혹을 다루며, 뒷부분은 철학을 하는 사람의 태도와 지속의 문제로 옮겨 갑니다. 아래 스물일곱 가지는 이 순서를 따라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내 힘 안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엥케이리디온』은 이 구분으로 문을 엽니다.

Of things some are in our power, and others are not.

어떤 것은 우리 힘 안에 있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힘 안에 있는 것은 의견, 욕구, 혐오, 그리고 한마디로 우리 자신의 행위입니다. 힘 밖에 있는 것은 이렇게 나열됩니다.

Not in our power are the body, property, reputation, offices (magisterial power), and in a word, whatever are not our own acts.

우리 힘 밖에 있는 것은 몸, 재산, 평판, 관직, 한마디로 우리 자신의 행위가 아닌 모든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힘 안의 것은 본래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지만, 힘 밖의 것은 약하고 노예 같고 남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몸조차 힘 밖에 둔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내 몸은 아프거나 다치거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흔히 "통제의 이분법"이라 불리는 이 생각이 책 전체의 뼈대입니다.

2. 남의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면 노예가 된다

같은 장은 이 구분을 틀렸을 때 생기는 일을 경고합니다. 본래 노예 같은 것을 자유로운 것으로, 남의 힘 안에 있는 것을 내 것으로 여기면 방해받고, 슬퍼하고, 마음이 어지럽고, 신과 사람을 탓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 것만 내 것으로, 남의 것을 남의 것으로 보면 어떻게 될까요?

no man will ever compel you, no man will hinder you, you will never blame any man, you will accuse no man

누구도 너를 강요하지 못하고, 누구도 너를 막지 못하며, 너는 누구도 탓하지 않고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 높은 목표가 작은 노력으로는 닿지 않는다고 덧붙입니다. 어떤 것은 완전히 내려놓고 어떤 것은 당분간 미루어야 하며, 권력과 재산도 함께 바라면 정작 자유와 행복은 얻지 못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훈련법이 하나 나옵니다. 힘든 인상이 올 때마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Straightway then practise saying to every harsh appearance: You are an appearance, and in no manner what you appear to be.

그러니 곧바로 모든 거친 인상에게 이렇게 말하는 연습을 하라. "너는 하나의 인상일 뿐, 네가 보이는 그대로의 것이 아니다."

화나는 말을 들었을 때, 불안한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이것은 인상이다"라고 한 박자 늦추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것이 내 힘 안의 일인지 따져 보면 됩니다.

3. 흔드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의견이다

제5장은 책 전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목입니다.

Men are disturbed not by the things which happen, but by the opinions about the things

사람을 흔드는 것은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의견이다.

예로 죽음을 듭니다. 죽음이 정말 끔찍한 것이라면 소크라테스에게도 그렇게 보였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끔찍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이 끔찍하다는 의견입니다. 그래서 그는 방해받고 괴롭고 슬플 때 남을 탓하지 말고 자기 의견을 살피라고 합니다.

It is the act of an ill-instructed man to blame others for his own bad condition; it is the act of one who has begun to be instructed, to lay the blame on himself; and of one whose instruction is completed, neither to blame another, nor himself.

자기 처지가 나쁜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배우지 못한 사람의 행동이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배우기 시작한 사람의 행동이며, 남도 자기도 탓하지 않는 것은 배움을 마친 사람의 행동이다.

이 세 단계는 책임에 대한 짧고 정확한 지도입니다. 지금의 나는 어느 단계에 있는지 가늠해 보게 합니다. 이 생각은 이후 인지행동치료의 선구자들이 스토아 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4. 있는 그대로를 바라라

제8장은 짧지만 책의 정서를 가장 잘 보여 줍니다.

Seek not that the things which happen should happen as you wish; but wish the things which happen to be as they are, and you will have a tranquil flow of life.

일어나는 일이 네 바람대로 일어나기를 구하지 말고, 일어나는 일이 있는 그대로이기를 바라라. 그러면 네 삶은 평온하게 흐를 것이다.

이 말은 현실에 안주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이 벌어진 뒤에는 이미 그렇게 된 것을 두고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되, 일어난 결과를 내 소원에 맞추려 애쓰는 것은 힘 밖의 일이라는 구분이 여기서도 작동합니다. 에픽테토스는 이것을 체념이 아니라 평온으로 가는 가장 현실적인 길로 가르칩니다.

5. 사랑하는 것의 본성을 먼저 기억하라

제3장은 읽는 사람에게 가장 서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If you love an earthen vessel, say it is an earthen vessel which you love; for when it has been broken you will not be disturbed.

질그릇을 사랑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것은 질그릇이라고 말하라. 그러면 그것이 깨졌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아이와 아내를 입 맞출 때도 "내가 입 맞추는 것은 사람이다"라고 되새기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죽는 존재이므로, 그들을 잃었을 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처음 읽으면 사랑을 식히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사랑을 줄이는 데 있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 영원하다는 착각을 내려놓는 데 있습니다. 소중한 것이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 오히려 지금을 더 깊이 사랑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구절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는 독자마다 다를 수 있는 대목입니다.

6. 잃은 것이 아니라 돌려준 것이다

제11장은 상실에 대한 말하기 방식을 바꾸자고 제안합니다.

Never say about anything, I have lost it, but say I have restored it.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나는 그것을 잃었다"고 말하지 말고 "그것을 돌려주었다"고 말하라.

아이가 죽었으면 돌려준 것이고, 아내가 죽었으면 돌려준 것이며, 재산을 빼앗겼다면 그것 또한 돌려준 것이라는 말입니다. 빼앗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지만, 주는 이가 누구의 손을 빌려 돌려받는지는 너와 무슨 상관이냐고 그는 되묻습니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권합니다.

So long as he may allow you, take care of it as a thing which belongs to another, as travellers do with their inn.

그것을 허락받은 동안은, 나그네가 여관을 대하듯 남의 것으로서 잘 돌보라.

여관에 머무는 동안에는 방을 깨끗이 쓰되 떠날 때가 되면 아쉬워도 내어 줍니다. 가진 것을 소중히 하면서도 내 것이 아님을 아는 이 균형이 상실을 덜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가르침입니다.

7. 장애물은 몸에 있고 의지에는 없다

제9장은 불운 속에서도 지킬 수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Disease is an impediment to the body, but not to the will, unless the will itself chooses. Lameness is an impediment to the leg, but not to the will.

병은 몸에는 장애물이지만 의지에는 장애물이 아니다. 의지가 스스로 그렇게 택하지 않는 한 그렇다. 절름발이는 다리에는 장애물이지만 의지에는 장애물이 아니다.

다리를 저는 노예였던 사람이 한 말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문장은 무게가 달라집니다. 이어지는 제10장은 이를 실천 방식으로 바꿉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자신에게로 돌아와 "이 일을 쓸모 있게 바꿀 어떤 힘이 나에게 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절제가, 고통이 오면 인내가, 모욕을 들으면 참을성이 그 힘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닥친 일은 시험이 되고, 그 시험이 덕을 연습할 기회가 됩니다.

8. 평온의 값을 치른다

제12장은 일상의 작은 일에서 평온을 훈련하라고 권합니다.

Say on the occasion, at such price is sold freedom from perturbation; at such price is sold tranquillity, but nothing is got for nothing.

그럴 때 이렇게 말하라. "이 값에 마음의 동요 없음이 팔리고, 이 값에 평온이 팔린다. 그러나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

기름이 엎질러지거나 포도주를 조금 도둑맞았을 때 하는 말입니다. 작은 손실을 평온과 맞바꾸는 거래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소소한 일에서 화를 참는 연습이 큰일에서의 평정을 만든다는 점에서 이 장은 훈련의 첫 단계를 알려 줍니다. 그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9. 인생은 잔치에서 음식이 돌아오는 것과 같다

제15장은 책에서 가장 정겨운 비유입니다.

Remember that in life you ought to behave as at a banquet.

삶에서는 잔치에서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음식이 돌려지다가 내 앞에 오면 손을 뻗어 예의 있게 적당히 덜고, 그냥 지나가면 붙잡지 않으며, 아직 오지 않았으면 욕심을 앞서 보내지 말고 차례를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아이, 아내, 관직, 재산에도 똑같이 하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신들의 잔치에 함께 앉는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되 제 몫은 당당히 받는 태도, 곧 손님의 예절을 삶에 옮긴 가르침입니다.

10. 연극에서 주어진 배역을 잘 연기하라

제17장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유명한 비유를 줍니다.

For this is your duty, to act well the part that is given to you; but to select the part, belongs to another.

네 의무는 주어진 배역을 잘 연기하는 것이다. 배역을 고르는 일은 다른 이의 몫이다.

작가가 원하는 만큼 짧은 극이면 짧게, 긴 극이면 길게, 가난한 사람의 역이든 절름발이든 관리든 일반인이든 그 역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내게 어떤 역이 주어졌는지는 힘 밖이지만 그 역을 어떻게 해내느냐는 힘 안입니다. 에픽테토스 자신이 노예라는 배역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비유는 더욱 실감이 납니다.

11.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나서지 않으면 무적이다

제19장은 역설처럼 들립니다.

You can be invincible, if you enter into no contest in which it is not in your power to conquer.

네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너는 무적일 수 있다.

그는 이어서 남이 영예를 얻거나 큰 권력을 가졌을 때 그를 행복하다고 단정하고 휩쓸리지 말라고 합니다. 좋은 것의 본성이 우리 힘 안에 있다면 질투와 시기는 설 자리가 없고, 네가 되고 싶은 것은 장군이나 집정관이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남이 가진 것에 마음이 흔들릴 때, 그것이 내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영역인지를 물어보라는 말입니다.

12. 모욕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나의 해석이다

제20장은 모욕 앞에서의 처방입니다.

Remember that it is not he who reviles you or strikes you, who insults you, but it is your opinion about these things as being insulting.

너를 욕하거나 때리는 사람이 너를 모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욕이라고 보는 너의 의견이 모욕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누가 나를 화나게 한다면 그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의견이 나를 화나게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인상에 휩쓸리지 않도록 애쓰라고 그는 권합니다. 구체적인 요령도 줍니다.

For if you once gain time and delay, you will more easily master yourself.

일단 시간을 벌고 지체하면, 너는 더 쉽게 너 자신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화가 올라올 때 즉시 반응하지 않고 한 박자를 늦추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한 줄은 지금 읽어도 곧바로 써먹을 수 있는 처방입니다. 이 대목은 더 직설적으로 묻습니다. 만약 누가 네 몸을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내어 준다면 너는 화를 낼 텐데, 네 이해를 아무나 욕하면 흔들리도록 내어 주는 것은 부끄럽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13. 죽음과 추방을 날마다 눈앞에 두라

스토아 철학이 흔히 죽음을 기억하라고 가르친다고 하지만, 에픽테토스의 표현은 의외로 실용적입니다.

Let death and exile and every other thing which appears dreadful be daily before your eyes; but most of all death: and you will never think of anything mean nor will you desire anything extravagantly.

죽음과 추방과 그 밖의 두려워 보이는 모든 것을 날마다 눈앞에 두라. 특히 죽음을 그렇게 하라. 그러면 너는 결코 비열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무엇이든 지나치게 바라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목적은 우울해지는 데 있지 않고, 하찮은 욕심과 비열한 계산을 덜어 내는 데 있습니다. 어차피 사라질 것을 쥐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본 스피노자가 "자유인은 죽음을 가장 덜 생각한다"고 말한 것과 대조해서 읽으면 같은 문제를 두 철학자가 다르게 푸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14.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될까 두려워하지 말라

제24장은 사회적 인정에 대한 두려움을 다룹니다. "나는 존경받지 못하고 어디서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살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And how will you be nobody nowhere, when you ought to be somebody in those things only which are in your power, in which indeed it is permitted to you to be a man of the greatest worth?

너는 네 힘 안에 있는 것에서만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아무 데서도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겠는가? 거기서는 가장 값진 사람이 되는 것이 너에게 허락되어 있다.

친구들이 돈을 달라 하고 나라가 도움을 바랄 때 어떻게 하느냐는 반문에도 그는 답합니다. 나라에 목욕탕이나 회랑을 지어 주지는 못해도, 신의 있고 겸손한 시민 한 사람을 더하는 것이 나라에 쓸모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it is enough if every man fully discharges the work that is his own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 속한 일을 충실히 해내면 충분하다.

인정받는 자리와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일은 다르다는 이 구분은, 사회적 성취에 쫓기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기준이 됩니다.

15. 상추 한 단의 값

제25장은 남이 나보다 대접받을 때의 쓰라림을 풀어 줍니다. 잔치에서 누군가 나보다 높은 자리를 받았다면, 그는 그 자리의 값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문 앞에 찾아가고, 따라다니고, 칭찬하는 값입니다.

Well, what is the price of lettuces? An obolus perhaps.

그렇다면 상추의 값은 얼마인가? 아마 1오볼로스쯤일 것이다.

상추를 산 사람은 상추를 얻고, 돈을 내지 않은 사람은 돈을 가진다는 계산입니다. 그러니 그 값을 치르지 않고 같은 것을 바란다면 욕심이 지나친 것입니다. 대신 나에게는 아첨하지 않은 마음, 그 사람이 방에 들어올 때 참아 주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남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정과 보상에는 값이 있고, 그 값을 치를지 말지가 내가 선택할 부분이라는 냉정하고 시원한 시각입니다.

16. 남의 컵이 깨졌을 때처럼

제26장은 감정의 이중잣대를 일깨웁니다.

when your neighbor's slave has broken his cup, or anything else, we are ready to say forthwith, that it is one of the things which happen.

이웃의 노예가 컵이나 무언가를 깼을 때, 우리는 곧바로 "그런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네 컵이 깨졌을 때도 이웃의 컵이 깨졌을 때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 반성을 더 큰 일에도 옮기라고 합니다. 남의 아이나 아내가 죽으면 누구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자기 일이 되면 "아, 나는 얼마나 불행한가"라고 외친다는 것입니다. 남의 일에는 침착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내 일로 가져오는 연습입니다.

17. 시작하기 전에 뒤따르는 것을 헤아려라

이 대목은 결심의 현실성을 따집니다. 올림픽에서 이기고 싶다는 바람은 근사하지만, 그에 앞서 따르는 것과 뒤따르는 것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observe both the things which come first, and the things which follow; and then begin the act.

먼저 오는 것과 뒤따르는 것을 모두 살핀 다음에 그 일을 시작하라.

엄격한 식사와 훈련, 더위와 추위, 접질린 발목, 먹은 먼지, 매질, 그리고 패배까지 이 모든 것을 따져 본 뒤에도 하겠다면 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처럼 이번엔 씨름꾼, 다음엔 피리 부는 사람, 그다음엔 검투사 흉내를 내다가 온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무엇이든 되고 싶다는 열망 앞에서 값과 대가를 먼저 따져 보게 하는 현실적인 충고입니다.

18. 모든 일에는 두 개의 손잡이가 있다

이 대목은 짧고 기억하기 쉬운 비유로 사람 사이의 갈등을 다룹니다.

Everything has two handles, the one by which it may be borne, the other by which it may not.

모든 것에는 두 개의 손잡이가 있다. 하나는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손잡이이고, 다른 하나는 견딜 수 없는 손잡이이다.

형제가 부당하게 행동했다면 그가 부당하게 구는 쪽 손잡이를 잡지 말고, 그가 나와 함께 자란 형제라는 쪽 손잡이를 잡으라는 것입니다. 같은 일도 어느 면에서 잡느냐에 따라 견딜 만해지기도, 견딜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이 대목은 의무를 관계에서 찾습니다. 아버지가 나쁘더라도 내가 맺은 관계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이고, 상대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내 의지를 자연스럽게 지키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19. 쾌락에는 시간을 두라

이 대목은 유혹 앞의 구체적인 기술입니다.

let the thing wait for you, and allow yourself a certain delay on your own part.

그것이 너를 기다리게 하고, 너 자신에게 얼마간의 지체를 허락하라.

쾌락의 인상을 받았을 때 휩쓸리지 말고 두 시간을 함께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즐기는 시간과, 즐기고 난 뒤 후회하며 자신을 책망하게 될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놓습니다. 그것을 삼갔을 때 얼마나 기쁘고 스스로를 칭찬하게 될지를 말입니다. 충동 앞에서 한 박자를 늦추고 미래의 나에게 물어보게 하는 이 처방은 분노 앞의 처방과 같은 원리입니다.

20. 옳은 일은 남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용기에 관한 단순한 규칙입니다.

When you have decided that a thing ought to be done, and are doing it, never avoid being seen doing it, though the many shall form an unfavorable opinion about it.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그것을 하고 있다면, 많은 사람이 그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더라도 그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피하지 말라.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일이 옳지 않다면 하지 않으면 되고, 옳다면 잘못 비난하는 사람들을 왜 두려워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론이 두려워 옳은 일을 숨기는 일이 흔한 만큼, 이 문장은 자주 되새길 가치가 있습니다.

21. 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이 대목은 나를 해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remember that he does this or says this because he thinks that it is his duty.

그가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임을 기억하라.

그는 자기가 옳다고 보이는 것을 따르지 네가 옳다고 보는 것을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틀렸다면 상처 입는 쪽은 속은 그 사람입니다. 그러니 욕하는 사람에게 온화할 수 있고, 매번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It seemed so to him.

그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상대를 용서하라는 도덕적 요구라기보다 그의 입장에서 왜 그런지를 이해하라는 요구입니다. 이 말은 앞의 논리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며, 갈등 속에서 자신의 화를 식히는 데 가장 쓸모 있는 한마디가 될 수 있습니다.

22.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아니다

이 대목은 비교의 오류를 짚습니다.

I am richer than you, therefore my possessions are greater than yours; I am more eloquent than you, therefore my speech is superior to yours. But you are neither possession nor speech.

"내가 너보다 부자이니 내 재산이 너보다 크다." "내가 너보다 말을 잘하니 내 말이 너보다 낫다." 그러나 너는 재산도 말도 아니다.

"나는 너보다 부자이니 너보다 낫다"는 추론은 맞지 않고, 맞는 것은 "내 재산이 더 많다"까지라는 것입니다. 재산이나 말솜씨는 내가 가진 것이지 내가 아닙니다. 비교로 자존심을 세우거나 꺾이는 일이 흔한 오늘, 이 구분은 마음을 가볍게 해 주는 논리입니다.

23. 말하지 말고 소화해서 보여 주라

이 대목은 철학을 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이론을 떠들지 말고 그 이론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at a banquet do not say how a man ought to eat, but eat as you ought to eat.

잔치에서 사람이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말하지 말고, 먹어야 하는 대로 먹어라.

그는 양의 비유로 이를 마무리합니다.

even sheep do not vomit up their grass and show to the shepherds how much they have eaten; but when they have internally digested the pasture, they produce externally wool and milk.

양도 먹은 풀을 토해서 목동에게 얼마나 먹었는지 보여 주지 않는다. 속에서 풀을 소화한 뒤에 밖으로 털과 젖을 내놓는다.

그러니 배운 이론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늘어놓지 말고, 소화에서 나온 행동을 보여 주라는 말입니다. 누가 너에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화나지 않는다면 철학이 시작된 것이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을 때 한 번 더 떠올릴 만한 구절입니다.

24. 발전하는 사람의 표지

이 대목은 진짜 배우는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를 목록으로 줍니다. 배우지 않은 사람은 이익과 해를 바깥에서 기대하고, 철학하는 사람은 그것을 자기 안에서 기대합니다. 발전하는 사람의 표지는 이렇습니다.

he censures no man, he praises no man, he blames no man, he accuses no man, he says nothing about himself as if he were somebody or knew something

그는 누구도 꾸짖지 않고, 누구도 칭찬하지 않고, 누구도 탓하지 않고, 누구도 고발하지 않으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거나 무언가를 아는 것처럼 자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방해를 받으면 자기를 탓하고, 칭찬받으면 속으로 칭찬하는 사람을 비웃고, 비난받아도 변명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맺습니다. 자신을 적처럼 매복해서 지켜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목록은 남이 아니라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공부가 어떤 모습인지를 한눈에 보여 줍니다.

25. 지금이 시합이고 올림픽이다

이 대목은 미루는 습관을 향한 가장 날카로운 일침입니다.

You are no longer a youth, but already a full-grown man.

너는 더 이상 청년이 아니라 이미 다 자란 어른이다.

게으르고 느슨하게 계속 결심을 미루고 날짜를 정하며 살다 보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 있는 동안도 죽는 날까지도 배우지 못한 사람으로 남는다고 그는 경고합니다. 그리고 지금을 이렇게 규정합니다.

now is the contest, now are the Olympic games, and they cannot be deferred

지금이 시합이고, 지금이 올림픽 경기이며, 그것은 미룰 수 없다.

한 번 지고 한 번 물러서는 데 진전이 지켜지느냐 잃느냐가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아직 소크라테스는 아니더라도 소크라테스가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 그의 요구입니다.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오늘 바로 시작하겠다는 결단이라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26. 묶을 수 있는 것은 다리뿐이다

『담화록』 발췌에는 이 철학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주는 대화가 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상상의 대화를 시킵니다. 나는 죽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탄하며 죽어야 하는가? 나는 사슬에 묶여야 한다. 그렇다면 그때도 탄식해야 하는가? 추방되어야 한다면 웃으며 만족하며 떠날 수는 없는가?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You may fetter my leg, but my will not even Zeus himself can overpower.

너는 내 다리를 사슬로 묶을 수 있지만, 내 의지는 제우스 자신도 이겨 낼 수 없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응수합니다. 감옥에 가두겠다면 가두는 것은 내 불쌍한 몸이고, 목을 베겠다면 내 머리만은 베어질 수 없다고 내가 언제 말했느냐고 합니다. 그가 예로 드는 아그리피누스는 자신이 상원에서 재판받는다는 소식에 "잘되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운동하고 찬물에 목욕할 시간"이라고 말하고 운동을 한 뒤, 추방형이 선고되었다는 말에는 재산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고 나서 "그러면 아리키아에 가서 식사나 하자"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철학이 고통을 없애지는 못해도 고통 앞에서 무엇을 지킬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27. 기꺼이 따르는 사람은 지혜롭다

『엥케이리디온』은 두 개의 인용구로 끝납니다. 첫째는 스토아 철학의 선구자 클레안테스의 시입니다.

Lead me, O Zeus, and thou O Destiny, The way that I am bid by you to go: To follow I am ready. If I choose not, I make myself a wretch, and still must follow.

제우스여, 운명이여, 나를 이끄소서. 당신들이 가라 하는 길로. 나는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내가 따르지 않기를 택하면 나는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고, 그래도 여전히 따라야 합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기꺼이 가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에서 한 말로 알려진 문장입니다.

Anytus and Melitus are able indeed to kill me, but they cannot harm me.

아니토스와 멜레토스는 나를 죽일 수는 있지만, 나를 해칠 수는 없다.

죽이는 일과 해치는 일을 가르는 이 말이 책의 결론입니다. 몸은 해칠 수 있어도 나의 의지와 품성은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해칠 수 없다는 믿음입니다. 책 전체의 가르침이 한 장면으로 모이는 셈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엥케이리디온』은 한 번에 읽고 끝내는 책이 아니라, 곁에 두고 한 장씩 다시 읽는 책입니다. 하루에 한두 장만 읽고 그날 마주친 일에 대어 보는 방식이 가장 잘 맞습니다. 제1장, 제5장, 제8장, 제15장, 제17장, 제20장을 먼저 읽으면 핵심이 모두 잡힙니다. 더 깊이 읽고 싶다면 『담화록』을 이어서 읽어 보세요. 『엥케이리디온』이 요점이라면 『담화록』은 그 요점이 대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이 책에는 시대의 흔적도 있습니다. 노예와 주인, 여성에 대한 서술에는 고대 사회의 관점이 담겨 있고, 오늘의 눈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또 힘 밖의 일에 마음을 내주지 말라는 가르침이 부당한 일에 대한 저항이나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을 막는 것은 아닌지 묻는 독자도 있습니다. 에픽테토스 자신이 노예의 몸으로 이 가르침을 말했다는 사실을 함께 놓고 읽으면, 그가 말하려 한 것이 포기가 아니라 어떤 처지에서도 지킬 수 있는 마음의 자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읽으며 동의하는 부분과 의문이 드는 부분을 나누어 보는 것도 이 책을 잘 읽는 방법입니다.

ReadGem 앱에서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을 한 문장씩 나란히 읽어 보세요. 영어 청취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