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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5th–3rd century BC

The Analects of Confucius

논어

공자와 제자들의 말을 모은 책

己所不欲,勿施於人。

(기소불욕, 물시어인.)

What you do not want done to yourself, do not do to others.

네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Learning without thought is labour lost; thought without learning is perilous.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헛수고이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한눈에 보기

배움과 사람됨, 효와 예, 정치와 신뢰를 짧은 대화로 말하는 고전. 이천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동아시아의 일상어에 살아 있는 공자(孔子)의 말을 서른 가지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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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요점

The Analects of Confucius

『논어(論語)』는 공자(기원전 551~479)와 그 제자들의 말과 행동을 모은 책입니다. 공자는 춘추 시대 노나라에서 태어나 한때 관직에 있었고, 나중에는 여러 나라를 떠돌며 자신의 도를 받아줄 군주를 찾았으나 끝내 뜻을 펴지 못하고 제자를 가르치며 말년을 보냈다고 전해집니다. 『논어』는 공자가 직접 쓴 책이 아니라 제자들과 그 제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기록하고 엮은 것입니다. 모두 스무 편으로 이루어져 있고, 짧은 대화와 한두 줄의 말이 이어집니다. 현재의 모습은 한나라 때 정리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12세기에 주희가 『대학』, 『중용』, 『맹자』와 함께 "사서"로 묶으면서 『논어』는 동아시아 교육의 기본 교재가 되었습니다.

『논어』의 매력은 설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자는 자신을 "전하는 사람일 뿐 짓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질문하는 제자에 따라 같은 주제에도 다르게 대답합니다. 효에 대해 묻는 네 사람이 네 가지 답을 듣고, 인에 대해 묻는 사람마다 다른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 한 스승의 대화 방식을 보여 줍니다. 한국어 독자에게는 "학이시습지", "삼십이립", "지천명(天命)" 같은 말이 이미 일상어가 되었을 만큼 가까운 책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 가운데 서른 가지 대목을 골라 편의 순서를 따라 읽습니다. 『논어』의 말은 짧아서 맥락 없이 인용되기 쉽고, 그래서 오해도 많습니다. 신분 질서나 여성에 대한 말처럼 오늘의 눈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이 글은 그런 부분을 숨기지 않고, 『논어』가 던지는 질문이 어디서 지금도 살아 있는지를 보여 주려 합니다.

줄거리

『논어』에는 줄거리가 없고 하나의 인물상이 있습니다. 배우기를 즐기고, 나이 들수록 자신을 점검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친구를 가려 사귀며, 군자(君子)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제1~2편은 배움과 효를, 제3~5편은 예와 인과 사람 평가를, 중간 편들은 공자의 일상과 제자들의 대화를, 제12~15편은 인과 정치와 도덕적 용기를, 마지막 편들은 벗과 본성,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래는 이 순서를 따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배우고 익히는 기쁨

『논어』는 세 개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

Is it not pleasant to learn with a constant perseverance and application? Is it not delightful to have friends coming from distant quarters? Is he not a man of complete virtue, who feels no discomposure though men may take no note of him?

끊임없이 열심히 배우는 것이 즐겁지 않은가?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는 것이 기쁘지 않은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완전한 덕을 갖춘 사람이 아닌가?

배움의 기쁨, 벗과의 만남, 인정받지 못해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한 묶음으로 나옵니다. 배움이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말, 그리고 그 즐거움이 외로움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 문장이 가장 어렵습니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불쾌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배움의 보상을 바깥의 평가에 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짧은 첫머리가 이천오백 년 동안 읽혀 온 이유를 보여 줍니다.

2. 매일 세 가지로 나를 살핀다

제자 증자(曾子)는 하루를 이렇게 되돌아보았다고 합니다.

吾日三省吾身:爲人謀而不忠乎?與朋友交而不信乎?傳不習乎?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I daily examine myself on three points:-- whether, in transacting business for others, I may have been not faithful;-- whether, in intercourse with friends, I may have been not sincere;-- whether I may have not mastered and practised the instructions of my teacher.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 자신을 살핀다. 남을 위해 일을 꾀하면서 성실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벗과 사귀면서 진실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스승께 배운 것을 익히고 실천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일, 관계, 배움이라는 삶의 세 영역을 점검하는 질문입니다. 앞서 읽은 피타고라스 전승의 저녁 성찰과도 닮은 이 습관은, 반성을 막연한 후회가 아니라 구체적인 질문으로 만드는 방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공자 자신의 말은 인정에 대한 이런 태도를 가르칩니다.

不患人之不己知,患不知人也。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I will not be afflicted at men's not knowing me; I will be afflicted that I do not know men.

나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겠다.

인정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족함으로 돌려 놓는 이 문장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는 우리에게 방향을 바꾸어 줍니다.

3. 덕으로 이끌면 부끄러움을 안다

정치에 관한 공자의 첫 마디는 북극성의 비유입니다.

爲政以德,譬如北辰,居其所,而眾星共之。
(위정이덕, 비여북진, 거기소, 이중성공지.)

He who exercises government by means of his virtue may be compared to the north polar star, which keeps its place and all the stars turn towards it.

덕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은 북극성에 견줄 수 있다. 북극성은 제자리에 있고 뭇별이 그 둘레를 돈다.

그리고 법과 덕의 차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道之以政,齊之以刑,民免而無恥;道之以德,齊之以禮,有恥且格。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If the people be led by laws, and uniformity sought to be given them by punishments, they will try to avoid the punishment, but have no sense of shame. If they be led by virtue, and uniformity sought to be given them by the rules of propriety, they will have the sense of shame, and moreover will become good.

백성을 법으로 이끌고 형벌로 가지런히 하려 하면 백성은 형벌을 피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른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을 알고 또 선해진다.

형벌의 두려움은 행동을 막을 뿐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는 통찰입니다. 이 구절은 법치와 덕치의 대립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법이 필요 없다는 말이라기보다 법만으로는 사람의 품성을 만들 수 없다는 말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규칙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조직과 사회에 오늘도 던질 만한 질문입니다.

4. 열다섯에서 일흔까지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자기소개입니다.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

At fifteen, I had my mind bent on learning. At thirty, I stood firm. At forty, I had no doubts. At fifty, I knew the decrees of Heaven. At sixty, my ear was an obedient organ for the reception of truth. At seventy, I could follow what my heart desired, without transgressing what was right.

열다섯에 나는 배움에 뜻을 두었다. 서른에 섰다. 마흔에 의혹이 없었다. 쉰에 하늘의 명을 알았다. 예순에 귀가 순해져 진리를 받아들였다.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옳은 것을 넘지 않았다.

삶을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평생의 배움으로 말하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공자는 열다섯에 시작했고 일흔에야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중간에 "의혹이 없다"와 "하늘의 명을 안다"가 마흔과 쉰에 놓이는 것은, 이 앎이 나이와 경험을 거쳐야 오는 것이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의혹이 많은 사람에게는 위로로, 일흔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는 목표로 읽힙니다.

5. 배움과 생각,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배움의 방법에 대한 가장 짧은 문장은 이것입니다.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Learning without thought is labour lost; thought without learning is perilous.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헛수고이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남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일과 스스로 곱씹는 일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앎의 태도를 가르친 유명한 대목이 있습니다.

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

When you know a thing, to hold that you know it; and when you do not know a thing, to allow that you do not know it;-- this is knowledge.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 이것이 앎이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과 닮은 이 문장은 제자 자로(子路)에게 한 말이라고 전해집니다. 용감하지만 아는 척하기 쉬운 제자에게 건넨 교훈이라는 맥락을 알면 더 구체적으로 읽힙니다. 한편 공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If a man keeps cherishing his old knowledge, so as continually to be acquiring new, he may be a teacher of others.

옛것을 품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새것을 얻는 사람은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온고지신"이라는 사자성어의 바탕이 된 문장입니다. 과거를 소중히 하되 새로움을 향해 열려 있으라는 말입니다.

6. 옳은 줄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

위정편의 마지막 문장은 짧고 날카롭습니다.

見義不爲,無勇也。
(견의불위, 무용야.)

To see what is right and not to do it is want of courage.

옳은 것을 보고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도덕적 앎과 행동 사이의 틈을 정확히 짚은 말입니다. 문제는 모르는 데 있지 않고 알면서 움직이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 앞에는 "자기가 모실 귀신이 아닌 것에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합쳐 읽으면, 제자리에 맞지 않는 의례를 아첨으로 하는 것과 마땅히 할 일을 겁이 나서 못 하는 것, 두 가지가 모두 용기의 실패라는 말입니다.

7. 효는 공경이다

『논어』에는 효에 대한 대답이 여럿 나옵니다. 질문하는 사람마다 약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유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今之孝者,是謂能養。至於犬馬,皆能有養。不敬,何以別乎?
(금지효자, 시위능양. 지어견마, 개능유양. 불경, 하이별호?)

The filial piety of now-a-days means the support of one's parents. But dogs and horses likewise are able to do something in the way of support;-- without reverence, what is there to distinguish the one support given from the other?

요즘의 효는 부모를 부양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개와 말도 부양을 받는다. 공경이 없다면 둘을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돌봄에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짐승을 먹이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날카로운 말입니다. 다른 제자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려운 것은 안색이라는 것입니다. 일을 대신하고 음식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효가 되지 않고, 부모를 대하는 표정과 태도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효가 의무의 이행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점을 되풀이해 말합니다. 한편 공자는 부모의 잘못 앞에서 순종만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인편에는 부모에게 부드럽게 간하되, 따르지 않으시면 더 공경하면서도 뜻을 접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8. 인이 없으면 예가 무슨 소용인가

팔일편은 예에 관한 논의입니다. 공자는 예가 형식에 머무는 것을 경계합니다.

人而不仁,如禮何?人而不仁,如樂何?
(인이불인, 여례하? 인이불인, 여악하?)

If a man be without the virtues proper to humanity, what has he to do with the rites of propriety? If a man be without the virtues proper to humanity, what has he to do with music?

사람에게 인간다운 덕이 없다면 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에게 인간다운 덕이 없다면 음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예의 근본을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합니다. 의례에서는 사치스러운 것보다 검소한 편이 낫고, 상례에서는 절차를 세세히 따지는 것보다 깊이 슬퍼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형식과 내용 가운데 어느 쪽이 근본인지를 분명히 하는 말입니다. 공자가 예를 중시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 대목들은 예가 마음 없이는 비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9. 아침에 도를 들으면

이인편은 짧고 강한 말이 이어지는 편입니다.

朝聞道,夕死可矣!
(조문도, 석사가의!)

If a man in the morning hear the right way, he may die in the evening without regret.

아침에 바른 길을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후회가 없다.

삶을 건 구도의 열정을 보여 주는 문장으로 가장 자주 인용됩니다. 도를 듣는 일이 그만큼 값지다는 뜻이지만, 반대로 읽으면 도를 듣지 못한 채 살다 죽는 일이 얼마나 아쉬운가를 말하기도 합니다. 같은 편에는 군자와 소인(小人)을 가르는 간결한 대비가 있습니다.

君子喻於義,小人喻於利。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

The mind of the superior man is conversant with righteousness; the mind of the mean man is conversant with gain.

군자의 마음은 의로움에 밝고, 소인의 마음은 이익에 밝다.

이 말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무엇을 먼저 따지느냐의 순서를 묻는 말입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이로운가"를 먼저 묻는지, "옳은가"를 먼저 묻는지가 마음의 방향을 보여 준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10. 자리를 걱정하지 말고 자격을 걱정하라

이인편의 또 다른 문장은 인정받는 일에 대한 태도를 가르칩니다.

不患無位,患所以立。不患莫己知,未爲可知也。
(불환무위, 환소이립. 불환막기지, 미위가지야.)

A man should say, I am not concerned that I have no place, I am concerned how I may fit myself for one. I am not concerned that I am not known, I seek to be worthy to be known.

사람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자리가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어떻게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될지를 걱정한다. 알려지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알려질 만한 사람이 되기를 구한다.

학이편의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라"를 한 걸음 더 구체화한 말입니다. 기회가 없다는 불평 앞에서 준비의 문제로 방향을 돌리는 문장입니다. 이어서 공자는 말과 행동의 관계도 간결하게 짚습니다.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군자욕눌어언이민어행.)

The superior man wishes to be slow in his speech and earnest in his conduct.

군자는 말은 더디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 한다.

옛사람이 말을 쉽게 꺼내지 않은 까닭은 행동이 말에 못 미칠까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함께 나옵니다. 그리고 따뜻한 한 문장이 이어집니다. "덕은 외롭지 않아서 반드시 이웃이 있다."

11. 하나로 꿰는 길

이인편에는 공자의 가르침 전체를 한 줄로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參乎!吾道一以貫之。
(삼호! 오도일이관지.)

Shan, my doctrine is that of an all-pervading unity.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모든 것을 꿰는 것이다.

증자는 "그렇습니다"라고 답했을 뿐 설명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나가자 다른 제자들이 무슨 뜻인지 묻고, 증자가 풀이합니다.

夫子之道,忠恕而已矣!
(부자지도, 충서이이의!)

The doctrine of our master is to be true to the principles of our nature and the benevolent exercise of them to others,-- this and nothing more.

선생님의 도는 자기 본성의 원칙에 충실하고 그것을 남에게 어질게 베푸는 것, 이뿐이다.

흔히 "충과 서"로 요약되는 대목입니다. 안으로는 성실하고 밖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두 가지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스승의 뜻인지는 증자의 해석이라는 점에서 열려 있지만, 『논어』를 하나의 실로 꿰는 열쇠로 오래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12. 말만 듣던 때와 행동을 보는 지금

공야장편에서 공자는 낮잠을 자는 제자 재여를 꾸짖으며 이런 반성을 합니다.

始吾於人也,聽其言而信其行;今吾於人也,聽其言而觀其行
(시오어인야, 청기언이신기행; 금오어인야, 청기언이관기행)

At first, my way with men was to hear their words, and give them credit for their conduct. Now my way is to hear their words, and look at their conduct.

처음에 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 행동도 그러하리라 믿었다. 이제 나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동을 본다.

꾸짖는 말은 "썩은 나무는 새길 수 없고 더러운 흙담은 흙손질할 수 없다"는 심한 표현이었지만, 곧바로 자신의 태도가 재여에게서 바뀌었다고 인정합니다. 같은 편에서 자공(子貢)은 "내가 남에게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라고 말하고, 공자는 "자공아, 그것은 네가 아직 미치지 못하는 일이다"라고 답합니다. 쉽게 말하는 이상일수록 실천은 어렵다는 점을 스승이 일깨우는 장면입니다.

13. 누추한 골목의 안회

제자 중 가장 사랑받은 안회(顏回)에 대한 평가가 옹야편에 있습니다.

賢哉回也!一簞食,一瓢飮,在陋巷,人不堪其憂,回也不改其樂。
(현재회야! 일단사, 일표음, 재루항, 인불감기우, 회야불개기락.)

Admirable indeed was the virtue of Hui! With a single bamboo dish of rice, a single gourd dish of drink, and living in his mean narrow lane, while others could not have endured the distress, he did not allow his joy to be affected by it.

훌륭하구나, 안회의 덕이여! 대바구니 밥 한 그릇과 표주박 물 한 모금으로 누추한 골목에 살면서, 남들은 그 곤궁을 견디지 못할 텐데 그는 자기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다.

가난 속의 즐거움은 『논어』의 오래된 주제입니다. 이 즐거움은 가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의 근거가 바깥 조건에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공자는 안회가 남달리 일찍 세상을 떠난 뒤 하늘이 자신을 망하게 했다고 통곡했다고 전해집니다. 같은 편에는 배움의 단계에 대한 말도 있습니다.

知之者,不如好之者,好之者,不如樂之者。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They who know the truth are not equal to those who love it, and they who love it are not equal to those who delight in it.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앎에서 호감으로, 호감에서 즐거움으로 올라가는 이 사다리는 배움이 의무에서 즐거움으로 바뀔 때 가장 깊어진다는 말로 읽힙니다.

14. 사람의 일을 하며 귀신은 멀리하라

번지가 지혜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務民之義,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To give one's self earnestly to the duties due to men, and, while respecting spiritual beings, to keep aloof from them, may be called wisdom.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을 지혜라 할 수 있다.

선진편에서는 제자 자로가 귀신 섬기는 법을 묻자 더 분명히 말합니다.

未能事人,焉能事鬼?
(미능사인, 언능사귀?)

While you are not able to serve men, how can you serve their spirits?

사람을 섬기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

자로가 이어서 죽음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未知生,焉知死?
(미지생, 언지사?)

While you do not know life, how can you know about death?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

이 대답은 공자가 종교를 부정했다는 뜻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말한 것입니다. 지금 이 삶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일이 먼저라는 인본적인 태도입니다. 술이편에는 공자가 말하지 않은 주제들도 적혀 있습니다. 괴이한 일, 힘자랑, 어지러움, 귀신입니다. 죽음 이후의 문제에는 침묵하고 현재의 삶에 집중한 것이 『논어』의 특징이고, 이 점이 이후 동아시아 철학의 방향을 결정지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15. 전하되 짓지 않는다

술이편은 공자가 자신을 스스로 소개하는 대목으로 시작합니다.

述而不作,信而好古,竊比於我老彭。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

A transmitter and not a maker, believing in and loving the ancients, I venture to compare myself with our old P'ang.

나는 전하는 사람이지 짓는 사람이 아니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여 감히 우리의 늙은 팽조에 견주어 본다.

겸손으로 들리는 이 말은 동시에 옛 전통에 대한 깊은 존중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공자는 옛것을 그대로 반복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전하는 일에서 자신의 몫을 찾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같은 편에 이런 말도 있습니다. "나는 날 때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애써 구한 사람이다." 천재가 아니라 배움으로 이룬 사람이라는 자기 인식입니다.

16. 가르침의 방식

공자의 교육 방법은 몇 문장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먼저 배우는 사람의 태도를 요구합니다.

不憤不啟;不悱不發。擧一隅,不以三隅反,則不復也。
(불분불계; 불비불발. 거일우, 불이삼우반, 즉불부야.)

I do not open up the truth to one who is not eager to get knowledge, nor help out any one who is not anxious to explain himself. When I have presented one corner of a subject to any one, and he cannot from it learn the other three, I do not repeat my lesson.

알고자 애태우지 않는 사람에게는 열어 주지 않고, 말하려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말을 보태 주지 않는다. 한 모서리를 들어 주었는데 나머지 세 모서리로 미루어 알지 못하면 되풀이하지 않는다.

스스로 부딪쳐 보지 않는 사람에게 답을 주어도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이 엄격함과 함께 공자는 누구에게나 문을 열었습니다. 위령공편의 한 문장이 이를 보여 줍니다.

有教無類。
(유교무류.)

In teaching there should be no distinction of classes.

가르침에는 신분의 구별이 없어야 한다.

술이편에는 최소한의 예물만 가져와도 가르침을 거절한 일이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귀족 중심이던 교육을 일반 사람에게 열었다는 점은 공자의 역사적 의의로 자주 꼽힙니다. 다만 이 말이 오늘의 평등 개념과 같은지, 어디까지 실천되었는지는 학자들이 다르게 평가합니다.

17. 거친 밥과 뜬구름

술이편에는 공자의 마음가짐이 가장 소박하게 드러난 한 구절이 있습니다.

飯疏食,飮水,曲肱而枕之,樂亦在其中矣。不義而富且貴,於我如浮雲。
(반소사, 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With coarse rice to eat, with water to drink, and my bended arm for a pillow;-- I have still joy in the midst of these things. Riches and honours acquired by unrighteousness, are to me as a floating cloud.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베고 누워도 즐거움은 그 가운데 있다. 의롭지 않게 얻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부귀를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의롭지 못하게 얻은 부귀를 부정하는 말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인편에는 부귀는 누구나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얻어서는 안 된다는 대목이 따로 있습니다. 가난과 부귀 모두 정당한 방법으로 얻거나 벗어나야 한다는 균형 있는 태도입니다.

18. 세 사람이 걸으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

배움의 대상을 넓게 보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三人行,必有我師焉。擇其善者而從之,其不善者而改之。
(삼인행, 필유아사언.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When I walk along with two others, they may serve me as my teachers. I will select their good qualities and follow them, their bad qualities and avoid them.

내가 두 사람과 함께 걸으면 그들은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좋은 점을 골라 따르고, 나쁜 점은 보고 고친다.

좋은 사람에게서는 본받고, 나쁜 사람에게서는 반면교사로 삼는다는 이중의 배움입니다. 이인편에는 같은 생각이 이렇게 나옵니다. 어진 사람을 보면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보면 안으로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모든 만남을 배움의 기회로 바꾸는 이 태도는 공자가 평생 학생으로 남았다는 인상을 줍니다.

19.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자한편에서 공자는 강가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逝者如斯夫!不舍晝夜。
(서자여사부! 불사주야.)

It passes on just like this, not ceasing day or night!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구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탄식으로 읽는 해석과, 쉼 없이 나아가는 도에 대한 감탄으로 읽는 해석이 모두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짧은 장면은 『논어』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의 하나입니다. 이어서 배움을 흙을 쌓는 일에 견준 말이 있습니다. 한 삼태기만 더 쌓으면 이루어질 산에서 멈추는 것도, 평지에 한 삼태기씩 쌓아 나아가는 것도 모두 자기 몫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지의 힘에 대한 말이 이렇게 나옵니다.

三軍可奪帥也,匹夫不可奪志也。
(삼군가탈수야, 필부불가탈지야.)

The commander of the forces of a large state may be carried off, but the will of even a common man cannot be taken from him.

큰 나라의 군대 지휘관은 빼앗을 수 있어도, 평범한 사람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같은 편에는 추운 계절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마지막까지 잎을 떨구지 않음을 안다는 말이 있어, 시련 속에서 드러나는 변치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20.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

안연편에서 제자 안연이 인(仁)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克己復禮爲仁。
(극기복례위인.)

To subdue one's self and return to propriety, is perfect virtue.

자신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완전한 덕이다.

이어서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 줍니다. 예가 아닌 것은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같은 인을 두고 번지가 물었을 때는 대답이 전혀 다릅니다.

子曰:「愛人。」
(자왈: 「애인. 」)

It is to love all men.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같은 개념을 질문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대답한 것은 『논어』의 방식을 잘 보여 줍니다. 인은 한 문장으로 정의되지 않고 자기 절제와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두 얼굴로 나타납니다. 안연에게는 안으로의 극기를, 번지에게는 밖으로의 사랑을 말한 셈입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이후 유학에서 오래 논쟁된 구절이기도 합니다.

21.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자공이 평생 실천할 한 마디를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합니다.

子貢問曰:「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子曰:「其恕乎!己所不欲,勿施於人。」
(자공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자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

Is there one word which may serve as a rule of practice for all one's life? The Master said, Is not RECIPROCITY such a word? What you do not want done to yourself, do not do to others.

평생 실천할 만한 한 마디가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서(恕), 곧 상호성이 그것이 아니겠는가. 네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이른바 황금률의 부정형입니다. 같은 취지의 말이 안연편의 중궁에게 한 대답에도 나옵니다. 앞서 읽은 성경의 "남이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하라"가 긍정형이라면 이 문장은 부정형이어서 흔히 비교됩니다. 이 말이 책 전체를 꿰는 "하나의 도"가 아니겠느냐는 연결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앞서 증자가 말한 "충서(忠恕)"의 서(恕)가 바로 이 말입니다. 행동을 제약하는 쪽이 오히려 확실한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일상에서 쓰기 쉬운 지침이기도 합니다.

22. 정치의 세 요건, 백성의 믿음

자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는 세 요건을 말합니다.

足食,足兵,民信之矣。
(족식, 족병, 민신지의.)

The requisites of government are that there be sufficiency of food, sufficiency of military equipment, and the confidence of the people in their ruler.

정치의 요건은 먹을 것이 충분하고, 군비가 충분하며, 백성이 통치자를 믿는 것이다.

자공은 피할 수 없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하느냐고 거듭 묻고, 공자는 군비, 그다음 먹을 것을 버리라고 합니다.

去食。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거식. 자고개유사, 민무신불립.)

Part with the food. From of old, death has been the lot of all men; but if the people have no faith in their rulers, there is no standing for the state.

먹을 것을 버려라.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었다. 그러나 백성이 통치자를 믿지 않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

신뢰를 식량보다 위에 두는 이 답은 정치에서 신뢰의 가치를 가장 강하게 말한 대목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같은 안연편에서 공자는 통치자와 백성의 관계를 바람과 풀에 견줍니다. 바람이 불면 풀은 눕는다는 것입니다. 통치자가 먼저 좋은 것을 바라야 백성도 좋아진다는 뜻으로, 아래를 탓하기 전에 위의 모범을 묻는 말입니다. 한편 이 비유는 위계적 사회관을 반영하고 있어서 오늘의 민주적 감각과는 긴장이 있다는 점도 알아 둘 만합니다.

23. 이름을 바로잡는다

자로편에서 위나라 군주가 공자를 정치에 불러 쓴다면 무엇부터 하겠느냐고 자로가 묻자 공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말합니다. 이유를 이렇게 풉니다.

名不正,則言不順;言不順,則事不成
(명부정, 즉언불순; 언불순, 즉사불성)

If names be not correct, language is not in accordance with the truth of things. If language be not in accordance with the truth of things, affairs cannot be carried on to success.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사물의 참됨과 맞지 않는다. 말이 사물의 참됨과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어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와 음악이 일어나지 않고, 그러면 형벌이 합당하지 않게 되며, 결국 백성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 된다고 연쇄를 설명합니다. 말과 실제가 어긋나면 사회 전체가 어긋난다는 진단입니다. 이 대목은 공자의 정치 철학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기도 한데, 구체적인 정치 상황, 곧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다투던 위나라의 사정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공적인 언어의 정직함에 대한 원칙으로 자주 확대 해석됩니다. 같은 편에는 "군자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비워 둔다"는 자로에 대한 꾸중도 있습니다.

24. 원수는 정직으로, 은혜는 은혜로

누군가 공자에게 원한을 덕으로 갚는 것이 어떠냐고 묻습니다.

何以報德?以直報怨,以德報德。
(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덕.)

With what then will you recompense kindness? Recompense injury with justice, and recompense kindness with kindness.

그렇다면 은혜는 무엇으로 갚겠는가? 원한은 정직으로 갚고, 은혜는 은혜로 갚아라.

복음서의 "원수를 사랑하라"와 대비되는 대답이어서 자주 비교됩니다. 공자는 악에 선으로 응하면 선에는 무엇으로 응하느냐고 되묻습니다. 원한에 정직하게 응한다는 것은 보복도 아니고 무조건의 용서도 아니라 정의로운 대응을 뜻한다고 풀이됩니다. 두 전통이 서로 다른 윤리적 직관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며, 어느 쪽이 옳은지는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습니다.

25. 자신을 위한 배움, 남을 위한 배움

헌문편의 한 문장은 배움의 목적을 날카롭게 묻습니다.

古之學者爲己,今之學者爲人。
(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In ancient times, men learned with a view to their own improvement. Now-a-days, men learn with a view to the approbation of others.

옛날의 배우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배웠는데, 요즘의 배우는 사람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배운다.

이천오백 년 전에도 "요즘 사람들"은 인정받으려고 공부한다는 한탄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 문장을 더 아프게 만듭니다. 앞서 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라는 학이편의 말과 하나로 이어지는 주제입니다. 위령공편에서는 이런 말도 합니다.

過而不改,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

To have faults and not to reform them,-- this, indeed, should be pronounced having faults.

잘못이 있으면서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진짜 잘못이라 한다.

잘못 자체보다 고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이 한 줄은 실수에 관대하되 개선에는 엄격한 태도를 알려 줍니다.

26.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낫다

위령공편에는 공자 자신의 경험담이 있습니다.

吾嘗終日不食,終夜不寑,以思;無益,不如學也。
(오상종일불식, 종야불침, 이사; 무익, 불여학야.)

I have been the whole day without eating, and the whole night without sleeping:-- occupied with thinking. It was of no use. The better plan is to learn.

나는 하루 종일 먹지 않고 밤새 자지 않고 생각에 골몰해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배우는 것이 더 낫다.

앞서 위정편의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이라는 말과 이 문장을 함께 놓으면 균형이 맞습니다. 생각을 소홀히 하라는 뜻이 아니라, 혼자 끙끙대는 생각에는 한계가 있고 남의 지식과 만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같은 편에는 군자가 괴로워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 없음이지 남이 알아주지 않음이 아니라는 말도 있습니다.

27. 벗을 가려 사귄다

계씨편에는 벗에 대한 구체적인 분류가 있습니다.

益者三友,損者三友:友直,友諒,友多聞,益矣;友便辟,友善柔,友便佞,損矣。
(익자삼우, 손자삼우: 우직, 우량, 우다문, 익의; 우편벽, 우선유, 우편녕, 손의.)

There are three friendships which are advantageous, and three which are injurious. Friendship with the upright; friendship with the sincere; and friendship with the man of much observation:-- these are advantageous. Friendship with the man of specious airs; friendship with the insinuatingly soft; and friendship with the glib-tongued:-- these are injurious.

이로운 벗이 셋이고 해로운 벗이 셋이다. 정직한 벗, 성실한 벗, 견문이 넓은 벗은 이롭다. 겉치레하는 벗, 아첨하며 부드러운 벗, 말만 번지르르한 벗은 해롭다.

같은 편에는 군자가 늘 마음에 두는 아홉 가지도 있습니다. 볼 때는 분명히 보기를, 들을 때는 똑똑히 듣기를,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용모는 공손하기를, 말은 진실하기를, 일은 신중하기를, 의심나면 묻기를, 화가 날 때는 뒤따를 어려움을, 이득을 볼 때는 의로움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일상의 태도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점검하는 방식은 『논어』가 이론서가 아니라 수양의 안내서임을 보여 줍니다.

28. 본성은 비슷하고 습관이 멀게 한다

양화편은 인간 본성에 대한 한 문장으로 유명합니다.

性相近也,習相遠也。
(성상근야, 습상원야.)

By nature, men are nearly alike; by practice, they get to be wide apart.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으로 서로 멀어진다.

사람의 차이를 타고난 본성보다 후천적인 습관과 교육의 결과로 보는 이 말은 교육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을 담고 있습니다. 이후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갈라지는 지점의 출발점으로도 이야기됩니다. 같은 편에는 하늘에 대한 구절도 있습니다. 공자가 "나는 말하지 않으려 한다"고 하자 제자가 걱정합니다. 그러자 공자가 답합니다.

天何言哉?四時行焉,百物生焉,天何言哉?
(천하언재? 사시행언, 백물생언, 천하언재?)

Does Heaven speak? The four seasons pursue their courses, and all things are continually being produced, but does Heaven say anything?

하늘이 말을 하더냐? 네 계절이 오고 가고 만물이 계속 생겨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치겠다는 뜻이며, 하늘의 침묵 속의 질서를 닮고자 하는 스승의 태도를 보여 줍니다.

29. 하늘의 명, 예, 말을 알아야 사람을 안다

『논어』의 마지막 편 마지막 문장은 책 전체의 결론처럼 읽힙니다.

不知命,無以爲君子也;不知禮,無以立也;不知言,無以知人也。
(부지명, 무이위군자야; 부지례, 무이립야; 부지언, 무이지인야.)

Without recognising the ordinances of Heaven, it is impossible to be a superior man. Without an acquaintance with the rules of Propriety, it is impossible for the character to be established. Without knowing the force of words, it is impossible to know men.

하늘의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예를 알지 못하면 사람으로 설 수 없다. 말의 힘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하늘의 명을 아는 것, 예로 서는 것, 말을 듣고 사람을 아는 것이라는 세 가지는 각각 초월, 사회, 대화의 영역에서 사람을 알아 가는 길입니다. 이 마지막 문장은 앞서 본 "마흔에 의혹이 없고 쉰에 하늘의 명을 알았다"와 호응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책이 시작한 배움의 기쁨에서 출발해 사람과 하늘을 아는 데에서 맺는 셈입니다.

30. 『논어』를 둘러싼 논쟁

『논어』는 이천오백 년 동안 동아시아의 도덕과 정치 담론의 기초가 되었지만, 그만큼 비판도 받았습니다. 위계 질서와 효를 강조하는 윤리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억눌렀다는 비판, 신분과 성별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비판, 군주를 향한 충을 강조해 권위주의를 뒷받침했다는 비판이 근대 이후 거셌습니다. 한편 공자 자신의 말을 시대의 제약 속에서 읽고 후대의 해석과 구별해서 봐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논어』에서 여성에 관한 구절은 적고 그 해석이 갈립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은 두 가지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오늘의 기준으로 비판하며 읽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대의 질문 속에서 읽는 방법입니다. 두 방법을 모두 시도해 보면 책이 얼마나 다층적인지 드러납니다. 『논어』가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규칙을 외우게 하는 책이어서가 아니라, 배움과 사람됨과 신뢰에 대해 끊임없이 다시 묻게 하는 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도 되고 아무 데나 펴서 읽어도 됩니다. 처음이라면 학이, 위정, 이인, 술이, 안연편을 먼저 읽어 보세요. 이 글에서 다룬 대목의 대부분이 이 편들에 있습니다. 한 번에 많이 읽기보다 한 편에서 마음에 걸리는 문장 하나를 골라 며칠 동안 곱씹는 방법이 이 책과 잘 맞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문장 뒤에 숨어 있으니, 자로의 거침, 자공의 영리함, 안회의 침묵, 증자의 성실함을 눈여겨보면 대화가 훨씬 입체적으로 읽힙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번역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은 어진 마음, 사랑, 덕, 인간다움 등으로 다양하게 옮겨지고, "군자"도 지식인, 신사, 훌륭한 사람 등으로 옮겨집니다. 여러 번역을 견주어 읽으면 말의 결이 더 잘 보입니다. 그리고 『논어』를 읽은 뒤 『도덕경』을 이어 읽으면, 유가와 도가라는 동아시아 사상의 두 기둥이 인간과 사회, 자연과 도에 대해 어떻게 서로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지가 한결 선명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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