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Gem · 한 권 요점
출판년도 1932
A Buddhist Bible
불교성경
영어권에 선(禪)을 알린 선집, 『능가경』에서 『반야심경』까지
These teachings are only a finger pointing toward Noble Wisdom.
이 가르침들은 거룩한 지혜를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Universal Mind is like a great ocean, its surface ruffled by waves and surges but its depths remaining forever unmoved.
보편적 마음은 큰 바다와 같아서, 수면은 파도와 물결로 일렁여도 그 깊은 곳은 언제나 움직이지 않는다.
한눈에 보기
미국의 드와이트 고다드가 선종(禪宗)이 아끼는 경전을 영어 독자가 읽기 쉽게 다듬어 엮은 1932년의 선집. 세계는 마음이 보는 꿈과 같다는 『능가경』을 중심으로 선의 역사, 『반야(般若)심경』, 『금강경(金剛經)』, 『육조단경(六祖壇經)』이 한 권에 묶여 있다. 스무 가지 대목으로 읽는다.
비슷한 책
- 『육조단경』 The Sutra of the Sixth Patriarch
- 『금강경』 The Diamond Sutra
- 『법화경』 The Lotus Sutra
한 권 요점
A Buddhist Bible
『A Buddhist Bible』은 미국인 불교 연구자 드와이트 고다드(Dwight Goddard)가 엮어 1932년에 낸 책입니다. 제목의 "성경"은 불교 안의 용어가 아니라, 영어권 독자에게 "여러 경전을 한 권에 모은 책"이라는 뜻을 전하려는 이름입니다. 1932년 초판에는 선종이 아끼는 경전이 실렸습니다. 『능가경』, 『금강경』, 『반야심경』, 『육조단경』이고, 앞에는 선(禪)의 역사를 설명하는 글이 붙어 있습니다. 1938년에는 훨씬 많은 불교 문헌을 더한 증보판이 나왔고, 이 책은 20세기 영어권에서 불교와 선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잭 케루악 같은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드와이트 고다드(1861~1939)는 미국 버몬트주에 살면서 일본의 선 학자 스즈키 다이세쓰와 선승 야마자키 타이코에게 선을 배웠다고 밝힌 사람입니다. 이 책을 두 사람에게 바쳤고, 『붓다(佛陀)의 황금 길』, 『노자의 도와 무위』 같은 책을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1927년 중국 난징을 방문해 도교 수행자 친구를 만난 이야기를 책에 적었는데, 이런 경험이 선과 도가의 관계를 읽는 그의 시각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A Buddhist Bible』은 그가 1932년에 직접 펴낸 책이고, 1938년의 증보판으로 다시 나왔습니다.
이 책은 학술 번역서가 아니라 "읽기 위한 판본"입니다. 고다드는 기존의 좋은 번역을 가져와 반복되는 부분과 곁가지를 걷어 내고, 순서를 정리하고, 어려운 용어에는 풀이를 달았습니다. 그래서 장 번호나 문장 순서가 원래 경전과 다릅니다. 이 글은 그 점을 전제로, 이 책이 영어 독자에게 건넨 핵심 생각들을 스무 대목으로 읽습니다. 가장 큰 비중은 『능가경』에 두었습니다. 『금강경』과 『육조단경』은 이미 각각 한 편의 글로 읽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짧게 이어 주기만 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일은 한 가지 질문에 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선은 왜 경전을 믿지 말라고 하면서 경전을 이렇게 아낄까, 하는 질문입니다. 책이 주는 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는 것입니다.
줄거리
이 책에는 줄거리가 없고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고다드의 머리말과 용어 풀이, 인도 불교가 중국에서 선으로 바뀌는 과정을 다룬 역사 글이 나옵니다. 이어 본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능가경』이 열세 장으로 이어지고, 그 뒤에 『금강경』과 『반야심경』, 그리고 혜능(慧能)의 『육조단경』이 따릅니다. 아래는 이 순서를 따랐습니다.
대목별로 읽기
1. 경전을 고쳐 읽기 쉽게 만든 네 가지 규칙
고다드는 머리말에서 자신이 경전을 다룬 방식을 숨기지 않고 밝힙니다.
To omit all matter not bearing directly upon the theme of the Sutra. To arrange into a more orderly sequence. To interweave and condense cognate teachings. To interpret obscure words and teachings.
경전의 주제와 직접 관계없는 내용은 뺀다. 더 질서 있는 순서로 배열한다. 같은 계열의 가르침은 엮어서 압축한다. 모호한 말과 가르침은 풀이한다.
이 네 규칙 덕분에 오래된 경전이 한 번에 읽히게 되었지만, 그만큼 책의 모습은 편집자의 손을 탔습니다. 고다드 스스로도 학문적으로 공부하려면 더 정밀한 번역을 보라고 당부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원전 그대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원전을 읽고 전하려 한 뜻"으로 읽는 것이 정직합니다.
2. 무신론, 염세주의라는 오해
고다드가 이 책을 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불교에 대한 당시 서양의 편견을 바로잡는 것이었습니다.
Buddhism was represented by the earlier Christian scholars as being "atheistic" and "pessimistic,"
불교는 앞선 시대의 기독교 학자들에 의해 "무신론적"이고 "염세적"이라고 소개되었다.
그는 이것이 팔리어 문헌 위주로 불교를 접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주장합니다. 산스크리트 대승 경전을 읽으면 고요함과 자비(慈悲)가 중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1932년의 주장이므로 오늘의 불교학이 이 설명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이 서양 독자에게 불교를 다시 소개하려는 의도로 쓰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3. 불교가 도(道)를 만났을 때
고다드의 역사 글은 인도 불교가 중국에서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불교와 도가의 만남입니다.
Buddha is Tao, Tao is dhyana.
부처가 도이고, 도가 선정이다.
그는 초기 선사들이 "붓다"라는 낯선 말 대신 "도"라는 말을 자유롭게 썼고, 한동안은 불교가 도가의 한 갈래처럼 보일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정적인 "붓다"와 동적인 "도"가 서로를 채워 주었다는 설명입니다. 이 시각은 선을 인도 불교의 연장이 아니라 중국의 사유와 만나 태어난 새로운 불교로 이해하게 합니다. 『도덕경』과 선이 닮아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설득력 있는 틀이지만, 어디까지가 도가의 영향인지는 지금도 학자마다 의견이 갈립니다.
4. 달마와 양 무제, 그리고 "모릅니다"
선의 시조로 꼽히는 보리달마는 중국의 황제를 만난 이야기로 가장 유명합니다. 불사를 많이 일으킨 양나라 무제가 자신이 얼마나 공덕을 쌓았는지 묻자 달마는 이렇게 답합니다.
None whatever, your majesty.
아무것도 없습니다, 폐하.
가장 높은 진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같은 태도입니다.
Vast emptiness, and there is nothing in it to be called 'holy,' Sire.
텅 비어 드넓을 뿐이며, 그 안에 "거룩하다"고 부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폐하.
그러면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누구냐는 물음에는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이 대화는 선종의 가장 유명한 일화이지만, 후대에 정리된 전승이라 역사적 사실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책에 실린 연대도 오늘의 연구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화가 오래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선이 공덕과 형식보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한 문장으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5. 벽처럼 마음을 세운다
달마가 소림사에서 가르쳤다고 전해지는 수행이 "벽관(壁觀)"입니다. 고다드가 인용한 구절은 이렇습니다.
Externally keep yourself away from all relationships, and internally cherish no hankerings in your heart. When your mind becomes like an upright wall
밖으로는 모든 관계에서 자신을 멀리하고, 안으로는 마음에 아무 바람도 품지 말라. 마음이 우뚝 선 벽과 같아지면
벽은 분별하는 생각이 들어오지 못하는 마음을 뜻한다고 책은 풀이합니다. 제자 혜가는 팔을 잘라 구도의 뜻을 보였다는 전승으로 유명하지만, 이것 역시 전설로 읽어야 합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달마가 혜가에게 준 가르침의 방식입니다. 설명하지 않고 "아니다, 아니다"라고만 하다가, 혜가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늘 분명히 안다고 하자 그것이 곧 마음의 본성이라고 인정합니다. 말로 전하지 못하는 것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선의 방식이 여기서 이미 드러납니다.
6. 달마가 남긴 단 하나의 경전
고다드는 선이 경전을 멀리하면서도 한 권만은 예외로 두었다고 말합니다.
In Bodhidharma's distrust of scriptures and intellectual knowledge, he made an exception of the Lankavatara Sutra.
경전과 지적 지식을 불신했던 달마도 『능가경』만은 예외로 삼았다.
그 이유는 이 경전만이 모든 것이 마음의 본성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일을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달마가 혜가에게 『능가경』을 주었다는 전승이 있고, 그래서 이 경전이 선종의 오랜 뿌리로 여겨집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는 단정하기 어렵지만, 이 책이 『능가경』을 선집의 중심에 놓은 이유를 보여 줍니다.
7.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책
『능가경』은 석가(釋迦)모니가 바다 한가운데 섬의 성에서 보살(菩薩) 마하마티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입니다. 책의 해설은 이 경전의 정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합니다.
Nothing is known as to its author, the time of its composition, or as to its original form.
저자도, 쓰인 시기도, 원래의 모습도 알려진 바가 없다.
해설은 이 경전이 원래 운문 모음이었고 제자의 노트처럼 정리되었다고 추정합니다. 편집자가 제시한 연대는 오늘의 학계가 보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5세기에 중국어로 번역된 판본이 전해진다는 정도만 짚어 두겠습니다. 이 경전이 어려운 이유는 분명합니다. 철학 체계를 세우려는 책이 아니라 가장 깊은 체험을 가리키려는 책이어서, 같은 말을 조금씩 바꾸어 되풀이하며 한 방향으로 되돌리기 때문입니다.
8. 세계는 마음이 보는 꿈과 같다
『능가경』의 첫 가르침은 우리가 보는 세계가 마음 바깥에 따로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All that is seen in the world is devoid of effort and action because all things in the world are like a dream, or like an image miraculously projected.
세상에서 보이는 모든 것에는 따로 애씀과 작용이 없다. 세상 모든 것이 꿈과 같고, 신비하게 투사된 영상과 같기 때문이다.
이어서 경전은 갈증에 시달리는 짐승이 아지랑이를 물로 알고 쫓아가는 비유를 듭니다.
It is all like a mirage in which springs of water are seen as if they were real.
그것은 마치 신기루 속에서 샘물이 실제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중요한 것은 이 말이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그것을 붙잡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르침의 초점은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에 놓입니다.
9. 이름과 모양에 매달리는 마음
그렇다면 어리석은 사람은 왜 세상을 실재로 붙드는가를 묻는 대목입니다.
It is because the ignorant cling to names, signs and ideas;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이름과 모양과 관념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이름을 붙이고, 좋고 나쁨을 가르고, 좋은 것을 붙들면 그 위에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업이 쌓이고 자기만의 고치에 갇히게 된다고 경전은 말합니다. 오늘의 말로 하면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붙인 이름과 판단을 통해 본다는 지적입니다. 이 지적은 마음챙김 수련에서 말하는 "생각과 사실의 구분"과도 닿아 있습니다.
10. 말은 손가락일 뿐
『능가경』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비유입니다.
When a man with his finger-tip points to something to somebody, the finger-tip may be mistaken for the thing pointed at; in like manner the ignorant and simple-minded, like children, are unable even to the day of their death to abandon the idea that in the finger-tip of words there is the meaning itself.
누가 손끝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면 손끝을 가리켜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죽는 날까지도 말이라는 손끝에 뜻 자체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이어서 경전은 이렇게 권합니다.
Meaning stands alone and is a guide to Nirvana.
뜻은 홀로 서 있으며, 열반으로 이끄는 길잡이다.
말에 집착하지 말고 뜻을 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경전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These teachings are only a finger pointing toward Noble Wisdom.
이 가르침들은 거룩한 지혜를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경전이 스스로 "나는 진리 자체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글을 읽는 우리에게는 불편하면서도 해방적인 고백입니다. 책을 읽는 목적이 책을 넘어서는 데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11. 생사와 열반은 한 얼굴
이분법을 부수는 대목입니다. 빛과 그림자, 길고 짧음은 서로 의존하는 관계의 말이라고 한 뒤 경전은 이렇게 이어 갑니다.
Even Nirvana and Samsara's world of life and death are aspects of the same thing
열반과 윤회의 생사 세계조차 같은 것의 다른 면이다.
그래서 열반(涅槃)을 생사 바깥의 다른 세계로 상상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합니다. 이 생각은 뒤에 혜능이 말한 "번뇌가 곧 깨달음"과 곧바로 이어집니다. 앞서 읽은 『육조단경』의 급진적인 문장들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 대승 경전의 흐름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12. 마음의 바다와 일렁이는 물결
『능가경』의 심리학은 이 비유에서 가장 잘 요약됩니다.
Universal Mind is like a great ocean, its surface ruffled by waves and surges but its depths remaining forever unmoved.
보편적 마음은 큰 바다와 같아서, 수면은 파도와 물결로 일렁여도 그 깊은 곳은 언제나 움직이지 않는다.
경전은 마음을 겹으로 나눕니다. 눈과 귀 같은 감각과 그에 딸린 마음, 그것들을 모아 판단하는 분별하는 마음, 그 사이를 잇는 직관의 마음, 그리고 가장 깊은 곳의 보편적 마음입니다. 우리가 평소 "나의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맨 위의 파도에 가깝습니다. 파도에 휩쓸리면 바다를 잊지만, 바다는 처음부터 움직인 적이 없다는 것이 이 비유의 요점입니다.
13. 마술사와 광대
분별하는 마음과 직관의 마음의 관계를 경전은 극단의 비유로 표현합니다.
The discriminating-mind is a dancer and a magician with the objective world as his stage. Intuitive-mind is the wise jester who travels with the magician and reflects upon his emptiness and transiency.
분별하는 마음은 대상 세계를 무대 삼은 무용수이자 마술사다. 직관의 마음은 그 마술사와 함께 다니며 그의 공허함과 덧없음을 곱씹는 현명한 광대다.
생각이 만든 화려한 무대 옆에서, 그것이 무대임을 아는 존재가 늘 함께 있다는 말입니다. 이 광대는 마술사를 없애지 않고, 다만 속지 않습니다. 선이 생각을 억누르라고 하지 않고 생각에 휩쓸리지 말라고 한 이유를 이 비유가 잘 보여 줍니다.
14. 방향을 돌리는 "전의(轉依)"
그렇다면 분별하는 마음이 멈추려면 무엇이 일어나야 할까요. 경전은 점진적인 노력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을 말합니다.
But the cessation of the discriminating-mind can not take place until there has been a "turning-about" in the deepest seat of consciousness.
그러나 분별하는 마음의 그침은, 의식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방향의 전환"이 일어나기 전에는 일어날 수 없다.
이 "전환"은 바깥 대상으로 향하던 마음의 습관을 안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혜능이 혜명에게 "빛을 안으로 돌이키라"고 한 말과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고다드는 혜능이 『금강경』의 공(空)에 이어 『능가경』의 자기 실현을 배웠다고 설명합니다.
15. 단번에 오는 것과 서서히 닦는 것
흥미롭게도 『능가경』은 돈오(頓悟)와 점수 가운데 하나를 고르지 않고 둘을 모두 말합니다. 직접 체험은 갑자기 옵니다.
It is realised suddenly and intuitively as the "turning-about" takes place in the deepest seat of consciousness;
그것은 의식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전환"이 일어날 때 갑자기, 직관적으로 깨달아진다.
그러나 마음의 오염을 씻는 일은 서서히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It is like a potter making pots that is done gradually and with attention and effort.
그것은 도공이 그릇을 빚는 일과 같아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 서서히 이루어진다.
탐욕과 집착에서 오는 오염도, 분노와 교만 같은 마음의 오염도 점진적으로 정화된다는 설명입니다. 이 대목은 "돈오냐 점수냐"의 단순한 대립을 의심하게 합니다. 깨닫는 순간은 한 번에 오지만, 그 깨달음이 삶 전체에 스며드는 일은 오래 걸린다는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16. 열반에 머물지 않는 보살
『능가경』은 깊은 선정의 즐거움에 머무는 것도 경계합니다.
the Bodhisattva must not give himself up to the enjoyment of its bliss, for that would mean cessation, but should think compassionately of other beings and keep ever fresh his original vows
보살은 그 지복을 즐기는 데 자신을 내맡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멈춤을 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존재들을 자비롭게 생각하고 처음의 서원을 늘 새롭게 지켜야 한다.
깨달음은 혼자 누리는 평안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힘이라는 대승의 정신입니다. 경전은 열반이 모든 분별과 집착과 아집이 사라진 자리이면서 동시에 타인에 대한 자비가 자기 생각을 넘어서는 자리라고 말합니다.
17. 부처에게 붙은 수많은 이름
여래의 정체를 묻는 대목에서 부처는 자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는지 늘어놓습니다. 어떤 이는 신의 이름으로, 어떤 이는 해와 달로, 어떤 이는 공(空)과 진여와 법신으로 부른다고 한 뒤 이렇게 말합니다.
Thus in this world and in other worlds am I known by these uncounted names, but they all see me as the moon is seen in water.
이렇게 이 세계와 다른 세계에서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들은 모두 나를 물에 비친 달처럼 본다.
이름은 달처럼 보이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경전은 이름들 앞에서 자기가 아는 이름이 전부라고 고집하지 말고, 자신의 체험으로 확인하는 일을 믿으라고 권합니다.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18. 『반야심경』, 가장 짧은 경전
이 책의 『반야심경』은 가장 짧은 대승 경전 가운데 하나이지만, 옛 승려들은 이를 외워 하루에도 몇 번씩 독송했다고 책은 전합니다. 가장 유명한 대목입니다.
Form, or matter, is emptiness; emptiness is not different from form, nor is form different from emptiness; indeed, emptiness is form.
물질은 공이다. 공은 물질과 다르지 않고 물질도 공과 다르지 않다. 참으로 공이 곧 물질이다.
이 말은 감각, 지각, 분별, 의식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뒤에 이어지는 "눈도 없고 귀도 없고"의 긴 부정은 모든 개념을 지워 버리는 듯하지만, 결론은 허무가 아닙니다. 마지막은 기도처럼 끝납니다.
O Prajna-paramita! O Transcendent Truth that spans the troubled ocean of life-and-death, safely carry all seekers to that other shore.
오, 반야바라밀이여! 생사의 거친 바다를 건너 주는 초월의 진리여, 모든 구도자를 안전히 저 언덕으로 건네 주소서.
19. 『금강경』과 『육조단경』으로 이어지는 길
이 책의 뒷부분인 『금강경』과 『육조단경』은 이미 각각의 글로 읽었습니다. 『능가경』의 "마음이 만드는 세계"를 읽고 나면 『금강경』의 "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낸다"가 한결 구체적으로 다가오고, 혜능이 그 한 구절에서 깨달았다는 장면의 무게도 분명해집니다. 『반야심경』의 공(空)을 읽고 나면 혜능의 "본래 한 물건도 없다"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대승 사상의 오랜 흐름 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다드의 편집이 노린 효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20. 이 선집이 던지는 질문
고다드의 선집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지적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편집이 강하게 들어간 판본이라 원전의 장 구성과 문장이 다릅니다. 둘째, 선의 역사에 관한 부분은 1930년대의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달마와 초기 조사들의 연대와 이야기는 오늘의 연구와 차이가 있습니다. 셋째, "선은 합리적이고 현대 문명의 문제에 가장 잘 맞는다"는 식의 고다드의 주장은 시대의 기대가 많이 실린 판단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오래 읽힌 이유는 분명합니다. 어려운 경전을 읽을 수 있는 길로 만들어 주었고, 그 길 끝에서 경전이 스스로 손가락임을 인정하는 순간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방법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보다 순서를 바꾸어 읽는 편이 좋습니다. 먼저 짧은 『반야심경』으로 공(空)의 말투에 익숙해지고, 『육조단경』으로 선의 이야기와 설법을 읽은 뒤, 마지막에 『능가경』을 읽으면 어려운 용어가 훨씬 덜 낯섭니다. 『능가경』은 한 번에 끝내려 하지 말고 한 장에서 마음에 걸리는 비유 하나를 골라 오래 생각하는 방식이 이 경전과 잘 맞습니다. 바다와 파도, 손가락과 달, 마술사와 광대 같은 비유가 이 책을 열어 주는 열쇠입니다.
이 책은 선(禪)을 배우기 위한 입문서이면서, 경전을 읽는 방법에 대한 책이기도 합니다. 읽다가 막히면 "이것은 손가락이고, 나는 달을 보려는 중이다"라고 되뇌어 보세요. 그리고 나서 『금강경』, 『육조단경』, 『도덕경』으로 이어 읽으면 동아시아 사상이 인도의 경전과 도가의 사유를 어떻게 한 줄기로 엮었는지가 한결 선명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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