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1911년 출간
My Life
나의 생애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작곡가가 빚과 실패, 혁명과 망명, 두 번의 파리와 취리히를 거쳐 바이에른 젊은 왕의 부름을 받기까지 1813년부터 1864년의 삶을 직접 풀어 놓은 자서전
the value of this autobiography consists in its unadorned veracity
이 자서전의 가치는 꾸밈없는 진실성에 있다.
my life was to have no more of these alarms
내 삶에는 이런 놀람이 더는 없을 터였다.
한눈에 보기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아버지를 잃고 배우 양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은 베버와 베토벤에 사로잡혀 작곡가가 되기로 합니다. 1부(1813~1842)는 학생 결투와 도박, 마그데부르크의 몰락, 민나와의 결혼과 가출, 리가 해임, 빚에 쫓긴 탈출과 폭풍 속 항해, 가난한 파리 시절을 거쳐 『리엔치』를 완성하고 독일로 돌아오기까지입니다. 2부(1842~1850)는 『리엔치』의 성공과 『네덜란드인』의 실패, 궁정악장의 안정과 불화, 『탄호이저』와 『로엔그린』, 1848년 혁명과 바쿠닌, 1849년 드레스덴 봉기와 취리히 망명으로 이어집니다. 3부(1850~1861)는 취리히의 우정과 이론 작업, 스페치아의 『라인의 황금』 착상, 런던 지휘, 베젠돈크 부인 사건과 베네치아, 파리 『탄호이저』의 참패를 다룹니다. 4부(1861~1864)는 빈의 좌절과 『마이스터징어』 구상, 러시아 연주 여행, 파산 위기를 지나 바이에른 왕의 사자가 도착하는 순간에서 끝납니다. 열일곱 가지 대목으로 읽는다.
비슷한 책
- 벤저민 프랭클린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 (The Autobiography of Benjamin Franklin)
-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The Confessions of Saint Augustine)
- 프레더릭 더글러스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생애』 (Narrative of the Life of Frederick Douglass)
한 권 요점
My Life
『나의 생애』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극작가 리하르트 바그너가 자신의 삶을 구술한 자서전입니다. 바그너는 1813년에 태어나 1883년까지 산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책은 그의 말을 아내가 받아 적은 기록이라고 서문에서 밝힙니다. 서문에 따르면 처음에는 가족과 믿을 만한 친구들만 읽도록 소량을 자비로 인쇄했고, 일반에 공개된 것은 저자가 세상을 떠난 뒤의 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 권, 네 부분으로 나뉩니다. 1권은 제1부(1813~1842)와 제2부(1842~1850), 2권은 제3부(1850~1861)와 제4부(1861~1864)입니다. 장 제목은 없고 시간 순서로 사건이 이어집니다. 책의 줄기는 분명합니다. 가난과 빚, 불화한 결혼, 번번이 어긋나는 공연과 극장 정치 속에서도 자기 음악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예술가의 고집이고, 그 고집이 어떻게 사람들과 도시를 소진시키며 나아가는지를 저자 스스로 숨김없이 적습니다. 이름과 날짜를 정확히 적는 것이 이 책의 유일한 정당성이라는 서문의 선언처럼, 자랑스러운 대목만큼 부끄러운 대목도 길게 나옵니다.
줄거리
서문: 구술된 삶
바그너는 이 책이 여러 해에 걸친 자신의 구술을 친구이자 아내가 받아 적은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녀가 삶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청했고, 둘은 가족과 믿을 만한 친구들만 읽도록 하려 했습니다. 유일한 원고가 사라질 경우에 대비해 자비로 소량을 인쇄하기로 합니다. 그는 이 자서전의 가치가 꾸밈없는 진실성에 있으므로 정확한 이름과 날짜가 들어갔고, 따라서 자신이 죽고 한참 뒤 후손이 관심을 가질 때에야 공개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 지침은 유언장에 남기겠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지금도 보여 주되, 뜻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하지 않으리라 믿는다는 말로 서문을 맺습니다.
제1부 1~5절: 양아버지와 극장의 소년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바그너는 경찰 서기였던 아버지 프리드리히를 그해 10월 열병으로 잃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친구인 배우 겸 화가 루트비히 가이어와 재혼해 드레스덴으로 옮기고, 소년은 열네 살까지 리하르트 가이어로 불립니다. 극장 무대에서 천사 역을 맡고, 여섯 살에 포젠도르프의 목사에게 보내집니다. 이듬해 임종하는 양아버지 곁에서 피아노를 치고, 어머니에게 그가 너를 어떻게든 키우려 했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후 아이슬레벤의 금세공 삼촌 집에서 울새를 잡아 주고 줄타기를 흉내 내고, 연대 악대가 연주하는 〈마탄의 사수〉의 사냥꾼 합창에 빠집니다. 라이프치히의 학자 삼촌 아돌프의 집은 소년에게 책과 수수께끼 같은 어른의 세계입니다.
드레스덴에서는 배우가 된 형제자매, 특히 집안을 떠받치는 맏누이 로잘리가 눈에 띄고, 소년은 가구가 살아 있는 듯 비명을 지르는 유령 꿈에 시달리면서 무대 뒤의 환상 세계에 이끌립니다. 십자학교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빠져 급우 추모시가 인쇄되자 시인이 될 운명이라 믿고 서사시와 그리스풍 비극을 시도하다 포기합니다. 가족이 프라하로 떠난 뒤에는 하숙 생활을 하고 1827년 봄 친구와 걸어서 프라하로 가며 구걸도 하고 하프 악사와 사귑니다. 라이프치히로 간 그는 견진례에서 신앙이 식은 것을 깨닫고 니콜라이 학교와 충돌해 공부를 놓습니다. 열다섯 살에 완성한 비극 〈로이발트와 아델라이데〉는 햄릿·리어·맥베스를 뒤섞은 유령과 복수극이었고, 가족이 경악하는 가운데 그는 여기에 곡을 붙일 결심을 합니다.
제1부 6~10절: 음악으로의 결심, 학생 시절
이탈리아 거세가수 사사롤리가 소년을 질겁하게 하는 반면 베버는 숭배의 대상이 됩니다. 바그너는 〈마탄의 사수〉와 베토벤에 열광하며 작곡을 결심하고, 로지어 교본 빚이 들통나며 화성학 수업은 지루해 호프만의 환상 소설에 빠집니다. 마그데부르크에서 쿤라인에게서 좋은 음이 하나도 없다는 평을 듣고, 9번 교향곡 악보를 베끼느라 학교를 반년 빠진 사실이 드러납니다. 〈피델리오〉에서 본 슈뢰더-데브리엔트는 평생 가장 깊은 인상으로 남고, 1830년 7월 혁명 소식과 학생 소요 속에서 그는 "음악 학생"으로 대학에 등록해 작센 클럽에 들어갑니다.
방학 동안 낭인 학생들과 어울리다 거인 같은 데겔로와 결투를 약속하지만 상대가 먼저 다른 결투에서 죽어 싸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어 석 달 동안 도박에 빠져 어머니의 연금까지 걸고, 마지막 한 판에서 빚을 갚고도 남을 만큼 딴 뒤 어머니에게 고백하고 도박을 끊습니다. 183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검정·빨강·초록 잉크로 악기군을 나눈 서곡을 올렸으나 다섯 번째 마디마다 울리는 팀파니에 청중이 놀라 침묵합니다. 성 토마스 합창장 바인리히에게 두 달 푸가와 대위법을 배운 뒤 "독립"을 얻었다는 말을 듣고, 이후 C장조 교향곡이 게반트하우스에서 연주됩니다. 폴란드 봉기와 빈의 〈잠파〉 열기, 프라하 파흐타 영지의 서투른 연애를 거쳐 어두운 대본 〈결혼〉은 누이 로잘리의 반응에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립니다.
제1부 11~16절: 뷔르츠부르크에서 마그데부르크까지
라우베를 만난 바그너는 〈요정들〉 대본을 직접 쓰고, 1833년 뷔르츠부르크에서 형 알베르트의 도움으로 합창 지휘자가 되어 〈뱀파이어〉와 〈악마 로베르트〉를 준비합니다. 합창단원 테레제, 이어 프리데리케 갈바니와 연애를 하며 〈요정들〉 총보를 마칩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로잘리의 주선으로 상연이 허락되지만 극장 내부의 트집으로 끝내 미뤄지고, 라우베의 〈젊은 유럽〉과 슈뢰더-데브리엔트가 부른 벨리니의 〈로미오〉에 마음이 뒤집혀 이탈리아·프랑스풍 가벼운 오페라 쪽으로 기웁니다. 친구 아펠과의 보헤미아 여행에서 〈사랑 금지〉의 줄거리를 구상합니다.
마그데부르크 극단이 지휘자를 구한다는 말에 라우흐슈테트로 갔다가 하숙집 문 앞에서 여배우 민나 플라너를 만나 눌러앉습니다. 1835년 신년 파티의 취한 밤 민나 곁에서 깨어난 뒤 두 사람은 공공연한 연인이 됩니다. 〈콜럼버스〉 서곡은 환호받았으나 자기 이름의 연주회는 청중이 적었고 베토벤 〈빅토리아 전투〉의 포격이 소란이 되어 모두 도망칩니다. 극단이 해산되자 라이프치히로 돌아가고 민나와 작센 스위스를 여행하며 평생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합니다. 가수 모집 여행에서 누이 클라라와 매형을 설득해 합류시키고, 군악대까지 끌어들인 좋은 극단을 만듭니다. 〈사랑 금지〉는 열흘 만에 서둘러 올린 1836년 공연에서 가수들이 대사를 외우지 못해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았고, 두 번째 공연 직전 한 배우가 질투로 상대 테너와 아내를 때려 공연이 취소됩니다. 빚쟁이 소환장이 쌓이자 로잘리가 작별합니다.
제1부 17~19절: 결혼, 가출, 리가
쾨니히스베르크 극장에 자리를 얻은 민나와 헤어져 베를린에 간 바그너는 극장장의 빈말에 속습니다. 이어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민나와 결혼하기로 하지만, 그녀가 소녀 시절 아이를 낳은 사정과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의심해 말다툼을 벌이다 1836년 11월 24일 냉랭한 하객 속에서 식을 올립니다. 이튿날부터 마그데부르크 채권자 문제가 터지고, 1837년 5월 31일 민나가 상인과 함께 사라집니다. 엘빙까지 뒤쫓다 돈이 떨어져 돌아와 드레스덴 처가에서 아내와 만나지만 민나는 다시 떠나고, 불워 리턴의 소설을 읽으며 〈리엔치〉 대본을 구상합니다.
1837년 가을 리가 극장에 부임해 가벼운 극을 좋아하는 극장장 홀테이와 부딪치며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를 강화합니다. 병든 몸과 고백 편지로 돌아온 민나와 서로 과거를 묻지 않기로 하고 처제와 함께 삽니다. 〈리엔치〉를 쓰기 시작하고 로잘리의 부음을 받으며, 홀테이가 민나에게 접근했다 거절당한 일과 후임 지휘자가 홀테이의 반감을 이용해 자기 자리를 차지했음을 알고는 1839년 3월 해임됩니다.
제1부 20~24절: 국경 탈출, 바다, 파리
빚 때문에 여권이 없던 부부는 아브라함 뮐러의 도움으로 러시아 국경을 초병 사이로 몰래 건너고, 개 로버를 데리고 범선 테티스호에 오릅니다. 폭풍 속에 노르웨이 피오르에 피난했을 때 선원들의 외침에서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선원 노래 선율이 떠오릅니다. 석 주 만에 런던에 닿아 한 주를 보내고 8월 20일 불로뉴로 건너갑니다. 불로뉴에서 마이어베어가 친절히 소개장을 써 주지만 파리의 오페라 극장은 그를 외면합니다.
바그너는 몰리에르 생가가 있는 허름한 집에 살며 서지학자 앤더스와 문헌학자 레르스를 벗으로 삼습니다. 노래와 아리아를 팔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반지와 결혼 선물을 전당 잡혔으며 개 로버도 잃습니다. 오직 연습 때 들은 베토벤 9번이 옛 확신을 되살려 줍니다. 〈리엔치〉를 1840년 11월 완성해 드레스덴에 보내고, 슐레진저의 편곡 허드렛일을 하며 〈베토벤 순례〉 소설로 호평을 얻습니다. 1841년 2월 〈콜럼버스〉 서곡 연주는 코르네트 연주자들의 실수로 완전히 실패합니다. 집세 해지 통지를 이틀 늦게 해 한 해 치 월세를 물게 되자 뫼동으로 피신하고, 오페라 극장 지배인에게 〈네덜란드인〉 줄거리를 500프랑에 팔아 7주 만에 독일판 곡을 거의 완성합니다. 철학자 레르스와 대화하고 독일 역사를 읽으며 '탄호이저' 전설과 〈로엔그린〉 이야기를 발견하고, 베를린이 〈네덜란드인〉을 수락하고 드레스덴이 〈리엔치〉를 기다리는 가운데 1842년 4월 7일 눈물 속에 벗들과 헤어집니다.
제2부 1~7절: 귀환, 『리엔치』의 성공, 『네덜란드인』의 실패
1842년 4월 바그너는 눈보라 속 닷새를 달려 드레스덴에 닿습니다. 도중에 바르트부르크를 보고 탄호이저 3막의 풍경을 떠올립니다. 베를린에서는 감독 교체로 〈네덜란드인〉 건이 막혀 마이어베어와 멘델스존의 냉담함만 확인합니다. 드레스덴의 합창장 피셔와 배우 하이네는 따뜻하게 맞습니다. 토플리츠에서 어머니와 지내다 슈레켄슈타인에서 〈베누스베르크〉 3막 구상을 수첩에 적고, 염소지기의 휘파람에서 순례자 합창의 착상을 얻습니다. 7월 중순 〈리엔치〉 연습이 시작됩니다. 슈뢰더-데브리엔트는 여전히 위대하나 몸집과 질투가 문제이고, 테너 티하체크는 마음에 드는 대목마다 은화를 내놓는 농담으로 바그너의 생활비를 보태 줍니다. 총연습에서는 합창과 단역까지 감동합니다.
1842년 10월 20일 초연 날 바그너는 꿈속처럼 객석을 느끼지 못하고 저녁 6시부터 자정 넘어까지 이어지는 길이에 절망합니다. 이튿날 가차 없는 삭제를 지시하지만 티하체크가 막습니다. 공연은 이틀로 나눠 올리다 접히지만 이후 〈리엔치〉는 늘 만원이 됩니다. 성공은 시기를 부르고, 사례금은 900마르크입니다. 〈네덜란드인〉은 드레스덴에서 초연하기로 하는데 주역이 어울리지 않는 바리톤에게 떠안겨집니다. 12월 베를린에서 바그너는 리스트를 처음 만나 그의 소박한 매력에 깊은 인상을 받습니다. 1843년 1월 2일 〈네덜란드인〉 초연은 미스캐스팅과 해석 지도 부족으로 실패하고, 네 번 공연 뒤 극장은 〈리엔치〉를 되살립니다. 바그너는 〈리엔치〉의 성공이 목소리와 합창, 발레 같은 겉모습 덕임을 깨닫고, 이 실패는 해석을 직접 지도해야 한다는 교훈이 됩니다.
제2부 8~13절: 궁정악장, 비평, 합창제, 필니츠
바그너는 라스트렐리 후임 제안은 거절하지만 모를라키 자리가 나자 민나가 들뜨고 베버 부인이 눈물로 설득합니다. 안정된 수입의 유혹에 넘어가 1843년 2월 2일 종신 4,500마르크의 궁정악장이 됩니다. 곧 빚쟁이가 몰려와 슈뢰더-데브리엔트에게서 3천 마르크를 빌려 갚고, 비평가들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리엔치〉 여섯 번째 공연을 연습 없이 지휘해 호평을 받자 라이시거가 불쾌해하고, 악장 리핀스키는 악단을 등 돌리게 하지만 바그너는 충돌을 피하며 단원들의 헌신을 얻습니다. 음악감독 뢰켈이 평생의 친구가 되고, 바그너는 자신이 드레스덴 악장으로 생을 마치지는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남성합창 협회의 대합창제를 위해 「사도들의 사랑의 향연」을 쓰지만 1,200명 합창의 실제 효과가 약해 실망합니다. 토플리츠에서 그림의 독일 신화학을 읽으며 재탄생을 겪고, 가을에는 빚으로 오스트라 알레의 큰 집과 서재를 꾸립니다. 1844년 초 베를린의 〈네덜란드인〉은 직접 지휘하는 첫날 1막은 박수가 없고 2막부터 열광하나 이튿날은 야유가 섞이고 비평은 조롱뿐입니다. 낙담한 자정에 낯선 베르더 교수가 걸작이라고 말해 줍니다. 오페라 피아노 편곡을 자비로 출판하려 메저 상회를 세우지만 슈뢰더-데브리엔트가 약속한 자금이 무산되고 그는 고리대에 의존합니다. 1844년 8월 영국에서 돌아오는 작센 왕을 위해 합창단과 악단 수백 명을 모아 새벽 증기선으로 필니츠에 가 환영곡을 연주하고, 궁정을 오가는 마차에서 탄호이저 행진곡의 착상을 얻습니다.
제2부 14~20절: 스폰티니, 베버 이장, 『탄호이저』와 『로엔그린』
로슈비츠의 포도원에서 〈탄호이저〉 2·3막을 쓰던 가을, 바그너는 스폰티니를 〈베스탈린〉 지휘자로 초청합니다. 거장은 흑단 지휘봉과 열두 대의 콘트라베이스를 요구하며 도착해 리허설을 뒤엎고, 만찬에서 자신 이후 새 음악은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어 마르슈너의 신작을 마지못해 지휘하고,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 힐러의 오페라가 두 번 만에 실패하는 것을 봅니다. 1844년 12월 바그너는 위원장으로서 베버의 유해를 런던에서 드레스덴으로 옮기는 일을 이끌며 〈오이리안테〉 주제로 장송곡을 짜고, 횃불 행렬 끝 묘소에서 생애 첫 공식 연설을 합니다.
1845년 4월 〈탄호이저〉 악보를 직접 100부 찍고 1,500마르크의 손해를 봅니다. 마리엔바트 요양 중 볼프람을 읽다 로엔그린이 한꺼번에 떠올라 의사의 금지를 어기고 스케치합니다. 1845년 10월 19일 초연에서는 노래 경연 대목이 티하체크의 몰이해로 무너지고 비너스 역과 늦게 온 무대 배경도 약점이 되지만, 미터부르처의 볼프람과 슈뢰더-데브리엔트의 조카 요한나의 엘리자베트가 작품을 살립니다. 바그너는 실패를 자기 탓으로 돌려 삭제를 가하고, 2차 공연은 박수 요원 덕에 힘을 얻습니다. 힐러의 모임에 슈만, 젬퍼 등이 모이지만 서로의 재능을 존중하지 않고, 아우어바흐는 유대인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는 첫 상대가 됩니다. 몇 주 만에 쓴 〈로엔그린〉 대본에 프랑크가 엘자의 벌이 비극적이지 않다고 의문을 제기해 바그너도 흔들리지만, 뤼티하우 부인의 편지에 확신을 되찾습니다.
제2부 21~25절: 합창 교향곡, 개작, 베를린의 좌절, 어머니의 죽음
1846년 종려주일에 바그너는 악단 연금 기금 연주회에 베토벤 9번을 올리려 하고, 악단 간부와 뤼티하우의 반대를 끈질기게 넘습니다. 해설문을 쓰고 익명 기사로 홍보해 수입이 최고에 이르며, 합창 300명을 도취로 이끌고 비음악인까지 감동합니다. 빚이 쌓이자 슈뢰더-데브리엔트가 조카에 대한 질투로 차용증을 변호사에게 넘겨 소송이 나고, 그는 연금 기금 대출과 생명보험으로 수습합니다. 그로스그라우펜에서 3개월 휴가 동안 〈로엔그린〉 전 3막을 스케치하고, 방문한 열여섯 살 한스 폰 뷜로가 휴가의 벗이 됩니다. 글루크의 이피게니아를 개작해 1847년 초 성공시키고, 8월 〈로엔그린〉 작곡을 마칩니다.
1847년 가을 프로이센 왕의 후원을 기대하고 베를린에서 〈리엔치〉를 지휘하지만, 주역 테너는 부족하고 비평은 가혹하며 왕은 끝내 오지 않습니다. 귀향길 마차에서 민나는 〈리엔치〉를 헐뜯는 외판원을 열띠게 꾸짖습니다. 돌아온 뒤 급료 인상을 청원하자 뤼티하우가 가져온 왕의 보고서는 그가 재능을 과대평가했다며 해고까지 언급해 그를 모욕합니다. 프로이센 왕이 〈탄호이저〉를 보러 와 자신감이 돌아오고, 1848년 2월 어머니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납니다.
제2부 26~30절: 1848년, 뤼티하우와의 결별, 니벨룽, 바쿠닌
파리의 소식에 드레스덴이 들끓고, 바그너는 새 정치 질서에 설레며 〈로엔그린〉 총보를 마칩니다. 익명 논설을 쓰고 직접 3천 명 앞에서 낭독했다가 궁정과 언론의 분노를 사지만 국왕은 처벌을 막습니다. 7월 빈에서 극장 개혁안을 읽지만 호응이 없습니다. 급료 청원의 답이 한 번뿐의 보조금이었고 악단의 해임 청원이 궁정 관리들이 시킨 일이었음을 알고 뤼티하우와 완전히 갈라섭니다. 뢰켈은 반역죄로 체포됐다 풀려나 민중신문을 내고 프루동식 개혁론으로 바그너를 설득합니다. 바르바로사 드라마를 구상하다 니벨룽 신화의 더 큰 매력에 끌려 논고 「니벨룽」을 쓰고, 〈로엔그린〉 무대 제작이 갑자기 취소되자 극장과 결별하기로 하며 「지크프리트의 죽음」을 씁니다.
1849년 종려주일 9번 교향곡 리허설에서 러시아인 바쿠닌이 세계가 불타도 이 곡만은 구하자고 말합니다. 뢰켈의 집에 숨은 바쿠닌은 거구에 소크라테스식으로 논쟁하며 파괴만이 길이라 주장하고, 바그너의 예술 계획은 조롱하지만 〈네덜란드인〉을 듣고는 감탄합니다. 바그너는 그에게서 인류애와 야만이 뒤섞인 이중성을 봅니다.
제2부 31~37절: 드레스덴 5월 봉기, 도주, 취리히, 보르도
1849년 5월 1일 의회가 해산되고 뢰켈이 도피하자 바그너가 민중신문을 맡습니다. 3일 성 안나 교회 종이 울리자 그는 기이한 쾌감을 느끼고 무기고 충돌과 바리케이드를 구경합니다. 국왕이 피신하고 임시정부가 서며, 바그너는 십자탑 위에서 밤을 새우며 관찰자로 머뭅니다. 7일 새벽 광부 지원군이 들어오고 오페라 극장이 불탑니다. 호이브너·바쿠닌의 퇴각 계획을 듣고 프라이베르크까지 마차로 따라가지만 켐니츠에서 그들이 체포되는 바람에 간신히 화를 면합니다. 바이마르의 리스트를 거쳐 빌린 여권으로 5월 말 취리히에 닿습니다.
6월 콜레라의 파리에서 마이어베어는 서점 뒤에 숨고 쉴레징거는 돈 이야기뿐이어서 바그너는 이 도시를 끔찍하게 느낍니다. 민나가 함께 살지 않겠다고 편지하자 결혼의 뿌리 깊은 불화를 되짚고 삶이 모래 위에 지어졌다는 체념에 이릅니다. 취리히에서 「예술과 혁명」과 「니벨룽」 소책자를 넘겨 처음 글로 돈을 벌고, 9월 민나가 앵무새와 개를 데리고 와 합류합니다. 겨울에는 포이어바흐에 심취해 「미래의 예술작품」을 씁니다. 1850년 2월 리스트와 민나의 종용으로 파리에 가지만 악단은 단원 투표로 탄호이저 서곡을 거부하고, 마이어베어의 〈예언자〉에 역겨워 극장을 뛰쳐나옵니다. 보르도의 라우소 부인 제시를 찾아가 후원 제안을 받고, 민나의 닦달과 뢰켈·바쿠닌의 사형 선고 소식이 겹쳐 세상에서 물러날 결심을 하며, 파리로 돌아와 아내에게 결별을 통보합니다. 이어 제네바 호반과 체르마트로 은둔하다 취리히로 돌아가 민나를 만납니다.
제3부 1~6절: 아벤트슈테른의 집, 취리히의 벗들
민나가 취리히 엔게의 여관 '아벤트슈테른' 2층에 숙소를 구해 두었고, 바그너는 지난 일을 다시 입에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앵무새 파포는 그의 발소리에 교향곡 선율을 휘파람으로 불고, 개 펩스는 일하는 그 뒤에 늘 누워 있습니다. 칼 리터와 한스 폰 뷜로가 차례로 찾아와 장크트갈렌 극장으로 떠나고, 리터는 갈수록 바그너에게 은밀한 반감을 키웁니다. 취리히 음악협회에서 교향곡마다 리허설 세 번을 조건으로 베토벤을 지휘해 큰 호응을 얻고, 『오페라와 드라마』를 열두 저녁 낭독합니다. 원고를 끝낸 이튿날 앓던 파포가 죽자 부부는 함께 애통해합니다.
예민한 줄처, 콜라체크, 1851년 합류한 헤르베흐는 취리히의 소중한 친구들입니다. 리스트는 로엔그린 설명서로 지지자를 모으고, 바이마르 극장은 1년 1,500마르크로 「지크프리트의 죽음」 작곡을 제안합니다. 울리히의 소개로 필명으로 쓴 「음악에서의 유대성」이 큰 소동을 일으키고 친구들이 떠나며 '미래음악'이라는 이름이 퍼집니다. 바그너는 울리히에게 붉은 장정 원고에 "붉은색이 내 이론"이라 적어 선물하고, 리터와 산티스를 오르다 현기증으로 쓰러질 듯한 리터 때문에 혼쭐이 납니다.
제3부 7~11절: 수치료, 반지의 완성, 스페치아, 파리의 낭독
바그너는 알비스브룬 수치료원에서 9주를 보내고, 리터가의 연 2,400마르크 지원이 확정되자 바이마르 보수를 반환하고 『니벨룽겐』 완성을 결심합니다. 극단적 물 요법으로 몹시 쇠약해지고, 1852년 사회 변혁 기대는 12월 2일 쿠데타로 무너져 깊이 우울해집니다. 베젠돈크 부부를 알게 되고, 발퀴레 시를 완성하고, 혼자 알프스를 도보로 넘어 이탈리아 호반에서 헤르베흐 일행을 만납니다. 10~11월 〈라인골트〉 대본을 마쳐 연작이 완결되고, 폐병이 깊어진 울리히가 1853년 1월 3일 세상을 떠납니다.
1853년 5월 오케스트라를 불러 사흘 연주회를 열며 마흔 번째 생일을 맞고, 7월에는 리스트가 찾아와 파우스트 교향곡을 함께 즐깁니다. 이탈리아로 떠나 제노바와 스페치아에서 이질을 앓다 선잠 중 E♭ 장3화음의 물살 소리를 들으며 〈라인골트〉 서곡을 얻습니다. 10월 바젤에서 리스트가 뷜로, 요아힘 등과 로엔그린 팡파르로 맞이하고 캐롤라인 폰 비트겐슈타인과 딸도 합류합니다. 파리 호텔에서 『니벨룽겐』 전체를 낭독하고 베를리오즈, 리스트의 자녀를 만난 뒤 지쳐 취리히로 돌아옵니다.
제3부 12~17절: 쇼펜하우어, 런던, 펩스의 죽음, 리스트와 리터
바그너는 1853년 11월부터 5년 반 만에 작곡을 재개해 1854년 1월 〈라인골트〉 스케치를, 5월 총보를 마칩니다. 헤르베흐의 권유로 쇼펜하우어를 읽고 의지 부정에 놀라나 보탄을 이해하며, 니벨룽겐 시에 '존경을 담아'라 적어 쇼펜하우어에게 보냅니다. 리터의 초안을 계기로 비극 〈트리스탄〉과 〈파르지팔〉 장면을 구상하기 시작합니다. 1855년 3월 런던에 건너가 필하모닉 8회 연주회를 200파운드에 지휘하고, 코스타의 적의와 《타임스》의 혹평 속에서도 여왕 부부가 〈탄호이저〉 서곡을 청하고 마지막 연주회에서 단원과 청중이 열광합니다. 베를리오즈에게 예술적 구상을 설명하다 '소화'라는 한마디로 일축당하고, 안개와 병으로 〈발퀴레〉 총보는 100쪽에 그칩니다.
13세 노견 펩스가 경련으로 괴로워하자 청산을 구해 오지만 그날 밤 개는 스스로 숨을 거두어 정원에 묻힙니다. 겨울에 안면단독이 거듭되고 불교 서적에서 '승리자'를 구상합니다. 1856년 3월 〈발퀴레〉 정서를 마치고 6월 모르넥스의 순한 수치료로 완전히 낫습니다. 9월 22일 〈지크프리트〉 작곡에 들어가고, 땜장이 소음에서 미메를 꾸짖는 주제를 얻습니다. 10월 리스트가 〈단테 교향곡〉 결말 수정을 청하자 수긍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리스트가 격해져 내뱉은 말을 모욕으로 받아들인 리터가 크게 분노해 떠납니다.
제3부 18~22절: 아실, 트리스탄, 베젠돈크 부인 사건, 베네치아, 루체른
1857년 〈지크프리트〉 1막을 끝낸 바그너는 베젠돈크가 사 준 저택 옆 작은 시골집 아실에 연 800프랑을 내고 4월 말 입주합니다. 성금요일 아침 햇살에 〈파르지팔〉의 3막 드라마가 떠오르고, 생일 노래를 계기로 마음이 〈트리스탄〉으로 기웁니다. 9월 뷜로와 코지마 부부가 와서 〈트리스탄〉 대본을 읽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10월 작곡이 시작됩니다. 1858년 4월 〈트리스탄〉 1막과 함께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미나가 가로채 읽고 비난하다 부인에게 직접 경고하자 두 집안의 사이가 끊기고, 8월 17일 아침 바그너는 미나와 작별해 제네바로 가서 리터와 베네치아로 갑니다.
지우스티니아니 궁에 방을 얻고 에라르 피아노를 들인 그는 이질과 종기를 앓으며 곤돌라를 타고 곤돌리에르의 노래를 듣는 일곱 달을 보내고 〈트리스탄〉 2막을 끝냅니다. 1859년 3월 전쟁 기운에 밀라노를 거쳐 루체른 슈바이처호프에 자리 잡고 이곳을 델로스 섬에 비유합니다. 빚에 쫓겨 초기 오페라 판권을 9,000마르크에 넘기고, 8월 초 3막 작곡을 마치며, 바덴 대공의 도움이 막히자 파리로 옮깁니다.
제3부 23~27절: 파리 『탄호이저』
바그너는 파리 뉴턴가에 작은 빌라를 3년 임대하나 철거 예정지였고, 11월 17일 도착한 미나는 하인 문제로 소란을 피웁니다. 1860년 쇼트가 〈라인골트〉를 1만 프랑에 사들이자 이탈리아 극장에서 3회 연주회를 열어 첫날 열광을 받지만 적자가 납니다. 베를리오즈의 공격에 반박문을 싣고 보들레르 등의 호의를 얻으며, 메테르니히 공작부인의 후원으로 황제가 〈탄호이저〉 상연을 명령하지만 극장장은 발레를 요구합니다. 번역자를 바꾸고 니만과 계약하고, 비너스베르크 장면을 대폭 확장하며 리허설을 시작합니다.
프랑스식 리허설은 극단적으로 차갑고 정확했고, 집이 도로 공사로 접근 불능이 되어 옮기다 바그너는 티푸스를 앓습니다. 1861년 3월 13일 초연과 18일 재연에서 조키클럽이 휘파람으로 방해하고, 일요일 3회째 공연도 소란이라 바그너는 철회합니다. 실패 뒤 구노 등 지지가 나오고, 4월 카를스루에와 빈에서 〈로엔그린〉에 열광한 청중을 만납니다. 파리에서 펩스 이후 개 피프스가 중독으로 죽어 미나와의 관계가 끝나 가고, 8월 소덴에서 미나와 헤어져 바이마르로 향합니다.
제4부 1~8절: 바이마르, 빈, 베네치아의 티치아노
튀링겐을 지나 바이마르에 도착한 바그너는 리스트가 마련한 알텐부르크의 방에 머뭅니다. 뷜로가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을 외워 지휘해 성공하고, 궁정은 바그너에게 훈장도 만찬도 내주지 않습니다. 블랑딘과 올리비에 부부와 빈으로 향하는 길에 뉘른베르크 여관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라이헨할에서 요양 중인 코지마를 만나 건강이 덜 위독함에 안도합니다. 빈에서는 스탠하르트너의 빈 집을 쓰게 되지만 안데르가 목소리를 다쳐 〈트리스탄〉 연습은 무기한 연기되고, 바덴 대공에게 거처와 연금을 청하나 정중한 거절을 받습니다. 라우베와 한슬리크, 무능한 관리자 살비 사이에서 바그너는 흥미를 잃고, 정직한 지휘자 에세르와만 우정을 이어 갑니다.
베젠돈크 부부의 초대로 찾은 베네치아 아카데미아에서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을 보고 옛 힘이 되살아나 〈마이스터징어〉를 작곡하기로 결심합니다. 빈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서곡의 주요 부분이 떠오릅니다. 마인츠의 쇼트에게 판권을 2만 프랑에 넘기겠다 했으나 단호히 거절당하고, 결국 〈발퀴레〉 피아노 편곡 선금으로 삼천 마르크를 받습니다. 12월 중순 파리 호텔 볼테르의 소박한 방에서 〈마이스터징어〉 대본을 한 달 만에 완성합니다.
제4부 9~16절: 비브리히의 한 해
브뤼셀, 베를린, 호른슈타인에게 거처를 청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푸르탈레스 부인에게 대본을 처음 낭독해 함께 웃습니다. 비브리히 라인 강변에 에라르 피아노와 정착하지만, 찾아온 민나는 살림을 정리하다 다시 다투고 드레스덴으로 떠납니다. 비스바덴의 라프와 바이스하이머를 알고, 여배우 프리데리케 마이어와 마틸데 마이어 집안과 가깝게 지냅니다. 라인 강변 노을 속 황금빛 마인츠를 바라보다 〈마이스터징어〉 전주곡이 다시 선명히 떠올라 서곡을 적습니다. 민나의 편지는 갈수록 험악해져 푸지넬리를 통해 법적 별거를 권하고, 한밤 하녀 리셴의 히스테리 발작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비스바덴 도박장에서는 룰렛 숫자를 예언해 모두 적중시키지만 자신의 이익을 걸면 재능이 사라질 것이라 말하며 청년을 도박판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데브리엔트가 〈로엔그린〉 무삭제 공연 요구를 악의로 받아들이자 바그너는 카를스루에 공연을 거절하고, 몰래 본 슈노르의 로엔그린에 반합니다. 7월 뷜로가 비브리히로 오고 이틀 뒤 코지마가 뒤따르며, 13년 만에 석방된 뢰켈이 나타납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뷜로 부부와 헤어질 무렵 바그너는 코지마가 자신에게 속한다는 확신을 품고 들뜬 장난을 칩니다. 돌아오니 쇼트가 추가 지원을 끊었고, 집주인의 불독에게 엄지를 물려 두 달간 글을 쓰지 못합니다.
제4부 17~21절: 빈 재초청, 연주회, 후원
빈에서 안데르가 목소리를 회복했다며 〈트리스탄〉 공연 초청이 오고, 더스트만이 바그너를 한슬리크와 화해시킵니다. 바그너는 〈마이스터징어〉를 접고 해외 공연으로 돈을 벌기로 하고, 프랑크푸르트 〈로엔그린〉 공연은 뜻대로 되지만 블랑딘의 사망 소식이 들립니다. 라이프치히로 가다 아이제나흐에서 기차를 놓쳐 구경하던 군중이 웃자 독일 청중이 불행으로 즐거워한다는 신조를 얻고, 라이프치히 연주회장은 정기 연주회 측의 보이콧으로 텅 비지만 코지마와 뷜로를 만나 즐겁습니다. 대공이 보낸 천오백 마르크로 드레스덴에 가서 민나의 소박한 집을 찾지만 민나는 서먹함 때문에 언니를 곁에 둡니다.
바그너는 프리데리케 마이어와 함께 빈에 가지만 그녀는 부르크극장 출연에 실패해 베네치아로 요양을 떠납니다. 스탠하르트너 집의 〈마이스터징어〉 낭독회에서 한슬리크는 자신이 풍자 대상이라 여겨 안색이 변한 채 자리를 떠나고 그날부터 적대적이 됩니다. 12월 26일부터 세 번의 연주회는 음향이 나빠 첫날 큰 적자를 보지만 방음 칸막이 이후 마지막 날은 만원이 되고, 칼레르기스 부인과 스탠하르트너가 후원금을 모읍니다.
제4부 22~28절: 러시아, 순회, 파산 위기, 바이에른 왕의 사자
프라하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이천 마르크를 벌고, 베를린에서 임신한 코지마와 뷜로를 만난 뒤 러시아로 향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세로프와 오케스트라의 환영을 받고 대공비 헬레네의 궁정에서 니벨룽 낭독회가 열리며, 모스크바에서는 열병으로 첫 연주회를 취소했다가 엿새 안에 세 번을 마칩니다. 시녀 라덴 양이 "짓고, 희망하세요"라고 일러 주지만 베를린에서 코지마와 재회한 바그너는 건축을 단념하고 빈 근처 펜칭에 집을 얻습니다. 5월 22일 50세 생일을 펜칭에서 맞고, 7월 부다페스트에서 두 번의 연주회를 열며, 개 포올과 산책하며 외로움을 달랩니다.
빈 오페라 개혁에 관한 글은 호평을 받지만 감독안은 무산되고 11월 프라하 연주는 수지가 맞지 않습니다. 카를스루에에서 두 번의 연주회로 모피 외투를 사고, 베를린 뷜로 부부의 집에서는 마차 산책 중 코지마와 말없이 서로의 불행을 고백합니다. 뢰벤베르크에서는 호엔촐레른 공이 사천이백 마르크를 건네고 브레슬라우 연주회도 성공하지만, 1864년 초 비싱 부인은 집안의 반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거절합니다. 환어음 빚이 늘어 신변이 위태로워지자 3월 말 빈을 탈출해 뮌헨을 거쳐 취리히로 도망치고, 슈투트가르트로 옮겨 〈마이스터징어〉 1막을 마무리할 거처를 구합니다. 5월 3일 밤 바이에른 왕의 비서라는 명함이 도착하고, 이튿날 피스터마이스터가 젊은 왕의 편지와 초상, 반지를 전합니다. 마이어베어의 부음을 들은 바그너는 로엔그린 사례금을 받고 오후 다섯 시 역에서 비서와 만나 뮌헨으로 떠나며, 이후의 삶에서는 일상의 곤궁에 눌리지 않으리라고 회상합니다. 책은 여기서 끝납니다.
대목별로 읽기
1. 서문: 구술된 진실
서문은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쓴 것이 아니라 불러 준 것입니다.
written down directly from my dictation
내 구술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
그는 이 책의 가치를 꾸밈없음에 둡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름과 날짜의 정확성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the value of this autobiography consists in its unadorned veracity
이 자서전의 가치는 꾸밈없는 진실성에 있다.
precise names and dates
정확한 이름과 날짜
자서전에서 진실성은 늘 의심받는 약속입니다. 이 책은 당사자에 대한 호불호가 날카롭게 드러나는 기록이기도 해서, 정확한 날짜와 장소를 고집하는 서문의 선언과 인물을 평가하는 서술의 온도 사이를 함께 읽는 편이 좋습니다.
2. 죽은 아버지의 기대와 괴물 같은 음악
소년은 양아버지가 임종하는 곁에서 피아노를 치고, 어머니에게서 그가 한 말을 전해 듣습니다. 이 한 문장이 평생의 부담이 됩니다.
He hoped to make something of you
그는 너를 어떻게든 키워 내려 했단다.
음악은 훈련이 아니라 두려움과 매혹으로 먼저 옵니다. 규칙을 가르치려는 교본이 오히려 소년의 흥을 깨뜨립니다.
For me music was a spirit, a noble and mystic monster
내게 음악은 하나의 정령, 고귀하고 신비로운 괴물이었다.
마그데부르크의 쿤라인은 소년이 열정으로 쓴 습작에 냉정한 평을 내립니다.
There is not a single good note in it!
이 안에는 좋은 음이 하나도 없다!
바그너는 스승의 학습보다 베버와 베토벤을 통한 독학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이 장면들은 훗날 규칙을 어기는 작곡가의 기질이 이미 소년 시절에 있었음을 암시하는 작은 복선입니다.
3. 결투, 도박, 그리고 독립
라이프치히 대학 시절은 책에서 가장 유쾌하면서도 위태로운 대목입니다. 결투 구경을 허락하는 학생의 말은 대학 사회의 풍경을 보여 줍니다.
Let them leave the little freshman there, in God’s name!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 어린 신입생은 그냥 거기 두게!
도박에 빠져 어머니의 연금까지 걸었던 그는 마지막 판에서 이긴 밤의 감각을 이렇게 적습니다.
I felt as if God and His angels were standing by my side
하느님과 천사들이 내 곁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그가 이 행운을 신의 인도로 해석하고 곧바로 도박을 끊는 장면은 책 전체의 패턴을 일찍 보여 줍니다. 바그너는 위기의 순간을 '운명'으로 읽는 사람이고, 그 확신이 실제 선택을 바꾸기도 합니다. 바인리히의 수업은 그 반대편, 사무적이고 짧은 훈련입니다. 출판업자에게 한 재치 있는 거절이 스승의 성격을 보여 줍니다.
Let him who got the meat gnaw the bones.
고기를 얻은 사람이 뼈도 씹게 하시오.
수업이 끝날 때 스승은 결과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what you have mastered is Independence: you can now stand alone
자네가 익힌 것은 독립일세. 이제 홀로 설 수 있네.
4. 마그데부르크와 민나: 근심의 시작
민나를 만난 뒤 맞은 새벽을 바그너는 삶이 달라진 순간으로 기록합니다.
The demon of care had at last entered into my existence.
근심이라는 악마가 마침내 내 삶에 들어왔다.
사랑의 시작이 곧 책임의 시작이 되는 이 서술은 이후 부부 관계 전체를 읽는 열쇠입니다. 〈사랑 금지〉의 참패는 그 직업적 결과입니다.
This was the end of my career as director and composer in Magdeburg
이로써 마그데부르크에서의 지휘자 겸 작곡가 경력은 끝났다.
빚쟁이를 피해 떠나는 길에 맏누이 로잘리가 건넨 작별은 예감이 맞아떨어진 말이 됩니다. 로잘리는 이후 리가 시절에 세상을 떠납니다.
God alone knows when I shall see you again!
우리가 언제 다시 볼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1837년 민나가 집을 나간 날 바그너의 반응도 정직하게 적혀 있습니다.
With death in my soul I dashed out of the house
영혼에 죽음을 품은 채 나는 집을 뛰쳐나갔다.
그는 아내와의 불화를 자신의 처신 탓과 상대의 탓 모두로 쓰지만, 민나 쪽의 서술은 없습니다. 독자는 한 사람의 기억을 읽고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5. 폭풍의 바다와 가난한 파리
러시아 국경을 몰래 넘은 부부가 노르웨이 피오르에 피난했을 때, 선원들의 외침이 네덜란드인의 선원 노래가 됩니다.
The sharp rhythm of this call clung to me like an omen
그 외침의 날카로운 리듬이 전조처럼 내게 달라붙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은 그를 외면하지만, 연습 때 들은 베토벤이 옛 확신을 되살립니다.
a stream of the most touching and heavenly melodies which delighted my heart
마음을 기쁘게 하는 더없이 감동적이고 천상적인 선율의 흐름
베를리오즈는 연습장에서 쓸쓸한 한마디를 건넵니다.
that it was very difficult to get on in Paris
파리에서 자리를 잡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
그가 쓴 단편은 하이네에게서 이런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Hoffmann would have been incapable of writing such a thing
호프만이라면 이런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파리 시절은 실패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리엔치〉를 완성하고 〈네덜란드인〉을 구상한 시기입니다. 가난이 그를 글쓰기로도 밀었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 가장 생산적인 실패의 대목입니다.
6. 드레스덴의 『리엔치』
연습 중 테너 티하체크는 마음에 드는 대목마다 은화를 던져 바그너의 생활을 도왔고, 그 대목에는 이름까지 붙습니다.
Here comes the silver penny part
자, 은화 나올 대목이 왔다.
초연 이튿날 바그너가 대규모 삭제를 지시하자 티하체크가 가로막습니다.
I will have none of my part cut out—it is too heavenly.
내 배역은 한 줄도 뺄 수 없소. 너무나 천상적이니까.
그는 틀린 가사도 태연히 노래하는 가수였고, 입버릇은 이렇습니다.
Ah! that will be all right soon.
아! 곧 괜찮아질 거요.
성공의 무대에서 바그너가 본 것은 객석이 아니라 가수의 허영과 극장의 사정이었습니다. 이 경험이 훗날 그가 공연을 직접 통제하려는 집요함으로 이어지는 배경으로 읽힙니다.
7. 『네덜란드인』의 실패와 스폰티니
슈뢰더-데브리엔트는 센타 연습 중 그에게 탄식합니다. 비대한 주역을 둘러싼 난장판이 첫 실패의 이유가 됩니다.
Good God, Wagner, what a muddle you have made!
맙소사, 바그너, 이게 무슨 난장판이에요!
스폰티니는 드레스덴에 〈베스탈린〉 지휘자로 와 오케스트라를 호통칩니다.
Are the violas dying?
비올라가 죽어 가고 있나?
바그너는 이 거장의 자기 확신이 미신처럼 굳었다고 보고, 훗날 그의 임종 일화를 이렇게 전합니다.
Je ne veux pas mourir, je ne veux pas mourir!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두 장면은 같은 인물의 양면입니다. 스폰티니는 바그너가 닮고 싶지 않은 권위의 초상이고, 그 임종의 비명은 권위의 한계를 비추는 거울로 쓰입니다.
8. 『탄호이저』와 『로엔그린』
〈탄호이저〉 초연에서는 노래 경연 대목이 가수의 몰이해로 무너졌고, 박수 요원을 세운 2차 공연에서야 관객이 알아들었다고 바그너는 말합니다.
Heinrich, thou art saved
하인리히여, 그대는 구원받았도다.
〈로엔그린〉 대본을 두고 친구들이 엘자의 벌이 비극적이지 않다고 의문을 제기하자 바그너도 잠시 흔들렸고, 훗날 리스트에게 짧게 단언합니다.
Stahr is wrong, and Lohengrin is right.
슈타르가 틀렸고 로엔그린이 옳다.
프로이센 왕은 베를린에서 〈리엔치〉를 지휘하고 싶어 한 그를 이렇게 귀찮아했다고 전해집니다.
Oh bother! have you come to me again with your Rienzi?
이런, 또 리엔치를 들고 왔는가?
인기 있는 초기작이 새 작품을 가로막는 풍경은 이 책의 반복되는 아이러니입니다. 바그너는 자기 최고의 성공을 가장 낮게 평가하게 됩니다.
9. 어머니의 죽음과 1848년의 종소리
1848년 2월, 바그너의 어머니는 평화롭게 세상을 떠납니다. 마지막 말은 이렇게 전해집니다.
Oh! how beautiful! how lovely! how divine!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얼마나 거룩한가!
어머니가 극장을 막으려 했던 일을 떠올리면 이 마지막 감탄은 책 전체에서 가장 부드럽게 울립니다. 혁명의 계절이 바로 뒤에 이어집니다. 1849년 5월 3일 성 안나 교회의 종이 울리자, 그 소리에 놀란 화가의 한마디가 기록됩니다.
Good God, it has begun!
맙소사, 시작되었다!
바그너 자신은 이 순간 공포보다 기이한 쾌감을 느꼈다고 씁니다. 그는 바리케이드를 구경하는 사람이면서 민중신문을 이끈 사람이고, 이 두 얼굴이 봉기 서술의 긴장을 만듭니다.
10. 바쿠닌과 봉기의 끝
9번 교향곡만은 세계가 불타도 구하자고 말하던 바쿠닌은 봉기의 현장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후퇴하는 길에서 바쿠닌은 어린 바이올린 주자를 이렇게 놀립니다.
You are not in the company of your fiddle here, my friend.
여기는 자네의 바이올린 곁이 아니라네, 친구.
우는 마부를 두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The tears of a Philistine are nectar for the gods.
속물의 눈물은 신들의 넥타르다.
켐니츠의 보초가 임시정부의 종말을 알리는 말은 짧고 건조합니다.
Why, it’s all up with that.
아니, 그건 이제 끝났소.
바그너는 바쿠닌에게서 인류애와 야만이 뒤섞인 이중성을 보았다고 적습니다. 이 인물 묘사는 책에서 가장 강렬한 초상 중 하나이며, 동시에 저자가 혁명에서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었는지도 알려 줍니다.
11. 파리의 환멸과 모래 위의 삶
망명 직후 파리에서 민나가 함께 살지 않겠다고 편지하자, 바그너는 결혼의 근본적인 불화를 되짚고 이렇게 정리합니다.
my life had been built on a foundation of sand and nothing more
내 삶은 모래 위의 토대에 세워졌을 뿐이었다.
1850년 보르도의 제시 라우소를 둘러싼 소동 끝에 그는 파리로 돌아와 아내에게 결별을 통보합니다. 이 시기 몽모랑시의 여관 주인 이름은 공교롭게도 이런 말장난을 낳습니다.
my host rejoiced in the name of Homo
여관 주인은 '호모'라는 이름을 자랑스레 달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뜻의 라틴어 이름을 가진 여관 주인은 가장 인간적인 순간의 바그너를 지켜보는 구경꾼처럼 등장합니다. 파국의 와중에도 서술자가 농담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 이 책의 숨은 매력입니다.
12. 취리히의 집, 펩스와 울리히
아벤트슈테른 시절의 일상은 개와 앵무새와 함께 흘러갑니다. 일하는 동안의 풍경이 담긴 한 줄입니다.
Peps would always lie behind me in the armchair while I was working
펩스는 내가 일하는 동안 늘 내 뒤 안락의자에 누워 있었다.
울리히에게는 붉은 장정의 원고를 선물하며 괴테의 '회색 이론'을 뒤집어 씁니다.
RED, my friend, is MY theory
붉은색, 친구여, 이것이 나의 이론이다.
둘은 소포에 편지를 숨기는 은어도 만듭니다.
Figaro brings tidings to-day.
오늘은 피가로가 소식을 전한다.
바그너는 필명으로 쓴 「음악에서의 유대성」이 큰 소동을 일으키고 친구들이 떠났다고 적습니다. 이 논문은 오늘날에도 반유대주의 논란과 함께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책 속의 서술과 이후의 평가를 구분해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개와 앵무새, 한 친구의 죽음은 이 책이 얼마나 사적인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13. 스페치아의 환상과 쇼펜하우어
1853년 이탈리아에서 이질을 앓던 바그너는 선잠 중에 〈라인골트〉 서곡의 물살을 듣고, 삶의 방향에 대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was not to flow to me from without, but from within
밖에서 내게 흘러드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
1854년 헤르베흐의 권유로 읽은 쇼펜하우어는 의지 부정이라는 낯선 사상으로 그를 놀라게 하지만, 곧 작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Now at last I could understand my Wotan
이제야 마침내 나의 보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그너는 철학을 따라 작품을 쓰지 않았고, 작품이 먼저 있었으며 철학이 그 의미를 풀어 주었다고 서술합니다. 이 순서의 주장이 실제 창작 과정과 얼마나 맞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저자가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싶어 했는지는 분명합니다.
14. 런던, 베를리오즈, 리스트
1855년 런던에서 만난 베를리오즈는 바그너가 열을 올리며 설명한 예술적 구상을 한마디로 일축합니다.
Nous appelons cela: digerer.
우리는 그것을 '소화'라고 부르지요.
극장에서는 로미오 역이 여배우임을 안 지휘자의 외침도 기록됩니다.
Donnerwetter, it's a woman!
이런, 여자잖아!
1856년 취리히에서 리스트의 단테 교향곡 결말을 두고 바그너는 외칩니다.
No majestic Deity!
장엄한 신은 안 됩니다!
하이네의 이름이 불멸의 전당에 새겨질지를 묻자 리스트는 재치 있게 받아칩니다.
Yes, but in mud,
네, 하지만 진흙 속에서요.
이 대목들은 예술가들 사이의 우정과 날 선 대화가 어떻게 오가는지 보여 줍니다. 특히 리스트는 바그너를 가장 오래 지원한 사람으로 그려지면서도 가끔 지적 거리를 두는 인물입니다.
15. 베네치아와 루체른: 트리스탄의 집
베젠돈크 부인 사건 뒤 바그너는 취리히를 떠나 베네치아에 도착해 지우스티니아니 궁에 방을 얻고 이렇게 혼잣말합니다.
At last I am living in Venice.
마침내 나는 베네치아에 살고 있다.
도시는 오스트리아 점령 아래 있었고, 장교들은 현지인 사이에서 이렇게 보였다고 합니다.
like oil on water
물 위의 기름처럼
마지막 막을 쓸 조용한 장소로 그가 고른 곳은 루체른입니다.
I wished to regard Lucerne as this Delos.
나는 루체른을 이 델로스 섬으로 여기고 싶었다.
이 사이 취리히를 떠날 때 미나가 정리를 고집하며 한 말은 부부의 마지막 풍경이 됩니다.
Order there must be.
질서는 있어야 해요.
〈트리스탄〉을 쓰는 동안 그는 가장 엄격한 일과를 지켰다고 하고, 그 규율이 사랑의 광기를 다룬 작품과 대조를 이룹니다.
16. 파리 『탄호이저』의 참패
황제의 명령으로 올리게 된 파리 〈탄호이저〉에서는 극장장이 발레를 요구했고, 사교계의 인물은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Ah! le Pape ne vient pas en scene? C'est bon!
아! 교황이 무대에 나오지 않는다고요? 좋군요!
1861년 3월 초연 때 조키클럽의 휘파람이 시작되자 극장장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Ce sont les Jockeys; nous sommes perdus.
조키들이다. 우린 끝났다.
참패 뒤 구노는 이 실패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Que Dieu me donne une pareille chute!
하느님이 제게도 저런 실패를 내려 주시기를!
바그너는 이 사건을 음모와 취향의 충돌로 서술합니다. 그러나 구노의 말은 실패조차 부러워할 만한 기록이 될 수 있다는, 훗날 시선으로 읽을 여지를 남깁니다.
17. 빈의 좌절, 코지마, 바이에른의 사자
티치아노의 그림 앞에서 바그너는 결심합니다.
I determined at once on the composition of the Meistersinger.
나는 즉시 마이스터징어를 작곡하기로 결심했다.
비스바덴의 룰렛 앞에서 그는 청년에게 숫자를 예언합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이익이 걸리면 재능이 사라진다는 말로 판을 접게 합니다.
Number 11 will win
11번이 이길 거요.
my gift of prophecy will disappear at once
내 예언의 재능은 곧바로 사라질 것이다.
아이제나흐에서 기차를 놓친 일은 독일 청중에 대한 냉소를 낳습니다.
you can please the German public by your misfortunes if by nothing else
다른 무엇으로도 안 되면 불행으로 독일 대중을 즐겁게 할 수 있다.
러시아 여행 뒤 시녀 라덴 양이 건축 계획을 망설이는 그에게 한 말은 짧습니다.
Build and hope!
짓고, 희망하세요!
베를린 마차 산책에서 코지마와 나눈 말 없는 고백은 칼데론의 시구로만 암시됩니다.
Things impossible to conceal, yet impossible of utterance.
감출 수도, 입 밖에 낼 수도 없는 일들.
임신한 코지마를 본 뒤 뷜로를 안심시키는 말도 같은 자리에 놓입니다.
nothing could possibly put me out of sympathy with Cosima
무엇도 나를 코지마에 대한 공감에서 떼어 놓을 수는 없다.
비싱 부인이 도움을 묻는 말에 던진 거절은 파산 위기의 문을 닫습니다.
Well, then, in God’s name, NO!
그렇다면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니오!
책은 이 거절들의 연속 끝에 바이에른 왕의 사자를 세워 둡니다. 마지막 대목의 회상은 희망과 경계가 섞여 있습니다.
my life was to have no more of these alarms
내 삶에는 이런 놀람이 더는 없을 터였다.
18. 이 책을 읽는 방법
『나의 생애』는 장 제목이 없는 두 권의 연대기이므로 처음부터 차례로 읽을 수도 있고, 관심 있는 시기를 골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소년기와 학생 시절은 제1부 1~10절, 마그데부르크와 민나는 제13~18절, 바다와 파리는 제20~24절입니다. 제2부에서는 『리엔치』 연습과 초연(3~4절), 스폰티니의 방문(14절), 9번 교향곡과 바쿠닌(21, 29~30절), 드레스덴 봉기(31~32절)가 서사의 중심입니다. 제3부는 취리히의 일상(1~6절), 스페치아(10절), 베네치아(21절), 파리 『탄호이저』(23~27절)를 먼저 읽을 만합니다. 제4부는 빈의 좌절과 비브리히의 한 해를 거쳐 마지막 장면으로 모입니다. 한 가지 염두에 둘 점은, 이 책이 저자 한 사람의 기억이라는 사실입니다. 인물에 대한 호오와 사건의 순서는 저자의 입장에서 쓰였고, 이름과 날짜를 정확히 적는다는 서문의 선언도 평가나 해석까지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한 예술가가 자신을 어떻게 설명하고 싶어 했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 주는 자료로 읽을 때 가장 값집니다.
ReadGem 앱 소개
ReadGem 앱은 세계 고전을 읽으며 언어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돕는 다국어 독서 플랫폼입니다.
원문과 번역을 문장별로 나란히 보여 주어 언어 간 표현을 비교할 수 있고, 모든 작품의 모든 문장을 TTS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ReadGem 앱의 서재는 퍼블릭 도메인의 오래 사랑받은 작품을 중심으로 하며, 삽화가 실린 책도 많습니다.
ReadGem 앱은 독자와 함께 번역을 만들어 가는 플랫폼이기도 합니다.
읽다가 더 나은 표현이 떠오르는 문장을 만나면, 스마트폰에 설치된 AI 앱에 그 문장의 새 번역을 요청하고 결과를 ReadGem에 보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제안은 검토를 거쳐, 가장 좋은 것(또는 여러 제안을 합친 것)이 모든 독자가 읽는 번역이 됩니다.
아직 번역이 없는 언어에서는 처음부터 AI와 함께 번역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번역본이 없다는 이유로 고전을 읽지 못하는 일이 그렇게 줄어듭니다.
『나의 생애』의 영어 원문을 ReadGem 앱에서 직접 들어 보세요.
모든 문장을 원어 음성으로 따라 들으며 이야기를 귀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ReadGem 앱은 Android와 iOS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