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3rd century AD (생애 c. 570–490 BC)
Pythagoras
피타고라스
후대의 전승이 전하는 생애와 가르침
Do not devour your heart.
네 심장을 먹어 치우지 말라.
virtue is harmony, and health, and universal good, and God; on which account everything owes its existence and consistency to harmony.
덕은 조화이고 건강이고 보편적인 선이며 신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조화에 힘입어 존재하고 일관성을 갖는다.
한눈에 보기
직접 쓴 글이 하나도 남지 않은 고대 철학자. 그의 이름은 후대의 전기와 전설, 제자들의 전승으로만 전해진다. 이 글은 그 전승에 담긴 가르침을 스물네 가지로 읽으며, 무엇이 전설이고 무엇이 확실한지도 함께 가른다.
비슷한 책
- 플라톤 The Republic (국가)
- 에피쿠로스 Epicurus (에피쿠로스)
- 세네카 Seneca's Morals of a Happy Life (세네카의 행복론)
한 권 요점
Pythagoras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6세기 후반에 활동한 그리스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직각삼각형의 정리에 이름을 남겼고, "만물은 수"라는 생각과 영혼이 몸을 바꾸어 옮겨 간다는 믿음, 그리고 음악의 조화로 우주를 설명하려는 시도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인물에게는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그가 직접 쓴 책은 한 권도 전해지지 않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과 후대 저술가들의 기록을 통해서만 전해지며, 그 기록들도 수백 년 뒤에 쓰인 것이 많습니다.
이 글이 읽는 자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3세기경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그리스 철학자 열전』의 제8권 「피타고라스 전」입니다. 다른 하나는 3~4세기의 철학자 이암블리코스가 쓴 『피타고라스의 생애』입니다. 두 책은 모두 피타고라스가 죽고 700~800년이 지난 뒤에 쓰였고, 전설과 사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은 여기에 실린 이야기를 "피타고라스가 이렇게 말했다"가 아니라 "후대의 전승이 이렇게 전한다"는 방식으로 읽습니다. 그가 실제로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부분이 불확실합니다.
그래도 이 전승들을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여기에는 고대 사람들이 피타고라스에게서 어떤 삶의 방식을 기대하고 존경했는지가 담겨 있습니다. 침묵과 절제, 우정, 정의, 매일 저녁의 자기 점검, 수와 음악에 대한 경이로움입니다. 이 글은 그 모습을 소개하면서, 확실한 것과 의심스러운 것의 경계를 계속 표시합니다.
줄거리
전승이 그리는 피타고라스의 생애는 이렇습니다. 그는 에게해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여러 곳을 여행하며 배운 뒤, 사모스의 폭군을 피해 이탈리아 남부의 크로톤에 정착합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의 공동체를 이루어 엄격한 규율과 우정 속에서 살며 공동체의 정치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적대 세력의 공격을 받아 공동체는 흩어지고, 그는 최후를 맞습니다. 그 최후에 대해서는 전승마다 이야기가 다릅니다.
아래 스물네 가지는 이 생애와 가르침을 따라 고른 것입니다. 인용 사이사이에 어느 대목이 전설이고 어느 대목이 비교적 믿을 만한지를 짚어 두었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책을 남기지 않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먼저 피타고라스에게 저술이 있었는지부터 따집니다.
Now, some people say that Pythagoras did not leave behind him a single book; but they talk foolishly
어떤 사람들은 피타고라스가 책을 단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어리석게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피타고라스가 교육과 정치와 자연학에 대한 책 세 권을 썼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곧 지금 전해지는 책은 제자 뤼시스의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으로 쓴 위작이 많았다는 말도 함께 나옵니다. 이 대목은 이미 고대 사람들도 피타고라스의 저술을 확신하지 못했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피타고라스가 직접 쓴 글이 전해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가르침이 처음 글로 공개된 것은 제자 필롤라오스에 이르러서였다고 합니다.
2. 가장 박식한 사람, 그리고 조롱
같은 대목에서 디오게네스는 헤라클레이토스가 피타고라스를 어떻게 평했는지 전합니다.
Pythagoras, the son of Mnesarchus, was the most learned of all men in history
므네사르코스의 아들 피타고라스는 탐구에 있어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박식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계속해서 그가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 골라 모아 자신의 지혜를 만들었으며 "해로운 기술"이라고 비꼬았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언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비판적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처음부터 그는 존경과 조롱을 함께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시인 크세노파네스와 티몬 같은 사람들도 그를 풍자했습니다.
3. 크로톤의 공동체
전승은 피타고라스가 크로톤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이렇게 전합니다.
And there, having given laws to the Italians, he gained a very high reputation, together with his scholars, who were about three hundred in number, and governed the republic in a most excellent manner
그곳에서 그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법을 주어 매우 높은 명성을 얻었고, 약 삼백 명의 제자들과 함께 나라를 가장 훌륭하게 다스렸다.
이 공동체는 철학 학교이면서 종교 단체이자 정치 세력이기도 했던 것으로 그려집니다. 이후 입법자 잘레우코스와 카론다스가 그의 가르침을 받은 인물로 꼽힙니다. 다만 이 서술에는 이상화가 섞여 있고, 공동체의 정확한 성격과 규모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철학이 사적인 취미가 아니라 공동체의 삶을 이끄는 방식이었다는 인상은 이후 플라톤의 『국가』에도 이어집니다.
4. 철학자란 구경꾼이다
전승에 따르면 "철학자"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 피타고라스였습니다. 플리우스의 군주 레온이 그가 누구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A philosopher.
철학자입니다.
그리고 인생을 축제에 비유했다고 합니다.
And as some people came to a festival to contend for the prizes, and others for the purposes of traffic, and the best as spectators; so also in life, the men of slavish dispositions,” said he, “are born hunters after glory and covetousness, but philosophers are seekers after truth.
어떤 사람은 상을 겨루러 축제에 오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오고, 가장 좋은 사람은 구경꾼으로 온다. 인생에서도 노예 같은 성품의 사람은 타고난 명예와 탐욕의 사냥꾼이고, 철학자는 진리를 찾는 사람이다.
이 일화가 실제로 피타고라스 자신의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훗날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학자도 많습니다. 그래도 철학을 지혜를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일로 규정한 이 정의는 이후 서양 철학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상을 다투지 않고 지켜보면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5. 무엇이 좋은지 모르니 특정한 것을 빌지 말라
전승은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을 이렇게 요약하기 시작합니다.
He forbids men to pray for anything in particular for themselves, because they do not know what is good for them.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위해 특정한 것을 달라고 빌지 말라고 금한다. 무엇이 자신에게 좋은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내게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니, 기도는 구체적인 소원 목록이 아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사상은 훗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도 되풀이됩니다. 원하는 것을 얻는 일보다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아는 일이 먼저라는 겸손한 시선입니다. 이어서 그는 술 취함을 파멸과 같다고 말하고 먹고 마시는 데 적절한 양을 넘지 말라고 권합니다.
6. 삶의 네 계절
전승은 사람의 일생을 사계절에 견주었다고 전합니다.
A boy for twenty years; a young man for twenty years; a middle-aged man for twenty years; an old man for twenty years.
소년이 이십 년, 청년이 이십 년, 장년이 이십 년, 노년이 이십 년.
소년기는 봄, 청년기는 여름, 장년기는 가을, 노년기는 겨울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단계로 나누고 각 시기에 맞는 몫을 말하는 이 방식은 이후 여러 문화의 인생관에 닮은꼴이 나타납니다. 나이마다 해야 할 일과 누릴 즐거움이 다르다는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7. 친구의 재산은 공동의 것
우정은 피타고라스 공동체의 중심 가치였습니다.
He was the first person, as Timæus says, who asserted that the property of friends is common, and that friendship is equality.
티마이오스에 따르면 그는 친구의 재산은 공동의 것이며 우정은 평등이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이다.
제자들이 가진 것을 한 곳에 모아 함께 썼다고 전합니다. 이 격언은 오랫동안 그리스 사람들 사이에서 "친구의 것은 모두 공동의 것"이라는 속담처럼 쓰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전승은 또한 우정을 "조화로운 평등"이라 정의합니다. 우정이 감정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의 문제라는 이 시각은 피타고라스 사상의 특징입니다. 앞서 에피쿠로스가 우정을 가장 큰 행복의 조건으로 꼽은 것과 이어서 읽어 볼 만합니다.
8. 오 년의 침묵
제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for five years they kept silence, doing nothing but listen to discourses, and never once seeing Pythagoras, until they were approved
그들은 인정받을 때까지 오 년 동안 침묵을 지키며 강론을 듣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피타고라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뒤에야 그의 집에 들어가 그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암블리코스도 비슷하게 피타고라스 학파가 "침묵하며 듣는 일에 민첩했고, 제대로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칭찬받았다"고 전합니다. 이 전승이 사실이라면 말하기보다 듣기를 먼저 가르친 교육입니다. 정확한 기간과 방식은 전승마다 다르므로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침묵이 수련의 기본이었다는 인상은 일관됩니다.
9. 상징 같은 계율들
피타고라스 학파는 암호처럼 짧은 계율을 전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그 목록을 이렇게 전합니다. "칼로 불을 휘젓지 말라." "되 위에 앉지 말라." "네 심장을 먹어 치우지 말라." "여행할 때는 자기 나라의 경계를 돌아보지 말라." 겉으로는 알 수 없는 말이지만 풀이가 따라옵니다.
Do not stir the fire with a sword.
칼로 불을 휘젓지 말라.
이 말은 권력자의 분노나 교만을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라고 설명됩니다. 되 위에 앉지 말라는 말은 오늘만이 아니라 내일 먹을 것도 함께 걱정하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닿는 계율은 이것입니다.
Do not devour your heart.
네 심장을 먹어 치우지 말라.
풀이는 이렇습니다. 슬픔과 근심으로 자기 영혼을 갉아먹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풀이는 후대의 것이어서 원래 의미와 다를 수 있지만, 짧은 한 줄이 오래 남는 이유를 잘 보여 줍니다.
10. 하루를 돌아보는 저녁의 물음
피타고라스의 수행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하루를 돌아보는 습관입니다. 디오게네스는 제자들이 집에 돌아올 때마다 이 시를 되뇌게 했다고 전합니다.
In what have I transgress’d? What have I done? What that I should have done have I omitted?
나는 어디서 어겼는가? 나는 무엇을 했는가? 해야 했던 것 가운데 무엇을 빠뜨렸는가?
이암블리코스는 같은 습관을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to form a plan in the morning of what ought to be done [in the course of the day,] and at night to call to mind the actions of the day, by this means at one and the same time exploring their conduct, and exercising their memory.
아침에는 그날 해야 할 일을 계획하고, 밤에는 그날 한 일을 떠올려, 이렇게 해서 동시에 자신의 행실을 살피고 기억을 단련한다.
아침에 계획하고 저녁에 되돌아보는 이 습관은 훗날 세네카가 날마다 하루를 점검한 일을 비롯해 스토아 철학과 그리스도교의 양심 성찰로도 이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세 개의 질문은 오늘의 일기와 회고 방식과도 닮았습니다. 잘못한 것과 빠뜨린 것을 함께 묻는다는 점이 특히 균형 잡혀 있습니다.
11. 맹세 없이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되라
전승은 피타고라스가 맹세를 금했다고 전합니다.
That every man ought so to exercise himself, as to be worthy of belief without an oath.
누구든 맹세 없이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를 단련해야 한다.
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일은 평소의 말이 믿을 수 없다는 뜻을 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곧 증거가 되는 삶을 요구한 셈입니다. 이어서 전승은 또 다른 대인 관계의 원칙을 전합니다. 친구를 적으로 만들지 말고 적을 친구로 만들도록 어울리라는 것입니다.
Another, that people should associate with one another in such a way as not to make their friends enemies, but to render their enemies friends.
또 하나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되 친구를 적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적을 친구로 만들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갈등을 이기는 방법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적의를 풀어내는 것이라는 오래된 지혜입니다.
12. 법을 돕고 무법에 맞서라
정의에 관한 가르침도 여러 곳에 나옵니다.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전합니다.
Another was to assist the law, and to make war upon lawlessness.
또 하나는, 법을 돕고 무법에 맞서 싸우라는 것이었다.
그는 소금을 식탁에 올리는 이유도 정의를 떠올리기 위해서라고 풀이합니다. 소금은 닿는 모든 것을 보존하고 가장 맑은 물에서 나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암블리코스는 크로톤 사람들 앞에서 한 연설이라며 시민의 자세를 이렇게 전합니다. 나라를 시민 다수로부터 맡은 공동의 예탁물로 알고, 그것을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도록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설은 후대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지만, 정치와 윤리를 한데 묶어 생각하는 피타고라스 전통의 성격을 보여 줍니다.
13. 화가 날 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분노를 다스리는 일은 전승이 거듭 강조하는 주제입니다.
And when he was angry, he never chastised any one, whether slave or freeman.
그는 화가 났을 때 노예든 자유인이든 누구도 벌하지 않았다.
그가 제자들에게 화가 났을 때는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대목도 함께 나옵니다.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전승은 그가 웃음을 거의 삼갔다고 전합니다. 이런 엄격함은 오늘 독자에게는 지나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할 때 즉시 반응하지 않는 습관은 에픽테토스의 가르침과도 겹쳐서, 고대 철학 전반에 퍼진 지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14. 모든 것은 수와 단위에서 나온다
디오게네스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우주론을 간략히 요약합니다.
That the monad was the beginning of everything. From the monad proceeds an indefinite duad, which is subordinate to the monad as to its cause. That from the monad and the indefinite duad proceed numbers.
모나드, 곧 하나가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것. 모나드에서 한정되지 않은 둘이 나오며, 이 둘은 원인인 모나드에 종속된다는 것. 모나드와 한정되지 않은 둘에서 수가 나온다는 것.
수에서 점과 선, 평면 도형, 입체, 감각할 수 있는 물체, 그리고 불, 물, 흙, 공기의 네 원소가 차례로 나온다고 이어집니다. 이암블리코스는 같은 생각을 간결한 표어로 전합니다. "만물은 수에 맞는다." "만물은 수"라는 구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의 생각으로 전한 것이어서, 피타고라스 본인의 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세계를 수와 비례의 질서로 이해하려는 이 시도는 이후 수학적 자연 과학의 먼 뿌리로 평가됩니다. 다만 이 요약은 피타고라스 본인이 아니라 후대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의 학설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15. 직각삼각형과 소 백 마리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관련해 디오게네스는 흥미로운 일화를 전합니다.
he sacrificed a hecatomb, when he had discovered that the square of the hypothenuse of a right-angled triangle is equal to the squares of the sides containing the right angle.
그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이 직각을 낀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소 백 마리를 제물로 바쳤다.
함께 전하는 짧은 시는 이렇습니다. 위대한 사모스의 현자가 고귀한 문제를 풀자 백 마리 소의 피가 땅을 물들였다는 노래입니다. 이 일화는 널리 퍼졌지만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같은 관계는 피타고라스보다 훨씬 이전의 바빌로니아 점토판에도 알려져 있었고, 정리의 증명이 피타고라스 본인의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같은 전승은 또 피타고라스가 산술에 가장 열중했다고 말합니다. 이름이 붙은 정리와 실제 업적의 거리를 구분하는 일이 이 인물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16. 대장간의 망치와 음정의 비례
이암블리코스는 피타고라스가 음악의 수학적 법칙을 발견한 이야기를 길게 전합니다.
as he was walking near a brazier’s shop, he heard from a certain divine casualty the hammers beating out a piece of iron on an anvil, and producing sounds that accorded with each other, one combination only excepted.
대장간 근처를 걷던 그는 신의 우연으로, 모루 위에서 쇳덩이를 두드리는 망치 소리가 하나의 조합을 제외하고는 서로 어울리는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그는 대장간에 들어가 소리의 차이가 망치의 크기, 곧 무게에서 온다는 것을 확인했고, 집에 돌아와 같은 줄에 서로 다른 무게를 매달아 같은 화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지만 전설입니다. 실제로 망치의 무게가 이런 음정을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현의 길이를 2대 1, 3대 2, 4대 3으로 나누면 옥타브와 5도와 4도가 나온다는 사실 자체는 사실이며, 초기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이 이를 연구했다고 전해집니다. 소리의 아름다움이 정수의 비례로 환원된다는 발견은 "세계가 수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에 강한 확신을 주었을 것입니다.
17. 음악이 몸과 마음을 고친다
이암블리코스는 피타고라스가 음악을 건강과 연결지었다고 전합니다.
Pythagoras, however, thought that music greatly contributed to health
피타고라스는 음악이 건강에 크게 기여한다고 생각했다.
같은 책은 제자들이 말 없이 음악만으로 영혼의 정념과 몇몇 병을 다스렸다고 전합니다. 음악으로 사람의 품성과 삶을 바로잡았다는 것입니다. 이 서술은 과장일 수 있지만, 음악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화를 되찾게 한다는 경험은 오늘날의 음악 치료와도 닿는 데가 있습니다. 또한 이 학파는 먹는 것과 운동, 휴식의 균형을 중시하는 식이요법도 가장 정확하게 지켰다고 합니다.
18. 덕은 조화다
전승은 피타고라스의 윤리를 조화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요약합니다.
Also, that virtue is harmony, and health, and universal good, and God; on which account everything owes its existence and consistency to harmony.
또한 덕은 조화이고 건강이고 보편적인 선이며 신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조화에 힘입어 존재하고 일관성을 갖는다.
이 문장에서 덕, 건강, 선, 신이 모두 조화라는 한 단어로 묶입니다. 몸의 건강, 영혼의 덕, 우주의 질서가 같은 원리를 가진다는 생각입니다. 이어서 우정도 "조화로운 평등"이라 정의합니다. 이후 플라톤은 영혼의 세 부분이 조화를 이룰 때 정의로운 영혼이라고 말했는데, 이 생각의 뿌리가 피타고라스 전통에 있다고 보는 학자가 많습니다. 앞서 읽은 『국가』와 나란히 놓고 읽으면 연결이 분명해집니다.
19. 영혼의 윤회와 맞은 개의 목소리
피타고라스의 가장 유명한 믿음은 영혼의 윤회입니다.
They say, too, that he was the first person who asserted that the soul went a necessary circle being changed about and confined at different times in different bodies.
또한 영혼이 필연적인 순환을 돌며 때에 따라 서로 다른 몸에 갇혀 바뀐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이 그라고들 한다.
그가 자신이 전생에 아이탈리데스였고 에우포르보스였고 헤르모티모스였고 피로스였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 윤회설을 비웃은 일화가 시인 크세노파네스의 시에 남아 있습니다.
“Stop now, and beat him not; since in his body, Abides the soul of a dear friend of mine, Whose voice I recognized as he was crying.”
"그만 때려라. 저 개의 몸 안에 내 소중한 친구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개가 울부짖는 소리에서 나는 그 목소리를 알아보았다."
이 시는 피타고라스를 놀리는 풍자이지만, 그의 윤회설이 당시에도 잘 알려져 있었고 동물을 해치지 말라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믿음이 그의 철학과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설명이 없습니다. 영혼이 불멸이며 몸보다 더 근본적이라는 관념이 플라톤에게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20. 가장 아름다운 도형은 구와 원
전승은 도형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Another of his doctrines was, that of all solid figures the sphere was the most beautiful; and of all plane figures, the circle.
그의 또 하나의 학설은, 모든 입체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구이고 모든 평면 도형 중에서는 원이라는 것이었다.
같은 요약은 세계가 구형이고 그 중심의 땅도 구형이며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또 대척점이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는 땅이 둥글다는 생각이 아주 일찍부터 그리스 철학에 등장했음을 보여 줍니다. 아름다움을 수학적 균형에서 찾는 이 감각은 우주를 하나의 질서 있는 전체, 곧 "코스모스"로 보는 시선과 이어집니다. 다만 이 학설이 피타고라스 본인의 것인지, 파르메니데스 등 후대의 것이 섞인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21. 단순한 음식과 소박한 삶
피타고라스 공동체는 소박한 생활로 알려졌습니다. 디오게네스는 그의 식사가 꿀과 빵, 야채 정도였다고 전합니다. 그가 짐승을 죽이는 일을 금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he prohibited the eating of animals, because he wished to train and accustom men to simplicity of life, so that all their food should be easily procurable
그가 동물을 먹는 것을 금한 것은 사람들이 소박한 삶에 훈련되고 익숙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야 모든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승마다 이야기가 다릅니다. 어떤 기록은 그가 제물로 수탉이나 새끼 염소를 바쳤다고 전하고, 아리스토크세노스는 쟁기를 끄는 소와 숫양만 빼고는 다른 동물을 먹는 것을 허용했다고 전합니다. 피타고라스가 채식을 엄격히 요구했는지는 오래 논쟁된 문제입니다. 반면 그의 제자들을 조롱한 희극 시인들의 시도 남아 있어서, 이 생활방식이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낯설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풀과 물만 먹고 옷은 더럽고 냄새가 심하다는 풍자입니다.
22. 콩과 마지막 날
피타고라스 학파의 가장 이상한 금기는 콩입니다. 디오게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려 여러 이유를 늘어놓습니다. 콩이 인체의 어떤 부분과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명, 저승의 문과 같기 때문이라는 설명, 과두제 선거에 쓰였기 때문이라는 설명 등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금기는 그의 죽음에 대한 전승에도 등장합니다.
saying that it was better to be caught than to trample on the beans, and better to be slain than to speak
콩을 짓밟느니 붙잡히는 편이 낫고, 말하느니 죽임을 당하는 편이 낫다고 말하면서.
이 이야기에서는 질투한 자가 밀로의 집에 불을 질렀을 때 피타고라스가 콩밭 앞에서 멈춰 서서 붙잡혀 죽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같은 책은 다른 설명도 함께 실었습니다. 크로톤 사람들이 그가 독재를 노릴까 두려워 불을 질렀다는 이야기, 도망쳐 메타폰티온의 무사 신전에서 사십 일을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 전투 중 콩밭을 돌아가다 시라쿠사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죽음의 이야기가 이렇게 엇갈린다는 사실이, 그의 생애에 관한 전승 전체가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보여 줍니다.
23. 존경과 조롱, 그리고 신비의 인물
전승은 피타고라스를 신비로운 인물로 그립니다. 제자들이 그를 아폴론이 북쪽에서 온 것이라고 믿었다거나, 옷을 벗었을 때 허벅지가 황금빛이었다거나, 강을 건널 때 강이 이름을 불렀다는 이야기들입니다. 디오게네스 자신도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서 사실로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그를 조롱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Pythagoras, who often teaches Precepts of magic, and with speeches Of long high-sounding diction draws, From gaping crowds, a vain applause.
마법 같은 교훈을 자주 가르치고, 길고 근사한 말로 입 벌린 군중에게서 헛된 박수를 끌어내는 피타고라스.
이 조롱은 회의주의 시인 티몬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의 첫머리에서 티몬은 피타고라스의 위엄 있는 외모를 인정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고대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현자이자 허풍쟁이이자 반쯤 신적인 존재로 동시에 보았습니다. 이 모순된 이미지가 그를 철학사에서 가장 신비한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24. 책이 남지 않은 스승, 남은 영향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은 오랫동안 제자들 사이에서 비밀로 전해졌습니다. 디오게네스는 필롤라오스의 때에 이르기까지 피타고라스의 학설은 공개되지 않았고, 필롤라오스가 처음으로 그 유명한 책 세 권을 펴냈다고 전합니다. 플라톤이 이 책들을 사들였다고도 합니다. 이 전승이 정확한지는 학자들이 의심하지만, 플라톤이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후대 자료는 아르키타스 같은 인물과의 교류도 전하지만 그 세부는 논쟁적입니다. 수의 질서, 영혼의 불멸, 조화로운 정의라는 플라톤의 주제들은 피타고라스 전통과 겹칩니다.
그 영향은 서양 사상 전반에 길게 이어졌습니다. 수학을 철학의 기초로 삼는 태도, 우주를 아름다운 질서로 보는 시선, 음악과 수의 비례, 매일 저녁의 자기 점검, 우정을 평등과 조화로 이해하는 방식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됩니다. 이 모든 것이 피타고라스 한 사람의 업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학파의 시조로서 그 이름 아래 후대의 사상까지 한데 모인 상징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한 인물의 이름이 수학과 윤리, 음악과 종교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생활 방식을 가리킨다는 사실이 이 전승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디오게네스의 「피타고라스 전」은 짧아서 한 번에 읽을 수 있고, 이 글에서 다룬 대목이 대부분 거기 있습니다. 다만 이 글 전체에 걸쳐 말했듯이, 여기 실린 이야기들은 피타고라스 본인의 말이 아니라 후대의 전승이라는 점을 잊지 마세요. 다른 증언과 비교해 읽는 것이 좋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란히 실려 있는 대목에서는, 디오게네스가 어느 쪽도 확정하지 않고 모두 소개한다는 점이 오히려 믿음직한 태도입니다. 이암블리코스는 분량이 길고 훨씬 후대의 이상화가 짙으니 맛보기로 몇 장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피타고라스를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이후 철학자들의 글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보세요. 플라톤의 『국가』와 『티마이오스』에는 수와 조화의 사상이 깊이 들어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는 피타고라스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적 보고가 있습니다. 확실한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은 이 철학자를 읽는 어려움이면서 동시에 매력입니다. 직접 쓴 글이 없는 스승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다듬어 왔는지를 보는 일은, 철학이 어떻게 전해지는가에 대한 하나의 사례 연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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