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집필 시기 추정 c. 300 BC
Epicurus
에피쿠로스
편지와 주요 교설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한 제10권에서
Therefore, the most formidable of all evils, death, is nothing to us, since, when we exist, death is not present to us; and when death is present, then we have no existence.
그러므로 모든 악 가운데 가장 두려운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있을 때 죽음은 우리 곁에 없고, 죽음이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없기 때문이다.
Of all the things which wisdom provides for the happiness of the whole life, by far the most important is the acquisition of friendship.
지혜가 삶 전체의 행복을 위해 마련해 주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친구를 얻는 일이다.
한눈에 보기
쾌락을 최고의 선으로 말하면서도, 그 쾌락을 고통과 불안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고 단순한 삶, 우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음으로 이끈 고대 철학자의 편지와 격언. 이 글은 그 가르침을 스물여섯 가지로 읽는다.
비슷한 책
- 에픽테토스 The Enchiridion (엥케이리디온)
- 세네카 Seneca's Morals of a Happy Life (세네카의 행복론)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editations (명상록)
한 권 요점
Epicurus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입니다. 아테네 부근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철학을 가르쳤는데, 그 학교가 "정원"이라 불렸습니다. 오늘날 "에피큐리언"이라는 말은 미식과 사치를 즐기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에피쿠로스 본인의 가르침은 거의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쾌락을 최고의 선으로 보았지만, 그 쾌락을 화려한 향락이 아니라 고통과 불안이 없는 고요한 상태로 이해했고, 빵과 물과 친구가 있는 소박한 삶을 권했습니다. 이 글은 그 오해를 바로잡는 데서 출발합니다.
에피쿠로스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지금 남은 핵심 자료는 세 통의 편지와 마흔 개 남짓한 짧은 격언입니다. 이 자료는 3세기경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그리스 철학자 열전』의 제10권에 실려 전해졌습니다. 편지는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자연학 요약,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천문학 요약,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윤리학 요약입니다. 이 글은 그 가운데 윤리를 다룬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편지와 격언을 중심에 놓고,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편지의 자연학과 그의 생애를 보태어 읽습니다.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은 고대 후기에 오랫동안 사랑받다가 중세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근대에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그의 사상은 후대 로마 시인 루크레티우스의 시로도 이어졌습니다. 이 글은 그 소박한 철학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되, 그 한계와 논쟁도 함께 적었습니다.
줄거리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하면 고통과 불안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가? 그의 답은 세 가지 두려움을 걷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인간을 벌하리라는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끝없는 욕망 때문에 생기는 불만입니다. 그는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세계를 자연 법칙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원자와 허공으로 이루어진 세계관을 가르쳤습니다.
이 세계에서 신은 존재하지만 인간사에 간섭하지 않고, 영혼은 몸과 함께 흩어지며, 죽음은 우리와 무관합니다. 남는 일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욕망만 채우고 우정과 소박함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누리는 것입니다. 아래 스물여섯 가지는 이 흐름에 따라 골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철학을 시작하기에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은 때는 없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Let no one delay to study philosophy while he is young, and when he is old let him not become weary of the study; for no man can ever find the time unsuitable or too late to study the health of his soul.
젊을 때 철학 공부를 미루지 말고, 늙었을 때 그 공부에 싫증 내지 말라. 누구에게도 영혼의 건강을 공부하기에 부적절하거나 너무 늦은 때는 없기 때문이다.
철학할 때가 아직 아니라거나 이미 지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할 때가 아직 아니라거나 이미 지났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고 그는 덧붙입니다. 젊은이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서 젊은 채로 늙고, 늙은이는 지난 일의 즐거운 기억으로 다시 젊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철학을 영혼을 돌보는 일, 곧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일로 보는 이 시각은 이후 스토아 철학과 닮은 데가 많습니다.
2. 행복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다
이어서 에피쿠로스는 철학의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It is right then for a man to consider the things which produce happiness, since, if happiness is present, we have everything, and when it is absent, we do everything with a view to possess it.
그러므로 행복을 만들어 내는 것들을 따져 보는 것이 옳다. 행복이 있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고, 행복이 없으면 우리는 그것을 얻으려고 모든 일을 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명성은 행복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은 행복을 얻기 위한 우회로이므로, 철학은 바로 그 목적을 직접 겨냥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는 편지에서 자신이 늘 권해 온 것들을 "잘 사는 것의 요소"로 실천하라고 당부합니다.
3. 신은 행복하고 불멸하며, 우리를 벌하지 않는다
첫째 두려움은 신에 대한 것입니다. 에피쿠로스는 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First of all, believe that God is a being incorruptible and happy, as the common opinion of the world about God dictates; and attach to your idea of him nothing which is inconsistent with incorruptibility or with happiness
무엇보다 신이 썩지 않고 행복한 존재라고 믿어라. 신에 대한 세상의 일반적인 생각이 그렇게 가르친다. 그리고 신의 관념에 썩지 않음이나 행복과 어긋나는 것을 붙이지 말라.
그러나 대중이 신에게 붙이는 속성은 틀렸다고 그는 말합니다. 신이 화를 내고 상과 벌을 내린다는 생각은 신을 인간의 감정으로 비교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의합니다.
And that man is not impious who discards the Gods believed in by the many, but he who applies to the Gods the opinions entertained of them by the many.
경건하지 않은 사람은 대중이 믿는 신들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신들에게 대중이 품은 생각을 덮어씌우는 사람이다.
격언 모음의 첫 조항은 이를 더 간결하게 말합니다. 행복하고 불멸하는 존재는 스스로 번거로움을 갖지 않고 남에게도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으므로, 분노나 은혜 같은 감정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신은 두려워하거나 달랠 대상이 아니라 행복한 삶의 본보기에 가깝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견해를 무신론으로 의심하기도 했고, 에피쿠로스 자신은 이를 경건의 올바른 형태로 주장했습니다.
4.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이 편지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 죽음에 대한 논증입니다.
Accustom yourself also to think death a matter with which we are not at all concerned, since all good and all evil is in sensation, and since death is only the privation of sensation.
또한 죽음이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라. 모든 선과 악은 감각 안에 있고, 죽음은 감각의 박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의 논증은 간결합니다.
Therefore, the most formidable of all evils, death, is nothing to us, since, when we exist, death is not present to us; and when death is present, then we have no existence.
그러므로 모든 악 가운데 가장 두려운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있을 때 죽음은 우리 곁에 없고, 죽음이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없기 때문이다.
죽음은 산 사람에게도, 죽은 사람에게도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산 사람에게는 아직 없고, 죽은 사람은 이미 없기 때문입니다. 이 논증이 죽음의 두려움을 실제로 없애 주는지는 철학자들 사이에 오래 논쟁되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가 죽는 순간의 고통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빼앗기는 데 있다고 보는 사람은 이 논증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을 감각이 없는 상태로 이해하면 두려움의 상당 부분이 상상에서 온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논증입니다.
5. 닥치지 않은 일로 괴로워하는 어리석음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미리 두려워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For it is very absurd that that which does not distress a man when it is present, should afflict him when only expected.
현재 있을 때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단지 기대될 뿐일 때 그를 괴롭힌다는 것은 매우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이 닥쳤을 때 괴롭지 않을 것이라면서 죽음이 올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죽음에 한정되지 않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한 걱정에도 적용됩니다. 막상 닥치면 견딜 만한데도 미리 겪는 불안은 이중의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6. 삶은 길이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잰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삶의 길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so too, he enjoys time, not measuring it as to whether it is of the greatest length, but as to whether it is most agreeable.
그는 음식을 고를 때 가장 많은 것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것을 고르듯, 시간을 가장 긴가가 아니라 가장 즐거운가로 재어 누린다.
그는 이어서 젊은이에게는 잘 살라고, 늙은이에게는 잘 죽으라고 권하는 사람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삶을 돌보는 일과 죽음을 돌보는 일은 같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일단 살아 보고 빨리 저승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시구에 대해서는 진심이면 왜 떠나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농담이면 부적절한 농담이라고 비판합니다. 또한 미래는 온전히 우리 것도 아니고 온전히 우리 것이 아닌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미래를 확신할 수도, 절망할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7. 욕망을 세 갈래로 나누다
에피쿠로스의 실용적인 기여는 욕망의 분류에 있습니다. 편지와 격언은 이렇게 구분합니다.
Of the desires, some are natural and necessary, some natural, but not necessary, and some are neither natural nor necessary, but owe their existence to vain opinions.
욕망 가운데 어떤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하며, 어떤 것은 자연스럽지만 필요하지는 않고, 어떤 것은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으며 헛된 생각 때문에 생겨난다.
갈증이 날 때 마시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욕망입니다. 값비싼 음식은 자연스럽지만 필요하지는 않은 욕망으로, 쾌락을 다양하게 할 뿐 고통을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관이나 동상을 세우려는 욕망은 자연스럽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으로, 헛된 의견에서 나옵니다. 이 분류는 무엇을 먼저 채우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판단하는 간단한 도구입니다. 오늘날 소비와 명예욕의 문제에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8. 쾌락은 행복한 삶의 처음이자 끝이다
이제 에피쿠로스 철학의 핵심 명제가 나옵니다.
and on this account, we affirm, that pleasure is the beginning and end of living happily; for we have recognized this as the first good, being connate with us
이런 이유로 우리는 쾌락이 행복하게 사는 일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는 이것을 우리와 함께 타고난 첫째 선으로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동물이 태어나자마자 쾌락에 기뻐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을 그는 증거로 듭니다. 이것은 이성의 훈련 없이도 작동하는 본능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쾌락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것과 다릅니다. 바로 이어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한정합니다.
9. 모든 쾌락을 고르지는 않는다
쾌락이 첫째 선이라고 해서 모든 쾌락을 쫓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on this account we do not choose every pleasure, but at times we pass over many pleasures when any difficulty is likely to ensue from them
그래서 우리는 모든 쾌락을 선택하지 않으며, 때로는 어려움이 뒤따를 듯한 많은 쾌락을 그냥 지나친다.
반대로 나중에 더 큰 쾌락이 따른다면 한동안의 고통을 견디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모든 쾌락은 본성상 선이지만 모든 쾌락이 선택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쾌락과 고통을 저울질하는 계산이 필요하다는 이 점에서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는 충동을 따르는 철학이 아니라 신중한 계산의 철학입니다.
10. 사치를 가장 잘 누리는 사람은 없이 지낼 수 있는 사람
그가 권하는 것은 소박함입니다. 그러나 가난을 숭배하는 소박함은 아닙니다.
being genuinely persuaded that those men enjoy luxury most completely who are the best able to do without it
사치 없이 가장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사치를 가장 온전히 즐긴다는 것을 진정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그는 단순한 맛이 값비싼 음식만큼 즐거움을 주며, 곡식과 물은 굶주린 사람에게 가장 큰 쾌락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박한 습관에 익숙해지는 일이 건강을 키우고 삶에 꼭 필요한 일 앞에서 망설이지 않게 한다고 말합니다. 가끔 사치스러운 음식을 만나면 더 즐겁게 누릴 수 있고, 운명의 변덕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그의 학교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비슷한 증언이 전합니다.
with a small cup of light wine, and all the rest of their drink was water.
가벼운 포도주 한 작은 잔과 그 밖의 모든 마실 것은 물로 만족했다.
소박한 생활이 가난의 고행이 아니라 자유를 얻는 방법이라는 이 태도는 오늘날 미니멀 라이프의 오랜 선배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11. 쾌락이란 몸의 고통 없음과 마음의 혼란 없음
이 편지에서 쾌락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명확히 밝혀집니다.
When, therefore, we say that pleasure is a chief good, we are not speaking of the pleasures of the debauched man, or those which lie in sensual enjoyment, as some think who are ignorant, and who do not entertain our opinions, or else interpret them perversely; but we mean the freedom of the body from pain, and of the soul from confusion.
그러므로 우리가 쾌락이 으뜸가는 선이라고 말할 때, 우리의 견해를 모르거나 비뚤게 해석하는 일부 사람들의 생각처럼 방탕한 사람의 쾌락이나 감각적 향락에 있는 쾌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뜻하는 것은 몸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영혼이 혼란에서 벗어난 상태이다.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계속되는 술자리나 연회, 값비싼 식탁이 아니라 이런 것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but sober contemplation, which examines into the reasons for all choice and avoidance, and which puts to flight the vain opinions from which the greater part of the confusion arises which troubles the soul.
모든 선택과 회피의 이유를 따져 보고, 영혼을 괴롭히는 혼란의 대부분을 낳는 헛된 의견을 몰아내는 맑은 사색이다.
이것이 이른바 "아타락시아", 곧 마음의 평정입니다. 쾌락을 적극적인 흥분이 아니라 불안과 고통이 없는 고요한 상태로 규정하는 이 정의는, 에피쿠로스가 왜 방탕과 가장 거리가 먼 철학자였는지를 설명합니다. 한편 쾌락의 개념이 이렇게 소극적이라는 점이 철학적으로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12. 분별이 철학보다 더 값지다
에피쿠로스는 덕과 쾌락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Now, the beginning and the greatest good of all these things is prudence, on which account prudence is something more valuable than even philosophy
이 모든 것의 시작이자 가장 큰 선은 분별이며, 그래서 분별은 철학보다도 더 값지다.
다른 덕이 모두 분별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덕과 즐거움은 서로 떼어 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격언 모음의 다른 조항도 같은 말을 합니다.
It is not possible to live pleasantly without living prudently, and honourably, and justly; nor to live prudently, and honourably, and justly, without living pleasantly.
분별 있고 명예롭고 올바르게 살지 않고서는 즐겁게 살 수 없고, 즐겁게 살지 않고서는 분별 있고 명예롭고 올바르게 살 수 없다.
덕이 목적이 아니라 쾌락, 곧 평온한 삶의 조건이라는 점이 스토아 철학과의 차이입니다. 스토아는 덕 자체가 선이라고 보았고, 에피쿠로스는 덕이 행복한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두 학파 모두 올바르게 사는 일이 행복의 열쇠라는 데는 의견이 같았습니다.
13. 운명의 노예가 되느니 신화를 따르는 편이 낫다
에피쿠로스는 자연 법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철학자였지만 필연에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에는 반대했습니다.
Since it would be better to follow the fables about the Gods than to be a slave to the fate of the natural philosopher; for the fables which are told give us a sketch, as if we could avert the wrath of God by paying him honour; but the other presents us with necessity who is inexorable.
자연철학자가 말하는 운명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는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따르는 편이 낫다. 신화는 경의를 바치면 신의 노여움을 돌릴 수 있을 듯한 윤곽이라도 주지만, 운명은 우리에게 용서 없는 필연을 내밀기 때문이다.
그는 필연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거부하고 일부는 운에, 일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의지는 자유로우며, 그 자유가 곧 칭찬과 비난을 받을 책임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원자론을 따르면서도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지키려 한 이 입장은, 앞서 스피노자가 필연을 받아들이는 데서 자유를 찾은 것과 대비해서 읽어 볼 만합니다.
14. 이성에 따른 불운이 이성 없는 행운보다 낫다
운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태도는 현실적입니다.
thinking it better to be unfortunate in accordance with reason, than to be fortunate irrationally
이성에 따라 불운한 편이 이성 없이 운이 좋은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행운은 불안정해서 행복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큰 선과 큰 악의 출발점을 줄 뿐이라는 설명입니다. 잘 판단한 행동은 결과가 나빠도 옳게 한 것이라는 뜻이어서,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합리성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편지의 마지막은 이 가르침들을 밤낮으로 되새기라는 당부로 끝납니다. 그러면 깨어 있을 때나 잠들었을 때나 어지러운 상상에 시달리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신처럼 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15. 쾌락의 한계는 고통이 사라지는 곳
『주요 교설』 곧 격언 모음으로 넘어갑니다. 한 조항은 쾌락의 한계를 밝힙니다.
The limit of the greatness of the pleasures is the removal of everything which can give pain.
쾌락의 크기의 한계는 고통을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제거된 상태이다.
고통이 없어진 순간 쾌락은 이미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그 이상을 바라며 쾌락을 늘리려는 시도는 쾌락을 더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바꿀 뿐이라고 다른 조항이 덧붙입니다. 그렇다면 무한히 더 많이 가지려는 노력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 한계 의식이 에피쿠로스 철학을 소박함으로 이끄는 논리적 근거입니다.
16. 고통은 오래 가지 않는다
넷째 조항은 고통에 대한 용기를 줍니다.
Pain does not abide continuously in the flesh, but in its extremity it is present only a very short time.
고통은 몸에서 계속 머물지 않으며, 극심할 때는 아주 짧은 시간만 지속된다.
몸의 고통이 조금 쾌락을 넘어서는 정도라면 며칠 이상 계속되지 않고, 오래 앓는 병에서도 고통보다 즐거움이 더 많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낙관적이고 현실의 모든 만성 통증에 들어맞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편지에서 직접 보여 준 태도, 곧 극심한 병 속에서도 정신의 즐거움이 고통을 상쇄했다는 증언과 함께 읽으면 그의 의도가 더 분명해집니다.
17. 자연의 부는 얻기 쉽고 헛된 욕망은 끝이 없다
또 한 조항은 한 줄로 그의 경제학을 요약합니다.
The riches of nature are defined and easily procurable; but vain desires are insatiable.
자연의 부는 한정되어 있고 쉽게 얻을 수 있지만, 헛된 욕망은 채울 수 없다.
자연스러운 필요는 끝이 있으므로 채울 수 있지만, 헛된 의견에서 나온 욕망은 채워도 다시 생기기 때문에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조항은 삶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고통을 없애고 삶을 완전하게 하는 것이 쉽게 얻어진다는 것을 알아서, 애써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조항은 권력과 부가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안전을 어느 정도 주지만, 사람들의 진짜 안전은 영혼의 평온과 야심 없음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18. 올바른 사람이 가장 흔들리지 않는다
한 조항은 정의와 평온의 연결을 말합니다.
The just man is the freest of all men from disquietude; but the unjust man is a perpetual prey to it.
올바른 사람은 모든 사람 가운데 불안에서 가장 자유롭고, 올바르지 않은 사람은 끊임없이 그 먹이가 된다.
정의로운 삶이 도덕적 의무여서가 아니라 마음의 평온을 위해 이롭다는 논리입니다. 이 점은 뒤쪽의 조항에서 더 구체적이 됩니다.
It is not possible for a man who secretly does anything in contravention of the agreement which men have made with one another, to guard against doing, or sustaining mutual injury, to believe that he shall always escape notice, even if he have escaped notice already ten thousand times
사람들이 서로 해치지도 해침을 당하지도 않기로 맺은 약속을 어기고 몰래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이미 만 번 들키지 않았다고 해도 앞으로도 언제나 들키지 않으리라고 믿을 수 없다.
죽을 때까지는 발각되지 않을지 알 수 없으므로 부정한 사람은 마음 편히 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논증은 도덕적 이유가 아니라 평온이라는 이익으로 정의를 설명합니다. 이것이 정의의 충분한 근거인지는 의문이지만, 불의가 마음에 남기는 불안을 정확히 짚은 대목입니다.
19. 정의는 서로 해치지 않기로 한 약속
에피쿠로스는 정의를 자연이 정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약속으로 이해합니다.
Natural justice is a covenant of what is suitable, leading men to avoid injuring one another, and being injured.
자연적 정의는 서로 해치지도 해침을 당하지도 않도록 하는, 알맞음에 대한 약속이다.
이어서 법이 정의로운 것은 사회 관계에 정말로 이로운 한에서라고 말합니다.
Justice has no independent existence; it results from mutual contracts, and establishes itself wherever there is a mutual engagement to guard against doing or sustaining mutual injury.
정의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상호 계약에서 생기며, 서로 해치거나 해침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기로 상호 약속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자리 잡는다.
이 생각은 후대 사회 계약론의 먼 선구로 평가됩니다. 같은 규정에서 에피쿠로스는 상황이 바뀌면 법도 바뀌어야 하며, 이로움을 잃은 법은 더 이상 정의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정의를 이익과 약속으로 설명하는 이 입장은 정의가 그보다 더 깊은 도덕적 근거를 가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불충분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20. 우정이 가장 큰 선물이다
격언 가운데 가장 따뜻한 것이 우정에 관한 조항입니다.
Of all the things which wisdom provides for the happiness of the whole life, by far the most important is the acquisition of friendship.
지혜가 삶 전체의 행복을 위해 마련해 주는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친구를 얻는 일이다.
그는 우정의 보호가 인생의 짧은 시간 안에서 가장 확실하고 믿을 만하다고 합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는 마지막 조항도 이어집니다.
The happiest men are they who have arrived at the point of having nothing to fear from those who surround them.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지점에 이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서로 믿음의 가장 단단한 근거를 갖고 가장 즐겁게 어울려 살며, 친구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운 일로 한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정원에서 이런 우정의 공동체를 실제로 이루었습니다.
21. 자연학이 없으면 순수한 즐거움도 없다
에피쿠로스는 단순히 마음 편히 사는 법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계를 올바르게 알아야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믿었습니다.
It would not be possible for a person to banish all fear about those things which are called most essential, unless he knew what is the nature of the universe
가장 본질적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몰아내는 일은, 우주의 본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늘의 현상과 죽음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한에서 자연학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일식이나 천둥이 신의 분노라는 믿음, 저승의 형벌에 대한 공포를 걷어 내야 평온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연학이 호기심이 아니라 마음의 평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 그의 독특한 태도입니다.
22. 무에서는 아무것도 생기지 않는다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편지는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을 요약한 글입니다. 첫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And, first of all, we must admit that nothing can come of that which does not exist
우선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는 아무것도 생겨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모든 것이 모든 것에서 생겨나서 씨앗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논증입니다. 이어서 사라지는 것이 완전히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곧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만물은 허공에 움직이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으며 우주는 무한하다는 결론이 이어집니다. 이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계승한 입장입니다. 여기에는 오늘의 물리학과 비슷한 대목도 있지만 많은 부분이 고대의 추론이어서 현대 과학의 검증과는 별개라는 점을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23. 영혼도 흩어진다
이 원자론에서 영혼은 어떻게 이해될까요?
When the entire combination of the body is dissolved, then the soul too is dissolved, and ceases to retain those faculties which were previously inherent in it
몸의 전체 결합이 해체되면 영혼 또한 해체되어, 이전에 그 안에 있던 기능들을 더는 간직하지 못한다.
영혼은 몸 전체에 퍼진 아주 미세한 입자들로 이루어진 물질적 실체이고, 감각의 원리가 거기 있지만 몸의 덮개 없이는 그 능력을 가질 수 없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영혼이 떠나면 몸이 감각을 잃는 것도, 몸이 해체되면 영혼도 흩어지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이 설명은 죽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앞의 논증의 자연학적 바탕입니다. 영혼의 불멸을 가르친 플라톤과는 정반대의 입장입니다.
24. 감각을 모두 부정하면 판단할 기준도 사라진다
에피쿠로스는 지식의 기준을 감각에 둡니다. 또 한 조항은 회의주의에 대한 짧은 반박입니다.
If you resist all the senses, you will not even have anything left to which you can refer, or by which you may be able to judge of the falsehood of the senses which you condemn.
모든 감각을 거부한다면, 당신은 참조할 것도, 당신이 비난하는 감각의 거짓을 판단할 기준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감각이 틀릴 수 있다고 해서 감각을 모두 버리면 그 틀림을 가릴 기준이 없어진다는 논리입니다. 이어서 감각에서 곧바로 얻은 확실한 것과 귀납으로 덧붙인 추측을 구분하라고 하며, 둘을 같은 권위로 대하면 오류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앞서 데카르트가 감각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한 것과 정반대의 출발점이어서 두 철학자를 나란히 놓고 읽으면 재미있습니다.
25. 마지막 날, 행복한 날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에피쿠로스가 신장 결석으로 열나흘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전합니다. 그는 마지막 날 이도메네우스에게 편지를 썼다고 전해집니다.
We have written this letter to you on a happy day to us, which is also the last day of our life.
우리는 우리에게 행복한 날, 곧 우리 삶의 마지막 날에 이 편지를 당신에게 쓴다.
그는 배뇨 곤란과 이질이 더 이상 더해질 수 없을 만큼 심하다고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But the cheerfulness of my mind, which arises from the recollection of all my philosophical contemplations, counterbalances all these afflictions.
그러나 내 모든 철학적 사색의 기억에서 오는 마음의 명랑함이 이 모든 고통을 상쇄한다.
이어서 그는 메트로도로스 자녀들을 돌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따뜻한 물을 채운 청동 욕조에 들어가 순수한 포도주 한 잔을 청해 마시고, 친구들에게 자기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당부한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철학이 어떤 죽음을 꿈꾸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의 마지막이 이렇게 평온했다는 전승 자체가 그의 가르침을 오랫동안 지켜 준 힘이었습니다.
26. 정원과 유언, 그리고 오해와 진실
디오게네스는 에피쿠로스의 유언도 전합니다. 그는 정원과 집을 학교 구성원들이 철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헤르마르코스에게 맡기고, 부모와 형제, 자신의 생일과 메트로도로스를 기리는 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리도록 당부합니다. 그리고 노예들을 풀어 줍니다.
Of my slaves, I hereby emancipate Mus, and Nicias, and Lycon: I also give Phædrium her freedom.
내 노예들 가운데 뮈스와 니키아스와 뤼콘을 이로써 해방하며, 파이드리온에게도 자유를 준다.
그의 적대자들은 그를 방탕하고 무지한 사람으로 헐뜯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이 중상을 길게 인용한 뒤, 그가 모든 사람에게 보인 친절과 부모에 대한 효, 형제에 대한 베풂, 하인에 대한 온화함, 그리고 학파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 사실이 이를 반박한다고 말합니다. 이 비난과 반박은 이후 2천 년간 에피쿠로스의 이름이 겪을 오해를 미리 보여 줍니다. 오늘날 "에피큐리언"이 사치스러운 미식가를 뜻하게 된 것은 이 오해의 오랜 흔적입니다. 에피쿠로스 본인이 가르친 것은 빵과 물, 친구, 그리고 마음의 고요였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에피쿠로스의 글은 짧아서 한 번에 읽을 수 있습니다. 먼저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세요.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의 윤리가 가장 잘 압축되어 있습니다. 다음으로 『주요 교설』 가운데 죽음, 쾌락, 우정, 정의에 관한 조항을 읽어 보세요.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편지의 자연학은 고대 원자론의 흥미로운 기록이지만 처음에는 건너뛰어도 괜찮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쾌락을 고통의 부재로 규정하는 정의가 삶의 풍요를 설명하기에 너무 소극적이라는 비판, 죽음의 두려움을 논리로 해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정치 참여를 피하는 은둔적 태도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욕망을 분류하고, 소박함에서 자유를 찾고, 우정을 가장 큰 행복의 조건으로 꼽은 이 철학은 지금의 소비와 불안의 시대에 여전히 건넬 말이 많습니다. 에피쿠로스를 읽는 일은 행복을 더 얻는 방법이 아니라 덜 바라는 방법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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