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1885년 출간
Where Love Is, There God Is Also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아들을 잃고 삶의 이유를 잃은 늙은 구두장이가 복음서를 읽으며 기다린 손님 대신, 하루 동안 창밖에서 만난 가난한 이웃들 속에서 기다림의 답을 얻는 이야기
We must live for God, Martuin.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네, 마르투인.
I was a stranger, and ye took me in.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영접하였고.
한눈에 보기
지하 작업방의 한 창문으로 거리의 발과 신발을 내다보며 사는 구두장이 마르투인 아브디에이치는 아내와 아들 카피토슈카를 모두 잃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순례하던 노인의 권유로 신약성경을 읽기 시작한다. 누가복음의 바리새인 시몬 대목을 읽은 밤 꿈에서 "내일 거리를 보라, 내가 가겠다"는 목소리를 들은 그는 이튿날 창밖만 바라보며 손님을 기다린다. 눈을 치우다 지친 늙은 병사 스테파누이치에게 차를 대접하고, 추위에 떠는 병사의 아내와 아기에게 수프와 헌 외투와 동전을 건네고, 사과를 훔친 소년과 노파 사이를 화해시킨다. 저녁이 되어 어두운 구석에서 그들이 차례로 나타나 "그것이 나였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꿈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안다. 열 가지 대목으로 읽는다.
비슷한 책
-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
-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The Happy Prince and Other Tales)
- 찰스 디킨스 『크리스마스 캐럴』 (A Christmas Carol)
한 권 요점
Where Love Is, There God Is Also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는 러시아 작가 레프 톨스토이가 쓴 짧은 이야기로, 1885년에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1828년에 태어나 1910년까지 산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작가이면서 후기에는 민중에게 읽히는 짧은 우화를 여러 편 남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장 구분은 없고 하나의 긴 하루 이야기로 이어지며, 앞부분은 한 사람의 상실과 회복을, 뒷부분은 눈 오는 겨울 하루의 짧은 사건 세 개를 다룹니다. 등장인물의 이름과 호칭은 러시아식입니다. 주인공은 '마르투인 아브디에이치'이고, 이웃들은 그를 부칭인 아브디에이치로 부릅니다. 주인공이 창밖으로 보는 세계는 발과 신발뿐이지만, 그 좁은 창문이 이야기 전체의 무대입니다.
줄거리
도시의 구두장이, 아들을 잃은 절망
도시의 한 지하실에 구두장이 마르투인 아브디에이치가 삽니다. 창문이 하나뿐인 작은 방이고, 창은 거리를 향해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은 발만 보입니다. 그래도 그는 오래 한곳에 살며 구두를 손봐 온 터라 신발만 보고 사람을 알아보고, 자기가 고친 신발이 지나가면 알아봅니다. 그는 좋은 재료를 쓰고 터무니없는 값을 받지 않으며 약속을 지키는 일꾼이어서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기한을 맞출 수 없는 주문은 미리 솔직하게 말해 두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브디에이치는 늘 선한 사람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영혼과 하나님을 더 자주 생각합니다. 아내는 그가 아직 주인집에 있을 때 세상을 떠나 세 살배기 아들을 남겼고, 다른 아이들은 모두 어려서 죽었습니다. 그는 아들을 시골 누이에게 보내려다 마음이 아파 곁에 두기로 하고 주인을 떠나 아들 카피토슈카와 함께 셋방으로 옮깁니다. 카피토슈카가 자라 아버지를 돕기 시작해 큰 기쁨이 될 무렵 병이 나서 일주일을 앓다 세상을 떠납니다. 아들을 묻은 마르투인은 절망에 빠져 하나님께 불평하고, 늙은 자신 대신 외아들을 데려갔다고 원망하며 죽음을 구하는 기도까지 올립니다. 교회에도 가지 않게 됩니다.
순례자 노인과 복음서
칠 년째 떠돌던 같은 고향의 작은 노인이 트로이차 수도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를 찾아옵니다. 마르투인이 이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자 노인은 "하나님의 행하심을 판단하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세상은 사람의 재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움직이고, 아들이 죽고 그가 살아남은 것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절망하는 까닭은 자기 행복만을 위해 살려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그러면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물음에 노인은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답합니다. 방법은 신약성경을 사서 읽는 것입니다. 마르투인은 그날로 큰 글씨 신약성경을 사 읽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휴일에만 읽으려 했지만 읽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져 매일 저녁 읽게 되고, 때로는 램프 기름이 다 타도록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예전에는 잠자리에 들며 한숨과 신음으로 카피토슈카를 생각했으나 이제는 "영광을 받으소서, 주님, 뜻대로 이루소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휴일에 주막에서 차와 약간의 술로 시간을 보내던 버릇도 끊고, 아침에 일을 마친 뒤 등잔을 켜고 책을 펴는 조용하고 기쁜 생활이 됩니다.
누가복음의 밤과 꿈속의 목소리
어느 날 밤 그는 누가복음 6장을 읽습니다. 한쪽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도 돌려 대라는 말씀과,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지은 사람의 비유입니다. 그는 자기 집이 반석 위에 있는지 묻고, 혼자 있을 때는 쉽지만 자신을 잊으면 다시 죄를 짓는다고 인정하면서도 계속 애써 보겠다고 합니다. 이어 7장에서 백부장과 과부의 아들,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준 답을 읽다가,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를 식사에 초대하고도 발 씻을 물도 입맞춤도 기름도 내놓지 않았는데 죄 많은 여인은 눈물로 그분의 발을 씻고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는 대목에 이릅니다. 마르투인은 시몬이 자기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차를 마시고 따뜻하고 편안한 것만 생각했고 손님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손님이 주님이었다면 자신도 그렇게 했을지 자문하다 팔에 머리를 괴고 잠이 듭니다.
잠결에 누가 이름을 부릅니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데 다시 졸다가 이번에는 "마르투인, 내일 거리를 보아라. 내가 간다"는 소리를 똑똑히 듣습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는 램프를 끄고 잡니다.
이튿날 아침: 창가의 기다림과 스테파누이치
새벽에 일어난 마르투인은 기도하고 난로에 불을 피우고 양배추 수프와 죽을 올리고 사모바르에 물을 채운 뒤 작업대에 앉습니다. 그러나 일보다 창밖을 더 자주 내다봅니다. 모르는 신발이 지나가면 얼굴까지 보려고 몸을 숙입니다. 문지기가 새 펠트 장화를 신고 지나가고 물 긷는 사람이 지나간 뒤, 니콜라이 시대의 늙은 병사 스테파누이치가 삽을 들고 와서 창 앞의 눈을 치우기 시작합니다. 이웃 상인이 자선으로 거처를 내주고 문지기를 돕게 한 노인입니다. 마르투인은 "내가 늙어 정신이 나갔다. 스테파누이치가 눈을 치우는데 그리스도가 오신다고 생각하다니" 하고 자신을 비웃습니다.
그런데 몇 바늘 뜨고 다시 내다보니 스테파누이치는 삽을 벽에 기대고 몸을 녹이며 쉬고 있습니다. 기운이 없어 눈 치울 힘도 모자란 늙은이입니다. 마르투인은 막 끓인 사모바르가 있다며 창을 두드려 그를 불러들이고 차를 따라 줍니다. 손님은 눈을 털고 바닥을 더럽힐까 발을 닦으려다 비틀거리고, 마르투인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스테파누이치는 차를 마시고 잔을 엎어 놓는 것으로 만족을 표하지만 더 마시고 싶은 눈치입니다. 마르투인은 거듭 따라 주면서 자기도 이따금 거리를 내다봅니다. 누구를 기다리느냐는 물음에 그는 부끄러워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어젯밤 복음서를 읽은 일, 바리새인이 그리스도를 후하게 맞지 않았다는 대목, 그리고 "내가 가겠다"는 목소리를 들은 일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땅에서 지내실 때 소박한 사람들을 멀리하지 않고 제자도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뽑으셨고,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낮추는 이는 높아진다고 하셨고, 가난하고 온유하고 선한 사람은 복되다고 하셨다고 말입니다. 문맹이라 읽지 못하는 스테파누이치는 눈물을 흘리며 듣고, 십자를 긋고 "몸과 마음을 함께 채워 주셨다"고 감사하며 돌아갑니다.
병사의 아내와 아기
마르투인은 남은 차를 마시고 다시 구두에 헝겊을 대며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만 생각합니다. 군인 둘, 이웃집 주인, 빵장수가 지나가고, 이어 털양말에 투박한 시골 신을 신은 여인이 창틀 옆에 멈춰 섭니다. 낯선 여인은 아기를 안은 채 바람을 등지고 서 있고, 아기를 쌀 것이 없어 얇은 여름옷으로 달래 보지만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마르투인은 문으로 나가 "착한 아주머니, 왜 아기를 데리고 추운 데 서 있소, 따뜻한 방으로 들어오시오" 하고 부릅니다. 여인은 놀라 안경을 쓴 앞치마 차림의 노인을 따라 내려옵니다.
그는 여인을 난로 곁 침대에 앉히고,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게 합니다. 여인은 젖이 안 나오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르투인은 빵과 접시를 꺼내고 아직 익지 않은 죽 대신 양배추 수프를 담아 수건을 펴고 식탁을 차립니다. 자기도 한때 자식이 있어 아기를 안다며 아기를 대신 돌봅니다. 이가 없어 입맛 다시는 소리가 시원찮자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려다 밀랍과 검댕이 묻은 손이 마음에 걸려 거두고, 아기는 그 손가락을 보다가 울음을 그치고 웃습니다. 식사하면서 여인은 자기가 군인의 아내이며 남편이 일곱 달 전 먼 곳으로 보내진 뒤 소식이 없고, 요리사로 일하다 아기를 낳자 자리를 잃었고, 석 달째 일자리를 못 구했으며, 유모 일도 너무 말랐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말합니다. 어제는 마지막 숄을 20코페이카에 전당 잡혔다고 합니다. 마르투인은 칸막이 뒤를 뒤져 낡은 외투를 꺼내 주고, 여인은 눈물을 흘립니다. 여인은 "그분이 노인장의 창문으로 저를 이끄셨다"고 하고, 그가 "과연 그러했소" 하며 자기 꿈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20코페이카를 건네며 숄을 찾으라고 하고, 둘은 십자를 긋고 헤어집니다.
사과를 훔친 소년과 노파
어둑해지는 창가에서 마르투인은 다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핍니다. 사과 바구니와 건축 현장에서 주운 나무 부스러기 자루를 짊어진 늙은 사과 장수가 멈춰 서서 자루를 고쳐 메는 사이, 찢어진 모자를 쓴 소년이 바구니에서 사과를 집어 달아나려다 붙잡힙니다. 노파는 소년의 머리채를 쥐고 경찰에게 데려가겠다고 호통치고, 소년은 훔치지 않았다고 버팁니다. 마르투인은 송곳을 던지고 계단에 넘어져 안경까지 떨어뜨리며 뛰어나가 말립니다. "할머니, 그리스도를 위해 용서해 주시오." 노파가 "새 빗자루가 날 때까지 잊지 못하게 해 줘야 한다"고 하자 그는 소년에게 노파에게 용서를 빌게 하고 사과를 하나 건네며 값은 자기가 내겠다고 합니다. 노파가 버릇을 망친다고 하자 그는 말합니다. 사과 하나에 매질을 한다면 우리 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그는 빚을 탕감받고도 자기 채무자의 목을 조른 종의 비유를 들려줍니다. 노파는 한숨을 쉬고 그렇다면 어른들이 가르쳐야 한다고 수긍하며, 자신은 자식 일곱을 잃고 딸 하나만 남았고 손주들이 가장 반긴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풀린 노파가 자루를 지려 하자 소년이 "제가 들어 드릴게요, 제 길이에요" 하고 나서고, 둘은 나란히 걸어갑니다. 노파는 사과 값 받는 것도 잊습니다.
저녁의 책: 어둠 속의 얼굴들과 결말
날이 어두워져 점등부가 가로등을 켜자 마르투인도 램프를 달고 마무리한 구두를 보며 "잘했다"고 합니다. 도구를 치우고 부스러기를 쓸고 램프를 식탁에 놓은 뒤 복음서를 내려 펴는데, 어제 가죽 조각을 끼워 둔 곳이 아닌 다른 곳이 펼쳐집니다. 그 순간 어젯밤 꿈이 떠오르고, 뒤에서 누가 걸어 다니는 기척이 납니다. 어두운 구석에 사람들이 서 있는 듯하고 귓가에 목소리가 속삭입니다. "마르투인, 나를 알아보지 못했느냐." 스테파누이치가 어둠에서 걸어 나와 미소 짓고 구름처럼 사라집니다. "그것은 나였다." 아기를 안은 여인이 나와 웃고 아기가 웃다 사라집니다. 이어 사과 장수 노파와 사과를 든 소년이 나와 미소 짓고 사라집니다.
마르투인의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 차 십자를 긋고 안경을 쓰고 펼쳐진 곳을 읽습니다. 윗부분에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라는 구절이, 아랫부분에는 "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는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꿈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으며 구세주가 실제로 그날 찾아오셨고 자신이 그분을 맞았음을 깨닫습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납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지하실 창문과 신발의 세계
이야기는 인물의 자리를 먼저 그립니다. 구두장이는 얼굴이 아니라 신발로 사람을 압니다.
Through the window he used to watch the people passing by
그는 창문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곤 했다.
이 구도는 뒤에 그대로 뒤집힙니다. 신발만 보고 알아보던 사람이 하루 동안 얼굴을 보려고 몸을 숙이고, 마침내 얼굴 너머의 존재를 알아봅니다. 그의 직업적 성실도 한 줄로 요약됩니다.
did not make exorbitant charges, and kept his word
터무니없는 값을 받지 않았고 약속을 지켰다.
톨스토이는 주인공을 처음부터 성인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정직한 장인이지만 아직 자기 일과 자기 안락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2. 상실과 원망
아내가 일찍 죽고 아이들이 차례로 죽은 끝에 남은 외아들마저 병으로 죽습니다. 서술은 담담합니다.
Martuin buried his son, and fell into despair.
마르투인은 아들을 묻고 절망에 빠졌다.
그의 슬픔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번집니다. 자신이 대신 죽었어야 했다는 마음은 교회를 떠나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곧 삶의 이유까지 잃게 만듭니다.
I am a man without anything to hope for now.
나는 이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이오.
이 이야기가 믿음을 가르치는 우화로 읽히면서도 가볍지 않은 것은, 출발점이 이 현실적인 절망이기 때문입니다.
3. 순례자의 충고
떠돌이 노인의 말은 위로가 아니라 방향 전환입니다. 그는 슬픔을 달래는 대신 슬픔의 중심에 있는 질문을 바꿉니다.
The world moves, not by our skill, but by God's will.
세상은 우리의 재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움직인다.
절망의 원인은 자기 행복만을 위해 살려는 데 있다는 진단에 마르투인이 되묻자, 노인은 이렇게 답합니다.
We must live for God, Martuin.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네, 마르투인.
어떻게 사느냐는 물음에는 성경을 읽으라는 실용적인 처방이 따릅니다.
Everything is explained there.
모든 것이 거기에 설명되어 있네.
노인이 요구하는 것은 교리의 암기가 아니라 읽는 일입니다. 마르투인이 문자를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이 이후 구원의 문을 엽니다. 반대로 읽지 못하는 스테파누이치는 이야기의 다른 쪽에서 듣는 사람이 됩니다.
4. 책이 삶을 바꾸는 방식
성경을 읽는 일은 처음에는 휴일의 일이었으나 곧 매일 저녁의 습관이 됩니다. 변화는 감정과 생활 양쪽에서 드러납니다. 한숨 대신 감사가, 주막의 소란 대신 고요한 저녁이 들어섭니다.
Glory to Thee! glory to Thee, Lord!
영광을 받으소서, 주님!
누가복음 6장의 바위 위에 지은 집 비유를 읽고 그는 책을 자기 삶의 잣대로 삼습니다.
Is my house built on the rock, or on the sand?
내 집은 반석 위에 지어졌는가, 모래 위에 지어졌는가?
이어지는 자기 진단이 정직합니다. 홀로 있을 때는 쉽지만 자신을 잊으면 다시 죄를 짓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도 계속 애쓰겠다고 합니다.
Yet I shall still struggle on.
그래도 나는 계속 애써 볼 것이다.
이 장면은 개종의 환희가 아니라 지속하는 노력의 약속으로 그려집니다.
5. 바리새인 시몬과 마르투인
그를 흔드는 것은 가장 극적인 구절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구절입니다. 손님 앞에 물도 입맞춤도 기름도 내놓지 않은 집주인의 소홀함입니다.
Thou gavest me no water for my feet, thou gavest me no kiss.
당신은 내 발에 물도 주지 않았고 입맞춤도 하지 않았소.
마르투인은 이 구절을 남의 허물이 아니라 자기 얘기로 읽습니다.
It seems that Pharisee must have been such a man as I am.
그 바리새인은 나 같은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질문을 현재형으로 가져옵니다.
If He had come to me, should I have done the same way?
그분이 내게 오셨다면 나도 똑같이 했을까?
톨스토이의 단편이 설교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독자에게 답을 주기보다 주인공이 스스로 숙제를 얻게 하고, 그 숙제는 이튿날 하루 동안 실제 행동으로 치러집니다.
6. 꿈속의 약속
책을 읽다 잠든 노인에게 목소리가 두 번 들립니다. 이 소리가 꿈인지 현실인지 이야기는 끝까지 단정하지 않습니다.
Martuin! Ah, Martuin! look to-morrow on the street.
마르투인, 아, 마르투인! 내일 거리를 보아라.
I am coming.
내가 간다.
이튿날 아침 그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평소 일상을 이어 가지만 자꾸만 창밖을 내다봅니다. 자신을 나무라는 모습도 인간적입니다.
such things have been.
그런 일도 있는 법이지.
기다림은 이 이야기의 구조입니다. 마르투인은 위대한 손님을 기다리고, 독자는 그 손님이 누구인지 이미 짐작하면서도, 하루가 지나는 동안 마르투인이 놓치고 있는 것을 지켜봅니다.
7. 스테파누이치와 한 잔의 차
첫 손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눈 치우다 지친 늙은 병사입니다. 마르투인이 그를 부르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추워 보여서입니다.
Come in, warm yourself a little
들어와서 잠깐 몸을 녹이게.
You must be cold.
추울 텐데.
기다림의 이유를 묻는 손님에게 마르투인은 부끄러워하면서도 털어놓습니다.
I am ashamed even to tell whom I expect.
누구를 기다리는지 말하기조차 부끄럽다네.
그가 설명하는 그리스도는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의 사람들과 함께하신 분입니다.
whoever exalts himself, shall be humbled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다.
낮은 자의 곁에 계셨다는 마르투인의 말은 무심결에 자기 방의 손님을 가리킵니다. 문맹인 스테파누이치는 그 말을 눈물로 듣고, 대접받은 값을 "몸과 마음을 함께 채워 주었다"고 갚습니다.
8. 병사의 아내와 아기
둘째 손님은 더 급한 처지입니다. 얇은 옷으로 바람을 등지고 선 여인과 우는 아기를 보고 마르투인은 곧바로 문으로 나갑니다.
Why are you standing in the cold with the child?
왜 아기를 데리고 추운 데 서 있소?
그는 질문도 설교도 없이 먼저 자리와 음식을 내놓습니다. 아기를 맡으며 하는 말은 상실의 기억과 이어집니다.
I once had children of my own; I know how to handle them.
나도 한때 내 자식이 있었소. 다루는 법을 안다오.
카피토슈카를 잃은 아픔이 이웃을 돕는 손으로 바뀌는 대목입니다. 여인이 외투를 받고 하는 말은 이 책의 주제를 직접 말합니다.
My little baby would have frozen to death.
제 어린 아기가 얼어 죽을 뻔했어요.
마르투인이 20코페이카를 건네며 "그리스도를 위해"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의 선행이 계산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Take this, for Christ's sake
이걸 받으시오, 그리스도를 위해서.
9. 사과 도둑과 용서
셋째 장면은 앞의 두 장면보다 어렵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잘못한 소년과 화난 노파 사이에 끼어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Let him go, babushka; forgive him, for Christ's sake.
할머니, 놓아주시오. 그리스도를 위해 용서해 주시오.
노파의 분노는 이해할 만합니다. 마르투인은 그 분노를 꺾지 않고 다른 기준으로 옮깁니다.
that is right according to our judgment, but not according to God's
그건 우리 판단으로는 옳지만 하나님의 판단으로는 아니라오.
God has commanded us to forgive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명하셨소.
용서의 이유는 도덕적 우월이 아니라 자기 처지의 자각입니다. 사과 하나에 매질을 한다면 우리의 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반문이 그 뜻입니다. 노파가 마음이 풀려 손주 이야기를 하고, 소년이 자루를 지겠다고 나서는 과정에서 훈계가 아니라 대화가 화해를 낳습니다.
Let me carry it, babushka; it is on my way.
제가 들어 드릴게요, 할머니. 제 가는 길이에요.
10. 어둠 속의 얼굴들
결말은 간결합니다. 하루 종일 기다리던 손님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녁에 어두운 구석에서 하루 동안 만난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납니다.
And it was I,
그리고 그것도 나였다.
펼쳐진 복음서의 구절은 이 하루를 설명하는 열쇠입니다.
I was thirsty, and ye gave me drink
목마를 때에 너희가 마시게 하였고
I was a stranger, and ye took me in.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영접하였고.
마르투인은 꿈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음을 이해합니다.
And Avdyeitch understood that his dream had not deceived him
아브디에이치는 자신의 꿈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이 이야기가 말하는 사랑은 큰 결심이 아니라 눈앞의 사람에게 차 한 잔과 외투 한 벌과 한마디 중재를 내주는 일입니다. 제목의 "사랑이 있는 곳"은 그래서 지하실 작업방이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과 도운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서로의 손님이 됩니다.
11. 이 책을 읽는 방법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는 짧아서 한 번에 읽히는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줄거리를 따라 구두장이의 하루를 읽고, 두 번째에는 장면마다 마르투인이 무엇을 보지 못하고 무엇을 보게 되는지 짚어 보세요. 상실로 시작해 복음서 독서, 꿈, 세 번의 만남, 어둠 속의 얼굴들로 이어지는 구조가 분명해서 대목 하나만 골라 읽어도 이야기의 방향이 보입니다. 종교적 배경이 낯선 독자라면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인용 구절을 따로 의식하지 않고 읽어도, 가난한 이웃에게 문을 여는 하루의 이야기로 충분히 따라갈 수 있습니다. 같은 작가의 큰 장편 『안나 카레니나』와 비교해 읽으면 톨스토이가 인물의 내면을 얼마나 다른 분량으로 다루는지 또렷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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