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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AD 413–426

The City of God, Volume I

신국론 1권

성 아우구스티누스 Saint Augustine of Hippo (354–430)

Justice being taken away, then, what are kingdoms but great robberies? For what are robberies themselves, but little kingdoms?

정의가 사라진다면 왕국은 큰 강도 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강도 떼라는 것도 작은 왕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They could indeed neither deliver nor lose that good which made themselves good.

그들은 자신들을 선하게 만든 그 선을 넘겨줄 수도, 잃을 수도 없었다.

한눈에 보기

도시가 무너지는 때에도 잃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정의 없는 권력은 큰 도적 떼에 가깝고, 시련은 사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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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 요점

Saint Augustine of Hippo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나 수사학 교사로 지내다가 386년 밀라노에서 그리스도교로 회심했고, 396년 무렵 히포의 주교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방황과 회심을 고백한 『고백록』을 쓴 사람이 이 책의 저자입니다. 그러나 『신국론』은 그의 가장 개인적인 책과는 정반대의 책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한 제국의 운명을 묻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쓰이게 된 계기는 410년 8월 알라리크가 이끄는 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한 사건이었습니다. 800년 가까이 외적의 손에 떨어진 적이 없던 도시가 무너지자 로마 세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교도들은 로마가 옛 신들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비난에 답하려고 413년부터 426년 무렵까지 약 13년에 걸쳐 스물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책 첫머리의 헌사에는 이 일을 권유한 친구 마르켈리누스에게 보내는 말이 실려 있습니다.

『신국론』의 앞 열 권은 이교도의 비난을 반박하고, 뒤 열두 권은 "두 도시", 곧 신의 도시와 땅의 도시가 어떻게 시작해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끝나는지를 다룹니다. 이 글에서 읽는 것은 앞 열 권을 담은 1권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로마 제국의 역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 고난 속에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성찰, 정의 없는 권력에 대한 유명한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30년 8월 28일 반달족이 히포를 포위한 가운데 세상을 떠났고, 제국이 무너져 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신학서이자 역사서이면서 동시에 정치철학서입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쓰였지만, 권력의 정당성과 고난의 의미, 국가와 정의의 관계를 다룬 대목은 종교와 상관없이 오래 읽혀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책의 윤곽을 보고, 『신국론』 1권이 남긴 생각을 열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신학적 논증보다는 고난과 권력, 정의에 대한 통찰을 중심으로 읽어 보려 합니다.

줄거리

제1권은 로마 약탈 직후의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이교도들이 그리스도교 탓이라고 비난한 재난을 아우구스티누스는 먼저 살펴봅니다. 야만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교회로 피신한 사람들을 살려 주었다는 사실과, 전쟁에서는 늘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함께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짚습니다. 이어서 로마 사람들이 정말 옛 신들 덕분에 번영했는지를 따져 묻습니다.

제2권에서 제5권은 로마의 역사 속에서 그 신들이 사람들을 지켜 주었는지, 로마의 번영이 신들 때문이었는지를 검토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가 약탈당하기 훨씬 전에도 내전과 부패와 재난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 주고, 로마의 번영이 신들의 호의가 아니라 다른 원인에 있었다고 논증합니다. 제6권에서 제10권은 사후의 행복을 위해 신들을 섬겨야 한다는 주장을 검토하며, 로마 종교와 플라톤 학파 철학을 차례로 분석합니다. 마지막 제10권은 참된 제사가 무엇인지를 말하며 끝납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이 책의 주제는 영광스러운 신의 도시다

『신국론』은 이 말로 시작합니다. 그는 책의 주제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를 한 문장에 담습니다.

The glorious city of God is my theme in this work, which you, my dearest son Marcellinus, suggested, and which is due to you by my promise.

영광스러운 신의 도시가 이 작품의 주제이다. 사랑하는 아들 마르켈리누스여, 이 일은 그대가 제안했고 내가 그대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는 신의 도시가 지금은 이 덧없는 시간 속에서 믿음으로 살며 불경한 이들 사이에서 나그네처럼 지내지만, 언젠가 영원한 거처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도시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은 "의가 심판으로 돌아올 때"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도시의 몰락 앞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를 이야기하는 것, 이 책 전체의 방향이 첫 문단에 담겨 있습니다.

2. 교만은 거스르고 겸손은 은총을 얻는다

서문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책이 설득해야 할 가장 어려운 대상을 "교만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내세우는 덕이 겸손입니다.

God resisteth the proud, but giveth grace unto the humble.

하느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총을 주신다.

그는 겸손이 인간적인 우월감으로가 아니라 신의 은총으로 사람을 땅의 모든 높은 지위 위로 올린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성경의 구절이지만, 그가 이 책에서 두 도시를 가르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결국 교만과 겸손이라는 점을 미리 보여 줍니다. 가장 높이 오른 로마가 가장 크게 무너진 이유를 교만에서 찾는 시선이 이 문장 속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3. 땅의 도시는 지배하려는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문에서 땅의 도시, 곧 로마를 비롯한 세속의 나라들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로마는 많은 민족의 주인이지만 정작 자신은 지배하려는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The earthly city, which, though it be mistress of the nations, is itself ruled by its lust of rule.

땅의 도시는 여러 민족의 주인이면서도 정작 자신은 지배하려는 욕망에 지배당한다.

이 문장은 제국의 위대함에 대한 가장 신랄한 해석입니다. 남을 다스리는 힘이 자기 욕망에는 오히려 휘둘린다는 역설입니다. 오늘날에도 권력을 쥔 사람이 가장 먼저 시험받는 것은 자기 안의 욕망이라는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권력을 현실로 보았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권력의 내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4. 두 도시는 이 세상에서 뒤섞여 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개념이 "두 도시"입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두 도시를 눈에 보이는 두 나라로 나누지 않고, 이 세상에서 서로 엉켜 있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These two cities are entangled together in this world, and intermixed until the last judgment effect their separation.

이 두 도시는 이 세상에서 서로 얽혀 있고, 마지막 심판이 둘을 가르기 전까지는 뒤섞여 있다.

그는 지금은 적처럼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자기도 모르게 장차 친구가 될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쉽게 나누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선과 악의 경계는 국가나 집단의 경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안에서 갈라진다는 생각입니다. 누가 어느 도시에 속하는지는 이 세상에서는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점이 이 책이 오래 읽힌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5. 해는 선한 자와 악한 자 모두에게 뜬다

로마가 약탈당했을 때 사람들은 "왜 하필 우리에게"를 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은혜와 재난이 선한 사람에게도 악한 사람에게도 똑같이 주어진다는 점부터 짚습니다.

Him who daily "maketh His sun to rise on the evil and on the good, and sendeth rain on the just and on the unjust."

날마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에게 비를 내리시는" 분.

그는 세상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선악과 상관없이 두루 나누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재난을 당했다고 곧 벌을 받은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되고, 번영했다고 곧 복을 받은 것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이 잘되면 덕이 있어서이고 일이 꼬이면 죄가 있어서라는 단순한 해석을 허물어뜨리는 문장입니다.

6. 같은 불이 금은 빛나게 하고 쭉정이는 연기가 나게 한다

그렇다면 같은 고난을 겪어도 사람마다 왜 다르게 나타나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질문에 가장 아름다운 비유로 답합니다.

For as the same fire causes gold to glow brightly, and chaff to smoke; and under the same flail the straw is beaten small, while the grain is cleansed.

같은 불이 금은 밝게 빛나게 하고 쭉정이는 연기가 나게 하며, 같은 도리깨 아래에서 짚은 잘게 부서지는 반면 낟알은 깨끗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압력으로 짜내도 찌꺼기는 기름과 섞이지 않는다는 비유를 덧붙이며, 같은 환난이 선한 사람은 시험하고 정화하고 맑게 하는 반면 악한 사람은 정죄하고 무너뜨린다고 말합니다. 같은 고난 앞에서 악한 사람은 신을 미워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기도하고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시련은 사람을 만들기보다 드러낸다는 이 통찰은 시대를 넘어 쓰입니다.

7. 사람을 선하게 만든 것은 빼앗기지 않는다

약탈로 모든 재산을 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묻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잃었느냐고요.

They could indeed neither deliver nor lose that good which made themselves good.

그들은 자신들을 선하게 만든 그 선을 넘겨줄 수도, 잃을 수도 없었다.

그는 그들의 믿음과 경건함, 곧 마음속의 감추어진 사람의 소유는 잃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진짜 재산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만족을 안 경건함이 큰 이득이고,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에 빠진다는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합니다. 물건이 아니라 자신을 선하게 만든 것이 진짜 자산이라는 이 말은, 소로나 세네카의 가르침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8. 잃고 나서야 배우는 올바른 쓰임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경고에 따라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둔 사람은 약탈에도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 경고를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도 잃음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Those who are now repenting that they did not obey him have learnt the right use of earthly goods, if not by the wisdom which would have prevented their loss, at least by the experience which follows it.

그분께 순종하지 않았음을 이제 뉘우치는 사람들은, 잃지 않도록 막아 줄 지혜로는 아니더라도 잃은 뒤에 따라오는 경험으로 땅의 재물을 올바르게 쓰는 법을 배웠다.

지혜가 있었다면 미리 막았을 일을 경험이 뒤늦게 가르쳐 준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어서 고문을 받으면서도 재산을 내놓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 있다면, 그가 진정으로 선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다소 냉정한 이 말은, 소유에 매달린 마음이 가장 먼저 시험받는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잃음이 곧 가르침이 될 수 있다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9. 굶주림도 좋은 쓰임으로 바꾼다

포위된 도시에서 굶주림이 퍼지자 이교도들은 이것도 그리스도교 탓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굶주림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But this, too, the faithful turned to good uses by a pious endurance of it.

그러나 신실한 이들은 이것도 경건한 인내로 견디며 좋은 쓰임으로 바꾸었다.

그는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은 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났고, 허기만 겪은 사람은 더 검소하게 사는 법과 더 오래 금식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가혹한 설명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요점은 같은 사건이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피할 수 없을 때 그것을 어떻게 쓸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10. 정의 없는 왕국은 큰 강도 떼다

『신국론』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문장은 제4권에 있습니다. 로마의 위대함을 칭송하던 사람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국가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묻습니다.

Justice being taken away, then, what are kingdoms but great robberies? For what are robberies themselves, but little kingdoms?

정의가 사라진다면 왕국은 큰 강도 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강도 떼라는 것도 작은 왕국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강도 떼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우두머리의 권위 아래 다스려지며, 약속으로 결속되고, 전리품을 정해진 법으로 나눈다고 설명합니다. 이 악이 커져서 거처를 정하고 도시를 차지하고 민족을 복속시키면 그것은 왕국이라는 이름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정의가 없다면 국가와 도적 떼를 가르는 것은 크기뿐이라는 이 날카로운 지적은 오늘날에도 권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11. 작은 배로 하면 해적, 큰 함대로 하면 황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생각을 키케로가 전한 이야기로 보여 줍니다. 사로잡힌 해적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한 대답입니다.

What thou meanest by seizing the whole earth; but because I do it with a petty ship, I am called a robber, whilst thou who dost it with a great fleet art styled emperor.

당신이 온 땅을 차지하는 일과 같은 일입니다. 다만 나는 작은 배로 하기 때문에 도적이라 불리고, 당신은 큰 함대로 하기 때문에 황제라 불릴 뿐입니다.

대왕이 바다를 적대적으로 차지하는 이유를 묻자 해적은 대담한 자부심으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대답이 적절하고 참되다고 평합니다. 같은 행위도 규모와 승리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현실을 한 문장으로 보여 주는 이 일화는, 권력의 정당성이 힘이 아니라 정의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12. 정복당한 신들은 누구를 지켜 주었는가

이교도들은 로마가 옛 신들을 섬겼기에 번영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를 가져와 그 주장을 반박합니다.

Is it not clear that the gods (whom he does not scruple to call "conquered") were rather entrusted to Æneas than he to them?

시인이 "정복당했다"고 부르기를 망설이지 않는 그 신들이, 아이네이아스에게 맡겨진 것이지 아이네이아스가 신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 않은가?

트로이가 함락될 때 신들의 상을 품에 안고 도망친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신들이 사람을 지킨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신들을 지킨 셈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신들이 로마를 지켜 준다고 믿을 수 있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집니다. 신을 이용해 자기 안녕을 얻으려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대목입니다.

13. 참된 제사는 상한 마음이다

제10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엇이 신에게 드려야 할 진짜 제사인지를 묻습니다. 그는 성경의 시편을 인용하며 이렇게 답합니다.

The sacrifice of God is a broken heart: a heart contrite and humble God will not despise.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는 부서진 마음이다. 뉘우치고 낮아진 마음을 하느님은 업신여기지 않으신다.

그는 시편이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바로 그 구절에서 신이 제사를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합니다. 짐승을 잡는 제사가 아니라 뉘우치는 마음의 제사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이나 예물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 결론은, 앞의 모든 논의를 하나로 묶습니다. 로마의 신들에게 바치던 화려한 제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반박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신국론』은 매우 긴 책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는 어렵습니다. 1권 가운데 가장 읽기 쉬운 곳은 서문과 제1권, 그리고 제4권의 "정의 없는 왕국은 강도 떼" 대목, 제10권의 참된 제사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문장은 대부분 이 부분에서 나왔습니다. 로마사와 이교 신화에 대한 긴 논의는 건너뛰어도 큰 흐름은 놓치지 않습니다.

이 번역은 19세기 영어로, 문장이 길고 옛 표현이 많아서 처음에는 낯설 수 있습니다. 신학적 주장에 동의하는지와 상관없이, 고난의 의미와 권력의 정당성을 묻는 대목만 골라 읽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마음에 남는 한 문장을 골라 오늘의 뉴스나 일상에 대입해 보세요. 이 책이 쓰인 계기가 제국이 무너지던 때였다는 점을 떠올리면, 어느 시대의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은 질문이 이 책에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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