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출판년도 1879
The Light of Asia
아시아의 빛
에드윈 아널드 Sir Edwin Arnold (1832–1904)
Ye suffer from yourselves. None else compels None other holds you that ye live and die
그대들은 스스로에게서 괴로움을 얻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으며, 누구도 그대들을 붙들어 살고 죽게 하지 않는다.
The grief which all hearts share grows less for one.
모든 마음이 함께 나누는 슬픔은 한 사람에게 더 가벼워진다.
한눈에 보기
왕자 싯다르타가 궁전을 떠나 깨달음에 이르고 가르침을 펴기까지의 삶을 영어 시로 들려준 이야기다. 괴로움의 뿌리는 바깥이 아니라 나 자신의 갈애에 있고, 그 사슬도 스스로 풀 수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책
- 붓다 The Dhammapada (담마파다)
- 붓다 The Diamond Sutra (금강경)
- 비야사 Bhagavad-Gita (바가바드 기타)
한 권 요점
Sir Edwin Arnold
에드윈 아널드는 1832년에 태어나 1904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시인이자 언론인이며 동양학에 관심이 깊었던 인물입니다. 젊은 시절 인도로 건너가 푸나(푸네)의 데칸 칼리지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인도의 종교와 문학에 눈을 떴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신문사에서 오래 일하며 글을 썼습니다. 그는 인도 고전을 영어 독자에게 소개하는 일에 힘을 쏟았고, 『바가바드 기타』를 영어 시로 옮긴 『천상의 노래』도 같은 맥락의 작업입니다. 이 책, 『아시아의 빛』은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작품입니다.
『아시아의 빛』은 1879년에 나온 장편 서사시입니다. 붓다(佛陀), 곧 싯다르타 왕자의 탄생과 출가, 깨달음, 그리고 가르침을 여덟 권의 무운시로 노래합니다. 화자는 붓다를 존경하는 한 인도 불교도로 설정되어 있고, 시는 불교의 전승과 경전에서 이야기를 가져오되 빅토리아 시대 영국 독자의 감각에 맞게 풀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 경전을 그대로 옮긴 책이 아니라, 서양의 시인이 붓다의 삶을 감동적으로 다시 쓴 작품입니다. 이 책은 영어권에서 큰 인기를 얻어 서양에 불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점은 알고 읽으면 좋습니다. 아널드는 붓다를 거의 구원자 같은 존재로 그리고, 열반(涅槃)을 설명하는 방식에도 당대 서양의 시각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불교도와 학자들 가운데는 이 시가 불교를 정확히 전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가 오래 읽힌 이유는 붓다의 삶을 한 편의 이야기로 느끼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시의 장면 하나하나를 따라가면서,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을 서른 가지로 정리합니다.
시의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앞의 네 권은 왕자의 탄생과 궁전 생활, 네 가지 광경을 본 충격,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밤까지입니다. 다섯째와 여섯째 권은 고행과 방황, 마라의 유혹과 깨달음의 밤을 그립니다. 일곱째와 여덟째 권은 깨달음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면과 붓다가 직접 설하는 긴 가르침입니다. 가르침 부분은 시구가 노래처럼 흘러서 이 책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목입니다.
줄거리
제1권은 붓다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마야 왕비가 꿈에서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를 보고 아이를 갖고, 아기가 태어나자 아시타라는 늙은 성자가 찾아와 이 아이가 붓다가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왕자는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에 뛰어났고 약한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 깊었습니다. 제2권에서는 열여덟 살이 된 왕자에게 아버지가 세 채의 궁전을 지어 주고 야소다라와 결혼시키며, 세상의 슬픔을 보지 못하게 담장을 높이 쌓습니다.
제3권에서 왕자는 궁전 밖으로 나가 늙은 사람과 병든 사람, 죽은 사람을 차례로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제4권은 그가 한밤에 말 칸타카를 타고 궁전을 떠나는 장면입니다. 제5권과 제6권에서 그는 고행자들을 만나 고행이 답이 아님을 깨닫고, 수자타가 올린 우유죽을 받아 기력을 되찾은 뒤 보리수 아래에서 마라의 유혹을 이겨 냅니다. 마지막 두 권에서 붓다는 첫 설법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와 아내, 아들 라훌라를 만나며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업, 열반의 가르침을 펼칩니다. 아래 서른 가지는 이 이야기의 장면들에서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상처 입은 백조를 안은 아이
왕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장면입니다. 사촌 데바닷타가 쏜 화살에 백조가 맞아 정원에 떨어집니다. 어린 싯다르타는 백조를 품에 안고 화살을 뽑아 정성껏 돌봅니다. 데바닷타가 새를 달라고 하자 왕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Say no! the bird is mine, The first of myriad things which shall be mine By right of mercy and love's lordliness.
안 된다고 하라. 그 새는 내 것이다. 내 것이 될 수많은 것 가운데 첫째이며, 자비와 사랑의 주인 된 권리로 얻은 것이다.
왕궁의 회의에서 한 이름 모를 사제가 판결합니다. 생명을 구한 사람이 죽이려 한 사람보다 그 생명의 주인에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시는 이 아이의 앞날을 암시합니다. 소유의 권리를 힘이나 혈통이 아니라 돌봄에서 찾는 생각이 이 소년의 마음에 이미 싹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무엇의 주인인가라는 질문을 연민의 관점에서 다시 던지는 장면입니다.
2. 봄날의 밭에서 본 가시
왕은 어느 봄날 아들을 데리고 풍요로운 밭을 보러 갑니다. 새로 돋은 잎과 갈아엎은 흙, 지저귀는 새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왕자는 그 아래를 들여다봅니다. 땀 흘리는 농부와 멍에에 눌린 소, 도마뱀을 잡아먹는 뱀과 뱀을 잡는 솔개를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Each slew a slayer and in turn was slain, Life living upon death.
저마다 한 마리를 죽이고 또 차례로 죽임을 당하니, 삶이 죽음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 사실은 "벌레부터 사람까지 이어지는 거대하고 잔인한 상호 살육의 음모"를 덮고 있다는 것이 소년의 눈에 보인 진실입니다. 어린 왕자는 나무 아래에 앉아 이 깊은 병의 근원과 치료법을 생각하다가 처음으로 선정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좋은 날에도 그 아래에 놓인 괴로움을 알아보는 눈, 이것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이 장면은 낙관과 염세 사이에서 어느 쪽도 외면하지 않고 보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3. 슬픔을 말하지 못하게 만든 아름다운 감옥
제2권에서 아버지 슈도다나 왕은 아들이 출가의 길을 걸을까 두려워 궁전을 더욱 화려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궁전 안에서는 죽음과 늙음, 병과 고통을 입에 올리지 못하도록 명령합니다.
No mention should be made of death or age, Sorrow, or pain, or sickness.
죽음이나 늙음, 슬픔이나 고통, 병에 대해서는 입에도 올리지 못한다.
시는 이 궁전을 이렇게 부릅니다. 사랑이 간수이고 즐거움이 창살인 쾌적한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시든 장미는 새벽마다 뽑고,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보이는 무희는 추방당합니다. 불편한 현실을 보이지 않게 가려 두면 아이를 지킬 수 있다고 믿은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할 만하지만, 시는 그것이 결국 헛된 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아픈 것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보호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진실을 가리는 일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4. 바람이 부르는 노래
궁전의 밤, 창가에 놓인 악기가 바람에 울리면 왕자의 귀에는 데바들의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그것은 방황하는 바람의 소리입니다.
Wander thou, too, O Prince, thy rest to find; Leave love for love of lovers, for woe's sake Quit state for sorrow, and deliverance make.
왕자여, 그대도 안식을 찾아 방랑하라. 연인들을 향한 사랑 때문에 사랑을 버리고, 슬픔을 위해 지위를 떠나 해탈을 이루어라.
바람의 노래는 삶이 바람처럼 신음과 한숨과 다툼이며 그 소리를 내는 존재들 역시 알 수 없는 곳에서 와서 알 수 없는 곳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슬퍼하는 한편 조롱합니다. 사람들이 붙드는 삶이 구름을 세워 두려는 일, 흐르는 강을 손으로 막으려는 일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왕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목소리를 밖으로 꺼낸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편안한 삶 속에서도 들려오는 "이게 전부인가"라는 질문이 이 장면의 정체입니다.
5. 늙음을 처음 마주한 날
궁전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왕자의 청에 왕은 거리를 깨끗이 단장시키고 아프거나 늙은 사람이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길 한가운데에 한 노인이 비틀거리며 기어 나옵니다. 왕자는 마부 찬나에게 묻습니다. 사람이 원래 저런 모습으로 태어나는가. 찬나의 대답은 담담합니다.
The thievish years have sucked his sap away, Pillaged his strength and filched his will and wit
도둑 같은 세월이 그의 수액을 빨아내고, 힘을 약탈하고, 의지와 지혜를 훔쳐 갔다.
왕자는 자신과 야소다라도 오래 살면 똑같이 늙게 되느냐고 묻고 "그렇다"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는 마차를 돌려 궁으로 돌아가며 말합니다. "나는 보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을 보았다." 늙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얼굴로 처음 마주한 순간입니다. 그날 밤 왕자는 아내 곁에서도 마음이 어두워져, 사랑이 시간이라는 살인자에게서 달콤함을 지킬 방법이 있는지를 곱씹습니다.
6. 병과 죽음을 본 날의 대화
다음 외출에서 왕자는 상인의 옷을 입고 시장 거리를 걷다가 전염병에 걸려 쓰러진 사람을 만나고, 이어서 장례 행렬을 봅니다. 병든 사람을 일으켜 무릎에 눕히며 그는 찬나에게 이런 일이 많은 사람에게 일어나는지를 묻습니다. 찬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Some few grow old, most suffer and fall sick, But all must die
몇 사람은 늙기까지 살고, 대부분은 앓고 쓰러지지만, 모두는 죽어야 한다.
왕자가 이것이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끝이냐고 묻자 찬나는 높은 이든 낮은 이든 착한 이든 나쁜 이든 모두 같은 운명이라고 답하고, 사람들은 다시 어딘가에서 태어나 같은 고통을 되풀이한다고 가르친다고 덧붙입니다. 하늘을 향해 눈물 어린 눈을 든 왕자의 외침이 이 장의 정점입니다. 즐거움은 고통으로 끝나고 젊음은 늙음으로, 사랑은 이별로,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쾌락 속에 있어도 누구도 이 구조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인식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흔드는지를 보여 줍니다.
7. 신은 선한가, 전능한가
같은 장의 외침 가운데 시에서 가장 대담한 구절이 나옵니다. 왕자는 신들에게 호소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묻습니다.
How can it be that Brahm Would make a world and keep it miserable, Since, if all-powerful, he leaves it so, He is not good, and if not powerful, He is not God?
브라마가 어떻게 세상을 만들고서 그것을 비참하게 둘 수 있는가. 전능하면서 그렇게 내버려 둔다면 그는 선하지 않고, 전능하지 않다면 그는 신이 아니지 않은가?
이 질문은 신정론이라고 불리는 오래된 철학적 난제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시는 이 대목을 왕자의 입으로 말하게 해서 붓다가 신에게 기대지 않는 길을 택한 이유를 드러냅니다. 다만 이 구절은 아널드의 해석이 깊이 반영된 부분이므로 불교 경전의 정확한 표현으로 읽기보다 이야기를 이끄는 시인의 목소리로 받아들이는 편이 알맞습니다. 그럼에도 고통이 있는 세상에서 신의 선함과 힘이 어떻게 함께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시대와 종교를 넘어 오래 읽히는 이유가 됩니다.
8. 사랑을 지키려고 사랑하는 이를 떠난다
제4권은 이 시의 중심 장면입니다. 보름달이 뜬 밤 야소다라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 속에서 불길한 꿈을 꾸고 깨어납니다. 왕자는 아내를 위로하면서도 오늘 밤이 그 밤임을 압니다. 찬나가 떠나지 말라고 만류하자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Friend, that love is false Which clings to love for selfish sweets of love
벗이여, 사랑의 달콤함을 위해 이기적으로 사랑에 매달리는 사랑은 거짓이다.
그는 자신이 이 사람들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며, 그들과 모든 생명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사랑이 이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이별을 앞두고 이렇게 선언합니다.
Since there is hope for man only in man, And none hath sought for this as I will seek, Who cast away my world to save my world.
사람의 희망은 오직 사람 안에 있으니, 아무도 이것을 구하려 한 적이 없기에 나는 구할 것이다. 나의 세상을 버려서 나의 세상을 구하려는 자로서.
이 장면은 아름답지만 한편으로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도 함께 보여 줍니다. 가족을 두고 떠나는 선택이 사랑인지 책임을 저버리는 일인지에 대해 독자마다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시는 그 갈등을 숨기지 않고 남겨 둡니다.
9. 내가 가장 사랑한 이유는 모든 생명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왕자는 잠든 아내를 깨우지 않고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에게 한 마지막 말은 이 시에서 가장 따뜻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I loved thee most Because I loved so well all living souls.
내가 그대를 가장 사랑한 것은 모든 살아 있는 영혼을 그토록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사랑의 범위에 대한 생각을 보여 줍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내의 발에 이마를 대고 세 번 침상을 돌고 돌아서려다 세 번 되돌아오고서야 방을 나섭니다. 사랑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사랑을 넓히려는 선택이라는 시인의 해석이 가장 선명하게 담긴 장면이며, 그래서 독자는 이 이별을 더 아프게 읽게 됩니다.
10. 고통으로 영혼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궁전을 떠난 왕자는 라자그리하 근처의 산에서 고행자들을 만납니다. 팔을 들고 서 있어 마르고 굳은 사람, 주먹을 쥐고 있어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나온 사람, 시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왕자는 그들에게 묻습니다.
Will ye, for love of soul, so loathe your flesh, So scourge and maim it, that it shall not serve To bear the spirit on, searching for home
그대들은 영혼을 사랑한다면서 몸을 그토록 혐오하고 채찍질하고 해치어서, 집을 찾는 정신을 실어 나르지 못하게 만들려는가?
그는 하늘로 떠오른 구름도 결국 빗방울이 되어 떨어진다고 말하며, 고행으로 하늘을 사더라도 그 값이 다하면 다시 고통이 시작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고행자들은 이 길을 끝까지 가겠다고 답하고, 왕자는 슬퍼하며 지나갑니다. 시는 이 대목에서 중도(中道)라는 불교의 핵심 태도를 예고합니다. 몸을 학대하는 일이 영혼을 해방시키는 길이 아니라는 인식이 이후 그의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11. 새끼 양을 안고 걷는 수행자
같은 장에서 왕자는 목동들이 양 떼를 몰고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마리는 다리를 다쳐 뒤처지고 어미 양이 걱정스레 오갑니다. 왕자는 그 새끼 양을 목에 얹고 말합니다.
'T were all as good to ease one beast of grief As sit and watch the sorrows of the world In yonder caverns with the priests who pray.
저 동굴에서 기도하는 사제들과 함께 앉아 세상의 슬픔을 바라만 보는 것보다, 한 마리 짐승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 똑같이 좋은 일이다.
그는 양과 함께 걸어 왕의 궁전까지 갑니다. 양들이 그날 밤 신에게 바쳐질 제물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큰 진리를 찾는 일과 눈앞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일이 서로 갈라져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사색이 아니라 상처 입은 어린 생명을 안아 주는 일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12. 겨자씨를 구하러 간 어머니
제5권의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키사고타미의 일화입니다. 독사에 물려 죽은 아기를 안은 젊은 어머니가 붓다를 찾아와 아이를 살릴 약을 구합니다. 붓다는 한 가지 조건을 말합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아이나 종이 한 번도 죽은 적 없는 집에서 겨자씨 한 줌을 얻어 오라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집집마다 찾아다니지만 어디서도 그런 집을 찾지 못합니다.
Ah, sir! I could not find a single house Where there was mustard-seed and none had died!
아, 선생님! 겨자씨가 있으면서도 아무도 죽지 않은 집은 단 한 집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붓다는 그녀가 찾은 것이 아무도 찾지 못할 쓴 약이라고 말하며 이렇게 위로합니다.
The grief which all hearts share grows less for one.
모든 마음이 함께 나누는 슬픔은 한 사람에게 더 가벼워진다.
이 이야기의 힘은 슬픔을 설명하지 않고 직접 경험하게 한 데 있습니다. 내 슬픔이 나만의 불행이 아니라 모두가 겪는 일임을 알게 될 때, 슬픔은 없어지지 않지만 그 무게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이 시에서 붓다는 "아이를 땅에 묻으라"고 말하며 어머니를 보내 줍니다. 상실 앞에서 가장 잔인한 위로가 아니라 가장 정직한 위로를 건네는 장면으로 읽힙니다.
13. 피로 영혼을 씻을 수 없다
왕자는 양 떼를 데리고 빔비사라 왕의 제사 자리에 이르러 희생 제물로 묶인 염소의 결박을 풀어 줍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shall one wash his spirit clean By blood; nor gladden gods, being good, with blood
누구도 피로 자기 영혼을 깨끗이 씻을 수 없으며, 선한 신들을 피로 기쁘게 할 수도 없다.
그는 모든 생명이 서로 이어져 있고 제물이 된 짐승들은 젖과 털을 바치며 사람의 손을 믿어 온 존재라고 말합니다. 또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홀로 져야 하며, 죄를 무고한 짐승의 이마에 얹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제들은 제단의 불을 흩어 놓고, 다음 날 왕은 앞으로는 아무도 생명의 피를 흘리거나 고기를 먹지 않으라는 칙령을 내립니다. 그 칙령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납니다.
Seeing that knowledge grows, and life is one, And mercy cometh to the merciful.
앎이 자라고 생명은 하나이며, 자비는 자비로운 이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보았기에.
이 대목은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폭력의 의례를 말과 연민으로 멈추게 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이 시의 이상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14. 피에는 계급이 없다
제6권에서 지칠 대로 지친 왕자가 쓰러지자 목동 소년이 그에게 염소젖을 마시게 하려다 머뭇거립니다. 자신이 하층 계급이어서 손이 닿으면 더럽혀질 것이라는 걱정 때문입니다. 왕자는 대답합니다.
There is no caste in blood, Which runneth of one hue, nor caste in tears, Which trickle salt with all
피에는 계급이 없다. 피는 한 가지 색으로 흐르고, 눈물에도 계급이 없다. 눈물은 누구에게나 짜다.
그리고 사람이 이마에 계급의 표식을 달고 태어나지도, 가슴에 성스러운 끈을 두르고 태어나지도 않는다고 덧붙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옳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두 번 태어난 사람이고,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신분 제도가 엄격했던 사회에서 사람의 가치를 태생이 아니라 행위로 판단한다는 불교의 평등 정신을 보여 줍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출신이나 배경으로 사람을 판단하려는 습관을 돌아보게 하는 목소리입니다.
15. 줄을 너무 팽팽하게도 너무 느슨하게도 말라
몸이 쇠약해져 쓰러질 지경이 된 왕자는 숲길에서 무희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The string o'erstretched breaks, and the music flies, The string o'erslack is dumb, and music dies; Tune us the sitar neither low nor high.
너무 당긴 줄은 끊어져 음악이 날아가고, 너무 느슨한 줄은 소리가 나지 않아 음악이 죽는다. 시타르를 너무 낮게도 너무 높게도 조율하지 말라.
왕자는 이 노래가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알아듣습니다. 그는 자신이 삶의 줄을 너무 세게 당겨 구원의 음악을 만들려 했다고 인정합니다. 이것이 불교의 중도입니다. 쾌락에 빠지는 것도, 고행으로 몸을 해치는 것도 극단이라는 것입니다. 삶에서 무엇이든 지나치게 몰아붙이거나 지나치게 놓아 버릴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이 비유는 일과 공부, 건강을 돌보는 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시는 이 가르침을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지나가는 무희들의 입에서 나오게 한다는 점에서도 아름답습니다.
16. 신이 아니라 형제라고 말한 사람
수자타는 아이를 낳게 해 준 숲의 신에게 바치려고 정성껏 만든 우유죽을 들고 와 나무 아래 앉은 왕자를 신으로 오해합니다. 왕자는 그 음식을 받아 먹고 기운을 되찾은 뒤 이렇게 말합니다.
For thou hast holpen me who am no God, But one thy Brother
그대는 신이 아니라 그대의 형제일 뿐인 나를 도왔다.
수자타는 삶이 자기에게는 충분히 달고 가정의 작은 행복으로 만족한다고 말하고, 왕자는 그녀의 단순한 지혜를 가르치는 이들을 가르치는 지혜라고 높입니다. 모든 이가 같은 속도로 같은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니며 평범한 삶에서 선을 쌓는 일도 소중하다는 인정입니다. 이 만남은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도움을 받아 일어서는 한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오랜 굶주림 끝에 한 그릇의 죽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이 시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입니다.
17. 첫 번째 유혹, "나"라는 죄
왕자는 보리수 아래에 앉습니다. 마왕 마라는 그의 깨달음을 막으려고 열 가지 죄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가장 먼저 온 것은 "나"라는 죄입니다.
The Sin of Self, who in the Universe As in a mirror sees her fond face shown, And crying "I" would have the world say "I,"
우주를 거울삼아 거기서 사랑스러운 자기 얼굴만 보며, "나"라고 외치고는 세상도 "나"라고 말하기를 바라는 자아의 죄.
자아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네가 붓다라면 다른 이들은 어둠 속에서 더듬게 두고 너 혼자 변하지 않는 안락을 누려라. 붓다는 단호하게 답합니다. 그 말에서 옳은 것은 천박하고 틀린 것은 저주이니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이나 속이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은 깨달음의 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적이 바깥의 악마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임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의심과 맹목적 의례, 쾌락, 분노, 교만이 차례로 와서 같은 방식으로 그를 시험합니다.
18. 의심이라는 속삭임과 의례라는 안전망
두 번째 유혹은 의심입니다. 의심은 모든 것이 허상이고 허상을 아는 지식조차 헛되니 사람을 도울 길도 없다고 말하며 포기를 권합니다. 세 번째 유혹은 믿음의 얼굴을 한 의례의 여인입니다. 그녀는 신성한 경전과 신들을 버리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붓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What thou bidd'st me keep Is form which passes, but the free Truth stands
네가 내게 지키라고 하는 것은 지나가는 형식일 뿐이고, 자유로운 진리는 그대로 서 있다.
의심은 지식을 파괴하려는 힘으로, 의례는 믿음으로 가장한 힘으로 나타납니다. 둘 다 진리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리에 이르는 길을 막는다는 것이 시의 진단입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질문을 포기하게 만드는 냉소와, 생각 없이 형식에 안주하게 만드는 관성은 모두 오래된 적입니다. 둘 사이에서 깨어 있는 눈으로 진리를 찾는 일이 이 장면의 주제입니다.
19.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한 환영
다음에는 쾌락의 왕 카마가 아름다운 무희들을 이끌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도로 야소다라의 모습을 한 환영이 눈물을 흘리며 "돌아와요, 왕자님"이라고 호소합니다. 왕자는 환영을 저주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Yet as thou art, so are all earthly shows. Melt to thy void again!
네가 그러하듯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그러하다. 너의 공(空)으로 다시 녹아 사라져라!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붓다가 유혹하는 존재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환영임을 알아보고 담담하게 돌려보냅니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에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미워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 이 장면에 담겨 있습니다. 증오와 분노의 유혹도 같은 방식으로 지나갑니다.
20. 새 삶은 옛 삶이 뿌린 것을 거둔다
폭풍 같은 유혹이 지나간 새벽, 왕자는 세 단계의 앎에 이릅니다. 첫 번째는 과거의 모든 삶을 보는 것이었고, 거기서 업의 원리를 깨닫습니다.
How new life reaps what the old life did sow; How where its march breaks off its march begins
새로운 삶이 옛 삶이 뿌린 것을 거두는지, 한 삶의 행진이 끊긴 곳에서 다음 행진이 시작되는지.
그는 삶마다 선이 더 큰 선을, 악이 더 큰 악을 낳으며, 죽음은 장부의 대변과 차변을 정리하는 일일 뿐이라고 봅니다. 이 시가 말하는 업은 불교 교리를 아널드의 언어로 옮긴 것이어서 회계의 이미지가 자주 나옵니다. 다만 현대의 독자에게는 이 원리가 전생을 믿어야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행동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단순한 인과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 우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법
두 번째 앎은 우주 전체의 질서를 보는 눈입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세계와 별이 서로를 도는 광대한 광경을 보고 그 모든 것 뒤에 있는 하나의 움직임을 깨닫습니다.
A Power which builds, unbuilds, and builds again, Ruling all things accordant to the rule Of virtue, which is beauty, truth, and use.
짓고 허물고 다시 짓는 하나의 힘이 있으니, 모든 것을 덕의 법칙에 맞게 다스린다. 그 덕은 곧 아름다움, 진리, 쓸모이다.
그 힘 아래에서는 벌레도 제 본성에 순종하면 잘하는 것이고, 매는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 오면 잘하는 것이며, 사람은 서로를 해치지 않고 돕고자 하는 뜻으로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 시는 노래합니다. 이 대목은 아널드가 진화와 도덕적 질서에 대한 당대의 감각을 불교에 겹쳐 쓴 부분으로 읽히며, 불교 원전의 표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주의 질서가 선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낙관은 이 시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정서입니다.
22. 괴로움의 사슬과 갈증
마지막 새벽의 앎이 괴로움의 비밀입니다. 왕자는 괴로움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풀어냅니다. 무지가 경향을 낳고, 경향이 이름과 형태를 낳고, 감각이 열리고, 감각이 갈애를 낳습니다.
Thus Life's thirst quenches itself With draughts which double thirst
그리하여 삶의 목마름은 목마름을 두 배로 만드는 음료로 스스로를 달랜다.
쾌락과 야망, 부와 명예, 지배와 사랑이 모두 이 갈증을 채우려는 시도이지만, 채울수록 갈증이 더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갈증의 뿌리를 뽑아 감각을 거짓된 현상에 더 이상 먹이지 않고, 구하지도 다투지도 해치지도 않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이 설명은 어렵지만 일상의 경험과 맞닿아 있습니다. 더 가지면 만족할 것 같았는데 더 가질수록 더 바라게 되는 마음이 바로 이 갈증입니다.
23. 집을 짓는 자를 찾아낸 새벽
깨달음의 순간에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 노래는 『담마파다』의 한 구절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Thou Builder of this Tabernacle--Thou! I Know Thee! Never Shalt Thou Build Again These Walls of Pain
이 장막을 짓는 자여, 바로 그대로구나! 나는 그대를 알아보았다. 그대는 다시는 이 고통의 벽을 짓지 못하리라.
이어서 그는 지붕의 들보가 부서지고 용마루가 갈라졌다고 말하며, 미혹이 그것을 만들었고 자신은 그것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합니다. 여러 생을 거치며 몸이라는 집을 짓게 만든 것이 바로 갈애였음을 알아차렸다는 뜻입니다. 이 노래는 깨달음을 극적인 환영이 아니라 오래 괴로움을 만들어 온 주범을 알아보는 순간으로 그립니다.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지목하는 순간에 비로소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이 장면은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24. 말하지 않으려던 마음을 돌린 청원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얼마간 이 진리를 세상에 전할지 망설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죄를 사랑하고 감각의 속임수에 매달려 있어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새장 속의 새가 열린 문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다고 시는 비유합니다. 그때 세상이 신음하듯 "나는 길을 잃었다"라는 소리와 "법을 말씀해 주소서"라는 청원이 들려옵니다. 붓다는 연꽃 연못을 바라보는 태양처럼 사람들을 바라보고 결심합니다.
Yea, I preach! Whoso will listen let him learn the Law.
그렇다, 나는 설법하겠다! 귀 기울이려는 이는 누구든 법을 배우게 하라.
이 장면은 깨달음이 끝이 아니라 전달의 시작임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아직 피지 않은 연꽃이 있어도, 귀를 열 준비가 된 이가 있는 한 말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어려운 것을 이해한 사람이 그것을 설명하는 수고를 선택하는 순간이 이 대목에 담겨 있습니다.
25.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과 용서
제7권은 붓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슈도다나 왕은 아들이 거지 같은 모습으로 탁발하며 돌아왔다는 소식에 분노로 말을 달려 나옵니다. 그러나 붓다의 평온한 눈을 마주한 순간 분노가 풀리고 맙니다. 야소다라는 그의 발치에 엎드려 흐느낍니다. 붓다는 훗날 이 포옹을 받아들인 이유를 묻는 이에게 이렇게 답합니다.
Free are ye rather that your freedom spread By patient winning and sweet wisdom's skill.
그대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히려 그 자유가 인내 어린 설득과 부드러운 지혜의 솜씨로 퍼져 나가기 위해서이다.
그는 더 큰 사랑은 더 작은 사랑을 견디며 그것이 더 쉬운 높이로 오르도록 돕는다고 말합니다. 해방된 사람이 아직 묶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 자유를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도 덧붙입니다. 이 말은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을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를 알려 줍니다. 앎이 사람을 높이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자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26. 괴로움의 진리, 사랑에도 장례의 불길이 닿는다
제8권은 붓다가 고향에서 설한 긴 가르침입니다. 사성제를 차례로 풀어 가는 시구는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읽힌 대목입니다. 첫째 진리는 괴로움입니다. 시는 삶의 모든 단계가 아픔으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Sweet is fond Love, but funeral-flames must kiss The breasts which pillow and the lips which cling
정든 사랑은 달콤하지만 장례의 불길이 품어 주던 가슴과 입맞추던 입술에 닿고야 만다.
용맹한 힘도 마지막에는 독수리가 그 뼈를 쪼고, 아름다운 땅 위에서 숲속의 생명은 서로 죽이며 살고, 푸른 하늘은 굶주린 이들이 울부짖어도 한 방울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시는 이어 갑니다. 이 부분은 읽기에 아프지만 목적은 절망이 아니라 진단입니다. 병을 정확히 보아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즐거움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요청입니다.
27.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 그리고 그 소멸
둘째 진리는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감각이 대상과 만나 열정의 불꽃을 일으키고, 그 불꽃이 갈애가 됩니다.
So flameth Trishna, lust and thirst of things. Eager ye cleave to shadows, dote on dreams.
그렇게 갈애, 곧 사물에 대한 욕정과 갈증이 타오른다. 그대들은 그림자에 열심히 매달리고 꿈에 빠져든다.
그리고 셋째 진리는 괴로움의 소멸입니다. 자기 사랑과 삶에 대한 욕망을 이기고, 뿌리 깊은 열정을 가슴에서 뽑으며, 안쪽의 다툼을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시는 이 상태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Then Sorrow ends, for Life and Death have ceased; How should lamps flicker when their oil is spent?
그러면 삶과 죽음이 그쳤기에 슬픔도 끝난다. 기름이 다 한 등잔의 불꽃이 어찌 깜박이겠는가?
사랑 대신 영원한 아름다움을 껴안고, 영광 대신 스스로의 주인이 되며, 쾌락 대신 신들을 넘어서 사는 것,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재산 대신 완벽한 봉사와 자선, 부드러운 말, 흠 없는 나날의 보물을 쌓는 것이 이 상태의 내용으로 제시됩니다.
28. 누구나 갈 수 있는 길, 쉬어 가며 오르는 산
넷째 진리는 팔정도입니다. 시는 이 길을 산에 오르는 길에 비유합니다.
Strong limbs may dare the rugged road which storms, Soaring and perilous, the mountain's breast; The weak must wind from slower ledge to ledge With many a place of rest.
튼튼한 다리는 산의 가슴을 향해 솟구치는 험한 길에 도전할 수 있지만, 약한 이들은 쉼터가 많은 느린 바위턱을 돌아 돌아 올라야 한다.
이어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굳센 영혼은 서두르고 약한 영혼은 머뭇거리지만 모두가 햇빛 비치는 눈 덮인 봉우리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시는 팔정도의 앞의 네 가지, 곧 바른 견해와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행위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 줍니다. 바른 말은 이렇게 설명됩니다.
Govern the lips As they were palace-doors, the King within
입술을 마치 궁전의 문처럼 다스려라. 그 안에 왕이 계시기 때문이다.
말을 문 앞에서 지키는 일이 마음속의 왕을 대접하는 일이라는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어떤 속도로 오르든 같은 봉우리에 이른다는 믿음은, 자기 속도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29. 스스로를 가두고 스스로 풀어낸다
제8권의 가장 강렬한 대목은 붓다가 신들이나 외부의 힘에 의존하지 말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기도해 보았자 어둠은 밝아지지 않고 침묵은 대답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이렇게 선언합니다.
Within yourselves deliverance must be sought; Each man his prison makes.
해탈은 그대들 자신 안에서 구해야 한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감옥을 만든다.
이어서 그는 스스로 괴로움을 만든다는 사실을 더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Ye suffer from yourselves. None else compels None other holds you that ye live and die
그대들은 스스로에게서 괴로움을 얻는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으며, 누구도 그대들을 붙들어 살고 죽게 하지 않는다.
이 말은 책임을 묻는 말이기도 하고 희망을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괴로움이 자기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 사슬을 푸는 열쇠도 자기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시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업의 원리를 농사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깨와 옥수수를 심으면 깨와 옥수수를 거두듯, 사람은 자기가 심은 것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좋은 씨앗을 심고 독초를 뽑는 일이 곧 삶을 돌보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30. 열반은 소멸도 삶도 아니고, 이슬이 바다로 스며든다
시의 마지막은 열반에 대한 말입니다. 아널드는 열반을 단순한 소멸로 이해하는 것과 단순한 삶으로 이해하는 것을 모두 경계합니다.
If any teach NIRVANA is to cease, Say unto such they lie. If any teach NIRVANA is to live, Say unto such they err
누가 열반이 소멸이라고 가르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한다고 말하라. 누가 열반이 사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면, 그는 틀렸다고 말하라.
열반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쪽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상태, 곧 구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얻고 자신을 잊음으로써 온 우주가 "나"가 되는 상태로 그려집니다. 시는 이 모든 이야기를 한 줄의 이미지로 마무리합니다.
The Dewdrop Slips Into The Shining Sea!
이슬 한 방울이 빛나는 바다로 스며든다!
이 이미지는 이 책의 가장 널리 알려진 마지막 구절입니다. 다만 이 표현은 열반을 개인이 바다에 녹아드는 것으로 그리는 아널드의 해석이어서 불교 전통의 열반 이해와는 차이가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가 남긴 인상은 분명합니다. 작은 내가 더 큰 것 속으로 풀리는 평화, 그것이 이 시가 붓다의 가르침에서 읽어 낸 귀결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시의 형식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보다 장면 중심으로 골라 읽기를 권합니다.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제1권의 백조 이야기, 제3권의 네 가지 광경(노인과 병자와 죽음), 제4권의 출가의 밤, 제5권의 키사고타미 이야기를 읽어 보세요. 붓다의 삶의 전환점이 이 네 곳에 모여 있습니다. 가르침이 궁금하다면 제6권의 마라의 유혹과 깨달음의 밤, 제8권의 설법을 읽으면 됩니다. 제8권은 사성제와 업, 팔정도를 시구로 풀어 놓아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입니다.
읽을 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 시는 불교 경전의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 영국 시인이 붓다의 삶을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그래서 윤회(輪廻)와 업을 설명하는 방식, 열반에 대한 표현, 신과 우주의 질서에 대한 관점에는 아널드 자신의 세계관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불교 교리를 정확히 알고 싶다면 『담마파다』나 『금강경』 같은 경전을 함께 읽어 보세요. 이 시의 가장 큰 힘은 교리 설명이 아니라, 한 사람이 괴로움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찾으려 애쓰는 이야기 자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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