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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시기 추정 8th century

The Sutra of the Sixth Patriarch

육조단경

글자를 모르던 나무꾼이 선종의 6조가 된 이야기

菩提般若之智,世人本自有之

(보리반야지지, 세인본자유지)

Prajna, the Wisdom of Enlightenment, is inherent in every one of us.

깨달음의 지혜인 반야는 우리 모두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다.

凡夫即佛,煩惱即菩提

(범부즉불, 번뇌즉보리)

An ordinary man is Buddha! and defilement is Enlightenment (Bodhi).

평범한 사람이 곧 부처이며,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한눈에 보기

글을 모르는 혜능(慧能)이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시 한 편으로 5조의 법을 이어받고, 선(禪)의 핵심을 선정과 지혜, 무념(無念)·무상·무주로 풀어 가르친 책. 이천 년 불교 가운데 가장 읽기 쉬우면서 가장 급진적인 가르침을 스물두 가지로 읽는다.

비슷한 책

한 권 요점

The Sutra of the Sixth Patriarch

『육조단경(六祖壇經)』은 중국 선종(禪宗)의 6조 혜능(638~713)의 생애와 설법을 제자들이 엮은 책입니다. 부처가 아닌 중국인 스승의 말에 "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드문 책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혜능은 가난한 집안에서 땔나무를 팔아 어머니를 모시던 문맹의 청년이었는데, 누군가 읽는 『금강경(金剛經)』 한 구절을 듣고 마음이 열려 5조 홍인(弘忍)이 있는 황매산을 찾아갔다고 전해집니다. 이 책의 앞부분은 그가 직접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고, 이어서 반야(般若)와 선정, 참회와 삼신, 제자들과 나눈 문답이 이어집니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선종의 가장 유명한 장면 두 가지, 곧 신수(神秀)와 혜능의 게송 대결과 "돈오(頓悟)"의 가르침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은 오랜 수행으로 먼지를 닦아 내는 일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본래 모습을 단번에 보는 일이라는 주장입니다. 단, 이 책의 형성 과정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된 판본은 돈황에서 발견된 필사본이고, 이후 여러 시대에 내용이 늘어나고 고쳐졌으며, 신수와 혜능의 게송 대결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혜능의 생애 자체도 상당 부분 이 책과 후대의 전승에 기대고 있어서, 반쯤은 전설 속 인물로 다루는 연구자도 많습니다. 이 글은 사건의 사실 여부를 가리기보다, 책이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읽습니다.

이 글은 책의 흐름을 따라 스물두 가지 대목을 골라 읽습니다. 혜능의 이야기, 게송 대결과 법의 전수, 쫓기는 도망과 숨은 십오 년, 그리고 그의 가르침인 반야, 선정과 지혜, 무념·무상·무주, 참회와 서원, 마지막으로 제자들과의 문답과 죽음 순서입니다.

줄거리

혜능은 남쪽 광동 지방의 가난한 청년으로 홍인 문하에 들어가 여덟 달 동안 방앗간에서 쌀을 찧습니다. 홍인이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시로 써 보라고 하자 교수사 신수가 벽에 먼저 시를 쓰고, 혜능이 이를 뒤집는 시를 씁니다. 홍인은 한밤중에 혜능을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고 가사와 발우를 맡긴 뒤 남쪽으로 떠나보냅니다. 혜능은 쫓기고 숨으며 사냥꾼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다 광주의 절에서 세상에 나옵니다. 그 뒤 그는 대중에게 반야와 선정, 참회와 서원을 가르치고, 신수의 제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과 문답하며, 황실의 초청을 사양하고, 임종을 맞습니다. 아래는 이 순서를 따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부처 되기만을 청한 문맹의 나무꾼

혜능이 홍인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책은 시작됩니다.

惟求作佛,不求余物
(유구작불, 불구여물)

I ask for nothing but Buddhahood.

저는 부처가 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홍인은 그가 남쪽 오랑캐 땅 사람임을 두고 "어찌 부처가 되겠느냐"고 떠봅니다. 혜능의 대답이 이 책의 첫 번째 핵심입니다.

人雖有南北,佛性本無南北
(인수유남북, 불성본무남북)

Although there are Northern men and Southern men, but North or South make no difference in their Buddha-nature.

사람에게는 북쪽 사람과 남쪽 사람이 있지만, 불성에는 북쪽과 남쪽의 차이가 없습니다.

출신, 학식, 지역은 깨달음의 조건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이후 선종이 귀족 불교와 경전 학습의 중심에서 벗어나 일상의 수행으로 나아가는 방향을 미리 보여 줍니다. 그리고 혜능이 글을 읽지 못했다는 설정은 이 선언을 몸으로 증명하는 장치처럼 읽힙니다.

2. 신수의 고민, 법을 구하는가 자리를 구하는가

홍인이 후계자를 정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시를 지어 오라고 하자,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신수가 속으로 이렇게 따져 봅니다.

求法即善,覓祖即惡,卻同凡心,奪其聖位奚別
(구법즉선, 멱조즉악, 각동범심, 탈기성위해별)

If my object is to get the Dharma, my motive is pure. If it is to get the Patriarchship, then it is bad; my mind would be that of a worldling and my action would amount to a theft of the Patriarch's holy seat.

내가 법을 얻으려는 것이라면 동기가 깨끗하다. 조사의 자리를 얻으려는 것이라면 나쁘다. 그러면 내 마음은 세속 사람의 것이고, 내 행동은 조사의 거룩한 자리를 훔치는 일이 된다.

이 책은 신수를 악역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동기를 의심하고, 잠들지 못하고, 한밤중에 몰래 벽에 시를 씁니다. 이 인간적인 갈등 덕분에 대결 장면은 선악의 구도가 아니라 깨달음의 수준을 묻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법을 얻으려는 마음과 자리를 얻으려는 마음이 겉으로는 같은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점은 오늘의 어떤 공부와 경쟁에도 해당하는 질문입니다.

3. 먼지를 닦는 거울

신수가 벽에 쓴 시는 이렇습니다.

身是菩提樹,心如明鏡臺,時時勤拂拭,勿使惹塵埃
(신시보리수, 심여명경대, 시시근불식, 물사야진애)

Our body may be compared to the Bodhi-tree; While our mind is a mirror bright. Carefully we cleanse and watch them hour by hour, And let no dust collect upon them.

우리의 몸은 보리수에 비길 수 있고,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닦고 살펴서, 먼지가 앉지 못하게 하라.

수행을 거울 닦기에 비유한 아름다운 시입니다. 홍인은 이 시를 사람들에게 외우게 하고 향을 사르게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신수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無上菩提須得言下識自本心,見自本性不生不滅
(무상보리수득언하식자본심, 견자본성불생불멸)

one must be able to know spontaneously one's own self-nature which is neither created nor can it be annihilated.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면 스스로의 본성이 만들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어야 한다.

신수의 시는 아직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시가 틀렸다기보다, "닦아서 깨끗하게 만든다"는 구도 자체가 본성을 이미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따로 이루어야 할 것으로 본다는 지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4. 먼지가 앉을 곳이 어디 있는가

방앗간에서 이 시를 전해 들은 혜능은 글을 몰라 남에게 대신 쓰게 합니다. 혜능이 쓴 시의 첫 두 줄은 "보리수도 없고 거울 받침도 없다"이고, 이어지는 두 줄이 책 전체를 요약합니다.

本來無一物,何處惹塵埃
(본래무일물, 하처야진애)

Since intrinsically all is void Where can dust collect?

본래 모든 것이 비어 있는데, 먼지가 어디에 앉겠는가?

신수가 몸과 마음을 보리수와 거울에 빗댄 것을 혜능은 처음부터 지워 버립니다. 닦을 거울도, 닦아 낼 먼지도 따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중은 이 시를 보고도 작자가 아직 본성을 보지 못했다고 여겼고, 홍인은 신발로 그 글씨를 지웠다고 이 책은 전합니다. 두 시의 차이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까"와 "다스릴 마음이 따로 있는가"의 차이입니다. 앞으로의 모든 가르침이 이 차이에서 나옵니다.

5. 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낸다

홍인은 한밤중에 혜능을 불러 가사로 창을 가리고 『금강경』을 설해 줍니다. 혜능이 깨달은 대목은 이 구절이었다고 합니다.

應無所住而生其心
(응무소주이생기심)

One should use one's mind in such a way that it will be free from any attachment.

마음을 쓰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도록 써야 한다.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낸다)"입니다. 그 순간 혜능의 감탄이 이어집니다.

何期自性,本自清淨
(하기자성, 본자청정)

Who could have conceived that Mind-essence is intrinsically pure!

마음의 본성이 본래 청정하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는 자성(自性)이 본래 청정하고, 나고 죽음이 없고, 스스로 갖추어져 있고, 흔들리지 않으며, 모든 것이 자성에서 나온다고 하나씩 되뇝니다. 이 감탄은 새로운 지식을 얻은 놀람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알아본 놀람입니다.

6. 강을 건너는 일은 스스로 한다

홍인은 혜능에게 가사와 발우를 맡기고 몸소 배를 저어 강을 건너 줍니다. 혜능이 노를 대신 잡겠다고 하자 홍인은 제가 건너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합니다. 혜능의 대답입니다.

迷時師度,悟了自度;度名雖一,用處不同。惠能生在邊方,語音不正,蒙師付法!今已得悟,只合自性自度。
(미시사도, 오료자도; 도명수일, 용처부동. 혜능생재변방, 어음부정, 몽사부법! 금이득오, 지합자성자도.)

since I am now enlightened, it is only right for me to cross the sea of birth and death by my own effort to realise my own Essence of Mind.

이제 저는 깨달았으니, 나고 죽는 바다를 건너는 일은 제 힘으로 제 마음의 본성을 깨달아 하는 것이 옳습니다.

미혹할 때는 스승의 도움으로 건너고, 깨달은 뒤에는 스스로 건넌다는 말입니다. 스승은 길을 가리킬 뿐 대신 건너 주지 못한다는 선의 태도가 한 장면에 담겼습니다. 홍인도 "그렇다, 그렇다"고 인정하고, 서둘러 설법하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당부합니다.

不宜速說,佛法難起
(불의속설, 불법난기)

Do not begin preaching too soon

너무 일찍 설법을 시작하지 말라.

7. 선악을 생각하지 않는 그 순간

가사를 되찾으려는 수백 명이 혜능을 쫓습니다. 가장 거칠었던 혜명이 바위 위의 가사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저는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라고 하자, 혜능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汝既為法而來,可屏息諸緣,勿生一念,吾為汝說
(여기위법이래, 가병식제연, 물생일념, 오위여설)

please refrain from thinking about anything and try to keep your mind perfectly empty and receptive.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완전히 비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라.

한참 뒤 혜능이 묻습니다.

不思善,不思惡,正與麼時,那個是明上座本來面目
(불사선, 불사악, 정여마시, 나개시명상좌본래면목)

at the particular moment when you are thinking of neither good nor evil, what is your real self-nature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는 바로 그 순간, 그대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선 수행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혜명이 깨닫고 "비밀스러운 가르침이 더 있느냐"고 묻자 혜능은 이렇게 답합니다.

汝若返照,密在汝邊
(여약반조, 밀재여변)

If you turn your light inward, you will find what is esoteric within your own mind.

빛을 안으로 돌이키면, 비밀은 그대 자신의 마음속에서 찾을 것이다.

비밀은 감추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깥으로 쏟느라 보지 못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8. 사냥꾼 곁에서 보낸 십오 년

혜능은 추적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 오랜 세월을 숨어 지냅니다.

惠能後至曹溪,又被惡人尋逐,乃於四會,避難獵人隊中,凡經一十五載
(혜능후지조계, 우피악인심축, 내어사회, 피난렵인대중, 범경일십오재)

I took refuge in Sze-wui where I staid with a party of hunters for fifteen years.

나는 쓰회(四會)로 몸을 피해 사냥꾼 무리와 함께 십오 년을 지냈다.

책은 이 시기의 혜능이 사냥꾼의 그물에 걸린 생명을 놓아 주고, 고기를 삶는 솥에 채소를 넣어 먹었다고 전합니다. 깨달은 사람이 산속 도량이 아니라 사냥꾼의 일터 한복판에서 계율을 살았다는 장면입니다. 깨달음은 환경을 가려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이 일화에도 이어져 있습니다.

9.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다

혜능이 광주의 절에 나타났을 때 두 스님이 깃발이 움직이느냐 바람이 움직이느냐를 두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不是風動,不是幡動,仁者心動
(불시풍동, 불시번동, 인자심동)

I suggested that it was neither; that what actually moved was their own mind.

나는 둘 다 아니고, 실제로 움직인 것은 그들 자신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 일화는 선종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밖의 현상을 두고 시비하는 마음이 이미 움직이는 마음이라는 지적입니다. 이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혜능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출가하여 가르치게 됩니다.

10. 불성에는 두 길이 없다

『열반(涅槃)경』을 강의하던 인종 법사가 홍인의 가르침을 묻자 혜능은 선정이나 해탈(解脫) 같은 별도의 방법은 없었다고 답합니다.

為是二法,不是佛法,佛法是不二之法
(위시이법, 불시불법, 불법시불이지법)

Because that would mean there were two ways in Buddhism. There cannot be two ways; in Buddhism there is only one way.

그렇게 하면 불교에 두 가지 길이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길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불교에는 오직 하나의 길이 있을 뿐입니다.

그 하나의 길은 불성(佛性)입니다. 선과 악, 항상함과 덧없음을 둘로 나누는 것은 범부의 눈이고, 깨달은 사람은 그것이 둘이 아님을 안다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인종 법사는 자신의 해석을 "쓰레기 더미", 혜능의 말을 "순금"이라 부르며 제자가 되기를 청합니다. 이 장면은 문맹이 학자에게서 인정받는 극적인 장면이면서,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하나의 마음으로 되돌리는 선언입니다.

11. 부처와 중생은 알고 모르고의 차이

혜능의 본격적인 설법은 반야에서 시작합니다.

菩提般若之智,世人本自有之
(보리반야지지, 세인본자유지)

Prajna, the Wisdom of Enlightenment, is inherent in every one of us.

깨달음의 지혜인 반야는 우리 모두에게 본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면 왜 모르는가에 대해 이렇게 이어 갑니다.

當知愚人智人,佛性本無差別,只緣迷悟不同,所以有愚有智
(당지우인지인, 불성본무차별, 지연미오부동, 소이유우유지)

as far as Buddha-nature is concerned,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an enlightened man and an ignorant one. What makes the difference is that one realises it and the other is ignorant of it.

불성에 관한 한 깨달은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한쪽은 그것을 알고 다른 쪽은 모른다는 점이다.

깨달음은 새로 얻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이 말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엄격한 요구입니다. 부족하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2. 음식 이야기로는 배가 부르지 않는다

혜능은 반야를 외우기만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꾸짖습니다.

世人終日,口念般若,不識自性般若,猶如說食不飽,口但說空,萬劫不得見性,終無有益
(세인종일, 구념반야, 불식자성반야, 유여설식불포, 구단설공, 만겁부득견성, 종무유익)

The mere talking about food will not appease hunger, but that is the very thing these people are doing.

음식 이야기만 한다고 배고픔이 가시지 않는데,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경전을 읽는 일과 경전이 가리키는 마음을 쓰는 일은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혜능은 다른 곳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삼천 번 외우고도 뜻을 몰랐던 승려에게 깨달음을 열어 주며 다음과 같은 시를 들려줍니다.

心迷法華轉,心悟轉法華
(심미법화전, 심오전법화)

When our mind is under delusion, the Saddhama Pundarika Sutra is our master. When our mind is enlightened, we are the master of the Sutra.

마음이 미혹하면 법화경이 우리를 부리고, 마음이 깨어 있으면 우리가 경전을 부린다.

경전에 얽매이는 사람과 경전을 쓰는 사람의 구분입니다. 이 문장은 어떤 책을 읽을 때에도 지금 내가 책을 부리는지 책에 부림을 당하는지 묻게 합니다.

13. 범부가 곧 부처, 번뇌가 곧 깨달음

凡夫即佛,煩惱即菩提。前念迷,即凡夫;後念悟,即佛
(범부즉불, 번뇌즉보리. 전념미, 즉범부; 후념오, 즉불)

An ordinary man is Buddha! and defilement is Enlightenment (Bodhi). A passing foolish thought makes one an ordinary man, while an enlightened thought makes one a Buddha.

평범한 사람이 곧 부처이며,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스쳐 가는 어리석은 생각이 사람을 범부로 만들고, 깨어 있는 생각이 사람을 부처로 만든다.

범부와 부처, 번뇌와 깨달음을 서로 다른 두 곳에 놓지 않는 대담한 문장입니다. 부처와 범부를 가르는 것은 사람의 종류가 아니라 한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이 문장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이 말은 바로 그 한 생각을 놓치지 말라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14. 선정과 지혜는 등불과 빛

당시 수행에서 선정(마음의 고요)과 지혜(바르게 봄)를 나누어 순서를 두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혜능은 둘이 하나라고 말합니다.

定是慧體,慧是定用
(정시혜체, 혜시정용)

Samadhi is the quintessence of Prajna, while Prajna is the activity of Samadhi.

선정은 지혜의 본체이고, 지혜는 선정의 작용이다.

그리고 이렇게 비유합니다.

猶如燈光。有燈即光,無燈即暗;燈是光之體,光是燈之用
(유여등광. 유등즉광, 무등즉암; 등시광지체, 광시등지용)

we may liken Samadhi and Prajna to a glowing lamp and its light: with the glowing lamp there is light; without it there is darkness.

선정과 지혜는 타오르는 등불과 그 빛에 견줄 수 있다. 등불이 있으면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어둠이다.

마음을 먼저 고요히 한 뒤에 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요함과 앎이 한 몸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름은 둘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 구도는 앞서 신수와 혜능의 시가 보여 준 차이, 곧 닦음과 본래 청정함의 차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15. 무상, 무념, 무주

이 책의 가르침을 가장 짧게 요약한 대목입니다.

無相者:於相而離相;無念者:於念而無念
(무상자: 어상이리상; 무념자: 어념이무념)

"Non-objectivity" means, not to be absorbed in objects when in contact with objects; "idea-lessness" means, not to be carried away by any particular idea in our exercise of the mental faculty;

"무상(無相)"은 대상을 만나도 대상에 빠지지 않는 것이고, "무념(無念)"은 마음을 쓰면서 어떤 특정한 생각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인 "무주(無住)"는 어떤 것에도 좋아함이나 싫어함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혜능은 이 세 가지를 자기 문파의 기본으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오해를 막습니다.

若只百物不思,念盡除卻,一念絕即死,別處受生,是為大錯
(약지백물불사, 염진제각, 일념절즉사, 별처수생, 시위대착)

It is a great mistake to suppress all thinking.

모든 생각을 억눌러 없애려는 것은 큰 잘못이다.

무념은 생각을 끊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매이지 않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구분은 오늘의 명상과 마음챙김 수련에서도 자주 혼동되는 지점입니다.

16. 곧은 마음이 도량이다

直心是道場,直心是淨土
(직심시도량, 직심시정토)

Straightforwardness is the holy place, the Pure Land.

곧은 마음이 거룩한 곳이며 정토다.

『유마경』을 인용한 이 문장은 이어서 경고를 덧붙입니다. 입으로만 곧은 척하고 마음은 굽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혜능은 가만히 앉아 어떤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수행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비판합니다. 수행은 걸을 때도 서 있을 때도 앉을 때도 누울 때도 이어지는 마음의 자세이지, 특정한 자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7. 마음에 머물지 않고, 청정에 머물지 않는다

此門坐禪,元不著心,亦不著淨,亦不是不動
(차문좌선, 원불착심, 역불착정, 역불시부동)

In our system of Dhyana, we neither dwell upon our mind nor upon its purity; neither do we seek to suppress its activity.

우리의 선에서는 마음에도 머물지 않고 마음의 청정에도 머물지 않으며, 마음의 움직임을 억누르려 하지도 않는다.

마음에 매달려 지키는 것도, 청정함을 목표로 붙드는 것도 집착이라는 말입니다. 청정함마저 놓으라는 요구라서 이 문장은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합니다. 그러나 앞의 시와 이어 읽으면 말이 통합니다. 먼지도 거울도 따로 없다면 청정을 붙들 곳도 없다는 것입니다.

18. 중생은 내 안에 있고, 건지는 것도 나다

혜능은 "가없는 중생을 건지겠다"는 사홍서원을 이렇게 다시 풉니다.

各須自性自度,是名真度
(각수자성자도, 시명진도)

Each of them has to be delivered by oneself by means of his own Essence of Mind; only by his own deliverance, is it genuine.

그들 하나하나는 저마다 자기 본성의 힘으로 스스로 건져야 한다. 스스로 건져야 비로소 진짜다.

그가 말하는 "중생"은 바깥의 사람들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미혹한 마음, 속이는 마음, 악한 마음입니다. 그 하나하나를 바른 견해로 건지는 것이 서원이라는 해석입니다. 거창한 서원이 곧 자기 마음 단속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입니다.

19. 참회는 마음속 죄를 없애는 일

但向心中除罪緣,各自性中真懺悔
(단향심중제죄연, 각자성중진참회)

If we get rid of the sin within our own mind Then it is a case of true repentance.

마음속의 죄를 없애면 그것이 진짜 참회다.

혜능은 보시(布施)와 공양으로 복을 쌓는 것과 죄를 없애는 참회를 구분합니다. 복은 다음 생의 행복에 관한 것이고, 죄의 뿌리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내 마음에서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의례와 헌금으로 죄가 씻긴다는 생각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으로 읽힙니다.

我心自有佛,自佛是真佛
(아심자유불, 자불시진불)

Within our mind there is Buddha, and that Buddha within is the real Buddha.

우리 마음속에 부처가 있으니, 안에 있는 그 부처가 진짜 부처다.

부처를 밖에서 구하는 일을 멈추라는 말입니다. 몸은 잠시 머무는 여관과 같다는 비유도 곁들입니다.

20. 가르침은 정해진 체계가 아니다

신수의 제자 지성이 혜능에게 자신의 스승이 가르치는 계·정·혜를 소개하고 혜능의 체계는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吾若言有法與人,即為誑汝
(오약언유법여인, 즉위광여)

If I should tell you that I had a system of Dhyana to transmit to others, I would be deceiving you.

내가 남에게 전할 선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대를 속이는 것이다.

혜능은 자기 가르침은 사람을 제각각의 속박에서 풀어 주는 방편(方便)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신수의 가르침이 틀렸다고 하지 않고, 근기가 다른 사람에게 다르게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장면에는 책이 남과 북의 분열을 어떻게 다루려 하는지가 드러납니다.

같은 맥락에서 앉아 있는 수행에 대한 유명한 시도 나옵니다.

生來坐不臥,死去臥不坐
(생래좌불와, 사거와부좌)

A living man sits and does not lie down; But a dead man lies down and does not sit.

살아 있는 사람은 앉기만 하고 눕지 않고, 죽은 사람은 눕기만 하고 앉지 않는다.

앉는 자세로 깨달음이 결정된다는 생각을 가볍게 뒤집는 농담입니다. 혜능은 이 몸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을 지우는 것이 무슨 이치냐고 되묻습니다.

21. 세상을 떠나 깨달음을 구하지 말라

혜능이 시로 남긴 말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히는 것입니다.

佛法在世間,不離世間覺,離世覓菩提,恰如求兔角
(불법재세간, 불리세간각, 이세멱보리, 흡여구토각)

This world is the Buddha-world Within which enlightenment may be sought. To seek enlightenment by separating from this world Is as foolish as to search for a rabbit's horn.

이 세상이 곧 부처의 세계이니, 깨달음은 그 안에서 구할 일이다. 세상을 떠나서 깨달음을 구하는 것은 토끼 뿔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다.

같은 시에는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若見他人非,自非卻是左
(약견타인비, 자비각시좌)

If we find fault with others , We ourselves are also in the wrong;

남의 허물을 찾으면 우리 자신도 잘못하는 것이다.

산속에 들어가야 깨닫는다는 생각과 남의 허물을 헤아리는 습관을 한 번에 겨냥합니다. 선이 일상의 불교로 불리는 이유를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22. 황실의 초청과 마지막 말

황실이 혜능을 궁으로 불렀을 때 그는 병을 이유로 사양합니다. 사신이 가르침의 요점을 청하자 이렇게 답합니다.

但一切善惡,都莫思量,自然得入清淨心體
(단일체선악, 도막사량, 자연득입청정심체)

you should free yourself from all thought--good ones as well as bad ones--then your mind will be in a state of purity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모든 생각에서 스스로 벗어나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은 맑은 상태가 될 것이다.

그 앞에서는 가부좌를 틀어야만 해탈한다는 수도의 선사들의 주장에 대해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며 앉는 자세에 달려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혜능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此宗本無諍,諍即失道意
(차종본무쟁, 쟁즉실도의)

Disputes are alien to our school, They are incompatible with its spirit

논쟁은 우리 종파와 거리가 멀고, 그 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또 자신이 죽은 뒤 세속의 풍습대로 울고 슬퍼하지 말라고 이르고, 가사를 전하는 관행도 이것으로 끝낸다고 선언합니다. 마지막 시는 이렇게 끝납니다.

寂寂斷見聞,蕩蕩心無著
(적적단견문, 탕탕심무착)

Calm and silent, he gives up seeing and hearing; Even and upright his mind abides nowhere.

고요하고 잠잠하여 보고 듣는 것마저 놓으니, 바르고 곧은 마음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금강경』의 한 구절에서 깨달은 그가 같은 이치로 생을 마칩니다. "머무는 곳 없이"라는 말이 책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묶습니다.

돈오와 점수, 남은 논쟁

『육조단경』은 돈오(단번의 깨달음)와 점수(점진적 수행)의 논쟁을 낳았습니다. 신수 계통을 북종, 혜능 계통을 남종이라 부르며, 후대의 선종은 남종의 흐름이 주류가 됩니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 두 흐름이 이 책이 그리는 만큼 선명하게 대립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고, 이 책이 만들어진 시대의 논쟁이 이야기에 반영되었다고 보는 연구가 많습니다. 또한 책 속의 돈오는 "수행 없이 한순간에 된다"는 뜻으로 읽히기 쉽지만, 혜능 자신은 깨달은 뒤에도 사냥꾼 곁에서 십오 년을 보냈고 날마다 마음을 살피라고 가르칩니다. 돈오는 수행의 부정이 아니라 수행의 방향을 바꾸는 말로 읽는 편이 책의 내용에 가깝습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앞의 이야기와 뒤의 설법으로 나누어 읽으면 좋습니다. 앞부분은 신수와 혜능의 시, 한밤의 전수, 도망과 은거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므로 소설처럼 빠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뒷부분은 반야, 선정, 참회, 문답이 이어지는 설법이라서 한 번에 많이 읽기보다 한 단락씩 곱씹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무상, 무념, 무주"를 다루는 대목과 두 편의 시를 나란히 놓고 읽으면 책의 뼈대가 보입니다.

전해지는 판본마다 분량과 구성이 달라서 같은 책이라도 장의 순서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특정 판본의 장 번호보다 이야기의 흐름과 주제를 따라 읽기를 권합니다. 『금강경』을 먼저 읽고 오면 혜능이 왜 그 한 구절에서 깨달았는지 한결 가깝게 느껴지고, 『도덕경』을 이어 읽으면 중국 사상이 불교를 만나 어떻게 다른 말투로 같은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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