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1862년 출간
Fathers and Sons
아버지와 아들
대학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이 모든 것을 부정하는 친구를 데려오면서 시골 영지의 두 세대가 부딪치고, 그 친구가 사랑과 결투와 죽음을 지나 부모 곁의 무덤에 이르는 이야기
Deny everything.
모든 것을 부정한다.
Now let there come--darkness.
이제 어둠이 오라.
한눈에 보기
1859년 5월, 대학을 마친 아르카디가 친구 바자로프와 함께 아버지 니콜라이의 영지 마리노로 돌아옵니다. 의학도 바자로프는 스스로 허무주의자라 부르며 권위도 시도 원칙도 믿지 않고, 영국식으로 사는 아버지의 형 폴 페트로비치와 날카롭게 맞섭니다. 두 청년은 시내에서 부유한 과부 오딘초프 부인을 만나고, 바자로프의 사랑 고백은 거절당합니다. 그는 부모의 집에서 허무함을 곱씹은 뒤 마리노에서 폴과 결투를 벌이고,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가 티푸스 시신을 해부하다 감염되어 죽습니다. 열여섯 가지 대목으로 읽는다.
비슷한 책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Crime and Punishment)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The Picture of Dorian Gray)
한 권 요점
Fathers and Sons
『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가 1862년에 낸 장편 소설입니다. 투르게네프는 1818년에 태어나 1883년까지 산 것으로 알려져 있고, 러시아 소설을 유럽에 널리 알린 작가로 흔히 꼽힙니다. 이 책은 스물여덟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 장에 1859년 5월 20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습니다. 줄거리를 한 줄로 줄이면 새 세대와 낡은 세대의 충돌이지만, 소설은 그 충돌을 구호로 끝내지 않습니다. 가장 격렬하게 부정하던 인물이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그를 가장 싫어하던 인물이 가장 쓸쓸한 과거를 품고 있다는 것이 책을 끌고 갑니다. 책에서 다루는 허무주의라는 말은 바로 이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퍼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줄거리
제1~4장: 역참의 베란다에서 마리노의 저녁까지
1859년 5월 20일, 마흔 줄의 지주 니콜라이 페트로비치 키르사노프가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역참 베란다에서 아들을 기다립니다. 하인 피터는 건방지게 "아직 안 보입니다"만 되풀이합니다. 서술은 니콜라이의 내력으로 넘어갑니다. 장군의 아들인 그는 다리를 다쳐 군인이 되지 못하고 대학을 나왔고, 부모가 죽은 뒤 집주인의 딸과 결혼해 시골에 정착해 아르카디를 낳았습니다. 1847년 아내가 죽자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이후 아들을 따라 페테르부르크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이윽고 마차가 나타나고 그는 "아르카샤!" 하고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습니다.
아르카디는 친구 바자로프를 소개합니다. 키가 크고 마른 데다 초록빛 눈과 구레나룻이 눈에 띄는 그는 정중한 환대에도 모자만 들어 보일 뿐 말이 없고, 마차가 둘만 탈 수 있어 따로 탈 것에 오릅니다. 마차 안에서 니콜라이는 농민이 소작료를 안 내고 일꾼이 게으르다고 푸념하다가, 더듬거리며 테니치카라는 처녀가 집에 산다고 고백합니다. 아르카디는 허물없이 받아들이며 아버지를 안심시키지만 속으로는 우월감을 느낍니다. 아버지가 푸시킨을 읊으면 바자로프가 담뱃불을 찾아 흥을 깹니다. 저택에서 형 폴 페트로비치가 나타나는데, 마흔다섯이라도 은빛 머리와 영국식 옷차림이 단정한 그는 조카에게 입 맞추면서도 바자로프에게는 악수 대신 손을 주머니에 넣습니다. 밤에 바자로프는 폴을 "시골에서 보기 드문 멋쟁이"라 비웃고 니콜라이의 불안한 신경도 지적합니다.
제5~8장: 허무주의자, 개구리, 그리고 폴의 쓸쓸한 방
이튿날 바자로프는 아침 일찍 마을 아이들과 개구리를 잡으러 가서, 사람도 개구리와 같으니 해부하면 치료의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침 식탁에서 아르카디는 아버지가 테니치카 이야기를 꺼내지 못한 것을 나무라며 "남동생"이 있다는 걸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아버지를 끌어안습니다. 폴이 바자로프의 정체를 묻자 아르카디는 "허무주의자", 곧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이라 답하고, 폴은 원칙 없이는 숨도 못 쉰다고 응수합니다. 진흙투성이로 개구리 자루를 들고 온 바자로프를 폴이 "원칙보다 개구리를 믿는 자"라고 비꼽니다. 제6장에서 폴은 독일 학문과 권위에 대한 견해를 캐묻고, 바자로프는 무례하리만큼 짧게 답하다가 하품합니다. 그는 "좋은 화학자가 시인 스무 명만 하다"고 하고 리비히조차 "아직 알파벳도 못 뗐다"고 일축합니다. 폴이 "시험이라도 보는 겁니까" 하고 얼굴이 창백해지자 니콜라이가 끼어들어 토론을 미룹니다.
제7장에서 아르카디가 삼촌의 과거를 들려줍니다. 근위대 장교로 미남에 사교계의 스타였던 폴은 스물여덟에 대위가 되어 출세길이 열려 있었지만, 변덕스럽고 신비로운 R 공작부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가 식어 갈수록 집착한 그는 스핑크스 반지를 선물하고 군복을 벗은 채 4년간 그녀를 쫓아 유럽을 헤맸고, 바덴에서 다시 만났으나 곧 완전히 헤어졌습니다. 귀국 후 공허하게 10년을 보내다 그녀가 파리에서 죽었다는 소식과 십자 표시가 된 반지를 받았고, 이후 동생의 마리노에 눌러앉아 영국식으로 삽니다. 아르카디는 삼촌이 불행한 사람이라 변호하지만 바자로프는 사랑에 모든 걸 걸고 무너진 사람은 어리석다고 일축합니다. 제8장에서 폴은 평소 말 한마디 걸지 않던 테니치카의 방을 찾아 녹차를 부탁하고, 아기 미티아를 보며 "형을 닮았다"고 중얼대다 니콜라이가 들어오자 서둘러 떠납니다. 두 사람의 사연도 소개됩니다. 3년 전 여관 여주인 아리나를 가정부로 데려왔고, 그 딸 테니치카의 눈을 치료해 주며 마음이 갔으며, 어머니가 콜레라로 죽은 뒤 가까워졌습니다.
제9~12장: 정면충돌과 시내로의 외출
바자로프는 정원에서 아기를 안은 테니치카를 만나 의사라며 다가가 미티아의 잇몸을 살피고, 아이는 그의 품에서 얌전합니다. 그는 관리인과 농민이 니콜라이를 속이고 있다고 평하며 "자연은 사원이 아니라 작업장이고 인간은 일꾼"이라 말합니다. 그때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첼로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가 연주한다는 말에 바자로프가 웃음을 터뜨리지만 아르카디는 웃지 못합니다. 두 주가 흐르며 하인들은 바자로프를 따르지만 집사 프로코피치와 폴은 그를 싫어합니다. 니콜라이는 바자로프가 자신을 "한물간 사람"이라 하는 말을 엿듣고, 아르카디가 푸시킨 대신 뷔히너의 책을 건넸다고 형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날 저녁 폴이 귀족의 품위와 원칙을 논하자 바자로프는 "유용한 것만 인정한다, 지금은 부정이 가장 유용하다"며 모든 것을 부정한다고 답합니다. 폴이 "파괴하는 게 힘이냐"고 쏘아붙이자 바자로프는 개구리를 해부하러 가자며 자리를 뜹니다. 제11장에서 니콜라이는 정자에 앉아 아들과의 틈을 아파하고 첫 아내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바자로프는 시내의 친척 초대를 받아들이자고 아르카디에게 제안하고, 거기서 자기 부모에게도 들르겠다고 하며 이튿날 둘이 떠납니다. 제12장에서 둘이 간 도시는 젊고 독단적인 지사가 다스리고, 조사차 온 마트베이 일리치는 진보를 자처하나 허영 많은 관리입니다. 바자로프의 "제자" 시트니코프가 달려들어, 해방된 여성 쿠크신 부인의 집에 샴페인이 있다며 둘을 끌고 갑니다.
제13~20장: 오딘초프 부인, 고백, 그리고 부모의 집
쿠크신 부인은 어질러진 방의 소파에 누워 담배를 권하며 화학과 여성 문제, 조르주 상드와 에머슨을 두서없이 늘어놓습니다. 샴페인이 늘어나는 동안 바자로프는 아름답고 부유한 과부 오딘초프 부인이 이 도시에 있다는 말에 관심을 보입니다. 참다못한 아르카디가 "이건 소란판"이라 외치고 두 친구는 인사도 없이 나옵니다. 지사 댁 무도회에서 아르카디는 검은 드레스의 키 큰 여인에게 눈길이 끌려 마주르카를 청하고, 부인은 그를 어린 동생처럼 대하며 아무것도 믿지 않는 그의 친구를 데려오라고 초대합니다. 호텔에서 바자로프는 돈 냄새가 난다며 냉소하다가 막상 그녀 앞에서는 당황하는 자신에게 짜증을 냅니다. 안나는 노름꾼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고 죽은 뒤 어린 동생 카티아와 심술궂은 이모 공작부인을 견디다가 병약한 부자 오딘초프의 청혼을 받아들여 6년을 살았고, 그가 죽자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세 시간의 대화 끝에 부인은 둘을 니콜스코에로 초대합니다.
저택에서 안나는 바자로프와 예술과 인간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바자로프는 사람이 숲의 나무와 같고 도덕적 병폐는 사회가 바로잡히면 사라진다고 주장합니다. 아르카디는 안나를 사랑한다고 확신하면서도 어느새 카티아와 가까워지고, 바자로프는 안나에 대한 감정을 낭만이라 부끄러워하며 숲을 헤맵니다. 아버지의 늙은 집사 티모테이치가 찾아와 바자로프가 집에 가겠다고 하자 안나가 흔들립니다. 밤에 안나는 모든 걸 주고받는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고, 바자로프는 격하게 그녀의 손을 쥐고 나가 두 시간 뒤 흐트러진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이튿날 책을 핑계로 바자로프를 부른 안나는 속마음을 캐묻고, 결국 그가 창가에서 "맹목적이고 미칠 듯이"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그녀를 껴안습니다. 안나는 두려움과 연민에 그를 밀어내고, 방에서 홀로 평온을 지키는 것이 제일이라 마음먹습니다. 바자로프는 다음 날 떠나겠다고 하고, 시트니코프가 불쑥 와서 분위기가 풀리는 사이 아르카디도 함께 떠납니다. 바자로프는 시트니코프 같은 이들이 필요하다며 신들은 항아리를 구울 필요가 없다고 오만하게 말합니다. 바자로프의 영지에서 아버지 바실리 이바니치는 파이프를 떨며 아들을 맞이하고, 어머니 아리나 블라시예브나는 울며 아들에게 매달립니다. 아버지는 손님에게 소박한 살림을 사과하고 약초 정원과 군의관 시절의 지식을 자랑하며 쉴 새 없이 떠듭니다. 서술자는 아리나를 미신을 믿고 남편에게 의지하며 아들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옛 러시아 주부로 소개하며, 그런 여인은 이제 사라졌다고 맺습니다.
제21~24장: 짧은 체류, 되돌아온 길, 라일락 정자와 결투
아침에 바실리 이바니치는 채소밭을 파다가 아르카디에게 아들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고, 아르카디가 "가장 비범한 사람"이라 열변을 토하자 노인은 감격해 그의 어깨에 입을 맞춥니다. 건초 더미 아래서 바자로프는 부모의 만족스러운 삶과 자기의 권태를 대비하며 원칙은 없고 본능만 있다고 주장합니다. 말이 폴에게 번지자 둘은 거의 격돌하고, 바자로프는 사흘 만에 떠나겠다고 결심합니다. 두 사람이 떠난 뒤 노인은 "나는 사막의 모래처럼 외롭다"고 울지만, 아리나가 "우리는 나무 속 이끼처럼 곁에 있다"며 그를 껴안습니다. 갈림길에서 아르카디가 오딘초프 쪽 길을 제안하고 바자로프는 "또 그 어리석은 짓이냐"면서 따르지만, 니콜스코에의 안나는 놀랍고 반갑지 않은 기색으로 네 시간을 차갑게 대한 뒤 "두 분 모두 다시 오라"고 말합니다. 마리노로 돌아오니 영지는 엉망입니다. 병든 말, 화재, 소작료 체납, 농민 다툼에 니콜라이는 속수무책이고, 아르카디는 오딘초프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다가 열흘 만에 일요학교 시찰을 구실로 길을 나서 정원에서 카티아를 만납니다. 안나는 "당신 자신을 가져왔으니 그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맞이합니다.
혼자 남은 바자로프는 연구에 틀어박히고, 폴과는 냉랭한 예의만 지킵니다. 콜레라가 돌 때 폴은 기절하고도 바자로프의 도움을 거절합니다. 바자로프가 허물없이 대하는 유일한 사람은 테니치카입니다. 어느 새벽 라일락 정자에서 장미를 꺾던 그녀에게 그는 진료비 대신 장미 한 송이를 달라고 하고, 건네받자 입술에 입을 맞춥니다. 마른기침과 함께 폴이 나타나 "아, 당신들이었군" 하고 돌아서고, 테니치카는 "정말 잘못하셨어요" 하며 달아납니다. 두 시간 뒤 폴은 바자로프의 방을 찾아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결투를 신청합니다. 바자로프는 이론상 어리석지만 모욕당하면 응하겠다며 받아들이고, 입회인으로 하인 피터를 쓰자고 비꼽니다. 이튿날 새벽 여섯 시 숲 뒤에서 폴의 첫 발은 바자로프의 귓가를 스치고, 바자로프의 총알은 폴의 허벅지를 맞힙니다. 폴은 기절하지만 상처는 가볍고, 형에게는 로버트 필 경 때문에 다퉜다고 둘러댑니다. 열에 들뜬 폴이 테니치카가 옛 연인 넬리를 닮았다고 중얼대자 니콜라이가 놀랍니다. 바자로프가 짐을 싸 떠난 뒤 폴은 테니치카를 불러 정자에서 본 일을 말하고 형을 사랑하라며 눈물을 흘리고, 니콜라이에게 그녀와 결혼하라고 권해 승낙을 받습니다.
제25~28장: 작별, 죽음, 그리고 후일담
니콜스코에의 물푸레나무 아래에서 아르카디와 카티아가 하이네를 읽습니다. 카티아는 바자로프가 야생 새이고 자신들은 길든 새라고 말하고, 아르카디는 "누구와도 카티아 세르기예브나를 바꾸지 않겠다"고 불쑥 고백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그때 바자로프가 갑자기 와서 결투 소식을 전하고, 아르카디의 연애를 눈치채고 "우리는 이제 서로 쓸모가 없다"고 말합니다. 안나에게는 과거 일은 잊겠다고 하고, 안나는 우정을 청합니다. 이튿날 그리스풍 정자에서 아르카디가 더듬거리는 동안 숲길 너머에서 안나와 바자로프의 대화가 들립니다. 안나가 두 사람은 너무 닮아 절실히 필요하지 않다고 하자 바자로프는 "시체에게 화관을 엮어 주어 무엇하느냐"고 받습니다. 그들이 지나가자 아르카디는 카티아에게 평생 사랑하겠다며 청혼하고 카티아는 "네"라고 답합니다. 바자로프는 안나가 붙잡아도 "날치는 잠깐 공중에 있다 제 물로 돌아간다"며 거절하고, 아르카디에게는 헤어짐이 영원임을 알리며 서둘러 결혼해 둥지를 틀라고 한 뒤 떠납니다. 아르카디는 저녁이 되기 전에 스승을 잊고 카티아와의 이야기에 빠지고, 안나는 쓸쓸함과 안도를 함께 느낍니다.
바자로프는 부모에게 돌아와 "여섯 주 머물며 일하겠다"고 하고, 바실리와 아리나는 아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숨죽이고 지냅니다. 열기가 식은 그는 권태에 빠져 서성이고, 농부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농민에게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봅니다. 아버지의 진료를 돕기 시작해 노인을 기쁘게 하던 어느 날, 티푸스로 죽은 농부의 시신을 해부하다 손가락을 베고 아버지에게 지옥석으로 소작을 받습니다. 곧 열이 나고 코피가 나며 붉은 반점이 나타나자 그는 스스로 "내 시간이 다했다"고 선언하고, 아버지에게 오딘초프 부인께 "에브게니가 죽어 가며 안부를 전한다"는 말만 전하라고 합니다. 안나가 독일인 의사와 함께 도착하고 의사는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속삭입니다. 바자로프는 그녀에게 사랑했다고 말하고 노부모를 부탁하며 "꺼져 가는 등불에 숨을 불어 평화롭게 꺼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안나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자 그는 "이제 어둠이 오라"고 말합니다. 다음 날 그는 숨을 거두고, 종부성사 중 신부의 법의를 보고 얼굴에 혐오 같은 것이 스칩니다. 바실리는 "나는 항의한다"고 외치며 격분하고, 아리나는 그의 목을 안고 함께 쓰러집니다.
여섯 달 뒤 1월, 마리노에서는 일주일 전 조용히 치른 두 쌍의 결혼식, 곧 아르카디와 카티아, 니콜라이와 테니치카의 혼례를 기념해 폴의 송별 만찬이 열립니다. 폴은 모스크바로 떠나기 전 모두에게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오"라고 영어로 덧붙입니다. 안나는 사랑도 의무도 아닌 이유로 냉철한 유망 정치가와 결혼해 화목하게 살고, 키르사노프 부자는 마리노에서 영지를 바로잡으며, 카티아는 아들 콜랴를 낳고 미티아는 건강하게 자랍니다. 폴은 드레스덴에서 고급 신사로 지내지만 러시아 교회 구석에서 쓸쓸히 생각에 잠기곤 하고, 시트니코프는 페테르부르크에서 "고(故) 바자로프의 일을 잇는다"며 뽐냅니다. 마지막으로 외딴 시골 묘지에는 철책과 어린 전나무 두 그루가 선 바자로프의 무덤이 있습니다. 늙은 부부가 이따금 찾아와 무릎 꿇고 울며 비석을 닦고 전나무 가지를 놓고, 작가는 그들의 눈물과 기도가 헛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무덤 위 꽃들은 영원한 화해와 끝없는 삶을 이야기하는 평온한 자연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대목별로 읽기
1. 모자도 쓰지 않고 기다리는 아버지
소설은 사상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시작합니다. 니콜라이는 먼지 묻은 재킷 차림으로 역참 베란다에 서서 하인에게 "아직 안 보이느냐"고 거듭 묻고, 마차가 보이자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습니다. 이 첫 장면이 중요한 것은 뒤에 이어질 충돌이 사랑이 모자라서 생기는 충돌이 아니라는 점을 미리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아들도 아버지를 아끼지만, 아들은 벌써 아버지를 약간 내려다봅니다. 마차 안에서 테니치카 이야기를 더듬거리며 털어놓는 아버지와 허물없이 받아들이는 척하는 아르카디 사이에는 이미 미묘한 위아래가 생겨 있습니다.
My son Arkady a graduate!
내 아들 아르카디가 졸업생이라니!
이 한 줄의 들뜸은 책 끝에서 되돌아옵니다. 아들 세대가 아버지를 떠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아버지의 영지로 돌아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 허무주의자라는 말
바자로프가 누구냐는 폴의 물음에 아르카디가 내놓는 대답이 책의 핵심 단어입니다. 투르게네프는 정의를 서술자의 입이 아니라 청년의 입에 맡깁니다. 정의는 놀랄 만큼 소박합니다. 무엇을 파괴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증명되지 않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폴의 "원칙 없이는 숨도 못 쉰다"는 반응이 더 극적입니다. 폴에게 원칙은 사상이 아니라 공기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말을 쓰면서 서로 다른 세계에 서 있습니다.
A Nihilist is a man who declines to bow to authority
허무주의자란 권위에 고개를 숙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In other words, he believes in frogs more than in principles.
다시 말해, 그는 원칙보다 개구리를 더 믿는다는 거군요.
폴의 비꼼은 영리하지만 정확하게 상대의 약점을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바자로프는 개구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직접 열어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으려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시보다 화학, 사원보다 작업장
바자로프의 세계관은 한 문장씩 따로 보면 거칠고, 모아 놓으면 일관됩니다. 자연은 감상할 대상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며, 인간도 그 안의 생물일 뿐입니다. 제5장에서 그는 마을 아이들에게 개구리를 해부하러 간다고 말하며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제6장에서는 시인이 아니라 화학자가 쓸모 있다고 하고, 제9장에서는 자연을 사원이 아닌 작업장에 비유합니다. 이 세 대목은 하나의 논리를 이룹니다. 유용한 것만 인정한다는 태도입니다.
You and I are frogs too, except that we walk upon our hind legs.
너와 나도 개구리다, 다만 뒷다리로 걷는다는 점만 다르지.
A good chemist is worth a score of your poets,
좋은 화학자 한 사람이 자네들의 시인 스무 명만큼 값지네.
She is not a church, but a workshop wherein man is the labourer.
자연은 사원이 아니라 작업장이고, 그 안에서 인간은 일꾼이다.
이 논리의 힘은 후반부에서 시험받습니다. 시를 거부하던 사람이 자기 자신의 감정 앞에서 무엇을 하는지, 작업장의 일꾼이 맞이하는 마지막 작업이 무엇인지를 소설이 끝까지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4. 폴과의 정면충돌, 파괴할 권리
제10장의 저녁 논쟁은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입니다. 폴은 영국 귀족제를 예로 들어 원칙과 품위를 말하고, 바자로프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는 한마디로 받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폴이 이 부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너무 정확히 이해해서 화가 났다는 점입니다. 대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바자로프는 건설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터부터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청년의 힘과 한계가 동시에 드러납니다.
Deny everything.
모든 것을 부정하라.
First must the site be cleared.
먼저 터를 비워야 한다.
We demolish because we are a force,
우리는 힘이기에 허문다.
마지막 문장은 아르카디가 폴에게 한 말인데, 아버지 세대의 눈에는 파괴가 곧 힘의 증명으로 읽힌다는 것을 청년이 스스로 말해 버린 셈입니다. 바자로프는 이 자리에서 이기지도 지지도 않고, 개구리를 해부하러 가자며 자리를 뜹니다. 논쟁에서 이기려 하지 않는 태도가 폴에게는 가장 큰 모욕입니다.
5. 폴 페트로비치의 스핑크스
제7장은 폴을 단순한 시대의 화석으로 두지 않기 위한 장입니다. 사교계의 스타였고 대위까지 올랐던 사람이 한 여인을 쫓아 군복을 벗고 유럽을 4년 동안 떠돌았다는 이야기는, 그가 평생 원칙과 품위에 집착하는 이유를 한꺼번에 설명합니다. 그는 잃어버린 사랑 앞에서 무너진 사람이고, 무너진 뒤에 매일 영국식으로 옷을 입고 우아함을 지키는 것으로 버텨 온 사람입니다. 바자로프가 "사랑에 모든 걸 걸고 무너진 사람은 어리석다"고 일축하는 순간, 독자는 훗날 바자로프 자신이 같은 길에 서게 된다는 것을 모른 채 웃게 됩니다.
The Sphinx is yourself.
스핑크스는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Thus ten years elapsed in colourless, fruitless pursuits.
그렇게 10년이 빛깔도 열매도 없는 일들로 흘러갔다.
he is a man desperately unhappy, not one who ought to be despised.
그분은 몹시 불행한 사람이지, 멸시받아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수수께끼 같은 여인에게 "스핑크스는 당신 자신"이라고 말한 사람이, 정작 자신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 돌아왔다는 것이 이 장의 쓴맛입니다.
6. 니콜라이의 정자, 낭만을 지닌 세대
이 소설에서 가장 조용한 장은 제11장입니다. 니콜라이는 아들과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젊은이들이 진리에서 더 멀어 보여도 자신들에게 없는 무언가를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시를 거부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저녁 풍경 속에서 첫 아내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투르게네프는 이 아버지를 조롱하지 않습니다. 바자로프가 "한물간 낭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이 가장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 줍니다.
Ah, you elderly Romanticists!
아, 이 나이 든 낭만주의자들이여!
이 대사는 신경이 예민한 니콜라이를 두고 밤에 바자로프가 하는 말입니다. 조롱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책이 끝났을 때 이 낭만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행복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말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7. 지방 도시의 풍자: 쿠크신과 시트니코프
제12~13장은 숨 돌리는 희극입니다. 진보를 자처하는 관리 마트베이 일리치, 지사를 방문했더니 형제로 착각하는 지사, 샴페인을 앞세운 해방된 여성 쿠크신 부인, 그리고 바자로프의 "제자" 시트니코프가 나옵니다. 모두 새 시대의 옷만 입고 있을 뿐 속은 허영입니다. 투르게네프는 허무주의가 퍼질 때 반드시 따라붙는 흉내 내는 사람들을 놓치지 않습니다. 바자로프가 그들에게 보내는 경멸은 정당하지만, 같은 경멸이 자기 안의 무엇에 닿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I agree with no man's opinions
나는 누구의 의견에도 동조하지 않는다.
We need the Sitnikovs of this world.
이 세상에는 시트니코프 같은 사람도 필요하다.
The gods ought not to have to bake pots.
신들이 항아리를 굽게 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 두 문장은 제19장에서 아르카디가 떠나겠다고 하자 나옵니다. 신들은 항아리를 구울 필요가 없다는 말은 바자로프의 오만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그 오만이 사랑의 실패 직후에 나온다는 점이 이 말을 더 씁쓸하게 만듭니다.
8. 오딘초프 부인, 질서를 사랑하는 여자
안나 세르기예브나는 이 책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도박꾼의 딸로 가난을 겪고, 병약한 부자와 6년을 살고, 부를 물려받은 뒤에는 자기만의 규칙적인 생활을 쌓은 그녀는 마음을 흔들 일을 피하는 데 능숙합니다. 바자로프가 그녀를 처음 보고 몸이 훌륭하다고 농담하면서도 당황하는 것은 그녀가 그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니콜스코에에서 바자로프는 사람이란 숲의 나무와 같다는 유물론적 인간관을 펴고, 안나는 식물의 라틴어 이름을 배우려는 이유를 체계로 설명합니다. 두 사람이 비슷한 이유는 둘 다 감정을 관리 가능한 것으로 믿는다는 점입니다.
System is in all things necessary,
모든 일에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human beings are like trees in a forest.
인간은 숲속의 나무와 같습니다.
식물학자는 숲의 나무를 한 그루씩 연구하지 않는다는 바자로프의 논리는, 그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한 그루의 나무 앞에서 속수무책이 된다는 아이러니로 돌아옵니다.
9.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제17장 밤의 대화에서 안나는 사랑에 대한 자신의 원칙을 말합니다. 주려면 전부를 주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자로프에게 초대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문턱입니다. 안나는 자기가 그 문턱을 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편 바자로프는 한 여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처세론을 아르카디에게 늘어놓으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숲속을 헤맸습니다. 이 인물의 가장 인간적인 면은 자기 이론을 자기에게 적용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Take my all, give your all
내 전부를 가져가고, 당신의 전부를 주세요.
it ought to be everything or nothing
전부이거나 아무것도 아니어야 해요.
For the world does not rest upon a single keystone.
세상은 하나의 쐐기돌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니까.
마지막 문장은 아르카디에게 한 충고입니다. 세상이 한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한 사람이, 그 한 사람 앞에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10. 고백과 퇴각
제18장은 바자로프의 이론이 처음으로 몸을 잃는 장면입니다. 안나는 책을 핑계로 그를 부르고, 장래와 행복과 속마음을 캐묻습니다. 바자로프는 군의관이 되겠다는 대답으로 피하려 하지만 끝내 창가에서 고백합니다. 사랑을 낭만이라 비웃던 그가 쓴 표현은 "맹목적이고 미칠 듯한" 정열입니다. 안나는 그를 껴안은 순간 두려움과 연민을 함께 느끼고 몸을 뺍니다.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쪽지는 서로 정직한 문장이지만 서로를 위로하지는 않습니다.
that I love you with a blind, insensate passion.
내가 당신을 눈멀고 이성 없는 열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Rather, I have failed to understand myself.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다.
Freedom from worry is the chief thing in the world.
근심 없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다.
안나가 내리는 결론은 냉정하다기보다 정직합니다. 평온이 사랑보다 앞선다는 것을 이 여인은 알고 있었고, 그 앎이 바자로프에게 재앙이 됩니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악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장은 사랑 이야기이자 두 기질의 충돌입니다.
11. 부모의 집, 늙은 부부의 사랑
제20~21장은 바자로프의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 바실리 이바니치는 아들 앞에서 감정을 억누르며 쉴 새 없이 떠들고, 어머니 아리나는 울며 매달리면서도 얼마나 머물 건지는 묻지 못합니다. 바자로프는 건성으로 대꾸하며 거리를 둡니다. 이 장면들의 아픔은 바자로프가 부모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부정해 버렸다는 데서 옵니다. 정오의 건초 더미 아래에서 그는 부모의 만족스러운 삶과 자신의 권태를 대비합니다. 사흘 만에 떠나는 그를 보내고 난 뒤의 노인의 울음이 그래서 오래 남습니다.
Poverty is no crime.
가난은 죄가 아니다.
Such women are now extinct
그런 여인들은 이제 사라졌다.
lonely as the sand of the desert
사막의 모래처럼 외로운
아리나가 "우리는 나무 속 이끼처럼 곁에 있다"고 남편을 껴안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소리 없는 대답입니다. 두 노인은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서로는 이해합니다.
12. 원칙은 없고 본능만 있다
건초 더미 아래의 대화는 허무주의가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입니다. 바자로프는 원칙 따위는 없고 본능만 있다고 주장하며, 중요한 것은 결국 사소한 일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폴과 싸울 때보다 더 철저합니다. 폴과 싸울 때의 부정은 논쟁의 무기였는데, 여기서는 자기 삶에 대한 진단이기 때문입니다. 아르카디가 삼촌 이야기를 꺼내자 둘은 거의 맞붙고, 바자로프의 악의 어린 표정에 아르카디는 놀랍니다. 이때부터 친구 사이의 틈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집니다. 한편 같은 장의 시작에서 아르카디가 노인에게 하는 말은 정반대의 온기를 보여 줍니다.
Your son is the most remarkable man that I have ever met
아드님은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비범한 분입니다.
No such thing as principle exists.
원칙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Instincts only exist, and upon them everything depends.
본능만이 존재하고, 모든 것은 그것에 달려 있다.
it is trifles, trifles that matter.
중요한 것은 사소한 일들, 바로 사소한 일들이다.
본능이 전부라는 이론은 바자로프를 자유롭게 하지 않고 오히려 정원의 장미 앞에서 그를 무방비로 만듭니다.
13. 라일락 정자와 결투
결투에 이르는 길은 우연으로 가득합니다. 아르카디가 떠난 뒤 바자로프는 테니치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라일락 정자에서 장미 한 송이를 구실로 입을 맞추는데, 폴이 마른기침과 함께 그 장면을 목격합니다. 폴이 결투를 신청하는 진짜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고, 그는 형에게 로버트 필 경 때문에 다퉜다고 둘러댑니다. 그러나 결투 뒤 열에 들뜬 폴이 테니치카를 옛 연인 넬리에 비기는 말에서 독자는 이유를 짐작합니다. 결투는 두 세대의 대결이 아니라 폴의 오래된 상실이 마지막으로 터진 것입니다.
From the theoretical standpoint, the duel is a sheer absurdity.
이론적 관점에서 결투는 순전히 어리석은 짓이다.
Oh these men of nerves!
아, 이 신경질적인 사람들이라니!
바자로프가 이론을 버리고 현실의 모욕에 응하는 장면, 그리고 가벼운 상처에 기절한 폴을 의사로서 치료하는 장면은 이 책의 아이러니가 가장 정확하게 겹치는 곳입니다. 이긴 쪽은 결투 뒤에 짐을 싸고, 진 쪽은 비로소 동생에게 가장 너그러운 말을 합니다. 폴이 테니치카에게 형을 사랑하라 하고 결혼을 권하는 마지막 호의는, 결투가 누구에게 무엇을 해방시켰는지를 보여 줍니다.
14. 야생 새와 길든 새
제25~26장은 우정이 끝나는 과정입니다. 카티아가 정원에서 바자로프는 야생 새이고 자신들은 길든 새라고 말할 때, 그것은 비난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입니다. 아르카디는 길든 쪽이고 행복해질 사람입니다. 바자로프가 아르카디의 연애를 알아채고 "이제 서로 쓸모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우정의 선언이 아니라 헤어짐의 예고입니다. 안나와의 대화에서 그가 사랑을 경험적 감정일 뿐이라고 하는 것은 거절당한 사람의 방어로 읽히기도 하고, 정말로 자기 이론을 끝까지 밀고 가려는 마지막 시도로도 읽힙니다.
whereas he was a wild bird, you and I are tame ones.
그분은 야생 새이고, 당신과 나는 길든 새라는 거예요.
love is a mere empirical sentiment.
사랑은 한낱 경험적 감정일 뿐이다.
Ill boots it to weave chaplets for the head of a corpse.
시체의 머리에 화관을 엮어 줘 봐야 무슨 소용인가.
line your nest, and beget plenty of offspring.
둥지를 꾸미고 자식을 많이 낳게.
마지막 충고는 가장 쓰라립니다. 바자로프는 자신이 살 수 없는 삶을 아르카디에게 처방하면서, 그가 허무주의자가 될 그릇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한 직후 그는 영원히 헤어짐을 선언합니다. 이 인물의 모순은 스승으로서 가장 정직한 순간이 곧 작별이라는 데 있습니다.
15. 죽음 앞의 바자로프
제27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길고 가장 담담한 장입니다. 부모의 집에서 바자로프는 일의 열기가 식자 권태와 우울에 빠지고, 농부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농민에게 낯선 존재임을 확인합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진료를 돕기 시작하고, 티푸스로 죽은 농부의 시신을 해부하다 손가락을 베입니다. 병이 퍼지자 그는 의사로서 자신의 시간이 다했음을 정확히 선언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죽음 앞에서 무너지지도, 갑자기 신앙을 찾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신부를 부르자는 아버지에게 "좀 기다리겠다"고 답하고, 스스로를 비웃는 힘을 끝까지 지킵니다.
I am not going to put my tail between my legs.
나는 꼬리를 내리지 않을 거다.
Russia needs me, indeed!
러시아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어련하시겠어!
Ah, breathe now upon the expiring lamp, that it may go out in peace.
아, 이제 꺼져 가는 등불에 숨을 불어 평화롭게 꺼지게 해 주오.
Now let there come--darkness.
이제 어둠이 오라.
안나가 찾아와 이마에 입을 맞추는 장면은 소설이 그에게 허락하는 유일한 보상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사랑했다고 말하고, 안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다가갑니다. 죽음이 두 사람이 평생 지키려 했던 거리를 허무는 순간이 이토록 조용한 이유는, 이 인물이 마지막까지 과장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16. 두 그루 전나무, 영원한 화해
바자로프가 숨을 거둔 뒤 소설의 목소리는 부모에게 넘어갑니다. 종부성사 중 신부의 법의를 보고 바자로프의 얼굴에 혐오 같은 것이 스치는 장면은 그의 마지막 일관성을 보여 주지만, 곧이어 바실리가 터뜨리는 분노는 아버지가 평생 눌러 온 감정의 폭발입니다. 이어지는 제28장은 후일담입니다. 아르카디와 카티아, 니콜라이와 테니치카가 혼례를 올리고, 안나는 사랑도 의무도 아닌 이유로 결혼하고, 폴은 외국에서 쓸쓸히 지내고, 시트니코프는 여전히 바자로프의 일을 잇는다고 뽐냅니다. 모든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안착하는 동안 바자로프만 흙 속에 있습니다.
I declare that I protest!
나는 항의한다, 항의한다!
the Eternal Reconciliation, and of the Life which shall have no End.
영원한 화해와, 끝이 없을 삶의.
마지막 단락은 철책과 어린 전나무 두 그루가 선 시골 묘지로 향하는 늙은 부부를 따라갑니다. 투르게네프는 그들의 눈물과 기도가 헛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결말은 바자로프의 부정에 대한 반박이라기보다 그가 끝내 믿지 못했을 위로를 독자에게 남기는 방식입니다. 아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았지만, 부모의 사랑은 그의 무덤 위에서 이어집니다.
17. 이 책을 읽는 방법
『아버지와 아들』은 스물여덟 장이지만 장이 짧고 장면이 선명해서 꾸준히 읽기 좋습니다. 처음이라면 제1장(역참의 베란다), 제5~6장(허무주의자라는 말), 제10장(폴과의 정면충돌), 제18장(고백), 제24장(결투), 제27장(죽음)을 먼저 읽어 보세요. 그다음 제7장의 폴의 과거와 제28장의 마지막 단락을 이어서 읽으면, 책이 바자로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두 세대와 두 종류의 사랑을 함께 그린 이야기임이 보입니다. 읽을 때는 누가 옳은지 판정하려 하기보다, 각 인물이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하는지를 따라가 보는 편이 좋습니다. 폴은 품위를, 니콜라이는 아들을, 안나는 평온을, 바자로프는 자신의 이론을 지키려 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순간마다 책의 가장 좋은 대사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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